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천주(九天酒)와 비향(悲香)-
의원님을 모신 지가 벌써 6년이 되어 간다. 나는 새해 첫 날이 엊그제 였던 것 같은데 벌써 춘 삼월이라는 의원님의 말씀에 그제서야 지나간 시간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문중의 어른들을 모시고 얘기를 할 때면 국운의 향방을 손에 쥐고 있는 정객들이 어찌 그리 중심이 없이 철새 같은 행보를 하는가 하며, 그 주위에서 그것도 직장이라고 민생고를 해결하고 있는 나를 은근히 꾸짖는 듯한 말씀을 하시는 것을 자주 들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모시고 있는 의원님께 존경을 금할 수 없음을 항상 느낀다. 무엇보다도 청렴하시기가 그만이었기 때문이었다. 운전기사가 없으신 것은 물론이고, 가고자 하는 곳의 교통상황이 여의치 못할 때는 스쿠터를 타고 가시는 민첩성과 경제성을 겸비 하셨음은 칭찬 받아 마땅한 자세였다. 내가 평소에 이런 얘기들을 사람들에게 할 때면 의례, 그건 표밭을 위한 전시효과가 아니냐고 비아냥 대곤 했지만 서도…나는 언젠가 국회에 상정되었던 어떤 표결 안에 대하여 당내 의결에 따라 무력승인 저지를 위해 국회에서 밤을 세우셨던 일이 생각나곤 한다. 나는 그때, 의원님의 갈아 입으신 양복을 받아다가 드라이클리닝을 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 옷을 받아서 세탁소에 다녀오면서 깜짝 놀랐었다. 항상 입고 다니시는 양복 웃 저고리의 안쪽 내피, 곳곳을 수선한 흔적으로 인한 것이었다. 나는 의원님께서 옷을 갈아 입으실 때에 여쭈어 본 적이 있다.
‘의원님, 양복이 많이 낡았던데요…’
‘그게 무에 대단한 일이라고…사람의 의복은 육신과 같은 것이지. 내가 이야기 하나 해줄까? 언젠가 내가 지역구에 내려가 읍내에서 버스를 타고 가던 도중에 있었던 일인데 말이야. 내 뒷좌석에는 스님 한 분과 애기를 안고 있는 부인이 타고 있었다네. 아이가 계속해서 찡얼대는 폼이 신경이 쓰이긴 했는데, 차가 언덕받이 에서 급회전을 하다가 그만 스님의 옷에 아이가 잠시 전에 먹었던 우유를 걸쭉하게 모두 토해 놓았지. 자네도 애기가 있어서 알겠지만 애기가 토해 놓는 우유는 정말 냄새가 고약하질 않나? 그런데 스님께서는 아무런 화도 내시질 않고 허허 웃으시면서 말씀하시는 게야.’
‘뭐라 셨는데요?’
‘당황하는 옆 자리의 부인에게 하시는 말씀이 단 한 마디였지. 허허 웃으시면서 닦으면 된다고만 하시더군. 나는 버스 창문을 모두 열어놓아도 빠지지 않는 그 냄새에 정신이 나갈 지경인데도 그 스님은 닦으면 되지 무엇이 걱정이냐는 말씀이셨던 게야. 자네, 이 세상에 살면서 가장 닦아내기 힘든 것이 무엇인지 아나? 그건 사람의 마음이지, 아무리 수행을 하고 반짝반짝 광을 다 내었다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때가 끼고, 더러워지고, 윤색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그깟 오물 쯤이야 무슨 대수냐는 깊은 의미의 선문답 이었어. 나는 그 날 이후로 내가 소유하고자 하는 새로운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렸네. 나 나름대로는 독실한 신앙인 이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나랑 종교와 관점이 틀리기는 해도 스님의 그 한마디에 나는 많은 것을 깨달 을 수 있었어. 그저 나에게 현재 주어져 있는 물질과 상황에 자족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 모든 종교가 주는 교훈이 그와 같겠지만…’
그러던 의원님께서 어느 수요일 저녁, 나와 같이 저녁을 먹고 싶다고 하시었다. 나는 의원님께서 소속되어 계신 상임위원회에 다음 주까지 갖고 가실 의견서를 작성해서 검토하느라 밤을 샐 요량이었다. 바쁘기도 했지만 언제나 꼼꼼하게 조사된 사항에 대한 사실여부와 근거자료에 대해서 확인을 직접 하시기 때문에 보좌관의 직분인 나로서는 재삼,재사 검토하고, 수정하고, 훑어봐야 하는 일정은 언제나 빠듯했다.
‘오늘 바쁘지 않으면 나랑 식사나 같이 하지 않겠나?’
자식들은 모두 성장해서 출가하고, 3선 의원으로 되시기 두 해 전에 부인과 사별하신 관계로 항상 저녁식사를 혼자 하시기 때문에 의원회관 에서 드시고 들어가시거나 혼자서 해결하시는 때가 많아 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승낙했다. 그런데, 당사 앞에서 내려서서는 택시를 떡 하니 잡으시는 것이 아닌가?
‘아니, 어디 멀리 가시 게요?’
‘아니, 이곳에서 가까워. 왜 돈 내라고 할까 봐? 아무리 내가 인색하기로 서니 내가 데리고 있는 보좌관 저녁식사 값, 정도야 못 내겠나? 허허 이 사람…품위도 없는 나 같은 인간이 이럴 때 품위유지비를 않 써보고 언제 써 볼까나!’
의원님과 함께 택시에서 내린 곳은 입구가 솟을대문으로 생긴 밖에서 보기에 비교적 너른 한옥 집 앞이었다.
‘자네, 이런 곳에 와 본 적 있나?’
‘이곳이 음식점 입니까?’
‘사람들은 이곳을 가리켜 방석집 이라고도 하고, 기생집 이라고도 하지, 자 들어 감세.’
나는 의외 였다. 평소 청빈한 정치인의 모델이라고 여겨왔던 의원님이 기생집이라니! 나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옆에서 모시는 사람의 예의상 얼굴에 그런 나의 시금털털한 감정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옥은 보기보다 크고 넓었다. 마당에는 사람들이 번잡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고,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 하며,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화장을 곱게 하고 한복을 차려 입은 아가씨들이 방을 들락 이는 것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의원님은 마당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 때였다. 뒤에서 대문을 열고, 다른 사람이 들어 오면서 의원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야월, 이렇게나 일찍 왔는가?’
‘노송, 자네도 이렇게나 잰 걸음으로?’
야월은 의원님의 아호였고, 뒤따라 들어오면서 인사를 한 그 사람은 보기에도 의원님과 동년배 쯤으로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차림새가 개량한복도 아닌 전통적인 한복에 두루마기까지 걸친 모습이 범상치가 않아 보였다.
‘요즈음 나라의 녹을 먹고 있는 패거리들은 기생집 행차가 다반사 이신가?’
‘허어 이 놈 보게나, 왠 종일 흙덩이나 주무르는 옹기 쟁이가 기생집이 왠 말 이여? 허허허…’
두 분은 막역지우 인듯 싶었다. 서로 놈자를 써 가며, 상대를 비하하는 지칭을 하여도 얼굴에 찡그리는 구석이 전혀 없어 보였고, 오히려 보기가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 참, 인사하지, 내 옆에서 나를 보좌하는 김 군 일세.’
‘나 노송, 윤상헌 이외다. 저런 타박네기를 윗사람으로 모시고 있으니 자네도 꽤나 고롭 겄구먼. 껄껄…’
‘이 사람이 농지거리는… 자, 그런데, 어디에 있나? 우리가 온 걸 모르나?’
‘모르긴 왜 몰라? 저기 나오는 거 안 보이남? 어이구 세상 물정만 어두운 줄 알았더니 눈도 어둡네 그랴. 저런 인물을 믿고 한양으로 올려보낸 민초들은 그 사정을 알라나 몰러? 허허..’
두 분의 서로에 대한 우스갯 소리는 멈출 줄을 몰랐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 나이가 되었을 때에 저런 친구를 갖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 멀리 에서 툇마루를 돌아서 한복을 입은 지긋한 중년의 여성이 툇 돌을 버선발로 내려서 우리 일행을 맞았다.
‘하이고, 신랑이 구천에서 되돌아 온 것도 아닌데, 버선발은…비향, 우리 왔네 그랴.’
노송이라는 분이 혀를 차면서도 웃음을 지어보이며, 그 비향 이라고 부르는 여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 때, 세 분을 사이에 두고 아주 잠깐이기는 해도 서먹한 바람이 스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에 들어서서 자리에 앉으시면서도 두 분은 서로가 상석에 앉아야 한다면서 연세 답지 않으시게 자리 다툼을 하시어 둘러선 나와 그 비향이라는 분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세 분의 아호가 정말 좋습니다. 어떤 사이들 이시길래…’’
‘좋아 보인다면 되었지. 야월(夜月), 노송(老松), 까지는 그래도 괜찮은데, 내가 항상 얘기 하지만 자네는 바꿔야 해. 비향(悲香)은 너무 슬퍼보인단 말이야. 쩝…’
친구 분이 혀를 차면서 그 여자 분을 가리 켰다. 여자 분은 상을 내오겠다고 하면서 자리를 비웠다. 곧 이어 상이 차려져 들어왔는데 나는 이런 기생집, 이름하야 방석집 에서는 구절판에 신선로를 곁들인 일품 한식상이 들어올 줄 예상했지만 상은 정말 뜻 밖의 구성을 갖고 있었다. 어느 시골에서 바로 먹다 남긴 듯한 무말랭이 무침에, 찐 호박 잎, 보기에도 뻑뻑하게 끓인 것 같은 시금치 국에, 삭힌 콩 조각이 그대로 떠 있는 청국장하며, 그야말로 완전, 칸츄리 스타일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역시 의원님 이셨다.
