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time in a bottle
삼일 동안 선경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훈이 마련해준 오피스텔에서만 지냈다. 필요한 것은 지훈과 그의 기사 아저씨가 충분하게 준비해줬다. 신기한 것은 그 삼일 동안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전화를 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남편까지도.
아마도 희영이 남편에게 두 사람 사이를 선경이 알게 되었다고 말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어쩌면 선경이 희영을 협박하고 있다고 했을지도 몰랐다. 어찌됐건 남편 현석에게서 아무런 전화가 없다는 것이 간접적으로 사건의 전말을 그도 알게 되었다는 것을 반증해주고 있었다. 더불어 선경도 마음의 정리를 마쳐가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네, 아…… 그냥……”
식사를 하다 말고 포크를 든 채 멍하니 있는 선경을 지훈이 깨웠다.
“생각은 나중에 천천히 하시고 지금은 식사하세요. 삼일 동안 밖에도 안 나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식사도 제대로 못하셨을 것 같은데.”
“아니에요. 신경 많이 써주셔서 잘 지냈는걸요.”
“아닌 것 같습니다. 며칠 전보다 얼굴에 살이 조금 빠지셨어요.”
“그래요? 전 못 느끼겠는데……”
선경을 바라보는 지훈의 눈에 애잔함이 서렸다. 그런 그의 눈빛에 선경은 얼굴이 붉어져왔다.
“우리 식사해요.”
선경이 과장스러운 동작으로 식사를 다시 시작했다. 그런 선경의 모습을 보던 지훈이 가볍게 웃었다.
“우리 식사 후에 산책하러 가요.”
입술을 오물거리며 선경이 말했다.
“산책요?”
“네. 저기 저 아래 공원으로요.”
선경이 유리창 너머의 공원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그럴까요?”
“네. 휠체어는 제가 밀어드릴게요.”
“힘드실 텐데.”
“힘들면 전동으로!”
“하하하…… 좋습니다.”
밝게 웃는 지훈의 표정을 보며 선경도 오랜만에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은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재주가 있어.)
그것은 매번 느끼는 점이었다. 자신의 육체가 불편한 만큼 다른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능력이 그에게 있는 것 같았다.
(만약 내가 그이가 아니라 저 사람을 먼저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면 저 사람의 불편한 몸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아마도 쉽지는 않았을 거야. 지금이니까 이런 생각도 하는 것일지 몰라.)
“또 생각의 시작이군요.”
지훈의 핀잔에 선경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좀 다른 거거든요!”
“뭐가요? 어떻게요?”
“아까는 현실적인 문제였다면 지금 이것은……”
“지금 이것은?”
“그…… 상상의… 문제랄까? 뭐 그런 거죠. 그래서 전혀 심각하지 않은 거!”
“그렇다면 상상이 아니라 공상이 아닙니까?”
“꼭 그런 식으로 말해야만 해요? 치!”
“하하하…… 처음 보는 귀여운 표정인데요!”
“뭐에요? 지금 놀리시는 거죠?”
“그럴리가… 험…”
그의 헛기침에 선경의 샐쭉했던 얼굴이 웃음으로 변해갔다.
(그래, 어쩌면 이것은 현실도피적인 나의 공상인지도 몰라. 그리고…… 아마도 이 사람과 내가 처음 인연을 맺었더라도 지금과 비슷한 갈등을 겪게 되었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아닐 수도……)
식사를 마칠 때까지 선경은 공연한 상상에 매달리고 있었고, 그런 그녀를 지훈은 모른 척 놔두었다.
“가을이 오나 보군요. 바람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네요……”
지훈이 앉은 휠체어를 선경이 밀며 공원으로 향했다.
“가을하면 선경씨는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글쎄요……”
휠체어를 밀며 걷던 걸음을 멈추고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 봤다. 가을. 그것이 선경에게는 어떤 의미인 걸까?
“가을하면 바람이 먼저 떠오르는 것 같아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차가운 바람이요. 그리고……”
그녀의 다음 말을 지훈은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아!”
