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그래도 푸르다-하늘은 그래도 푸르다-
‘정 선배, 이번에 고향에 내려 갈 꺼유?’
‘아니, 요즈음, 명절에 고향 안 가는 게, 트랜드 인 거 몰라? 현서는 뭐 특별히 내려갈 이유나 있어?’
‘제사 때문에 그렇져, 뭐. 일손도 딸린다고 엄마가 하도 난리라, 안 갈수도 없고…..’
‘누군 좋겠네…..’
‘에이 선배도, 명절도 예전 같아야 지여. 젤루 편한 게, 집에 누워서 주점부리나 까고, 영화나 실컷 빌려다 보면, 그게 장땡 이라니깐여?’
‘그건 그래….’
‘선배는 뭐할 거유?’
‘글쎄….아직 미정 이야!…..기차표도, 고속버스도 예약해 놓질 못해서, 어차피 고속도로 타야 되는데, 이번엔 별로 내려갈 맘이 안 드네. 좀 한가해 지면, 나중에 내려갈까 싶기도 하고….’
‘그러다, 막판에 똥 매려운 강아지 짝 나서, 열나 짱나는 표정으로, 고속도로에서 차 세워놓고, 9시 뉴스에 얼굴 나오려구여?’
이미 이번 명절에는 내려가지 못할 거라고 전화를 넣었다는 것을, 굳이 현서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빠져 나간 도심이, 예전처럼 인적이 사라진, 황량한 유령도시로 변하는 것도 옛날 얘기인 요즈음, 사람들은 오히려, 조금은 한가해진 길거리와 극장가, 또는 명절을 맞이하여, 호화롭게 장식한 먹거리 점이나, 쇼핑 장소에서, 예전과는 다른 색다른 명절을 즐기길 원했다. 모두가 의례 그러려니 하면서도, 또 그 놈의 민족 대이동이니, 뭐니 하는 물결에 휩쓸려 동참하는 모습을, 방송을 통해 확인하면서, 묘한 쾌재를 속으로 불러대는 그 기분을 만끽하고 싶은 게다. 서울 토박이가 이럴 때 좋긴 허네 되뇌는, 지들 나름대로의 자위가 그것 이었다.
‘오늘 일찍 마칠 거지?’
‘네. 저도 내려 가려면, 짐도 챙겨야 하고…..’
‘차 몰고 갈 거야? 아님?’
‘아녀! 이미 기차표 끊어 놨어여….돌아와서 뵐께여. 메리 추석!’
그녀의 조크에 난 미소로 답했다. 사람들의 부산한 움직임과, 계속해서 어디론가 전화를 날리는 모습들….이미 그들의 마음이 먼저 고향으로 가고 있는 것마냥 느껴지고 있었다. 난 일찌감치 자리를 떴다. 집이라고 해 봐야, 내 한 몸, 겨우 지탱하는 원룸 오피스텔 이었지만, 그래도 그건 나에겐 둘도 없는 집이 분명했다. 난 내일 아침 일찍, 가져갈 물건들을 챙기고, 확인한 뒤에, 평소보다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저, 휴일의 하나일 뿐이라고, 스스로 위로해 왔어도, 나 또한 조금 들뜨고, 풀어지는 구석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은 평소처럼, 알람이 나를 깨운 것이 아니고, 난 내 스스로 일어나고 있었다. 앞으로 며칠 동안 이나마,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서 일까? 난 차를 몰면서, 평소에도 이처럼 한산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우문만을 내리 던지면서 한강변에 도착했다. 난 차에서 내리면서, 들고 갈 짐들 때문에 어깨가 빠질 것도 같다는 엉뚱한 걱정을 하고 있었고…..
‘휴! 이제 다 왔네….’
내가 도착한 곳은 외부 도로와 한강고수부지를 연결하는 작은 터널 이었다. 길이가 10여 미터 남짓 될까? 그것은 터널이라기 보다는 뚝방 밑으로 터 놓은 작은 토굴 같은 느낌. 지나가는 차들도 별로 신경 쓰질 않는 그런 곳이었다. 터널의 벽은 거친 콘크리트의 마무리로 인해 곳곳에 곰보 자국처럼, 공기구멍이 나 있었고, 터널이라고 하기에는 길이가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눅진 거리고 텁텁한 습한 냄새는 별다를 바 없었다. 단지, 사람들은 그 곳을 터널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고수부지로 통하는 입구 정도로만 기억할 것이다.
‘이걸 어디다 놓지?’
난 그제서야, 내가 가져온 물건들이 위치하기에 별로 마땅한 구석이 없음을 발견하고야 만다. 하긴, 오늘 이곳으로 오기까지, 그저, 보고서 상의 사진과 내용만을 기억할 뿐, 직접 이렇게 이곳에 무얼 들고,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어쩐다?’
난 그냥 들고 온 물건들을 모두 차에 갖다 놓기로 했다. 현장에 와 보니, 디카 이외에 그것들은 별로 소용 될 것들이 없었기에 말이다. 내가 차에 물건을 갔다 놓고, 그 자리로 되돌아 왔을 때, 연휴의 이른 아침 인데도 불구하고, 한 녀석이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은 채로, 길을 사이에 두고, 내가 서 있는 반대편 터널 벽을 의지한 채로, 땅바닥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고 있었다.
‘학생?’
‘……..’
머리를 바짝 깎아, 온통 무스로 치켜 세운 머리를 보고 있자니, 내 머리 결이 다 곤두서는 느낌 이었다. 내가 불렀는데도 불구하고, 그 녀석은 못 들은 것처럼, 터널 밖으로 보이는 고수부지 쪽으로 향한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릴 줄 몰랐다. 나와 녀석은 길을 사이에 두고, 터널의 양 쪽에 있었지만, 들리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난 길을 건너서 쭈그리고 앉아 있는 그 학생의 곁으로 다가갔다.
‘불 쫌 빌릴까?’
난 어른들 만이 좋아할 줄 알고 있는 지포 라이타를, 그 놈의 골반바지 주머니에서 꺼내는 것에, 우선 놀라고 있었다. 번쩍 거리는 사슬에 묶여, 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는 라이타를 꺼내서는, 번개 같은 동작으로 불을 그어, 나에게 팔을 들어 보이는 녀석……귀와 아랫 입술도 뚫어서 고리 같은 것을 걸치고 있었고…..이른바, 피어싱으로 여러 곳을 뚫어 놓은 것이 보이고 있었다.
‘그러고 학교 가면 안 걸려?’
‘아! 짱나! 이러고 갔다간 디지져……’
난 그 목소리에서 더 놀라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는 있었지만, 그 목소리는 좀 쉬기는 했어도 여학생이 분명했다. 차리고 있는 폼새와 머리 모양, 남자 같이 털푸덕 앉아, 담배를 피우는 모습 때문에 내가 남학생으로 오인 했던 모양 이었다.
‘학생?’
‘아, 쒸발, 퉤! 아침부터 재수없게…..나 학생인줄 다 아는데, 왜여?’
