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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0:44 1,002회 0건

오늘이라고 다를게 있을까, 정신이 슬슬 들때쯤이면 이미 버스 안이고 시작도 안 한 수업이 어서 끝나기를

재촉하고 있다. 하루하루가 똑같고 그나마 차이가 있다면 시간표 정도일까. 반복적인 동작은 사람을 노쇠하게

만든다고들 하던데, 지금 내 상황도 그 연장선의 끝트머리 어디쯤에 분명히 있었다.

학교에 도착하면 버스에서 내리고 일면식도 없는 수십, 수백명의 학우들과 학교로 오른다.

그리곤 각각의 위치로 갈라져서 건물로 들어가고, 시간이 지나면 토해져나온다.

이게 군대랑 다른게 뭘까? 조금 자세히 눈을 디밀어보면 시키진 않는다는게 그나마 차이일려나.

그것도 말이 그렇지 사회가 강요하고 있는 이상 순수 내 의지라고 볼 순 없었다.

전역은 사회로 향한 또 다른 입대가 분명했다.

한숨만 푹푹 나온다. 사회의 부조리 때문에?

아니다. 능력은 쥐뿔도 없는게 개똥철학이나 곱씹으며 까대는 자신이 창피해서 그랬다.

정신차려라. 나라고 밥그릇을 걷어차고 살 수는 없다고 병신아.

후... 짧게 한숨같은 쉼호흡를 하고는 학교로 향했다. 요즘 부쩍 한숨이 늘었다는 건 착각이 아니다.

외면할 건 외면하고 언젠가 열릴 열매만 바라보자.

내 열매, 그게 비록 달지 않을지라도 온전한 내 것이니까 만족해야한다, 만족해.

그렇게 끊임없이 암시를 해보지만 손톱 아래의 가시같은 작은 위화감까지는 씻겨낼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자꾸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당장 받는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니까.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서 우리과 건물로 들어갔다.

보자.. 이번 수업이 미생물학이니까, 3층으로 가면 되겠군.

이것저것 생각하며 오르다보니 금방 강의실 앞에 도착했다. 수업 시작까지는 아직 10분 남짓 남아있었기에,

적당한 자리에 가방을 놔두곤 담배 한대 피러 나왔다. 재빨리 니코틴을 보충하고는 마음을 다잡았다.

"어머니! 이제부터라도 아까운 등록금을 잔다고 허비하지 않을께요, 힘을 주세요!"



그 날 수업은 꽤 괜찮게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곧 이어 다가온 후배녀석의

"형 오늘도 멋지게 주무셨네요 큭큭." 한마디에 와장창 부서지고 말았다.

"그..그래 고맙..다 하하.."

억지로 입꼬리를 당기며 대답했다. 내게 이렇게 말걸어주는 이녀석은 한승호라고 2학년생이다.

나랑 학년은 같은데 아직 군대를 안가서 실상은 두살 어리다. 유일하게 내게 먼저 말 걸어주는 녀석이고,

짐작하듯 꽤 사교성도 좋아 과에서도 평판이 좋다. 간혹 깐촉대는 언행을 하지만 무례하지 않을 정도의 선을

지키는 걸 보아 눈치도 제법 있는게 틀림없다. 물론 나도 좋게 보고있고 가끔씩 술자리에 어울리기도 한다.

"형 오늘 별 약속 없죠?"

"야야; 오늘 화요일 밖에 안됐는데 벌써 달릴려고?"

"에이, 한창인데 술은 아무때나 먹어도 상관없습니다요~"

"음... 나야 약속 없긴한데..."

"딱이네! 형 그러지말고 오늘 꼭 같이 가요. 내가 패션학과에 아는 애들 몇명있어서 줄 좀 놔달라고 했거든요,

설마 이런 기회를 차버릴 정도로 형이 타락하진않았겠죠? 케케"

"오, 네가 그런 연줄도 있어? 확실히 마당발이 맞긴 맞나보네"

"후후 제가 좀~? 게다가 이번 술자리에는..."

"술자리에는?"

"무려 13학번 새.내.기. 귀.요.미. 들이 나온다니까요!!"

"..오오...!"

순간 13학번이라는 그 말이 얼마나 마음을 흔들었는지 모른다.

