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름의 끝
“어디를 그렇게 다녀와?”
8월도 며칠 남지 않은 탓인지 무덥던 날들도 점차 선선해지고 있었다. 에어컨에 의지하고 지내던 나들가게 홍여사가 가게 앞 작은 평상에 앉아 있다가 버스에서 내려 걸어오던 선경을 보며 반색을 했다.
“늘 하던 봉사 좀 하고 왔죠.”
“아, 보육원? 오늘이 벌써 토요일인가?”
“네. 후훗……”
“가게 안에서만 지내다 보니 세월 가는 걸 몰라.”
“나와계신 걸 보니 계절이 변하는 건 아시는 것 같은데요?”
“마저. 에어컨 없으면 못살 것 같더니 오늘은 이렇게 나와 있기만 해도 괜찮네.”
“네. 많이 시원해졌어요.”
“여름은 나같이 살 많은 사람에겐 아주 쥐약이야. 뭐 나도 한 때는 새댁처럼 제법 날씬 한 때도 있었지만……”
“뭐어? 당신이 저렇게 날씬한 적이 있었다고? 헐! 개 풀 뜯어먹는 소리하고 있네!”
어느새 가게 밖으로 고개를 내민 홍여사의 남편이 기가 차다는 듯 쏘아붙였다.
“이이가! 나도 예전엔 제법 날씬했었다고요! 이게 다 당신 만나서 고생하느라 부운거라고요!”
“내참 어이가 없어서. 헛소리 말고 나 나가봐야 하니 들어와서 가게나 봐.”
“어딜 또 가려고요?”
“최씨가 할 말이 있다니 다녀오게.”
“보나마나 낚시 가자고 꼬셨겠지. 허구한날 낚시해서 뭐라도 좀 잡아오면 말을 안하지. 잡았다가 놔줄 놈은 뭐 하러 잡으러 간데?”
“어허, 이 사람이? 낚시는 신성한 스포츠야, 스포츠!”
두 사람의 실랑이가 길어지기 전에 선경은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저 그럼 들어가볼게요.”
“어? 어 그래. 남의 아이들 돌보느라 피곤했겠다.”
점차 멀어져 가는 선경을 보며 홍여사가 혀를 찬다.
“쯧쯧…… 저 집에 아이만 하나 있으면 딱 그림인데… 새댁이 아이들 무척 좋아하더구만.
“결혼한지 얼마나 됐다고 했지?”
“4년 좀 넘었다고 하죠?
“그럼 아직 충분해. 결혼 10년이 지나서 아이가 생기는 경우도 봤구만.”
“저 집은 경우가 좀 달라요.”
“뭐가 다른데?”
“글쎄 남편이란 사람이……”
홍여사가 아차 하는 얼굴로 말을 멈춘다.
“남편이란 사람이 뭐?”
“아, 아니에요. 암 것도. 안나가요? 최씨 아저씨가 부른다면서요?”
“어, 참. 그랬지. 금방 다녀올 테니 그 사이 가게 잘 보고 있어.”
“어련하시려고요.”
주춤주춤 나서는 남편을 보며 홍여사가 못마땅한 듯 입을 실룩거렸다. 두 사람은 미처 몰랐겠지만 저만치 걸어가는 선경의 걸음은 처음보다 느려져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가 가늘게 들릴 만큼.
(그이에게 무슨……?)
찜찜한 그 말이 머리를 맴돌았지만 엘리베이터에 올라 허공을 솟구치며 선경은 이내 그 생각을 날아가는 새처럼 놓쳐버렸다.
현관문을 열자 남편의 신발이 보였다. 오전에 일이 있어 외출한다고 하더니 벌써 돌아온 모양이었다. 거실로 들어서며 남편을 불렀다.
“여보! 당신 들어오셨어요?”
그러나 남편의 대답은 없었다. 고개를 갸웃하던 선경이 조금 열린 서재방을 살짝 열었을 때 등을 돌린 채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타자치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회사에서 하지 못한 일이라도 있는 모양이라 여긴 선경은 방해하지 않기 위해 다시 살그머니 문을 닫았다. 남편은 평소에도 회사에서 돌아와 남은 일이 있다며 서재에 들어가 늦게까지 있다 오곤 했었다.
(일도 좋지만 거의 매일 저러니…… 보약이라도 알아봐야겠네.)
안방으로 간 선경은 씻기 위해 입고간 옷을 벗고 가운을 입기 전 화장대 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그녀 나이 32. 아직도 20대와 다름없는 몸을 가진 그녀는 스스로도 자신의 몸에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 지금도 그녀를 결혼한 사람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 정도면 아직 괜찮은데……)
그러나 남편 현석은 요즘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벌써 권태기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자신이 아이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스스로에 대한 변명 같은 자책인지도 몰랐다.
