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은 낮 동안에 보이지 않다가 내가 집으로 돌아간 저녁이면 나타
나서 나의 선물만 넙죽 챙겨먹고 사라졌다. 야속한 놈. 한 번이라도
내 품에 안은 채로 귀여운 심장박동을 들을 수 만 있다면 이 정도
의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사흘이 흘렀고 나흘째 되던
날 난 녀석을 만져 볼 수 있었다.
보도블럭 위에 누운 고양이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보드라웠
을 털들도 철사처럼 뻣뻣하게 누워버렸다. 난 본능적으로 녀석의
항문을 살폈다. 핑크색은 아닐지라도 검게 변색이 되지도 않았다.
좀비에게 당한 것은 아니었다. 자연사라고 단정하기에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 짧았다. 나 이외의 유일한 생명이 이렇게 허무
하게 주검으로 발견되자 다시 사무치는 고독이 밀려왔다.
난 잠시 끊었던 수음의 욕구가 솟구치는 걸 느꼈다. 하지만 지금
장소에서는 발기조차 쉽지 않았다. 고양이에 대한 그리움만이 남아
있는 이 여학교에서 더 이상 반응이 올리가 없었다. 그래서 장소
를 바꾸었다. 길 건너 여자 중학교로.
운동장을 핥고 지나가는 잿빛 바람이 오늘따라 무척 스산했다. 정말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나라는 인간이 생존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
이라는 것이 고작 딸딸이 밖에 없는가?에 대한 질문이 오늘처럼
쏟아진 적이 없었다. 무인도에 떠밀려간 로빈슨 크루소에게 헤드ㅡ
락을 걸고 묻고 싶었다. 장장 28년 동안 하루에 자위를 몇 번이나
했느냐고? 아니 자위를 참은 날을 손에 꼽을 수 있느냐고?
난 여중 본관에 들어서자 마자 교무실부터 찾았다. 오늘은 순서를
바꾸어서 섹스파트너부터 찾을 것이다. 그녀의 생리혈은 그 다음
으로 순서를 바꾸었다. 왜냐고? 그냥이다. 이렇게라도 일상의 변
화를 주고 싶었다. 난 교직원 연명부에 붙어있는 사진들이 나를
보며 웃고 환하게 있었다. 마치 북창동 룸싸롱을 저녁 8시 이전에
입장한 한량한 손님처럼 파트너를 천천히 훑었다.
"순결을 MT가서 뺏겼을 것 같은 단발머리 영어선생. 오랄을 좋아할
것 같은 가정선생. 남자 손 한번 못 잡아봤을 것 같은 수학선생.
종아리가 육감적일 것 같은 중년의 교무주임. 학생들을 상대로 자
위깨나 했을 것 같은..., 잠깐 여긴 여학교잖아. 패스
질액이 넘쳐날것 같은 음악선생 아래엔 학생들 무르팍 좀 쓰다듬었
을 것 같은 생물선생..., 개새끼 어디 흑심을 품을 상대가 없어서
여중생을 상대로 존만은 새끼.
난 그 놈의 사진을 뜯어내서 갈갈이 찢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시발 남학교 였다면 정액도둑년이었을 국사선생의 사진을 조심
스럽게 떼어냈다. 나이는 있어보여도 야시시한 매력이 넘치는 여인
이었다. "오늘은 너다"
난 국사선생을 바지주머니에 집어 넣은 뒤 그녀의 혈흔을 찾아 복도
로 나섰다. 그리고 여교사 화장실로 막 걸어가려는 순간 운동장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 같은 형체를 발견했다. 희뿌연 운동장을
치마가 긴 남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천천히 가로지르고 있었다.
난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한 채 눈길만 그녀의 발걸음을 좇았다.
확실한건 여자가 발걸음을 옮길때마다 나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난 순간 교정으로 뛰쳐나갔다.
[잠깐..만여.. 여보셔요]
"빌어먹을" 살아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본지가 오래되서 그런지 혀가
꼬였다. 그래도 여자는 나를 돌아봤다. 그리고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겠다는 듯이 교문을 향해 달려갔다.
"이런 젠장"
나도 그 녀의 뒤를 따라 뛰기시작했다. 그 녀를 놓칠수가 없었다.
어설프게 친화적으로 나가려다가 그 귀여운 페르시아 고양이가 싸늘
한 시체로 돌아오지 않았던가. 그 보드라운 털을 한 번도 쓰다듬어
보지도 못하고 땅에 묻었다. 난 위태롭게 질주하는 그녀를 뒤 좇으
며 소리를 질렀다.
[도망치지 날아요. 나도 당신하고 똑 같은 사람이요 낮에 멀쩡하게
돌아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나의 고함소리에 앞 서 달리던 그 녀가 흘끔 뒤를 돌아보았다. 그
리고는 더욱 필사적으로 달아났다.
[이봐요 이봐 제발 멈춰요 난 인간이요 그것도 위험하지 않은..."]
난 그 말을 내 뱉고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에
대한 추격을 포기한 것도 돌뿌리에 걸려 넘어진 것도 아니었다.
"저질 체력"
오랜만에 너무 뛰었다. 겨우 500미터 정도를 전력질주하고는 하늘
이 노랗고 허파가 입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난 체력이 엉망이었다.
