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안그러면 프리랜서들은 밥을 굶어야 해요.
오늘도 아침에 임영선의 차로 출근했다. 나는 임영선과 회장실에서 회장과 커피를 마시면서 어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중에 한상무가 들어왔다. 그는 기분이 좋아서 회장에게 보고할 것이 있다고 했다.
"회장님. 어제 오늘 골든존 관리 한가지 만으로도 벌써 매출액이 3% ~ 5% 정도가 움직입니다."
"정말입니까? 그게 확실한 것인가요?"
"그것 뿐이 아닙니다. 특히 신선식품 분야에서 재고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회장의 입은 귀에 걸리고, 임영선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꼭 쥐고 소리를 친다.
"앗싸아!"
이 소름끼치는 소리에 회장도 정신이 번쩍 드는지 한상무의 손을 잡고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효과가 그렇게 빨리 나오는 것이 가능은 합니까?"
"회장님. 매장이라는 곳은 매일 매일 상황이 달라집니다.
주말까지 지나봐야 확실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오는 얘기들로 봐서도 거의 확실합니다."
"한상무님 소식을 하루라도 놓치면 안되겠네요.
임비서. 내일부터는 아침 커피 타임에 최수희씨도 꼭 같이 오라고 해요.
한상무님께서는 최비서를 통해서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매장 소식을 매일매일 들려주십시오."
나는 그 자리에서 한상무에게 나라마트의 매장들을 정리하는 문제를 거론했다. 이것은 잘못하면 회장 입장에서는 이사들에게 엄청난 약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면 회장의 입지가 불리해지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지금 우리 매장이 모두 100개는 됩니까?"
"서울, 경기, 그리고 광역시, 그리고 도시 지역에까지 모두 92개."
"죄송하지만 혹시 경쟁력이 없는 일부 매장들을 정리한다고 생각하면 어떻겠습니까?"
"매장의 수가 갑자기 줄어들면 이사들의 반발이 .."
"만일 이번에 시도하는 PB 상품이 성과를 내면 문제는 달라지지 않을까요?"
"알았네. 매장 정리는 언제 하더라도 꼭 해야 하는 일이야.
우리는 지금 겁을 먹고 차일피일 미루는 중이거든."
"회장님. 그러면 하나 들어오면 하나 잘라내는 형식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일단 정리 대상이 되는 매장을 선정해서 보고하겠습니다."
한상무가 일하는 스타일은 완전 블도저이다. 그는 일이 결정되면 엄청난 추진력으로 밀어붙인다. 그러면서 일을 생각해서 결정하는 것은 나보고 하라고 했다.
"이 바닥에서 한번 실패는 병가지상사가 아니라 거의 퇴출이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PB상품 출시는 우리가 처음 시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김비서도 이번에는 몇 가지만 하자고 했어요."
"그것이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신선도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은 상품으로 생수, 콜라, 각종 쥬스, 아이스크림, 우유 등등 약 20여가지의 종류를 선정했습니다."
"예? 처음인데 그렇게 많이요?"
"왜? 김비서도 겁이 나나? 하하."
"그렇게나 많이 해요? 한상무님. 정말 자신 있어요?"
"회장님, 안심하셔도 됩니다.
일주일 동안 일일 매출량을 분석해서 매일 일정량 이상이 팔리는 제품들 중에서 선정했습니다."
나는 주은혜에게 이제 생산업체들과 생산을 위한 협상을 시작할 것이므로 포장용기를 디자인하는 문제를 거론했다. 당장에라도 홍보를 시작해야 하므로 광고와 마케팅을 위한 자료도 만들어달라고 했다. 그녀는 이번 주말까지 매듭짓겠다고 했다.
"그렇게 빨리 할 수 있어요?"
"안되면 마법이라도 써서 꼭 되게 할테니까 걱정 말아요."
"언니 혼자서 어떻게 이 많은 일을 해요?
