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치보기를 계속하다가 드디어 용기를 냅니다.
그 대신, 글의 방향이나 내용을 대폭 바꿔서 엄청 건전(?)한 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 저도 요새는 연말이라서 엄청 바쁘기도 하고 .. 쫌 많이 힘드는 상황입니다.
저처럼 하루하루를 어렵게 미친듯이 살아가시는 모든 분들께 힘과 용기를 가지시라는 의미에서
저는 이런 허무맹랑한 글도 써봅니다.
** 제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서, 이 글에는 미성년자와의 성행위, 강간이나 가정을 파괴하는 행위,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은 전혀 포함되어있지 않습니다.
* * * * * * * * * *
106. 회장 김태현과 비타민 수면제
일단 피하고 보자는 생각에서 나는 벌떡 일어나서 침대에서 내려왔다. 지혜가 버러럭 한다.
"아아. 뭔데? 오빠 왜 나가?"
"조금 있으면 엄마 오시거든요."
"엄마? 이 시간에 엄마가 왜?"
"내가 어떻게 알아? 혹시 파티 준비 때문이 아닐까?"
"엄마 온다고 오빠가 왜 잠을 안자고 나가?"
"대낮에 내가 너랑 침대에 엉켜있으면, 엄마가 볼 때 그게 뭐냐?"
"아오. 진짜 짜증나네. 엄마한테 전화해서 오지 말라고 할꺼다."
"그러기만 해. 너 이 방에서 추방이다."
지혜는 포기한 듯이 투덜거리며 나를 따라서 거실로 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아이린이 온다고 거짓말을 해버린 것이다. 나는 아이린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렇지 않으면 지혜가 자기 방으로 내려갔으면 좋겠다. 지금 보니까 지혜는 옷도 갈아입지도 않고, 교복 차림 그대로이다.
나는 주방에 있는 식탁에 앉아서 커피 메이커에 남아있는 커피를 머그 잔에 따라서 마셨다. 가을 날 한낮의 햇살이 창으로 들어온다. 아직은 따뜻하고 평화롭다.
지혜가 식탁으로 와서 창가에 앉는다. 하얀 교복 블라우스에 아이보리색 교복 상의가 지혜의 몸을 감싸고 있다. 뽀오얀 얼굴은 불만스럽게 뾰로통 하지만 나무 귀엽다.
"오빠. 와인 한 잔 마시면 안돼?"
"대낮에? 낮술을 하겠다고? 그럼 위 아래도 몰라본대."
"일부러 그러려고 그러는데. 히히."
"그러지 말고, 이따가 파티할 때 마셔."
"지금 마시고 한숨 푹 자려고."
"잠팅이니? 학교에서 잤다며 또 자?"
"딱히 할 일이 없으니까."
"경식이 지금 가게에서 게임한대. 차라리 너도 가게에 가봐."
"그럴까?"
지혜가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진짜 어이없게도 지혜가 내 말에 단 한마디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혜가 갔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너무 고맙다. 가끔씩 지혜는 저렇게 착하다. 그런데 지혜가 나가고, 나 혼자 앉아 있으려니까, 방 안이 너무 휑하고, 너무 허전하고 또 서운하다. 이것이 외로움일까?
그런데 송실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은혜가 패션쇼를 열겠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금요일 임시 주주총회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1부에서 패션쇼를 열자는 것이다. 옷이야 이미 다 만들어져 있는 것이고, 모델도 자기들이 직접 한다. 그들은 이미 경험도 풍부하다. 무대 장치도 이미 되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따로 준비할 것은 별로 없다. 무대 앞으로 테이블을 배치하고, 간단한 음료수와 케익만 준비하면 된다는 것이다.
"김비서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패션쇼가 임시 주총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바로 그것을 노리는 것입니다."
"그럼 임비서나 사모님 생각은 어떤지 알아보셨어요?"
"그 전에 미리 김비서님 생각부터 알고 싶어서요."
"사모님께서 별 말씀 없으시면 하는 것으로 합시다.
시간도 그렇게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은데."
"나중에 구전무님께도 미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혹시 기자들이 관심을 보이면 같이 초대해도 되겠지요?"
"예."
나는 통화를 끝내고 계속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혼자라는 사실이 정말 싫다. 나도 서서히 망가져 가는 것 같다. 지혜는 내 이성의 끈을 잡고 뒤흔들고, 나는 그것을 감당하는데에 서서히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데 아이린이 들어온다. 얼마나 반가운지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티셔츠와 청치마 차림으로 들어오는데도 진짜 여신의 등장이다. 그녀의 환한 얼굴에 있는 밝은 표정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가라앉는다. 내 어깨에 그녀의 손길을 느낀다. 그녀는 나에게 백허그를 한다. 내 등에서 아이린의 가슴이 뭉클한다. 나도 몸을 뒤로 약간 버팅기면서 그 탄력을 느낀다. 아이린이 얼굴을 내 어깨에 얹고 말한다.
"하아. .. 자기 안잤어?"
"잠이 안와서. .."
나는 지혜 때문이라고 말이 나오려는 것을 꾸욱 참고 대충 얼버무렸다. 그런데 아이린이 하는 말이 내가 안자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것처럼 들린다.
"미진이가 장보러 온다고 했는데 아직 안오네."
"파티 준비 때문에?"
"그것도 그렇고, 냉장고도 전부 텅텅 비어있어요."
"벌써요?"
"애들이 시험 공부 한다고 어찌나 먹어대는지. .."
나는 아이린에게도 커피 한 잔을 따라주고, 우리는 소파로 왔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지혜와의 일을 말해주었다. 등받이에 기대고 앉은 아이린은 고개를 내게서 돌리고 가을 하늘을 바라본다. 푸른 하늘에 한가롭게 떠있는 하얀 구름들이 아이린의 가슴처럼 포근할 것 같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녀가 간간이 내쉬는 한숨은 조용히 떨리고 있다. 그녀의 굳게 닫힌 입술도 살짝 열리면서 파르르 떨린다.