‘혹시 이거 누가 한 지 아나?’
‘짭새? 아님, 꼰대? 누구셔?’
‘나 그런 사람은 아니고, 누가 멋있다고 디카로 찍어서 나한테 보내 왔길래…..’
‘왜여?’
‘그냥, 궁금해서……’
‘궁금하면, 그냥 그렇게 살다 디지든가……’
‘좀 알켜 줄래?’
난 그 터널의 벽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직접 보러 온 것이었고, 도대체 누가 이 그림을 그렸는가를 알고 싶어서 온 것이었다. 누군가 이 곳을 지나치다가, 벽을 온통 채워 놓고 있는 그림에 매료되어, 그걸 나에게 찍어 보내온 것을, 연휴를 맞이하여 오늘에서야 직접 보러 오게 된 것이었다. 항상 하는 일이 있었지만, 이렇게 내 스스로 관심과 기대를 갖고서 찾아 다니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울라구여?...... 니 맘대로 하세여! 우린 또 그리면 되니까.’
‘우리라니? 그럼, 학생 혼자서 그린 게 아니고, 여럿이서?’
난 그 학생이 기대고 있는 벽에서부터, 찬찬히 그 그림을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대개 거리의 행위예술이나, 길거리 화가들의 화풍은 다분히 과장이 심하고, 외국 잡지에서 봄직했던 분위기를 흉내내기도 하며, 메시지의 전달 의지가, 의외로 강한 것이 보통 이었지만, 이 터널 안의 그림은 좀 다른 것을 느껴지게 했다. 몽환적인 분위기 하며, 스프레이를 사용하질 않고, 분필이나 파스텔 같은 재료를 이용하여 그린 것도, 다른 유사한 경우와 비교해서 유달리 특징이 있었는데,
‘몇 명이서 그렸는데?’
‘나까지 다섯 명……아니, 여섯…..아니, 이젠 다섯….’
그 아이는 버벅대면서도 뒷말을 끊어 먹는 것이 말버릇처럼 보였다. 길거리 화가들이 스프레이를 사용하는 이유는, 빠른 시간 내에 그림을 완성하고 튀어야 하는 것 때문이었다. 만일 경찰이나 공무원에게 발각되는 날에는, 빼도 박도 못하게 추궁을 당한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기에 생긴, 편법적인 표현도구의 선택일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스프레이라고 아무나 그릴 수 있는 도구 또한 아니었다. 별달리 잘 차려진 환경이 아닐지라도, 스프레이라고 하는 특성은, 한번 뿌리고 나면, 덧칠이 아니고서는 의도한 바와 다르게, 엉뚱한 방향으로 그려지기 십상인 도구였기에 말이다.
‘누구한테 연락하니?’
‘??????煉?.’
손가락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눌러대는 문자 메시지….어느 사이엔가 그 아이는 담배를 옆으로 물고, 눈가로 치밀어 오르는 담배 연기에, 눈이 따가웁지도 않은지, 상을 찡그린 채로 문자를 날리고 있었다. 아마도 나에 대한 경계심으로 인해, 지 패거리를 불러 모으는 것 일게다.
‘저 그림에, 왜 관심이 있어여?’
문자를 다 날렸는지, 손 끝으로 꽁초를 쥐고, 입술이 다 탈 것처럼, 끝까지 빨아대는 도중에 물은 질문 이었다.
‘글쎄…..그냥 다른 그림이랑 달라서, 누군가 한번 보라고 보내준 사진 속의 그림을, 직접 보고 싶었거든.’
‘그린 사람들이 뭘 보고 그렸는지는 안 궁금하구여?’
‘궁금하지. 사실화도 아니고, 좀 내용이 이해되질 않는 부분도 있는 건 사실 이지만, 그래도 너 같은 학생들의 솜씨로 그렸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아서 말이지.’
‘다른 언니, 오빠들은 더 죽이는뎅……’
‘그럼, 니가 젤루 어리니?’
‘어리긴요?’
하면서, 그 학생은 두 손아귀에 자신의 젖을 쥐고 흔들어 보인다. 이래 보여도, 튀어 나올 것은 다 튀어 나왔다는 의미인가? 곧 이어서 두 대의 오토바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터널로 돌치고 들어섰다. 모두 헬멧을 쓰고 있어서 인지, 구분을 할 수 없었지만, 복장들은 하나같이 요란했고, 먼저 와서 있던 여학생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분위기였다. 학생이라고는 했지만, 운전하는 남자들의 허리를 붙들고 뒷좌석에 앉아 있던 여자들은 하나 같이 성숙한 스타일 들 이었고, 남자들도 학생으로 보기에, 그 체격이 거의 청년 수준에 가까웠다.
‘광희야, 별일 없었니?’
‘아니이….!, 인사 하세여, 여기는 진석이 오빠, 희연이 누나…둘은 사겨여…..여기 이쪽은 종선이 오빠, 그리고, 미진이 언니…….우리 그림 보러 오셨다고 해서, 내가 문짜 날렸쥐롱….’
‘난 또 뭔 일 났다구? 근데 댁은 누구세여?’
진석이라는 학생이 내 앞을 가로 막았다. 제일 겁 없고, 무섭다는 고딩, 그것도 체격이 짱에다가, 그것도 남학생이 내 면전을 가리고 있자니, 내가 어른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 한 대라도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저절로 어깨가 조금 움츠러 들고 있었다.
‘아, 난 뭐 별거는 아니고…그냥 그림이 좋다 길래, 보러 온 거 뿐야. 왜 안 되나?’
‘그건 아니지만…..식전 댓 바람부터 저, 광희년 땜에 늦잠도 못 자고…..’
그렇게 얘기하는 옆으로, 현재 사귀고 있다는, 희연이라는 여학생이, 뱀처럼 그 남학생의 허리를 껴 안고, 몸을 더 이상 가까이 할 수 없을 만큼 밀착해 댔다. 보이는 상황으로 보아, 둘은 미성년자 임에도 불구하고, 연휴라는 것을 빌미 삼아, 어디에선가 밤을 같이 보낸 것으로 보였다.
‘어이그, 그만 쫌 붙지? 아예 방을 잡든가?’
옆에서 서 있던 각진 얼굴의 종선이라는 남학생이, 진석이라는 학생의 허리에 붙어있던 희연이라는 여학생의 옆구리를 툭 때리며, 비아냥댔다.
‘왜? 오빠두 생각 있으믄, 나나 또 한번 찔러보지? 그걸루다가니…..’
아직은 사귀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역시나, 그렇게 씰룩대는 미진이라는 여학생의 주절거림으로 보아, 종선이라는 학생과 미진이라는 아이도, 묘한 관계임에는 분명한 태도로 보였다. 어린 것들이 하나같이….
‘모두 미술들 하나 보지? 전공을 그걸로 하나 봐?’
‘아직까지 우리가 그린 걸 가지고, 뭐라 꼬는 인간들은 없었는데, 아쟈씨는 어쩐 일이쇼?’
