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부
싸늘한 정적이 두 사람 사이를 메꾼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대치하듯 마주 보며 말없이 동작이 굳어 있었다.
굶주린 한 마리 하이에나였던 사내.
본래 거칠게 포효하고 부르짖던 들짐승이지만
지금은 배고픔을 채워 만족한 나머지 지친 탓일까,
맹수 특유의 사나운 이가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눈 앞에 놓인 겁에 질린 토끼여야할 존재가..
오히려 겁 먹은 눈초리에 더해, 사나운 눈빛이 뒤섞여 맹수를 바라보고 있다.
원망이 가득 담긴 얼굴이다.
매우 어색한 흐름을 무겁게 들춰내며, 토끼가 입을 연다.
“어쩌려고... 이랬어?”
“....... 그게요..”
“안에다가는 절대..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지”
“...........”
“게다가 너, 남자답지 못하게.. 자고 있는 사람을 덮친 거야..?”
“누, 누나.. 그건!...”
영애의 조용하게 나무라는 목소리가 촉촉하게 현준의 귀를 파고든다.
말투에는 이전에 느꼈던 따스한 애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현준은 차가워진 영애의 목소리가 가벼이 떨리는 걸 느낀다.
이미 실망이 가득한 나머지 자신을 바라보는 얼굴도...
그 목소리에도 분노의 감정이 담겨 있다고.
제길.
피할 수 없는 외나무 다리 위와도 같은 팽팽한 긴장감.
아무 말도 뱉고 싶지 않지만 대꾸해야 한다.
“....... 참을 수가.. 없었어요, 도저히..”
“참을 수.. 없었어?”
“네..”
“..........”
영애는 의외로 더 다그치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뜨거운 고함소리라든가, 매서운 호통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현준.
어찌된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가만히 눈을 떠본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아무런 말 없이 조용히 침대에서 허리를 피고 일어나는 영애였다.
새하얀 우윳빛 살결의 뽀샤시함이 눈 앞을 떠다닌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근사한 나신이...
서슴치 않고 무엇도 의식하지 않은채로 그의 앞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탐스러운 허벅지에 더해 윤곽이 또렷하게 살아있는 둔부의 뒤틀림..
군살 없이 잘록하니 근사한 허리와, 질서정연하게 솟아 있는 매력적인 젖가슴의 흔들림.
꿀꺽...
눈을 뜨고 숨죽이며 감상하는.. 한 순간 한 순간이 귀하다.
끼긱-
영애가 스위치를 돌리며 ‘쏴아아~~’
쏟아지는 물을 몸에 뿌리는 소리가 들린다.
현준은 스스로 이해하기 어려운 허무함에 잠겨 있었다.
그 얼굴은 대체 뭐지, 누나?
뭔가 말을 더 하려는 얼굴이었는데..
엄하게 더 혼을 내고 화를 내줬으면 싶은 기분이었다고..
이건 마치 x을 누다가 중간에 끊..?
에이 씨발...
뭔가 숭고하고 성스러운 기분에 잠긴 중인데 더러운 비유는 하지 말자.
그래.
막 허물을 벗다가 중간에 멈춰버린 서글픈 누에의 심경이라고 생각해.
누에고치도 아니고 번데기도 아닌 것이, 어중간하게 허물을 몸에 걸치고 있는...
굉장히 엉뚱한 착상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준은 이 허전한 빈 공간에 남겨진 자신의 처지가.. 쓸쓸한 누에고치 같다고 여겼다.
나오면 무슨 말을 할까.
역시 내가 바라는대로 불같이 더 화를 내며 다그치려나.
좌불안석의 마음으로 현준은 가부좌를 틀고 침대 한구석에 앉아 있었다.
쏴아아..........
끼익, 물을 잠그는 소리 후, 영애가 나온다.
올 것이 오는구나.
현준은 마른 침만 삼키며 그녀가 타박- 타박- 다가옴을 기다린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진실된 반성의 포즈라는 것은
이렇게 각을 잡고 양반다리로 조용히 앉아있는 것이라 생각한 모양.
현준은 조용히 침대 근처에서 물을 마시고 서 있는 영애의 다리를 바라본다.
그 쳐다보는 것도 고양이가 조심스럽게 주인의 눈치를 살피는 마냥
슬그머니 눈을 뜨고 그녀의 발 맨 아래서부터-
서서히 위를 향해 시선을 이동하며 하반신을 훑어올린다.
이런 아쉽네.
뜨슨 물로 몸을 데우고 나온 영애는, 새로 갈아 입었는지 정결한 백색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반성하고 있다고 스스로 여겼으면서도
역시 그녀의 육감적인 나신을 훔쳐보고 싶었던 모양.
빌어먹을... 이런 생각을 또!
현준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인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오래 하고 있어?”
“녜..?”
“혼자 고개를 숙이고 침대 위에서 무슨 생각을 한참 하느냐고”
“아.. 아니에요 이건 아무 것도..”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던 거야?”
“에... 그게..”
큭. 예상했던 대로군.
영애는 아까 매섭게 싸대기를 올려붙인 후,
일찍이 본적 없는 무서운 눈빛을 지으며 현준을 내려다보았다.
그 살얼음을 가누는 듯한 싸늘한 시선이..
말없이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몸을 차갑게 식히다 못해 살며시 떨리게 만들 지경이다.
“누나가 너무 말을 안하고 그냥 샤워하러 가버리니까..
뭐라 말을 하고 싶어도 말할 타이밍을 놓친거죠”
“그건 맞아.
그리고 난 뒤 침대 위에서 혼자 무슨 생각을 했냐고?”
“생, 생각을 하다니.. 그야 뻔하잖아요”
“.......”
“미안하다는 생각, 누나에게 너무 큰 잘못을 했구나 하는 생각 말이에요..”
“........”
“솔직하게 잘못했다고 느끼고 인정하고 있어요.
예, 인정합니다... 허락도 없이 자는 사이..”
“허락없이.. 그것 말고..”
“아, 알고 있어요..
잠든 사이에 말도 안하고 안에다가 해버린 거..”
차라리 회초리를 맞으며 반성문을 열댓장 쓰라면 쓰고픈 심정.
이렇게 여자 앞에서 어수선하고 복잡한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다니.
이런 기분을 태어나서 맛본 적이 있었던가?
그렇게 느끼고도 남을만한게, 현준은 침대위에서
무의식중에 무릎까지 꿇고 영애에게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핫!...
내가 이런 비참한 자세까지 취하고...
이게 대체 무슨 짓이지?
문득 자기 자신의 꼬라지가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지는 현준.
서둘러 침대 모서리에 되도록 편하게 걸터앉는다.
“잘 알고 있구나, 알고 있으면 됐어”
“네... 잘못한 것은 똑똑히 저도 알아요”
“그래, 착하다”
“착하다구요.. 누나는 이제 화가 풀린 거예요?”
“나? ... 글쎄, 화가 풀렸다고 하기에는 기분이 애매모호하지..”
“네?”
“아니야. 이야기는 차차 나중에 하기로 해.
너도 내가 자는 사이에 땀흘리며 힘썼으니까, 조금이라도 몸부터 씻고 나오고”
“나.. 나는 깨끗하고, 이정도면 괜찮은데요?”
“그래도~ 옆에서 느끼기에는 땀냄새도 나고 좀 다르니까”
“그럼.. 그럴까요..”
뭐지 이런 미묘한 기분은.
영애는 좀처럼 현준 자신에게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다.
여전히 가슴을 뛰게하는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정감있고 따스하게 자신을 봐주던 시선이..
내 쪽을 향하지 않고 다른 곳만 응시하고 있다니.
텅 비어버린 듯한 허탈한 시선이 현준은 마음 아팠다.