나는 아이린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가볍게 붙였다 떼기를 반복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 뺨을 소리없이 어루만지며 스쳐가고, 그녀의 입이 열린다. 우리는 서로의 입술을 빨아들였다. 머지않아 우리의 혀와 입술이 한데 엉킨다. 내 가슴이 벅차온다.
나는 아이린의 몸을 힘주어 안았다. 그녀가 힘없이 내게 쓰러진다. 아이린은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가라앉힌다. 나는 아이린의 무릎에서부터 허벅지로 해서 엉덩이까지 쓰다듬었다. 아이린도 손을 뻗어내려 텐트를 친 내 남성을 쓰다듬는다.
그런데 아이린의 전화기로 전화가 들어오자 아이린은 조해수의 엄마가 왔다면서 서둘러서 밖으로 나갔다. 나는 또 혼자이다. 이것이 싫다.
나는 침대에 누웠다. 아이린이 윤미진을 기다리는데 왜 나에게 왔을까? 혹시 나에게 장보러 가는 데에 같이 가자고 온 것은 아닐까? 지혜의 이야기를 했는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지혜를 미리 만나고 이리로 온 것은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에 빠져들었다.
한참 자고 있는데 경식이가 나를 깨운다.
"형. 해수 누나 방으로 올라오래요."
"지금 몇시니?"
"다섯시 반 넘었어요."
"벌써?"
"지혜 누나 엄청 열 받았어요."
"왜?"
"누나가 전화를 여러 번 했는데 형이 안받았다고."
"야아. 자는데 어떻게 받아?"
"그러게요."
"전화 안되면 평소에는 올라오더만."
"지금 누나 친구들 와있거든요."
경식이는 먼저 올라가고, 나도 씻고 조해수의 방으로 올라갔다. 조해수와 지혜의 친구들 세 명도 와있다. 애들은 모두 식탁에, 그리고 나는 소파에 앉아있었다. 두 엄마는 애들의 시중을 들어주고, 나중에 소파로 왔다.
우리는 같이 케익을 먹고, 치킨과 피자도 먹었다. 그런데 나는 별로 당기지 않아서 조금만 먹었다. 애들은 시험에 대한 얘기를 한다. 해수는 경식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백점도 맞는다면서 칭찬한다. 그럴 때마다 지혜는 자기 동생 몸에소 손을 치우라고 버럭질이다. 지혜는 와인을 요구했다. 그렇지만 아이린은 캔맥주로 하라면서 와인을 거절했다.
그런데 아이린과 윤미진이 나에게 말했다.
"조금 있으면 서전무 와요."
"해수 아빠도 온다고 했어요."
"애들 시험이 끝났다고 아빠들까지 동원시키세요?"
"이번 시험은 완전히 지각변동이라니까요."
"지혜도 지혜지만, 우리 해수가 이번에 반에서 중간 정도로 올랐대요."
지혜는 애들을 데리고 게임하러 PC방으로 간다며 나갔다. 두 엄마는 정리를 했다. 그리고 서전무가 온다는 연락을 받고 우리는 횟집으로 갔다. 그런데 아이린의 새엄마도 서전무와 같이 왔다. 두 부부가 앉고, 아이린은 내 옆으로 앉았다.
우리는 소주 잔을 들어 건배했다. 그런데 모두들 한마디씩 한다. 아이린만 조용하다.
"우리 지혜가 언젠가는 해낼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는 했거든.
그런데 이렇게 빨리 해낼 줄은 몰랐어. 하하하."
"이번에는 지혜만 그런 것이 아니잖아요. 경식이도 백점이 세개나 나왔대요."
"우리 해수도 그래요.
공부라는 것이 하니까 되는데, 지금까지 왜 안했는지 후회를 엄청 했어."
"이게 다 선생님이 열심히 가르쳐서 된 일이 아니겠어? 하하."
"부끄럽습니다. 제가 하면 얼마나 했겠습니까?
애들이 포기하지 않고, 매일 밤 늦게까지 열심히 노력한 결과입니다."
"얘들이 고등학교 공부를 이렇게 힘들게 하면, 나중에 대학 공부는 어떻게 할까요?"
"그 때도 우리 선생님이랑 해야죠. 하하."
아이린은 지혜에게 전화를 해서 회먹으러 오라고 했다. 지혜, 혜수 경식이가 금방 왔다. 엄마와 아빠들이 자기 자식들을 대견스럽다면서 칭찬한다. 경식이는 아빠 옆으로, 해수도 아빠 옆으로,그리고 지혜는 내 옆에 앉아서 회를 먹는다.
우리의 얘기는 갑자기 한강 유통으로 넘어갔다. 서전무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겨우 전무지만, 김비서는 이제 곧 회장님이니까, 내가 말을 높여야겠네. 하하."
"아휴. .. 무슨 말씀이십니까?"
"크든, 작든, 기업이든, 과외든, 경영이라는 것을 해서 잘 되면 재미도 있어.
한강유통을 잘 키워봐. 그럼 나중에 더 큰 경영을 할 수도 있거든."
"명심하겠습니다. 저에게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기회를 공부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잘 하면, 내가 나중에 가만히 있지 않을거야."
"예?"
"지금 김비서가 우리 애들에게 투자를 확실하게 하잖아.
그러니까 우리도 이제 김비서에게 확실한 투자를 하는거라고.
나나 지혜엄마가 이번에 그 회사 주식을 사들이면서 덤벼든 것은 나중을 위한 일이란 말이야."
"감사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앞으로 많이 도와주십시오."
"지혜아빠. 저 회사에 매출을 50% 증가시키는 것이 이번 연말까지 목표였대요.
그런데 벌써 거의 다 됐대요."
"조사장네는 어때?"
"한강 유통 직영매장 신축과 리모델링 내년 공사가 벌써 여러 개 들어왔어요."
회를 먹을 때에는 소주를 마셔야 한다면서 애들에게도 소주를 한두 잔씩을 마시게 했다. 해수와 경식이는 쓴 맛 때문에 별로라고 하지만, 지혜는 잘 마신다.