욕실로 들어가 미지근한 물로 몸을 적시며 다시 또 오늘 보았던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밝고 명랑한 얼굴 속에 숨겨진 그늘들.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 한 번에도 세상을 다 얻은 듯 즐거워했다가 헤어질 시간이 되면 이내 다시 냉정한 현실처럼 딱딱해지는 얼굴들. 그 아이들은 너무 일찍 세상을 배운 듯 했다. 자신들을 찾아오는 봉사자들은 나그네처럼 왔다가 간다는 것을 익히 안다는 듯이 함께 놀아주는 시간에 충실했다가 헤어질 때는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미련 없이 돌아서곤 했다. 가끔 보육원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가 도우미의 손을 잡고 놓지 않으려 할 때면, 그 생활에 익숙한 큰 아이들이 와서 아이의 손을 떼어놓곤 했다. 그 모습을 보는 선경의 마음은 무겁고 아팠다.
(병원에라도 가볼까? 그이에게 같이 가자고 하면 화내지 않을까? 그래, 그냥 나 혼자 먼저 가서 확인해보자. 그게 좋겠어.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지? 창피할 것 같은데…… 희영이는 좀 알지 않을까? 이따가 전화 한 번 해봐야겠네.)
마무리를 하고 몸을 닦다 말고 다시 생각에 잠긴다.
(차라리 그 아이들 중에서 입양을 하면 어떨까?)
사람 좋기는 하지만 상당히 자기중심적인 남편이 어떻게 나올지 예측이 어렵다.
(일단 검사부터 받고 나서 생각해보지 뭐.)
밖으로 나와 빨래를 돌리고 거실로 와서 잠시 쉬다 말고 마실 것이라도 준비해줘야겠다고 생각한 선경은 시원한 토마토 주스와 과일을 쟁반에 받쳐들고 서재로 향했다.
“똑! 똑!”
일에 열중하고 있는지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기다리다 문을 열고 들어선 선경은
“여보 이거 드……. ”
선경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이어폰을 낀 채 반쯤 돌아가 있는 의자에 앉아 내려진 바지춤 밖으로 나온 자신의 남근을 왼손으로 잡고 있는 남편 현석은 당황스러운 눈으로 입을 벌린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고, 그러는 와중에도 모니터에서는 왠 여인의 뜨거운 몸짓이 계속되고 있었다.
“……”
“여, 여보!”
선경은 조용히 문을 닫고 방을 나갔다. 그 뒤로 현석의 한숨이 맥없이 흘러내렸다.
남편과의 어색한 며칠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빨리 장소에 나온 선경은 얼음 알갱이가 녹는 모습을 보며 방울방울 맺힌 물방울을 손으로 만졌다. 동그랗게 뭉쳐졌다가 이내 주루룩 흐르며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그녀의 울적한 마음을 대변하는 듯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경은 남편 현석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잠자리가 그렇게 황홀하거나 즐겁지는 않았지만 첫 남자이자 남편인 현석의 요구에 자신은 충실히 따라주었다고 생각했다. 가끔 이상한 포즈나 행동을 요구할 때는 싫다기보다 창피하다거나 이상하다거나 부끄럽다고 회피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남자로서의 그를 받아들이는데 주저함은 없었다. 그것이 아내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다가 목격한 남편의 자위행위는 선경에게 적지 않은 마음의 파장을 일으켰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여자로서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듯한 허전함과 남편이 자신에게서 멀어져 간다는 두려움, 여자로서의 매력을 잃은 것인가 싶은 자괴감 등이 무차별 공격을 가하는 느낌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언제 왔는지 맞은 편 자리에 앉으며 희영이 선경의 눈치를 살폈다.
“어, 왔니?”
“부부싸움이라도 했어?”
“아니야. 그냥 좀 이런 저런 생각 하느라……”
“제법 고민스런 눈빛이던데? 말해봐. 뭐가 문젠데?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거면 도와줄게.”
“그런 거 없어. 커피 마실래?”
“그래. 너처럼 시원한 아이스커피나 한잔 해야 할 것 같다. 오랜만에 차두고 지하철 타고 왔더니 걸어오는 잠깐 사이에 덥더라.”
“한여름도 지났는데 뭐가 그리 덥다고……”
“내가 좀 핫하지 않니. 호호호……”
“그으래? 안그래도 더운 날에 핫하셔서 좋으시겠습니다!”
“쿠쿠…… 내가 요새 잘나가지 않니.”
“뭔소리야?”
“흠… 너니까 말인데… 내가 요즘 영계 하나 키우는 중이다.”
“영.. 계?”
“으흠! 허우대도 얼굴도 멀쩡한데 밤기술은 더 죽여!”
“뭐야? 너 그럼! 어머, 얘가 제정신이니? 그러다 정우 아빠 알면 어쩌려구 그래?”
“걱정마. 우리 부부 그런 건 서로 터치 안한다. 실은 미국에서부터 좀 그랬어. 서로 인죠이 상대를 만나는 건 묵시적으로 말 안하지. 가정을 지키는데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면.”