나랑 수희 언니가 도와드릴께요."
"그러실 필요 없어요.
노련한 경험자가 아니면 오히려 방해가 돼요."
점심시간 전에 주은혜는 자기보다 훨씬 어린 여자 두명을 데리고 와서 우리에게 소개를 했다.
"나와 함께 프리랜서로 2년째 같이 일하거든요.
우리는 미녀 삼총사 입니다."
"미녀삼총사 멤버의 기준은 말 그대로 미모인가요?"
"미모는 바탕이고, 실력 없이는 안돼요."
"실력이 중요할 것 같은데, 왜 미모까지 필요해요?"
"반드시 필요해요.
예쁘고 개성 있는 얼굴과 확실한 몸매는 기본입니다.
우리는 돈이 없어서 피팅모델을 쓸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직접 모델, 스타일링, 메이크업까지 싹 다 해야 해요."
임영선과 최수희는 이들과 함께 일하는 것에 동의했다. 우리는 점심 먹으러 같이 밖으로 나갔다. 이제 우리는 3명이 아니라 6명이다.
그녀들의 외모로 보면 "미녀삼총사"라는 말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그녀들이 그동안 패션계에서 프리랜서로서 온갖 험난한 일들을 스스로 헤쳐 나온 얘기를 들어보면, "미녀삼총사"라는 말보다는 "마녀삼총사"가 더 어울리는 말 같다. 정말 그녀들은 존경스러운 여자들이다. 목이 메여서 밥이 안 넘어갈 정도이다.
주은혜는 우리에게 고무적인 이야기를 했다.
"임비서님, 김비서님, 최비서님.
걱정 마세요.
우리는 이미 이런 저런 실패들을 모두 겪었거든요.
이번에 또 실패할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사실 나는 지금 의류를 취급하기로 마음은 먹었으나, 첫발을 내디디는 데에 겁을 내고 있다.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 나타난 미녀인지 마녀인지 삼총사는 바로 우리를 구원할 여신 같다.
주은혜는 새로 온 두 명에게 디자인과 홍보자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자료를 복사해서 나누어주었다.
"너네 둘은 일단 집에 가서 이것부터 해결해."
그녀들은 자료를 꼼꼼히 살피더니 주은혜에게 물었다.
"언니, 이것 언제까지 해야 해요?"
"내일 아침 11시까지 안될까?"
"끝내는 것은 모르겠고, 중간보고는 할께요."
여자들 두 명은 내 방을 나갔다. 나는 주은혜에게 따지듯 물었다.
"지금 밤샘이라도 하라고 시키신건가요?"
"일 없으면 놀고, 일 있으면 날밤까는거죠.
프리랜서들이 하는 일은 원래 그래요. "
오후에는 의류상품 개발에 대한 회의를 했다.
우리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몇 일 이내에 상품을 매장으로 출시해야 한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어떻게든 풀어나가야 한다.
그런데 주은혜의 얼굴만을 바라보며 도박을 거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우선 주은혜는 고객을 몇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야 한다고 했다.
"옷은 사람이 입어야 하고, 사람은 제각각 다 다르거든요."
"그래서 엄두를 못내고 있어요."
"내 옷을 입을 사람들을 우선은 나이에 따라서 몇개의 그룹으로 나누어봅시다.
노인 그룹, 성인 그룹, 청소년 그룹, 어린이그룹, 유아그룹.
이렇게 다섯개의 연령층을 남녀로 구분하면 10개의 그룹이 만들어져요.
더 세분할 수도 있는데, 이번에는 처음이니까 단순하게 시작해요."
"그것을 또 크기로 세분해야죠?"
"그건 나중에 해요. 일단은 우리 그룹에서 유아층과 노인층은 빼요."
"유아층을 왜 빼죠? 그 시장도 규모가 엄청난데?"
"아직 그 부분은 섣불리 손대지 마세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우선은 믿을 수 있는 브랜드가 돼야 해요.