하긴 그 날 이후 500미터는 고사하고 50미터도 전력으로 뛰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날을 핑계대지 않더라도 제대로 된 운동
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 그녀을 놓치는 게 무리도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 온 난 먼지커튼에 가려져 있던 세면대 거울에 물을
한바가지 뿌렸다. 진득한 땟국물이 흘렀고 건너편에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어깨까지 늘어진 머리카락은 딱 벼락맞은 전인권이었다. 머리
카락은 안 잘라서 그렇다치고 눈썹은 왜 자란거지? 그리고 덥수룩한
수염까지 앙상블을 이루었다. 내가 털이 이렇게 많은 인간이었
는지 새삼 놀라웠다.
목은 이미 턱수염에 가려져서 형체를 잃어버렸고 축쳐진 가슴 밑에는
정말 불썽사나운 커다란 지방덩어리가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비대한 몸뚱이와는 안 어울리게 너무도 야윈 팔다리가 붙어있었다.
히말라야 설인이라도 지금의 내 모습을 맞딱드린다면 36계를 놓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끔찍한 몰골을 보고 겁먹지 않는 대상은 좀비들 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요즘은 허깨비들 처럼 비실비실해져서 가련한
존재로 바뀌어 있었다.그렇다고 놈들이 내 피에 대한 열망을 접은
것은 아니었다.
난 부엌에서 가위를 찾아와서 털들을 정리했다. 제일 먼저 수염을
잘랐다. 면도기는 없었다. 설사 있었다한들 수수대처럼 뻣뻣한 수
염에 면도날을 들이 댔다간 낯가죽이 전부 일어날 판이었다. 그리
고는 수북한 머리털을 잘라나갔다. 앞머리는 제법 짧게 잘랐지만
나머지는 귀와 목덜미가 보이는 선에서 멈추었다. 더 이상 짧게
자르는건 무리였다. 좀 전에도 오른쪽 귀를 자를뻔 했다.
그리고 가슴. 대체 가슴털은 왜 자랐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전쟁
이전에도 배꼽 위를 타고 오르는 수준이었만 가슴까지 뻗어 나간
건 무슨 이유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일 면도기를 구하면 수염과
함께 밀어버릴 것이다. 다음은 심벌을 뒤덮고 있는 터럭을 바라
보았다. 그런데 뭐 여기까지 자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깨끗이 면도했다고 그녀 앞에 꺼내 놓고 흔들 이유는 없
는 불건이기도 했고 조금 귀찮기도 했다.
난 다음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간단한 조깅을 나섰다. 이른 아침
도시의 바람은 퀴퀴했다. 그래도 기초체력을 다져야 한다는 각오
로 뛰었다. 역시 500미터가 한계였다. 하지만 날이 거듭 될 수록
달리기 거리가 늘어서 그녀를 처음 조우한 8킬로미터 남짓한
여중까지 쉬지 않고 뛰어서 돌아올 수 있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배도 눈에 띄게 들어사고 허벅지도 제법 힘이 붙어 탄탄해 졌다.
그리고 수염이 또 자랐다. "망할놈의 털"
습관이란 무섭다. 그냥 의식하지 않고 살 땐 내 살점같던 터럭
들이 벌초를 하고 난 뒤에는 거추장 스럽기가 그지 없었다.
아침식사 후 나는 면도부터 깔끔하게 했다. 그리고 가슴 털. 다시
보니 그닥 나빠보이지 않았다. 눈썹 정리 하듯이 잔털들만 제거
하자 아서왕의 칼을 거꾸로 세워놓은 것 같기도 하고 목이 짧은
십자가를 보는 것같았다. "제법 근사한데"
남기기로 했다.
이제 그녀와 언제 어디서 마주치더라도 그 날처럼 초라하게 놓치
지는 않을 자신이 생겼다. 이제 그녀만 찾으면 된다. 조금 막막
하지만 그녀가 멀리 떠나지 않았기를 기도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와의 재회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침을 일찍 챙겨먹고 문을 나서자 그녀는 도로 건너편에 쓸쓸히
서있었다.
"이런 일이... 설마! 나를 찾아 왔단 말인가"
난 고양이처럼 정원으로 내려섰다.
[그만 더 이상 다가오지 마세요]
그녀가 말을 했다. 조금 격앙된 목소리지만 분명 살아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그것도 여자의 음성이었다. "오 하나님"
난 그녀가 또 달아날까봐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로 물
었다.
[나..., 난 인간이오 당신도 인간입니까?]
내가 해놓고도 참 한심스런 대사였다. 차라리 흡혈귀가 아니냐고
묻는 편이 덜 멍청해 보였을 것이다. 그녀가 외쳤다.
[난 살아있어요 물론 당신도 그런 줄 알고 있어요]
[그런데 뭐가 문제죠 우린 지구상의 유일한 생존자들이예요 당신
과 나 이렇게 둘 뿐이라고요]
그랬다. 그녀와 나는 마치 사막에서 길을 잃은 조난자들과 같은
신세였다. 그 상황에서 우연이라도 마주쳤다면 단 번에 얼싸안고
춤이라도 춰야 하는 것인데 이 무슨 어색한 탐색전이란 말인가!
[하지만... 모르겠어요 왜 당신이 두려운지]
첫 날 빅풋의 형상이라면 나도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완연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공포가 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었고 사라지게 도와주고 싶었다.
[겁낼 필요없어요 난 위험한 인간이 아니예요 아 참 아침은 먹었
어요? 집에 신선한 통조림이 많이 있어요]
난 떨고 있는 그녀에게 도둑고양이처럼 다가가고 있었다.
[그만 그만 다가오세요 안 그러면...]
[또 달아나기라도 하겠단 겁니까]
그녀가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 블럭을 달아나 작은 시민공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
의 남색치마가 덤불속으로 사라지기 직전 그녀의 팔을 낚아챘고
쓰러뜨렸다.