“그래?”
선경에게는 적지 않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건 그렇고 갑자기 무슨 검사를 받겠다는 거야? 내가 보기엔 건강하게 보이는데.”
“어… 아무래도 아이가 늦어서 좀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서 말야. 혼자가긴 좀 그렇고…”
“남편은 뒀다 뭐해?”
“그이에게 말하긴 좀 그랬어. 일단 내가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러다 넌 문제없으면?”
“그땐 한 번 검사해보자고 해야겠지. 그이가 독자라 시부모님도 자꾸 물어보시곤 하니까.”
“너 결혼한지 얼마나 됐지?”
“만 4년 조금 넘었어.”
“그럼 그렇게 걱정할 때는 아니구만.”
“그렇다고 생각은 하는데 그래도 어른들은 그게 아닌가봐. 나도 좀 신경쓰이고.”
“그래, 알았다. 그럼 어떻게 할까? 우리 그이 병원으로 갈래?”
“야, 그건 좀 그렇잖아. 어떻게 네 신랑 병원에 가냐? 창피하게.”
“왜? 우리 그이 제법 잘 해. 명성있다구.”
“알아. 그렇지만 친구 신랑에게 거길 어떻게 보이냐? 그건 정말 못해.”
“호호호호……”
“왜 웃어?”
“너 말 들으니까 갑자기 예전 일이 생각나서 말야.”
“뭔 일?”
“몇 년 전 다시 한국에 나온 첫 추석에 그이 부모님 계신 시골에 내려갔었는데 호호……”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희영은 배를 잡고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얘가 실성했니? 뭘 그리 웃어?”
“내 말 들어봐. 식구들 마침 모두 모였는데 만삭인 그이 형수가 갑자기 산통이 온 거야. 그것도 늦은 밤에 말야.”
“그래서?”
“그이가 아무래도 119 부르는게 좋겠다고 하니 시부모님 왈, 아들놈이 의산데 뭔 119를 부르냐고 하는 거야. 쿠쿠쿡……”
“아…… 아무리 그래도 형수님인데 어떻게……”
“내 말이! 그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하는데 형님은 배아프다고 난리지, 신구들은 그이보고 뭐하냐고 난리지. 옆에서 보니 진땀만 흘리고 있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됐어?”
선경도 조금 전까지의 우울함을 잊고 희영의 이야기에 점차 흥미를 가져갔다.
“어떻게 됐을 것 같아?”
“내가 그걸 어떻게 아니? 어떻게 됐는데?”
“결국 그이 손으로 아기를 받았지 뭐.”
“아하……”
“근데 말야……”
“응?”
“막상 아이 낳고 진통 사라지고 나니 형님이 자기를 그이에게 맡겼다고 난리 난리를 지기더니 그후론 그이만 보면 얼굴을 붉힌다니까. 호호호호……”
“얼마나 민망하겠니……”
“뭐 그렇기는 하겠지만 내 느낌에 어째 그이와 형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는 것 같단 말이지.”
“무슨 그런 황당한 생각을 하니? 그저 민망해서 그런 거지.”
“아냐. 여자의 직감으로 봐서… 두 사람 사이에 뭔가 흐름이 있어. 뭐 아직 심각한 수준까지 간 건 아닌 것 같지만 말야.”
“어째 너 그걸 즐기는 것 같다?”
“맞아! 상황이 너무 재미있어.”
“얘가! 너 미국생활 좀 하더니 완전히 변했구나?”
“미국에서의 영향도 물론 있겠지만 내가 원래 좀 오픈 마인드잖니. 남편도 그렇고. 너도 좀 시대에 맞게 자유로워져 봐. 난 널 보면 가슴이 답답해.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됐거든! 넌 너대로 난 나대로 각자의 생각대로 살자고.”
“뭐, 좋아. 시간 지나면 바뀔지도 모르지만”
“절대! 전혀! 네버!”
“호호호호호…….”
적어도 자신에게 그런 일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선경은 생각했다.
“검사 결과는…….”
의사의 말에 선경의 몸이 급격히 긴장하기 시작했다. 가슴이 뛰어왔다. 서두를 꺼내놓고 다시 한 번 검사결과차트를 확인하던 의사가 눈을 들고 선경을 바라봤다.
“모두……”
침을 꿀꺽 삼켰다.
“정상입니다.”
“후우우……”
“걱정하셨나 보군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건강상 아무런 문제가 없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경이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의사는 차가운 안경 너머로 유심히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선경이 미쳐 눈치채지 못한 어떤 호기심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병원문을 나서는 선경의 마음은 나름 가벼웠다. 적어도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마음에 안심이 됐다. 그렇지만 며칠 전부터 계속되고 있는 현석과의 어색한 관계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부담으로 남아있었다. 선경이 신경을 곤두세운 것은 아니다. 단지 낯선 남편의 모습이 뇌리에 남았다는 것과 때때로 아직도 떠올려지는 그 순간의 배신감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더불어 그 이후 자신과 마주치기를 불편해하는 남편의 어정쩡한 태도도 마음에 걸렸다.
