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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0:43 1,003회 0건
오후에 다시 사람들이 모였다.
“이곳에 주로 있었던 이유는 연락을 위한 방송송출이 주요 목적이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생존자를 찾는 것은 지속적으로 해야하긴 하지만 사무실 중심인 이곳을 숙소로 이용하기엔 한계가 많습니다. 우리의 주요 생활 근거를 마련하려는데 의견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찬우는 내심 의아한 것이 많았다. 쌍둥이는 몇일후에야 남자를 선택할거라고 했는데, 그말 듣자마자 하루만에 결정을 하기로 했을 뿐아니라, 산적한 많은 중요한 일들에 앞서서 남자를 선택하는 일을 했어야 했나 하는 의구심이었다.
어떻게 말을 할까 망설이는데 조영은이 나선다. 평소에 말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었다.
“우선,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가 우리뿐이라는 것은 저로썬 아직도 믿기지 않은 사실입니다. 지난 한달 매일매일을 공포와 울음으로 지새었습니다.”목소리가 살짝 떨리는듯하다.
“누군가 나를 선택해서 삶을 살게 하였다는 의구심 또한 지울수 없습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누군가 날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라고 생각하니, 괜히 분한 마음과 수치심까지 일어납니다. 누구입니까? 이 엄청난 일을 계획하고 실행한 이들이. 왜 이런일이 일어났는지 지금 우리 누구도 알고 있지 못합니다. 그리고 내가 또 어느순간 여기 있지 않은 우리의 가족과 친구, 친척들 처럼 또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지 않을것인가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을 감내하고 비참하게 앞으로도 살아야 하는 것이 정말 믿기지 않습니다.”
“비참한것은 당신이 저 비루한 놈이랑 잠자리를 할거라는 것 때문이겠지”
김형욱이 이죽거린다. “오빠 말이 심해” 여기저기서 웅성거린다.

“맞아요 제가 이런 순간에 처해서 당신같은 사람에게 이런말을 들어가며 살아야 하는 이 현실이 비참합니다. 한달전만해도 전 사랑하는 연인과 결혼날짜를 잡고서 가족과 일을 어떻게 조화해야하는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의 그 허망한 심정을 지금도 잊지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혼자라는 외로움, 홀로 버려졌다는 그 비참함, 다행이 이곳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 지금은 많은 위안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왜 이런일이 생겼는지, 혹 누가 지금 이순간도 날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가 마치 누구의 꼭두각시가 되어 사냥몰이처럼 이리저리 떠밀리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괴롭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살아야 합니다. 슬퍼할 겨를이 없다는 거죠. 내가 선택되었다는 의구심을 저도 갖고 있고, 혹 누군가 어디서 지켜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저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는 살아남았다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인류의 마지막이라면, 앞으로 새로 인류를 이어갈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그 막대한 일을 내가 하게 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수연이 그 차분한 톤을 유지하며 한마디.

“전 아직도 이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제가 해야할일은 분명히 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모든 것을 인정할때까지 혼자이고 싶습니다..”
조영은이 마지못해 나를 선택한 이유는 일단 모두가 순순히 남자를 선택할 때 분위기를 냉각시키지 않기 위해서 였고, 이제와서야 본심을 밝힌 것이다. 가장 만만한 나를 선택한 이유는 쉽게 거절하기 위해서랄까.
“그런 이유였다면, 우리끼리 있을때 말해도 되지 않았었나요?” 최수정이다.
다들 웅성거리는 분위기다 이제껏 보지못한 당혹감과 차분하지 않은 분위기다.

“자자 조용하시고, 요점은 분명히 정리할 필요가 있겠네요.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설혹 진짜로 누군가의 꼭두각시가 되었을지라도 우리가 할 일은 인류를 이어야 하는 막대한 사명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것이 있다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추스르면 된다고 봅니다. 차분히 하나씩 하다보면 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로도 옥신각신하며 회의가 진행되었고, 결론을 내었다.

이곳 KBS를 공동의 과제를 진행하는 광장으로 하고, 근처의 원하는 건물을 차지하여 각 가족군이 사용하는 것으로 한다.
평소에는 각자가 자기 맡은바 일을 하되, 매주 일요일은 무조건 전체가 모이는 것으로 한다.
어디를 가든지 2인이상 같이 움직이는 것으로 한다.