‘김 군, 자네 입맛에 맞을 런지 모르겠네. 우리야 이걸 먹고 커 놔서 이런 음식을 보면 환장을 하거든. 게다가 이렇게 우리 입맛에 딱 맞아 떨어지는 음식을 해주는 곳을 찾기가 이젠 힘들어. 게다가 이 상은 오래된 친구끼리의 식사다 보니 주인장이 돈을 받지도 않지만 말이야. 공짜 좋아한다고 나무라지는 말게. 꽁보리 밥이 넘기기에 조금 까끌 할 것이네만…’
나는 할 수 없이 건강식을 먹는다는 비장한 심정으로 밥을 넘겼다. 두 분은 상을 같이 받지 않으시고 상 옆에 앉아 계신 여인네를 상관도 않으시는 것 처럼 음식을 드시며 이야기 하기에 여념이 없으셨다. 그러나, 더 이상했던 것은 두 분의 그런 모습을 비향이라는 그 여인은 너무나 정겨운 눈매로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어지간히 식사가 끝나자, 술이 들어왔다. 하, 참! 나는 다시 또 이 곳에 따라 온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양주도, 맥주도, 소주도 아닌 이상한 밀주가 들어온 것이 아닌가?
‘맛은 예전이나 다름 없네, 비향! 이 술 이름이 무어라 했었지?’
‘구천주(九天酒)요.’
의원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 술의 이름이 붙여진 연유는 이러했다. 그 술은 비향의 모친 되시는 분의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으로 빚어진 밀주라고 하는데, 그 독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나, 목으로 넘기기 에는 설탕 물 같아 홀짝 홀짝 들이키다가는 몇 순배 돌기도 전에 바로 뻗어버린 다고 해서 구천으로 직행하는 술이라고 일컬어 붙여진 이름 이라고 했다. 나도 곁다리로 한 잔 들이켰는데 혀 끝에서는 달콤하고 목구멍에서는 화사하고, 뱃속에 들어가니 용암덩어리 였음을 실감했다. 정종 잔으로 두 잔 밖에 마시지 않았는데도 머리가 어질어질 하고, 기도는 화닥 증이 솟구쳐서 어르신들이 주위에 계시기는 했어도 넥타이를 느슨하게 하고 셔츠의 윗 단추를 끄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자네, 술도 제대로 먹질 못하는 것을 보니 저 눔과 한 패거리는 분명헐 세…’
친구 분이 말씀하셨다.
‘비향이 자네도 오늘 같은 날, 한 잔 받지 그러나?’
의원님이 그 여인에게 권주 하였고, 그 여인은 그 독한 술을 눈 하나 깜짝하질 않고 받아 마셨다.
‘옳거니, 역시 비향이야. 내가 예전부터 그러질 않았나? 무끼는 역시 어디를 가더라도 테가 난다니깐 두루…’
‘비향이 자네, 이렇게 셋이서 보는 것이 5년 만인가? 자네도 세월은 어쩔 수 없나 보네. 내가 얘기 한 것은 생각해 보았나?’
‘글쎄요. 아직 저만 바라 보고 있는 아이들이 30여명이 넘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詩書畵音(시서화음)의 기본과 예법, 풍류를 가리키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터인데…’
‘어허, 술 맛 가시게 둘이서 무슨 밀담이여? 그 얘기는 나중에 험세.’
술을 더 올리겠다고 그 여인이 방을 나간 사이에 나는 의원님께 비향이라고 하는 분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그녀는 우리나라 전통 기녀의 맥락을 잇는 국보급 보물중의 보물이라는 얘기셨다. 이제는 몇 사람 남지 않은 저런 여인 들로 해서 우리의 기생 문화가 조금이나마 정통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극찬의 말씀이셨다. 모친도 죽을 때까지 기적(妓籍)을 지니고 있었으며, 시서화에 능했을 뿐더러 명창들도 혀를 내둘렀다는 그 모친의 소리에 대한 명성은 자자했다고 한다. 그녀도 소싯적 에는 자신에게 내려진 기녀의 운명에 대해서 벗어나려고도 했지만 할 수 없이 이제는 전통 기생의 틀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일에 앞장서는 입장으로 바뀌어진 삶을 살고 있다고 설명해 주셨다. 덧붙여 친구 분인 노송 윤 선생님에 대한 설명도 해 주셨는데, 그 분은 아직까지 총각으로 살고 있는 유명한 도예가 라는 것이었다. 나도 언젠가 이름을 들어 보긴 한 것 같았지만 정확히 아는 바는 없었다. 세 사람 모두가 같은 고향 사람 이었고, 이제는 서로가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이렇게 가끔 같이 저녁식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조금 밖에 마시지 않았지만 그 구천주는 나의 머릿 속을 대번에 휘 집고 있어서 의원님이 해주시는 말씀을 전부 다 들었다고는 말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저 반복적으로 그러려니 하는 고갯짓으로 응대하고 있을 뿐, 나는 독주에 가까운 그 술의 술기운으로 인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해야 옳았다.
‘허어, 술 몇 잔에 젊은이가 이렇듯 허하게 무너져서야, 어디 나랏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나 몰라.’
‘아니, 이 사람이 그 걸죽한 주둥이를 어디 이런 고고한 선비 한테 놀리는가? 이래 뵈도 00, 0씨 권문세가의 종질인데…허 참…’
의원님은 술 몇 잔에 맥을 못추고 허덕대는 나를 변호 하시느라 바쁘셨다. 나는 의원님의 바램에도 아랑곳 하질 않고 기어이 상에 어푸러 졌다. 정신은 말똥말똥 한데 도저히 몸을 가누질 못했기에…
‘상 옆에 누이시지요. 상체를 시원하게 해주면 곧 있어서 정신을 차릴 것입니다.’
비향이라는 여인의 음성이 들리고 나는 상 옆에 방석과 보료를 벗삼아 버릇없게도 떡 하니 대자로 누워서 해롱대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있자니 천장이 빙빙 돌고 있어서 눈을 감은 채로, 술이 깨기를 기다렸다. 세 분은 내가 정신을 놓고 완전히 맛이 간 줄로 아시고 얘기를 계속하시는 것이었다.
‘세월은 이리도 덧이 없네 그려, 야월, 그렇지 않은가?’
‘그렇지? 젊음이라는 것이 영원히 머물러 우리 곁에서 빛을 밝힐 것으로 알았던 것이 엊그제 같았는데…자네도 이제, 혼자 살 나이는 지났어.’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가? 비향이 나를 돌아다 보기나 허냔 말이지, 않 그런가?’
‘두 분 다 농이 지나치십니다. 제가 뭐 볼 게 있다고…’
‘아니지, 비향이 자네의 고매한 콧대야 내가 잘 알지, 어떤 인간도 자네에게 손 끝 하나 대질 못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거늘…’
노송이라는 분은 비향이라는 여인과 오래 전부터 교분을 지녀 왔던가 싶다. 그러나, 의원님께서도 그에 못지 않은 교분을 그 여인과 쌓아 왔음도 얘기 속에서 느낄 수 있었고…
‘비향, 그 말은 노송의 말이 맞네 그려, 우리 셋이 지냈던 젊은 날이 이제는 다시 돌아 올 수는 없지 않은가? 그 추억을 파먹으며 살고 있는 노송의 괴로움을 자네도 이제는 이해해야 할 걸세. 그래서 내가 청을 넣은 것이고…’
‘청은 무슨 청!, 이리 살면 되는 것이지. 나는 아무런 보답도 필요 없네. 다시 비향과 산다 한들, 야월, 자네가 없고야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 라구, 자네가 서울로 올라가서 정객이 되고, 혼인을 하는 바람에 우리 셋의 삶은 그 세월 속에서 멈 춘 것이야.’
노송의 나무람에 의원님은 할 말을 잊은 것 같았다. 비향의 음성이 연이어 졌다.
‘이제 예전의 일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에는 저도 공감합니다. 이제 저희들은 젊지 않지요. 앞으로 살아있는 날들을 정리하는 것 만이 남았는데 또 무슨 인연을 구가한다는 것이 흔쾌하지 만은 않군요.’
세 사람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세월의 앙금이 잔잔히 가라앉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기에…
‘야월, 그 날의 일들이 눈에 선하네. 이렇게 술잔을 앞에 두고 있으니 그 날이 그리워 지는 것을 어찌 할 수가 없구만.’