아직 채 때묻지 않은 순수함, 같은 또래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싱그러움마저 품고 있는 마법의 단어.

나 같은 복학생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굴러들어온 기회까지 차버릴 이유는 없었다.

"그, 그래 나도 좀 꼭 데려가라 부탁할께."

"하하 안그래도 형 생각해서 제가 제일먼저 온거니까 걱정 마시구 나중에 7시에 저 아래 부뚜막으로 꼭 오세요!"

"저번에 갔던 민속주점 말이지? 알았어 시간 맞춰서 갈께."

그렇게 승호랑 헤어졌고 나는 다음 수업을 위해 강의실을 옮겼다. 아직 2개의 수업이 마저 남은 상황이었지만

나중의 술자리에 대한 기대감 덕분에 그 정도의 장애물은 무참이 넘어뜨릴 수 있었다.



"형, 여기에요!"

민속주점에 들어서자 저 쪽 구석자리에서 승호가 손을 흔들며 어서오라고 재촉했다.

마지막 수업이 조금 늦게 마치느라 부랴부랴 달려왔지만 이미 사람들은 다 모인 듯, 테이블이 북적거렸다.

"으, 미안미안 교수님이 도무지 끝을 안내더라구."

가방을 옆에 살짝 내려놓곤 대충 자리를 비집으며 앉았다.

힐끔 보니 우리과 학생인듯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고,

아 저 쪽이 패션과인가?

딱 봐도 옷 잘입겠다 싶은 한 무리가 내 맞은 편에 있었다.

"형 우리는 대충 통성명 다했는데 간단하게 인사 하세요~"

승호가 그래도 뻘쭘하지 않게 신경써준다. 이럴때보면 동생같지 않단 말야. 좋은 놈...

"험험, 안녕하세요 신설기라고 합니다."

살짝 헛기침으로 목을 풀곤 간단한 자기소개를 했다. "무슨과, 몇학년이다" 이렇게 대충 말하곤

본격적인 술자리에 돌입했다. 역시 술의 힘이란 무섭다더니 빈말이 아니었다.

초반의 어색한 분위기도 술이 들어가기 시작하니 금새 풀어져버리고, 오늘 처음 본 사이가

마치 없으면 죽고 못사는 절친 마냥 둔갑시켜버렸으니 말이다. 물론 나 역시도 이런 분위기가 싫지 않다,

아니 오히려 환영하는 쪽이다.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억지로 입을 다물고 있는 것 만큼 싫은 경우가

있을까. 그런 간질간질한 상황은 이쪽에서 사양이다.

그래서 승호가 날 불러줬는지도 모르겠다.

평소, 승호처럼 나서기를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갑갑한 상황을 누구보다 더 싫어하다보니 억지로 나서곤

했었는데, 꽤 반응이 나쁘진 않았던거 같다.

하긴 지들이 못 매는 총대를 대신 매주는데 거기다 감놔라 배놔라 한다면 진짜 개새끼 아닌가?

다행이 이번에는 승호가 적당히 잘 나서줘서 좋은 금새 좋은 분위기가 된 터라 내 쪽에서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자자~ 이제 서로 좀 친해진거 같은데, 언제까지 마주보고 앉아있을꺼에요? 사랑의 스튜디오도 아니고."

승호의 말에 주변이 와하하- 하며 쓰러졌다.

아니 이자식은 사랑의 스튜디오가 뭐야 본 적이 있긴하나??

"서로 작대기 날릴 것도 아닌데 이러지말고 사이사이에 앉도록 하죠. 콜?"

"역시 승호다, 진짜 웃기네ㅋㅋ"

"오빠 말 너무 잘하는거 아니에요? 사랑의 스튜디오라니 본 적도 없으면서!!ㅎ"

다들 말은 그렇게해도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금새 사이사이로 교차해서 앉았다. 물론 내 옆자리에도 여자애가

앉았고, 다행인지 같은 과 여학생이 아닌 패션과 애들인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오~"

오른편에 앉은 여자애가 살갑게 인사하고 들어왔다.

"아, 네 안녕하세요."