최우선의 일은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며,
두 번째 중요한 일은 후대로 이어질 유산을 정리하고 보존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현재의 문명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지키고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스티브가 한마디 했지만 굳이 채택되진 않았다. “아기를 열심히 낳는다” 였었다.

김형욱은 국회의원 회관을 자기의 숙소로 정했다.
스티브는 근처의 호텔을 숙소로 했고
리처드는 역시 근처의 아파트를 자신들의 숙소로 정했다.

찬우주변으로 6명의 여자들이 모였다.
“죄송해요. 내가 사랑했던 이들을 너무 쉽게 잊는것 같아 시간의 여유를 갖고 싶었어요”
조영은이 얼굴을 숙이고 깊이 사과를 했다.
“이해합니다. 그런데 역시 학자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정치가나 처세에 능한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솔직히 내세우기보단 남들이 어떻게 볼까하는 처신 위주의 발언을 하는데, 님은 가감없이 원리원칙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니, 오히려 님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렇게 문제를 드러냈으니 같이 해결책을 찾는것이 쉬워질거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이해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저는 여기보다는 학교가 좋습니다. 마음을 추스르고 연구를 진행할수 있도록 허락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숙소를 학교로 정하는 것은 허락할 수 없습니다” 박수연이 제지를 하고 나섰다.
“저도 휑한 이곳보다는 학교가 좋습니다. 제가 연구하던 모든 것이 그곳에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랑 매일같이 학교로 출근하고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이 좋을듯합니다.” 박수연의 말에 모두가 수긍을 한다.

찬우네도 근처의 오피스텔을 숙소로 정했다.
1층은 비워두고 2층부터 7층까지 한층씩 쓰기로 하였다.

저녁이 되었다. 식사를 하고 7명이 나란히 로비에 모였다.
쌍둥이는 쉴새없이 떠들며 말을 시키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묘한 침묵으로 어색해 하고 있었다.
“시간은 충분합니다. 모두가 하나라는 생각이 들때까지 어떠한 것도 자유의사에 따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만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가족입니다. 어떤 힘든일이 생겼을때 우선 의논해주고 같이 해결해나가는 가족입니다. 제가 비록 볼품없지만 가족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무슨일이라도 할것이며, 그 어떠한 것보다도 가족의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승미가 생각이 났다. 그녀가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찬우를 자리를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갔다.
"피곤해서 먼저 자리를 일어나겠습니다. 내일 아침 기상은 8시로 하겠습니다.“
찬우는 가볍게 목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7층을 숙소로 사용한다고 했다.

샤워를 하고 담배를 피었다. 내일은 쇼핑을 가야겠다. 담배를 사러가야지. 누군가 계산대에 앉아 거스름돈을 거슬러 주면 좋겠다. 사람이 그립다.
‘똑똑’ 노크소리다. 김연희다. 그런데 바로 뒤에는 최수정도 있다.
“맥주 드실래요” 김연희가 맥주를 내민다.
사실 찬우는 술을 잘 못한다. 손사래를 치려는데 최수정은 이미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박수연과 조영은은 30대 초반이다. 김연희와 최수정은 20대 중반. 이영 아영 쌍둥이가 12살이니까 찬우네 가족은 10대 20대 30대가 각각2명 씩인 셈이다.
“누군 애인없고, 누군 가족없냐고. 영은이 언니가 우릴 심난하게 하자나” 최수정이 뽀루뚱하게 말한다.
“현실을 인정해야지. 그렇지 않냐구요”

“맞아” 박수연이 들어오며 맞장구를 친다.

다들 머리가 촉촉이 젖은것이 샤워를 하곤 내방으로 모이는 것이다.
“오빠가 우리 6명의 낭군이 되려면 몇 달도 못가 피골만 상접하겠는데” 그래도 언니뻘이라고 나이먹은 박수연이 노골적인 표현을 쓴다.
“에이 이영이 아영이는 빼야지. 4명이야. 그리고 영은이 언니는 당분간 꿈쩍도 않을것 같으니 우리 셋이네”
나름 방송물을 먹은 김연희가 거든다.
헛기침이 난다. 그래도 나름 섹스에 대해선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했는데 철저히 무시당하는 느낌이다. 신라호텔에서의 그녀들이 생각난다.
살짝 가소롭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말야 곽문주 언니. 너무 서두르는 느낌이 들어. 남자들을 선택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가 언듯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조금더 여유를 갖자는 이야기도 많았었는데, 오늘 아침에 난 충격 받았어”
“문주언니랑 김형욱이랑 이미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되어 김형욱이 뒤에서 조정하는거 같아”
“김형욱은 영은이 언니한테도 찝적거리다 퇴짜 맞았어”
“이미 보름전? 암튼 오래전부터 남자들이 여자들을 찝적거리고 난리도 아니었어. 공개홀쪽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김형욱이 여자들을 불러들였고, 스티브 리처드도 각자 자기 소굴에서 여자들을 불러들였지”
그랬던가. 찬우만 몰랐다. 하긴 어떤 여자들도 찬우를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나를 선택했나요”
“진지해보여서요” 최수정
“묵묵히 자기일만 하는게 믿음직해 보였어요” 김연희
최수정과 김연희가 박수연을 쳐다본다.
“난... 그냥”
“하핫 그런게 어딨어”
짱하고 맥주병을 부딪히며 깔깔 웃는다.

