5. 가을의 만남
호들갑 떠는 송전무의 호의를 괜찮다 거절하고 카페로 돌아와 한쪽 구석에 가희와 앉아 커피를 앞에 놓고 선경은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런 선경을 한참 동안 지켜보던 가희가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며 말을 꺼냈다.
“무척 놀랐지?”
무엇에 놀랐냐는 말인지 잠시 가희 말뜻이 짐작되지 않았다. 설마 선경이 당할 뻔한 상황을 가희도 아는 걸까?
“그런 광경은 전혀 예상을 못했어요. 그런데 두 분 원래 그런 사이셨나요? 각자 배우자들을 동반한 모임에서 어떻게 그런 일을……”
그렇게 말하는 선경을 가희가 미묘한 웃음을 담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선경은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붉혔다.
“최과장이 아무런 설명도 안 한 모양이군.”
무언가 머리를 때리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저 말의 뜻은 여기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남편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걸 알면서도 자신을 이곳에 오게 했다는 건가? 도대체 왜? 선경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선경인 여기가 어떤 모임인지 알고 있어?”
“남편이 회사내 골프동호회라고 하던데요.”
“쿠쿡……”
웃는 가희의 태도가 이상하게 불안했다.
“왜요?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요?”
웃음을 멈춘 가희가 손을 뻗어 선경의 손을 감싸 잡았다.
“어쩌다 너 같은 순진한 사람이 여길 오게 됐을까?”
그 말은 마치 혼잣말처럼 들리기도 했고, 약간의 허망함을 담은 탄식처럼 들리기도 했다.
“무슨 뜻이에요? 좀 자세히 말해주면 안돼요?”
“이야기가 길어. 일단 여길 벗어나서 이야기 하자. 차 가져왔어?”
“네.”
“그럼 됐네. 잠깐 기다려봐.”
그렇게 말하고 가희가 어디론가 전화를 했지만 상대는 받지 않는 것 같았다. 기다리던 가희가 한숨을 내 쉬었다.
“휴우…… 하긴 그이도 지금 한 참 바쁘겠지. 후후……”
그렇게 말하곤 문자를 작성하는 듯 보였다.
“됐어. 마침 나에게 차 키가 있으니까 우리 차로 가. 그리고 최과장은 우리 그이랑 같이 오라고 문자 남겨놨으니까 알아서 올 거야. 가자.”
그 말에 갑자기 생각난 듯 선경이 주위를 살폈다.
“그런데…… 우리 그이 못 보셨어요? 아까 팀장님하고 나간 뒤로 영 보이질 않아요.”
“흠……”
그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듯한 태연한 가희의 태도에서 선경은 그녀가 무언가 알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알고 있나요? 그이가 어디에 있는지?”
“아니,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 다만 무얼 하고 있는지는 짐작이 가지.”
불연 듯 아까 사장과 영업이사 부인과의 숲 속 정사장면이 머리를 스쳤다.
(설마……)
선경이 가희의 눈을 다시 바라봤을 때 선경은 심장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눈빛은 지금 네가 생각하는 그 생각이 맞다고 말하는 듯 했다.
“그럼, 그이도……?”
가희가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봤다. 그리곤 중얼거렸다.
“아마 우리 그이도!”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선경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선경을 가희는 힐끔거리며 쳐다보면서도 또한 말을 하지 않았다. 그 긴 침묵은 선경의 집 근처에 있는 호프집 한쪽 구석에 들어가 앉아서야 멈춰질 수 있었다.
“아마 어느 정도 짐작 가기는 할거야. 그래도 자세한 것은 조금 놀랄 수도 있어. 침착하게 들어주었으면 해.”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있던 선경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가희의 진지한 눈빛을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역회사의 업무 특징이 결국 인간관계에서 모든 것이 비롯되는 건 상식일거야. 우리 그이나 최과장도 그 범주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 그리고 결국 그들만의 세상에 물들지 않을 수 없는 거고.”