“지훈씨는 가을하면 무엇이 먼저 생각나세요?”
“저는……”
생각하는지 지훈이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런 지훈을 선경도 묵묵히 기다려줬다.
“저는… time in a bottle 이란 노래가 생각나곤 합니다.”
선경이 조그맣게 time in a bottle을 되뇌였다.
“왜 그 노래를……?”
“의식이 깨어나고 나서 부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은 것도 충격이었지만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땐 너무나 절망스럽더군요. 그 때 중환자실에 있었는데, 하루를 보내면 어느 새 침대 하나가 비어있고, 또 하루가 지나면 누군가 보이지 않고……”
“아……”
“힘들게 하루 하루를 죽음과 싸우면서도 살기 위해 고통을 참아내는 사람들이 그나마 어떤 면에서 나에게 힘이 됐습니다.”
“그랬군요.”
선경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죽음과 절망 앞에 섰던 지훈의 그 날들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 했다.
“그 때 같은 중환자실에 있던 환자 중에 여자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하루 중의 대부분을 아파서 눈물을 흘리곤 했지만 가끔씩 견딜 만 할 때면 그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습니다.”
“몇 살이나 됐었는데요?”
“중학교 2학년이라고 하더군요.”
“어린 나이군요. 한참 꿈을 키울……”
“네. 나보고 아저씨라고 해서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더니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는 싫다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하하……”
“예뻤나요?”
“귀여웠죠.”
“네……”
“무슨 노래냐고 했더니 가르쳐줬습니다. 짐 크로스라는 사람이 불렀다고 하면서.”
“노래를 좋아했던 모양이네요.”
“네. 특히 그 노래 가사를 좋아했죠.”
“영어를 무척 잘 했나 보군요.”
“그건 아니고…… 노래를 흥얼거리길래 어느 날 물어봤죠. 무슨 뜻인지 아냐고.”
“그랬더니요?”
“노래가 좋아서 그냥 부른대요. 후후……”
“아……”
“그래서 제가 가사 찾아서 가르쳐줬습니다.”
“그랬군요.”
지훈이 잠시 그 때를 회상하는 듯 보였다. 아련한 눈빛이 선경마저 그의 과거로 끌어들이는 것 같았다.
“그 소녀는 무슨 병이……?”
“급성… 백혈병이었습니다.”
“저런…… 치료는 그럼 어떻게?”
“항암치료를 받으며 골수이식을 기다리고 있었죠.”
“네……”
“머리카락이 없었지만 그래도 자주 거울을 보곤 했습니다. 건강해져서 머리가 자라면 어떤 헤어스타일이 어울리겠냐고 물어보곤 했죠.”
“밝은 아이였군요.”
“네, 무척.”
“그래서 힘든 치료도 잘 견뎠을 것 같아요.”
“그랬더랬죠.”
“치료 결과는 어떻게…..?”
“어느 날 검사를 받고 돌아오니 그 아이의 침대가 치워지고 있더군요.”
“네에? 그럼……?”
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골수이식을 해야 했는데…… 불행히 맞는 골수를 찾지 못했습니다.”
“아! 어쩌다……”
선경의 눈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처럼 붉어졌다.
“삶과 죽음은 운명이라고들 하더군요.”
“그래도 그 어린 나이에……”
서로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사이 바람이 가지를 흔들어 나뭇잎 몇을 떨궈냈다.
“영안실에 찾아갔었습니다. 그 아이를 그냥 보낼 수가 없어서요.”
“네……”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 더는…… 아프지 않은 것 같아서 좋더군요.”
“……”
기어코 선경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그 아이 영정 앞에서 작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마치 저보고 그 노래 한 번만 불러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선경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가 선경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그 아이가 좋아했겠군요.”
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별이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그가 무엇을 찾는지는 모르지만 선경은 생각했다. 그라면 아마도 그 아이의 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노래… 들어보시겠습니까?”