“별 문제 아니라는데 어째 네 표정이 어둡다?”
차의 시동을 켜며 희영이 물었다.
“응? 으응…… 좀 그럴 일이 있어서……”
“뭔데? 말을 해야 도와주던지 말던지 하지.”
선경은 망설였다. 남편의 자위행위가 특별할 것은 없지만 그것을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진실인지, 또 그런 일들을 자신의 입으로 친구에게 말하는 것이 얼마나 자존심에 금이 가는 것인지가 어쩌면 그 망설임의 이유일 것이었다. 희영이 출발하려던 차의 시동을 다시 껐다.
“괜찮아. 어디 가서 말할 거 아니니까. 살다 보면 남에게 말하기 어려운 일도 생기잖아. 그렇다고 가슴에 묻어두면 병 된다. 말해 놓고 보면 실상 별 것 아닌 일도 많고.”
희영의 눈치는 역시 빨랐다. 선경이 망설이는 이유가 무엇이든 남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일이란 것을 내심 짐작하는 희영이었다.
“그게……”
선경의 말을 들은 희영은 내심 웃음이 나왔지만 선경의 성격을 생각해서 애써 참았다. 자신의 기준에서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고민하는 희영이 우습기도 하고 답답해 보이기도 했다.
“내가 보기엔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일 같지는 않은데……”
그렇게 말하며 슬쩍 선경의 눈치를 살펴봤다. 선경도 희영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남자들은 욕구 해소를 그런 식으로들 하잖아. 우리 그이도 가끔 하는 것 같더라고.”
“그래… 그런데 왠지 그냥 좀 그랬어. 마치 내가 매력이 없어진 여자 같은 느낌도 들고 일종의 허탈감이랄까… 봐서는 안될 것을 본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잘 모르겠어.”
“요사이 부부관계는 어때? 원만해?”
“뭐 특별한 문제는 없는 것 같은데……”
“일주일에 몇 번이나 해?”
“일주일?”
“뭐야? 그럼 일주일에 몇 번도 안된단 말야?”
“신혼 초에는 그랬지만 요즘은 좀……”
“그럼 한 달에는 몇 번?”
“글쎄……”
선경은 지난 번 남편과의 관계가 언제였던가 생각해봤다. 아마도 한 열흘은 된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남편과 관계 횟수가 예전보다 조금씩 줄어들기는 했었다.”
“대충 한 두세 번?”
“겨우?”
“왜? 적은 건가? 그럼 너네는 얼마나 자주……”
말을 하는 선경의 얼굴이 조금씩 붉어져왔다. 그런 선경을 보며 희영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나이를 생각해봐. 한창 때 아냐? 일주일에 적어도 3, 4번은 해야지.”
“3, 4번씩이나?”
“그런 말도 있잖아. 남자는 10대에 하루 한번, 20대는 이틀에 한번, 30대는 사흘에 한번, 40대면 나흘에 한번이 적정이라고.”
“애도 참…...”
“재미 삼아 하는 말인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제법 맞는 말 같더라.”
“사람마다 다르겠지. 그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고……”
“암튼 너네는 정상은 아니야. 누가 문제인지 모르지만 내가 봤을 때 두 사람 변화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아.”
희영의 말처럼 자신과 남편 사이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하는 선경이었다.
“어떤 변화?”
“성적인 부분에 대해서 너네 별로 이야기 안하지?”
“아무리 부부지만 그런 이야기를 어떻게 쉽게 하니?”
“거봐, 거봐! 그런 것도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고 해야 하는 거야. 그래야 서로 어떤 게 문제인지 알 수가 있지.”
“그런가……”
“늘 같은 방식으로 하다 보면 그것이 지루해질 수도 있고 말야.”
어떤 방식이냐가 중요하다고 선경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중요하듯 육체적인 것도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편안하고 아름답게 때로 느껴지는 욕구를 만족시키는 정도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선경이었다.
“그럼 혹시 너네도……”
“우리? 우리도 잠깐 귄태기가 왔었지.”
“그래?”
“우린 그래도 서로 솔직한 편이고 또 그런 부분에 개방적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잘 해결을 한 편이지.”
“어떤 식으로?”
희영이 선경을 돌아본다. 말을 해도 좋을지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좀… 적극적인 섹스를 좋아해.”
“적극적인?”
“아니다 더 직설적으로 설명하면 자극적인 섹스라고 해야겠지.”
“그게 어떤 건데?”
호기심이 일었다. 적극적이고 자극적인 섹스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흠… 처음엔 우리도 좀 쉬운 것부터 시작을 했지. 예를 들면……”
희영의 말을 들으며 선경의 가슴은 자꾸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디를 그렇게 다녀와?”