‘응, 쫌 궁금해서, 화풍도 그렇고, 여느 스트리트 아트와는 달라서….’
‘오, 예! 잉글리쉬! 잉글리쉬는 맘 속에 있는 거죠? 오, 예!’
그들은 기성의 모든 것들이, 비위에 거슬리는 모양 이었다. 난 뒤이어 달려온 네 명까지 포함 해서, 다섯 명에게 뭘 좀 마시겠느냐고 물었다. 난 걸어서 시민공원의 가운데 있는 가판점에 가서, 캔 커피를 사 들고 왔다.
‘엥? 술이 아니고, 음료수? 이 아쟈씨가 장난허나? 명절 아침에….’
‘그럼 아침부터 소주? 그건 쫌…’
‘허어…..명절 아침에 차례라도 지내야 허는데…..술이 빠지면 되나? 안 그러냐?’
그러나, 벌써부터 그들은 터널의 인도가 있는 벽 쪽으로, 오토바이를 거치 시키고, 벽을 기대어 주루륵 바닥에 앉아 있었고, 술이 아니었어도,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져준 나를 배척하지는 않고 있는 점이, 조금은 나를 안심시키고 있긴 했다.
‘누가 젤루 먼저 그림을 그리자고 했지?’
‘…….’
그러나, 모두 대답이 없었다.
‘그건 알 거 없구여….혹시 당신 기자나 뭐, 그런 사람 아뇨? 비행 청소년 어쩌구 하면서, 우리를 기사꺼리나 하려는?’
‘아니야, 난 그런 사람 아니야. 그랬으면, 벌써 밝혔지……근데, 누가 먼저 그리자고 했는데….’
‘수아 언니….’
제일 나이 어리고, 내가 제일 처음 만난 그 광희라는 선머슴 같은 여학생이 입을 열었지만, 주위에 그런 이름의 여학생은 없었다.
‘수아가 누구지?’
‘궁금한 게, 그림이라고 안 그러셨남?’
‘참, 그랬지….그래서….’
젤루 어린 광희가 나섰다.
‘수아 언니가 먼저 이곳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져, 그걸 보고, 하나, 둘, 모여 든 거에여.’
‘왜 모이게 됐지? 뭔가 어떤 공감대 같은 게 있었을 텐데…..’
‘…….’
또 얘기가 끊어 졌다. 암튼 그들은 누가 질문 하는 것에 대해, 바로 대답하는 교육을 받질 못했던가, 아님, 대답할 이유를 찾질 못한 것 같기도 했다. 아직까지 진석이의 허리를 껴 안고 옆에 붙어 앉아 있는 희연이가 입을 어렵게 열었다.
‘우린 한 눈에 알아 봤져. 모르시져? 그 느낌……찌릿한 그런…..’
나보다 젊고, 어린,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그 느낌은 과연 무엇일까? 나도 저들처럼 학창 시절을 겪어 왔지만, 몸과 다르게 겉늙어 보이는 기성의 뒷자락을, 몸에 흠씬 걸치고 나타난 저들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이해하기에는, 격차가 너무 커 보였다.
‘제가 퀴즈 하나 내 보께여….자 이게 무신 의미인 줄 아세여?’
하면서, 광희가 아랫 입술을 손으로 까 재껴 보였다. 어린 광희의 혀 끝에는 반짝거리는 구슬 같은 것이 박혀 있었다. 혀를 뚫어버린 피어싱 이었다.
‘글쎄…..말을 조심 하겠다, 뭐 그런 의미 아닐까? 그 피어싱의 의미는….’
‘그래서, 우리를 이해하질 못하는 거라구여. 혓바닥에 구슬을 뚫어 박는 의미는 세 가지 에여. 한가지는 입을 다물고 있으면 보이질 않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들 나름대로의 비밀을 갖겠다는 거구여, 두 번째는 이제 앞으로는, 아가리에 무작시리 쳐들어오는 것이라도, 아무 꺼나 먹지 않겠다는 의미고, 세 번째는 만일 내가 좋아서 먹게 된다면, 이 구슬로 살살 구슬러 가며, 끝내주게 마무리를 하겠다 이거 에여, 아시겠어여?’
난 모든 일을 즉흥적으로 치우쳐 행하는 줄 알았던 어린 학생들에게서 조차, 그렇듯 행위 하나마다, 세세한 의미가 부여된다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그럼 다이어트를 위한 정신무장으로, 그걸 했다는 얘긴가?’
‘야, 야, 여기 대통령 또 나왔다. 광희야! 아서라. 그만해라….쯧쯧….똘팍!’
난 내가 광희의 간단한 설명조차 이해하지 못해서, 저렇게 놀리고 있는 것이라는 걸, 금새 알아챘다.
‘설명 쫌 해 주지?’
‘자, 보실래여? 우린 모두 이래여….’
그리고, 다섯 명 모두 혀를 내보였는데, 모두 혀에 피어싱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세 명의 여자 애들은 부끄럼도 없는지, 골반에 걸쳐진 바지를 밑으로 꾹 누르면서, 홀랑 밀어낸 보지털 사이로, 칼로 째 놓은 것처럼, 금이 가 있는 보지골 초입에 댕그렁 달려 있는, 구슬도 보여 주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부위는 척 보기에 씹공알의 바로 윗부분을 관통한 듯싶어 보였다. 남자들은 남자들 대로, 바지를 내려, 불알의 정 중앙을 관통하는 굵은 고리가 달려 있는 것을 보여 주기도 했다.
‘아시겠어여? 수천 번을 설명해 줘도 모르실 걸여? 우리가 느끼고 있는 그 동질성을…..우린 같은 색깔, 느낌, 생각을 하고 살아 온 걸………, 그걸 수아가 이 그림을 통해 불러낸 거에여………. 우린 그걸 따라서……… 우리의 생각을 벽에 그린 거고…..안되겠다, 야, 광희야. 술 쫌 사와라……’
종선이가 막내인 광희를 시키면서, 주머니에서 만 원 짜리를 몇 장 꺼내서 주었다. 대화가 잘 들리지도 않을 것처럼, 귓구녕에 이어폰을 끼우고 있던 광희는, 발딱 일어나서 돈을 쥐고는,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미끄러지듯이 우리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얼마 있질 않아, 양 손에 비닐 봉지를 거머쥐고 나타난 광희. 그 안에는 소주가 가득 들어 있었다. 다들 소주병을 양손에 들고, 마개를 따더니,
‘거기 그렇게 앉아 있다가, 젖어도 우린 몰라여!’
귀에 꼽고 있는 이어폰의 소음 때문인지, 주위가 조용한데도 불구하고, 광희가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난 뻘쭘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의 뒤로 가서 섰다. 모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주병을 들어, 벽을 향해 뿌리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싸한 소주 냄새가 진동했고, 그들은 손에 든 소주를 안주도 없이, 마셔가며, 벽에 뿌려대 가며, 나름대로의 의식을 진행했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제 그림은 안 그릴 거에여.’
광희가 또 다시 큰소리로 얘기했다.