밤이 깊어지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전무는 나에게 나중을 기대하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우리는 아쉬워하면서 헤어졌다.
드디어 금요일이다. 출근하자마자 송실장은 주총의 프로그램을 나에게 설명했다. 송실장과 비서실은 아침부터 임시 주주총회를 준비하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오전에 나는 우선 주은혜가 준비한 패션쇼를 체크하여야 했다. 또 주총에서 해야 할 PT 준비도 점검하여야 했다. 이번 PT 파일은 방효은과 이경숙이 미리 만들어놓은 것이다. 간단한 실적 보고와 연말까지 남은 기간 동안에 사업 목표에 관한 내용이다. 방효은은 웹사이트 제작을 끝냈다면서 베타버전을 보여주었다. 이달 말까지 테스트 기간을 갖고 이상 없으면 다음 달 초에 론칭을 하기로 했다.
오후가 되자 주주들이 회의실로 모여들었다. 아이린도 화사한 원피스 차림으로 나타났다. 시간이 되자 송실장과 사모님은 이들을 모두 데리고 디자인 작업실로 올라갔다. 주은혜의 디자인 팀이 여는 패션쇼 때문이다. 그 자리에는 기자들도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라 패션을 책임지고 있는 임영신이 올라가서 인사말을 했다. 최수희는 여직원들이 음료수 서빙을 하는 것을 지휘하고 있다.
무대에서는 모두 여덟명의 모델들이 100 가지 정도의 옷을 선보였다. 레포츠용, 그리고 평상복용의 겉옷도 있다. 그런데 속옷과, 여성용 섹시한 란제리도 있다. 주은혜는 이 옷들이 모두 실용적인 옷들이며, 가격은 파격적으로 홈쇼핑 수준이거나 그 보다 낮게 책정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탄식하며 한숨을 내쉰다. 특히 구전무와 한상무가 나란히 앉아있는데, 두 사람 사이는 예전보다 훨씬 좋은 것 같다. 내 옆에 앉은 구전무가 내게 말했다.
"이 깜찍한 이벤트는 뭐지?"
"회장님 살아계실 때 남기신 실적의 일부분을 보고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번 회장 선거는 만장일치로 가겠네."
"여기가 북한인가요? 그럼 나중에 실적보고 PT는 전무님께서 하시겠습니까?"
"김비서. 선수끼리 왜 이래? 하하."
송실장이 나를 회장실로 불러내렸다.
"김비서님. 준비는 끝났습니다. 오늘 사모님 편에 거의 60% 가 몰릴 것입니다."
"구전무님은 최종 결정을 어떻게 하셨죠?"
"아직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사모님 말씀으로는 안심해도 된다고 합니다."
"그러지 말고 이번에 누나가 회장을 맡으시면 안돼요?"
"말도 안돼. 지금 누나라는 말을 하지 말랬지?"
송실장은 나에게 잠시 쉬라고 하고 나갔다. 한참 후에 송실장이 와서 나를 데리고 회의실로 갔다. 드디어 임시 주주 총회가 시작되고, 진행은 구전무가 맡는다. 약 30명 정도가 앉아있다.
그전무는 제일 먼저 신임 이사를 소개했다. 이 신임 이사는 바로 아이린이다.
"지난 이사회에서 정혜영 여사를 이사로 추대하기로 만장 일치로 결정했습니다."
송실장의 말로는 아이린은 이사회에는 참석하여 표결권을 행사한다. 그녀는 지금 당장 사업 섹션을 맡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임영신을 대신하여 의류 사업을 맡게 될 것 계획이라고 했다.
순서에 따라서 내가 실적보고를 했다. 실적 중에서 PB 상품 개발과 의류 사업은 핵심으로 정하고, 내년 연말까지는 10배 이상으로 키울 것을 약속했다. 듣는 사람들은 항목마다 손뼉을 치며 환호한다. 나는 이러한 계획들이 무모한 내 생각이 아니라 임회장이 구상한 것이었음을 밝혔다.
"이 모든 것은 임용식 회장님께서 생전에 계획하신 일입니다 . ...."
또 나는 방효은을 시켜서 웹사이트의 베타버전을 선보였다. 장내가 술렁거린다.
"이렇게 하면 우리 주식은 장내 거래 가격이 액면가 이상으로 오를 것이 확실합니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투자하신 여러분들께서 구매 가격보다 3배 이상의 이익을 얻으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때 주주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드디어 회장 선거에 들어갔다. 그런데 구전무가 출마를 하지 않는다. 그가 불출마로 결정을 굳힌 것이다. 나는 한상무를 쳐다보았다. 한상무도 출마하지 않는다. 이 두 사람은 사럽을 추진함에 있어서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불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마도 둘이 무슨 밀당을 한 것 같다. 결국은 사모님은 나를 추천했다.
"김태현 비서는 고 임회장님을 측근에서 보좌하던 수행비서로서 우리의 사업을 계속 ..."
나를 두고 찬반토론이 있었으나, 한상무가 워낙 나를 강하게 미는 발언을 했다. 나중에는 구전무와 사모님도 합세했다. 그런데 반대하는 의견은 힘을 얻지 못했고, 이 토론은 오래가지 않고 금방 끝났다.
김태현 후보에 대하여 찬성과 반대를 결정하는 투표가 시작되었다. 비서실의 비서들은 투표용지를 배부했고, 일일이 주주들의 목록을 확인하면서 개표를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송실장이 집계한 개표 결과를 구전무에게 넘겨주었다.
구전무는 개표 결과를 출석 주의 85% 가 찬성표를 던졌고, 이것은 의결정족수인 출석 주의 3분의 2를 넘는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해서 김태현은 한강 유통(주)의 6대 회장에 당선되었다. 정해진 임기는 없고, 특별한 일이나, 이사회에서 불신임안이 나오지 않는 한 계속한다고 한다.
나는 다시 단상에 올라가서 회장직을 성실하게 수행하겠다는 인사를 했다. 이렇게 해서 주주총회가 막을 내렸다.
