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십 여년 쯤 사용했을 법한 크기도 작은데다가 화질또한 안좋은
말 그대로 옛날 TV.. 한 소녀가 이불 한 장을 몸에 칭칭 휘감은채로
얼굴엔 약간 상기된 표정띄곤 TV를 뚫어져라 쳐다보고있다.
[ 이번주 당첨 번호는.. 1, 3, 6, 32, 45, 27, 10 보너스는.. 20 ! 축하드립니다. ]
신나는 음악과 함께 시작되어 끝이난 추첨.. 정말 신이라도 있는것일까 ?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소녀는 얼마전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얻게된 로또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에 가져왔고 그 로또는 당첨되고야 말았다.
심장이 쿵쾅쿵쾅 머리는 망치라도 얻어 맞은듯이 멍..
한 손으론 입을 틀어막고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듯 한동안 가만히 있던 소녀
" 어떻해.. "
정신을 차린 소녀가 벌떡 일어나선 몸을 반대쪽으로 돌려 빠르게 뒤쪽에 있던
침대쪽으로 다가가더니 살짝 볼록하게 튀어나와 안에 사람이 있음을 짐작하게
해주는 이불을 잡고는 마구 흔들어댄다.
" 아빠 ! 일어나 보세요 ! 아빠 ! 아빠 ! "
몇 번을 흔들어댔을까 그제서야 외출 나갔던 혼이 돌아왔는지
수면을 취하고 있던 아빠가 이불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더니
눈꼽이 잔뜩 끼어있는 눈을 한손으로 비비적거리며 방금 일어나
입이 텁텁한 듯 쩝쩝거리며 귀찮은지 날카로운 말투로 말한다.
" 에이.. 시끄러 이년아. 아빠 잠 좀 자자 ! 잠 좀 ! "
" 아빠, 이것 보세요. 로또에요 ! 로또 ! 1등 당첨 됐어요 ! "
소녀가 정말 신이 난다는 듯 격앙된 어투로 말하며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는 아빠의 얼굴 앞으로 로또를 내밀며 흔들어댄다.
그러나 여전히 관심이 없는지 눈을 감고는 저리가라고 손짓 하는 그
" 그래.. 그래.. 그래.. ? 로또 1등.. ? "
" 네 ! 1등 당첨 됐다구요 ! "
중얼중얼 거리며 다시 이불속에 고개를 넣고는 자신의 말을 다시 곱씹던 그
몇 초간 정적이 흐르고 돌연 몸을 덮고있던 이불이 천장을 향해 날아가고
눈을 찢어져라 크게 뜬 그가 소녀의 손에서 로또를 훔치듯 낚아채더니
미친듯이 컴퓨터 앞으로 빠르게 달려가 의자에 앉아서는
목에는 핏대를 세우고 열심히 마우스를 클릭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확인 했는지 입이 쩍 하고 벌어진다.
똘망똘망하게 빛나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던 그녀의 쪽으로
아빠의 고개가 서서히 돌아가고 이내 양쪽 팔을 쫙 하고 좌우로 크게 벌린다.
" 으.. 으으.. 1등이다 ! 으하하.. 상금이 십.. 으하하 ! 주현아 ! "
" 아빠 ! "
어느세 서로를 얼싸안고는 집안 곳곳을 쿵쾅거리며 뛰어다니는 부녀
소녀.. 아니 주현.. 그녀에게는 불행 아닌 행운, 행운 아닌 불행
그것의 운명의 시간이 움직이는 시발점 이었다.
" 나는 심장이 없어.. 나는 심장이 없어.. 그래서 ~ "
평소라면 커플들이 벤치를 하나씩 차지하곤 부럽냐고 염장을 지르며
비둘기 먹이로 과자나 던져주며 하하호호 핑크빛 기류를 풍기고 있어야할
수도권 인근 공원 헌데 어쩐 일인지 평소같은 그런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수십명의 사람들이 공원의 한 벤치에 몰려선 둘러싸고 있고
그 인파의 사이사이 틈새로 감미로운 목소리가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윽고 노래가 클라이막스를 넘어 끝이나고 이젠 적응할대로 적응해
어지간한 소음에는 콧방귀를 낀다는 서울비둘기들이 어찌나 컸는지
환호소리에 놀라 하늘로 푸드덕 거리며 날아다니고 쨍그랑 쨍그랑
쇳덩이 부딪히는 소리가 공원을 뒤덮는다.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고 어느세 그 많던 사람들은 자취를 하나둘씩 감추어
다 사라져 버리고 아까의 그 자리에는 치렁치렁한 긴 머리를 뒤로
깔끔하게 묶은 올백머리를 한 건장해 보이는 남자가 기타를 옆에 두곤
실실 웃으며 다리 위에 얹혀져 있는 기타박스에 시선을 두곤 무언가를
열심히 손가락질 하며 세고 있었다.
