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 소설의 게이란에 글을 쓰면서 게이가 누구인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나는 남자와의 관계도 즐기지만 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여자와의 관계는 더 즐기고 결혼생활도 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섹스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많을 뿐이지만 그래도 게이라고 한다면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하나의 성적 취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쓰는 글들은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의 이야기지만 나이와 체형 취미 등은 나의 모습 그대로이며 경험이 가미된 내용이기도 합니다. 혹시 나와 함께 이런 상상을 실지로 이루어 보기를 원한다면 연락바랍니다.([email protected])
나의 이반 이야기(2부)
영식이와 함께 찜질방에서 나와 가까운 커피숍으로 옮겼다. 사실 나는 영식이를 잘 모른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지만 당시는 키 순서대로 번호를 정하고 의자에 앉았기에 나는 맨 앞줄에 앉았고 영식이는 맨 뒷줄에 앉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작은 아이들은 작은 아이들끼리 큰 아들은 큰 아이들끼리 어울리기 마련이 아닌가. 영식이가 나를 알아본 것은 내가 연극반에 속해 있어서 자주 얼굴을 보였기 때문이리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히 고등학교 때 친구들의 근황을 듣게 됐다. 나는 거의 친구들과 연락이 끊어졌는데 영식이는 자주 만나는 눈치였다. 띄엄띄엄 대화를 나누다가 내가 먼저 물었다. “너는 언제부터냐?” 영식이는 나이가 들면서 마누라가 성적 취미를 잃어버리고 상대를 잘 해주지 않자 여러 인터넷 싸이트를 돌아다니다가 찜질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경험을 한 것은 6개월쯤 전이고 3번 정도 관계가 있었다고 한다. “경험이 없다고 하기에는 너무 프로 같은데” 내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하자 인터넷에서 경험담을 많이 읽었고 처음 만났던 사람이 가르쳐주는 대로 따랐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묻는다. “너는?”
내 경험은 아직 결혼하기 전의 20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종로에 살았는데 파고다 공원에 갔다가 화장실에서 파고다 극장에 가면 빨아주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 낙서를 봤다. 그때나 지금이나 성적 호기심이 가득했던 나는 극장으로 갔다. 당시 100석 정도 되는 극장에는 5, 6명 정도가 띄엄띄엄 앉아서 영화를 보고 있었고 몇 사람이 좌석 뒤에서 서성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일단 앉아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40대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옆에 앉더니 시간이 흐르자 허벅지에 손을 가져다 대는 것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가만히 있는데 바지 위로 손을 올려 쓰다듬는다. 한참 때의 나이라 불끈 화를 냈고 아저씨는 따라오라고 한다. 먼저 일어나 나가는 아저씨를 따라 갔다.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망설이고 있는 나에게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들어갔다. 문을 잠그더니 내 바지의 자꾸를 내리고 팬티의 구멍 사이로 물건을 빼고는 빠는 것이다. 물건이 팬티에 걸려 불편했다. 물건을 입에서 빼고는 바지와 팬티를 내리고 아저씨의 입에 물렸다. 축축하면서 따뜻한 느낌이 좋았다. 몇 분쯤 지났을까? 강한 쾌락이 오면서 나올 것만 같았다. “나올려고 그래요.”라고 했더니 입에서 빼고는 손으로 흔들어 주는 것이 아닌가. 터져 나왔고 조금은 아저씨의 얼굴에 튄 것 같았다. 아저씨는 티슈로 닦아 주더니 먼저 나갔다.