주총에 이어서 곧바로 나는 회장실에서 인터뷰를 해야 했다. 기자들은 언론 매체나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광고를 전혀 하지 않았는데도 이런 성장이 온 것을 해명해달라고 했다. 처음에 경제인 연합회나 상공회의소에서는 아무런 홍보도 하지 않고 사업을 하려는 우리는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이 예측을 뒤엎은 결과를 낸 비결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입니다. 물론 광고나 홍보는 매체를 통해서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 견해로는 가장 믿을 수 있는 광고 매체는 바로 사람입니다. 한강 유통의 유니폼을 입고 일하시는 우리 직원 한 분 한 분이 가장 확실하게 홍보를 한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비결이라는 것을 나는 이렇게 돌려서 대답했다. 저렴한 가격의 PB 상품과 의류 상품이 대량으로 시판되었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므로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이 인터뷰 내용은 다음 주 월요일 신문에 경제난에 나온다고 한다.
금요일 주총이 끝나고, 저녁에는 각 부서에서 회식을 한다고 들었다. 송실장도 비서실 사람들을 모두 내보냈다. 사모님이 한턱 쏜다고 불렀다고 한다. 임영신도 디자인 팀을 모두 데리고 나갔다.
"아니, 나는 왜 왕따시켜요?"
"이제는 회장님이시니까, 오늘은 이사님들과 같이 가실 것입니다."
이사들이 마련한 저녁식사 자리로 송실장은 나를 데리고 나갔다. 그 자리에는 아이린도 있다. 그녀는 약간 흥분한 것 같다. 우리는 같이 협력해서 일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금요일 밤 나는 끙끙 앓았다. 아이린과 같이 소파에 앉아있는데 내 몸에서 열이 치솟는다. 나는 약통에 있는 체온계를 꺼내와서 스스로 체온을 재니까 39도였다. 아이린이 다시 쟀는데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약통에 있는 해열제를 꺼내서 먹었다.
나는 침대에 눕고, 깜작 놀란 아이린은 임영신 엄마에게 전화했다. 아이린은 얼음팩을 갖다가 내 이마를 식힌다.
"잘 생긴 회장님이랑 와인 한잔 마시려고 했는데 .."
"누나. 미안해. 오늘은 안되겠어."
"감기 몸살이지?"
"우리 애들 시험도 끝났고, 회사 일도 마무리가 돼서 이러나봐요."
"맞아. 너무 긴장했었나봐. 그렇게 소심한 남자였어?"
"이 번 감기 몸살은 애정결핍 때문이야."
"뭐야? 하하하."
연락을 받은 송실장과 임영신이 내 오피스텔로 왔다. 나는 침실에 송실장과 같이 있고, 아이린과 임영신은 거실에 있었다. 송실장 말로는 임시 주주총회 때문에 나 뿐 아니라, 임영신 엄마 남하영 여사도 앓아누웠다고 한다. 송실장이 내 뺨을 만지며 내게 물었다.
"회장님. 열이 상당히 높습니다. 병원으로 가시겠습니까?"
"누나. 여기는 회사 밖이거든."
"아무리 그래도 회장님이신데 .."
"그 회장 소리 때문에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아. 더 아프잖아!"
"회장님. 제발 조용히 하세요."
송실장은 내 침실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다. 그녀는 입을 내 귀에 가가이 대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동생아. 알았으니까 애교 고만부려."
송실장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 뺨에 키스했다. 그 때 조용하던 방안에 갑자기 큰 소리가 울린다.
"오빠! 이건 또 무슨 그림이 이래?"
송실장이 깜짝 놀란다. 나는 재빨리 송실장의 손에 내 체온계를 쥐어주었다.
"지혜 왔어? 너 여기 들어오면 엄청 독한 감기 옮는다."
"엄마한테 전화 받고 오는 길이야. 이 언니는 누구셔?"
"우리 송실장님. 인사드려라."
"얘가 지혜면, 서전무님이랑 정혜영 여사님 따님인가요?"
"맞아요."
지혜는 제법 당당하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서지혜입니다. 그런데 두 분 방금 뭐하셨어요?"
"송실장님이 내 체온 쟀어."
"어디에서?"
"귀."
지혜는 체온계를 힐끗 쳐다보더니, 관심 없다는 듯 내 손을 잡는다. 나도 지혜의 손을 꼬옥 잡았다. 지혜는 나와 송실장을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이제 오빠가 회장님이라며? 그런데 아프면 어떡해?"
"그러게. 이제 다들 나가주세요. 나 잠이 필요해."
"내 약통에 있는 수면제 갖다줄까?"
"그래."
임영신과 송실장은 내일 다시 오겠다고 하고 집으로 갔다. 지혜는 수면제를 가져오겠다며 나갔다. 아이린이 거실에서 내게 들어왔다. 지혜가 수면제 가져온다는 말에 나도 놀랐지만, 아이린이 엄청 당황한 표정이다.
"누나. 지혜 약통에 왜 수면제가 들어있죠?"
"글쎄. 나도 방금 처음 알았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지?""
"지혜 들어오는 대로 알아볼께요.
경식이랑 해수 약통도 꼭 확인해 보세요."
"알았어요."
그 때 지혜가 물 한 컵을 들고 들어왔다. 나는 지혜의 손에 들려있는 약병을 빼앗았다. 그런데 라벨을 읽보니까 미국 제품인 멀티 비타민 알약이다.
"서지혜! 이게 수면제라고?"
"잠 안올 때 먹으면 졸립던데?"
"야! 이 순 엉터리. 이거 비타민 이거든요."
"비타민도 먹으면 잠이 오나?"
"잠이랑은 전혀 상관 없는데?"
"나처럼 오빠도 먹고 잠이나 자."
지혜는 두 알을 나에게 먹게했다. 그런데 그 약을 먹고 나서 금방 잠들었으니까 지혜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약 때문이 아니라 내가 피곤했기 때문일 것 같다. 아니면 미제는 비타민이 안정제나 수면제의 역할도 하는 것일까?
