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뱅의 추억
프롤로그
시골에서 같이 자란 불알친구들과 다시 엮이게 된건 내 삐뚤어진 성욕 때문에 반강제로 시작했던 아내에 대한 돌림빵, 즉 갱뱅 때문이었다. 아내는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좇아다녔던 여인이고 나에게 무수한 절망과 슬픔을 안겨준 끝에 무려 12년만에 결혼 하게 된 여인이다. 첫만남은 고등학생때 연합써클 활동으로 시작되었지만, 그녀가 먼저 나에게 좋다하였고, 난 일찍겪었던 경험 덕분에 그녀를 별 어려움없이 정복하고 만끽하고 또 버렸다. 그러나 그녀의 절절한 매달림이 나에게 울림이 되어 내 마음이 그녀에게 돌아갔을 때부터 그녀에 대한 나의 일방적인 술래잡기가 시작되었고 그게 장장 12년이 걸렸다.
하지만 오매불망의 시간이 너무 길었고 여러번 그녀에 대한 연정과 자존심이 다쳤기 때문일까, 결혼 후 나는 그녀를 육체적으로 만족시켰을 지언정 첫째를 낳은 직후부터 나는 아내에 대한 권태감의 해일에 휩쓸려 무료함의 해변에 내동댕이 쳐졌다. 내 아내는 정녕 내가 젊음을 다 바쳐 사랑할 가치가 있는 여인이 확실한건가, 왜 내 마누라가 일찍 되어주지 않고 다른 놈들의 품속에서 몇번이고 안기다가 결국 돌아왔는가, 나는 이 여자에게 정확하게 어떤 존재였을까.
아내에 대한 지난 12년간의 누적된 섭섭함은 무료함에 더하여 나를 견딜 수 없게끔 했다. 짜증이 나도 그녀에게 의식적으로 티내지 않았고, 그녀가 나를 귀찮게 해도 나는 티내지 않고 그녀의 일상 속 요구들을 들어주었지만 첫째가 막 태어나고 부터 기저귀 갈기, 분유 타기, 아이 달래기, 좀 익숙해지니 쉬고 싶은 주말에 아이 업고 장보러가기, 좀 더 지나니 자신이 일이 많다고 첫째를 어린이 집에서 데려오기 등등의 아빠노릇하기가 고단한 직장생활과 맞물려 너무도 고단하기 그지 없는 상태가 되자 나도 억제할 수 없는 신경질이 이따금씩 터져나왔다. 그러나 곧 내 마음을 부여잡고 사과하고 내색내 아들은 사랑스러웠지만, 아내에겐 그런 마음이 12년간 재로 다 변했는지 그냥 귀찮은 여동생 같은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은 내 약속, 내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고집 같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태감은 결국 누군가의 선전포고도 없이 우리에게 갈등을 안겨주기 시작했는데, 내 통제할 수 없는 짜증이 한번씩 삐져나온 이후 부쩍 늘어난 아내의 짜증에 대하여 나는 논리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하나 짚으며 따지려 하다가 결국 회피를 선택했다. 그러다가 술에 잔뜩 취해서 늦게 들어간 어느날, 그녀가 가슴을 드러내고 아이를 곁에 두고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며 뭉클, 마음이 북받혀올라 그녀의 얼굴을 양손으로 부드럽게 감싸고 한참을 바라봤었다. 아이가 네살이 되었으니 장장 16년. 나는 서른 넷이 된 지금까지 귀찮아졌을지언정 이 여자를 바라보고 살아왔다. 섭섭하고 미운느낌도 종종 들었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여자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벗어나고 싶었다.
그녀의 칭얼거림으로 부터.. 그리고 그녀가 회복시켜주지 않은 내 상처들로 부터.. 그녀가 잠든동안 두어시간인가 써둔 편지 한통을 남기고.
그렇게 사흘을 가출했다가 돌아왔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거나 내 뺨을 때리는 대신 내 가슴에 천천히 안겼다. 무슨 내용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그녀는 미안하다 했다. 그리고 자신을 또 버리지 말아달라고 했다. 내가 그녀에게 처음에 안겨준 커다란 상처에 대한 죄책감으로 나는 12년을 다치며 그녀에게 만회할 기회를 달라고 구걸했는데, 만회했다고 자신하자마자 꺼져버린 그녀에 대한 나의 집착은 그 편지 속에서 그녀에게 어떤 깨달음을 던진 것일까.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 애틋한 마음이 극렬할 때에는 그녀와 나누는 잠깐의 사랑에도 내 사정의 순간이 우주 저편까지 순식간에 날아가버리는 듯한 쾌감과 아찔함이 나를 휘감았는데, 그렇지 않을 때에는 그게 없었다. 무료함은 한 여인을 여러명의 남자가 범하고, 두어커플이 서로 뒤엉켜 서로의 연인을 탐닉하는 야동과 야설을 탐닉하며 풀었고, 그 마저도 싫을 때에는 굶주린 개처럼 밤거리를 배회하며 혼자 어둑한 호프에 기어들어가 여주인이 한 번 자봤으면 하는 정도의 매력이 있고, 성격이 까칠하지 않다 싶으면 말을 걸어서 며칠, 몇주가 걸려서라도 그녀와 관계를 맺곤 했다. 결혼 후에는 오로지 자위 뿐이었지만, 내 극한까지 차오른 권태감 끝에 가출했던 사흘 동안 나는 회사에도 휴가를 내고 어릴때 나와 서슴없이 몸을 섞던 민교누나를 찾아가서 잠을 자고 왔다.