[죄송해요 그렇게 거칠게 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어요]
식탁 앞에 앉은 그녀는 한 쪽 팔이 뜯어진 원피스를 다른 손으로
추스르며 앉아있었다.
[날 왜 집으로 데려온 거죠?]
[미안해요 다른 뜻은 없었어요 정말 당신이 인간이란 사실에 너무
흥분했었나 봐요]
[배고프냐고 물었죠]
[.....,]
가여울 정도로 앙상한 그녀는 며칠을 굶은 것처럼 참치를 비롯한
통조림 세개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좀 더 드릴까요 과일 통조림도 있어요]
[아니에요 벌써 너무 많이 먹었어요 정말 오랜만에]
[그러시다면 다행이예요 당신이 지금껏 겪은 고초를 알겠군요]
[은하예요]
[네?]
[제 이름이요 김은하]
[네 전 박성화라고 합니다. 그냥 성화라고 부르세요]
[네 감사해요 성화씨]
그녀는 식사 후 포만감이 밀려왔는지 긴장이 풀려서 인지 거실
소파에 앉아서 잠이 들었다. 난 정말 조심스럽게 은하를 안아
소파에 길게 눕혔다.
잠깐이지만 살아있는 여자를 안아 본 나는 활홀했다 . 그녀는
따뜻했고 향긋했다. 그리고 새털처럼 가벼웠다.마치 널어놓은
이불처럼...,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난 그 녀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가녀린 몸을 가졌다고 해도 너무 가벼운 것 아닌가?"
단지 무게 만으로 단정짓기에는 그녀는 태양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아침으로 참치와 시금치 통조림등을 먹었으며 무엇보다 온기를
가지고 있었다. 육안으로 판단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항문
을 열어보는 것이지만 그녀는 지금 잠든 것이지 코마상태가 아니
다. 그녀 스스로 허락하기 전까지 그녀의 피를 뽑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수도 있다. 나는 잠들어 있는 그 녀 앞에 우두커니
서서 천천히 웃통을 벗었다. 내 가슴엔 복슬복슬한 십자가가
선명하게 자라나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가늘게 눈을 떳다.
[잘 잤어요?]
나는 부엌에서 말린 소고기를 물에 불리면서 물었다.
[아 네 조금 피곤하다고 생각했는데 잠들어 버렸군요]
[기다려요 저녁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혹시]
[...,]
[화장실을 사용 할 수 있을까요?]
[복도 오른편으로 마지막 문이에요]
[고마워요]
[씻으실 생각이라면 욕조에 담긴 물을 사용하세요 샤워를
할 정도는 아니지만 드러난 부분을 씻기에는 충분할 거예요]
[아 네 정말 고마워요]
이제 곧 해가진다. 밤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나는 또다시
원인모를 공포가 엄습했다. 나는 싱크대 선반에서 검은색
단지를 찾아 내렸다 . 마늘이다. 좀비들의 감시를 위해 귀해
얼마 전부터 현관앞에 가로등을 설치해 놓고는 좀비들이 가로
등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기둥에 바르고 있는 고농축으로
우려낸 마늘 즙이었다. 난 랩으로 눌러 논 3쿼터 뚜껑을
힘주어 열었다.
얼마 후 그녀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세안을 했는지 그녀의
얼굴은 촉촉했고 머리카락도 물기를 머금고 차분히 뒤로
묶인 상태였다. 눈 밑에 다크써클이 비치는 것을 빼고는
훨씬 좋아보였다.
[고마워요 신세가 너무 많네요]
[괜찮아요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될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저도 그래요]
그녀가 자리를 잡고 앉으려다 말고 잠시 주춤했다. 코를
막지는 않았지만 미간을 찡그린 채로 마늘즙이 담긴 접시
를 노려보았다. 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접시를 들어 그녀
의 코에 바짝 갖다 대었다.
[욱..우욱]
그녀는 심하게 헛 구역질을 하며 반사적으로 마늘 접시를 밀
쳤다. 그 바람에 접시에 담긴 내용물이 쏟아질 뻔 했지만
난 용케 중심을 잡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왜? 마늘 냄새가 고통스럽나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예요?]
[그건 당신이 더 잘 알텐데]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그녀가 입가에 흐른 침을 닦
으며 쓴 웃음을 지었다.
[신선한 음식을 먹어본지가 오래 되서 ..그래서..계속 위가
안좋았어요 그런데 당신이 갑가기 마늘 접시를 갖다대니
까 헛구역질이 조금 나왔을 뿐이예요]
[너무 궁색한 변명 아닌가?]
[궁색하다고요]
그녀의 음성이 단호하게 변하더니 내가 들고 있던 마늘
접시를 빠르게 낚아챘다.
[이번에 당신도 한 번 맡아 보시죠]
그녀가 마늘 접시를 내 코 앞에 바짝 들이댔다.
[욱]
구역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빈속에 맡기에는 너무 역한 냄새
가 풍겼다.
[심하게 거부반응을 하는 것을 보니 당신도 흡혈귀였군요]
[바보같은 소리]
[바보는 당신이야]
그녀는 그 말을 내 뱉은 후 빠른 걸음으로 현관으로 향
했고. 난 황급히 달려가서 현관문을 막아섰다.
[어딜 가겠다는 겁니까. 벌써 어둠이 내렸다고요]
[상관없잖아요 비켜요]
[지금 밖은 흡혈귀와 좀비들 판이라는 말을 하는거요]
[고맙군요 걱정해줘서 좀비가 좀비 소굴로 들어가는 게
뭐가 이상하다는 거죠?]
