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17일 강원도 시내군 국군 효종병원
"그러고보니 언제부터 제헌절이 공휴일에서 빠졌더라..."
예과, 본과시절이랴 어차피 방학 기간이니까 도서관을 가든 과외를 가든 스터디를 가든 했었고... 인턴, 레지던트때는 휴일은 오프뿐이었고... 그러다가 군대에 와서 보니 7월 17일이 까만 글씨로 써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진리 일병, 여기 차트 들고 가세요."
인솔 의무병인 윤희구 상병이 마지막 병사 환자에게 차트를 나눠주고 있었다. 그것을 본 찬수는 외과계 입원 병동으로 올라갔다.
"웅엉."
뭔가 말년병장 분위기의 병실 담당 의무병이 보였다. 찬수는 그 병사의 행방을 물어봤다.
"88사단 군의관인데 88사단 최인관 일병은 어디있니?"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최인관 일병!"
"최인관 아저씨 담배 피러 갔는데요."
아마도 옆 침대의 다른 환자 병사가 대답한 것 같다. 골반 골절 환자가 아직 아무는 중인데 이렇게 돌아다니다니... 그것도 좋지도 않은 담배를 피러... 찬수는 잠시 한 숨을 내쉬었다. 그런 환자들이 있었다. 괜히 돌아다니지 말고 안정 취하고 있으라면 어딘가를 돌아다니며 어디 숨어서 담배를 피거나 주전부리를 하고, 덕분에 NPO(라틴어로 nulla per os, 영어로는 nothing by mouse: 금식)가 날아가 버려 수술 일정이 꼬이게 만드는 사람도 있었고, 그외에도 하지말라는 것 하는 사람들은 흔히 보였다.
"어디나 환자는 똑 같은건가..."
"담배피러 갔담다."
"어디서 담배를 피지?"
"주로 PX 앞이나 병원 본관 앞 등나무임다."
"고맙다."
등나무 아래에서 최인관 일병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담배는 혈액 순환에 안좋아서 빨리 낫는데 방해된다."
"아... 훙헝."
부대를 벗어나니 급속도로 군기가 빠져나간듯했다. 지난달에 제대한 의무대의 이충희 병장도 저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저런 모습이 상습적으로 구타당하는 것의 명분은 결코 되지 못했다.
"그 뒤로 부대 사람들은 봤고?"
"행보관님이 오셨는데 수술 받고 안정 취하라고 면회 거절되었습니다."
"뭐... 이제 그 안정받아야 된다고 거절할 수 는 없겟구나..."
치료반장이 입원조치 시키면서 외압을 막기 위해 면회 거절을 요청했고, 담당 군의관과 간호장교등도 동의했지만, 멋대로 병실에서 빠져 나와 담배까지 피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안정을 위한 면회 거절이라는 명분이 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 상태는 어떻고?"
"아직은 아픔다."
"그런데 담배피러 돌아다니니?"
"......"
조금은 풀이 죽은듯했다.
"... 이것때문에 왔다."
찬수는 들고있던 가방에서 A4 출력물을 한 장 꺼내 최인관 일병에게 보여줬다.
"뭡니까 이건?"
"만약에 대비한 방법이지."
볼 일을 마치고 외진 버스로 돌아온 찬수를 보미가 불렀다.
“반장님, 어디 계셨습니까?”
“아아... 그냥...”
“같이 PX 가시겠습니까?”
“... 그러죠.”
운전병이 못 들을만큼 거리가 되자 다시 편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반장님, 그 골반 골절 환자 보셨나요?
“... 예.”
“웅... 그렇구나. 있다가 퇴근하시고 같이 한천면에 놀러가지 않으실래요? 반장님 방 알아보는 것도 있고... 아직 못알아보셨죠?”
“예...”
“한천면에 삼겹살집말고 돈까스 맛있는 집도 있는데 같이 가요~”
“돈까스요?”
“예~ 맛있어요. 여지껏 그만큼 맛있는 돈까스는 못 먹어봤어요~”
“......”