노송님의 술 넘기는 소리가 너무나 똑똑하게 들렸다.
‘노송, 비향이, 내가 너무 이기적 이었다는 것은 인정하네. 그러나, 이렇듯 긴 세월을 홀로 보내는 자네 두 사람을 대하니 살아 온 내 세월이 부끄럽기만 하네 그려.’
‘아닐세, 나야 내 손 안에서 언제나 비향이 몸매 같은 자기가 구워져 나오고, 자네야 언제나 손 만 닿으면 이렇게 자리라도 같이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네.’
‘저도 술 한잔 주시려우?’
비향이라는 여인의 갑자기 놓아지는 말 투에서 세 사람의 시간을 뛰어넘는 격이 느껴지고 있었다. 나는 정신이 말똥말똥해져 갔지만 짐짓 모르는 척하고 술에 취한 척 자리에 누워서 세 분의 지난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때 였다. 술을 받아 든 비향이라는 여인의 소리 한 자락이 방 안을 흔들었다. 그 소리는 탁 가라앉은 것 같으면서도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 독특한 청아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 이야, 이리 보아도 내-사-랑…’
‘얼쑤’
노송 님의 추임새와 더불어 비향님의 소리 자락은 세 사람의 술좌석을 아스라한 과거의 시점으로 돌려 놓고 있었다. 세 사람의 감추어 졌던 야사는 의원님과 노송님의 주고 받는 대화 속에서 과거로 달음박질 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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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헌이, 자네 왔는가?””
““민순가? 나 벌써 왔네. 은하는 아직 않 오고? 주인공이 오질 않으면 어찌 하겠다는 건지…””
““곧 오겠지, 그런데, 그 옷 차림새는 무엔가? 곡마단의 어릿광대도 아니고!””
““아니 이런 망발이 있나? 예술을 모르는 무식한 자가 어찌 색을 논할 수 있으리…이것이 이래 뵈도 선친이 외국 에서 들려 오신 옷일새 그려. 내 은하에게 뵈 주려고 이리 차려 입고 왔는데, 무에, 곡마단 어쩌고 하는 해괴한 소린 또 무언고?””
““아닐세, 자네 선친을 욕되게 할 생각은 없었네만, 거 보기에 좀 남사 시럽구만.””
그때, 방문을 열고 젊은 여인이 들어섰다. 두 남정네는 넋을 잃고 쳐다 보기에 충분했던 여인은 지금의 비향이었다. 본명은 은하 였고…
““오라버니들 언제 오셨어요? 제가 늦었지요? 어머님께서 하도 다짐을 하라 시기에 이내 내빼다 보니 이리도 늦었지 뭡니까?””
““그 놈의 기생 타령? 이젠 듣기에도 신물이 나네, 아니 평양 감사도 지 싫으면 그만인데, 뭐 내세울 거라고 기생 질을 대물림 하려 하누? 앞날이 구만리 같은디…쩝쩝’
““그래도 그리 말하면 쓰나, 은하 모친이야, 장안이 떠들썩 할 정도의 명창에, 전국에서 기적 이나마 올리려고 하루가 멀다 하고 촌 각시 들이 들이 닥치는 데, 정작 피붙이는 관심도 없다 하니 애가 끓어서 하시는 말씀 이시겠지.””
““암튼 내는 그게 더 못마땅하다는 말일 세. 아무튼 그건 그렇고, 은하 동생은 마음의 결정을 보았는가?””
““저도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오라버님, 두 분 중에서 한 사람을 고르라고 하신 것은 정말 어려운 결정이라….그래서 말인데, 술로 내기를 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하면서 은하는 뒷 켠에 감추고 온 술과 술잔을 내밀었다.
““이건 불 공평하지 싶은데…나야 몸이 허약해서 서울에서 공부도 잠시 접고 고향에 내려와 있지만 상헌 이야 허구 헌날, 이천에서 가마 앞에 앉아 술로 세월을 보냈을 것인데, 이건 기울어도 너무 기우는 승부가 아닌가 말이야?’
““민수 이 사람, 무슨 말을 그리 섭하게 하나? 아니 가마에 불 때는 일이 술 한잔 걸치고 될 성 싶은 일인 줄 아나? 어림 없는 소리. 스승님 아시면 경을 칠 소리! 내가 보기에 아주 적당한 내기 일세.””
““그렇다면 우리 셋이서 같이 술을 먹어 봄 세나. 술이라고 하면 은하 동생도 동네가 짠 하게 유명하니 같이 먹어보는 것이 어떻겠나?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남는 자가 결정하면 어떻겠냐 이거지.””
세 사람은 의기가 투합되어 술을 건네기 시작했다. 참빗으로 머리를 곱게 빗어 올려 묶은 은하의 머리 결은 반짝이다 못해 파리가 낙상을 할 정도의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있었고, 그 두상의 아리따움은 남정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한복이 그렇게도 잘 어울릴 수 없는 촉 쳐진 어깨하며, 다소곳한 자태는 내기를 하고자 부추 키기에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방안의 화촉 보다도 그 빛을 밝게 여며주고 있었다. 술이 돌면 돌수록 은하의 화색은 도화빛으로 변해 갔고, 두 남정네의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잔 속에서 고즈넉한 여유로움이 넘쳐 흘렀다. 보리밟기를 끝내고 춘절을 기다리는 방안은 화롯불의 불씨 튀는 소리와 더불어 그 온기로 인해 가뜩이나 독한 술의 취기를 고조시키고 있었고…
““이거, 술이 꽤나 독하구먼. 내 윗도리 하나 벗음세.””
상헌이가 먼저 웃옷을 벗었다. 가마를 돌보는 막일을 하다 보니 상헌 이의 몸은 구릿 빛의 울퉁한 근육들로 가득했기에 은하는 차마 고개를 제대로 두질 못했다. 그러나, 세 사람의 사이에 오가는 술잔들로 인해 그 서먹함이 어느 사이 엔가 사라지고…나도 어쩌지 못하였지만 질세라, 빈약한 몸이어도 젊음의 치기로 인해 웃통을 벗어 제 꼈다.
““자네, 공부만 하는 서생인줄 알았는데, 보기 보담 몸이 실하네 그려.””
상헌이는 나를 놀리고 있었다. 두 남자는 둘을 사이에 두고 술을 건네는 여인네의 자태에 혹하여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음에도 서로를 향한 경쟁심에는 한치도 양보가 없었다.
““오라버니 들도 벗으시는데 제가 가만 있으면 내기가 아닙지요.””
은하가 이번에는 저고리를 내렸다. 두 남자는 자신들이 그 행위를 부추킨 것 같아 어찔하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마음 속으로는 여인네의 속곳을 보게 되는 것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옳거니, 내기는 내기니, 당연히 그래야지.””
술잔은 포석정의 와선골을 따라 물과 같이 흘러 가듯이 서로에게 안겨졌다. 술이 더해질수록 세 사람은 부끄러움도 없이 내기라는 생각에 하나, 둘 자신의 옷을 벗어가고 있었고, 안주도 없이 은하의 모친이 자랑하는 밀주를 더웁기 그지없는 방안에서 들이키고 있는 세 사람은 죽기를 작정한 것이 틀림이 없었다.
““어, 이거 취한다. 근데, 자네는 벌써 옷가지가 하나도 없는 게야? 이 사람, 이거 속내가 시커멓구먼,””
벌써 나체가 되어 아랫도리를 까 내놓고 있는 나와 달리 상헌이는 그 외국에서 들려 왔다던 옷가지로 인해 두어 가지가 아직 몸에 걸쳐져 있었다. 은하는 나와 보조를 맞추었는지 이미 나신이 되어 입고 온 치마로 앞섶을 가리고 있었다. 상헌이 에게 술잔이 돌아갈 때 쯔음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은하가 단심가를 불렀다. 나는 그녀의 애닯은 소리를 뒤로 하면서 취기를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지고… 이에 힘을 얻은 듯, 상헌이가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상헌이도 취기가 극에 달해 있기는 마찬가지 였다. 쓰러진 나를 대신해서 다시 술잔을 받아 든 상헌이는 술잔을 털어 넣기도 전에 바닥에 머리를 박고 쓰러졌다. 두 사람 모두, 정신은 말똥말똥 했지만 몸을 가누기가 여의치 않았다. 소리를 하다 말고 은하가 웃음을 흘리며, 바닥에 누워 멍한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 보고 있는 남정네들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이 내기에 이기는 것이라 하셨지요? 자 이제, 제가 마음을 결정 했습니다. 두 분 오라버니 모두 제 것 입니다. 모두 제 마음대로 할 것이니, 오늘 밤은 딴 데 아무데도 못 가십니다.””