그 후 몇 달 동안은 후회와 자신을 경멸하면서 살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그때의 짜릿한 기쁨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다시 파고다 극장을 갔지만 이번에는 빨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때의 쾌락을 결국은 잊지 못하고 이번에는 파고다 공원의 화장실로 갔다. 혹시 다른 장소는 없을까 하고. 찾았다. 종로의 극동극장과 왕십리의 무슨 극장이라고 한다. 먼저 극동극장을 갔다. 실패다. 며칠 뒤에 왕십리의 극장으로 갔다. 의자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는데 앞자리에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빨아주는 것이 보인다. 다 빨린 사람은 바지를 올려 자꾸들 채우고 나가고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천연덕스럽게 앉아 영화를 본다. 용기를 내어 그 옆에 가서 앉았다. 60이 넘은 것같은 할아버지다. 혹시 내 것도 빨아주지 않을까! 나를 힐끗 보더니 주변을 돌아보고는 허리띠를 푼다. 살짝 엉덩이를 올려 허벅지에 걸치니 물건을 빨기 시작한다. 얼마나 잘 빠는지 1분이 되지 않아 나올 것 같았다. 빨고 있는 머리를 붙잡고 “나오려고 해요”라는데 잠시 입을 떼고는 “괜찮아! 그냥 싸” 한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할아버지의 머리를 잡고 누른다. 물건은 더 강하게 입 속 깊숙이 부딪치고 그 안으로 정액을 토해냈다. 눌렀던 머리를 풀지 않고 잠시 여운을 즐긴다. 그리고 입에서 빼려고 하는데 오히려 할아버지가 엉덩이를 잡고는 놓아주려고 하지 않는다. 정액을 발사하고 바로 빨아줄 때의 느낌을 아는가?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주위를 의식하여 겨우 참았다. 할아버지는 입을 떼고 티슈를 준다. 대강 문질러 닦고는 밖으로 나온다. 다시 밀려오는 후회.
현자타임이라고 한다. 싸고 나서 느껴지는 후회와 자신에 대한 경멸.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 그렇지만 어느새 다시 빨아줄 사람을 찾아 헤맨다. 그때는 공중화장실에 모든 정보가 있었다. 언제 어디로 오면 빨아주겠다는 사람의 정보도 있었다. 그래서 많이도 다녔다. 강변역 건너편 동서울 터미날의 지하 화장실. 고속버스 터미널 8층의 화장실. 회기역 화장실. 그러면서도 틈틈이 파고다 극장을 찾는 것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누가 빨아준느 것만으로 좋았다. 내가 빠는 것과 아날에 하는 것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 빨아 줄 사람을 찾을 때는 간절하다가도 입에 싸고 나면 후회가 되어 금방 나와 버린 날들이었다. 빨아 줬던 사람들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아날에 처음 집어넣었던 것은 처음 경험하고 5,6년 정도 지난 다음이었다. 혹시 앞에서 말한 것을 보고 엄청 많은 사람을 만나 빨린 것이라고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1년에 두 세 차례 정도. 몇 달은 자괴감에 빠졌고 또 얼마 동안은 참을 수가 있었다. 그러다 참지 못하면 이리저리 헤매는 똥강아지 신세. 또 그 사이에 결혼도 했기에 전부 해야 10번이 될까 말까 했을 거다.
아내와의 성적 유희도 해볼 만큼 해 보아서 지루해지려고 했을 때 저절로 파고다극장을 찾게 되었다. 의자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는데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옆으로 온다. 경험이 쌓인 내가 먼저 허벅지를 쓰다듬는다. 일어나 나간다. 대부분은 따라오라는 싸인. 극장 밖으로 나간다. 왜? 그러면서 뒤돌아서서 나를 본다. 할 수 없다. 따라간다. 종로 3가 뒷골목을 돌아서 여관으로 들어간다. 내가 돈을 지불하고 방을 잡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반이 주로 이용하는 여관이었다.
방으로 들어가 먼저 청년을 안았다. 나보다는 크지만 그렇게 많이 크지 않은 청년이 나에게 안겨온다. 옷을 벗었다. 내 것을 빨아준다. 젊은 아이여서 그럴까. 아니면 물건이 그렇게 크지 않고 깨끗해서 그럴까. 처음으로 남자의 물건을 입에 집어넣어 보았다. 딱딱한 막대기를 빠는 것 같은 느낌. 어쨌든 그때는 그랬다. 옆으로 누워 서로의 물건을 빠는 것도 처음 해 보았다. 좋다는 느낌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많이 서툴러 청년은 많이 아팠을 것이다. 청년이 누워 다리를 벌리고 로션을 바른다. 구멍을 겨냥하고 내 물건을 껴 넣는데 잘 들어가지 않는다. 충분히 이완을 했어야 하는데 청년도 경험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행히 내 물건이 그리 크지 않았기에 조금 애를 쓰자 쑥 들어갔다. 낑낑대면서 허리를 흔들었던 것이 생각이 난다. 몇 분 뒤에 그의 안에 정액을 쏘고는 샤워를 했다. 밖으로 나와 맥주를 한 잔하자고 하자 그냥 가겠다고 해서 헤어졌다. 나머지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지금은 영식이와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두 번째 이야기를 끝냅니다. 혹시 글을 읽으시다가 같은 성향이거나 느끼고 싶으시면 틱톡(4soraman)으로 연락을 주세요. 이반 생활에 궁금한 것이나 여러분의 경험도 이야기 해 주시면 소설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면 제 집필실로 오셔서 자유게시판에 여러분의 경험을 남기셔도 됩니다.