민교누나.. 갱뱅의 추억이 시작된 지점은 민교누나 부터였다. 하지만 민교누나를 보러가는 차 안에서 나는 갱뱅의 추억의 마지막은 분명 내 아내 은미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리고 묘한 죄책감과 희열이 내 몸을 휘감았다.
갱뱅의 추억 1.
민교누나, 옆집 살던 누나, 민교누나 아빠는 왼쪽 다리가 무릎 아래 정강이 중간 쯤부터 없었다. 그래서 늘 집에 계셨고, 그런 때문인지 마당에 온갖 화분을 기르고, 내가 놀러갈때 종종 봉투를 붙이고 계시기도 했는데, 나를 무척 귀여워 해주셨다. 민교누나의 동생, 내 친구 민수는 빠른생일이라 그런지 키도 나보다 작았는데 키랑 상관없이 얼마나 민첩한지, 늘 나를 약올리고 도망가면 나는 녀석을 쫓다가 포기하고 민수네 집, 바로 우리 옆집으로 들어가 녀석을 기다리곤 했다. 그런데 처음엔 민수를 때려주고 싶어서 갔던 그 집에서 민수의 아빠와 민교 누나를 보다 보면 화가 풀리곤 했는데, 민수녀석도 집에만 들어오면 심술이나 장난끼는 어디가고 착한 양으로 변해서 우리 셋은 도란도란 이런저런 보드게임 같은걸 하며 놀고는 했다.
밤이 되면 민수네 엄마가 공장에서 돌아오셨고, 우리 엄마도 밥먹으라며 나를 찾으러 오시곤 했다.
우리 아빠는 엄한 분이었고, 약간의 결벽증도 있는 터라 집으로 돌아오면 내 방 정리먼저 시키셨는데, 노는게 제일 좋았던 철부지 시절에는 몇 번이나 아빠에게 회초리로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얻어맞았던 끔찍한 기억이 있다. 나 보다 세살 적은 내 남동생도 나에게 귀찮게 하고 덤비고 하다가 아빠에게 몇 번 혼쭐 난 뒤로는 나와는 더이상 놀자고 하지 않고 제 또래의 친구들을 잔뜩 몰고 골목을 누볐더랬다.
민교누나와 나도 세살차이. 곱상한 얼굴, 쌍꺼풀은 없고, 도톰한 입술과 눈꺼풀, 옅은 주근깨, 안경까지 낀 민교누나는 내 눈에는 누나인데도 귀엽고 예뻤다.(물론 미인이라거나 그런 느낌은 아니고 귀여운데 매력있는??) 누나가 6학년때 까지는 학교에서 마주치는 일이 많아서 웃으면서 장난도 치고 그랬지만, 누나가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부쩍 마주치는 일이 드물어졌는데, 그 때 즈음 어느샌가 누나의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는 느낌, 그리고 부쩍 예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내가 6학년이던 해의 겨울의 어느날, 민교 누나 집에서 본의 얼굴에는 부쩍 수심과 슬픔이 묻어있었는데, 민수에게 버럭 화도 내는 것을 보며 놀란 나에게 민교 아버지는 나에게만 살짝, 사춘기라 그런것 같다며 귀뜸해주셨다.
그런가보다 하고 방학을 나던 중, 나는 읍내에서 누나가 처음보는 형들에게 둘러쌓여 있는걸 목격했고, 개학 직전에는 누나가 다니던 중학교에서도 그런 모습을 목격했다. 결정적인 사건은 동네축구를 하러 갔다 본 그 광경속에서 누나의 절박한 눈과 마주친 다음 일어났다. 나는 누나가 무슨 상황에 빠진건지 확신이 안가 잠깐 멍하니 있다가 공을 건성으로 주고받은 다음 누나가 나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라는 직감으로 순식간에 운동장에서 이탈하여 누나가 끌려들어간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이곳 저곳을 헤메다가 4층에까지 올라가서야 알수없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가게 되었는데, 꼭꼭 닫힌 교실 안에서 누나의 신음소리가 나고 있는게 확실해지자 나는 상황을 보려고 열려진 옆 교실에서 책상을 하나 내어와 올라간 다음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보았다.
"흐읍!"
숨이 막히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머리까지 저려왔다. 잔뜩 성난 고추를 저마다 꺼내놓고 주무르는 동안 어떤놈이 누나를 여러개 잇댄 책상위에 눕혀놓고 올라가서는 누나의 긴 치마를 올린 채로 누나의 그곳에 열심히 제 것을 넣었다 뺐다 하고 있었다. 누나의 들려진 다리 끝, 오른쪽 발목에 누나의 팬티가 걸려져 있었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지만 본능적으로 이게 엄마 아빠가 큰방에서 하시던 "그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으흑, 윽, 윽."