8월도 며칠 남지 않은 탓인지 무덥던 날들도 점차 선선해지고 있었다. 에어컨에 의지하고 지내던 나들가게 홍여사가 가게 앞 작은 평상에 앉아 있다가 버스에서 내려 걸어오던 선경을 보며 반색을 했다.
“늘 하던 봉사 좀 하고 왔죠.”
“아, 보육원? 오늘이 벌써 토요일인가?”
“네. 후훗……”
“가게 안에서만 지내다 보니 세월 가는 걸 몰라.”
“나와계신 걸 보니 계절이 변하는 건 아시는 것 같은데요?”
“마저. 에어컨 없으면 못살 것 같더니 오늘은 이렇게 나와 있기만 해도 괜찮네.”
“네. 많이 시원해졌어요.”
“여름은 나같이 살 많은 사람에겐 아주 쥐약이야. 뭐 나도 한 때는 새댁처럼 제법 날씬 한 때도 있었지만……”
“뭐어? 당신이 저렇게 날씬한 적이 있었다고? 헐! 개 풀 뜯어먹는 소리하고 있네!”
어느새 가게 밖으로 고개를 내민 홍여사의 남편이 기가 차다는 듯 쏘아붙였다.
“이이가! 나도 예전엔 제법 날씬했었다고요! 이게 다 당신 만나서 고생하느라 부운거라고요!”
“내참 어이가 없어서. 헛소리 말고 나 나가봐야 하니 들어와서 가게나 봐.”
“어딜 또 가려고요?”
“최씨가 할 말이 있다니 다녀오게.”
“보나마나 낚시 가자고 꼬셨겠지. 허구한날 낚시해서 뭐라도 좀 잡아오면 말을 안하지. 잡았다가 놔줄 놈은 뭐 하러 잡으러 간데?”
“어허, 이 사람이? 낚시는 신성한 스포츠야, 스포츠!”
두 사람의 실랑이가 길어지기 전에 선경은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저 그럼 들어가볼게요.”
“어? 어 그래. 남의 아이들 돌보느라 피곤했겠다.”
점차 멀어져 가는 선경을 보며 홍여사가 혀를 찬다.
“쯧쯧…… 저 집에 아이만 하나 있으면 딱 그림인데… 새댁이 아이들 무척 좋아하더구만.
“결혼한지 얼마나 됐다고 했지?”
“4년 좀 넘었다고 하죠?
“그럼 아직 충분해. 결혼 10년이 지나서 아이가 생기는 경우도 봤구만.”
“저 집은 경우가 좀 달라요.”
“뭐가 다른데?”
“글쎄 남편이란 사람이……”
홍여사가 아차 하는 얼굴로 말을 멈춘다.
“남편이란 사람이 뭐?”
“아, 아니에요. 암 것도. 안나가요? 최씨 아저씨가 부른다면서요?”
“어, 참. 그랬지. 금방 다녀올 테니 그 사이 가게 잘 보고 있어.”
“어련하시려고요.”
주춤주춤 나서는 남편을 보며 홍여사가 못마땅한 듯 입을 실룩거렸다. 두 사람은 미처 몰랐겠지만 저만치 걸어가는 선경의 걸음은 처음보다 느려져 있었다. 두 사람의 대화가 가늘게 들릴 만큼.
(그이에게 무슨……?)
찜찜한 그 말이 머리를 맴돌았지만 엘리베이터에 올라 허공을 솟구치며 선경은 이내 그 생각을 날아가는 새처럼 놓쳐버렸다.
현관문을 열자 남편의 신발이 보였다. 오전에 일이 있어 외출한다고 하더니 벌써 돌아온 모양이었다. 거실로 들어서며 남편을 불렀다.
“여보! 당신 들어오셨어요?”
그러나 남편의 대답은 없었다. 고개를 갸웃하던 선경이 조금 열린 서재방을 살짝 열었을 때 등을 돌린 채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타자치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회사에서 하지 못한 일이라도 있는 모양이라 여긴 선경은 방해하지 않기 위해 다시 살그머니 문을 닫았다. 남편은 평소에도 회사에서 돌아와 남은 일이 있다며 서재에 들어가 늦게까지 있다 오곤 했었다.
(일도 좋지만 거의 매일 저러니…… 보약이라도 알아봐야겠네.)
안방으로 간 선경은 씻기 위해 입고간 옷을 벗고 가운을 입기 전 화장대 위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바라봤다. 그녀 나이 32. 아직도 20대와 다름없는 몸을 가진 그녀는 스스로도 자신의 몸에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 지금도 그녀를 결혼한 사람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 정도면 아직 괜찮은데……)
그러나 남편 현석은 요즘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벌써 권태기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자신이 아이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스스로에 대한 변명 같은 자책인지도 몰랐다.