그건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다고 선경은 생각했다. 선경이 지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선경이 목격했던 상황이고 그 상황이 상황적으로 특별한 경우가 아닌 듯한 것이 문제였다.
“시작을 누가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알기로는 몇몇 유학파 회사 고위층들이 해외생활 중에 즐겼던 것들을 귀국하고 나서도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다시 즐기기 시작했다는 거지. 아마 들어봤을 거야. 스와핑, 쓰리썸, 뭐 그런 거. 그렇게 시작해서 점차 그 모임의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회사 내 파벌의 하나가 된 것이고. 또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몇몇 직원들을 끌어들이게 된 것이고.”
“어떻게 그런 일이……”
“휴우…… 그러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 그런 일들이 그런데 정말 일어난 거지. 그리고 심지어는 회사 내 핵심세력들인 그들 속에 들어가기 위해 누군가는 줄을 대기도 하고 합의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아내를 모임에 참석시켜 동화시키려고도 했다는 거지.”
“그럼 거기 모인 모든 여자들이 다 그렇단 말인가요?”
“그건 아니야. 선경씨처럼 이제 갓 발을 디딘 사람들도 몇 있지. 하긴 뭐 대부분은 이미……”
“세상에 그럴 수가! 외국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기가 막혀!”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야.”
“그럼…… 언니도 그런 거에요? 그렇게 된 거에요?”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선경의 시선을 가희는 시선을 내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처음엔 남편에게 대들고 차라리 회사를 옮기라고도 했지만 그곳은 그이가 전 직장을 그만두고 스카우트로 옮긴 자리였거든. 그러니 다시 옮긴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었지. 그리고 내 의지와 달리 그 일은 아주 순식간에… 내가 어찌해볼 도리 없이 일어났어. 그리고 한 번 일을 당하고 나서는 나도 포기하게 되더군. 알고 보니… 그이를 스카우트한 이유가 그이가 필요해서이기도 했겠지만 실은 내가 그들의 타겟이었다고 하더라고. 연예인이었다는 전력이 오히려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지. 그이를 스카우트한 유상무가 직접 한 이야기니 틀림없을 거야.”
가희는 남편의 강요에 끌려가다시피 갔던 두 번째 참석에서 어느 순간 의식을 잃었다고 했다. 그리고 정신이 다시 들었을 때는 이미 누군가 자신의 몸을 거쳐갔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선경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치밀한 자들이니 이제 자신도 영락없이 그들의 노리개로 전락해야만 하는 신세인가 싶었다.
“그런데… 오늘 보면 모두 그런 건 아닌 것 같던데… 언니도 오늘은 아니었던 것 아니에요?”
“오늘은 아니었지. 그들이 날 원하지 않았으니까.”
“무슨 뜻이에요?”
“여자를 선택하는 건 마치… 그래 조선시대 표현으로 간택한다고나 할까? 아니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더 낫겠군. 여자를 선택할 때는 일정의 기부금을 내야 해.”
“그럼… 성매매인 거에요?”
“여자에게 주는 게 아니니까 그렇다고 말하긴 어렵지. 모임의 경비를 그것으로 충당한다고 알고 있어.”
“도무지……”
어이없이 고개를 젖는 선경을 보며 가희는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금액이 얼마인지는 잘 모르지만 개개인에 대한 경매방식이라고 하더군. 그래서 경매에 올려지지 않은 사람은 모임만 참석 하는 거고, 경매에 올려진 사람은 가장 높은 낙찰가에 팔리는 거지. 물론 낙찰되었다고 해서 꼭 관계를 허락해야 하는 건 아니야. 관계를 거부하고 싶으면 낙찰가보다 10% 많은 금액을 내면 돼. 상대가 정말 싫다면 말야.”
황당하기만 했다. 이건 말로만 듣던 노예시장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오늘 돈으로 해결했어. 마침 낙찰가가 그리 높지 않았더군. 후후…… 아마 사장이 찍어서 다들 피했을 거야.”
“사장이란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는 건가요?”