"에이~ 말 편하게 하셔도 되요. 아까 전에 오시기 전에 승호오빠가 다 떠들었어요,

자기보다 나이 많은 복학생 한명 올꺼라구."

"윽, 쟤가 그랬어..요?"

"그냥 편하게 하시라니까요. 저 이제 스무살이에요~"

"그래 그럼.. 내가 말 편하게 할께, 반갑다!"

"네 오빠. 아,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살갑게 다가오는 여자애 덕분에 한결 술맛이 살았다. 자기 이름이 이소은이라고 말하는 이 녀석은 올해

패션과에 입학한 새내기였다. 오늘 패션과에서는 4명이 나왔는데 그 중 3명이 새내기란다.

웃기게도 내 양 옆에 앉은 두명이 그 새내기들이고. 아쉽게도 왼편의 여자애는 말이 별로 없었다.

이런 술자리가 낯선 듯, 묵묵히 술만 마시고 있었는데 굳이 싹싹한 소은이 놔두고 내가 챙겨줄 필요 있을까

싶어 나뒀더니 금새 우리학과 다른 녀석이 옆에서 찝쩍대기 시작했다.

좋은게 좋은거라고 알아서 잘 되겠지라는 생각에 소은이랑 짠하며 빠르게 술판으로 빠져들었다.

"아하하 정말요~?"

"내가 진짜 그때는 얼마나 아찔했는지.."

"우와... 오빠 생각보다 장난아니다?"

확실히 승호가 자리를 섞자고 제안한 덕분에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훨씬 좋았다. 당장 나만 보더라도 이렇게

새내기랑 희희낙락거리고 있지 않은가. 오늘 술자리는 정말 오기 잘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한창 달리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11시를 향하고 있었다. 대충 술자리는 파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었고

집에 통금시간이 있는 여학생들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2차로 노래방을 가자며 와와- 거리고 있었다.

소은이 역시 슬슬 일어나려는지 주변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오빠 오늘 진짜 재밌었어요. 카톡 아디 알려줬으니까 나중에 꼭 연락하기!!"

"그래 그래, 늦었는데 조심해서 들어가고 담에 또 보자."

마지막으로 나한테까지 꼭 인사를 하고 가는걸보니 확실히 싹싹하긴 싹싹한가보다.

나한테 있는 후배라곤 발랑 까져서 살살 기어오르는 승호 밖에 없는데... 하아~

그러는 사이에 이미 일행들은 노래방으로 갈 준비가 다 된듯, 길가에서 벌써부터 노래를 불러재끼고 있었다.

다음날 수업도 있고 몸도 좀 피곤했던 나는 살짝 재끼기로 하고 승호를 불렀다.

"왜요, 형?"

"왜요는 일본 담요고."

"헐;"

"농담이고, 난 먼저 가볼려구. 내일 수업도 일찍 있고 그래."

"아, 먼저 들어가세요. 전 형 덕분에 추워서 빨리 노래방가서 흔들면서 몸 좀 녹여야겠네요."

"그래, 빡시게 놀고~ 난 먼저 가볼께."

"네, 형 수고하셨어요, 들어가세요~"

그렇게 짧막한 작별인사를 나누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주량이 약한 편이 아니었는데..

발걸음이 조금씩 엇나가면서도 기분이 좋은게 술기운이 좀 도는 듯 했다. 조절하면서 마신다고 하긴 했지만

워낙 분위기가 좋았던 탓에 마음대로 잘 안된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왼편에 앉아있었던 그 여자애는

잘 들어갔나 모르겠네. 꽤 뚱한 표정이었지만 귀여워보였는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금새 버스정류장 근처다. 아직 막차까진 아슬아슬하게 세이프려나.

"어! 오빠?"

그때 누굴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빠르게 다가오더니 내 팔을 잡았다.

"..어어?"

의도하지 않은 상황은 항상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한다.

물론 그 상황을 연출한 사람은 즐겁고, 당하는 입장에서는 깜짝깜짝 놀라기 마련이지만.

지금 내 입장은 당연히 후자였다.

"우와~ 오빠도 여기서 버스 타요?"

내 팔을 잡은 사람은 소은이였다.

"아.. 소은이네? 응 나 XXX번 타고 가면 되거든."