딴 곳에 갈 수도 없었다. 술은 거나하게 취한 상태고, 상헌네 텃밭지기의 별채에 들어와 있는 세 사람은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을 수도 없이 이 밤을 지낼 수 밖에 없었으니까. 은하는 바닥에 널 부러져 있는 남정네들의 몸 위에 아무렇게나 가리 워져 있는 옷가지를 거두어 냈다. 두 남자 모두, 비실비실 웃으면서 자신의 몸 위에 걸쳐진 옷을 알몸으로 거두어 가는 은하의 가녀린 몸매를 극한 취기 속에서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들 있었다. 누워있는 상헌의 몸으로 은하가 다가 앉았다. 신기한 듯이 내려다 보고 있는 상헌의 물건은 취기에도 아랑곳 하질 않고 천장을 향해 그 기세를 드높이고 있었고, 나는 그 모양새가 하도 우람하여 엎드려 정신을 가다듬으면서도 그 물건 한번 실하네라는 감탄을 절로 쏟아내고 있었다.
““상헌이 오라버님, 정신 차리시와요. 어찌 제 소유라고 말씀 드렸음에도 이리 마음 씀이 허허로우 신지요? 깔깔깔””
은하는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상헌이의 널 부러진 배위에 몸을 실어 그 우람한 물건을 입안에 넣으려 하고 있었다. 그걸 이미 알고 있는지, 상헌이는 웃음을 한 가득 얼굴에 담으면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나는 취기가 엄습하면서도 질세라, 은하의 젖을 향해 손을 뻗쳤다. 은하는 상헌이의 좇을 핥으면서도 나에게 젖을 내주기 위해 몸을 틀었다.
““민수 오라버니도 제 것임은 다를 바 없습니다. 자요!””
두 남자는 한 여자를 동시에 품으면서도 각기 서로가 그녀를 차지 한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마도 취기가 가져다 주는 착각 이었던가 싶었다. 나는 상헌의 좇을 임에 물고 진저리를 쳐대는 은하의 젖을 보듬어 흡사 그 행위를 격려라도 하듯이 주물러 주고 있었다. 얼마 있질 않아서 은하는 상헌의 물건에서 고개를 반사적으로 일으켜 세우며 구역질을 한다. 공중으로 상헌의 정액이 춤사위를 펼치며, 잠시나마 상헌은 사정의 쾌감을 안고서 잠에 빠지고…은하는 입가를 훔치면서 그 옆에서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있는 나의 몸 위로 자신을 포개어 온다.
““상헌이가 옆에 있는데 어쩔라구?””
““오라버니들 모두 정신이 맑은 것을 제가 모를 줄 알고요? 제 것을 제가 갖겠다 는데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야요.””
은하는 상헌이 에게 해 주던 것처럼 내 좇을 베어 물었다. 나는 생전 처음 여인네의 입안이 그리도 느물대는 것인지 처음 느꼈다.
““민수 오라버니, 저는 두 분을 모두 놓칠 수 없어요. 어머님이 저에게 그러셨지요. 기녀는 평생 정인을 하나만 두어야 한다고요. 저는 그럴 수 없다고 했지요. 저에게 두 분, 오라버니는 어느 분이나 매한가지 여요.””
은하는 기녀가 되기로 결심을 하였던가 보다. 내 좇을 빨고 있는 그녀를 끌어 올려서 입을 맞추었다. 내 위에서 입을 맞추는 사이, 나는 그녀의 엉덩이가 뒤로 들리는 것을 느꼈고, 옆에 누워있다고 생각했던 상헌이가 보이질 않았다. 나와 입을 맞추던 은하가 고개를 쳐들면서 뒤를 돌아다 보았다. 상헌이 였다. 빙글빙글 웃으면서 나와 입을 맞추는 모습을 보면서 상헌이는 은하의 씹에 뒤에서 쥐불을 놓고 있었다. 마을 동산의 마루턱을 붉고 둥글게 수놓았던 쥐불처럼, 그렇게 상헌이는 그의 늠름한 좇을 은하의 씹 구녕에 박고서 휘돌리고 있었다. 그녀의 궁둥짝을 마당만한 손바닥으로 척척 쳐내면서 상헌이는 나와 은하의 입맞춤을 방해라도 하듯이 좇을 찔러댔다. 은하는 갑자기 까르르 웃으면서 상체를 앞으로 쑥 빼냈다. 그러니 그때까지 은하의 씹 안에 담겨있던 상헌이의 좇이 어영부영 빠져 버리고 잽싸게 은하는 자신의 밑에서 곧추 세워져 있는 내 좇 위에 말 안장에 걸터 앉듯이 씹을 꿰 맞추어 버리고…황망히 뒤에서 서있던 상헌이는 이에 뒤질세라 내 좇이 박혀있는 은하의 씹에 자신의 좇을 겨냥하고 서있다.
“동거동락에 동병상련이라, 어디 씹 동서끼리 즐겨 볼까나?””
상헌이는 은하의 찌푸리는 표정도 아랑곳 하질 않고 내 좇이 박혀있는 은하의 씹구녕에 자신의 거물을 더하여 박아대기 시작했다. 은하의 씹살이 채 감겨오기도 전에 불뚝거리는 상헌이의 좇대가 내 좇에 아주 가깝게 밀착된 느낌을 전달하면서 세 사람은 이제까지 맛 볼 수 없었던 환희의 극치를 체험하고…내 위에서 고통스러운 듯이, 그렇지만 간간히 웃음을 머금은 채로, 은하는 나와 상헌의 두 좇을 한 보지에 거뜬히 받아내고 있었다. 세 사람은 웃어 제끼느라 경황이 없었다. 서로의 몸을 탐한다 라기 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심정으로 섹스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미묘할 정도로 서로의 마음에 행위로서 보답하는 것이 마치 가야금 병창의 묘한 여운 같았다고나 할까? 은하는 소리쳤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나 허억, 허억, 죽어요, 나 죽어요.허억 헉헉…””
나는 상헌이 보다 먼저 사정하고 말았다. 나의 좇이 사정과 더불어 하릴없이 빠져 나오는데 싸 놓은 정액의 미끈 거림이 더욱 장렬한 쾌감을 선사하는지, 내 위에서 눈을 감고 몽환에 빠져 있는 은하의 얼굴에서는 의미 있는 미소가 번졌다가는 사라 지고를 반복했다. 이미 늘어져 축 쳐진 내 섶 위로 두 사람이 질퍽대면서 흩뿌리는 씹 물이 비오듯 쏟아지고, 상헌은 그녀의 보지에 절구질 하듯이 그 절구공이를 푹푹 대며 쳐 박고… 그에 따라 은하는 내 위에서 그 자세 그대로 입을 벌리면서 온갖 신음과 교성을 내 얼굴위로 흐르는 침과 함께 토해 놓았다. 나는 세월이 흘러 오랜 후에도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곧 이어 상헌이는 억 하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은하의 씹에 좇을 묻은 채로 은하의 등위로 널 부러 졌다. 나는 무겁기는 했어도 내 위에 있는 은하와 땀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장난기 어린 상헌이와 함께 파안대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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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이 이미 다 깨었음에도 세 분의 예전 얘기를 듣고 놀라질 않을 수 없었다. 그 옛날에 그것도 쓰리썸 이라니!
‘야월, 나는 자네가 비향이를 보질 못하고 서울로 다시 올라가고 나서 한동안 자네를 보지 않으려고 했었지. 그것도 혼인 때문에 기녀의 길로 접어든 비향이를 그렇게 쉽사리 잊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화가 났었던 게야.’
‘그게 아닌 것은 노송, 자네도 잘 알지 않은가?’
‘저는 아무런 아쉬움이나 섭섭함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두분 오라버니를 평생의 정인으로 삼고 살았으니까요. 저에게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지만 기녀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는지 모친의 가르침대로 두 오라버님 이외에 마음 속의 정인을 다시 두기 어렵더군요. 그러니 의원님께서도 이제는 저에게 미안한 마음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날, 저는 의도적으로 술을 갖고 갔지요. 어차피 기녀가 되기로 작정한 이상, 두 오라버니를 한꺼번에 갖고 돌아서리라고 결심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노송 오라버니가 한 평생 혼자 사시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제가 더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한가? 자네나 나나 비향이 이렇게 셋이서 이렇게 세월이 흘러도 그 날을 가슴속에 간직하면서 구천주를 앞에 두고 옛일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축복 받았다고 나는 생각하네.’
노송님이 다시 술을 들이켰다. 어지간히 얘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되는 타이밍에 나는 끙 하는 신음을 내면서 술에서 깨는 척 일어났다.
‘허어 젊은 사람이 그렇게 술에 약해서야… 쯧쯧…요즈음 것들은 저래서 풍류를 즐길 여력조차 없는게야….쩝’
나는 계면쩍은 표정으로 일어나 옷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세 분의 표정을 살폈다. 어지간히 거나하게 취기가 오른 표정이셨어도 예전의 아련한 추억을 반추하는 자리라 그랬던지 세 분의 표정은 젊은이의 그것 못지 않았다. 오히려 요즈음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성적인 행각들이 천박하게만 느껴졌던 것은 나만의 잘못된 생각이었을까? 나는 그 날 저녁, 의원님을 존경해야 될 한가지 이유를 하나 더 얻었다. 그것은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정객이라는 점 이었다.