“그 사람도 직원에 불과하긴 해. 오너는 따로 있잖아. 아마도 오너측에서 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래도 회사 이미지 때문에라도 표면적으로 드러내지는 못할 거야. 적당한 선에서 해결하려고 하겠지. 문제는 오너측에서 경영에 손을 떼고 전문 경영진에게 회사를 맡긴지 꽤 오래 되었다는 거야. 그런데 이사진의 상당수가 모임의 사람들이거든. 그러니 회사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거야. 오너 입장에서 회사 핵심 간부의 대부분을 잘라내고서는 회사를 움직일 수 없을 테니까.”
선경이 앞에 놓인 맥주잔을 들어 가득 들이켰다. 술을 못하지만 도무지 먹지 않고는 안될 것만 같았다.
“그럼 도무지 피해갈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이란 건가요?”
선경을 바라보는 가희의 얼굴이 가득 안타까움을 담고 있었다.
“최과장이 승진을 포기하고 회사를 그만둔다면.”
과연 남편이 그렇게 해줄까? 선경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만약 그럴 생각이었다면 남편은 처음부터 자신을 그 모임에 데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을 모임에 데려갔다는 것은 이미 남편 자신의 성공을 위해 선경을 포기했다는 것과 같았다.
“그럼 오늘 전 누구에게 팔린 건가요?”
“아닐걸?”
“아니… 라뇨?”
“선경씨는 오늘 선만 보이는 날이었어. 첫 모임에 온 사람은 경매하지 않지. 뭐랄까 경매 물건을 소개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다음 모임에서는 아마도 꽤 높은 경매가가 되지 않을까 싶어. 아까 보니 여러 사람이 탐을 내는 것 같더군. 후후……”
“그럼 송전무는요?”
“공식적으로 경매사 역할을 하는 사람이지. 이런 저런 면을 파악하고 수준을 결정하는. 이렇게 표현하는 건 좀 미안하지만 역할 때문에 잠깐 맛을 봤다고나 할까? 그런데 만약 누군가 선경씨를 정말 넘보려 했다면 그건 묵시적인 룰을 어긴 것이지. 그런 인물은 누구라도 퇴출이야. 모임 내 룰을 어기면 모임에서 축출되고 그것은 곳 회사에서의 축출을 의미하니까. 왜, 누가 무슨 짓이라도 하려고 했어?”
선경은 그저 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나중에 나타나서도 태연하기만 하던 송전무의 모습을 생각하면 치가 떨렸다. 실제로도 선경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가희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누군지 간도 크군. 룰을 어기면서까지 선경씨를 넘보다니. 누구야? 누군지 봤어?”
선경이 고개를 저었다.
“정신이 없어서 누군지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어요. 꼭 잠에 취한 것 같이 몽롱해서……”
“음……”
가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짐작이 가는 모양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모임에 참석해야 하는 건가요?”
“그건 아니야. 삼 개월마다 모임이 있는데 일년에 두 번은 필히 참석해야 한다고 하더군. 몸이 아프거나 일이 있으면 참석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런 일이 반복된다면 아마……”
“뭔가요?”
“최과장이 회사에서 상당히 힘들어지게 되겠지. 어쩌면 모임에서 제명될지도 모르고. 그리고 그건 곧…… 회사에서 제거 대상이 된 것과 같아.”
가희와 헤어져 돌아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거실 소파에 앉아 선경은 넋을 놓고 있었다.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처음엔 황당했고 그 다음엔 화가 났으며 나중엔 억울했다. 자신이 남편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만큼 잘못한 것이 있었던가 싶었다. 여자로서 남편의 성공을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적어도 이런 방식은 아니라 생각했다. 서러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무너지듯 소파에 쓰러져 울고 또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계속되는 핸드폰 벨소리가 선경을 깨웠다. 누군지도 모른 채 핸드폰을 집어 든 선경은 상대의 목소리에 놀랐다.
“여보세요?”
“누구……?”
“선경씨, 저 지훈입니다.”