‘슬프니까……’
그들에게 기나긴 대화는 별로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저 몇 단어로 그들끼리는 의미가 자연스럽게 통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왜 그림에다 저렇게 소주를 뿌렸지? 파스텔로 그린 그림 위에, 그렇게 소주를 부어대면, 다 지워 지잖아? 보기 드물게 멋진 그림이었는데…..’
‘알면 됐어여. 그 뿐 이에여……으이그….. 똘팍!’
또 다시, 나를 향해 던져지는 푸념……. 난 아무래도 머리가 모자란 모양이다. 보다 못해, 광희가 이어폰을 빼고, 나를 흘겨 보며, 중얼거렸다.
‘자, 잘 봐요. 소주가 저렇게 그림을 지우며, 벽을 타고 흐르니까, 뭣처럼 보여여? 화장이 지워질 정도로, 펑펑 울고 있는 여자 얼굴로 보이질 않나여? 우린 다 그렇게 느끼는데…..’
딴은 그랬다. 그들과 내가 같은 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그렇게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니…..
‘이건 수아에 대한 우리의 명절 인사 에여. 매년 수아가 사라진 날을 기념해서, 1년 동안 꾸준히 그림을 그려여. 시 에서도 지우러 나오고, 동회에서도 지우러 나오고, 취로 사업 나와서도 지우고…..암튼 좇 겉은 것들이, 졸나구 지워대도, 우린 또 그려요. 추석 전에는 다들 바쁜지, 며칠을 그려도, 지우러 오는 떨거지들이 없어여.’
‘수아를 기리다니, 그건 또 무신? 수아는 죽었나?’
미진이가 계속해서 설명을 했다.
‘그 날, 우린 너무 취해 있었어여. 수아가 그려 놓은 그림을 통해, 첨으로 다섯이 모인 날 이었는데, 그 날은 폭주족 공돌이, 철가방 아그들도 다 시골로 제사 지내러 갔는지, 주위가 고요 했져. 우리는 여기 이 자리에 모여, 술을 마시면서 서로의 지나온 얘기들을, 하나도 숨김이 없이 했어여. 다들…..너무 취해 있었는데…..마지막으로 술에 취해 잠이 든 종선이 말로는, 수아가 우리가 곯아 떨어져 가는데도, 계속 그림을 그렸대여. 그리고, 바람을 쐬겠다며, 강가 쪽으로 갔다고 했는데…….’
‘그런데?’
‘그게, 그 밤, 순찰 도는 짭새들도 피해 숨어가며, 새벽까지 서로가 꼭 껴 안고 졸다가 깨고 나서,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다 집으로 돌아들 갔져. 우리 모두 수아도 집으로 갔겠거니 했는데……..1주일 후에 시체가 떠 올랐어여. 뚱뚱 부은 채로….. 뱃속의 애기까지……병신 같은 년…..죽긴 왜 죽어?......보란 듯이, 애나 퍼질리고 낳아서, 면상에다 집어나 던지지……’
‘애기라니?’
‘뱃속의 애가 임신 5개월 이었어여…… 애를 뗄 수도 없다고 했고…..멍청한 년, 우리 같은 것들, 버러지 같긴 해도…… 아직까지 이렇게 뻔뻔하게 잘들 살아가는데….’
난 그제서야, 그림의 곳곳에 나타나 있던, 인자한 모습으로 손을 마주잡고 있는, 지긋한 나이의 남자와 여자, 혹은 부부로 보이던 사람들의 뒤편으로, 음흉하게 뻗쳐있던, 악마의 꼬리 같은 것, 그리고,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져 나가는, 뒤엉킨 또아리 같은, 팔과 다리들의 일렁임, 게다가 온 몸이 사슬에 매달려, 바늘이 선인장의 가시마냥, 셀 수도 없이 박혀있던 어린 아이들이 소리치는 얼굴과 그 경련의 떨림 들이 무얼 의미하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그들에게서 무자비하게 앗아간 것들과 그들에게 지워진 영원한 천형과 결코 벗을 수 없는, 어깨 위의 짐들 조차도….그림은 그걸 의미했다.
‘내년부터는 오셔도 그림이 없을 거에여. 다신 그리지 않기로 했으니까. 아마 또 그 좇겉은 쉐이 들이 와서, 박박 문대기며, 지워 놓을 거에여.’
‘좀 찍어가도 될까? 지워져 가고는 있지만….’
난 그들에게 양해를 구해가며, 품 속에서 디카를 꺼내서, 얼룩져 벽을 타고, 지워지며, 흘러 내리는 그 독특한 그림을, 사진으로나마 남기려고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그 사이 불어오는 소슬한 바람은 터널 안의 눅진한 공기와 싸한 소주 냄새를 강가 쪽으로 몰아내고 있었다. 바닥에 굴러 다니는 빈 소주병의 들그럭 거리는 소리가 처량하게 들리기도 했고, 고개를 숙이고 담배를 피우며, 땅바닥을 신발로 차고 있는 아이들의 소리도, 그에 곁들여져, 나의 마음을 적적하게 만들고 있었다. 거지반 찍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아저씨는 뭐 하는 사람이래여?’
‘나?’
‘그럼, 누굴 얘기하는 줄 아셨어여?’
‘글쎄……뭐라고 해야 하지…. 그냥….. 세월을 붙들고만 있다가……, 어느새 돌아보니, 어른이 되어 버린걸 깨달은…….. 그런 사람이지 뭐….’
‘어른이 되니 좋아여?’
광희가 날 올려다 보며 물었다.
‘좋기는 좇 같지 뭐, 안 그래여?’
종선이가 나를 보며, 지분거렸다.
‘글쎄….언간새 어른이 되어버려, 사는 게, 세상이 아무리 좇 같게 느껴져도, 하늘은 마냥 푸르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수아도 그런, 비슷한 얘기를 한 거 같은데……..그럼, 아저씨도 우리랑 같은 종자?’
난 대답을 하질 않았다. 터널을 뒤로하고서, 아직 아무도 놀러 나오질 않은, 시민공원의 강둑에 조로록 나와 앉아, 그 애들과 난, 아무런 말도 없이, 깡소주를 들이 키면서, 같이 담배를 나누어 피웠다. 그들에게나 나나, 명절이긴 했어도, 외로움이 버릇처럼 고개를 치켜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다고만 말했을 뿐….난 그네들 보다 비겁하게시리, 그 그림을 보는 순간, 가슴 속을 치미는 그 뜨거운 무엇을 느껴서, 여기까지 왔다는 말을 도저히 할 자신이 없었다. 그저, 난 그들처럼 젊지 않다는 것을 이유 삼아, 목이 메어와도, 대답을 끝끝내 삼켜가고 있었다.
-끝-
P.S.: 즐거운 추석을 맞이하여, 댁내 두루 평안하시고, 귀성길 평안히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도 아울러 올리고요.
-블루스맨 배상-
‘정 선배, 이번에 고향에 내려 갈 꺼유?’