"엇! 정말요?? 나도 그거 타는데!"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팔짝팔짝 뛰는 소은이가 신기하기까지 했지만, 여기서는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는게

낫겠다싶어서 "이야~ 이거 인연이 장난이 아닌가보네.", "잘됐다. 안그래도 여자애 혼자 보내는게 영

찝찝했는데 그나마 좀 안심이네." 는 식으로 듣기 좋은 말을 주절거렸다. 립서비스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

소은이도 그런 입발린 말이 싫지는 않은지, 헤헤-거리며 헤픈 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왔고, 우린 버스에 올랐다. 꽤 널널했던 버스라 두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에

사이좋게 앉아서는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이제 만난지 4시간 지난거 맞지?

별로 물어볼 필요도 없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피어올랐다.

뭐 어때, 좋은게 좋은거라고.

한참을 그렇게 떠들다가 어느새 소은이는 꾸벅꾸벅 졸기시작했다. 알고보니 소은이가 사는 동네는

우리 옆동네였고 거의 종점까지 가야할 판이라, 일부러 깨우지않고 그대로 두었다.

확실히 조금이라도 어린게 좋나보다. 나는 저렇게 재잘거리라고 하면 10분도 안되서 나가떨어질텐데 말야.

어렸을 적 키웠던 구관조 생각이 문득 떠올라 나도 모르게 피식거렸다. 졸고 있는 소은이를 힐끔거리다보니

아까 술집에선 미처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들이 새삼 보였다.

이렇게 보니까 꽤 늘씬하네.

그러고보니 오늘 나온 패션과 학생들은 다 맵시가 좋았단 말야. 역시 배우는게 그거라 몸도 자연히 따라가나보다.

완전 좋은 학과네..~

자고 있겠다 뭘 알까싶어, 힐끔거리는 시선이 점점 더 노골적으로 바뀌어갔다.

쌍커풀에 꽤 큼지막한 눈, 오똑하진 않지만 나름 올망졸망한 코를 비롯해서 어느정도 있어보이는 V라인.

아직 볼에 젖살이 덜 빠졌고 이마에 울긋한 여드름 몇개가 살짝 올라와 있다지만, 약간은 어색한 화장이

자연스레 바뀌어 있을즈음이면 지나가는 남자들 한번씩 돌아보게 만들 근사한 여인이 될 끼가 보였다.

뭐.. 가슴만 보면 이미 충분히 차고 넘치네.

말마따나 아직은 앳된 얼굴에 비해, 몸의 발육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덩치에 안맞을거 같다는 생각이 무심코 들 정도로 소은이의 가슴은 얄짤없었다.

티셔츠에 귀엽게 프린팅 된 캐릭터도, 그녀의 가슴의 굴곡 때문에 엉망진창으로 구겨져 원래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얼핏 봐도 75 B 이상? 아니다 저정도면 C도 차고 넘쳐보였다.

왠만하면 요즘 여자애들은 빠르면 중학교때 발육이 완성된다고 하던데 소은이도 그때 이미 완성(?)된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또 성욕이 슬금슬금 고개를 쳐드나 보다.

처리한지 얼마 안되서 당분간은 괜찮을 줄 알았는데, 갈수록 주기가 짧아지는게 틀림없다.

귀찮게 됐네...

술자리까지만 해도 별로 그런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욕구를 참을 정도로 대인배도 아니고

소은이랑 이렇게 만난 것도 어떻게보면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할까 는 생각에 잠시 잠겨있었더니, 소은이가 그새 눈을 뜨고는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 깼어?"

"..."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자는 모습을 보였다는게 부끄러워서일까, 아니면 내가 쭈욱 자길 바라보고 있다는 걸 눈치챘는지도 모른다.

조용한 침묵은 괜시리 사람을 찔리게 만들었다.

아니, 내가 뭘 했다고? 보는 것도 죈가??

조금은 떨떠름하게 마주쳐간 눈에서는 졸음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조금도 처지지 않은 소은이의 눈꺼풀, 이녀석 자지 않은게 틀림 없었다. 이윽고 소은이 입이 천천히 열렸고,

"오빠..."

"..그냥 우리 여기서 내리면 안되요...?"

그녀의 말에 나는 확신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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