그녀는 나를 거칠게 떠다밀며 현관 문고리를 비틀려 했고
난 완강하게 버티며 그녀를 달랬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당신을 의심할 생각은 없었어요 난
단지..]
[변명 따위 듣고 싶지 않아요 내가 흡혈귀라고 의심하면서
왜 당신 집에 들여 놓았죠 그렇게 의심 할 바에는 날 가게
내버려 두면 되잖아요]
[미안해요 정말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용서해
줘요]
[........,]
[가지말아요 제발]
그녀는 얇은 담요 하나만을 덮은 채 소파에 잠들어 있었다.
호흡을 할 때마다 가녀린 어깨가 작은 경련을 하듯이 들썩
였다.
"내가 쓸데없는 의심을 한 걸까"
은하라는 이 여인은 분명 낮에 활동하고 있었다. 그 사실
하나 만으로 분명히 좀비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 불길한
느낌은 대체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다. 혹시 바이러스가 변
이를 일으킨 상태하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 좀비도 인간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라는 것은 여지껏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녀가 꿈을 꾸는지 뭔가를 중얼거리며 모로 누운 자세로
바꾸었다. 그러자 앙상한 것만 같았던 골반이 작은 굴곡을
만들었다. 여체는 아름다웠다. 묶인 머리가 풀어져 머리카
락이 이마로 흘러내렸다. 저 가여운 몸을 으스러지게 껴안고
싶었다. 나는 그녀에게 바짝 다가가 무릎을 꿇은 채로 그녀
의 얼굴에 코끝을 바짝 들이댔다. 그녀의 옅은 호흡이
내 볼에 실바람처럼 불어왔다. 은은한 살내음이 풍겼다.
난 그녀의 호흡과 엇 박자를 타면서 그녀를 느끼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의 눈거풀이 번쩍 열렸다. 그리고는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쳤다.
그녀의 볼에 내 볼을 마구 비볐다. 여자의 살 냄새를 온 몸
으로 맡고 싶었다. 살아있는 여자의 심장소리가 이렇게 섹
시한 줄은 몰랐다 그녀의 피부는 매끈거리지는 않았지만
한없이 부드러웠다. 잘록한 허리를 타고 흐르는 엉덩이는
많이 여위어 있었다.
[골반이 섹시하군]
[이제 당신이 들어 올 차례예요]
그녀는 유난히 긴 손가락으로 나의 엉덩이를 감싸 쥐고는 거친
숨을 내뿜고 있었다. 배꼽아래로 보이는 수풀은 무성하지
는 않았지만 윤기가 돌았고 수줍은 음순은 핑크빛이라고
말할 수 는 없어도 핏기가 감돌았다. 은하는 아직도 물
렁한 상태의 내 심벌을 잡고는 자신이 둔덕에 문질렀다.
[넣어줘요]
"넣어도 될까" 아직도 물기가 비치지 않는 그녀의 질입구
를 내려다 보며 불안감이 일었다.
[아직도 날 믿지 못하는 군요]
아직 자지라고 부를 수 없는 내 물컹한 가죽기둥을 잡고
있던 그녀의 손아귀에서 힘이 빠지고 있었다.
[그 그건 섹스를 해 본지가 너무 오래되서 그런거 같아]
[빨리 당신을 받아 들이고 싶어요]
"콘돔" 콘돔이라도 끼우면 이 불안한 마음이 좀 진정이
될텐데 그 물건이 필요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설사
있다고 해도 지금 그녀의 태도로 봐서는 내가 콘돔을 끼
우는 순간 팬티를 주워 올리고 문 밖으로 뛰쳐 나갈 것이
분명했다. "사면초가 진퇴양란" 서지않는 자지와 젖지않는
보지 중에 과연 누가 진짜 인간인가를 판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난 그녀를 한 없이 의심하고 있었고 그 녀는
나에 대해 한 점이 의심도 품지 않고 저렇게 가랑이를
벌리고 있다. 그리고 그 벌어진 계곡사이에 물기가 비치고
있었다. "오 신이시여"
은하와의 폭풍같은 섹스가 끝난 후 그녀는 내 가슴의 털십
자가를 쥐고 무슨 기도라도 하듯이 잠들어 있었다.
"이 여잔 참 잠도 많다"
난 조용히 그녀를 밀치고 일어난 후 가운만 걸친채 2층
으로 올라갔다.
한 동안 올라와 보지 못한 실험실 분위기가 좀 을씨년
스러웠다. 난 현미경이 있는 탁자로 다가가 배터리에
전선을 연결 한 후 전등을 켰다. 얼덜결에 그녀와 몸을
섞었고 정말 오랜만에 손가락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질 속
에서 우렁찬 사정은 했지만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마치 사창가에서 콘돔도 없이 매춘부와 뒹굴다가 집
으로 돌아 온 순간부터 성병의심이 밀어닥쳐 비뇨기과를
찾아 나선 것같은 찝찝함이 밀려왔다.
그녀가 살아있는 인간인지 아닌지는 이제 마지막 단계
만 남았다. 그녀의 정맥에 주사바늘을 꽂아 체혈을 하
지는 못했지만 내 몸에 그녀의 체액이 아직 남아있었다.
오른손 검지손톱 밑에는 그녀의 체액이 굳은 채로 남아
있었다. 난 그것을 조심스럽게 유리판 위에 긁어 모은
다음 대물렌즈 밑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는 접안렌즈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미동나사와 조동나사를 번갈아
돌리자 흐릿했던 세포들의 형체가 조금씩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나서 나의 선물만 넙죽 챙겨먹고 사라졌다. 야속한 놈. 한 번이라도
내 품에 안은 채로 귀여운 심장박동을 들을 수 만 있다면 이 정도
의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사흘이 흘렀고 나흘째 되던
날 난 녀석을 만져 볼 수 있었다.