욕실로 들어가 미지근한 물로 몸을 적시며 다시 또 오늘 보았던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밝고 명랑한 얼굴 속에 숨겨진 그늘들.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 한 번에도 세상을 다 얻은 듯 즐거워했다가 헤어질 시간이 되면 이내 다시 냉정한 현실처럼 딱딱해지는 얼굴들. 그 아이들은 너무 일찍 세상을 배운 듯 했다. 자신들을 찾아오는 봉사자들은 나그네처럼 왔다가 간다는 것을 익히 안다는 듯이 함께 놀아주는 시간에 충실했다가 헤어질 때는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미련 없이 돌아서곤 했다. 가끔 보육원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가 도우미의 손을 잡고 놓지 않으려 할 때면, 그 생활에 익숙한 큰 아이들이 와서 아이의 손을 떼어놓곤 했다. 그 모습을 보는 선경의 마음은 무겁고 아팠다.
(병원에라도 가볼까? 그이에게 같이 가자고 하면 화내지 않을까? 그래, 그냥 나 혼자 먼저 가서 확인해보자. 그게 좋겠어.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지? 창피할 것 같은데…… 희영이는 좀 알지 않을까? 이따가 전화 한 번 해봐야겠네.)
마무리를 하고 몸을 닦다 말고 다시 생각에 잠긴다.
(차라리 그 아이들 중에서 입양을 하면 어떨까?)
사람 좋기는 하지만 상당히 자기중심적인 남편이 어떻게 나올지 예측이 어렵다.
(일단 검사부터 받고 나서 생각해보지 뭐.)
밖으로 나와 빨래를 돌리고 거실로 와서 잠시 쉬다 말고 마실 것이라도 준비해줘야겠다고 생각한 선경은 시원한 토마토 주스와 과일을 쟁반에 받쳐들고 서재로 향했다.
“똑! 똑!”
일에 열중하고 있는지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기다리다 문을 열고 들어선 선경은
“여보 이거 드……. ”
선경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이어폰을 낀 채 반쯤 돌아가 있는 의자에 앉아 내려진 바지춤 밖으로 나온 자신의 남근을 왼손으로 잡고 있는 남편 현석은 당황스러운 눈으로 입을 벌린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고, 그러는 와중에도 모니터에서는 왠 여인의 뜨거운 몸짓이 계속되고 있었다.
“……”
“여, 여보!”
선경은 조용히 문을 닫고 방을 나갔다. 그 뒤로 현석의 한숨이 맥없이 흘러내렸다.
남편과의 어색한 며칠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빨리 장소에 나온 선경은 얼음 알갱이가 녹는 모습을 보며 방울방울 맺힌 물방울을 손으로 만졌다. 동그랗게 뭉쳐졌다가 이내 주루룩 흐르며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그녀의 울적한 마음을 대변하는 듯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경은 남편 현석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잠자리가 그렇게 황홀하거나 즐겁지는 않았지만 첫 남자이자 남편인 현석의 요구에 자신은 충실히 따라주었다고 생각했다. 가끔 이상한 포즈나 행동을 요구할 때는 싫다기보다 창피하다거나 이상하다거나 부끄럽다고 회피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남자로서의 그를 받아들이는데 주저함은 없었다. 그것이 아내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다가 목격한 남편의 자위행위는 선경에게 적지 않은 마음의 파장을 일으켰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여자로서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듯한 허전함과 남편이 자신에게서 멀어져 간다는 두려움, 여자로서의 매력을 잃은 것인가 싶은 자괴감 등이 무차별 공격을 가하는 느낌이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언제 왔는지 맞은 편 자리에 앉으며 희영이 선경의 눈치를 살폈다.
“어, 왔니?”
“부부싸움이라도 했어?”
“아니야. 그냥 좀 이런 저런 생각 하느라……”
“제법 고민스런 눈빛이던데? 말해봐. 뭐가 문젠데?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거면 도와줄게.”
“그런 거 없어. 커피 마실래?”
“그래. 너처럼 시원한 아이스커피나 한잔 해야 할 것 같다. 오랜만에 차두고 지하철 타고 왔더니 걸어오는 잠깐 사이에 덥더라.”
“한여름도 지났는데 뭐가 그리 덥다고……”
“내가 좀 핫하지 않니. 호호호……”
“그으래? 안그래도 더운 날에 핫하셔서 좋으시겠습니다!”
“쿠쿠…… 내가 요새 잘나가지 않니.”
“뭔소리야?”
“흠… 너니까 말인데… 내가 요즘 영계 하나 키우는 중이다.”
“영.. 계?”
“으흠! 허우대도 얼굴도 멀쩡한데 밤기술은 더 죽여!”
“뭐야? 너 그럼! 어머, 얘가 제정신이니? 그러다 정우 아빠 알면 어쩌려구 그래?”
“걱정마. 우리 부부 그런 건 서로 터치 안한다. 실은 미국에서부터 좀 그랬어. 서로 인죠이 상대를 만나는 건 묵시적으로 말 안하지. 가정을 지키는데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면.”