영애의 말대로 뜨거운 물을 머리 위에 끼얹으며 생각에 잠긴다.
너무 말수가 없는걸...
아무리 화가 나고 실망했어도 저렇게 말수가 적은 누나는 아닌데.
굉장히 절제된 몸동작으로 필요한 행동만 할뿐이고
사뭇 타인을 대하는 것처럼 말하기까지.
이미 내게서 마음이 떠나버린 건가?
현준은 따스한 색감의 타일이 자신의 기분과 정반대로 빛난다고 느꼈다.
괜히 분한 마음에 쿵~~...
말아쥔 주먹으로 벽을 내리친다.
찝찝한 기분이지만 몸은 개운하다.
대충 몸을 말리면서 욕실 문을 나서려는 순간,
현준은 눈 앞의 광경에 자기도 모르게 눈을 크게 치켜떴다.
어어어어...
놀란 나머지 몸을 닦다 말고, 영애에게로 허겁지겁 다가간다.
“뭐, 뭐하는 거예요, 지금??”
“이거 놔줘. 나 집에 갈거야”
“뭐라고요~?? 집, 집에 간다고 지금? 이 시간에?”
“........ 그래, 나 혼자서라도 집에 가기로 했어”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뭐하는 거야..?”
“...... 뭐라고?”
“사람이 그렇게 성의를 다해서 반성하고 미안하다고 말을 했으면..
하다못해 들어주는 정성은 보여야 하는 것 아니예요?”
“.......... 미안해”
“이봐요, 이, 이것 봐요!”
현준이 펄쩍 뛰고도 남았다.
영애는 현준이 느긋하게 몸에 물을 뿌리고 있는 사이,
빠르게 옷을 모두 갖춰 입고.. 검은 스타킹의 올을 체크하고 있던 것이다.
황당하고 열이 받는 것은 접어두자.
기분이 상해서 이 시간에 집을 가겠다고 한다면,
여전히 납득할 수 없지만 거기까진 한발 양보할 수 있다.
그런데 뭐??
분명히 방금 ‘혼자서라도 집에 가겠다’라니...
현준의 순간적인 분노는 극에 달했다.
까딱하면 자신을 나몰라라~ 하고
차갑게 등지고 서서 자신의 옷매무새만 살피는 그녀를 다시 덮칠 정도.
그러나 용케 간신히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며
‘씩~ 씩~......’ 뜨거운 김을 뿜는다.
보기 지나칠 정도로 영애는...
기분이 상한 현준과 정반대로, 몹시 차분한 기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왜 이러는 거죠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큰 잘못을 했다구요”
“아니야 그정도까지... 그저.. 내가..
나 혼자서 생각하기에.. 내 스스로 너무나 한심하고 처량해서..
처지가 딱하다고 느껴졌을 뿐이야.. 너에게 화가 난 거랑 개별적으로 말이지”
“그게 무슨...
누나 지금 모습이 뭐가 어때서 처량하고 딱하게 느껴져욧?!”
영애는 본인 표현대로 축 늘어진 어깨를 한 채 죄지은 사람마냥
약간 기죽은 모습으로, 현관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그렇게는 못 두지!!
현준은 뛰어가 그녀의 왼 손목을 꽉 붙잡고 몸을 홱~ 돌렸다.
“아팟...?”
“무슨 짓이야, 무슨 짓이에요?! 다짜고짜 혼자 옷까지 입고 나가다닛!”
“가고 싶어. 가게 해줘..”
“가긴 뭘가!
덜떨어진 염소 새끼처럼 들리지도 않게 말하면서!..
별 말도 안하면서, 혼자 멋대로 집에 갈 생각이냐고요!?”
“...........”
“........... 하아, 하아...”
너무 흥분한 감이 있었다.
현준은 손 안에 꽈악 붙잡혀서 ‘욱신 욱신’거리는 통증에 흔들리는-
영애의 자그마한 손목이 빨갛게 부은 것을 본다.
아차...
순간적으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세게 쥐어 부어 오른 그녀의 손목을 슬쩍 놔주었다.
영애는 그가 놔주자 다른 손으로 아픈 손등을 어루만지며..
현준과는 다른 의미로 난처한 눈빛을 지으며 문간에 서있다.
시원한 코발트 블루 색감의 엷은 블라우스 차림.
닿을 듯 말 듯, 영애는 현준과의 사이에 고작 몇 센치미터를 유지하며
말없이 가만히 서서.. 하얀 현관 문 가운데 금빛 문패에 등을 기댄다.
그 매력적인 몸으로부터- 아슬 아슬하게 닿지 않고 있는 현준의 심장.
쿵~ 쿵~ 뛰는 조용하고도 힘찬 울림이 생생하게 들린다.
“그래도 아무 말을 하지 않을 건가요..?”
“아니야. 말할게.
내내 생각했어, 조금 전 샤워하면서..”
영애는 다소 무겁게 입을 열었다.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생각했어..
내가 지금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거지? 하고..
비단, 너와 같이 있는 이 시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야”
“..........”
“가만히 서서 생각에 잠겨봤지.
지금의 내 처지가 어떤가를.
현준이 너랑 같이 단 둘이 있는 이 시간이 정말 값어치가 있고, 의미 있는 시간일까?
남편이 있고, 내 사랑하는 아들들이 있는..
소중한 가정을 외면하다시피 버리고 온 나라는 여자를 말이야..”
그런 이야기를 왜 지금...
현준은 불편한 감정을 내비치기 싫어, 떨리는 영애의 눈으로부터 시선을 돌렸다.
영애의 목소리와 눈동자가 계속해서 가녀리게 떨린다.
“너도 너 아닌 내 입장이지만 그런 생각을 해봤을 거야.
하지만 아무래도 여자이고 가정 주부인 내 입장에서만큼은 못돼.
내 입장을 이해하기... 아니, 내 처지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아마 상상도 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해, 현준아”
“.........끄응..”
현준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서 묵직한 신음을 흘렸다.
영애의 말이 맞았다.
자신은 남자이고 가정을 둔 그녀와 한참 차이 나는 어린 나이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 영애가 하는 말들도 반은 가슴에 와닿기도 하고
절반 이상은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은채 흘려나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아직 스물도 안됐는데 당연히 그런건 모르지..’
이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그저 지금 현준의 머릿속은, 할만큼 정성을 다해 용서를 빌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에게 누나는 지금 도가 지나칠 정도로 돌발적인 행동을 하며..
상식 밖의 모습을 보이면서 뛰쳐나가려 하니, 붙잡아야한다는 의식 뿐이다.
그 밖에도 영애는 어느새 눈가가 촉촉이 젖은 채로
뭐라고 말하는지 들리지도 않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울먹 울먹이며.. 혼자만의 조용한 독백을 현준 아닌 자신에게 속삭이듯-
문가에 간신히 버티고 서서 흐느끼고 있었다.
맨발 차림으로 헐레벌떡 제지하려 뛰쳐나온 현준과 달리
영애는 처음에 신고 왔던 것과 다르게 하얀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 덕분일까.
거친 숨을 내쉬며, 울고 있는 영애를 바로 앞에 두고..
껴안지도 못하고.. 난처한 포즈로 생각에 빠져 있는 현준.
영애의 검고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에서
달콤하고 푸근한 샴푸 향기가 풍겨져온다.
소리 없이 코 끝을 자극하며 간지럽히는 그 기분..
현준은 영애를 감히 안을 생각도 못하고 그렇게 서서
그녀의 은은한 샴푸 냄새와 함께, 전신에서 우러나오는 향긋한 체취에 푹- 빠져들고 있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로...
이렇게 그녀의 살내음에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닌데도,
현준은 아까 침대에서보다, 더 영애의 아찔한 향기에 취하고 있었다.