임산부들이 자기 배에서 나올 신생아에게 입힐 옷을 살 때에는 절대로 가격을 따지지 않아요.
안심하고 입힐 수 있는 옷, 그러니까 믿을 수 있는 옷을 산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노인층도 빼요. 물량이 적기 때문입니다."
"음. .. 그럼 단순해졌네."
"그럼 나머지는 3 그룹의 남녀니까 모두 6개의 그룹이죠?
그런데 청소년과 어린이는 급성장기이기 때문에 또 두 개나 세 개의 그룹으로 나눠야 해요.
그러니까 일단은 10개의 그룹을 목표로 도전합니다."
"그러니까 뭔가가 보이네요."
"좋아요. 그럼 이제 각 등급마다 4개나 5개의 사이즈를 정해야 해요."
"가격은 어떻게 정해요?"
"낮은 가격과 높은 가격 두 가지를 동시에 취급해야 해요."
"처음으로 하는데, 간단하게 하려면 낮은 가격 하나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시장은 냉혹한 곳입니다.
낮은 가격만으로 시작하면 우리 브랜드가 아예 저가품으로 낙인이 콱 찍혀버리거든요.
그러면 나중에는 고가품을 출시해도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아요.
이미지를 바꿀 수가 없게 되는거죠.
이것은 똑같은 하나의 브랜드로 동시에 출시하니까 생기는 문제입니다."
주은혜는 당장 몇 가지 옷을 선정한다.
그 옷들을 크기별, 남녀별, 가격별로 디자인을 따로따로 해야 한다.
그러면 모두 수백개의 옷들이 된다.
이 많은 옷을 어떻게 몇일 이내에 디자인해서 생산한다는 말인가?
그러니까 이 문제는 지금 그야말로 완전한 총체적인 난국인 것이다.
나와 임영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언니, 이 많은 옷을 언니 혼자 다 해낼 수 있어요?"
"우리는 이 쪽에서는 완전 프로거든요.
우리에게는 기본적인 틀은 다 있어요.
몇 가지만 바꾸면 돼요.
이 일을 하는데에만도 프리랜서가 10명 정도는 있어야 해요."
"10명? 그럼 언니한테 그 많은 사람들이 있기는 해요?"
"다들 어디어디에 꼰지꼰지 처박혀서 숨어있어요.
이 사람들 불러모으는 것만 성공하면 나머지는 금방이거든요."
"와아아. 언니 지인짜 대단하신 분이시네."
"업무 능력이 함량 미달이면 이 바닥에서는 튕겨나가요.
우리 프리랜서들은 우리가 가진 최대치를 끌어내서 일하거든요.
그러지 않으면 프리랜서들은 밥을 굶어야 해요.
혹시 밥 굶어보신 적 있어요?
때가 되면 사방에서 음식 냄새는 엄청 나거든요?
사람 완전 미쳐버립니다.
임비서님은 혹시 이렇게 절박한 심정으로 일해본 적이 있어요?"
우리는 또 한가지 난관에 봉착했다.
주은혜는 의류 유통회사를 따로 설립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했다.
"예를 들면 "나라블랙" 뭐 이런 회사를 하나 만들어요."
"그냥 우리 매장에서 팔기만 하면 되는데, 왜 굳이 회사를 만들기까지 해요?"
"앞으로 갈수록 일이 복잡해지고, 또 실패하면 나라마트가 지금까지 쌓아온 브랜드에 손실이 너무 클 수가 있거든요."
"그럼 그 회사는 어떻게 해야 하죠?"
"어차피 명목상으로 있는 회사잖아요?
그러니까 대표는 임비서가 하시고, 직원은 당장 우리 삼총사가 하면 어때요?"
임영선은 이 문제를 당장 해결하기로 했다. 우리는 회의를 잠시 쉬기로 하고, 나와 임영선은 회장실로 건너갔다. 회장은 동의했고, 회사 설립은 한강 유통의 계열사로 하면 되니까 걱정 말라고 했다.