“그래?”
선경에게는 적지 않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건 그렇고 갑자기 무슨 검사를 받겠다는 거야? 내가 보기엔 건강하게 보이는데.”
“어… 아무래도 아이가 늦어서 좀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아서 말야. 혼자가긴 좀 그렇고…”
“남편은 뒀다 뭐해?”
“그이에게 말하긴 좀 그랬어. 일단 내가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러다 넌 문제없으면?”
“그땐 한 번 검사해보자고 해야겠지. 그이가 독자라 시부모님도 자꾸 물어보시곤 하니까.”
“너 결혼한지 얼마나 됐지?”
“만 4년 조금 넘었어.”
“그럼 그렇게 걱정할 때는 아니구만.”
“그렇다고 생각은 하는데 그래도 어른들은 그게 아닌가봐. 나도 좀 신경쓰이고.”
“그래, 알았다. 그럼 어떻게 할까? 우리 그이 병원으로 갈래?”
“야, 그건 좀 그렇잖아. 어떻게 네 신랑 병원에 가냐? 창피하게.”
“왜? 우리 그이 제법 잘 해. 명성있다구.”
“알아. 그렇지만 친구 신랑에게 거길 어떻게 보이냐? 그건 정말 못해.”
“호호호호……”
“왜 웃어?”
“너 말 들으니까 갑자기 예전 일이 생각나서 말야.”
“뭔 일?”
“몇 년 전 다시 한국에 나온 첫 추석에 그이 부모님 계신 시골에 내려갔었는데 호호……”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희영은 배를 잡고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얘가 실성했니? 뭘 그리 웃어?”
“내 말 들어봐. 식구들 마침 모두 모였는데 만삭인 그이 형수가 갑자기 산통이 온 거야. 그것도 늦은 밤에 말야.”
“그래서?”
“그이가 아무래도 119 부르는게 좋겠다고 하니 시부모님 왈, 아들놈이 의산데 뭔 119를 부르냐고 하는 거야. 쿠쿠쿡……”
“아…… 아무리 그래도 형수님인데 어떻게……”
“내 말이! 그이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하는데 형님은 배아프다고 난리지, 신구들은 그이보고 뭐하냐고 난리지. 옆에서 보니 진땀만 흘리고 있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됐어?”
선경도 조금 전까지의 우울함을 잊고 희영의 이야기에 점차 흥미를 가져갔다.
“어떻게 됐을 것 같아?”
“내가 그걸 어떻게 아니? 어떻게 됐는데?”
“결국 그이 손으로 아기를 받았지 뭐.”
“아하……”
“근데 말야……”
“응?”
“막상 아이 낳고 진통 사라지고 나니 형님이 자기를 그이에게 맡겼다고 난리 난리를 지기더니 그후론 그이만 보면 얼굴을 붉힌다니까. 호호호호……”
“얼마나 민망하겠니……”
“뭐 그렇기는 하겠지만 내 느낌에 어째 그이와 형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는 것 같단 말이지.”
“무슨 그런 황당한 생각을 하니? 그저 민망해서 그런 거지.”
“아냐. 여자의 직감으로 봐서… 두 사람 사이에 뭔가 흐름이 있어. 뭐 아직 심각한 수준까지 간 건 아닌 것 같지만 말야.”
“어째 너 그걸 즐기는 것 같다?”
“맞아! 상황이 너무 재미있어.”
“얘가! 너 미국생활 좀 하더니 완전히 변했구나?”
“미국에서의 영향도 물론 있겠지만 내가 원래 좀 오픈 마인드잖니. 남편도 그렇고. 너도 좀 시대에 맞게 자유로워져 봐. 난 널 보면 가슴이 답답해. 지금이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됐거든! 넌 너대로 난 나대로 각자의 생각대로 살자고.”
“뭐, 좋아. 시간 지나면 바뀔지도 모르지만”
“절대! 전혀! 네버!”
“호호호호호…….”
적어도 자신에게 그런 일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 선경은 생각했다.
“검사 결과는…….”
의사의 말에 선경의 몸이 급격히 긴장하기 시작했다. 가슴이 뛰어왔다. 서두를 꺼내놓고 다시 한 번 검사결과차트를 확인하던 의사가 눈을 들고 선경을 바라봤다.
“모두……”
침을 꿀꺽 삼켰다.
“정상입니다.”
“후우우……”
“걱정하셨나 보군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건강상 아무런 문제가 없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경이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의사는 차가운 안경 너머로 유심히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선경이 미쳐 눈치채지 못한 어떤 호기심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병원문을 나서는 선경의 마음은 나름 가벼웠다. 적어도 자신이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마음에 안심이 됐다. 그렇지만 며칠 전부터 계속되고 있는 현석과의 어색한 관계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부담으로 남아있었다. 선경이 신경을 곤두세운 것은 아니다. 단지 낯선 남편의 모습이 뇌리에 남았다는 것과 때때로 아직도 떠올려지는 그 순간의 배신감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더불어 그 이후 자신과 마주치기를 불편해하는 남편의 어정쩡한 태도도 마음에 걸렸다.