“아… 죄송해요. 잠에서 지금 깨어나서……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그러다 퍼뜩 정신이 들어 서둘러 주위를 살펴봤다. 다행히 남편은 방에 없었다. 분명히 옷도 갈아입지 않고 소파에 쓰러져 잠이 든 것 같았는데 어느 새 잠옷으로 갈아입고 안방 침대에 있었다.
“저, 잠시만요. 제가 다시 전화할게요.”
그렇게 일단 전화를 끊고 방을 나가 집안을 살펴봤다. 거실에도 서재에도 화장실과 베란다에도 집안 어디에도 남편은 있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10시가 넘은 시간. 오전의 부드러운 햇살이 조금 열린 커튼 사이로 비쳐 들어오고 있었다. 커튼을 조금 더 열고 베란다로 나가 주차장을 내려다 봤다. 익숙한 남편의 차가 혹시나 보일까 해서였지만 저 아래 주차장에서 남편의 차는 보이지 않았다.
(나를 침대에 옮기게 분명히 남편이었을 텐데…… 이이가 어디 갔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거실로 들어오다 거실테이블에 놓인 쪽지를 발견했다. 쪽지를 집어 들자 거기엔 익숙한 남편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잘 잤어? 어제 많이 피곤했지? 오늘은 편하게 쉬고 있어. 나는 급한 일이 있어서 출근해. 아무래도 늦을 것 같으니 기다리지 말고 저녁식사 먼저 해. 다녀올게.]
메모를 보는 선경의 눈에 불꽃이 일었다. 잠시 손을 떨던 선경이 메모지를 찢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만약 더 찢을 수만 있었다면 열 번이라도 더 찢었을 것이었다.
선경이 간신히 감정을 누르며 전화기를 다시 들었다. 그리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선경씨.”
“지훈씨!”
“네.”
“우리 만나요.”
“네?”
“우리 만나요, 지금.”
잠시 전화기 너머 그가 침묵했다. 경직된 얼굴의 선경은 수 초의 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어디서 뵐까요?”
전화기를 든 선경의 얼굴이 그제서야 부끄러운 듯 발그레해졌다.
막상 약속장소에 나와서도 선경은 후회가 가득했다. 남편에 대한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이 느닷없이 엉뚱한 곳으로 전이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부터 조금씩 의지가 되어가고 있는 지훈에 대한 호기심 이상의 궁금증으로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선경은 자꾸만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마음에 그리는 그의 모습은 제법 멋있는 사람이었지만 실제의 그가 어떨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외모를 상상하는 자신이 조금은 웃기고 약간은 천박해 보이기도 했다.
(외모가 무슨 상관이겠어. 그 모임의 인간들처럼 이상한 사람만 아니면 되지.)
그것은 어쩌면 실망할지 모를 자신에 대한 위로 같은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러한 위로 덕분이었는지 선경은 조금씩 자신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이제 그가 어떤 모습의 사람이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단지 그녀가 아는 그란 사람이 거짓 아닌 진실의 모습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제 점차 주변의 모습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삼자적 관점이란 이렇게도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란 것을 새삼 깨닫는 선경이었다.
어느덧 가을이 오는지 한 낮임에도 살갗에 닿는 햇빛이 아주 뜨겁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것은 산들거리며 불어오는 바람 탓일 수도 있고, 분수대 앞이라는 심리적 느낌 때문일 수도 있었다.
(여기도 참 오랜 만이네. 나도 참 촌스럽기도 하지. 지훈씨를 만나는 장소로 머리에 떠오른 게 남산이라니!)
비둘기와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시계를 봤다. 그 사람과 약속한 것은 12시 30분. 남은 시간은 겨우 4분쯤이었다. 점차 선경의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남자가 먼저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여자가 먼저 기다린다는 것이 불만스럽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자신이 먼저 청한 것이니 불만을 토로할 처지는 아니었다.
생각에 잠겨 잠시 눈을 감고 있을 때, 누군가 선경 앞에 다가서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젠 익숙해진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선경씨!”