그 대신, 글의 방향이나 내용을 대폭 바꿔서 엄청 건전(?)한 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 저도 요새는 연말이라서 엄청 바쁘기도 하고 .. 쫌 많이 힘드는 상황입니다.
저처럼 하루하루를 어렵게 미친듯이 살아가시는 모든 분들께 힘과 용기를 가지시라는 의미에서
저는 이런 허무맹랑한 글도 써봅니다.
** 제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서, 이 글에는 미성년자와의 성행위, 강간이나 가정을 파괴하는 행위,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은 전혀 포함되어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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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회장 김태현과 비타민 수면제
일단 피하고 보자는 생각에서 나는 벌떡 일어나서 침대에서 내려왔다. 지혜가 버러럭 한다.
"아아. 뭔데? 오빠 왜 나가?"
"조금 있으면 엄마 오시거든요."
"엄마? 이 시간에 엄마가 왜?"
"내가 어떻게 알아? 혹시 파티 준비 때문이 아닐까?"
"엄마 온다고 오빠가 왜 잠을 안자고 나가?"
"대낮에 내가 너랑 침대에 엉켜있으면, 엄마가 볼 때 그게 뭐냐?"
"아오. 진짜 짜증나네. 엄마한테 전화해서 오지 말라고 할꺼다."
"그러기만 해. 너 이 방에서 추방이다."
지혜는 포기한 듯이 투덜거리며 나를 따라서 거실로 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아이린이 온다고 거짓말을 해버린 것이다. 나는 아이린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렇지 않으면 지혜가 자기 방으로 내려갔으면 좋겠다. 지금 보니까 지혜는 옷도 갈아입지도 않고, 교복 차림 그대로이다.
나는 주방에 있는 식탁에 앉아서 커피 메이커에 남아있는 커피를 머그 잔에 따라서 마셨다. 가을 날 한낮의 햇살이 창으로 들어온다. 아직은 따뜻하고 평화롭다.
지혜가 식탁으로 와서 창가에 앉는다. 하얀 교복 블라우스에 아이보리색 교복 상의가 지혜의 몸을 감싸고 있다. 뽀오얀 얼굴은 불만스럽게 뾰로통 하지만 나무 귀엽다.
"오빠. 와인 한 잔 마시면 안돼?"
"대낮에? 낮술을 하겠다고? 그럼 위 아래도 몰라본대."
"일부러 그러려고 그러는데. 히히."
"그러지 말고, 이따가 파티할 때 마셔."
"지금 마시고 한숨 푹 자려고."
"잠팅이니? 학교에서 잤다며 또 자?"
"딱히 할 일이 없으니까."
"경식이 지금 가게에서 게임한대. 차라리 너도 가게에 가봐."
"그럴까?"
지혜가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진짜 어이없게도 지혜가 내 말에 단 한마디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혜가 갔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너무 고맙다. 가끔씩 지혜는 저렇게 착하다. 그런데 지혜가 나가고, 나 혼자 앉아 있으려니까, 방 안이 너무 휑하고, 너무 허전하고 또 서운하다. 이것이 외로움일까?
그런데 송실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은혜가 패션쇼를 열겠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금요일 임시 주주총회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1부에서 패션쇼를 열자는 것이다. 옷이야 이미 다 만들어져 있는 것이고, 모델도 자기들이 직접 한다. 그들은 이미 경험도 풍부하다. 무대 장치도 이미 되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따로 준비할 것은 별로 없다. 무대 앞으로 테이블을 배치하고, 간단한 음료수와 케익만 준비하면 된다는 것이다.
"김비서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패션쇼가 임시 주총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바로 그것을 노리는 것입니다."
"그럼 임비서나 사모님 생각은 어떤지 알아보셨어요?"
"그 전에 미리 김비서님 생각부터 알고 싶어서요."
"사모님께서 별 말씀 없으시면 하는 것으로 합시다.
시간도 그렇게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은데."
"나중에 구전무님께도 미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혹시 기자들이 관심을 보이면 같이 초대해도 되겠지요?"
"예."
나는 통화를 끝내고 계속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혼자라는 사실이 정말 싫다. 나도 서서히 망가져 가는 것 같다. 지혜는 내 이성의 끈을 잡고 뒤흔들고, 나는 그것을 감당하는데에 서서히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데 아이린이 들어온다. 얼마나 반가운지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티셔츠와 청치마 차림으로 들어오는데도 진짜 여신의 등장이다. 그녀의 환한 얼굴에 있는 밝은 표정을 보기만 해도 마음이 가라앉는다. 내 어깨에 그녀의 손길을 느낀다. 그녀는 나에게 백허그를 한다. 내 등에서 아이린의 가슴이 뭉클한다. 나도 몸을 뒤로 약간 버팅기면서 그 탄력을 느낀다. 아이린이 얼굴을 내 어깨에 얹고 말한다.
"하아. .. 자기 안잤어?"
"잠이 안와서. .."
나는 지혜 때문이라고 말이 나오려는 것을 꾸욱 참고 대충 얼버무렸다. 그런데 아이린이 하는 말이 내가 안자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것처럼 들린다.
"미진이가 장보러 온다고 했는데 아직 안오네."
"파티 준비 때문에?"
"그것도 그렇고, 냉장고도 전부 텅텅 비어있어요."
"벌써요?"
"애들이 시험 공부 한다고 어찌나 먹어대는지. .."
나는 아이린에게도 커피 한 잔을 따라주고, 우리는 소파로 왔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지혜와의 일을 말해주었다. 등받이에 기대고 앉은 아이린은 고개를 내게서 돌리고 가을 하늘을 바라본다. 푸른 하늘에 한가롭게 떠있는 하얀 구름들이 아이린의 가슴처럼 포근할 것 같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녀가 간간이 내쉬는 한숨은 조용히 떨리고 있다. 그녀의 굳게 닫힌 입술도 살짝 열리면서 파르르 떨린다.