불끈.. 불끈.. 치솟는 아랫도리의 압박.
아까처럼 그녀의 백옥같은 살결을 어루만지며..
기분 좋은 애무와 짜릿한 삽입을 앞두고 즐겼을 때도 느꼈지만
말없이 그녀를 앞에 두고, 이렇게 변태처럼 코만 킁킁-거리며 향을 맡는 것도..
생뚱맞지만 꽤 좋은 감각이었다.
“........ 이유는 그래서, 그게 다예요?”
“훌쩍.. 훌쩍.. 뭐어?...”
“실컷 우는건 좋은데..
불쑥 이 새벽에 돌아가겠다고 하는건..
집에 있는 남편과 아들들 걱정에 불안해서 죽을 것 같은.. 그것 뿐이냐고요”
“.....?..... 너 무슨.. 말이 그래?”
영애는 울던 것을 멈추고, 의아한 눈으로 현준을 올려다보았다.
반면 현준은 영애가 자신의 눈을 바라보자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의 시선을 응시하기 어려워, 시선을 돌려버린다.
“죄책감이잖아요.
누나가 갖고 있는 기분을 한마디로 설명하면 죄책감...
그 꿀꿀한 기분 말고 다른 마음 같은 건 없느냐고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거야?”
“아뇨, 암 것도 아닙니다..”
현준도 그 순간에는 머릿속이 암전된 것처럼 먹먹했다.
살포시 작게나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긴 있었다.
영애가 현준 자신을 향해 품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어떤 이미지가..
하지만 그것을 입밖에 내서 말할 수는 없었다.
직접 말하긴 두려웠다.
그리고 남자로서 어째 수치스럽다고 느꼈다.
현준이 무언가를 암시하듯 여운을 흘리며 말을 않자
영문을 모르는 영애는, 핸드백에서 고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는 잠시 눈을 크게 부릅- 뜨고 눈동자를 일렁이며
뭐라 말을 할까 고민하는지 입을 오물거린다.
“갈게..”
“.... 예?”
“가야겠어. 이대로는 도저히 안될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
“누나.....”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 현준아.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해해줘..
나중에 마음이 가라앉으면 다시 이야기하자”
“그런.. 누, 누나?.....”
“지금은 혼자 있고 싶어..
참, 너 차비는 거울 옆 탁자 위에 올려뒀으니까, 버스 타고 가..”
“잠.. 잠깐만요, 아직 더 이야기 좀 하고..”
영애는 그제서야 그녀를 버둥켜 안으려는 듯,
안타까운 손짓으로 허공을 휘젓는 현준을 뒤로 하고
달깍- 금빛으로 빛나는 작은 손잡이를 돌리고 복도로 나가 버렸다.
젠장할...
현준은 팬티 외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기 때문에
영애를 뒤따라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멀뚱이...
총총걸음으로 복도를 뛰듯이 걸어가는 뒷 모습만 바라본다.
..........
시간은 이미 새벽 두시를 넘긴 시각.
째깍- 째깍-
텅 비어버린 허전한 객실에 홀로 남은 현준.
안쓰러운 자세로 널부러진 채..
아까 영애와 마주 앉아 차를 마시던 소파 위에 기대듯 누워있다.
뭐지 대체.
이 실체를 알 수 없는... 사막의 오아시스..
아니 신기루를 발견한 뒤에.. 금방 없어지듯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은?
나른하게 눈꺼풀이 츠르르 잠긴다.
몸에는 아직 아까 전 샤워하고 난 미열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의식은 희미하게 흐렷해지는데..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머리만, 강한 두통처럼 아파온다.
큭....
상비약 같은 것 없나.
드르륵~ 부리나케 거울 앞으로 다가가 화장대 주위의 서랍들을 열어본다.
꿀꺽... 꿀꺽... 하아, 하아...
구비된 두통약을 두알씩이나 삼키고는 물을 마셨다.
시원한 물을 마시고 나니 정신이 약간 맑아지는 기분이다.
끄윽... 후..
황영애 씨, 진짜 가버린거야?
정말로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거냐고?
하하.. 미치겠군 야..
그래도 정신 나간척 하며, 무리해서라도 쫓아가는 게 답이었나..
크크크.. 하하하하.
몽롱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현준은 아픈 머리를 어루만진다.
침대에 풀썩- 대자로 드러누워 생각한다.
오늘 행동만 신중하게, 경거망동하지 않았다면...
분명히 내 것이 될 수 있었던 여자였다.
내 것이 되고도 남았어야했을... 매력적인 몸뚱아리였다.
그랬던 몸이며, 마음과 영혼이 담겨 있던 여자인데..
지금 그 여자가 내게 싸늘한 시선만 남기며
홀연히 그림자만 드리우며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고 정말 실행에 옮기다니..
아직 한참 어린 나를 남겨두고 이 새벽에 가버릴 줄은.
생각해보고 생각해봐도 현준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정말 문자 그대로 꿈을 꾸고 있는 몽롱한 기분이었다.
슈팔.....
-
다음날 오후.
지우가 부스스한 얼굴로 잠에서 깨어 머리를 긁는다.
긁적 긁적-
어제 머리를 깨끗하게 감았는데, 긁다보니 하얀 소금이 또 떨어진다.
에이, 더러워...
간밤에 FPS 게임을 신나게 새벽까지 즐기고서 골아떨어졌다.
실컷 자고 일어나보니 오후 네시다.
몇시간을 잤어??
아무리 새벽 다섯시에 잤다고는 해도 열한시간을 자다니..
애꿎은 아랫배의 무른 살만 어루만지며 방에서 나온다.
하루가 다 갔네 쩝.
엄마는 저녁 늦게나 돌아올거라 그랬지..
복도에 서서 자기 방과 화장실 사이에 있는 전신 거울을 들여다본다.
라면을 끓여 먹고 자서 얼굴이 또 탱탱 불어있다.
으으... 아직 붓기가 빠지려면 더 있어야 하나.
툴툴 거리며 얼굴 뺨을 두 손바닥으로 혼자 짓누른다.
“뭐하니? 혼자 바보처럼 서서~”
“......!..... 어엇, 뭐, 뭐야! 언, 언제 왔어?”
“방긋~~ 호호- 이제 일어난거야 아들?”
“어... 일어났지..
어마마.. 아니 말이 씹히네, 엄마 왜 벌써 왔어?”
“우음~~ 기냥~~... 이래저래 어찌하다 보니까~
예정보다 더 일찍 집에 와버리게 되었다고 할까.. 우후후”
“헤에~?”
“..........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냐?”
“아니.. 이상해서..”
“뭐가?”
“그렇게 신나서.. 유미 아줌마랑 좋아하면서 내려간다고 그랬었는데
이렇게 일찍 돌아오니까.. 놀랍기도 하고..”
“너엇!!
엄마가 언제 그렇게 좋고 신나서 나갔다고 그러니?
말은 바로해.. 유미가 하두 보채니까 어제는 들떴던 것처럼 보인 거겠지..”
“아 그랬던 거야?
뭐~ 그거나~ 그거나.. 좋다고 설레면서 나가는 것 같던건 마찬가지지~”
“얏~ 쓸데없는 소리말고 일어났으면 언능 가서 물부터 마셔”
“아야! 오자마자 아들 머리를 주먹으로 때리고 난리야?”
“흥... 우리 미운 아들 자식 얼굴 보니까 너무 반가워서 때린다~”
영문을 모른 채, 영애에게 쥐어박힌 머리를 감싸며
툴툴~ 불만 어린 얼굴로 쪼로록- 정수기를 따르는 지우.