*** 6부는 25일 20시경 올려집니다.
호들갑 떠는 송전무의 호의를 괜찮다 거절하고 카페로 돌아와 한쪽 구석에 가희와 앉아 커피를 앞에 놓고 선경은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런 선경을 한참 동안 지켜보던 가희가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며 말을 꺼냈다.
“무척 놀랐지?”
무엇에 놀랐냐는 말인지 잠시 가희 말뜻이 짐작되지 않았다. 설마 선경이 당할 뻔한 상황을 가희도 아는 걸까?
“그런 광경은 전혀 예상을 못했어요. 그런데 두 분 원래 그런 사이셨나요? 각자 배우자들을 동반한 모임에서 어떻게 그런 일을……”
그렇게 말하는 선경을 가희가 미묘한 웃음을 담고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선경은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붉혔다.
“최과장이 아무런 설명도 안 한 모양이군.”
무언가 머리를 때리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저 말의 뜻은 여기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남편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걸 알면서도 자신을 이곳에 오게 했다는 건가? 도대체 왜? 선경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선경인 여기가 어떤 모임인지 알고 있어?”
“남편이 회사내 골프동호회라고 하던데요.”
“쿠쿡……”
웃는 가희의 태도가 이상하게 불안했다.
“왜요?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요?”
웃음을 멈춘 가희가 손을 뻗어 선경의 손을 감싸 잡았다.
“어쩌다 너 같은 순진한 사람이 여길 오게 됐을까?”
그 말은 마치 혼잣말처럼 들리기도 했고, 약간의 허망함을 담은 탄식처럼 들리기도 했다.
“무슨 뜻이에요? 좀 자세히 말해주면 안돼요?”
“이야기가 길어. 일단 여길 벗어나서 이야기 하자. 차 가져왔어?”
“네.”
“그럼 됐네. 잠깐 기다려봐.”
그렇게 말하고 가희가 어디론가 전화를 했지만 상대는 받지 않는 것 같았다. 기다리던 가희가 한숨을 내 쉬었다.
“휴우…… 하긴 그이도 지금 한 참 바쁘겠지. 후후……”
그렇게 말하곤 문자를 작성하는 듯 보였다.
“됐어. 마침 나에게 차 키가 있으니까 우리 차로 가. 그리고 최과장은 우리 그이랑 같이 오라고 문자 남겨놨으니까 알아서 올 거야. 가자.”
그 말에 갑자기 생각난 듯 선경이 주위를 살폈다.
“그런데…… 우리 그이 못 보셨어요? 아까 팀장님하고 나간 뒤로 영 보이질 않아요.”
“흠……”
그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듯한 태연한 가희의 태도에서 선경은 그녀가 무언가 알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알고 있나요? 그이가 어디에 있는지?”
“아니, 어디에 있는지는 몰라. 다만 무얼 하고 있는지는 짐작이 가지.”
불연 듯 아까 사장과 영업이사 부인과의 숲 속 정사장면이 머리를 스쳤다.
(설마……)
선경이 가희의 눈을 다시 바라봤을 때 선경은 심장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눈빛은 지금 네가 생각하는 그 생각이 맞다고 말하는 듯 했다.
“그럼, 그이도……?”
가희가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봤다. 그리곤 중얼거렸다.
“아마 우리 그이도!”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선경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선경을 가희는 힐끔거리며 쳐다보면서도 또한 말을 하지 않았다. 그 긴 침묵은 선경의 집 근처에 있는 호프집 한쪽 구석에 들어가 앉아서야 멈춰질 수 있었다.
“아마 어느 정도 짐작 가기는 할거야. 그래도 자세한 것은 조금 놀랄 수도 있어. 침착하게 들어주었으면 해.”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겨있던 선경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가희의 진지한 눈빛을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역회사의 업무 특징이 결국 인간관계에서 모든 것이 비롯되는 건 상식일거야. 우리 그이나 최과장도 그 범주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 그리고 결국 그들만의 세상에 물들지 않을 수 없는 거고.”
그건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다고 선경은 생각했다. 선경이 지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선경이 목격했던 상황이고 그 상황이 상황적으로 특별한 경우가 아닌 듯한 것이 문제였다.