나는 아이린의 입술에 내 입술을 가볍게 붙였다 떼기를 반복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 뺨을 소리없이 어루만지며 스쳐가고, 그녀의 입이 열린다. 우리는 서로의 입술을 빨아들였다. 머지않아 우리의 혀와 입술이 한데 엉킨다. 내 가슴이 벅차온다.
나는 아이린의 몸을 힘주어 안았다. 그녀가 힘없이 내게 쓰러진다. 아이린은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가라앉힌다. 나는 아이린의 무릎에서부터 허벅지로 해서 엉덩이까지 쓰다듬었다. 아이린도 손을 뻗어내려 텐트를 친 내 남성을 쓰다듬는다.
그런데 아이린의 전화기로 전화가 들어오자 아이린은 조해수의 엄마가 왔다면서 서둘러서 밖으로 나갔다. 나는 또 혼자이다. 이것이 싫다.
나는 침대에 누웠다. 아이린이 윤미진을 기다리는데 왜 나에게 왔을까? 혹시 나에게 장보러 가는 데에 같이 가자고 온 것은 아닐까? 지혜의 이야기를 했는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지혜를 미리 만나고 이리로 온 것은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잠에 빠져들었다.
한참 자고 있는데 경식이가 나를 깨운다.
"형. 해수 누나 방으로 올라오래요."
"지금 몇시니?"
"다섯시 반 넘었어요."
"벌써?"
"지혜 누나 엄청 열 받았어요."
"왜?"
"누나가 전화를 여러 번 했는데 형이 안받았다고."
"야아. 자는데 어떻게 받아?"
"그러게요."
"전화 안되면 평소에는 올라오더만."
"지금 누나 친구들 와있거든요."
경식이는 먼저 올라가고, 나도 씻고 조해수의 방으로 올라갔다. 조해수와 지혜의 친구들 세 명도 와있다. 애들은 모두 식탁에, 그리고 나는 소파에 앉아있었다. 두 엄마는 애들의 시중을 들어주고, 나중에 소파로 왔다.
우리는 같이 케익을 먹고, 치킨과 피자도 먹었다. 그런데 나는 별로 당기지 않아서 조금만 먹었다. 애들은 시험에 대한 얘기를 한다. 해수는 경식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백점도 맞는다면서 칭찬한다. 그럴 때마다 지혜는 자기 동생 몸에소 손을 치우라고 버럭질이다. 지혜는 와인을 요구했다. 그렇지만 아이린은 캔맥주로 하라면서 와인을 거절했다.
그런데 아이린과 윤미진이 나에게 말했다.
"조금 있으면 서전무 와요."
"해수 아빠도 온다고 했어요."
"애들 시험이 끝났다고 아빠들까지 동원시키세요?"
"이번 시험은 완전히 지각변동이라니까요."
"지혜도 지혜지만, 우리 해수가 이번에 반에서 중간 정도로 올랐대요."
지혜는 애들을 데리고 게임하러 PC방으로 간다며 나갔다. 두 엄마는 정리를 했다. 그리고 서전무가 온다는 연락을 받고 우리는 횟집으로 갔다. 그런데 아이린의 새엄마도 서전무와 같이 왔다. 두 부부가 앉고, 아이린은 내 옆으로 앉았다.
우리는 소주 잔을 들어 건배했다. 그런데 모두들 한마디씩 한다. 아이린만 조용하다.
"우리 지혜가 언젠가는 해낼 것이라고 생각을 하기는 했거든.
그런데 이렇게 빨리 해낼 줄은 몰랐어. 하하하."
"이번에는 지혜만 그런 것이 아니잖아요. 경식이도 백점이 세개나 나왔대요."
"우리 해수도 그래요.
공부라는 것이 하니까 되는데, 지금까지 왜 안했는지 후회를 엄청 했어."
"이게 다 선생님이 열심히 가르쳐서 된 일이 아니겠어? 하하."
"부끄럽습니다. 제가 하면 얼마나 했겠습니까?
애들이 포기하지 않고, 매일 밤 늦게까지 열심히 노력한 결과입니다."
"얘들이 고등학교 공부를 이렇게 힘들게 하면, 나중에 대학 공부는 어떻게 할까요?"
"그 때도 우리 선생님이랑 해야죠. 하하."
아이린은 지혜에게 전화를 해서 회먹으러 오라고 했다. 지혜, 혜수 경식이가 금방 왔다. 엄마와 아빠들이 자기 자식들을 대견스럽다면서 칭찬한다. 경식이는 아빠 옆으로, 해수도 아빠 옆으로,그리고 지혜는 내 옆에 앉아서 회를 먹는다.
우리의 얘기는 갑자기 한강 유통으로 넘어갔다. 서전무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겨우 전무지만, 김비서는 이제 곧 회장님이니까, 내가 말을 높여야겠네. 하하."
"아휴. .. 무슨 말씀이십니까?"
"크든, 작든, 기업이든, 과외든, 경영이라는 것을 해서 잘 되면 재미도 있어.
한강유통을 잘 키워봐. 그럼 나중에 더 큰 경영을 할 수도 있거든."
"명심하겠습니다. 저에게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기회를 공부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잘 하면, 내가 나중에 가만히 있지 않을거야."
"예?"
"지금 김비서가 우리 애들에게 투자를 확실하게 하잖아.
그러니까 우리도 이제 김비서에게 확실한 투자를 하는거라고.
나나 지혜엄마가 이번에 그 회사 주식을 사들이면서 덤벼든 것은 나중을 위한 일이란 말이야."
"감사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앞으로 많이 도와주십시오."
"지혜아빠. 저 회사에 매출을 50% 증가시키는 것이 이번 연말까지 목표였대요.
그런데 벌써 거의 다 됐대요."
"조사장네는 어때?"
"한강 유통 직영매장 신축과 리모델링 내년 공사가 벌써 여러 개 들어왔어요."
회를 먹을 때에는 소주를 마셔야 한다면서 애들에게도 소주를 한두 잔씩을 마시게 했다. 해수와 경식이는 쓴 맛 때문에 별로라고 하지만, 지혜는 잘 마신다.