영애는 그녀 나름대로 또 뭔가 생각에 빠졌는지-
물을 시원하게 두잔 마시고 난 아들이 부르는 소리도 못들은채로
검은 소파에 몸을 묻고, 베란다 밖 하늘을 응시하고 있다.
두 번 불러도 엄마가 못 알아듣자 답답한 아들.
성큼 성큼 다가와 엄마의 어깨를 툭~ 약간 세게 밀쳐본다.
“불렀잖아, 못 들었어?”
“어..? 불렀..니?”
“두번이나 크게 불렀다고. 뭐야. 넋 나간 사람처럼.. 무슨 생각해?”
“아니야... 아무 것도”
“하하~ 오늘 아침에 왔어~ 아님 언제 온거야 엄마?
어제 갔다가 오늘 일찍 올거면 되게 부지런한데 역시~~”
영애는 말없이 큰 아들의 기뻐하는 얼굴을 보며 웃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렇게 휴일날, 엄마와 같이 얼굴을 보며
함께 보내는 시간을 즐거워하고 엄마를 좋아해주는 아들이 있는데..
역시 아침이 오기 전 이른 시간-
정확히 말하면 새벽녘에, 무리해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현준에 관한 기억은 잠시 잊기로 하자.
그 생각이라면 여러 가지 서글픈 상념들과 함께..
어제 빠르게 달려오는 차 안에서 혼자 잔뜩 하고 또 했었으니까.
지금은 아무 잡념도 말고
오직 곁에 붙어 있는 소중한 아들 둘에게만 충실하자고 생각한다.
혹시 몰라 평소와 다르게 오늘은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뒀다.
오기로 마구 연락을 하다, 전화를 안받는다고..
갑작스럽게 불쑥~
이른 점심부터 집에 들이닥치지는 않겠지?
혹은 엉뚱한 곳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탁자 위에 올려둔 돈은 신사임당 두분이면.. 교통비 하기엔 적었을까.
“아,줌,마!”
“....... 어? 아아?”
“정신차려! 잠을 덜잤나봐~? 에비~ 에비비비~ 여기를 봐용?”
“꺄앗... 저리 손 치워.. 어디 버릇없게~~ 야아..”
“하하하. 엄마 이제 보니까 운동 안해서 조금 뱃살이 쪘네”
“무, 무슨 소리얏...
최근에 잠깐 쉰 것 뿐이지 빼먹지 않고 운동 다니고 그랬다구”
“피식~ 그래~?”
“정, 정말이얏...
그보다 너 엄마 뱃살 만지는 손.. 안 빼~?”
“가만 있어봐~ 몽실 몽실 포근해서 뱃살 통통하고 좋은데~”
“얏!”
콩~~!
아까전에 정신차리라며 살짝 머리를 쥐어박힌 것보다
이번엔 제대로 힘주어 알밤을 때린 영애의 일격에...
지우는 정말로 아파서 머리를 감싸 안는다.
“우와, 진짜.. 사람도 아니다, 진짜, 힘껏 때렸어, 지금?”
“그래~ 때렸다, 어~ 어쩔래!”
“우띠...”
“쿡쿡쿡, 후후후, 많이 아파~ 우리 또야지?”
“이것 봐. 우와~ 아줌마가 무슨 힘이 그렇게 세냐.
이마 한가운데 빨갛게 부어오른거 안보여?”
“어머, 그러네? 호호”
“어머 그러네라니... 사람을 패놓고..”
여전히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큰 아들을 돼지라고 놀리는 엄마.
그런 엄마의 뱃살을 쿡~ 쿡~ 슬쩍 슬쩍 꼬집으며
하지 말라고 말리는 엄마를 장난치듯 괴롭히는 아들이다.
영애는 지우와 웃고 즐기며 그의 짖궂은 괴롭힘을 피해 도망친다.
완력으로 겨루면 큰 아들에게 힘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 그녀.
장난으로 재미삼아 몇 번 더 지우의 뱃살을 눌러도 보고,
아들의 새하얀 얼굴을 살짝 꼬집어보기도 한다.
그러자 “아아아-! 아파, 아프다곳...”
울먹이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지우의 반응에 깜짝 놀라는 영애.
맞아...
얼굴이 아직 얼마전 다친 일로 상처 입은 그대로라는 걸 잊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얼른 가까이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그녀.
“괜찮니..? 얼굴.. 내가 너무 심하게 건드린 거 아니냐..”
“아파, 우씨...
여기 지난번에 한 대 맞아서 쫌 파랗게 멍든 자린데 거길 또 누르면 어떠케..”
“아아~ 미안해.. 진짜 미안해, 아들아.
이 근처가 그때 다쳐서 멍든 자리야?
........
아니 잠깐, 너 뭐라고 했어 지금, 맞아서 멍든 자리..?”
“어...? 아, 그게 말이지.. 아니!”
“너어... 똑똑히 말해?...
전에는 우연히 수경이 사고날 뻔한거 구해주다가 긁혔다고..”
“그게, 그게.. 일단 아들 말을 들어봐 끝까지..”
“분명히 들었어, 나는.. 맞아서 멍들었다는 말은 쉽게 잊혀지지 않거든~”
“아하하하.. 아냐.. 농담도 엄마는~”
말한번 잘못 내뱉었다가, 찡긋 노려보는 엄마의 시선을 버틸 길이 없게 생겼다.
여차하면 방으로 도망가야지.. 하고 식은 땀을 흘리는 지우.
영애는 아들의 쩔쩔 매는 얼굴을 그렇게 뚫어져라~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곧, 생긋~ 눈을 밝게 뜨며 웃어보인다.
“호호, 긴장하기는. 엄마 화난거 아니야, 바보”
“......... 그래.. 하하”
“일단 배고프니까 이리와 얼른 밥먹어”
“아 맞아.. 너무 늦었는데 밥먹어야지..”
“그래~ 오후 4시 반이 돼서 아침 먹는 돼지 아들~”
“크읏...”
엄마의 장난치는 놀림에 민망하게 웃으며 식탁에 앉는다.
동생 선우는 일요일인데 또 학원 갔나~?
조용한 동생의 방 쪽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우물 우물- 음... 맛있군.
밥을 먹는 사이에도 지우는 한가지 생각에 잠겨있다.
엄마에게 말을 하려다가, 중간에 여러번 멈칫거리고 말았던 그 이야기..
어떻게 하기는 해야 하겠는데..
밥을 먹고 난 후 천천히 이야기해보자는 영애에게
어떤 식으로든 가장 조그맣게 이야기를 축소시켜서 말을 해줘야할까,
그 생각에 머릿속이 온통 복잡하다.
-
현준과 주원은 몰래 바깥으로 빠져나와, 한식집에서 배를 채운 뒤였다.
실컷 쳐먹더니 이제는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을 찾는 주원.
숙소 근처로 되돌아온 두 사람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엄살을 부리는 주원 덕분에, 현준은 피식 웃으며 화장실을 찾는다.
어슬렁 어슬렁 거닐다 보니..
본적 없는 민박집이 즐비한 외딴 장소에 와버린 두 사람.
“여긴 어디지? 못 보던 곳인데..
아~ 이거 자전거 갖다 주러 가야하는데 깜깜하게스리..
마! 이게 다 니 똥싸는거 땜시 막 돌아다녀서 그런거 아냐?!”
“아 왜~ 또 때리고 그러셔요.. 머리 나빠지게 자꾸 머리만..”
“l마? 니 머리 반들반들해서 때리기 좋으니 글치~
후딱 똥 때리고 나와! 껌껌해지기 전에 돌아가게”
“알았어요.. 언능 싸고 올게여”
주원은 현준이 자신의 민머리를 찰싹~ 찰싹~ 갈기자 울상이다.