나은과 사귀면서 입맛이 변해 기름진 것은 잘 안먹게 되었는데 요즘은 자주 먹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돈까스에 맥주 한 잔 곁들여 먹으면 얼마나 좋은데요~”
“... 그러죠.”
2009년 7월 17일 강원도 시내군 한천면
“7연대에 있는 아는 사람한테 들었는데 부대에서 문제아였나봐요.”
젓가락으로 돈까스를 집어 올리던 보미가 말했다.
“어떤 문제아요?”
“있잖아요. 답답하고, 시키는대로 안하고, 사고만 치는 애들...”
돈까스 조각을 입에 넣은 보미가 말했다.
“그런가요...”
“사람이니까 그러다보면 손이 나갈지도 몰라요. 그래도 애정이 있으니까 그렇게 해주는거겠죠?”
“......”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보미가 미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쁨, 환희, 슬픔, 공포, ... 여러 가지가 뒤섞여 알 수 없었다.
“애정이 있으니까 벌을 주는 것이고요.”
“......”
“군대는 그렇게 엄격함이 있어야 돌아가니까요.”
“......”
찬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보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제 대한민국 육군이 나쁜일 하는거 보셨어요?”
‘무신정변... 아, 그건 고려시대구나... 국민방위군사건, 보도연맹사건, 5월 16일, 12월 12일, 5월 18일, 아, 5월 18일은 북한이 일으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는하지...’
이런 생각을 하며 말하려다가 생각을 바꾸고 그냥 쓴 웃음만 지었다.
“맥주 안드세요? 돈까스도 맛있지만, 맥주도 호프집보다 맛있어요.”
보미가 찬수를 보며 권했다. 맥주는 다소 밍밍한 느낌이지만, 7월 중순의 날씨에 시원한 맥주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이런 맥주가 호프집보다 맛있다는건 기분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걸까... 설마... 여기 호프집이 그보다 못하다는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끔찍했다. 튀김 자체는 바삭하게 되었지만, 고기 자체는 피가 덜빠졌는지 약간 누린내가 느껴졌다.
2006년 6월 23일 서울 역삼동
"왕 돈까스 2개하고 맥주 500 2잔이요."
임미혜 선생이 자연스럽게 주문을 했다.
서빙을 하는 아주머니가 주문을 받고 가자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목소리로 임미혜 선생이 말했다.
“유 선생님 덕분에 재미있게 봤어요.”
“아니요. 덕분에 지금 저녁도 먹고 있는걸요.”
“저는 병원에서 간단히 빵이라도 먹고 나왔지만, 선생님은 수술방 갔다가 아무것도 못드시고 오셨잖아요?”
“저야 그런 일, 드문 일은 아니니까요.”
라이온킹의 파일럿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임미혜 선생이 늦었지만, 저녁을 먹자고해서 부근의 호프집을 찾았다.
원래는 6시에 병원을 나와 공연장 부근에서 저녁을 해결할 예정이었지만, 긴급 수술로 수술할 일손이 부족해져 수술실에 들어갔다가 7시가 다 되어서야 나왔고,그야말로 쏜살같이 달려 가까스로 8시 공연에 맞췄다. 물론 뭔가를 먹을 틈은 없었다.
이야기를 하는동안 돈까스와 맥주가 나왔다.
“드셔보세요. 이 집 가끔 이쪽으로 놀러오면 오는 집인데 소스가 특이해서 좋아해요."
임미혜 선생이 먼저 권했다.
"음... 토마토와 양파를 넣고 가게에서 직접 만든 소스인가 보네요. 다른 왕돈까스 집에서는 보기 힘든 맛이네요."
한 입을 먹어보고 찬수가 말했다.
"예. 이 시간에 식사 될만한 가게가 생각이 안나서 죄송해요."
“아니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 같은데요. 덕분에 저도 이런 곳을 알게 되었으니 괜찮은데요.”
주변을 둘러본 찬수가 말했다.
“뮤지컬도 보여주셨는데 이건 좀 부족해보여서요.”
“괜찮아요. 저도 어쩌다 얻은 표였는데.”