“시작을 누가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알기로는 몇몇 유학파 회사 고위층들이 해외생활 중에 즐겼던 것들을 귀국하고 나서도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다시 즐기기 시작했다는 거지. 아마 들어봤을 거야. 스와핑, 쓰리썸, 뭐 그런 거. 그렇게 시작해서 점차 그 모임의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회사 내 파벌의 하나가 된 것이고. 또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몇몇 직원들을 끌어들이게 된 것이고.”
“어떻게 그런 일이……”
“휴우…… 그러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 그런 일들이 그런데 정말 일어난 거지. 그리고 심지어는 회사 내 핵심세력들인 그들 속에 들어가기 위해 누군가는 줄을 대기도 하고 합의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아내를 모임에 참석시켜 동화시키려고도 했다는 거지.”
“그럼 거기 모인 모든 여자들이 다 그렇단 말인가요?”
“그건 아니야. 선경씨처럼 이제 갓 발을 디딘 사람들도 몇 있지. 하긴 뭐 대부분은 이미……”
“세상에 그럴 수가! 외국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기가 막혀!”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야.”
“그럼…… 언니도 그런 거에요? 그렇게 된 거에요?”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선경의 시선을 가희는 시선을 내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나도… 어쩔 수 없었어. 처음엔 남편에게 대들고 차라리 회사를 옮기라고도 했지만 그곳은 그이가 전 직장을 그만두고 스카우트로 옮긴 자리였거든. 그러니 다시 옮긴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었지. 그리고 내 의지와 달리 그 일은 아주 순식간에… 내가 어찌해볼 도리 없이 일어났어. 그리고 한 번 일을 당하고 나서는 나도 포기하게 되더군. 알고 보니… 그이를 스카우트한 이유가 그이가 필요해서이기도 했겠지만 실은 내가 그들의 타겟이었다고 하더라고. 연예인이었다는 전력이 오히려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지. 그이를 스카우트한 유상무가 직접 한 이야기니 틀림없을 거야.”
가희는 남편의 강요에 끌려가다시피 갔던 두 번째 참석에서 어느 순간 의식을 잃었다고 했다. 그리고 정신이 다시 들었을 때는 이미 누군가 자신의 몸을 거쳐갔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선경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치밀한 자들이니 이제 자신도 영락없이 그들의 노리개로 전락해야만 하는 신세인가 싶었다.
“그런데… 오늘 보면 모두 그런 건 아닌 것 같던데… 언니도 오늘은 아니었던 것 아니에요?”
“오늘은 아니었지. 그들이 날 원하지 않았으니까.”
“무슨 뜻이에요?”
“여자를 선택하는 건 마치… 그래 조선시대 표현으로 간택한다고나 할까? 아니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더 낫겠군. 여자를 선택할 때는 일정의 기부금을 내야 해.”
“그럼… 성매매인 거에요?”
“여자에게 주는 게 아니니까 그렇다고 말하긴 어렵지. 모임의 경비를 그것으로 충당한다고 알고 있어.”
“도무지……”
어이없이 고개를 젖는 선경을 보며 가희는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금액이 얼마인지는 잘 모르지만 개개인에 대한 경매방식이라고 하더군. 그래서 경매에 올려지지 않은 사람은 모임만 참석 하는 거고, 경매에 올려진 사람은 가장 높은 낙찰가에 팔리는 거지. 물론 낙찰되었다고 해서 꼭 관계를 허락해야 하는 건 아니야. 관계를 거부하고 싶으면 낙찰가보다 10% 많은 금액을 내면 돼. 상대가 정말 싫다면 말야.”
황당하기만 했다. 이건 말로만 듣던 노예시장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오늘 돈으로 해결했어. 마침 낙찰가가 그리 높지 않았더군. 후후…… 아마 사장이 찍어서 다들 피했을 거야.”
“사장이란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는 건가요?”