윽!... 눈을 크게 뜨더니, 서둘러 휴지를 챙겨 변소로 향한다.
휴~~ 잠깐 어디 좀 앉자.
시간이 벌써.. 아이고 저녁 7시가 다 되가네.
큼직한 바위 위에 앉아 다리를 뻗는 현준.
어둑해지는데다, 거대한 야자수 나무 아래 앉아 있어서 껌껌하다.
그렇게 주원을 기다리는데.. 어엇?
현준의 눈에 뭔가 수상쩍은 인물들이 들어오는 것이다.
‘뭐지..? 저... 저 자식들...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지만 확실히.. 우리 학교 교복이잖아..?’
현준은 잘못 본것인가 싶어 눈을 비빈다.
틀림없었다. 같은 학교 학생들이다.
이 외딴 장소에 왜?
여기는 유스호스텔에서 거리도 멀고 올 일이 없는 곳인데..
어디 보자~
슬그머니 잔소리를 해줄겸, 같은 신입생이라 생각하고 일어난다.
슬금 슬금 소리나지 않게 미행하는 현준.
들키지 않도록 몸을 숨겨야만 했다.
잘 보니 다섯 명으로 된 일당인데, 그 중의 둘은 몹시 지쳐서 힘겹게 따라 붙는 듯..
뒤의 둘 중에 덩치가 좋은 남자는 다른 한명을 업고 있었다.
앞에서 멀쩡하게 걷고 있는 그림자도
다소 자그만 체구의 또 한 사람을 들쳐 업고 앞장선다.
‘내가 다행이 매의 눈이라서 말이지, 어두워도 잘 본다고..
업힌 두 사람은 기절이라도 한 것 같은데..’
자신의 시력에 뿌듯해하며, 현준은 의문의 다섯 사람을 눈으로 쫓는다.
지친 셋을 이끌고 또 한사람을 업고 있는 녀석은 힘이 남아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뒤의 둘 중에 사람을 업은 쪽은..
앞선 리더와 달리 거의 쓰러질 지경으로 힘들어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로 들어가려다 말고,
리더로 보이는 놈이 자꾸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살핀다.
뒤의 둘도 주위를 보며 사람을 재차 확인한다.
‘어??........
잠깐 저, 저거.. 업혀 있는 애.. 수경이랑 지우 아냐?!!..’
이윽고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
준기는 기절한 수경을 들쳐 업고 눈 앞의 민박집으로 쏙~ 들어간다.
그 뒤를 따라 몰골이 말이 아닌..
그의 충실한 후배 석훈과 재윤도 선배의 뒤를 따랐다.
무... 어떻게.. 된거야..??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성격인 현준도,
방금 눈으로 본 것이 믿어지지 않아 망연자실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다시 바위 위에 주저앉는다.
틀림없어, 분명히 수경과 지우였어.
어째서 지우놈까지 기절해서 저딴 새끼들과..?
현준은 식은 땀이 나며 머리가 지끈거린다.
그래도 머뭇거릴 틈이 없다며,
후두둑~! 빠르게 목을 회전하며 뼈를 뚜둑거린다.
저 자식들... 꼴에 선배라고..
기절한 후배를 쉬게 한다며 잠시 데리고 갔을 리가 없어..
저건 보나마나 수경과 지우를 납치해서 허튼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럴만한게..
학생회장과 임원들의 행실이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음 알음 주변에서 들은 바로 현준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새끼들을 그냥 확 요절을 내야하는데..
아.. 이 귀두 같은 새끼, 이럴 때 꼭 똥을 누러 가서 안 나와?
느긋하게 앉아서 기다리던 현준은 갑자기 주원에게 화가 났다.
이 잡새끼야... 빨리 튀오란 말야.
중얼 중얼 애꿎은 주원을 욕하며 발을 동동 구른다.
“아~~~ 좋아~ 역시 화장실을 나오면 세상이 다르게 보여여 행님? 흐흐~”
“야! 이 미친 넘아! 좋다고 실실 쪼갤 때가 아냐!”
“......?? 왜, 왜 그러세요.. 형님?”
“씨발! 차수경 말이다, 지금.. 이 안으로 들가는 걸 봤다고!”
“...... 무, 무슨 말이여라? 좀 알아듣게..”
“아~ 그 간나 시끼~ 척 알아듣지! 빨랑 텨와”
“아얏, 아, 아파요! 귀는 놓고.. 행님...”
두근 두근- 긴장과 흥분으로 떨리는 심장을 억누르며
현준은 둔감한 주원의 멱살을 확~ 잡아 이끌고
그의 귀에 입을 착, 갖다 대고 조곤 조곤... 어떤 상황인지를 빠르게 말해주었다.
그러자 주원도 이해는 안가지만~
금방 정색하는 얼굴로 변하며, 현준을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민박집은 다소 허름해 보이는 건물이다.
이 여름철 성수기에도 다른 곳은 관광객들로 시끄러운데..
건물도 쥐죽은 듯 고요하고, 단 두 사람만이 작은 마당에 앉아 있었다.
1층 바닥에 제법 그럴듯하게 깔아놓은 갈색 대리석 바닥이 무색해질 정도.
여하튼 투숙객이 그리 많지는 않은 한적한 곳이다.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으며, 현준은 아까 들어온 놈들이 그새 보이지 않자..
애꿎은 주원의 민머리를 다시 찰싹 갈기며 조바심을 냈다.
‘니가 늦어서 놓치지 않았냐고’ 닦달하며.
“어쩌죠.. 스벌.. 클났네.. 여기 3층이나 되는데요.. 어떤 방에 들갔는지 이거..”
“조용히 해 임마. 나도 머리 굴리고 있잖아..
일단 1층으로 내려가보자. 카운터에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니”
“아! 누가 있는거 같네요”
- (하) -
다행이 현준과 주원의 바람대로, 카운터에는 사람 좋은 인상의 여자가 있었다.
넉넉한 얼굴의 주인 아주머니.
현준은 주원이 쓸데없는 소릴 못하도록 입을 막고..
혹시 이런 이런 스탈의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못봤냐며 정중하게 묻는다.
그러자 주인은 잠시 두 사람의 복장을 경계하듯 바라보았다.
보이기에는 틀림없이 20대 성인들로 보이는 두 건장한 남자가..
수상쩍은 얼굴로 고등학생들의 행방을 물으니,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이다.
현준은 그럴 것을 미리 계산하고..
주원에게 닥치고 있으라 말한 후, 그럴듯한 말발로 주인을 구워 삶고 있었다.
이야기를 찬찬히 듣던 주인은 마침내-
아하,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아아, 어쩐지.. 선생님들 되시는군요. 실례했어요.
그럼 아까전에.. 먼저 올라간 학생들은 본 학교.. 학생분들인가요?”
“아 네. 아주머니. 그렇습니다.
저희도 이 근처에 저희 학교 학생들을 순찰하다가..
지금 우연히 이쪽으로 들어오길래 보고 따라온 것이거든요”
현준이 절대 암말 말고 있으라 하였기에.. 주원은 눈만 멀뚱거리는 중.
한편으로는 ‘어디서 이런 말빨이? 우리 행님요...’
하는 얼굴로 감탄하듯이 현준의 얼굴만 곁눈질하고 있었다.
너무나 태연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는 그의 말솜씨.
“그래요.. 아뇨, 이해가 되네요 저도..
육지에 가서 객지생활하는 저희 아이들 생각도 나고, 아이고 주책이야.
오호호호~ 죄송합니다.. 그래요..
어른되신 입장에서 어린 학생들을 엇나가지 않도록 지도하시는 마음 이해하지요..”
“아이고 송구스럽습니다. 헤헤헤..
그래서 내일이면 저희 학교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잠깐 아이들과 이야길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말이죠..”