“음... ㅇ”
임미혜 선생은 무슨 생각을 하다가 눈 앞의 생맥주를 마시며 다시 말을 삼켰다.
2009년 7월 17일 강원도 시내군 한천면
‘... 설마 부대 돈까스와 비교한건가?’
굳이 분위기를 깰 필요는 없어서 그냥 맛에 대한 생각은 접었다.
“찬수씨...”
“네?”
언제나처럼 부대 밖의 보미가 찬수를 대하는 모습은 좀 더 편안했다.
“찬수씨는 군인의 길... 관심 있으세요?”
전에 찬수는 군의관 일도 보람있는 것 같다는 말을 보미에게 했지만, 보미의 이 질문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환자들을 돌보고 그들이 무사히 사회로 돌아가게 해주는 일... 보람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 장기(장기복무. 일명 말뚝 박다) 해보실 생각도 있으세요?”
보미는 표정이 활짝 펴지면서 말했다.
“글쎄요... 아직 거기까지는...”
“음... 찬수씨랑 오래오래 같은 부대에 있으면 좋겠는데...”
“입원관님은 계속 군대에 계실건가보죠?”
“음~ 보미라고 불러주세요. 밖에선 그냥 찬수씨의 여자가 되고 싶어요.”
“... 후훗.”
“전 군대가 좋아요. 계속 군대에 있고 싶어요. 전우애와 군기로 뭉쳐있고 젊음의 에너지가 흐르잖아요.”
“입... 보미씨는 군대를 정말 좋아하나봐요?”
“저한테도 편안하게 말 해주실 수 없으세요?”
“아... 존댓말하는게 버릇이 되서...”
“동생한테는 안그랬잖아요. 저 어려요.”
“......”
생각해보면 지금의 자신이 그렇게 편하게 대하는 사람은 몇 명 안되는 것 같았다. 어릴때부터 누구에게나 존댓말을 쓰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가끔은 후배들에게도 반말이 쉽지 않아 의식적으로 반말을 해야되었고, 지금도 병사들에게 의식적으로 말을 놓지 않으면 환자 대할때처럼 존댓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찬수씨는 달라요."
"......"
"난 찬수씨한테 소중하고 싶어요."
"......"
"그러니까 ......"
보미는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2009년 7월 18일 강원도 시내군 한천면 88사단 의무대
"수고하셨습니다."
일과 시간이 끝나고 당직 하사와 당직 의무병외에는 작업 할 것이 남은 인원들외에는 내무반으로 올라갔다.
의무대 안의 모습을 보며 찬수는 당직 군의관인 치료반장을 보며 말했다.
"... 어쩐지 2층에 올라간 사람보다 남은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네요."
"전군 재물 조사 때문에 치료소대 인력들도 많이 필요하다니까요."
일과시간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서류상으로 있는 물건들을 맞춰보는 것도 일이었지만, 그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서류와 실제 물건과의 비교가 진짜 일의 시작이었다. 이 단계가 가장 큰 일이라고 했다. 서류에는 있는데 실제로는 없거나, 반대로 서류에 없는 물건이 실제에 존재하기 때문에 이걸 끼워맞춰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서류에는 있는데 실제로는 없는 물건을 찾아내야한다고 했고...
그때문에 당연히 짬밥 안되는 졸병들과 알만큼 아는 짬밥되는 고참들은 목록과의 대조와 없는 물건 찾아내기에 동원되거나 행정실 인원들을 도와 혹시 기록에 누락이 있는지 서류상의 허점을 대조하는데에 동원되어 일부의 운이 좋은 병사들만이 내무반이 있는 2층에 올라갔다.
"반장님."
"네.", "네."
부르는 소리에 치료반장과 외과반장인 찬수는 동시에 서로 뒤를 돌아봤다.
"아... 네, 외과반장님이요."
당직사관인 보미가 찬수를 찾았다."
"이제 올라가시나요?"
"예..."
"오늘은 뭐하실겁니까?"
"뭐... 한천면이나 나가볼까요."
"혹시 번개 통신 올지 모르니까 어디가실때는 조심하십시오."
"1시간이었죠?"
"예."