‘아니, 요즈음, 명절에 고향 안 가는 게, 트랜드 인 거 몰라? 현서는 뭐 특별히 내려갈 이유나 있어?’
‘제사 때문에 그렇져, 뭐. 일손도 딸린다고 엄마가 하도 난리라, 안 갈수도 없고…..’
‘누군 좋겠네…..’
‘에이 선배도, 명절도 예전 같아야 지여. 젤루 편한 게, 집에 누워서 주점부리나 까고, 영화나 실컷 빌려다 보면, 그게 장땡 이라니깐여?’
‘그건 그래….’
‘선배는 뭐할 거유?’
‘글쎄….아직 미정 이야!…..기차표도, 고속버스도 예약해 놓질 못해서, 어차피 고속도로 타야 되는데, 이번엔 별로 내려갈 맘이 안 드네. 좀 한가해 지면, 나중에 내려갈까 싶기도 하고….’
‘그러다, 막판에 똥 매려운 강아지 짝 나서, 열나 짱나는 표정으로, 고속도로에서 차 세워놓고, 9시 뉴스에 얼굴 나오려구여?’
이미 이번 명절에는 내려가지 못할 거라고 전화를 넣었다는 것을, 굳이 현서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빠져 나간 도심이, 예전처럼 인적이 사라진, 황량한 유령도시로 변하는 것도 옛날 얘기인 요즈음, 사람들은 오히려, 조금은 한가해진 길거리와 극장가, 또는 명절을 맞이하여, 호화롭게 장식한 먹거리 점이나, 쇼핑 장소에서, 예전과는 다른 색다른 명절을 즐기길 원했다. 모두가 의례 그러려니 하면서도, 또 그 놈의 민족 대이동이니, 뭐니 하는 물결에 휩쓸려 동참하는 모습을, 방송을 통해 확인하면서, 묘한 쾌재를 속으로 불러대는 그 기분을 만끽하고 싶은 게다. 서울 토박이가 이럴 때 좋긴 허네 되뇌는, 지들 나름대로의 자위가 그것 이었다.
‘오늘 일찍 마칠 거지?’
‘네. 저도 내려 가려면, 짐도 챙겨야 하고…..’
‘차 몰고 갈 거야? 아님?’
‘아녀! 이미 기차표 끊어 놨어여….돌아와서 뵐께여. 메리 추석!’
그녀의 조크에 난 미소로 답했다. 사람들의 부산한 움직임과, 계속해서 어디론가 전화를 날리는 모습들….이미 그들의 마음이 먼저 고향으로 가고 있는 것마냥 느껴지고 있었다. 난 일찌감치 자리를 떴다. 집이라고 해 봐야, 내 한 몸, 겨우 지탱하는 원룸 오피스텔 이었지만, 그래도 그건 나에겐 둘도 없는 집이 분명했다. 난 내일 아침 일찍, 가져갈 물건들을 챙기고, 확인한 뒤에, 평소보다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저, 휴일의 하나일 뿐이라고, 스스로 위로해 왔어도, 나 또한 조금 들뜨고, 풀어지는 구석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은 평소처럼, 알람이 나를 깨운 것이 아니고, 난 내 스스로 일어나고 있었다. 앞으로 며칠 동안 이나마,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서 일까? 난 차를 몰면서, 평소에도 이처럼 한산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우문만을 내리 던지면서 한강변에 도착했다. 난 차에서 내리면서, 들고 갈 짐들 때문에 어깨가 빠질 것도 같다는 엉뚱한 걱정을 하고 있었고…..
‘휴! 이제 다 왔네….’
내가 도착한 곳은 외부 도로와 한강고수부지를 연결하는 작은 터널 이었다. 길이가 10여 미터 남짓 될까? 그것은 터널이라기 보다는 뚝방 밑으로 터 놓은 작은 토굴 같은 느낌. 지나가는 차들도 별로 신경 쓰질 않는 그런 곳이었다. 터널의 벽은 거친 콘크리트의 마무리로 인해 곳곳에 곰보 자국처럼, 공기구멍이 나 있었고, 터널이라고 하기에는 길이가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눅진 거리고 텁텁한 습한 냄새는 별다를 바 없었다. 단지, 사람들은 그 곳을 터널이라고 부르기 보다는 고수부지로 통하는 입구 정도로만 기억할 것이다.
‘이걸 어디다 놓지?’
난 그제서야, 내가 가져온 물건들이 위치하기에 별로 마땅한 구석이 없음을 발견하고야 만다. 하긴, 오늘 이곳으로 오기까지, 그저, 보고서 상의 사진과 내용만을 기억할 뿐, 직접 이렇게 이곳에 무얼 들고,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어쩐다?’
난 그냥 들고 온 물건들을 모두 차에 갖다 놓기로 했다. 현장에 와 보니, 디카 이외에 그것들은 별로 소용 될 것들이 없었기에 말이다. 내가 차에 물건을 갔다 놓고, 그 자리로 되돌아 왔을 때, 연휴의 이른 아침 인데도 불구하고, 한 녀석이 귀에는 이어폰을 꼽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신은 채로, 길을 사이에 두고, 내가 서 있는 반대편 터널 벽을 의지한 채로, 땅바닥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고 있었다.
‘학생?’
‘……..’
머리를 바짝 깎아, 온통 무스로 치켜 세운 머리를 보고 있자니, 내 머리 결이 다 곤두서는 느낌 이었다. 내가 불렀는데도 불구하고, 그 녀석은 못 들은 것처럼, 터널 밖으로 보이는 고수부지 쪽으로 향한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릴 줄 몰랐다. 나와 녀석은 길을 사이에 두고, 터널의 양 쪽에 있었지만, 들리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난 길을 건너서 쭈그리고 앉아 있는 그 학생의 곁으로 다가갔다.
‘불 쫌 빌릴까?’
난 어른들 만이 좋아할 줄 알고 있는 지포 라이타를, 그 놈의 골반바지 주머니에서 꺼내는 것에, 우선 놀라고 있었다. 번쩍 거리는 사슬에 묶여, 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는 라이타를 꺼내서는, 번개 같은 동작으로 불을 그어, 나에게 팔을 들어 보이는 녀석……귀와 아랫 입술도 뚫어서 고리 같은 것을 걸치고 있었고…..이른바, 피어싱으로 여러 곳을 뚫어 놓은 것이 보이고 있었다.
‘그러고 학교 가면 안 걸려?’
‘아! 짱나! 이러고 갔다간 디지져……’
난 그 목소리에서 더 놀라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는 있었지만, 그 목소리는 좀 쉬기는 했어도 여학생이 분명했다. 차리고 있는 폼새와 머리 모양, 남자 같이 털푸덕 앉아, 담배를 피우는 모습 때문에 내가 남학생으로 오인 했던 모양 이었다.
‘학생?’
‘아, 쒸발, 퉤! 아침부터 재수없게…..나 학생인줄 다 아는데, 왜여?’
‘혹시 이거 누가 한 지 아나?’