보도블럭 위에 누운 고양이의 몸은 싸늘하게 식어있었다. 보드라웠
을 털들도 철사처럼 뻣뻣하게 누워버렸다. 난 본능적으로 녀석의
항문을 살폈다. 핑크색은 아닐지라도 검게 변색이 되지도 않았다.
좀비에게 당한 것은 아니었다. 자연사라고 단정하기에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너무 짧았다. 나 이외의 유일한 생명이 이렇게 허무
하게 주검으로 발견되자 다시 사무치는 고독이 밀려왔다.
난 잠시 끊었던 수음의 욕구가 솟구치는 걸 느꼈다. 하지만 지금
장소에서는 발기조차 쉽지 않았다. 고양이에 대한 그리움만이 남아
있는 이 여학교에서 더 이상 반응이 올리가 없었다. 그래서 장소
를 바꾸었다. 길 건너 여자 중학교로.
운동장을 핥고 지나가는 잿빛 바람이 오늘따라 무척 스산했다. 정말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나라는 인간이 생존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
이라는 것이 고작 딸딸이 밖에 없는가?에 대한 질문이 오늘처럼
쏟아진 적이 없었다. 무인도에 떠밀려간 로빈슨 크루소에게 헤드ㅡ
락을 걸고 묻고 싶었다. 장장 28년 동안 하루에 자위를 몇 번이나
했느냐고? 아니 자위를 참은 날을 손에 꼽을 수 있느냐고?
난 여중 본관에 들어서자 마자 교무실부터 찾았다. 오늘은 순서를
바꾸어서 섹스파트너부터 찾을 것이다. 그녀의 생리혈은 그 다음
으로 순서를 바꾸었다. 왜냐고? 그냥이다. 이렇게라도 일상의 변
화를 주고 싶었다. 난 교직원 연명부에 붙어있는 사진들이 나를
보며 웃고 환하게 있었다. 마치 북창동 룸싸롱을 저녁 8시 이전에
입장한 한량한 손님처럼 파트너를 천천히 훑었다.
"순결을 MT가서 뺏겼을 것 같은 단발머리 영어선생. 오랄을 좋아할
것 같은 가정선생. 남자 손 한번 못 잡아봤을 것 같은 수학선생.
종아리가 육감적일 것 같은 중년의 교무주임. 학생들을 상대로 자
위깨나 했을 것 같은..., 잠깐 여긴 여학교잖아. 패스
질액이 넘쳐날것 같은 음악선생 아래엔 학생들 무르팍 좀 쓰다듬었
을 것 같은 생물선생..., 개새끼 어디 흑심을 품을 상대가 없어서
여중생을 상대로 존만은 새끼.
난 그 놈의 사진을 뜯어내서 갈갈이 찢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시발 남학교 였다면 정액도둑년이었을 국사선생의 사진을 조심
스럽게 떼어냈다. 나이는 있어보여도 야시시한 매력이 넘치는 여인
이었다. "오늘은 너다"
난 국사선생을 바지주머니에 집어 넣은 뒤 그녀의 혈흔을 찾아 복도
로 나섰다. 그리고 여교사 화장실로 막 걸어가려는 순간 운동장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 같은 형체를 발견했다. 희뿌연 운동장을
치마가 긴 남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천천히 가로지르고 있었다.
난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한 채 눈길만 그녀의 발걸음을 좇았다.
확실한건 여자가 발걸음을 옮길때마다 나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난 순간 교정으로 뛰쳐나갔다.
[잠깐..만여.. 여보셔요]
"빌어먹을" 살아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본지가 오래되서 그런지 혀가
꼬였다. 그래도 여자는 나를 돌아봤다. 그리고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겠다는 듯이 교문을 향해 달려갔다.
"이런 젠장"
나도 그 녀의 뒤를 따라 뛰기시작했다. 그 녀를 놓칠수가 없었다.
어설프게 친화적으로 나가려다가 그 귀여운 페르시아 고양이가 싸늘
한 시체로 돌아오지 않았던가. 그 보드라운 털을 한 번도 쓰다듬어
보지도 못하고 땅에 묻었다. 난 위태롭게 질주하는 그녀를 뒤 좇으
며 소리를 질렀다.
[도망치지 날아요. 나도 당신하고 똑 같은 사람이요 낮에 멀쩡하게
돌아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나의 고함소리에 앞 서 달리던 그 녀가 흘끔 뒤를 돌아보았다. 그
리고는 더욱 필사적으로 달아났다.
[이봐요 이봐 제발 멈춰요 난 인간이요 그것도 위험하지 않은..."]
난 그 말을 내 뱉고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에
대한 추격을 포기한 것도 돌뿌리에 걸려 넘어진 것도 아니었다.
"저질 체력"
오랜만에 너무 뛰었다. 겨우 500미터 정도를 전력질주하고는 하늘
이 노랗고 허파가 입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난 체력이 엉망이었다.
하긴 그 날 이후 500미터는 고사하고 50미터도 전력으로 뛰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날을 핑계대지 않더라도 제대로 된 운동
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 그녀을 놓치는 게 무리도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 온 난 먼지커튼에 가려져 있던 세면대 거울에 물을
한바가지 뿌렸다. 진득한 땟국물이 흘렀고 건너편에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어깨까지 늘어진 머리카락은 딱 벼락맞은 전인권이었다. 머리
카락은 안 잘라서 그렇다치고 눈썹은 왜 자란거지? 그리고 덥수룩한
수염까지 앙상블을 이루었다. 내가 털이 이렇게 많은 인간이었
는지 새삼 놀라웠다.