“언니들 이거 반칙이야 우리를 빼놓고” 이영 아영도 등장했다.
“아저씨 여보야 우리왔어”
세명이 여자가 뒤짚어진다.
“아저씨 여보야가 모냐. 너희들은 그냥 아저씨라고 불러” 박수연의 핀잔이다.

“난 오빠라고 부를래” 조영은이 왔다.
“가족이라며. 나만 빼놓으면 섭섭하자나” 조영은도 떠드는 소리에 온듯하다.
“잠이 안와”

다음날 각방면의 전문가들 아니랄까봐. 서울대로 가서 연구에 집중하겠다는 여자가 15명이 넘었다.
스티브가 버스를 가져와 운전을 해서 호위겸 갔다.
리처드는 헬기를 타고 생존자를 여자 셋과 함께 수색한다고 갔다.
김형욱은 보이지 않았다.
“김형욱은 여자들이랑 노느라 바쁘신가봐” 김연희가 틱틱거린다.
찬우는 각 건물에 전기공사를 하는 것을 거들고, 오후부터는 음식재료를 같이 준비하는등 바빳다. 중간에는 쇼핑을 했다. 실용적인 옷은 백화점보다 남대문 시장이었다. 물론 백화점에 들러 화려한 옷들을 가져오는 것도 잊지는 않았다.

4월에는 풍력발전기와 태양력발전기를 여의도 주변에 설치하여 전기를 안정적으로 얻을수 있게 되었고, 농사를 지으려 했지만 서울근교에는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 강화도까지 가야했다.
첫 번째 임신은 김형욱가에서 먼저 나왔다.
그때까지 찬우는 밤마다 외로운 밤을 보내고 있었다.

모처럼 일요일 저녁에 조영은을 뺀 나머지가 모였다. 맥주파티가 열리고서 처음이었다. 한달 보름이상이 지났을 때였다.
자연스럽게 김형욱가의 임신이 소재가 되었다.
“임신한 날짜를 보아하니 3월초야. 아직 가족이 생기기 전이지”

“그런데 언니야들은 왜 아저씨랑 같이 안자?‘ 이영이 수줍게 말했다.
어색하다.
“맞아.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 다들 어떠니” 박수연이다.
“으응. 그렇긴 한데. 와 이거 너무 어색하자나” 최수정이 얼굴을 붉힌다.
“내 생각엔 억지로라도 시간을 맞추어 보는거부터 하는게 좋을거 같아”
김연희가 마치 생각이라도 했다는 듯이 말을 이어간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1:1로 다니는거야 하루 온종일. 같이 연구를 하던, 산책을 하던 무엇을 하던 둘이서 알아서 하는 것으로 하고, 예를들어 월요일은 나랑, 화요일은 수정이랑, 수요일은 수연언니랑, 목요일은 영은언니, 금요일, 토요일은 쌍둥이 자매랑 이런식으로”
“좋아. 나는 찬성, 영은이 언니가 모라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찬성이야”
“나도 찬성”
“저희도 찬성이예요 히힛”
“잠도 같이 자는건가요? 언니야들” 아영의 말에 잠시 멈칫했지만.
“당연하지 다음날 아침에 교대하는걸로” 박수연이 한칼에 정리를 했다.
“아까 연희가 말한 요일을 그대로 하는걸로 하고 내가 영은이 한테는 따로 말할게”

조영은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식사시간에 박수연이 알려왔다.

“오늘은 제가 하는일을 도와주세요” 연희가 환히 웃으며 찬우에게 다가왔다.
잘은 모르겠지만 은은히 향수를 뿌린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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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일 2024-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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