밤이 깊어지자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전무는 나에게 나중을 기대하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 우리는 아쉬워하면서 헤어졌다.
드디어 금요일이다. 출근하자마자 송실장은 주총의 프로그램을 나에게 설명했다. 송실장과 비서실은 아침부터 임시 주주총회를 준비하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오전에 나는 우선 주은혜가 준비한 패션쇼를 체크하여야 했다. 또 주총에서 해야 할 PT 준비도 점검하여야 했다. 이번 PT 파일은 방효은과 이경숙이 미리 만들어놓은 것이다. 간단한 실적 보고와 연말까지 남은 기간 동안에 사업 목표에 관한 내용이다. 방효은은 웹사이트 제작을 끝냈다면서 베타버전을 보여주었다. 이달 말까지 테스트 기간을 갖고 이상 없으면 다음 달 초에 론칭을 하기로 했다.
오후가 되자 주주들이 회의실로 모여들었다. 아이린도 화사한 원피스 차림으로 나타났다. 시간이 되자 송실장과 사모님은 이들을 모두 데리고 디자인 작업실로 올라갔다. 주은혜의 디자인 팀이 여는 패션쇼 때문이다. 그 자리에는 기자들도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라 패션을 책임지고 있는 임영신이 올라가서 인사말을 했다. 최수희는 여직원들이 음료수 서빙을 하는 것을 지휘하고 있다.
무대에서는 모두 여덟명의 모델들이 100 가지 정도의 옷을 선보였다. 레포츠용, 그리고 평상복용의 겉옷도 있다. 그런데 속옷과, 여성용 섹시한 란제리도 있다. 주은혜는 이 옷들이 모두 실용적인 옷들이며, 가격은 파격적으로 홈쇼핑 수준이거나 그 보다 낮게 책정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탄식하며 한숨을 내쉰다. 특히 구전무와 한상무가 나란히 앉아있는데, 두 사람 사이는 예전보다 훨씬 좋은 것 같다. 내 옆에 앉은 구전무가 내게 말했다.
"이 깜찍한 이벤트는 뭐지?"
"회장님 살아계실 때 남기신 실적의 일부분을 보고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번 회장 선거는 만장일치로 가겠네."
"여기가 북한인가요? 그럼 나중에 실적보고 PT는 전무님께서 하시겠습니까?"
"김비서. 선수끼리 왜 이래? 하하."
송실장이 나를 회장실로 불러내렸다.
"김비서님. 준비는 끝났습니다. 오늘 사모님 편에 거의 60% 가 몰릴 것입니다."
"구전무님은 최종 결정을 어떻게 하셨죠?"
"아직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사모님 말씀으로는 안심해도 된다고 합니다."
"그러지 말고 이번에 누나가 회장을 맡으시면 안돼요?"
"말도 안돼. 지금 누나라는 말을 하지 말랬지?"
송실장은 나에게 잠시 쉬라고 하고 나갔다. 한참 후에 송실장이 와서 나를 데리고 회의실로 갔다. 드디어 임시 주주 총회가 시작되고, 진행은 구전무가 맡는다. 약 30명 정도가 앉아있다.
그전무는 제일 먼저 신임 이사를 소개했다. 이 신임 이사는 바로 아이린이다.
"지난 이사회에서 정혜영 여사를 이사로 추대하기로 만장 일치로 결정했습니다."
송실장의 말로는 아이린은 이사회에는 참석하여 표결권을 행사한다. 그녀는 지금 당장 사업 섹션을 맡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임영신을 대신하여 의류 사업을 맡게 될 것 계획이라고 했다.
순서에 따라서 내가 실적보고를 했다. 실적 중에서 PB 상품 개발과 의류 사업은 핵심으로 정하고, 내년 연말까지는 10배 이상으로 키울 것을 약속했다. 듣는 사람들은 항목마다 손뼉을 치며 환호한다. 나는 이러한 계획들이 무모한 내 생각이 아니라 임회장이 구상한 것이었음을 밝혔다.
"이 모든 것은 임용식 회장님께서 생전에 계획하신 일입니다 . ...."
또 나는 방효은을 시켜서 웹사이트의 베타버전을 선보였다. 장내가 술렁거린다.
"이렇게 하면 우리 주식은 장내 거래 가격이 액면가 이상으로 오를 것이 확실합니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투자하신 여러분들께서 구매 가격보다 3배 이상의 이익을 얻으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때 주주들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드디어 회장 선거에 들어갔다. 그런데 구전무가 출마를 하지 않는다. 그가 불출마로 결정을 굳힌 것이다. 나는 한상무를 쳐다보았다. 한상무도 출마하지 않는다. 이 두 사람은 사럽을 추진함에 있어서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불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마도 둘이 무슨 밀당을 한 것 같다. 결국은 사모님은 나를 추천했다.
"김태현 비서는 고 임회장님을 측근에서 보좌하던 수행비서로서 우리의 사업을 계속 ..."
나를 두고 찬반토론이 있었으나, 한상무가 워낙 나를 강하게 미는 발언을 했다. 나중에는 구전무와 사모님도 합세했다. 그런데 반대하는 의견은 힘을 얻지 못했고, 이 토론은 오래가지 않고 금방 끝났다.
김태현 후보에 대하여 찬성과 반대를 결정하는 투표가 시작되었다. 비서실의 비서들은 투표용지를 배부했고, 일일이 주주들의 목록을 확인하면서 개표를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송실장이 집계한 개표 결과를 구전무에게 넘겨주었다.
구전무는 개표 결과를 출석 주의 85% 가 찬성표를 던졌고, 이것은 의결정족수인 출석 주의 3분의 2를 넘는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해서 김태현은 한강 유통(주)의 6대 회장에 당선되었다. 정해진 임기는 없고, 특별한 일이나, 이사회에서 불신임안이 나오지 않는 한 계속한다고 한다.
나는 다시 단상에 올라가서 회장직을 성실하게 수행하겠다는 인사를 했다. 이렇게 해서 주주총회가 막을 내렸다.