목은 이미 턱수염에 가려져서 형체를 잃어버렸고 축쳐진 가슴 밑에는
정말 불썽사나운 커다란 지방덩어리가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리고
비대한 몸뚱이와는 안 어울리게 너무도 야윈 팔다리가 붙어있었다.
히말라야 설인이라도 지금의 내 모습을 맞딱드린다면 36계를 놓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끔찍한 몰골을 보고 겁먹지 않는 대상은 좀비들 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요즘은 허깨비들 처럼 비실비실해져서 가련한
존재로 바뀌어 있었다.그렇다고 놈들이 내 피에 대한 열망을 접은
것은 아니었다.
난 부엌에서 가위를 찾아와서 털들을 정리했다. 제일 먼저 수염을
잘랐다. 면도기는 없었다. 설사 있었다한들 수수대처럼 뻣뻣한 수
염에 면도날을 들이 댔다간 낯가죽이 전부 일어날 판이었다. 그리
고는 수북한 머리털을 잘라나갔다. 앞머리는 제법 짧게 잘랐지만
나머지는 귀와 목덜미가 보이는 선에서 멈추었다. 더 이상 짧게
자르는건 무리였다. 좀 전에도 오른쪽 귀를 자를뻔 했다.
그리고 가슴. 대체 가슴털은 왜 자랐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전쟁
이전에도 배꼽 위를 타고 오르는 수준이었만 가슴까지 뻗어 나간
건 무슨 이유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일 면도기를 구하면 수염과
함께 밀어버릴 것이다. 다음은 심벌을 뒤덮고 있는 터럭을 바라
보았다. 그런데 뭐 여기까지 자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깨끗이 면도했다고 그녀 앞에 꺼내 놓고 흔들 이유는 없
는 불건이기도 했고 조금 귀찮기도 했다.
난 다음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간단한 조깅을 나섰다. 이른 아침
도시의 바람은 퀴퀴했다. 그래도 기초체력을 다져야 한다는 각오
로 뛰었다. 역시 500미터가 한계였다. 하지만 날이 거듭 될 수록
달리기 거리가 늘어서 그녀를 처음 조우한 8킬로미터 남짓한
여중까지 쉬지 않고 뛰어서 돌아올 수 있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배도 눈에 띄게 들어사고 허벅지도 제법 힘이 붙어 탄탄해 졌다.
그리고 수염이 또 자랐다. "망할놈의 털"
습관이란 무섭다. 그냥 의식하지 않고 살 땐 내 살점같던 터럭
들이 벌초를 하고 난 뒤에는 거추장 스럽기가 그지 없었다.
아침식사 후 나는 면도부터 깔끔하게 했다. 그리고 가슴 털. 다시
보니 그닥 나빠보이지 않았다. 눈썹 정리 하듯이 잔털들만 제거
하자 아서왕의 칼을 거꾸로 세워놓은 것 같기도 하고 목이 짧은
십자가를 보는 것같았다. "제법 근사한데"
남기기로 했다.
이제 그녀와 언제 어디서 마주치더라도 그 날처럼 초라하게 놓치
지는 않을 자신이 생겼다. 이제 그녀만 찾으면 된다. 조금 막막
하지만 그녀가 멀리 떠나지 않았기를 기도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와의 재회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침을 일찍 챙겨먹고 문을 나서자 그녀는 도로 건너편에 쓸쓸히
서있었다.
"이런 일이... 설마! 나를 찾아 왔단 말인가"
난 고양이처럼 정원으로 내려섰다.
[그만 더 이상 다가오지 마세요]
그녀가 말을 했다. 조금 격앙된 목소리지만 분명 살아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그것도 여자의 음성이었다. "오 하나님"
난 그녀가 또 달아날까봐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로 물
었다.
[나..., 난 인간이오 당신도 인간입니까?]
내가 해놓고도 참 한심스런 대사였다. 차라리 흡혈귀가 아니냐고
묻는 편이 덜 멍청해 보였을 것이다. 그녀가 외쳤다.
[난 살아있어요 물론 당신도 그런 줄 알고 있어요]
[그런데 뭐가 문제죠 우린 지구상의 유일한 생존자들이예요 당신
과 나 이렇게 둘 뿐이라고요]
그랬다. 그녀와 나는 마치 사막에서 길을 잃은 조난자들과 같은
신세였다. 그 상황에서 우연이라도 마주쳤다면 단 번에 얼싸안고
춤이라도 춰야 하는 것인데 이 무슨 어색한 탐색전이란 말인가!
[하지만... 모르겠어요 왜 당신이 두려운지]
첫 날 빅풋의 형상이라면 나도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완연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공포가 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었고 사라지게 도와주고 싶었다.
[겁낼 필요없어요 난 위험한 인간이 아니예요 아 참 아침은 먹었
어요? 집에 신선한 통조림이 많이 있어요]
난 떨고 있는 그녀에게 도둑고양이처럼 다가가고 있었다.
[그만 그만 다가오세요 안 그러면...]
[또 달아나기라도 하겠단 겁니까]
그녀가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 블럭을 달아나 작은 시민공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
의 남색치마가 덤불속으로 사라지기 직전 그녀의 팔을 낚아챘고
쓰러뜨렸다.