번개통신이라고 불리는 간부 위치 확인 연락을 받고 1시간안에 응답해야 한다고 했다.
2009년 7월 18일 강원도 시내군 한천면 88사단 BOQ
"... 예, 그럼 월요일에 전해 드리겠습니다. 검토해주시고 연락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BOQ에 올라와 츄리닝으로 갈아 입은 찬수는 치료반장이 알려준 번호로 연락한 뒤 가방에 준비해둔 것을 챙겨뒀다.
띠이~
찬수의 방에 있는 전화기가 울렸다.
"네, 대위 유찬수입니다."
"충성. 위병소 병장 손정성입니다. 유찬수 대위님 여자친구분이 면회를 오셨습니다. 지금은 면회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자친구요? ... 아, 여자친구라고?"
갑자기 황당한 말에 무의식적으로 존댓말이 나왔다.
"예, 그렇습니다."
여자친구라니... 나은 외에는... 하지만... 알 것 같았다.
"하아... 알겠다. 지금갈게. 고맙다."
"충성."
찬수는 청바지에 폴로티로 갈아입고 가방을 둘러멨다.
2009년 7월 18일 강원도 시내군 한천면 88사단 면회소
"내 여자친구라면서 면회 신청할 사람이 너 밖에 없지."
면회소에서 들어선 찬수의 목소리에 굵은 컬을 한 긴머리의 여자는 웃었다.
"그럼~ 나 말고 누구겠어~ 이거 부대 사람들한테 주고 나가자."
12개들이 도넛 박스들을 내놓으며 여자는 말했다.
"이건 연락해서 누가 가져오라고 하면 돼."
"오~ 장교는 뭐가 달라도 달라~ 사람도 부리고~"
"됐어..."
찬수는 의무대 행정실로 연락해 도넛 가져갈 사람을 한 명 보내라고 이야기했다. 주말에 창고 뒤지며 먼지 뒤집어 쓸 병사들에게 주전부리하기에는 조금 아쉬울지도 모르겠지만...
잠시 뒤 이등병 한 명이 면회소로 올라왔다.
"충성! 이병 한민수! 면회소에 용무있어 왔습니다!"
"충성. 여기 도넛 박스들 가져가서 의무대 사람들 다같이 먹으라고해 전해주렴."
"충성! 이병 한민수!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고..."
"예, 충성!"
한민수 이병은 찬수의 옆에 있는 늘씬한 여자를 흘끔흘끔 보고는 면회소를 나갔다.
"휴... 월요일에 부대 들어가면 무슨 일이 있으려나..."
"무슨 일이 생기긴? 예쁜 여자친구 있다고 소문나겠지~"
"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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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 글을 올려 놓고 야설넷이 도용할 10분의 여유를 주고 올렸더니 이제 시간을 두고 몰아서 올리네요. 거기에 예전에는 따옴표 같은 것은 누락되더니 그것도 개선하고, 방어 대책 없이 수수방관하는 소라넷 운영진보다는 그 도용꾼들이 일은 하는 것 같습니다. 도용꾼들 막자고 빈 글 올리고 하루 뒤에 연재하는 것은 독자들꼐 죄송스럽고...
* 이번 에피소드는 쓰면서 중구난방이라는 느낌입니다. 해야할 것은 많은데 그걸 다 풀어놓으려고 하다보니 뒤엉킨 느낌?
* 스토리를 짜다가 임미혜 간호사라는 소녀적 캐릭터와의 계기로 라이온 킹 뮤지컬 초연을 생각했는데 한국에서는 2006년 말에 했을겁니다. 결국 고민하다가 한국 공연 가능성을 가늠하는 파일럿 공연을 6월중순~7월 초순까지 했다는 가상의 설정을 넣었습니다.
* 소녀적인 캐릭터는 김보미 하사도 그런 이미지지만, 임미혜 간호사는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김보미 하사가 귀여운 컨셉이라면 임미혜 간호가는 꺄르르거리고 재잘대는 사춘기 소녀 컨셉으로 구상했습니다.
* 면회소에 찾아온 자칭 여자친구의 정체는 다들 아실겁니다.