‘짭새? 아님, 꼰대? 누구셔?’
‘나 그런 사람은 아니고, 누가 멋있다고 디카로 찍어서 나한테 보내 왔길래…..’
‘왜여?’
‘그냥, 궁금해서……’
‘궁금하면, 그냥 그렇게 살다 디지든가……’
‘좀 알켜 줄래?’
난 그 터널의 벽에 그려져 있는 그림을 직접 보러 온 것이었고, 도대체 누가 이 그림을 그렸는가를 알고 싶어서 온 것이었다. 누군가 이 곳을 지나치다가, 벽을 온통 채워 놓고 있는 그림에 매료되어, 그걸 나에게 찍어 보내온 것을, 연휴를 맞이하여 오늘에서야 직접 보러 오게 된 것이었다. 항상 하는 일이 있었지만, 이렇게 내 스스로 관심과 기대를 갖고서 찾아 다니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울라구여?...... 니 맘대로 하세여! 우린 또 그리면 되니까.’
‘우리라니? 그럼, 학생 혼자서 그린 게 아니고, 여럿이서?’
난 그 학생이 기대고 있는 벽에서부터, 찬찬히 그 그림을 다시 살펴보기 시작했다. 대개 거리의 행위예술이나, 길거리 화가들의 화풍은 다분히 과장이 심하고, 외국 잡지에서 봄직했던 분위기를 흉내내기도 하며, 메시지의 전달 의지가, 의외로 강한 것이 보통 이었지만, 이 터널 안의 그림은 좀 다른 것을 느껴지게 했다. 몽환적인 분위기 하며, 스프레이를 사용하질 않고, 분필이나 파스텔 같은 재료를 이용하여 그린 것도, 다른 유사한 경우와 비교해서 유달리 특징이 있었는데,
‘몇 명이서 그렸는데?’
‘나까지 다섯 명……아니, 여섯…..아니, 이젠 다섯….’
그 아이는 버벅대면서도 뒷말을 끊어 먹는 것이 말버릇처럼 보였다. 길거리 화가들이 스프레이를 사용하는 이유는, 빠른 시간 내에 그림을 완성하고 튀어야 하는 것 때문이었다. 만일 경찰이나 공무원에게 발각되는 날에는, 빼도 박도 못하게 추궁을 당한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기에 생긴, 편법적인 표현도구의 선택일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스프레이라고 아무나 그릴 수 있는 도구 또한 아니었다. 별달리 잘 차려진 환경이 아닐지라도, 스프레이라고 하는 특성은, 한번 뿌리고 나면, 덧칠이 아니고서는 의도한 바와 다르게, 엉뚱한 방향으로 그려지기 십상인 도구였기에 말이다.
‘누구한테 연락하니?’
‘??????煉?.’
손가락이 보이질 않을 정도로 눌러대는 문자 메시지….어느 사이엔가 그 아이는 담배를 옆으로 물고, 눈가로 치밀어 오르는 담배 연기에, 눈이 따가웁지도 않은지, 상을 찡그린 채로 문자를 날리고 있었다. 아마도 나에 대한 경계심으로 인해, 지 패거리를 불러 모으는 것 일게다.
‘저 그림에, 왜 관심이 있어여?’
문자를 다 날렸는지, 손 끝으로 꽁초를 쥐고, 입술이 다 탈 것처럼, 끝까지 빨아대는 도중에 물은 질문 이었다.
‘글쎄…..그냥 다른 그림이랑 달라서, 누군가 한번 보라고 보내준 사진 속의 그림을, 직접 보고 싶었거든.’
‘그린 사람들이 뭘 보고 그렸는지는 안 궁금하구여?’
‘궁금하지. 사실화도 아니고, 좀 내용이 이해되질 않는 부분도 있는 건 사실 이지만, 그래도 너 같은 학생들의 솜씨로 그렸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아서 말이지.’
‘다른 언니, 오빠들은 더 죽이는뎅……’
‘그럼, 니가 젤루 어리니?’
‘어리긴요?’
하면서, 그 학생은 두 손아귀에 자신의 젖을 쥐고 흔들어 보인다. 이래 보여도, 튀어 나올 것은 다 튀어 나왔다는 의미인가? 곧 이어서 두 대의 오토바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터널로 돌치고 들어섰다. 모두 헬멧을 쓰고 있어서 인지, 구분을 할 수 없었지만, 복장들은 하나같이 요란했고, 먼저 와서 있던 여학생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분위기였다. 학생이라고는 했지만, 운전하는 남자들의 허리를 붙들고 뒷좌석에 앉아 있던 여자들은 하나 같이 성숙한 스타일 들 이었고, 남자들도 학생으로 보기에, 그 체격이 거의 청년 수준에 가까웠다.
‘광희야, 별일 없었니?’
‘아니이….!, 인사 하세여, 여기는 진석이 오빠, 희연이 누나…둘은 사겨여…..여기 이쪽은 종선이 오빠, 그리고, 미진이 언니…….우리 그림 보러 오셨다고 해서, 내가 문짜 날렸쥐롱….’
‘난 또 뭔 일 났다구? 근데 댁은 누구세여?’
진석이라는 학생이 내 앞을 가로 막았다. 제일 겁 없고, 무섭다는 고딩, 그것도 체격이 짱에다가, 그것도 남학생이 내 면전을 가리고 있자니, 내가 어른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 한 대라도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저절로 어깨가 조금 움츠러 들고 있었다.
‘아, 난 뭐 별거는 아니고…그냥 그림이 좋다 길래, 보러 온 거 뿐야. 왜 안 되나?’
‘그건 아니지만…..식전 댓 바람부터 저, 광희년 땜에 늦잠도 못 자고…..’
그렇게 얘기하는 옆으로, 현재 사귀고 있다는, 희연이라는 여학생이, 뱀처럼 그 남학생의 허리를 껴 안고, 몸을 더 이상 가까이 할 수 없을 만큼 밀착해 댔다. 보이는 상황으로 보아, 둘은 미성년자 임에도 불구하고, 연휴라는 것을 빌미 삼아, 어디에선가 밤을 같이 보낸 것으로 보였다.
‘어이그, 그만 쫌 붙지? 아예 방을 잡든가?’
옆에서 서 있던 각진 얼굴의 종선이라는 남학생이, 진석이라는 학생의 허리에 붙어있던 희연이라는 여학생의 옆구리를 툭 때리며, 비아냥댔다.
‘왜? 오빠두 생각 있으믄, 나나 또 한번 찔러보지? 그걸루다가니…..’
아직은 사귀지 않는다고는 했지만, 역시나, 그렇게 씰룩대는 미진이라는 여학생의 주절거림으로 보아, 종선이라는 학생과 미진이라는 아이도, 묘한 관계임에는 분명한 태도로 보였다. 어린 것들이 하나같이….
‘모두 미술들 하나 보지? 전공을 그걸로 하나 봐?’
‘아직까지 우리가 그린 걸 가지고, 뭐라 꼬는 인간들은 없었는데, 아쟈씨는 어쩐 일이쇼?’