의외의 그 말에도 선경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곧 부드럽고 작은 그의 목소리가 어두운 하늘을 비껴 올랐다.
“If I could save time in a bottle
the first thing that I"d like to do
is to save every day "til eternity passes away
just to spend them with you
……”
지훈은 노래를 다 부르지 못했다. 고개를 떨구며 그가 말했다.
“오늘이… 그 아이를 마지막 본 바로… 그 날입니다.”
그의 어깨에 올려진 선경의 손에 가는 떨림이 전해져 왔다.
오피스텔 문 앞에서 선경은 그를 향해 돌아섰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제가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고개를 숙이고 휠체어를 돌려 미끄러지듯 멀어져 가는 지훈을 보며 선경은 가슴이 답답했다. 그를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다. 마음으로는 몇 번이고 그를 붙잡고 있었지만 그러나 정작 무슨 말로 그를 붙잡을지 생각나지 않았다.
“지훈씨!”
저기 엘리베이터 앞에 있던 그가 고개를 돌려 선경을 바라봤다.
“네?”
선경이 그를 향해 뛰듯이 달려갔다. 그가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크게 떴다. 금새 그의 앞에 다가선 선경이 그에게 말했다.
“지훈씨!”
“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그를 향한 선경의 눈이 점차 흔들림을 멈춰갔다. 그리고 빠르게 그의 얼굴을 향해 선경의 얼굴이 돌진했고 곧 입술과 입술이 맞대어졌다.
잠시 시간이 멈췄다. 두 사람 모두 얼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지훈이 못다 부른 노래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 했다.
if I could make days last forever
if words could make wishes come true
I"d save every day like a treasure and then
again I would spend them with you
But there never seems to be enough time to do the
things you want once you find them
I"ve looked around enough to know that
you"re the one I want to go through time with
If I had a box just for wishes
and dreams that had never come true
the box would be empty except for the memories
of how they were answered by you
But there never seems to be enough time to do the
things you want once you find them
I"ve looked around enough to know
that you"re the one I want to go through time with
삼일 동안 선경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지훈이 마련해준 오피스텔에서만 지냈다. 필요한 것은 지훈과 그의 기사 아저씨가 충분하게 준비해줬다. 신기한 것은 그 삼일 동안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전화를 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남편까지도.
아마도 희영이 남편에게 두 사람 사이를 선경이 알게 되었다고 말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어쩌면 선경이 희영을 협박하고 있다고 했을지도 몰랐다. 어찌됐건 남편 현석에게서 아무런 전화가 없다는 것이 간접적으로 사건의 전말을 그도 알게 되었다는 것을 반증해주고 있었다. 더불어 선경도 마음의 정리를 마쳐가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네, 아…… 그냥……”
식사를 하다 말고 포크를 든 채 멍하니 있는 선경을 지훈이 깨웠다.
“생각은 나중에 천천히 하시고 지금은 식사하세요. 삼일 동안 밖에도 안 나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마 식사도 제대로 못하셨을 것 같은데.”
“아니에요. 신경 많이 써주셔서 잘 지냈는걸요.”
“아닌 것 같습니다. 며칠 전보다 얼굴에 살이 조금 빠지셨어요.”
“그래요? 전 못 느끼겠는데……”
선경을 바라보는 지훈의 눈에 애잔함이 서렸다. 그런 그의 눈빛에 선경은 얼굴이 붉어져왔다.
“우리 식사해요.”
선경이 과장스러운 동작으로 식사를 다시 시작했다. 그런 선경의 모습을 보던 지훈이 가볍게 웃었다.
“우리 식사 후에 산책하러 가요.”
입술을 오물거리며 선경이 말했다.
“산책요?”
“네. 저기 저 아래 공원으로요.”
선경이 유리창 너머의 공원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그럴까요?”
“네. 휠체어는 제가 밀어드릴게요.”
“힘드실 텐데.”
“힘들면 전동으로!”
“하하하…… 좋습니다.”