“그 사람도 직원에 불과하긴 해. 오너는 따로 있잖아. 아마도 오너측에서 안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그래도 회사 이미지 때문에라도 표면적으로 드러내지는 못할 거야. 적당한 선에서 해결하려고 하겠지. 문제는 오너측에서 경영에 손을 떼고 전문 경영진에게 회사를 맡긴지 꽤 오래 되었다는 거야. 그런데 이사진의 상당수가 모임의 사람들이거든. 그러니 회사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거야. 오너 입장에서 회사 핵심 간부의 대부분을 잘라내고서는 회사를 움직일 수 없을 테니까.”
선경이 앞에 놓인 맥주잔을 들어 가득 들이켰다. 술을 못하지만 도무지 먹지 않고는 안될 것만 같았다.
“그럼 도무지 피해갈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이란 건가요?”
선경을 바라보는 가희의 얼굴이 가득 안타까움을 담고 있었다.
“최과장이 승진을 포기하고 회사를 그만둔다면.”
과연 남편이 그렇게 해줄까? 선경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만약 그럴 생각이었다면 남편은 처음부터 자신을 그 모임에 데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을 모임에 데려갔다는 것은 이미 남편 자신의 성공을 위해 선경을 포기했다는 것과 같았다.
“그럼 오늘 전 누구에게 팔린 건가요?”
“아닐걸?”
“아니… 라뇨?”
“선경씨는 오늘 선만 보이는 날이었어. 첫 모임에 온 사람은 경매하지 않지. 뭐랄까 경매 물건을 소개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하지만 다음 모임에서는 아마도 꽤 높은 경매가가 되지 않을까 싶어. 아까 보니 여러 사람이 탐을 내는 것 같더군. 후후……”
“그럼 송전무는요?”
“공식적으로 경매사 역할을 하는 사람이지. 이런 저런 면을 파악하고 수준을 결정하는. 이렇게 표현하는 건 좀 미안하지만 역할 때문에 잠깐 맛을 봤다고나 할까? 그런데 만약 누군가 선경씨를 정말 넘보려 했다면 그건 묵시적인 룰을 어긴 것이지. 그런 인물은 누구라도 퇴출이야. 모임 내 룰을 어기면 모임에서 축출되고 그것은 곳 회사에서의 축출을 의미하니까. 왜, 누가 무슨 짓이라도 하려고 했어?”
선경은 그저 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나중에 나타나서도 태연하기만 하던 송전무의 모습을 생각하면 치가 떨렸다. 실제로도 선경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가희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누군지 간도 크군. 룰을 어기면서까지 선경씨를 넘보다니. 누구야? 누군지 봤어?”
선경이 고개를 저었다.
“정신이 없어서 누군지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어요. 꼭 잠에 취한 것 같이 몽롱해서……”
“음……”
가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짐작이 가는 모양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모임에 참석해야 하는 건가요?”
“그건 아니야. 삼 개월마다 모임이 있는데 일년에 두 번은 필히 참석해야 한다고 하더군. 몸이 아프거나 일이 있으면 참석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그런 일이 반복된다면 아마……”
“뭔가요?”
“최과장이 회사에서 상당히 힘들어지게 되겠지. 어쩌면 모임에서 제명될지도 모르고. 그리고 그건 곧…… 회사에서 제거 대상이 된 것과 같아.”
가희와 헤어져 돌아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거실 소파에 앉아 선경은 넋을 놓고 있었다.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처음엔 황당했고 그 다음엔 화가 났으며 나중엔 억울했다. 자신이 남편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만큼 잘못한 것이 있었던가 싶었다. 여자로서 남편의 성공을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적어도 이런 방식은 아니라 생각했다. 서러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무너지듯 소파에 쓰러져 울고 또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계속되는 핸드폰 벨소리가 선경을 깨웠다. 누군지도 모른 채 핸드폰을 집어 든 선경은 상대의 목소리에 놀랐다.
“여보세요?”
“누구……?”
“선경씨, 저 지훈입니다.”
“아… 죄송해요. 잠에서 지금 깨어나서…… 그런데 어쩐 일이세요?”