주총에 이어서 곧바로 나는 회장실에서 인터뷰를 해야 했다. 기자들은 언론 매체나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광고를 전혀 하지 않았는데도 이런 성장이 온 것을 해명해달라고 했다. 처음에 경제인 연합회나 상공회의소에서는 아무런 홍보도 하지 않고 사업을 하려는 우리는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이 예측을 뒤엎은 결과를 낸 비결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입니다. 물론 광고나 홍보는 매체를 통해서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 견해로는 가장 믿을 수 있는 광고 매체는 바로 사람입니다. 한강 유통의 유니폼을 입고 일하시는 우리 직원 한 분 한 분이 가장 확실하게 홍보를 한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비결이라는 것을 나는 이렇게 돌려서 대답했다. 저렴한 가격의 PB 상품과 의류 상품이 대량으로 시판되었다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므로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이 인터뷰 내용은 다음 주 월요일 신문에 경제난에 나온다고 한다.
금요일 주총이 끝나고, 저녁에는 각 부서에서 회식을 한다고 들었다. 송실장도 비서실 사람들을 모두 내보냈다. 사모님이 한턱 쏜다고 불렀다고 한다. 임영신도 디자인 팀을 모두 데리고 나갔다.
"아니, 나는 왜 왕따시켜요?"
"이제는 회장님이시니까, 오늘은 이사님들과 같이 가실 것입니다."
이사들이 마련한 저녁식사 자리로 송실장은 나를 데리고 나갔다. 그 자리에는 아이린도 있다. 그녀는 약간 흥분한 것 같다. 우리는 같이 협력해서 일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금요일 밤 나는 끙끙 앓았다. 아이린과 같이 소파에 앉아있는데 내 몸에서 열이 치솟는다. 나는 약통에 있는 체온계를 꺼내와서 스스로 체온을 재니까 39도였다. 아이린이 다시 쟀는데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약통에 있는 해열제를 꺼내서 먹었다.
나는 침대에 눕고, 깜작 놀란 아이린은 임영신 엄마에게 전화했다. 아이린은 얼음팩을 갖다가 내 이마를 식힌다.
"잘 생긴 회장님이랑 와인 한잔 마시려고 했는데 .."
"누나. 미안해. 오늘은 안되겠어."
"감기 몸살이지?"
"우리 애들 시험도 끝났고, 회사 일도 마무리가 돼서 이러나봐요."
"맞아. 너무 긴장했었나봐. 그렇게 소심한 남자였어?"
"이 번 감기 몸살은 애정결핍 때문이야."
"뭐야? 하하하."
연락을 받은 송실장과 임영신이 내 오피스텔로 왔다. 나는 침실에 송실장과 같이 있고, 아이린과 임영신은 거실에 있었다. 송실장 말로는 임시 주주총회 때문에 나 뿐 아니라, 임영신 엄마 남하영 여사도 앓아누웠다고 한다. 송실장이 내 뺨을 만지며 내게 물었다.
"회장님. 열이 상당히 높습니다. 병원으로 가시겠습니까?"
"누나. 여기는 회사 밖이거든."
"아무리 그래도 회장님이신데 .."
"그 회장 소리 때문에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아. 더 아프잖아!"
"회장님. 제발 조용히 하세요."
송실장은 내 침실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다. 그녀는 입을 내 귀에 가가이 대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동생아. 알았으니까 애교 고만부려."
송실장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 뺨에 키스했다. 그 때 조용하던 방안에 갑자기 큰 소리가 울린다.
"오빠! 이건 또 무슨 그림이 이래?"
송실장이 깜짝 놀란다. 나는 재빨리 송실장의 손에 내 체온계를 쥐어주었다.
"지혜 왔어? 너 여기 들어오면 엄청 독한 감기 옮는다."
"엄마한테 전화 받고 오는 길이야. 이 언니는 누구셔?"
"우리 송실장님. 인사드려라."
"얘가 지혜면, 서전무님이랑 정혜영 여사님 따님인가요?"
"맞아요."
지혜는 제법 당당하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서지혜입니다. 그런데 두 분 방금 뭐하셨어요?"
"송실장님이 내 체온 쟀어."
"어디에서?"
"귀."
지혜는 체온계를 힐끗 쳐다보더니, 관심 없다는 듯 내 손을 잡는다. 나도 지혜의 손을 꼬옥 잡았다. 지혜는 나와 송실장을 번갈아가며 쳐다본다.
"이제 오빠가 회장님이라며? 그런데 아프면 어떡해?"
"그러게. 이제 다들 나가주세요. 나 잠이 필요해."
"내 약통에 있는 수면제 갖다줄까?"
"그래."
임영신과 송실장은 내일 다시 오겠다고 하고 집으로 갔다. 지혜는 수면제를 가져오겠다며 나갔다. 아이린이 거실에서 내게 들어왔다. 지혜가 수면제 가져온다는 말에 나도 놀랐지만, 아이린이 엄청 당황한 표정이다.
"누나. 지혜 약통에 왜 수면제가 들어있죠?"
"글쎄. 나도 방금 처음 알았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지?""
"지혜 들어오는 대로 알아볼께요.
경식이랑 해수 약통도 꼭 확인해 보세요."
"알았어요."
그 때 지혜가 물 한 컵을 들고 들어왔다. 나는 지혜의 손에 들려있는 약병을 빼앗았다. 그런데 라벨을 읽보니까 미국 제품인 멀티 비타민 알약이다.
"서지혜! 이게 수면제라고?"
"잠 안올 때 먹으면 졸립던데?"
"야! 이 순 엉터리. 이거 비타민 이거든요."
"비타민도 먹으면 잠이 오나?"
"잠이랑은 전혀 상관 없는데?"
"나처럼 오빠도 먹고 잠이나 자."
지혜는 두 알을 나에게 먹게했다. 그런데 그 약을 먹고 나서 금방 잠들었으니까 지혜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약 때문이 아니라 내가 피곤했기 때문일 것 같다. 아니면 미제는 비타민이 안정제나 수면제의 역할도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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