"그러고보니 언제부터 제헌절이 공휴일에서 빠졌더라..."
예과, 본과시절이랴 어차피 방학 기간이니까 도서관을 가든 과외를 가든 스터디를 가든 했었고... 인턴, 레지던트때는 휴일은 오프뿐이었고... 그러다가 군대에 와서 보니 7월 17일이 까만 글씨로 써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진리 일병, 여기 차트 들고 가세요."
인솔 의무병인 윤희구 상병이 마지막 병사 환자에게 차트를 나눠주고 있었다. 그것을 본 찬수는 외과계 입원 병동으로 올라갔다.
"웅엉."
뭔가 말년병장 분위기의 병실 담당 의무병이 보였다. 찬수는 그 병사의 행방을 물어봤다.
"88사단 군의관인데 88사단 최인관 일병은 어디있니?"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최인관 일병!"
"최인관 아저씨 담배 피러 갔는데요."
아마도 옆 침대의 다른 환자 병사가 대답한 것 같다. 골반 골절 환자가 아직 아무는 중인데 이렇게 돌아다니다니... 그것도 좋지도 않은 담배를 피러... 찬수는 잠시 한 숨을 내쉬었다. 그런 환자들이 있었다. 괜히 돌아다니지 말고 안정 취하고 있으라면 어딘가를 돌아다니며 어디 숨어서 담배를 피거나 주전부리를 하고, 덕분에 NPO(라틴어로 nulla per os, 영어로는 nothing by mouse: 금식)가 날아가 버려 수술 일정이 꼬이게 만드는 사람도 있었고, 그외에도 하지말라는 것 하는 사람들은 흔히 보였다.
"어디나 환자는 똑 같은건가..."
"담배피러 갔담다."
"어디서 담배를 피지?"
"주로 PX 앞이나 병원 본관 앞 등나무임다."
"고맙다."
등나무 아래에서 최인관 일병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담배는 혈액 순환에 안좋아서 빨리 낫는데 방해된다."
"아... 훙헝."
부대를 벗어나니 급속도로 군기가 빠져나간듯했다. 지난달에 제대한 의무대의 이충희 병장도 저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저런 모습이 상습적으로 구타당하는 것의 명분은 결코 되지 못했다.
"그 뒤로 부대 사람들은 봤고?"
"행보관님이 오셨는데 수술 받고 안정 취하라고 면회 거절되었습니다."
"뭐... 이제 그 안정받아야 된다고 거절할 수 는 없겟구나..."
치료반장이 입원조치 시키면서 외압을 막기 위해 면회 거절을 요청했고, 담당 군의관과 간호장교등도 동의했지만, 멋대로 병실에서 빠져 나와 담배까지 피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안정을 위한 면회 거절이라는 명분이 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 상태는 어떻고?"
"아직은 아픔다."
"그런데 담배피러 돌아다니니?"
"......"
조금은 풀이 죽은듯했다.
"... 이것때문에 왔다."
찬수는 들고있던 가방에서 A4 출력물을 한 장 꺼내 최인관 일병에게 보여줬다.
"뭡니까 이건?"
"만약에 대비한 방법이지."
볼 일을 마치고 외진 버스로 돌아온 찬수를 보미가 불렀다.
“반장님, 어디 계셨습니까?”
“아아... 그냥...”
“같이 PX 가시겠습니까?”
“... 그러죠.”
운전병이 못 들을만큼 거리가 되자 다시 편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반장님, 그 골반 골절 환자 보셨나요?
“... 예.”
“웅... 그렇구나. 있다가 퇴근하시고 같이 한천면에 놀러가지 않으실래요? 반장님 방 알아보는 것도 있고... 아직 못알아보셨죠?”
“예...”
“한천면에 삼겹살집말고 돈까스 맛있는 집도 있는데 같이 가요~”
“돈까스요?”
“예~ 맛있어요. 여지껏 그만큼 맛있는 돈까스는 못 먹어봤어요~”
“......”