나의 이반 이야기(2부)
영식이와 함께 찜질방에서 나와 가까운 커피숍으로 옮겼다. 사실 나는 영식이를 잘 모른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지만 당시는 키 순서대로 번호를 정하고 의자에 앉았기에 나는 맨 앞줄에 앉았고 영식이는 맨 뒷줄에 앉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작은 아이들은 작은 아이들끼리 큰 아들은 큰 아이들끼리 어울리기 마련이 아닌가. 영식이가 나를 알아본 것은 내가 연극반에 속해 있어서 자주 얼굴을 보였기 때문이리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히 고등학교 때 친구들의 근황을 듣게 됐다. 나는 거의 친구들과 연락이 끊어졌는데 영식이는 자주 만나는 눈치였다. 띄엄띄엄 대화를 나누다가 내가 먼저 물었다. “너는 언제부터냐?” 영식이는 나이가 들면서 마누라가 성적 취미를 잃어버리고 상대를 잘 해주지 않자 여러 인터넷 싸이트를 돌아다니다가 찜질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경험을 한 것은 6개월쯤 전이고 3번 정도 관계가 있었다고 한다. “경험이 없다고 하기에는 너무 프로 같은데” 내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하자 인터넷에서 경험담을 많이 읽었고 처음 만났던 사람이 가르쳐주는 대로 따랐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묻는다. “너는?”
내 경험은 아직 결혼하기 전의 20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종로에 살았는데 파고다 공원에 갔다가 화장실에서 파고다 극장에 가면 빨아주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 낙서를 봤다. 그때나 지금이나 성적 호기심이 가득했던 나는 극장으로 갔다. 당시 100석 정도 되는 극장에는 5, 6명 정도가 띄엄띄엄 앉아서 영화를 보고 있었고 몇 사람이 좌석 뒤에서 서성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일단 앉아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40대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옆에 앉더니 시간이 흐르자 허벅지에 손을 가져다 대는 것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가만히 있는데 바지 위로 손을 올려 쓰다듬는다. 한참 때의 나이라 불끈 화를 냈고 아저씨는 따라오라고 한다. 먼저 일어나 나가는 아저씨를 따라 갔다.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망설이고 있는 나에게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들어갔다. 문을 잠그더니 내 바지의 자꾸를 내리고 팬티의 구멍 사이로 물건을 빼고는 빠는 것이다. 물건이 팬티에 걸려 불편했다. 물건을 입에서 빼고는 바지와 팬티를 내리고 아저씨의 입에 물렸다. 축축하면서 따뜻한 느낌이 좋았다. 몇 분쯤 지났을까? 강한 쾌락이 오면서 나올 것만 같았다. “나올려고 그래요.”라고 했더니 입에서 빼고는 손으로 흔들어 주는 것이 아닌가. 터져 나왔고 조금은 아저씨의 얼굴에 튄 것 같았다. 아저씨는 티슈로 닦아 주더니 먼저 나갔다.
그 후 몇 달 동안은 후회와 자신을 경멸하면서 살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그때의 짜릿한 기쁨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다시 파고다 극장을 갔지만 이번에는 빨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때의 쾌락을 결국은 잊지 못하고 이번에는 파고다 공원의 화장실로 갔다. 혹시 다른 장소는 없을까 하고. 찾았다. 종로의 극동극장과 왕십리의 무슨 극장이라고 한다. 먼저 극동극장을 갔다. 실패다. 며칠 뒤에 왕십리의 극장으로 갔다. 의자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는데 앞자리에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빨아주는 것이 보인다. 다 빨린 사람은 바지를 올려 자꾸들 채우고 나가고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천연덕스럽게 앉아 영화를 본다. 용기를 내어 그 옆에 가서 앉았다. 60이 넘은 것같은 할아버지다. 혹시 내 것도 빨아주지 않을까! 나를 힐끗 보더니 주변을 돌아보고는 허리띠를 푼다. 살짝 엉덩이를 올려 허벅지에 걸치니 물건을 빨기 시작한다. 얼마나 잘 빠는지 1분이 되지 않아 나올 것 같았다. 빨고 있는 머리를 붙잡고 “나오려고 해요”라는데 잠시 입을 떼고는 “괜찮아! 그냥 싸” 한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할아버지의 머리를 잡고 누른다. 물건은 더 강하게 입 속 깊숙이 부딪치고 그 안으로 정액을 토해냈다. 눌렀던 머리를 풀지 않고 잠시 여운을 즐긴다. 그리고 입에서 빼려고 하는데 오히려 할아버지가 엉덩이를 잡고는 놓아주려고 하지 않는다. 정액을 발사하고 바로 빨아줄 때의 느낌을 아는가?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주위를 의식하여 겨우 참았다. 할아버지는 입을 떼고 티슈를 준다. 대강 문질러 닦고는 밖으로 나온다. 다시 밀려오는 후회.