-끝-
의원님을 모신 지가 벌써 6년이 되어 간다. 나는 새해 첫 날이 엊그제 였던 것 같은데 벌써 춘 삼월이라는 의원님의 말씀에 그제서야 지나간 시간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문중의 어른들을 모시고 얘기를 할 때면 국운의 향방을 손에 쥐고 있는 정객들이 어찌 그리 중심이 없이 철새 같은 행보를 하는가 하며, 그 주위에서 그것도 직장이라고 민생고를 해결하고 있는 나를 은근히 꾸짖는 듯한 말씀을 하시는 것을 자주 들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모시고 있는 의원님께 존경을 금할 수 없음을 항상 느낀다. 무엇보다도 청렴하시기가 그만이었기 때문이었다. 운전기사가 없으신 것은 물론이고, 가고자 하는 곳의 교통상황이 여의치 못할 때는 스쿠터를 타고 가시는 민첩성과 경제성을 겸비 하셨음은 칭찬 받아 마땅한 자세였다. 내가 평소에 이런 얘기들을 사람들에게 할 때면 의례, 그건 표밭을 위한 전시효과가 아니냐고 비아냥 대곤 했지만 서도…나는 언젠가 국회에 상정되었던 어떤 표결 안에 대하여 당내 의결에 따라 무력승인 저지를 위해 국회에서 밤을 세우셨던 일이 생각나곤 한다. 나는 그때, 의원님의 갈아 입으신 양복을 받아다가 드라이클리닝을 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 옷을 받아서 세탁소에 다녀오면서 깜짝 놀랐었다. 항상 입고 다니시는 양복 웃 저고리의 안쪽 내피, 곳곳을 수선한 흔적으로 인한 것이었다. 나는 의원님께서 옷을 갈아 입으실 때에 여쭈어 본 적이 있다.
‘의원님, 양복이 많이 낡았던데요…’
‘그게 무에 대단한 일이라고…사람의 의복은 육신과 같은 것이지. 내가 이야기 하나 해줄까? 언젠가 내가 지역구에 내려가 읍내에서 버스를 타고 가던 도중에 있었던 일인데 말이야. 내 뒷좌석에는 스님 한 분과 애기를 안고 있는 부인이 타고 있었다네. 아이가 계속해서 찡얼대는 폼이 신경이 쓰이긴 했는데, 차가 언덕받이 에서 급회전을 하다가 그만 스님의 옷에 아이가 잠시 전에 먹었던 우유를 걸쭉하게 모두 토해 놓았지. 자네도 애기가 있어서 알겠지만 애기가 토해 놓는 우유는 정말 냄새가 고약하질 않나? 그런데 스님께서는 아무런 화도 내시질 않고 허허 웃으시면서 말씀하시는 게야.’
‘뭐라 셨는데요?’
‘당황하는 옆 자리의 부인에게 하시는 말씀이 단 한 마디였지. 허허 웃으시면서 닦으면 된다고만 하시더군. 나는 버스 창문을 모두 열어놓아도 빠지지 않는 그 냄새에 정신이 나갈 지경인데도 그 스님은 닦으면 되지 무엇이 걱정이냐는 말씀이셨던 게야. 자네, 이 세상에 살면서 가장 닦아내기 힘든 것이 무엇인지 아나? 그건 사람의 마음이지, 아무리 수행을 하고 반짝반짝 광을 다 내었다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때가 끼고, 더러워지고, 윤색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그깟 오물 쯤이야 무슨 대수냐는 깊은 의미의 선문답 이었어. 나는 그 날 이후로 내가 소유하고자 하는 새로운 것들에 대한 미련을 버렸네. 나 나름대로는 독실한 신앙인 이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나랑 종교와 관점이 틀리기는 해도 스님의 그 한마디에 나는 많은 것을 깨달 을 수 있었어. 그저 나에게 현재 주어져 있는 물질과 상황에 자족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며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 모든 종교가 주는 교훈이 그와 같겠지만…’
그러던 의원님께서 어느 수요일 저녁, 나와 같이 저녁을 먹고 싶다고 하시었다. 나는 의원님께서 소속되어 계신 상임위원회에 다음 주까지 갖고 가실 의견서를 작성해서 검토하느라 밤을 샐 요량이었다. 바쁘기도 했지만 언제나 꼼꼼하게 조사된 사항에 대한 사실여부와 근거자료에 대해서 확인을 직접 하시기 때문에 보좌관의 직분인 나로서는 재삼,재사 검토하고, 수정하고, 훑어봐야 하는 일정은 언제나 빠듯했다.
‘오늘 바쁘지 않으면 나랑 식사나 같이 하지 않겠나?’
자식들은 모두 성장해서 출가하고, 3선 의원으로 되시기 두 해 전에 부인과 사별하신 관계로 항상 저녁식사를 혼자 하시기 때문에 의원회관 에서 드시고 들어가시거나 혼자서 해결하시는 때가 많아 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승낙했다. 그런데, 당사 앞에서 내려서서는 택시를 떡 하니 잡으시는 것이 아닌가?
‘아니, 어디 멀리 가시 게요?’
‘아니, 이곳에서 가까워. 왜 돈 내라고 할까 봐? 아무리 내가 인색하기로 서니 내가 데리고 있는 보좌관 저녁식사 값, 정도야 못 내겠나? 허허 이 사람…품위도 없는 나 같은 인간이 이럴 때 품위유지비를 않 써보고 언제 써 볼까나!’
의원님과 함께 택시에서 내린 곳은 입구가 솟을대문으로 생긴 밖에서 보기에 비교적 너른 한옥 집 앞이었다.
‘자네, 이런 곳에 와 본 적 있나?’
‘이곳이 음식점 입니까?’
‘사람들은 이곳을 가리켜 방석집 이라고도 하고, 기생집 이라고도 하지, 자 들어 감세.’
나는 의외 였다. 평소 청빈한 정치인의 모델이라고 여겨왔던 의원님이 기생집이라니! 나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옆에서 모시는 사람의 예의상 얼굴에 그런 나의 시금털털한 감정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옥은 보기보다 크고 넓었다. 마당에는 사람들이 번잡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고,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 하며,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화장을 곱게 하고 한복을 차려 입은 아가씨들이 방을 들락 이는 것이 한 눈에 들어왔다. 의원님은 마당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 때였다. 뒤에서 대문을 열고, 다른 사람이 들어 오면서 의원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야월, 이렇게나 일찍 왔는가?’
‘노송, 자네도 이렇게나 잰 걸음으로?’
야월은 의원님의 아호였고, 뒤따라 들어오면서 인사를 한 그 사람은 보기에도 의원님과 동년배 쯤으로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차림새가 개량한복도 아닌 전통적인 한복에 두루마기까지 걸친 모습이 범상치가 않아 보였다.
‘요즈음 나라의 녹을 먹고 있는 패거리들은 기생집 행차가 다반사 이신가?’
‘허어 이 놈 보게나, 왠 종일 흙덩이나 주무르는 옹기 쟁이가 기생집이 왠 말 이여? 허허허…’
두 분은 막역지우 인듯 싶었다. 서로 놈자를 써 가며, 상대를 비하하는 지칭을 하여도 얼굴에 찡그리는 구석이 전혀 없어 보였고, 오히려 보기가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 참, 인사하지, 내 옆에서 나를 보좌하는 김 군 일세.’
‘나 노송, 윤상헌 이외다. 저런 타박네기를 윗사람으로 모시고 있으니 자네도 꽤나 고롭 겄구먼. 껄껄…’
‘이 사람이 농지거리는… 자, 그런데, 어디에 있나? 우리가 온 걸 모르나?’
‘모르긴 왜 몰라? 저기 나오는 거 안 보이남? 어이구 세상 물정만 어두운 줄 알았더니 눈도 어둡네 그랴. 저런 인물을 믿고 한양으로 올려보낸 민초들은 그 사정을 알라나 몰러? 허허..’
두 분의 서로에 대한 우스갯 소리는 멈출 줄을 몰랐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저 나이가 되었을 때에 저런 친구를 갖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 멀리 에서 툇마루를 돌아서 한복을 입은 지긋한 중년의 여성이 툇 돌을 버선발로 내려서 우리 일행을 맞았다.
‘하이고, 신랑이 구천에서 되돌아 온 것도 아닌데, 버선발은…비향, 우리 왔네 그랴.’
노송이라는 분이 혀를 차면서도 웃음을 지어보이며, 그 비향 이라고 부르는 여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 때, 세 분을 사이에 두고 아주 잠깐이기는 해도 서먹한 바람이 스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에 들어서서 자리에 앉으시면서도 두 분은 서로가 상석에 앉아야 한다면서 연세 답지 않으시게 자리 다툼을 하시어 둘러선 나와 그 비향이라는 분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세 분의 아호가 정말 좋습니다. 어떤 사이들 이시길래…’’
‘좋아 보인다면 되었지. 야월(夜月), 노송(老松), 까지는 그래도 괜찮은데, 내가 항상 얘기 하지만 자네는 바꿔야 해. 비향(悲香)은 너무 슬퍼보인단 말이야. 쩝…’
친구 분이 혀를 차면서 그 여자 분을 가리 켰다. 여자 분은 상을 내오겠다고 하면서 자리를 비웠다. 곧 이어 상이 차려져 들어왔는데 나는 이런 기생집, 이름하야 방석집 에서는 구절판에 신선로를 곁들인 일품 한식상이 들어올 줄 예상했지만 상은 정말 뜻 밖의 구성을 갖고 있었다. 어느 시골에서 바로 먹다 남긴 듯한 무말랭이 무침에, 찐 호박 잎, 보기에도 뻑뻑하게 끓인 것 같은 시금치 국에, 삭힌 콩 조각이 그대로 떠 있는 청국장하며, 그야말로 완전, 칸츄리 스타일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역시 의원님 이셨다.