밝게 웃는 지훈의 표정을 보며 선경도 오랜만에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은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재주가 있어.)
그것은 매번 느끼는 점이었다. 자신의 육체가 불편한 만큼 다른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 능력이 그에게 있는 것 같았다.
(만약 내가 그이가 아니라 저 사람을 먼저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면 저 사람의 불편한 몸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아마도 쉽지는 않았을 거야. 지금이니까 이런 생각도 하는 것일지 몰라.)
“또 생각의 시작이군요.”
지훈의 핀잔에 선경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좀 다른 거거든요!”
“뭐가요? 어떻게요?”
“아까는 현실적인 문제였다면 지금 이것은……”
“지금 이것은?”
“그…… 상상의… 문제랄까? 뭐 그런 거죠. 그래서 전혀 심각하지 않은 거!”
“그렇다면 상상이 아니라 공상이 아닙니까?”
“꼭 그런 식으로 말해야만 해요? 치!”
“하하하…… 처음 보는 귀여운 표정인데요!”
“뭐에요? 지금 놀리시는 거죠?”
“그럴리가… 험…”
그의 헛기침에 선경의 샐쭉했던 얼굴이 웃음으로 변해갔다.
(그래, 어쩌면 이것은 현실도피적인 나의 공상인지도 몰라. 그리고…… 아마도 이 사람과 내가 처음 인연을 맺었더라도 지금과 비슷한 갈등을 겪게 되었을지도 모르지. 어쩌면… 아닐 수도……)
식사를 마칠 때까지 선경은 공연한 상상에 매달리고 있었고, 그런 그녀를 지훈은 모른 척 놔두었다.
“가을이 오나 보군요. 바람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네요……”
지훈이 앉은 휠체어를 선경이 밀며 공원으로 향했다.
“가을하면 선경씨는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글쎄요……”
휠체어를 밀며 걷던 걸음을 멈추고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 봤다. 가을. 그것이 선경에게는 어떤 의미인 걸까?
“가을하면 바람이 먼저 떠오르는 것 같아요.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차가운 바람이요. 그리고……”
그녀의 다음 말을 지훈은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아!”
“지훈씨는 가을하면 무엇이 먼저 생각나세요?”
“저는……”
생각하는지 지훈이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런 지훈을 선경도 묵묵히 기다려줬다.
“저는… time in a bottle 이란 노래가 생각나곤 합니다.”
선경이 조그맣게 time in a bottle을 되뇌였다.
“왜 그 노래를……?”
“의식이 깨어나고 나서 부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은 것도 충격이었지만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땐 너무나 절망스럽더군요. 그 때 중환자실에 있었는데, 하루를 보내면 어느 새 침대 하나가 비어있고, 또 하루가 지나면 누군가 보이지 않고……”
“아……”
“힘들게 하루 하루를 죽음과 싸우면서도 살기 위해 고통을 참아내는 사람들이 그나마 어떤 면에서 나에게 힘이 됐습니다.”
“그랬군요.”
선경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죽음과 절망 앞에 섰던 지훈의 그 날들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듯 했다.
“그 때 같은 중환자실에 있던 환자 중에 여자 아이가 하나 있었는데, 하루 중의 대부분을 아파서 눈물을 흘리곤 했지만 가끔씩 견딜 만 할 때면 그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습니다.”
“몇 살이나 됐었는데요?”
“중학교 2학년이라고 하더군요.”
“어린 나이군요. 한참 꿈을 키울……”
“네. 나보고 아저씨라고 해서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더니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는 싫다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하하……”
“예뻤나요?”
“귀여웠죠.”
“네……”
“무슨 노래냐고 했더니 가르쳐줬습니다. 짐 크로스라는 사람이 불렀다고 하면서.”
“노래를 좋아했던 모양이네요.”
“네. 특히 그 노래 가사를 좋아했죠.”
“영어를 무척 잘 했나 보군요.”
“그건 아니고…… 노래를 흥얼거리길래 어느 날 물어봤죠. 무슨 뜻인지 아냐고.”