‘응, 쫌 궁금해서, 화풍도 그렇고, 여느 스트리트 아트와는 달라서….’
‘오, 예! 잉글리쉬! 잉글리쉬는 맘 속에 있는 거죠? 오, 예!’
그들은 기성의 모든 것들이, 비위에 거슬리는 모양 이었다. 난 뒤이어 달려온 네 명까지 포함 해서, 다섯 명에게 뭘 좀 마시겠느냐고 물었다. 난 걸어서 시민공원의 가운데 있는 가판점에 가서, 캔 커피를 사 들고 왔다.
‘엥? 술이 아니고, 음료수? 이 아쟈씨가 장난허나? 명절 아침에….’
‘그럼 아침부터 소주? 그건 쫌…’
‘허어…..명절 아침에 차례라도 지내야 허는데…..술이 빠지면 되나? 안 그러냐?’
그러나, 벌써부터 그들은 터널의 인도가 있는 벽 쪽으로, 오토바이를 거치 시키고, 벽을 기대어 주루륵 바닥에 앉아 있었고, 술이 아니었어도,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져준 나를 배척하지는 않고 있는 점이, 조금은 나를 안심시키고 있긴 했다.
‘누가 젤루 먼저 그림을 그리자고 했지?’
‘…….’
그러나, 모두 대답이 없었다.
‘그건 알 거 없구여….혹시 당신 기자나 뭐, 그런 사람 아뇨? 비행 청소년 어쩌구 하면서, 우리를 기사꺼리나 하려는?’
‘아니야, 난 그런 사람 아니야. 그랬으면, 벌써 밝혔지……근데, 누가 먼저 그리자고 했는데….’
‘수아 언니….’
제일 나이 어리고, 내가 제일 처음 만난 그 광희라는 선머슴 같은 여학생이 입을 열었지만, 주위에 그런 이름의 여학생은 없었다.
‘수아가 누구지?’
‘궁금한 게, 그림이라고 안 그러셨남?’
‘참, 그랬지….그래서….’
젤루 어린 광희가 나섰다.
‘수아 언니가 먼저 이곳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져, 그걸 보고, 하나, 둘, 모여 든 거에여.’
‘왜 모이게 됐지? 뭔가 어떤 공감대 같은 게 있었을 텐데…..’
‘…….’
또 얘기가 끊어 졌다. 암튼 그들은 누가 질문 하는 것에 대해, 바로 대답하는 교육을 받질 못했던가, 아님, 대답할 이유를 찾질 못한 것 같기도 했다. 아직까지 진석이의 허리를 껴 안고 옆에 붙어 앉아 있는 희연이가 입을 어렵게 열었다.
‘우린 한 눈에 알아 봤져. 모르시져? 그 느낌……찌릿한 그런…..’
나보다 젊고, 어린,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그 느낌은 과연 무엇일까? 나도 저들처럼 학창 시절을 겪어 왔지만, 몸과 다르게 겉늙어 보이는 기성의 뒷자락을, 몸에 흠씬 걸치고 나타난 저들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이해하기에는, 격차가 너무 커 보였다.
‘제가 퀴즈 하나 내 보께여….자 이게 무신 의미인 줄 아세여?’
하면서, 광희가 아랫 입술을 손으로 까 재껴 보였다. 어린 광희의 혀 끝에는 반짝거리는 구슬 같은 것이 박혀 있었다. 혀를 뚫어버린 피어싱 이었다.
‘글쎄…..말을 조심 하겠다, 뭐 그런 의미 아닐까? 그 피어싱의 의미는….’
‘그래서, 우리를 이해하질 못하는 거라구여. 혓바닥에 구슬을 뚫어 박는 의미는 세 가지 에여. 한가지는 입을 다물고 있으면 보이질 않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들 나름대로의 비밀을 갖겠다는 거구여, 두 번째는 이제 앞으로는, 아가리에 무작시리 쳐들어오는 것이라도, 아무 꺼나 먹지 않겠다는 의미고, 세 번째는 만일 내가 좋아서 먹게 된다면, 이 구슬로 살살 구슬러 가며, 끝내주게 마무리를 하겠다 이거 에여, 아시겠어여?’
난 모든 일을 즉흥적으로 치우쳐 행하는 줄 알았던 어린 학생들에게서 조차, 그렇듯 행위 하나마다, 세세한 의미가 부여된다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그럼 다이어트를 위한 정신무장으로, 그걸 했다는 얘긴가?’
‘야, 야, 여기 대통령 또 나왔다. 광희야! 아서라. 그만해라….쯧쯧….똘팍!’
난 내가 광희의 간단한 설명조차 이해하지 못해서, 저렇게 놀리고 있는 것이라는 걸, 금새 알아챘다.
‘설명 쫌 해 주지?’
‘자, 보실래여? 우린 모두 이래여….’
그리고, 다섯 명 모두 혀를 내보였는데, 모두 혀에 피어싱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세 명의 여자 애들은 부끄럼도 없는지, 골반에 걸쳐진 바지를 밑으로 꾹 누르면서, 홀랑 밀어낸 보지털 사이로, 칼로 째 놓은 것처럼, 금이 가 있는 보지골 초입에 댕그렁 달려 있는, 구슬도 보여 주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그 부위는 척 보기에 씹공알의 바로 윗부분을 관통한 듯싶어 보였다. 남자들은 남자들 대로, 바지를 내려, 불알의 정 중앙을 관통하는 굵은 고리가 달려 있는 것을 보여 주기도 했다.
‘아시겠어여? 수천 번을 설명해 줘도 모르실 걸여? 우리가 느끼고 있는 그 동질성을…..우린 같은 색깔, 느낌, 생각을 하고 살아 온 걸………, 그걸 수아가 이 그림을 통해 불러낸 거에여………. 우린 그걸 따라서……… 우리의 생각을 벽에 그린 거고…..안되겠다, 야, 광희야. 술 쫌 사와라……’
종선이가 막내인 광희를 시키면서, 주머니에서 만 원 짜리를 몇 장 꺼내서 주었다. 대화가 잘 들리지도 않을 것처럼, 귓구녕에 이어폰을 끼우고 있던 광희는, 발딱 일어나서 돈을 쥐고는,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미끄러지듯이 우리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얼마 있질 않아, 양 손에 비닐 봉지를 거머쥐고 나타난 광희. 그 안에는 소주가 가득 들어 있었다. 다들 소주병을 양손에 들고, 마개를 따더니,
‘거기 그렇게 앉아 있다가, 젖어도 우린 몰라여!’
귀에 꼽고 있는 이어폰의 소음 때문인지, 주위가 조용한데도 불구하고, 광희가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난 뻘쭘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의 뒤로 가서 섰다. 모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주병을 들어, 벽을 향해 뿌리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싸한 소주 냄새가 진동했고, 그들은 손에 든 소주를 안주도 없이, 마셔가며, 벽에 뿌려대 가며, 나름대로의 의식을 진행했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이제 그림은 안 그릴 거에여.’