" 117200원.. 117700원.. 으아, 장정연 ! 오늘 대박이구나 대박 !
오늘은 고기로 엉 ? 몸보신 좀 해 ? 꽃등심에 쏘주나.. 크 ! "
장정연 그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건아.. ? 아니. 거지였다. 왜 거지일까 ?
그는 불행하게도.. 정말이지 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는지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공원에서 노숙하거나 찜질방에서 몸을 씻을만큼 기본적인 것은 기억이 났지만
중요한 이름이나 부모님 혹은 살아온 환경 등은
하나도 티끌만큼도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아무리 머리속을 박박 긁어보아도 기억의 처음을 더듬어 보면 이 공원에서
처음 눈을 뜨고 옆에서 두 손가락으로 이빨을 빡빡 문지르고 있던 또 다른 거지가
동정과 연민을 섞은 눈빛으로 쯧쯧하고 혀 차는 소리를 내며 반이 잘린
바게트 빵 하나를 건내줬던 기억 뿐이었다.
사실 장정연 이라는 이름은 그 빵을 건네줬던 거지의 이름이다.
다행인 것은 공원에 박스채로 버려져있던 오래된 통기타를 보고는 호기심에
기타줄을 몇 번 건드려보자 스치듯이 악보들이 생각이 났고
연주를 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보아
가수 혹은 음악에 관련된 일을 했었다는 걸 추정할 수 있다는 것 정도 ?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돈을 벌 겸
기억도 다시 되찾을 수도 있으니 겸사겸사 공원에서 이 짓을 하고 있는것이다.
가끔씩 한 번 그를 보고는 계속해서 찾아오는 여성들이 노래가 끝나고
멋있다며 먹을거리를 주며 하는 말로 인터넷 상으로 조금 유명세를 탔으며
팬들도 계속해서 생기고 있고 꽃거지로 불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오늘도 타고난 이 조각 얼굴과 신이 내린 목소리가 날 먹여살리는 구나.
아차차, 내 영원한 친구 기타야 널 빼먹다니 내가 잘못했다 ~ "
돈 계산을 끝냈는지 든든하게 배를 채운 기타박스를 손으로 툭툭 건드리고는
뮤지컬 하듯 흥얼거리며 자리를 뜨려고 일어난 정연
그때였다 벌게진 얼굴로 비틀비틀 걸어오며 멈추라는 듯 그를 가르키며
다가오는 한 남자 거뭇거뭇 무성한 수염과 주름진 얼굴은
그가 꽤나 나이를 먹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내 코 앞까지 다가와서는 술 냄새를 풀풀 풍기는 사내
그런 남자에게 호기심이 생긴 그 조심스럽게 말은 건넨다.
" 무슨.. 일이세요 ? "
말을 건네어도 입을 꾹 다물고는 제자리에서 비틀거리기만 하는 남자
결국 비틀비틀 거리더니 쓰러지듯 몸이 옆으로 넘어간다.
재빨리 다가가서는 사내를 부축하는 정연
" 자네.. 몇 사뤼야 ? "
" 네 ? 잘 모르겠지만.. 음.. 올해 열 아홉살로 방금 정했습니다. "
정연의 말을 듣고는 피식하며 웃는 남자
그리곤 갑자기 펑퍼짐한 바지의 주머니를 뒤적뒤적 거리더니
꾸깃꾸깃한 종이 한 장을 꺼내어서 그의 손에 꼬옥 쥐어준다.
" 내 딸도.. 주혀니도 열 아홉살이지.. 흐흐.. 아뉜가 ? 아 참 올해
스물 이구나.. 흐흐.. 크흐흑.. 애뷔가.. 애뷔가 그런 것 하나 모루네 ?
그런 것 하나 몰라 ! 그런 거 하나르을 ! "
한껏 취했는지 혀꼬인 발음으로 손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몸을 꿈틀거리는 남자 정연 힘껏 사내를 부축하며 손에 쥐어준 종이가
무엇인가 싶어 꾸깃한 종이를 펴서는 확인한다.
" 이건.. 로또 ? "
" 그게 뭐냐며언.. 크흐흐 악마. 악마야 악마. 그링?아마
자눼한테는 천솨일껄 ? 천솨 크흐흐흐.. "
허탈한 듯한 웃음을 흘리던 남자 갑자기 눈에서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정연의 품에서 벗어나 어딘가를 향해 마구 달리기 시작한다.
당황한 그 얼른 다시 사내를 부축하기 위에 뒤를 ?는데
만취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달려가
어느세 도로까지 다가간 남자.. 그때였다.
우웅 ~ 빵빵 !
쾅 !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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