그러다 퍼뜩 정신이 들어 서둘러 주위를 살펴봤다. 다행히 남편은 방에 없었다. 분명히 옷도 갈아입지 않고 소파에 쓰러져 잠이 든 것 같았는데 어느 새 잠옷으로 갈아입고 안방 침대에 있었다.
“저, 잠시만요. 제가 다시 전화할게요.”
그렇게 일단 전화를 끊고 방을 나가 집안을 살펴봤다. 거실에도 서재에도 화장실과 베란다에도 집안 어디에도 남편은 있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10시가 넘은 시간. 오전의 부드러운 햇살이 조금 열린 커튼 사이로 비쳐 들어오고 있었다. 커튼을 조금 더 열고 베란다로 나가 주차장을 내려다 봤다. 익숙한 남편의 차가 혹시나 보일까 해서였지만 저 아래 주차장에서 남편의 차는 보이지 않았다.
(나를 침대에 옮기게 분명히 남편이었을 텐데…… 이이가 어디 갔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거실로 들어오다 거실테이블에 놓인 쪽지를 발견했다. 쪽지를 집어 들자 거기엔 익숙한 남편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잘 잤어? 어제 많이 피곤했지? 오늘은 편하게 쉬고 있어. 나는 급한 일이 있어서 출근해. 아무래도 늦을 것 같으니 기다리지 말고 저녁식사 먼저 해. 다녀올게.]
메모를 보는 선경의 눈에 불꽃이 일었다. 잠시 손을 떨던 선경이 메모지를 찢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만약 더 찢을 수만 있었다면 열 번이라도 더 찢었을 것이었다.
선경이 간신히 감정을 누르며 전화기를 다시 들었다. 그리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선경씨.”
“지훈씨!”
“네.”
“우리 만나요.”
“네?”
“우리 만나요, 지금.”
잠시 전화기 너머 그가 침묵했다. 경직된 얼굴의 선경은 수 초의 시간이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어디서 뵐까요?”
전화기를 든 선경의 얼굴이 그제서야 부끄러운 듯 발그레해졌다.
막상 약속장소에 나와서도 선경은 후회가 가득했다. 남편에 대한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이 느닷없이 엉뚱한 곳으로 전이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부터 조금씩 의지가 되어가고 있는 지훈에 대한 호기심 이상의 궁금증으로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선경은 자꾸만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마음에 그리는 그의 모습은 제법 멋있는 사람이었지만 실제의 그가 어떨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외모를 상상하는 자신이 조금은 웃기고 약간은 천박해 보이기도 했다.
(외모가 무슨 상관이겠어. 그 모임의 인간들처럼 이상한 사람만 아니면 되지.)
그것은 어쩌면 실망할지 모를 자신에 대한 위로 같은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러한 위로 덕분이었는지 선경은 조금씩 자신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이제 그가 어떤 모습의 사람이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단지 그녀가 아는 그란 사람이 거짓 아닌 진실의 모습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제 점차 주변의 모습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삼자적 관점이란 이렇게도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란 것을 새삼 깨닫는 선경이었다.
어느덧 가을이 오는지 한 낮임에도 살갗에 닿는 햇빛이 아주 뜨겁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것은 산들거리며 불어오는 바람 탓일 수도 있고, 분수대 앞이라는 심리적 느낌 때문일 수도 있었다.
(여기도 참 오랜 만이네. 나도 참 촌스럽기도 하지. 지훈씨를 만나는 장소로 머리에 떠오른 게 남산이라니!)
비둘기와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시계를 봤다. 그 사람과 약속한 것은 12시 30분. 남은 시간은 겨우 4분쯤이었다. 점차 선경의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남자가 먼저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여자가 먼저 기다린다는 것이 불만스럽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자신이 먼저 청한 것이니 불만을 토로할 처지는 아니었다.
생각에 잠겨 잠시 눈을 감고 있을 때, 누군가 선경 앞에 다가서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젠 익숙해진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선경씨!”
*** 6부는 25일 20시경 올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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