광희가 또 다시 큰소리로 얘기했다.
‘슬프니까……’
그들에게 기나긴 대화는 별로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저 몇 단어로 그들끼리는 의미가 자연스럽게 통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왜 그림에다 저렇게 소주를 뿌렸지? 파스텔로 그린 그림 위에, 그렇게 소주를 부어대면, 다 지워 지잖아? 보기 드물게 멋진 그림이었는데…..’
‘알면 됐어여. 그 뿐 이에여……으이그….. 똘팍!’
또 다시, 나를 향해 던져지는 푸념……. 난 아무래도 머리가 모자란 모양이다. 보다 못해, 광희가 이어폰을 빼고, 나를 흘겨 보며, 중얼거렸다.
‘자, 잘 봐요. 소주가 저렇게 그림을 지우며, 벽을 타고 흐르니까, 뭣처럼 보여여? 화장이 지워질 정도로, 펑펑 울고 있는 여자 얼굴로 보이질 않나여? 우린 다 그렇게 느끼는데…..’
딴은 그랬다. 그들과 내가 같은 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그렇게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니…..
‘이건 수아에 대한 우리의 명절 인사 에여. 매년 수아가 사라진 날을 기념해서, 1년 동안 꾸준히 그림을 그려여. 시 에서도 지우러 나오고, 동회에서도 지우러 나오고, 취로 사업 나와서도 지우고…..암튼 좇 겉은 것들이, 졸나구 지워대도, 우린 또 그려요. 추석 전에는 다들 바쁜지, 며칠을 그려도, 지우러 오는 떨거지들이 없어여.’
‘수아를 기리다니, 그건 또 무신? 수아는 죽었나?’
미진이가 계속해서 설명을 했다.
‘그 날, 우린 너무 취해 있었어여. 수아가 그려 놓은 그림을 통해, 첨으로 다섯이 모인 날 이었는데, 그 날은 폭주족 공돌이, 철가방 아그들도 다 시골로 제사 지내러 갔는지, 주위가 고요 했져. 우리는 여기 이 자리에 모여, 술을 마시면서 서로의 지나온 얘기들을, 하나도 숨김이 없이 했어여. 다들…..너무 취해 있었는데…..마지막으로 술에 취해 잠이 든 종선이 말로는, 수아가 우리가 곯아 떨어져 가는데도, 계속 그림을 그렸대여. 그리고, 바람을 쐬겠다며, 강가 쪽으로 갔다고 했는데…….’
‘그런데?’
‘그게, 그 밤, 순찰 도는 짭새들도 피해 숨어가며, 새벽까지 서로가 꼭 껴 안고 졸다가 깨고 나서,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다 집으로 돌아들 갔져. 우리 모두 수아도 집으로 갔겠거니 했는데……..1주일 후에 시체가 떠 올랐어여. 뚱뚱 부은 채로….. 뱃속의 애기까지……병신 같은 년…..죽긴 왜 죽어?......보란 듯이, 애나 퍼질리고 낳아서, 면상에다 집어나 던지지……’
‘애기라니?’
‘뱃속의 애가 임신 5개월 이었어여…… 애를 뗄 수도 없다고 했고…..멍청한 년, 우리 같은 것들, 버러지 같긴 해도…… 아직까지 이렇게 뻔뻔하게 잘들 살아가는데….’
난 그제서야, 그림의 곳곳에 나타나 있던, 인자한 모습으로 손을 마주잡고 있는, 지긋한 나이의 남자와 여자, 혹은 부부로 보이던 사람들의 뒤편으로, 음흉하게 뻗쳐있던, 악마의 꼬리 같은 것, 그리고,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져 나가는, 뒤엉킨 또아리 같은, 팔과 다리들의 일렁임, 게다가 온 몸이 사슬에 매달려, 바늘이 선인장의 가시마냥, 셀 수도 없이 박혀있던 어린 아이들이 소리치는 얼굴과 그 경련의 떨림 들이 무얼 의미하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그들에게서 무자비하게 앗아간 것들과 그들에게 지워진 영원한 천형과 결코 벗을 수 없는, 어깨 위의 짐들 조차도….그림은 그걸 의미했다.
‘내년부터는 오셔도 그림이 없을 거에여. 다신 그리지 않기로 했으니까. 아마 또 그 좇겉은 쉐이 들이 와서, 박박 문대기며, 지워 놓을 거에여.’
‘좀 찍어가도 될까? 지워져 가고는 있지만….’
난 그들에게 양해를 구해가며, 품 속에서 디카를 꺼내서, 얼룩져 벽을 타고, 지워지며, 흘러 내리는 그 독특한 그림을, 사진으로나마 남기려고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그 사이 불어오는 소슬한 바람은 터널 안의 눅진한 공기와 싸한 소주 냄새를 강가 쪽으로 몰아내고 있었다. 바닥에 굴러 다니는 빈 소주병의 들그럭 거리는 소리가 처량하게 들리기도 했고, 고개를 숙이고 담배를 피우며, 땅바닥을 신발로 차고 있는 아이들의 소리도, 그에 곁들여져, 나의 마음을 적적하게 만들고 있었다. 거지반 찍었다고 생각되었을 때,
‘아저씨는 뭐 하는 사람이래여?’
‘나?’
‘그럼, 누굴 얘기하는 줄 아셨어여?’
‘글쎄……뭐라고 해야 하지…. 그냥….. 세월을 붙들고만 있다가……, 어느새 돌아보니, 어른이 되어 버린걸 깨달은…….. 그런 사람이지 뭐….’
‘어른이 되니 좋아여?’
광희가 날 올려다 보며 물었다.
‘좋기는 좇 같지 뭐, 안 그래여?’
종선이가 나를 보며, 지분거렸다.
‘글쎄….언간새 어른이 되어버려, 사는 게, 세상이 아무리 좇 같게 느껴져도, 하늘은 마냥 푸르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나 할까?’
‘수아도 그런, 비슷한 얘기를 한 거 같은데……..그럼, 아저씨도 우리랑 같은 종자?’
난 대답을 하질 않았다. 터널을 뒤로하고서, 아직 아무도 놀러 나오질 않은, 시민공원의 강둑에 조로록 나와 앉아, 그 애들과 난, 아무런 말도 없이, 깡소주를 들이 키면서, 같이 담배를 나누어 피웠다. 그들에게나 나나, 명절이긴 했어도, 외로움이 버릇처럼 고개를 치켜드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다고만 말했을 뿐….난 그네들 보다 비겁하게시리, 그 그림을 보는 순간, 가슴 속을 치미는 그 뜨거운 무엇을 느껴서, 여기까지 왔다는 말을 도저히 할 자신이 없었다. 그저, 난 그들처럼 젊지 않다는 것을 이유 삼아, 목이 메어와도, 대답을 끝끝내 삼켜가고 있었다.
-끝-
P.S.: 즐거운 추석을 맞이하여, 댁내 두루 평안하시고, 귀성길 평안히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읽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도 아울러 올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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