“알고 있어요, 저는 선생님들께서 하시는 말씀을 믿고요.
아이들이 무대뽀로 핸드폰도 꺼놓고 연락을 안받는다니,
그것만큼 또 골치아픈 일은 없지요, 오호호호-”
“네, 하하.. 감사합니다.
오늘 꼭 저녀석들한테 공지사항이랄까.. 주의를 시켜야 하거든요”
“호호, 그래요. 아유 참 남자답고 듬직한 두분이네요..
아참, 지금 시간이 별로 없으시지요?
보자~ 저 학생들 들어간 호수가..”
현준은 어디서 이런 발상을 떠올렸는지,
매우 적절한 리액션과 거짓말을 곁들이며 주인 아주머니를 이끌고 있었다.
하기야 뭐..
우리들이 겉보기에는 신분증이니 뭐니 필요없는 액면이니까..
주원도 조금 씁쓸하다는 생각은 든다.
20대 후반 즈음의 두 학교 선생님으로 신분을 위장한 두 사람.
곧 먼저 다쳐 있는 남학생 쪽을 보자며, 지우가 있는 방으로 향한다.
끼이이- 아주머니가 문을 열어준 곳은 1층의 잘 정돈된 방이었다.
그곳의 작은 침상에 지우가 죽은 듯이 잠들어있다.
현준과 주원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지우의 안색을 살핀다.
그리고는 생각해둔 대로.. 아주머니에게 또 뭔가 일러주었다.
지우를 잘 부탁한다며, 이제 다른 학생들을 보러 나온다.
위로 올라가지는 않고, 한가운데 서서
여주인은 손가락으로 나선형 계단 위를 가리키며 설명해주었다.
중앙 통로에서 좌측으로 세 방, 우측으로 세 방이 있는 구조.
각각의 아까 학생들과 다른 일행들은 3층의 여러 방에 골고루 있다는 말.
각방으로 분산 되었기 때문에, 정확히 수경이 있는 방은 알 수 없었다.
그나저나, 뭐?
아까 그 세놈 말고 또 일행들이 따로 있단 말야..
현준은 놀라 발걸음이 주춤한다.
어서 위로 올라가 뒤져보고 싶은 마음에 조급한데,
아주머니는 암것도 모르고 웃으며.. 잠시 아래로 내려가
숙박계 비스무레한 서류만 작성해주면 된다고 부추기는 것이다.
젠장, 아줌마. 아까 알아듣게 다 말했는데..
현준과 주원은 마지못해 다시 안내실로 향했다.
조바심을 내며 두 사람은 드디어 3층으로 올랐다.
어느 방이지? 하나 하나 뒤져보기 전까진 모르는데..
젠장, 더 자세하게 물어 볼 수도 없고.
“형님, 어떤 방인지 알아야죠.. 하나씩 들어가 조질까요?”
“시끄러.. 조용하게 말해 자식아, 들린단 말야”
“예.. 죄송해요.. 그.. 아새끼들이 여기 3층을 다 쓴다고 그랬는데..”
“으음, 분명히 여섯 방에 다 들어갔다 그랬지..?”
“네 아마도.. 저는 저 끝방부터 들어가볼게요, 행님”
“얌마. 좀 기다려. 아직 들어가지마”
“예.. 왜 그래요?”
“아으 참.. 좀 침착하게 있어봐. 급할 것 없어.
잠깐만 있어 새꺄. 어떻게 할지 통밥 좀 굴려보게..”
한편 그 시간.
현준과 주원이 자신들을 구하러 온 줄은 꿈에도 모르고..
수경은 컴컴한 방 한구석에 기절해서 잠들어 있었다.
이미 바깥은 어둑해진지 오래라 깜깜하니 보이지 않는다.
찌륵 찌륵~
고요한 정적 속에 가끔 우는 새소리만 들릴 정도.
방이 꽤 넓다.
시설은 그리 세련되지 않았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방이다.
그런데 하필 수경이 잠든 방은-
창고 비슷하게 임원단 학생들이 가져온 짐들로 가득 채워둔 방이었다.
대부분은 학생들이 여가에 필요한 물품들로 채워졌지만
무슨 용도인지 궁금해보이는 물건들도 눈에 띈다.
방의 불은 꺼져 있어 더 어두워 보이고
아무 기척이 없는 조용한 분위기에, 한 그림자만 홀로 방에 누워 있다.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기절한 채..
수경은 팔과 다리가 빨간 색의 단단한 로프로 묶인 채였다.
척 보기에도 힘 좋아보이는 노끈.
이래서야 수경이 결박을 풀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워보인다.
더구나 준기 일당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그녀의 눈에 검은 안대와.. 입에도 꽁꽁 헝겊으로 재갈을 물려 놓았다.
쥐죽은 듯이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기절해서 방에 누인지 얼마 되지 않아, 희미하게 정신이 든 수경.
어? 뭐야..??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보시다시피... 온몸을 결박당해서 꼼짝할 수도 없는 것이다.
‘...... 뭐야, 뭐지??! 아예 움직일 수도 없게...
아야야.. 아파.. 손목이랑 팔이 너무 세게 죄여서..
지우는, 지우는.. 아까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을까? 아아.. 지우야...’
영문을 알 수 없는 수경.
어떻게든 움직여보려고 몸을 바둥거리지만 꿈쩍도 않는다.
곧 체념을 한 후 그저 한숨만 내쉴 뿐.
가쁜 숨을 내쉬기에도 입을 틀어막아 놓아 힘겨웠다.
잠깐, 그런데?
낑낑거리며 몸을 움직이려다 힘들어 눕고 나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방 안에, 자신 외 누군가 있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 누구야....??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틀림없이 있다.
게다가 수경이 ‘읍! 읍..’ 거리며 몸을 꿈틀거리자..
천천히.. 소리를 내지 않으며 몸을 쓸 듯 그녀에게 다가오는게 아닌가.
“흐흐흐... 정신을 차렸구나.. 운이 좋았어.
니가 깨기 직전에 나도 막 여기 들어왔거든.. 흐흐..
좀 아쉽긴 하네.. 나중에 깨면 좀 많이 만져보는건데 으흐흐”
“읍... 흐흡... 으으으읍... 으으으....”
“거의 다 죽어가는 목소린데? 크크.. 괜찮아~
너 많이 안다쳤더라고.. 상처도 별로 없었고.. 자, 이리와”
“으읍... 흡... 으으...... 흐흡!...”
“아아~ 발버둥치지 말고 조용히 있어~ 들리면 나도 곤란하거든?”
수경은 대단한 공포에 사로잡혔다.
예전에 연예 기획사의 몹쓸 사장에게 끌려가서 잠들어 있던 그때보다-
눈 앞도 보이지 않고, 몸이 결박되어 있는 지금이 훨씬 무서웠다.
몸이 부자유스럽고 귀만 열려 있으니...
어떤 짓을 당해도 저항할 수 없다는 두려움은 엄청난 것이었다.
‘...... 누구지, 대체.. 아까 낮에??... 아니야..
백준기도 아니고.. 석훈이라는 마른 선배도 아니고.. 재윤선배인가..
기분.. 나빠.. 나, 이제부터.. 이 사람한테.. 강간당하는 거야..?
엄마! 살려줘... 지우야........’
급작스럽게 몰려오는 자괴감과 함께 서글픈 마음에
수경은 그가 몸을 가볍게 어루만지기만 하는데도, 눈물이 왈칵 터졌다.
한번 울음이 나오자..
그때부터는 서러움을 달랠길 없어 폭포수처럼 눈물이 터진다.
의문의 남자는 갑자기 수경이 울음을 터뜨리자,
그녀의 곧게 뻗은 허벅지와 다리를 만지다가 놀란다.