“별 문제 아니라는데 어째 네 표정이 어둡다?”
차의 시동을 켜며 희영이 물었다.
“응? 으응…… 좀 그럴 일이 있어서……”
“뭔데? 말을 해야 도와주던지 말던지 하지.”
선경은 망설였다. 남편의 자위행위가 특별할 것은 없지만 그것을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진실인지, 또 그런 일들을 자신의 입으로 친구에게 말하는 것이 얼마나 자존심에 금이 가는 것인지가 어쩌면 그 망설임의 이유일 것이었다. 희영이 출발하려던 차의 시동을 다시 껐다.
“괜찮아. 어디 가서 말할 거 아니니까. 살다 보면 남에게 말하기 어려운 일도 생기잖아. 그렇다고 가슴에 묻어두면 병 된다. 말해 놓고 보면 실상 별 것 아닌 일도 많고.”
희영의 눈치는 역시 빨랐다. 선경이 망설이는 이유가 무엇이든 남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일이란 것을 내심 짐작하는 희영이었다.
“그게……”
선경의 말을 들은 희영은 내심 웃음이 나왔지만 선경의 성격을 생각해서 애써 참았다. 자신의 기준에서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고민하는 희영이 우습기도 하고 답답해 보이기도 했다.
“내가 보기엔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일 같지는 않은데……”
그렇게 말하며 슬쩍 선경의 눈치를 살펴봤다. 선경도 희영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남자들은 욕구 해소를 그런 식으로들 하잖아. 우리 그이도 가끔 하는 것 같더라고.”
“그래… 그런데 왠지 그냥 좀 그랬어. 마치 내가 매력이 없어진 여자 같은 느낌도 들고 일종의 허탈감이랄까… 봐서는 안될 것을 본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잘 모르겠어.”
“요사이 부부관계는 어때? 원만해?”
“뭐 특별한 문제는 없는 것 같은데……”
“일주일에 몇 번이나 해?”
“일주일?”
“뭐야? 그럼 일주일에 몇 번도 안된단 말야?”
“신혼 초에는 그랬지만 요즘은 좀……”
“그럼 한 달에는 몇 번?”
“글쎄……”
선경은 지난 번 남편과의 관계가 언제였던가 생각해봤다. 아마도 한 열흘은 된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남편과 관계 횟수가 예전보다 조금씩 줄어들기는 했었다.”
“대충 한 두세 번?”
“겨우?”
“왜? 적은 건가? 그럼 너네는 얼마나 자주……”
말을 하는 선경의 얼굴이 조금씩 붉어져왔다. 그런 선경을 보며 희영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나이를 생각해봐. 한창 때 아냐? 일주일에 적어도 3, 4번은 해야지.”
“3, 4번씩이나?”
“그런 말도 있잖아. 남자는 10대에 하루 한번, 20대는 이틀에 한번, 30대는 사흘에 한번, 40대면 나흘에 한번이 적정이라고.”
“애도 참…...”
“재미 삼아 하는 말인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제법 맞는 말 같더라.”
“사람마다 다르겠지. 그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고……”
“암튼 너네는 정상은 아니야. 누가 문제인지 모르지만 내가 봤을 때 두 사람 변화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아.”
희영의 말처럼 자신과 남편 사이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동의하는 선경이었다.
“어떤 변화?”
“성적인 부분에 대해서 너네 별로 이야기 안하지?”
“아무리 부부지만 그런 이야기를 어떻게 쉽게 하니?”
“거봐, 거봐! 그런 것도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고 해야 하는 거야. 그래야 서로 어떤 게 문제인지 알 수가 있지.”
“그런가……”
“늘 같은 방식으로 하다 보면 그것이 지루해질 수도 있고 말야.”
어떤 방식이냐가 중요하다고 선경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중요하듯 육체적인 것도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편안하고 아름답게 때로 느껴지는 욕구를 만족시키는 정도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선경이었다.
“그럼 혹시 너네도……”
“우리? 우리도 잠깐 귄태기가 왔었지.”
“그래?”
“우린 그래도 서로 솔직한 편이고 또 그런 부분에 개방적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잘 해결을 한 편이지.”
“어떤 식으로?”
희영이 선경을 돌아본다. 말을 해도 좋을지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좀… 적극적인 섹스를 좋아해.”
“적극적인?”
“아니다 더 직설적으로 설명하면 자극적인 섹스라고 해야겠지.”
“그게 어떤 건데?”
호기심이 일었다. 적극적이고 자극적인 섹스란 도대체 어떤 것일까?
“흠… 처음엔 우리도 좀 쉬운 것부터 시작을 했지. 예를 들면……”
희영의 말을 들으며 선경의 가슴은 자꾸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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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2-28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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