나은과 사귀면서 입맛이 변해 기름진 것은 잘 안먹게 되었는데 요즘은 자주 먹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돈까스에 맥주 한 잔 곁들여 먹으면 얼마나 좋은데요~”
“... 그러죠.”
2009년 7월 17일 강원도 시내군 한천면
“7연대에 있는 아는 사람한테 들었는데 부대에서 문제아였나봐요.”
젓가락으로 돈까스를 집어 올리던 보미가 말했다.
“어떤 문제아요?”
“있잖아요. 답답하고, 시키는대로 안하고, 사고만 치는 애들...”
돈까스 조각을 입에 넣은 보미가 말했다.
“그런가요...”
“사람이니까 그러다보면 손이 나갈지도 몰라요. 그래도 애정이 있으니까 그렇게 해주는거겠죠?”
“......”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보미가 미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쁨, 환희, 슬픔, 공포, ... 여러 가지가 뒤섞여 알 수 없었다.
“애정이 있으니까 벌을 주는 것이고요.”
“......”
“군대는 그렇게 엄격함이 있어야 돌아가니까요.”
“......”
찬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보미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제 대한민국 육군이 나쁜일 하는거 보셨어요?”
‘무신정변... 아, 그건 고려시대구나... 국민방위군사건, 보도연맹사건, 5월 16일, 12월 12일, 5월 18일, 아, 5월 18일은 북한이 일으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기는하지...’
이런 생각을 하며 말하려다가 생각을 바꾸고 그냥 쓴 웃음만 지었다.
“맥주 안드세요? 돈까스도 맛있지만, 맥주도 호프집보다 맛있어요.”
보미가 찬수를 보며 권했다. 맥주는 다소 밍밍한 느낌이지만, 7월 중순의 날씨에 시원한 맥주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이런 맥주가 호프집보다 맛있다는건 기분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걸까... 설마... 여기 호프집이 그보다 못하다는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끔찍했다. 튀김 자체는 바삭하게 되었지만, 고기 자체는 피가 덜빠졌는지 약간 누린내가 느껴졌다.
2006년 6월 23일 서울 역삼동
"왕 돈까스 2개하고 맥주 500 2잔이요."
임미혜 선생이 자연스럽게 주문을 했다.
서빙을 하는 아주머니가 주문을 받고 가자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목소리로 임미혜 선생이 말했다.
“유 선생님 덕분에 재미있게 봤어요.”
“아니요. 덕분에 지금 저녁도 먹고 있는걸요.”
“저는 병원에서 간단히 빵이라도 먹고 나왔지만, 선생님은 수술방 갔다가 아무것도 못드시고 오셨잖아요?”
“저야 그런 일, 드문 일은 아니니까요.”
라이온킹의 파일럿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임미혜 선생이 늦었지만, 저녁을 먹자고해서 부근의 호프집을 찾았다.
원래는 6시에 병원을 나와 공연장 부근에서 저녁을 해결할 예정이었지만, 긴급 수술로 수술할 일손이 부족해져 수술실에 들어갔다가 7시가 다 되어서야 나왔고,그야말로 쏜살같이 달려 가까스로 8시 공연에 맞췄다. 물론 뭔가를 먹을 틈은 없었다.
이야기를 하는동안 돈까스와 맥주가 나왔다.
“드셔보세요. 이 집 가끔 이쪽으로 놀러오면 오는 집인데 소스가 특이해서 좋아해요."
임미혜 선생이 먼저 권했다.
"음... 토마토와 양파를 넣고 가게에서 직접 만든 소스인가 보네요. 다른 왕돈까스 집에서는 보기 힘든 맛이네요."
한 입을 먹어보고 찬수가 말했다.
"예. 이 시간에 식사 될만한 가게가 생각이 안나서 죄송해요."
“아니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 같은데요. 덕분에 저도 이런 곳을 알게 되었으니 괜찮은데요.”
주변을 둘러본 찬수가 말했다.
“뮤지컬도 보여주셨는데 이건 좀 부족해보여서요.”
“괜찮아요. 저도 어쩌다 얻은 표였는데.”
“음... ㅇ”
임미혜 선생은 무슨 생각을 하다가 눈 앞의 생맥주를 마시며 다시 말을 삼켰다.