“이, 이게 왜.. 평소에 하던 짓 답지 않게 질질 짜고 지랄이야..
들리면 좆되게.. 시발.. 야.. 조용히 해 이 아”
“흑, 흐흑.. 우흡.... 흐흐흑....”
“........ 이.. 이 미친.. 년아. 울지 말라고.. 아우~...”
조용하게 윽박지르는 남자도 무척 당황한 기색이다.
바깥에 들리면 이 남자로서도 난감한 모양인데..
수경은 그가 가슴팍 부분의 로프를 꽈악! 움켜 쥐며 협박하자-
무서워서 ‘끄윽- 끄윽-’ 울던 것을 순간 멈추었다.
일부러 약간 음산한 톤으로 목소리를 까는 것 같았다.
남자는 수경이 고분고분 말을 듣자, 다소 안도하는 눈치.
수경의 땀에 젖어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매만져주며
애완동물 다스리듯 부드럽게 머리를 쓸어넘겨준다.
그리고 코를 바짝 대어 수경의 체취를 만끽하는데...
수경은 그 느낌도 무척 불쾌했다.
‘누구지..? 이 사람... 우리 학생 맞나..?
목소리가 들을수록.. 준기선배, 석훈선배는 확실히 아니고..
재윤선배랑도 목소리가 달라..
일부러 좀 오버하는 느낌도 들고.. 내가 모르는 사람인가..’
그렇게 추측에 빠져있는 사이,
남자가 갑자기.. 혓바닥으로..
땀으로 약간 젖어 있는 수경의 오른 뺨을 핥기 시작했다.
........!....... 엄마야!
수경은 순간, 뭔가 뱀 같은 것이 살갗을 스치는 듯한 불쾌함에 몸서리친다.
스멀 스멀... 나지막히 기어오르는 기색으로..
컴컴한 어둠 속에서.. 헐벗은 그녀의 온 몸을 겁탈할 생각으로
조용히, 서서히 끈적거리는 몸짓으로 다가오는 남자.
상상하면 할수록 공포감이 극대화되는 기분이었다.
그것을 익히 알기에, 수경은 앞은 보이지 않지만 눈을 부릅 뜬다.
그리고 생각한다.
‘전혀 보이진 않지만 신경 써서 머릴 흔들면 안대가 풀릴지도 몰라.
그리고 귀에 집중해서 쫑긋하면 목소리도.. 잘하면 구별이 갈 수도 있어..’
나름대로 머리를 빠르게 굴리며, 수경은 그의 더듬는 접촉에도 애써 침착을 유지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최대한 평정을 다스리며
침착하게 이 두려운 순간을 이겨내보자, 스스로 마음 먹는다.
츠...습... 츠릅... 쨔압...
기분 나쁜 흡착음을 내며, 남자는 정신 없이- 수경의 뺨을 핥았다.
수경은 안 그래도 흘린 땀으로 온 몸이 젖어 있어서
뭐만 했다하면 축축한 기분에 어서 씻고 싶어 죽을 지경인데..
‘눈치도 없는 놈이 얼굴은 왜 핥고 지랄인지..’ 이 생각에 화도 난다.
남자는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해서 미친 듯이, 수경의 하얀 얼굴을 구석 구석...
매우 집요하게.. 끈적거리는 혀와 입술을 이용해서..
놓치지 않고 그 잘 빚어진.. 조각같은 얼굴을 핥고 애무하고 있었다.
맨 처음 살갗을 훔치며 게걸스럽게..
끈적거리는 혀로, 질척거리며 뺨과 코, 그리고 눈 주위를 핥을 때는
정말 무슨 구더기나 지네가 몸을 훑는 것 같아 미쳐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몹쓸 짓도 너무 집요하다보니...
수경은 금방 그 짓거리에 익숙해지는 자신에게, 도리어 놀란다.
‘웁... 으흡....’거리며 못 움직이는 팔 다리로 격한 저항을 하던 수경.
얼마 안되서 무의미한 저항을 하지 않자,
남자도 그런 수경을 보며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저항한다고 의미가 있냐..라고 중얼거리며.
이어서 수경이 끝내 바라지 않던 한 가운데..
오롯이 이쁘게 솟아 있는 그녀의 작은 입술을 덮친다.
우흡!......
저도 모르게 수경은 체념한 와중에도, 작은 비명을 삼켰다.
그리고 몸서리치며...
두 눈을 꾸욱, 감아버린채, 통한의 뜨거운 눈물을 쏟는다.
......... 싫어....
하지마.. 키스는 제발...
힘없는 외마디 비명을 속으로 되풀이하며,
수경은 게슴츠레한 눈꺼풀을 츠르르.. 떨면서 사내의 거친 입맞춤을 받아들인다.
혐오감이 짙다보니, 자연히 팔과 다리가 같이 반응하고 있었다.
꽁꽁- 전신이 붉은 로프로 묶인 와중에도-
어디서 그런 체력이 남아 있는지 수경은 ‘부들... 부들...’
있는 힘껏 무의미한 저항으로 진동하며, 남자의 입술을 거부했다.
그렇게라도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는 아랑곳 않고, 수경의 붉은 입술과 혀를 거칠게 빨아들인다.
쮸웁~~ 쮸츱... 츠릅...
키스라기보다는 그냥 입술과 입 안을 맛있게 삼키고 쭉쭉 빤다고 할 정도로
남자는 바라고 바라던 수경과의 키스를..
목마른 낙타가 오아시스를 정신없이 퍼마시듯, 쉬지 않고 탐했다.
쭙... 쭈즙즈즙....
수경은 몸을 꿈틀- 꿈틀- 움직이며 그에게 입술을 맡겼고
끈끈한 침이 “주르륵......” 그의 더러운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당연히 그 침은, 수경의 입 안으로 흘려 넣는 것이다.
끈적거리는 타액이 번들거리며 수경의 붉은 속살을 파고든다.
어쩔 수 없이 수경은 헛구역질을 하며,
남자가 내보내는 침 덩어리를 “우윽!....... 우흡........ 흡.....”
끊임없이 격한 신음을 내지르며 받아 들이고 있었다.
그럴수록 남자는 더 기분 좋게 웃으며, 수경의 저항을 즐긴다.
수경의 입 안 빨간 점막과 혀에-
덕지 덕지 들러붙어 이미 하나로 섞여버린 사내의 타액 덩어리.
누구의 침인지 어느새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수경과 사내는 서로의 붉은 점막과 혀를 뒤섞고 있었다.
끈끈하게 붙어먹는 혀와 혀의 집요한 접촉.
그 은밀하고 질척 질척거리는 혀의 끈적임이..
수경의 혀와 남자의 혀를 잔뜩 에워 싸며-
매우 에로틱하고 음란한 딥키스를 연출하고 있었다.
수경은 자기도 모르게 정신이 조금씩 혼미해진다.
기분은 여전히 불쾌하고 너무나 싫은데...
이 남자가 혀를 사용하는 스킬이 매우 능숙했다.
꼼짝 못하고 그의 혀를 받아들이고 빨아들이는 수경.
그 집요하게 혀와 점막을 ‘깔짝 깔짝~~’ 소리내고 파고드는 혀에..
옅어지는 의식속에서..
조금씩이지만 그녀도 ‘키스.. 좋아..’ 무의식에 빠져들고 있었다.
쉬지 않고 그의 미끌거리는 혀와 혀를 스치며..
꿈틀.. 꿈틀.. 거리는 구강 내 속살의 뜨거운 접촉을 맛보고 또 맛본다.