“그랬더니요?”
“노래가 좋아서 그냥 부른대요. 후후……”
“아……”
“그래서 제가 가사 찾아서 가르쳐줬습니다.”
“그랬군요.”
지훈이 잠시 그 때를 회상하는 듯 보였다. 아련한 눈빛이 선경마저 그의 과거로 끌어들이는 것 같았다.
“그 소녀는 무슨 병이……?”
“급성… 백혈병이었습니다.”
“저런…… 치료는 그럼 어떻게?”
“항암치료를 받으며 골수이식을 기다리고 있었죠.”
“네……”
“머리카락이 없었지만 그래도 자주 거울을 보곤 했습니다. 건강해져서 머리가 자라면 어떤 헤어스타일이 어울리겠냐고 물어보곤 했죠.”
“밝은 아이였군요.”
“네, 무척.”
“그래서 힘든 치료도 잘 견뎠을 것 같아요.”
“그랬더랬죠.”
“치료 결과는 어떻게…..?”
“어느 날 검사를 받고 돌아오니 그 아이의 침대가 치워지고 있더군요.”
“네에? 그럼……?”
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골수이식을 해야 했는데…… 불행히 맞는 골수를 찾지 못했습니다.”
“아! 어쩌다……”
선경의 눈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처럼 붉어졌다.
“삶과 죽음은 운명이라고들 하더군요.”
“그래도 그 어린 나이에……”
서로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사이 바람이 가지를 흔들어 나뭇잎 몇을 떨궈냈다.
“영안실에 찾아갔었습니다. 그 아이를 그냥 보낼 수가 없어서요.”
“네……”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 더는…… 아프지 않은 것 같아서 좋더군요.”
“……”
기어코 선경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그 아이 영정 앞에서 작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마치 저보고 그 노래 한 번만 불러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선경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가 선경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그 아이가 좋아했겠군요.”
그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별이 보이지 않는 하늘에서 그가 무엇을 찾는지는 모르지만 선경은 생각했다. 그라면 아마도 그 아이의 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노래… 들어보시겠습니까?”
의외의 그 말에도 선경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곧 부드럽고 작은 그의 목소리가 어두운 하늘을 비껴 올랐다.
“If I could save time in a bottle
the first thing that I"d like to do
is to save every day "til eternity passes away
just to spend them with you
……”
지훈은 노래를 다 부르지 못했다. 고개를 떨구며 그가 말했다.
“오늘이… 그 아이를 마지막 본 바로… 그 날입니다.”
그의 어깨에 올려진 선경의 손에 가는 떨림이 전해져 왔다.
오피스텔 문 앞에서 선경은 그를 향해 돌아섰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제가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고개를 숙이고 휠체어를 돌려 미끄러지듯 멀어져 가는 지훈을 보며 선경은 가슴이 답답했다. 그를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았다. 마음으로는 몇 번이고 그를 붙잡고 있었지만 그러나 정작 무슨 말로 그를 붙잡을지 생각나지 않았다.
“지훈씨!”
저기 엘리베이터 앞에 있던 그가 고개를 돌려 선경을 바라봤다.
“네?”
선경이 그를 향해 뛰듯이 달려갔다. 그가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크게 떴다. 금새 그의 앞에 다가선 선경이 그에게 말했다.
“지훈씨!”
“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그를 향한 선경의 눈이 점차 흔들림을 멈춰갔다. 그리고 빠르게 그의 얼굴을 향해 선경의 얼굴이 돌진했고 곧 입술과 입술이 맞대어졌다.
잠시 시간이 멈췄다. 두 사람 모두 얼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지훈이 못다 부른 노래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 했다.
if I could make days last forever
if words could make wishes come true
I"d save every day like a treasure and then
again I would spend them with you
But there never seems to be enough time to do the
things you want once you find them
I"ve looked around enough to know that
you"re the one I want to go through time with
If I had a box just for wishes
and dreams that had never come true
the box would be empty except for the mem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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