현자타임이라고 한다. 싸고 나서 느껴지는 후회와 자신에 대한 경멸.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 그렇지만 어느새 다시 빨아줄 사람을 찾아 헤맨다. 그때는 공중화장실에 모든 정보가 있었다. 언제 어디로 오면 빨아주겠다는 사람의 정보도 있었다. 그래서 많이도 다녔다. 강변역 건너편 동서울 터미날의 지하 화장실. 고속버스 터미널 8층의 화장실. 회기역 화장실. 그러면서도 틈틈이 파고다 극장을 찾는 것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누가 빨아준느 것만으로 좋았다. 내가 빠는 것과 아날에 하는 것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 빨아 줄 사람을 찾을 때는 간절하다가도 입에 싸고 나면 후회가 되어 금방 나와 버린 날들이었다. 빨아 줬던 사람들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아날에 처음 집어넣었던 것은 처음 경험하고 5,6년 정도 지난 다음이었다. 혹시 앞에서 말한 것을 보고 엄청 많은 사람을 만나 빨린 것이라고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1년에 두 세 차례 정도. 몇 달은 자괴감에 빠졌고 또 얼마 동안은 참을 수가 있었다. 그러다 참지 못하면 이리저리 헤매는 똥강아지 신세. 또 그 사이에 결혼도 했기에 전부 해야 10번이 될까 말까 했을 거다.
아내와의 성적 유희도 해볼 만큼 해 보아서 지루해지려고 했을 때 저절로 파고다극장을 찾게 되었다. 의자에 앉아 영화를 보고 있는데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 옆으로 온다. 경험이 쌓인 내가 먼저 허벅지를 쓰다듬는다. 일어나 나간다. 대부분은 따라오라는 싸인. 극장 밖으로 나간다. 왜? 그러면서 뒤돌아서서 나를 본다. 할 수 없다. 따라간다. 종로 3가 뒷골목을 돌아서 여관으로 들어간다. 내가 돈을 지불하고 방을 잡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반이 주로 이용하는 여관이었다.
방으로 들어가 먼저 청년을 안았다. 나보다는 크지만 그렇게 많이 크지 않은 청년이 나에게 안겨온다. 옷을 벗었다. 내 것을 빨아준다. 젊은 아이여서 그럴까. 아니면 물건이 그렇게 크지 않고 깨끗해서 그럴까. 처음으로 남자의 물건을 입에 집어넣어 보았다. 딱딱한 막대기를 빠는 것 같은 느낌. 어쨌든 그때는 그랬다. 옆으로 누워 서로의 물건을 빠는 것도 처음 해 보았다. 좋다는 느낌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많이 서툴러 청년은 많이 아팠을 것이다. 청년이 누워 다리를 벌리고 로션을 바른다. 구멍을 겨냥하고 내 물건을 껴 넣는데 잘 들어가지 않는다. 충분히 이완을 했어야 하는데 청년도 경험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행히 내 물건이 그리 크지 않았기에 조금 애를 쓰자 쑥 들어갔다. 낑낑대면서 허리를 흔들었던 것이 생각이 난다. 몇 분 뒤에 그의 안에 정액을 쏘고는 샤워를 했다. 밖으로 나와 맥주를 한 잔하자고 하자 그냥 가겠다고 해서 헤어졌다. 나머지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지금은 영식이와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두 번째 이야기를 끝냅니다. 혹시 글을 읽으시다가 같은 성향이거나 느끼고 싶으시면 틱톡(4soraman)으로 연락을 주세요. 이반 생활에 궁금한 것이나 여러분의 경험도 이야기 해 주시면 소설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면 제 집필실로 오셔서 자유게시판에 여러분의 경험을 남기셔도 됩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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