그 문제는 회장에게 넘기고 우리는 회의를 계속했다.
오늘의 마지막 안건은 재고의 문제이다.
"그러면 팔고 나서 재고가 생기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네요.
음료수야 마시면 되고, 신선식품이야 먹으면 되거든요.
그런데 이 옷이 재고로 남으면 어떻게 해야 해요?"
"간단하죠. 레이블을 바꿔 달아서 동대문 시장 의류 상가로 풀면 돼요.
그건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업체로 넘기거든요."
우리는 결론을 내렸다.
첫째, 의류 유통회사를 설립할 것.
둘째, 주은혜는 당장 패션디자인을 시작할 것.
셋째, 생산 업체를 선정할 것.
일은 이제 거의 주은혜의 손으로 넘어갔다.
주은혜는 다지인이 끝나는 대로 자기가 아는 여러 생산자들에게 디자인을 보낸다.
그들은 샘플을 생산해서 들고 온다.
우리는 그 품질을 검토해서 최종 선정을 한다.
이 회의야말로 내가 들어간 회의 중에서 가장 가치 있고, 생산적인 회의였다.
주은혜는 요구 사항을 말했다.
"우리가 당장 급하게 필요한 것을 말씀드릴께요.
우선 약 20명 정도가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해요.
또 컴퓨터가 필요하거든요.
디자인 파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모니터랑 그래픽카드는 엄청 빵빵해야 해요.
자신이 없으시면 우리가 마련할테니까 나중에 계산을 해주시면 돼요.
또 피팅룸과 촬영장 쎄트가 필요해요."
"임비서. 언제까지 가능할까?"
"언니, 이 정도면 사무실이 아니라 빌딩이 한 채인데?"
"빠르면 빠를 수록 좋아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임영선은 또 아빠에게 갔다 왔다.
"이 건물 15층 전체가 대강당인데, 그거 우리 보고 통째로 쓰라고 하시는데요."
우리는 강당을 보러 15층으로 올라갔다. 강당은 무대가 있고, 조명장치와 사운드까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이 넓은 강당을 어떻게 쓴다?"
"아뇨. 전혀 넓지 않아요. 나중에는 창고도 있어야 하고 .. 이 정도면 충분해요."
"칸막이 공사는 해야 할까요?"
"지금 급하니까, 일단은 파티션을 해놓고 시작하고, 공사는 다음에 하죠?"
"그럼 여기에 자리잡는 문제는 임비서가 주은혜씨와 같이 빠른 시간에 해결하세요."
"예. 날밤 새우겠습니다."
나는 그녀들과 헤어져서 퇴근했다.
사건은 지금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처음에 너무 간단하게 생각한 것이 문제이다.
아무리 노련한 마녀삼총사가 있다고 해도 과연 내가 이것을 해낼 수 있을까?
=*=*=*=*=*=
공부를 더 많이 해서 의류 유통 쪽을 더 자세하게 쓸까 했는데,
그건 이 글에서 다뤄야 할 것이 아닌 것 같아서 이 정도로 썼습니다.
그런데 쓰고 나서 읽어보니까 엄청 딱딱한 내용이 됐습니다.
야설이니까 쪼끔 야들야들하게 썼어야 하는데 ..
예를 들면 :
<그녀가 말했다> 대신에
<그녀가 몸을 굽혀서 가슴골을 보이며 내 귀에 바람을 일으켰다.>
뭐 이런 식으로 ..
이걸 왜 이제야 생각했는지 .. 쩝~!!!
<바람이 남긴 흔적>보다는
이 글 <알바>에
이사람 저 사람의 경험담들이 더 많이 들어있는데 ..
이 글을 더 비현실적이라고 분류하시네요.
자아비판 더 열심히 하고, 더 좋은 글쓰도록 노력할께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 Ja"dore -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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