어쩌면 이렇게 음란하고 저질스럽게 입을...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낯선 사내의 농후한 딥키스는, 남친 지우와 나누는 것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지우는 그래도 거칠지만 신사적으로 키스해주고
입을 맞출 때마다 상큼한 향기도 은근하게 입 안에서 우러나와서 기분이 참 좋은데..
그런데 이 남자는 담배 향이 진하게 나서 싫다.
담배를 피고 안피고가 이렇게 차이가 나나...
수경은 오직 그 생각을 하며, 더럽고 냄새나는 그의 혀를 받아들였다.
싫다가도 이상하게 좋고, 생리적으로 거부하면서도 또 좋아지는...
사내의 음산한 혀와 입술을 받아들이는 수경의 머릿속.
거기에는 또한 남자의 질척거리는 혀가-
남친 지우보다도 더 뜨겁고.. 수경의 혀를 매우 집요하게 빨아 삼키는 것도 한 몫했다.
얼마나 그녀의 혀를 뽑아 먹을 정도로 삼켜대는지..
지우도 거칠 때는 정말 무식하게 키스하지만,
이 남자에 비하면 아주 양반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가 흡입력 있게 ‘쫘악- 쫙!’ 그녀의 혀를 당길 때마다..
수경은 치근이 아프고 얼얼할 지경이다.
‘고만 좀 빨아대... 이 집요한 자식아..’
그렇게 생각하며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혀를 빨리는 수경.
여전히 눈가에는 찔끔 찔끔- 자잘한 눈물이 흐르고..
주룩 주르륵 흘러내린 눈물은 그녀의 온 얼굴을 적신다.
그리고 남자가 내키는대로 수경의 얼굴을 핥고 음미한 뒤-
그녀의 지저분해진 얼굴을 그나마- 고운 눈물이 닦아내고 있었다.
“우흡...... 크흐흡.... 으으웁.....”
“흐흐흐흐... 혓바닥도 참 맛있네 차수경..
달고 맛있는 거 뭐 먹고 왔나. 쫀득거리는 캬라멜 맛도 나고?”
“...........흑.....”
“흐흐.. 이제 어디 다른걸 먹어볼까~”
실컷 혀와 입속을 지저분한 혀로 지분거리고 만족한 얼굴.
남자는 이제 수경의 상징이나 다름 없는..
뭇 남학생들이 무척이나 음란하게 만지고 짓누르고 싶어하는-
탐스러운 두 유방을 거칠게 주무르고 있었다.
뭉실~ 뭉실~~ 팽팽하게 차오르는 탄력이 좋다.
남자의 우악스러운 손이 수경의 유방을 누르는 대로-
물이 오를대로 오른 두 개의 복숭아가 근사하게 짓눌린다.
손과 손가락 사이로 삐져 나오는 젖가슴의 살들..
손에 다 잡히지도 않는.. 풍만하고 넘쳐나는 유방.
남자는 그 행복한 살 속에 손을 파묻으며, 성취감에 기분 좋아 몸을 부르르 떤다.
수경의 젖은 여간해서 겁에 질려 반응하지 않고 그대로인데-
무리해서 흥분을 시킬 생각인지,
남자는 선명한 분홍빛의 상큼한 두 젖꼭지를..
꽈악~ 힘있게 양손의 두 손가락 끝으로 각각을 잡는다.
꼬집는 기분을 즐기며 세게.. 계속해서..
수경이 곧 너무 아파서 “으흐흐흑.....”
격한 통증의 흐느낌을 느낄 때까지, 남자는 거칠게 그녀의 유두를 뒤튼다.
수경은 상반신을 배배 꼬면서
견디고 견디다 못해 몸이 반응하는 것이 또 몸서리치게 기분 나빴다.
지우가 조금 만져주기만 해도 ‘봉긋’ 솟아버리는 그녀의 젖꼭지.
색감이 확연히 아름답게 반짝이는..
깜찍한 분홍빛깔의 귀여운 유두가-
지금은 남자의 거친 두 손가락 사이에 짓눌려,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신나서..
수경의 유두를 터지도록 압착하고 짓누른다.
아프지만 비명을 지를 수 조차 없는 수경.
‘끄윽... 흐으읍.....’
비명인지, 쾌감을 느끼고 있는 야릇함인지..
알 수 없는 애통한 소리만 내며 몸이 들뜨고 있다.
남자는 수경의 풍만한 젖가슴에 혀를 갖다 댄다.
‘어??? 뭐...야?.....’
그런데 수경은 남자의 차가운 침이 젖꼭지를 스치자마자-
엉뚱하게도, 그 때까지 자신이 상체에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뭐야..... 아까까지 입고 있던 수영복은...
분명히, 하체는 천만다행으로 빨간 비키니를 입고 있는데..
위에는 남자가 자유롭게 만질수 있도록 이미 벗겨지고 없는 것이다.
그런 황당함을 느낄 겨를도 잠시..
수경은 조금 전까지 느낀 것과 다르게-
한 차원 높은 격렬한 쾌감이 전신을 “찌릿-! 찌리릿-!”
휘감아오는 것을 느끼고.. 몸을 세게 떨어야 했다.
남자가 이빨 끝으로 젖꼭지를 ‘꾸욱~ 꾸욱~’ 자꾸 깨물다가
쮸웁~ 쮸웁~~ 진공 청소기로 빨아들이듯...
끊임없이, 쉬지않고 그녀의 유두를 자극하며 거칠게 삼켰기 때문이다.
그 단순하게 물고 빠는 행위의 반복이..
이렇게 큰 쾌락을 안겨다 줄줄은 예상치 못했다.
수경은 입가에 저도 모르게 ‘흐흐흑...’ 조금씩 침을 흘린다.
남친 지우가 정성껏 유방과 유두를 빨아줄 때는..
이 정도로 자극적이고, 미치도록 느끼지 않았는데..?
남자가 그녀의 예쁜 젖가슴이 다치든 말든, 마구 지 내키는대로
혀와 이빨을 이용해서 게걸스럽게 삼켜대는데...
그 기분이 정말 짜릿 짜릿하고... 황홀한 것이었다.
‘으으윽.... 뭐야..... 싫...어... 이렇게 추잡스럽게... 깨물고..
가슴 너무 쳐지는데.. 그렇게.. 당기지마... 흐흑... 지우야....’
들리지 않는 흐느낌을 남몰래 속삭이며,
안타깝기도 하고 동시에 온 몸이 뜨거워지는 아찔함을 느낀다.
윗몸이 느끼니 아래도 느끼는 것일까.
두 개의 발딱 선 젖꼭지로부터 자극을 받자-
“찌리리릿...” 강한 전류를 타고 온 몸으로 쾌감이 번진다.
자연히 그녀의 쭉 뻗은 하얀 다리는 덜덜.. 떨리는 진동을 반복했고
수경의 가랑이 사이 은밀한 숲속에서도,
바로 조금 전부터 촉촉하게 무언가가 희미하게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수경은 이미 자신의 갈라진 계곡 사이에서,
몸에 익숙한 뜨듯 미지근한 무엇이 흘러내림을 인지하고 있었다.
지우가 기분 좋게 며칠 전 혀로 핥아주고.. 빨아준 그곳...
그 한 사람만의 소중했던 공간이..
서서히 다른 남자의 집요한 자극으로 활짝 문을 여는 느낌이었다.
두툼하게 살이올라 먹음직스러운 수경의 허벅지 안쪽.
지우가 토실 토실 살쪘다고 놀리곤 하지만...
그런 장난에 수경이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을 만큼,
그녀의 매우 부드럽고 포근한 안쪽 살의 감촉은 기분 좋았다.
남자의 뜨거운 손은 수경의 젖을 터질세라 거칠게 막 주무르더니-
어느새 그녀의 다소 살이 붙은 허리와 둔덕을 사납게 훑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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