‘김 군, 자네 입맛에 맞을 런지 모르겠네. 우리야 이걸 먹고 커 놔서 이런 음식을 보면 환장을 하거든. 게다가 이렇게 우리 입맛에 딱 맞아 떨어지는 음식을 해주는 곳을 찾기가 이젠 힘들어. 게다가 이 상은 오래된 친구끼리의 식사다 보니 주인장이 돈을 받지도 않지만 말이야. 공짜 좋아한다고 나무라지는 말게. 꽁보리 밥이 넘기기에 조금 까끌 할 것이네만…’
나는 할 수 없이 건강식을 먹는다는 비장한 심정으로 밥을 넘겼다. 두 분은 상을 같이 받지 않으시고 상 옆에 앉아 계신 여인네를 상관도 않으시는 것 처럼 음식을 드시며 이야기 하기에 여념이 없으셨다. 그러나, 더 이상했던 것은 두 분의 그런 모습을 비향이라는 그 여인은 너무나 정겨운 눈매로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어지간히 식사가 끝나자, 술이 들어왔다. 하, 참! 나는 다시 또 이 곳에 따라 온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양주도, 맥주도, 소주도 아닌 이상한 밀주가 들어온 것이 아닌가?
‘맛은 예전이나 다름 없네, 비향! 이 술 이름이 무어라 했었지?’
‘구천주(九天酒)요.’
의원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 술의 이름이 붙여진 연유는 이러했다. 그 술은 비향의 모친 되시는 분의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으로 빚어진 밀주라고 하는데, 그 독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나, 목으로 넘기기 에는 설탕 물 같아 홀짝 홀짝 들이키다가는 몇 순배 돌기도 전에 바로 뻗어버린 다고 해서 구천으로 직행하는 술이라고 일컬어 붙여진 이름 이라고 했다. 나도 곁다리로 한 잔 들이켰는데 혀 끝에서는 달콤하고 목구멍에서는 화사하고, 뱃속에 들어가니 용암덩어리 였음을 실감했다. 정종 잔으로 두 잔 밖에 마시지 않았는데도 머리가 어질어질 하고, 기도는 화닥 증이 솟구쳐서 어르신들이 주위에 계시기는 했어도 넥타이를 느슨하게 하고 셔츠의 윗 단추를 끄르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자네, 술도 제대로 먹질 못하는 것을 보니 저 눔과 한 패거리는 분명헐 세…’
친구 분이 말씀하셨다.
‘비향이 자네도 오늘 같은 날, 한 잔 받지 그러나?’
의원님이 그 여인에게 권주 하였고, 그 여인은 그 독한 술을 눈 하나 깜짝하질 않고 받아 마셨다.
‘옳거니, 역시 비향이야. 내가 예전부터 그러질 않았나? 무끼는 역시 어디를 가더라도 테가 난다니깐 두루…’
‘비향이 자네, 이렇게 셋이서 보는 것이 5년 만인가? 자네도 세월은 어쩔 수 없나 보네. 내가 얘기 한 것은 생각해 보았나?’
‘글쎄요. 아직 저만 바라 보고 있는 아이들이 30여명이 넘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詩書畵音(시서화음)의 기본과 예법, 풍류를 가리키기에도 시간이 모자란 터인데…’
‘어허, 술 맛 가시게 둘이서 무슨 밀담이여? 그 얘기는 나중에 험세.’
술을 더 올리겠다고 그 여인이 방을 나간 사이에 나는 의원님께 비향이라고 하는 분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그녀는 우리나라 전통 기녀의 맥락을 잇는 국보급 보물중의 보물이라는 얘기셨다. 이제는 몇 사람 남지 않은 저런 여인 들로 해서 우리의 기생 문화가 조금이나마 정통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극찬의 말씀이셨다. 모친도 죽을 때까지 기적(妓籍)을 지니고 있었으며, 시서화에 능했을 뿐더러 명창들도 혀를 내둘렀다는 그 모친의 소리에 대한 명성은 자자했다고 한다. 그녀도 소싯적 에는 자신에게 내려진 기녀의 운명에 대해서 벗어나려고도 했지만 할 수 없이 이제는 전통 기생의 틀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일에 앞장서는 입장으로 바뀌어진 삶을 살고 있다고 설명해 주셨다. 덧붙여 친구 분인 노송 윤 선생님에 대한 설명도 해 주셨는데, 그 분은 아직까지 총각으로 살고 있는 유명한 도예가 라는 것이었다. 나도 언젠가 이름을 들어 보긴 한 것 같았지만 정확히 아는 바는 없었다. 세 사람 모두가 같은 고향 사람 이었고, 이제는 서로가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이렇게 가끔 같이 저녁식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조금 밖에 마시지 않았지만 그 구천주는 나의 머릿 속을 대번에 휘 집고 있어서 의원님이 해주시는 말씀을 전부 다 들었다고는 말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저 반복적으로 그러려니 하는 고갯짓으로 응대하고 있을 뿐, 나는 독주에 가까운 그 술의 술기운으로 인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해야 옳았다.
‘허어, 술 몇 잔에 젊은이가 이렇듯 허하게 무너져서야, 어디 나랏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나 몰라.’
‘아니, 이 사람이 그 걸죽한 주둥이를 어디 이런 고고한 선비 한테 놀리는가? 이래 뵈도 00, 0씨 권문세가의 종질인데…허 참…’
의원님은 술 몇 잔에 맥을 못추고 허덕대는 나를 변호 하시느라 바쁘셨다. 나는 의원님의 바램에도 아랑곳 하질 않고 기어이 상에 어푸러 졌다. 정신은 말똥말똥 한데 도저히 몸을 가누질 못했기에…
‘상 옆에 누이시지요. 상체를 시원하게 해주면 곧 있어서 정신을 차릴 것입니다.’
비향이라는 여인의 음성이 들리고 나는 상 옆에 방석과 보료를 벗삼아 버릇없게도 떡 하니 대자로 누워서 해롱대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있자니 천장이 빙빙 돌고 있어서 눈을 감은 채로, 술이 깨기를 기다렸다. 세 분은 내가 정신을 놓고 완전히 맛이 간 줄로 아시고 얘기를 계속하시는 것이었다.
‘세월은 이리도 덧이 없네 그려, 야월, 그렇지 않은가?’
‘그렇지? 젊음이라는 것이 영원히 머물러 우리 곁에서 빛을 밝힐 것으로 알았던 것이 엊그제 같았는데…자네도 이제, 혼자 살 나이는 지났어.’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가? 비향이 나를 돌아다 보기나 허냔 말이지, 않 그런가?’
‘두 분 다 농이 지나치십니다. 제가 뭐 볼 게 있다고…’
‘아니지, 비향이 자네의 고매한 콧대야 내가 잘 알지, 어떤 인간도 자네에게 손 끝 하나 대질 못했다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거늘…’
노송이라는 분은 비향이라는 여인과 오래 전부터 교분을 지녀 왔던가 싶다. 그러나, 의원님께서도 그에 못지 않은 교분을 그 여인과 쌓아 왔음도 얘기 속에서 느낄 수 있었고…
‘비향, 그 말은 노송의 말이 맞네 그려, 우리 셋이 지냈던 젊은 날이 이제는 다시 돌아 올 수는 없지 않은가? 그 추억을 파먹으며 살고 있는 노송의 괴로움을 자네도 이제는 이해해야 할 걸세. 그래서 내가 청을 넣은 것이고…’
‘청은 무슨 청!, 이리 살면 되는 것이지. 나는 아무런 보답도 필요 없네. 다시 비향과 산다 한들, 야월, 자네가 없고야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 라구, 자네가 서울로 올라가서 정객이 되고, 혼인을 하는 바람에 우리 셋의 삶은 그 세월 속에서 멈 춘 것이야.’
노송의 나무람에 의원님은 할 말을 잊은 것 같았다. 비향의 음성이 연이어 졌다.
‘이제 예전의 일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에는 저도 공감합니다. 이제 저희들은 젊지 않지요. 앞으로 살아있는 날들을 정리하는 것 만이 남았는데 또 무슨 인연을 구가한다는 것이 흔쾌하지 만은 않군요.’
세 사람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세월의 앙금이 잔잔히 가라앉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기에…
‘야월, 그 날의 일들이 눈에 선하네. 이렇게 술잔을 앞에 두고 있으니 그 날이 그리워 지는 것을 어찌 할 수가 없구만.’