2009년 7월 17일 강원도 시내군 한천면
‘... 설마 부대 돈까스와 비교한건가?’
굳이 분위기를 깰 필요는 없어서 그냥 맛에 대한 생각은 접었다.
“찬수씨...”
“네?”
언제나처럼 부대 밖의 보미가 찬수를 대하는 모습은 좀 더 편안했다.
“찬수씨는 군인의 길... 관심 있으세요?”
전에 찬수는 군의관 일도 보람있는 것 같다는 말을 보미에게 했지만, 보미의 이 질문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환자들을 돌보고 그들이 무사히 사회로 돌아가게 해주는 일... 보람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 장기(장기복무. 일명 말뚝 박다) 해보실 생각도 있으세요?”
보미는 표정이 활짝 펴지면서 말했다.
“글쎄요... 아직 거기까지는...”
“음... 찬수씨랑 오래오래 같은 부대에 있으면 좋겠는데...”
“입원관님은 계속 군대에 계실건가보죠?”
“음~ 보미라고 불러주세요. 밖에선 그냥 찬수씨의 여자가 되고 싶어요.”
“... 후훗.”
“전 군대가 좋아요. 계속 군대에 있고 싶어요. 전우애와 군기로 뭉쳐있고 젊음의 에너지가 흐르잖아요.”
“입... 보미씨는 군대를 정말 좋아하나봐요?”
“저한테도 편안하게 말 해주실 수 없으세요?”
“아... 존댓말하는게 버릇이 되서...”
“동생한테는 안그랬잖아요. 저 어려요.”
“......”
생각해보면 지금의 자신이 그렇게 편하게 대하는 사람은 몇 명 안되는 것 같았다. 어릴때부터 누구에게나 존댓말을 쓰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가끔은 후배들에게도 반말이 쉽지 않아 의식적으로 반말을 해야되었고, 지금도 병사들에게 의식적으로 말을 놓지 않으면 환자 대할때처럼 존댓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찬수씨는 달라요."
"......"
"난 찬수씨한테 소중하고 싶어요."
"......"
"그러니까 ......"
보미는 눈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2009년 7월 18일 강원도 시내군 한천면 88사단 의무대
"수고하셨습니다."
일과 시간이 끝나고 당직 하사와 당직 의무병외에는 작업 할 것이 남은 인원들외에는 내무반으로 올라갔다.
의무대 안의 모습을 보며 찬수는 당직 군의관인 치료반장을 보며 말했다.
"... 어쩐지 2층에 올라간 사람보다 남은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네요."
"전군 재물 조사 때문에 치료소대 인력들도 많이 필요하다니까요."
일과시간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서류상으로 있는 물건들을 맞춰보는 것도 일이었지만, 그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서류와 실제 물건과의 비교가 진짜 일의 시작이었다. 이 단계가 가장 큰 일이라고 했다. 서류에는 있는데 실제로는 없거나, 반대로 서류에 없는 물건이 실제에 존재하기 때문에 이걸 끼워맞춰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서류에는 있는데 실제로는 없는 물건을 찾아내야한다고 했고...
그때문에 당연히 짬밥 안되는 졸병들과 알만큼 아는 짬밥되는 고참들은 목록과의 대조와 없는 물건 찾아내기에 동원되거나 행정실 인원들을 도와 혹시 기록에 누락이 있는지 서류상의 허점을 대조하는데에 동원되어 일부의 운이 좋은 병사들만이 내무반이 있는 2층에 올라갔다.
"반장님."
"네.", "네."
부르는 소리에 치료반장과 외과반장인 찬수는 동시에 서로 뒤를 돌아봤다.
"아... 네, 외과반장님이요."
당직사관인 보미가 찬수를 찾았다."
"이제 올라가시나요?"
"예..."
"오늘은 뭐하실겁니까?"
"뭐... 한천면이나 나가볼까요."
"혹시 번개 통신 올지 모르니까 어디가실때는 조심하십시오."
"1시간이었죠?"
"예."
번개통신이라고 불리는 간부 위치 확인 연락을 받고 1시간안에 응답해야 한다고 했다.