[죄송해요 그렇게 거칠게 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었어요]
식탁 앞에 앉은 그녀는 한 쪽 팔이 뜯어진 원피스를 다른 손으로
추스르며 앉아있었다.
[날 왜 집으로 데려온 거죠?]
[미안해요 다른 뜻은 없었어요 정말 당신이 인간이란 사실에 너무
흥분했었나 봐요]
[배고프냐고 물었죠]
[.....,]
가여울 정도로 앙상한 그녀는 며칠을 굶은 것처럼 참치를 비롯한
통조림 세개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좀 더 드릴까요 과일 통조림도 있어요]
[아니에요 벌써 너무 많이 먹었어요 정말 오랜만에]
[그러시다면 다행이예요 당신이 지금껏 겪은 고초를 알겠군요]
[은하예요]
[네?]
[제 이름이요 김은하]
[네 전 박성화라고 합니다. 그냥 성화라고 부르세요]
[네 감사해요 성화씨]
그녀는 식사 후 포만감이 밀려왔는지 긴장이 풀려서 인지 거실
소파에 앉아서 잠이 들었다. 난 정말 조심스럽게 은하를 안아
소파에 길게 눕혔다.
잠깐이지만 살아있는 여자를 안아 본 나는 활홀했다 . 그녀는
따뜻했고 향긋했다. 그리고 새털처럼 가벼웠다.마치 널어놓은
이불처럼...,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난 그 녀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가녀린 몸을 가졌다고 해도 너무 가벼운 것 아닌가?"
단지 무게 만으로 단정짓기에는 그녀는 태양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아침으로 참치와 시금치 통조림등을 먹었으며 무엇보다 온기를
가지고 있었다. 육안으로 판단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항문
을 열어보는 것이지만 그녀는 지금 잠든 것이지 코마상태가 아니
다. 그녀 스스로 허락하기 전까지 그녀의 피를 뽑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일수도 있다. 나는 잠들어 있는 그 녀 앞에 우두커니
서서 천천히 웃통을 벗었다. 내 가슴엔 복슬복슬한 십자가가
선명하게 자라나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가늘게 눈을 떳다.
[잘 잤어요?]
나는 부엌에서 말린 소고기를 물에 불리면서 물었다.
[아 네 조금 피곤하다고 생각했는데 잠들어 버렸군요]
[기다려요 저녁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혹시]
[...,]
[화장실을 사용 할 수 있을까요?]
[복도 오른편으로 마지막 문이에요]
[고마워요]
[씻으실 생각이라면 욕조에 담긴 물을 사용하세요 샤워를
할 정도는 아니지만 드러난 부분을 씻기에는 충분할 거예요]
[아 네 정말 고마워요]
이제 곧 해가진다. 밤이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나는 또다시
원인모를 공포가 엄습했다. 나는 싱크대 선반에서 검은색
단지를 찾아 내렸다 . 마늘이다. 좀비들의 감시를 위해 귀해
얼마 전부터 현관앞에 가로등을 설치해 놓고는 좀비들이 가로
등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기둥에 바르고 있는 고농축으로
우려낸 마늘 즙이었다. 난 랩으로 눌러 논 3쿼터 뚜껑을
힘주어 열었다.
얼마 후 그녀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세안을 했는지 그녀의
얼굴은 촉촉했고 머리카락도 물기를 머금고 차분히 뒤로
묶인 상태였다. 눈 밑에 다크써클이 비치는 것을 빼고는
훨씬 좋아보였다.
[고마워요 신세가 너무 많네요]
[괜찮아요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될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저도 그래요]
그녀가 자리를 잡고 앉으려다 말고 잠시 주춤했다. 코를
막지는 않았지만 미간을 찡그린 채로 마늘즙이 담긴 접시
를 노려보았다. 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접시를 들어 그녀
의 코에 바짝 갖다 대었다.
[욱..우욱]
그녀는 심하게 헛 구역질을 하며 반사적으로 마늘 접시를 밀
쳤다. 그 바람에 접시에 담긴 내용물이 쏟아질 뻔 했지만
난 용케 중심을 잡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왜? 마늘 냄새가 고통스럽나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예요?]
[그건 당신이 더 잘 알텐데]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그녀가 입가에 흐른 침을 닦
으며 쓴 웃음을 지었다.
[신선한 음식을 먹어본지가 오래 되서 ..그래서..계속 위가
안좋았어요 그런데 당신이 갑가기 마늘 접시를 갖다대니
까 헛구역질이 조금 나왔을 뿐이예요]
[너무 궁색한 변명 아닌가?]
[궁색하다고요]
그녀의 음성이 단호하게 변하더니 내가 들고 있던 마늘
접시를 빠르게 낚아챘다.
[이번에 당신도 한 번 맡아 보시죠]
그녀가 마늘 접시를 내 코 앞에 바짝 들이댔다.
[욱]
구역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빈속에 맡기에는 너무 역한 냄새
가 풍겼다.
[심하게 거부반응을 하는 것을 보니 당신도 흡혈귀였군요]
[바보같은 소리]
[바보는 당신이야]
그녀는 그 말을 내 뱉은 후 빠른 걸음으로 현관으로 향
했고. 난 황급히 달려가서 현관문을 막아섰다.
[어딜 가겠다는 겁니까. 벌써 어둠이 내렸다고요]
[상관없잖아요 비켜요]
[지금 밖은 흡혈귀와 좀비들 판이라는 말을 하는거요]
[고맙군요 걱정해줘서 좀비가 좀비 소굴로 들어가는 게
뭐가 이상하다는 거죠?]