노송님의 술 넘기는 소리가 너무나 똑똑하게 들렸다.
‘노송, 비향이, 내가 너무 이기적 이었다는 것은 인정하네. 그러나, 이렇듯 긴 세월을 홀로 보내는 자네 두 사람을 대하니 살아 온 내 세월이 부끄럽기만 하네 그려.’
‘아닐세, 나야 내 손 안에서 언제나 비향이 몸매 같은 자기가 구워져 나오고, 자네야 언제나 손 만 닿으면 이렇게 자리라도 같이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네.’
‘저도 술 한잔 주시려우?’
비향이라는 여인의 갑자기 놓아지는 말 투에서 세 사람의 시간을 뛰어넘는 격이 느껴지고 있었다. 나는 정신이 말똥말똥해져 갔지만 짐짓 모르는 척하고 술에 취한 척 자리에 누워서 세 분의 지난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때 였다. 술을 받아 든 비향이라는 여인의 소리 한 자락이 방 안을 흔들었다. 그 소리는 탁 가라앉은 것 같으면서도 사람의 폐부를 찌르는 독특한 청아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 이야, 이리 보아도 내-사-랑…’
‘얼쑤’
노송 님의 추임새와 더불어 비향님의 소리 자락은 세 사람의 술좌석을 아스라한 과거의 시점으로 돌려 놓고 있었다. 세 사람의 감추어 졌던 야사는 의원님과 노송님의 주고 받는 대화 속에서 과거로 달음박질 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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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헌이, 자네 왔는가?””
““민순가? 나 벌써 왔네. 은하는 아직 않 오고? 주인공이 오질 않으면 어찌 하겠다는 건지…””
““곧 오겠지, 그런데, 그 옷 차림새는 무엔가? 곡마단의 어릿광대도 아니고!””
““아니 이런 망발이 있나? 예술을 모르는 무식한 자가 어찌 색을 논할 수 있으리…이것이 이래 뵈도 선친이 외국 에서 들려 오신 옷일새 그려. 내 은하에게 뵈 주려고 이리 차려 입고 왔는데, 무에, 곡마단 어쩌고 하는 해괴한 소린 또 무언고?””
““아닐세, 자네 선친을 욕되게 할 생각은 없었네만, 거 보기에 좀 남사 시럽구만.””
그때, 방문을 열고 젊은 여인이 들어섰다. 두 남정네는 넋을 잃고 쳐다 보기에 충분했던 여인은 지금의 비향이었다. 본명은 은하 였고…
““오라버니들 언제 오셨어요? 제가 늦었지요? 어머님께서 하도 다짐을 하라 시기에 이내 내빼다 보니 이리도 늦었지 뭡니까?””
““그 놈의 기생 타령? 이젠 듣기에도 신물이 나네, 아니 평양 감사도 지 싫으면 그만인데, 뭐 내세울 거라고 기생 질을 대물림 하려 하누? 앞날이 구만리 같은디…쩝쩝’
““그래도 그리 말하면 쓰나, 은하 모친이야, 장안이 떠들썩 할 정도의 명창에, 전국에서 기적 이나마 올리려고 하루가 멀다 하고 촌 각시 들이 들이 닥치는 데, 정작 피붙이는 관심도 없다 하니 애가 끓어서 하시는 말씀 이시겠지.””
““암튼 내는 그게 더 못마땅하다는 말일 세. 아무튼 그건 그렇고, 은하 동생은 마음의 결정을 보았는가?””
““저도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오라버님, 두 분 중에서 한 사람을 고르라고 하신 것은 정말 어려운 결정이라….그래서 말인데, 술로 내기를 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하면서 은하는 뒷 켠에 감추고 온 술과 술잔을 내밀었다.
““이건 불 공평하지 싶은데…나야 몸이 허약해서 서울에서 공부도 잠시 접고 고향에 내려와 있지만 상헌 이야 허구 헌날, 이천에서 가마 앞에 앉아 술로 세월을 보냈을 것인데, 이건 기울어도 너무 기우는 승부가 아닌가 말이야?’
““민수 이 사람, 무슨 말을 그리 섭하게 하나? 아니 가마에 불 때는 일이 술 한잔 걸치고 될 성 싶은 일인 줄 아나? 어림 없는 소리. 스승님 아시면 경을 칠 소리! 내가 보기에 아주 적당한 내기 일세.””
““그렇다면 우리 셋이서 같이 술을 먹어 봄 세나. 술이라고 하면 은하 동생도 동네가 짠 하게 유명하니 같이 먹어보는 것이 어떻겠나?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남는 자가 결정하면 어떻겠냐 이거지.””
세 사람은 의기가 투합되어 술을 건네기 시작했다. 참빗으로 머리를 곱게 빗어 올려 묶은 은하의 머리 결은 반짝이다 못해 파리가 낙상을 할 정도의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있었고, 그 두상의 아리따움은 남정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한복이 그렇게도 잘 어울릴 수 없는 촉 쳐진 어깨하며, 다소곳한 자태는 내기를 하고자 부추 키기에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방안의 화촉 보다도 그 빛을 밝게 여며주고 있었다. 술이 돌면 돌수록 은하의 화색은 도화빛으로 변해 갔고, 두 남정네의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잔 속에서 고즈넉한 여유로움이 넘쳐 흘렀다. 보리밟기를 끝내고 춘절을 기다리는 방안은 화롯불의 불씨 튀는 소리와 더불어 그 온기로 인해 가뜩이나 독한 술의 취기를 고조시키고 있었고…
““이거, 술이 꽤나 독하구먼. 내 윗도리 하나 벗음세.””
상헌이가 먼저 웃옷을 벗었다. 가마를 돌보는 막일을 하다 보니 상헌 이의 몸은 구릿 빛의 울퉁한 근육들로 가득했기에 은하는 차마 고개를 제대로 두질 못했다. 그러나, 세 사람의 사이에 오가는 술잔들로 인해 그 서먹함이 어느 사이 엔가 사라지고…나도 어쩌지 못하였지만 질세라, 빈약한 몸이어도 젊음의 치기로 인해 웃통을 벗어 제 꼈다.
““자네, 공부만 하는 서생인줄 알았는데, 보기 보담 몸이 실하네 그려.””
상헌이는 나를 놀리고 있었다. 두 남자는 둘을 사이에 두고 술을 건네는 여인네의 자태에 혹하여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음에도 서로를 향한 경쟁심에는 한치도 양보가 없었다.
““오라버니 들도 벗으시는데 제가 가만 있으면 내기가 아닙지요.””
은하가 이번에는 저고리를 내렸다. 두 남자는 자신들이 그 행위를 부추킨 것 같아 어찔하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마음 속으로는 여인네의 속곳을 보게 되는 것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옳거니, 내기는 내기니, 당연히 그래야지.””
술잔은 포석정의 와선골을 따라 물과 같이 흘러 가듯이 서로에게 안겨졌다. 술이 더해질수록 세 사람은 부끄러움도 없이 내기라는 생각에 하나, 둘 자신의 옷을 벗어가고 있었고, 안주도 없이 은하의 모친이 자랑하는 밀주를 더웁기 그지없는 방안에서 들이키고 있는 세 사람은 죽기를 작정한 것이 틀림이 없었다.
““어, 이거 취한다. 근데, 자네는 벌써 옷가지가 하나도 없는 게야? 이 사람, 이거 속내가 시커멓구먼,””
벌써 나체가 되어 아랫도리를 까 내놓고 있는 나와 달리 상헌이는 그 외국에서 들려 왔다던 옷가지로 인해 두어 가지가 아직 몸에 걸쳐져 있었다. 은하는 나와 보조를 맞추었는지 이미 나신이 되어 입고 온 치마로 앞섶을 가리고 있었다. 상헌이 에게 술잔이 돌아갈 때 쯔음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은하가 단심가를 불렀다. 나는 그녀의 애닯은 소리를 뒤로 하면서 취기를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옆으로 쓰러지고… 이에 힘을 얻은 듯, 상헌이가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상헌이도 취기가 극에 달해 있기는 마찬가지 였다. 쓰러진 나를 대신해서 다시 술잔을 받아 든 상헌이는 술잔을 털어 넣기도 전에 바닥에 머리를 박고 쓰러졌다. 두 사람 모두, 정신은 말똥말똥 했지만 몸을 가누기가 여의치 않았다. 소리를 하다 말고 은하가 웃음을 흘리며, 바닥에 누워 멍한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 보고 있는 남정네들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이 내기에 이기는 것이라 하셨지요? 자 이제, 제가 마음을 결정 했습니다. 두 분 오라버니 모두 제 것 입니다. 모두 제 마음대로 할 것이니, 오늘 밤은 딴 데 아무데도 못 가십니다.””