2009년 7월 18일 강원도 시내군 한천면 88사단 BOQ
"... 예, 그럼 월요일에 전해 드리겠습니다. 검토해주시고 연락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BOQ에 올라와 츄리닝으로 갈아 입은 찬수는 치료반장이 알려준 번호로 연락한 뒤 가방에 준비해둔 것을 챙겨뒀다.
띠이~
찬수의 방에 있는 전화기가 울렸다.
"네, 대위 유찬수입니다."
"충성. 위병소 병장 손정성입니다. 유찬수 대위님 여자친구분이 면회를 오셨습니다. 지금은 면회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자친구요? ... 아, 여자친구라고?"
갑자기 황당한 말에 무의식적으로 존댓말이 나왔다.
"예, 그렇습니다."
여자친구라니... 나은 외에는... 하지만... 알 것 같았다.
"하아... 알겠다. 지금갈게. 고맙다."
"충성."
찬수는 청바지에 폴로티로 갈아입고 가방을 둘러멨다.
2009년 7월 18일 강원도 시내군 한천면 88사단 면회소
"내 여자친구라면서 면회 신청할 사람이 너 밖에 없지."
면회소에서 들어선 찬수의 목소리에 굵은 컬을 한 긴머리의 여자는 웃었다.
"그럼~ 나 말고 누구겠어~ 이거 부대 사람들한테 주고 나가자."
12개들이 도넛 박스들을 내놓으며 여자는 말했다.
"이건 연락해서 누가 가져오라고 하면 돼."
"오~ 장교는 뭐가 달라도 달라~ 사람도 부리고~"
"됐어..."
찬수는 의무대 행정실로 연락해 도넛 가져갈 사람을 한 명 보내라고 이야기했다. 주말에 창고 뒤지며 먼지 뒤집어 쓸 병사들에게 주전부리하기에는 조금 아쉬울지도 모르겠지만...
잠시 뒤 이등병 한 명이 면회소로 올라왔다.
"충성! 이병 한민수! 면회소에 용무있어 왔습니다!"
"충성. 여기 도넛 박스들 가져가서 의무대 사람들 다같이 먹으라고해 전해주렴."
"충성! 이병 한민수!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고..."
"예, 충성!"
한민수 이병은 찬수의 옆에 있는 늘씬한 여자를 흘끔흘끔 보고는 면회소를 나갔다.
"휴... 월요일에 부대 들어가면 무슨 일이 있으려나..."
"무슨 일이 생기긴? 예쁜 여자친구 있다고 소문나겠지~"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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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 글을 올려 놓고 야설넷이 도용할 10분의 여유를 주고 올렸더니 이제 시간을 두고 몰아서 올리네요. 거기에 예전에는 따옴표 같은 것은 누락되더니 그것도 개선하고, 방어 대책 없이 수수방관하는 소라넷 운영진보다는 그 도용꾼들이 일은 하는 것 같습니다. 도용꾼들 막자고 빈 글 올리고 하루 뒤에 연재하는 것은 독자들꼐 죄송스럽고...
* 이번 에피소드는 쓰면서 중구난방이라는 느낌입니다. 해야할 것은 많은데 그걸 다 풀어놓으려고 하다보니 뒤엉킨 느낌?
* 스토리를 짜다가 임미혜 간호사라는 소녀적 캐릭터와의 계기로 라이온 킹 뮤지컬 초연을 생각했는데 한국에서는 2006년 말에 했을겁니다. 결국 고민하다가 한국 공연 가능성을 가늠하는 파일럿 공연을 6월중순~7월 초순까지 했다는 가상의 설정을 넣었습니다.
* 소녀적인 캐릭터는 김보미 하사도 그런 이미지지만, 임미혜 간호사는 조금 다른 느낌입니다. 김보미 하사가 귀여운 컨셉이라면 임미혜 간호가는 꺄르르거리고 재잘대는 사춘기 소녀 컨셉으로 구상했습니다.
* 면회소에 찾아온 자칭 여자친구의 정체는 다들 아실겁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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