그녀는 나를 거칠게 떠다밀며 현관 문고리를 비틀려 했고
난 완강하게 버티며 그녀를 달랬다.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당신을 의심할 생각은 없었어요 난
단지..]
[변명 따위 듣고 싶지 않아요 내가 흡혈귀라고 의심하면서
왜 당신 집에 들여 놓았죠 그렇게 의심 할 바에는 날 가게
내버려 두면 되잖아요]
[미안해요 정말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용서해
줘요]
[........,]
[가지말아요 제발]
그녀는 얇은 담요 하나만을 덮은 채 소파에 잠들어 있었다.
호흡을 할 때마다 가녀린 어깨가 작은 경련을 하듯이 들썩
였다.
"내가 쓸데없는 의심을 한 걸까"
은하라는 이 여인은 분명 낮에 활동하고 있었다. 그 사실
하나 만으로 분명히 좀비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 불길한
느낌은 대체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다. 혹시 바이러스가 변
이를 일으킨 상태하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 좀비도 인간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라는 것은 여지껏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녀가 꿈을 꾸는지 뭔가를 중얼거리며 모로 누운 자세로
바꾸었다. 그러자 앙상한 것만 같았던 골반이 작은 굴곡을
만들었다. 여체는 아름다웠다. 묶인 머리가 풀어져 머리카
락이 이마로 흘러내렸다. 저 가여운 몸을 으스러지게 껴안고
싶었다. 나는 그녀에게 바짝 다가가 무릎을 꿇은 채로 그녀
의 얼굴에 코끝을 바짝 들이댔다. 그녀의 옅은 호흡이
내 볼에 실바람처럼 불어왔다. 은은한 살내음이 풍겼다.
난 그녀의 호흡과 엇 박자를 타면서 그녀를 느끼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의 눈거풀이 번쩍 열렸다. 그리고는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을 덮쳤다.
그녀의 볼에 내 볼을 마구 비볐다. 여자의 살 냄새를 온 몸
으로 맡고 싶었다. 살아있는 여자의 심장소리가 이렇게 섹
시한 줄은 몰랐다 그녀의 피부는 매끈거리지는 않았지만
한없이 부드러웠다. 잘록한 허리를 타고 흐르는 엉덩이는
많이 여위어 있었다.
[골반이 섹시하군]
[이제 당신이 들어 올 차례예요]
그녀는 유난히 긴 손가락으로 나의 엉덩이를 감싸 쥐고는 거친
숨을 내뿜고 있었다. 배꼽아래로 보이는 수풀은 무성하지
는 않았지만 윤기가 돌았고 수줍은 음순은 핑크빛이라고
말할 수 는 없어도 핏기가 감돌았다. 은하는 아직도 물
렁한 상태의 내 심벌을 잡고는 자신이 둔덕에 문질렀다.
[넣어줘요]
"넣어도 될까" 아직도 물기가 비치지 않는 그녀의 질입구
를 내려다 보며 불안감이 일었다.
[아직도 날 믿지 못하는 군요]
아직 자지라고 부를 수 없는 내 물컹한 가죽기둥을 잡고
있던 그녀의 손아귀에서 힘이 빠지고 있었다.
[그 그건 섹스를 해 본지가 너무 오래되서 그런거 같아]
[빨리 당신을 받아 들이고 싶어요]
"콘돔" 콘돔이라도 끼우면 이 불안한 마음이 좀 진정이
될텐데 그 물건이 필요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설사
있다고 해도 지금 그녀의 태도로 봐서는 내가 콘돔을 끼
우는 순간 팬티를 주워 올리고 문 밖으로 뛰쳐 나갈 것이
분명했다. "사면초가 진퇴양란" 서지않는 자지와 젖지않는
보지 중에 과연 누가 진짜 인간인가를 판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난 그녀를 한 없이 의심하고 있었고 그 녀는
나에 대해 한 점이 의심도 품지 않고 저렇게 가랑이를
벌리고 있다. 그리고 그 벌어진 계곡사이에 물기가 비치고
있었다. "오 신이시여"
은하와의 폭풍같은 섹스가 끝난 후 그녀는 내 가슴의 털십
자가를 쥐고 무슨 기도라도 하듯이 잠들어 있었다.
"이 여잔 참 잠도 많다"
난 조용히 그녀를 밀치고 일어난 후 가운만 걸친채 2층
으로 올라갔다.
한 동안 올라와 보지 못한 실험실 분위기가 좀 을씨년
스러웠다. 난 현미경이 있는 탁자로 다가가 배터리에
전선을 연결 한 후 전등을 켰다. 얼덜결에 그녀와 몸을
섞었고 정말 오랜만에 손가락의 힘을 빌리지 않고 질 속
에서 우렁찬 사정은 했지만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마치 사창가에서 콘돔도 없이 매춘부와 뒹굴다가 집
으로 돌아 온 순간부터 성병의심이 밀어닥쳐 비뇨기과를
찾아 나선 것같은 찝찝함이 밀려왔다.
그녀가 살아있는 인간인지 아닌지는 이제 마지막 단계
만 남았다. 그녀의 정맥에 주사바늘을 꽂아 체혈을 하
지는 못했지만 내 몸에 그녀의 체액이 아직 남아있었다.
오른손 검지손톱 밑에는 그녀의 체액이 굳은 채로 남아
있었다. 난 그것을 조심스럽게 유리판 위에 긁어 모은
다음 대물렌즈 밑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는 접안렌즈에
온 신경을 집중시켰다. 미동나사와 조동나사를 번갈아
돌리자 흐릿했던 세포들의 형체가 조금씩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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