딴 곳에 갈 수도 없었다. 술은 거나하게 취한 상태고, 상헌네 텃밭지기의 별채에 들어와 있는 세 사람은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을 수도 없이 이 밤을 지낼 수 밖에 없었으니까. 은하는 바닥에 널 부러져 있는 남정네들의 몸 위에 아무렇게나 가리 워져 있는 옷가지를 거두어 냈다. 두 남자 모두, 비실비실 웃으면서 자신의 몸 위에 걸쳐진 옷을 알몸으로 거두어 가는 은하의 가녀린 몸매를 극한 취기 속에서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들 있었다. 누워있는 상헌의 몸으로 은하가 다가 앉았다. 신기한 듯이 내려다 보고 있는 상헌의 물건은 취기에도 아랑곳 하질 않고 천장을 향해 그 기세를 드높이고 있었고, 나는 그 모양새가 하도 우람하여 엎드려 정신을 가다듬으면서도 그 물건 한번 실하네라는 감탄을 절로 쏟아내고 있었다.
““상헌이 오라버님, 정신 차리시와요. 어찌 제 소유라고 말씀 드렸음에도 이리 마음 씀이 허허로우 신지요? 깔깔깔””
은하는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상헌이의 널 부러진 배위에 몸을 실어 그 우람한 물건을 입안에 넣으려 하고 있었다. 그걸 이미 알고 있는지, 상헌이는 웃음을 한 가득 얼굴에 담으면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나는 취기가 엄습하면서도 질세라, 은하의 젖을 향해 손을 뻗쳤다. 은하는 상헌이의 좇을 핥으면서도 나에게 젖을 내주기 위해 몸을 틀었다.
““민수 오라버니도 제 것임은 다를 바 없습니다. 자요!””
두 남자는 한 여자를 동시에 품으면서도 각기 서로가 그녀를 차지 한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마도 취기가 가져다 주는 착각 이었던가 싶었다. 나는 상헌의 좇을 임에 물고 진저리를 쳐대는 은하의 젖을 보듬어 흡사 그 행위를 격려라도 하듯이 주물러 주고 있었다. 얼마 있질 않아서 은하는 상헌의 물건에서 고개를 반사적으로 일으켜 세우며 구역질을 한다. 공중으로 상헌의 정액이 춤사위를 펼치며, 잠시나마 상헌은 사정의 쾌감을 안고서 잠에 빠지고…은하는 입가를 훔치면서 그 옆에서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있는 나의 몸 위로 자신을 포개어 온다.
““상헌이가 옆에 있는데 어쩔라구?””
““오라버니들 모두 정신이 맑은 것을 제가 모를 줄 알고요? 제 것을 제가 갖겠다 는데 마다할 사람은 없을 것이야요.””
은하는 상헌이 에게 해 주던 것처럼 내 좇을 베어 물었다. 나는 생전 처음 여인네의 입안이 그리도 느물대는 것인지 처음 느꼈다.
““민수 오라버니, 저는 두 분을 모두 놓칠 수 없어요. 어머님이 저에게 그러셨지요. 기녀는 평생 정인을 하나만 두어야 한다고요. 저는 그럴 수 없다고 했지요. 저에게 두 분, 오라버니는 어느 분이나 매한가지 여요.””
은하는 기녀가 되기로 결심을 하였던가 보다. 내 좇을 빨고 있는 그녀를 끌어 올려서 입을 맞추었다. 내 위에서 입을 맞추는 사이, 나는 그녀의 엉덩이가 뒤로 들리는 것을 느꼈고, 옆에 누워있다고 생각했던 상헌이가 보이질 않았다. 나와 입을 맞추던 은하가 고개를 쳐들면서 뒤를 돌아다 보았다. 상헌이 였다. 빙글빙글 웃으면서 나와 입을 맞추는 모습을 보면서 상헌이는 은하의 씹에 뒤에서 쥐불을 놓고 있었다. 마을 동산의 마루턱을 붉고 둥글게 수놓았던 쥐불처럼, 그렇게 상헌이는 그의 늠름한 좇을 은하의 씹 구녕에 박고서 휘돌리고 있었다. 그녀의 궁둥짝을 마당만한 손바닥으로 척척 쳐내면서 상헌이는 나와 은하의 입맞춤을 방해라도 하듯이 좇을 찔러댔다. 은하는 갑자기 까르르 웃으면서 상체를 앞으로 쑥 빼냈다. 그러니 그때까지 은하의 씹 안에 담겨있던 상헌이의 좇이 어영부영 빠져 버리고 잽싸게 은하는 자신의 밑에서 곧추 세워져 있는 내 좇 위에 말 안장에 걸터 앉듯이 씹을 꿰 맞추어 버리고…황망히 뒤에서 서있던 상헌이는 이에 뒤질세라 내 좇이 박혀있는 은하의 씹에 자신의 좇을 겨냥하고 서있다.
“동거동락에 동병상련이라, 어디 씹 동서끼리 즐겨 볼까나?””
상헌이는 은하의 찌푸리는 표정도 아랑곳 하질 않고 내 좇이 박혀있는 은하의 씹구녕에 자신의 거물을 더하여 박아대기 시작했다. 은하의 씹살이 채 감겨오기도 전에 불뚝거리는 상헌이의 좇대가 내 좇에 아주 가깝게 밀착된 느낌을 전달하면서 세 사람은 이제까지 맛 볼 수 없었던 환희의 극치를 체험하고…내 위에서 고통스러운 듯이, 그렇지만 간간히 웃음을 머금은 채로, 은하는 나와 상헌의 두 좇을 한 보지에 거뜬히 받아내고 있었다. 세 사람은 웃어 제끼느라 경황이 없었다. 서로의 몸을 탐한다 라기 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심정으로 섹스라고 이름 붙이기에도 미묘할 정도로 서로의 마음에 행위로서 보답하는 것이 마치 가야금 병창의 묘한 여운 같았다고나 할까? 은하는 소리쳤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나 허억, 허억, 죽어요, 나 죽어요.허억 헉헉…””
나는 상헌이 보다 먼저 사정하고 말았다. 나의 좇이 사정과 더불어 하릴없이 빠져 나오는데 싸 놓은 정액의 미끈 거림이 더욱 장렬한 쾌감을 선사하는지, 내 위에서 눈을 감고 몽환에 빠져 있는 은하의 얼굴에서는 의미 있는 미소가 번졌다가는 사라 지고를 반복했다. 이미 늘어져 축 쳐진 내 섶 위로 두 사람이 질퍽대면서 흩뿌리는 씹 물이 비오듯 쏟아지고, 상헌은 그녀의 보지에 절구질 하듯이 그 절구공이를 푹푹 대며 쳐 박고… 그에 따라 은하는 내 위에서 그 자세 그대로 입을 벌리면서 온갖 신음과 교성을 내 얼굴위로 흐르는 침과 함께 토해 놓았다. 나는 세월이 흘러 오랜 후에도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곧 이어 상헌이는 억 하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은하의 씹에 좇을 묻은 채로 은하의 등위로 널 부러 졌다. 나는 무겁기는 했어도 내 위에 있는 은하와 땀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장난기 어린 상헌이와 함께 파안대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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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이 이미 다 깨었음에도 세 분의 예전 얘기를 듣고 놀라질 않을 수 없었다. 그 옛날에 그것도 쓰리썸 이라니!
‘야월, 나는 자네가 비향이를 보질 못하고 서울로 다시 올라가고 나서 한동안 자네를 보지 않으려고 했었지. 그것도 혼인 때문에 기녀의 길로 접어든 비향이를 그렇게 쉽사리 잊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화가 났었던 게야.’
‘그게 아닌 것은 노송, 자네도 잘 알지 않은가?’
‘저는 아무런 아쉬움이나 섭섭함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두분 오라버니를 평생의 정인으로 삼고 살았으니까요. 저에게도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지만 기녀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는지 모친의 가르침대로 두 오라버님 이외에 마음 속의 정인을 다시 두기 어렵더군요. 그러니 의원님께서도 이제는 저에게 미안한 마음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날, 저는 의도적으로 술을 갖고 갔지요. 어차피 기녀가 되기로 작정한 이상, 두 오라버니를 한꺼번에 갖고 돌아서리라고 결심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노송 오라버니가 한 평생 혼자 사시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제가 더 송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한가? 자네나 나나 비향이 이렇게 셋이서 이렇게 세월이 흘러도 그 날을 가슴속에 간직하면서 구천주를 앞에 두고 옛일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축복 받았다고 나는 생각하네.’
노송님이 다시 술을 들이켰다. 어지간히 얘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되는 타이밍에 나는 끙 하는 신음을 내면서 술에서 깨는 척 일어났다.
‘허어 젊은 사람이 그렇게 술에 약해서야… 쯧쯧…요즈음 것들은 저래서 풍류를 즐길 여력조차 없는게야….쩝’
나는 계면쩍은 표정으로 일어나 옷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세 분의 표정을 살폈다. 어지간히 거나하게 취기가 오른 표정이셨어도 예전의 아련한 추억을 반추하는 자리라 그랬던지 세 분의 표정은 젊은이의 그것 못지 않았다. 오히려 요즈음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성적인 행각들이 천박하게만 느껴졌던 것은 나만의 잘못된 생각이었을까? 나는 그 날 저녁, 의원님을 존경해야 될 한가지 이유를 하나 더 얻었다. 그것은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정객이라는 점 이었다.
-끝-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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