"이 썅년아, 조용히 안해?"
누나에게 올라타서 열심히 몸을 움직이던 놈이 누나를 때릴듯 오른손을 들어올리며 조용히 하라고 겁박했고, 누나는 입을 막은 채로 흔들리는 몸을 어쩌지 못하고 게슴츠레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러다가 놈의 움직임이 격하게 빨라졌고 이내 몸을 떨며 몇번이나 강하게 누나의 몸을 짖쳐댄 다음 번들거리는 물건을 잡고 빼냈는데, 뭔가 하얀것이 누나의 소중한 곳에서 쭈욱 흘러나오는게 보였고 직후에 옆에서 기다리던 놈이 누나의 다리를 다시 벌린 다음 제 것을 꽂아넣었다.
누나의 눈이 나와 마주친건 두번째 놈이 사정하고 나서였는데, 나는 애틋한 누나의 눈과 마주치자 마자 이것저것 가리지 못하고 문을 벌컥 연 다음 아까 처음에 누나를 올라 탔던 놈을 가장 먼저 발로 차고 두번째 사정한 놈의 얼굴, 정확히는 코를 내 주먹으로 뭉개버렸다. 그러나 그 다음 부턴 줄기차게 쏟아지는 발길질과 주먹질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몸을 웅크린 채로 소리만 질렀다. 경황없이 잔뜩 흥분해서 그런지 내가 얼마나 악을 써댔는지, 얼마나 맞은건지 기억나지 않았고, 내가 기억하는건 여기저기 찢기고 부은 내 몸뚱이와 나를 일으켜주던 친구들, 어느새 옷을 갖춰입은 채로 친구들이 나를 일으키기 전까지 나를 안고 있던 누나만 선명했다.
그리고 학교 수위가 달려왔고, 그 다음 기억은 내가 그 불량한 형들에게 끌려가서 다시 엄청나게 얻어맞아 갈비뼈가 금이 갔다는 것, 그 일로 아빠가 경찰과 함께 그 놈들을 모두 잡아넣었다는 것. 그리고 민교누나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민교누나랑 편지를 주고 받게 되었는데, 누나가 보낸 수십통의 편지들은 나에게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시작하여 사랑한다는 말로 끝맺었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때 다른 고등학교에 다니던 누나는 그 고등학교에서도 소문이 퍼져 곧 다시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고, 끝내 학교를 다시 다니지 못했다. 나도 누나를 연모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내 뇌리에는 누나가 놈들에게 둘러 쌓여 번갈아가며 유린당하던 모습이 떠나지 못했다. 너무 어려서 그 모습이 너무나 강렬했고, 또 흥분되기도 하면서 혐오스러웠는데, 그걸 쉽사리 떨쳐내지를 못했다. 그래도 어른들 몰래 내 동갑내기들 보다 훨씬 성숙한 누나를 안아보고 누나의 체향을 맡는게 좋아서 종종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서 누나와의 밀회를 즐기고는 했다. 물론 그 밀회의 농도는 누나의 입술과 가슴을 탐하던 정도까지를 말한다.
그리고 가을이 지날 무렵, 누나와 나는 한적하다 못해 음산할정도의 어느 도서관 구석에서 입을 맞추며 혀를 섞고 서로의 몸을 주무르다가 내가 먼저 누나를 널찍한 책상에 눕힌 다음 올라타서 내 바지를 벗고 내 고추를 누나의 사타구니로 가져가는데, 누나는 나의 급작스러운 행동에 무척 거센 저항을 했다. 그리고 누나의 힘겨운 저항이 서서히 무뎌지자 나는 손가락으로 누나 팬티가 누나의 소중한 곳을 덮고 있는 부분을 살짝 겉고 내 물건을 쑥 집어넣으려고 했다. 누나는 더욱 안타깝게 저행했고, 나는 잘 들어가지 않아서 어디가 내 좆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인지를 찾으려고 내 물건을 잡고 더 아래로, 더 아래로 향하며 계속 전진했다. 그리고 거의 똥구멍에 닿겠다 싶은 생각이 들 즈음, 내 귀두를 통해 누나의 뻑뻑한 동굴이 느껴지기 시작했을때, 나는 본능적으로 그곳이 맞다는 확신이 들어 더욱 앞으로 밀어넣었다, 누나의 눈은 촉촉했고 충혈된채로 슬픈 눈빛을 나에게 쏟았는데, 나는 그런 누나에게 미안하면서도 이전의 이쁘다는 느낌이 아니라 아름답다는 느낌이 이런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누나가 애틋하고 화사하게 보였다.
다 들어가버린 내 물건을 다시 어색한 움직임으로 뒤로 뺄때도 뻑뻑했는데, 누나가 얼굴을 찡그린채로 입술을 질끈 깨무는게 보였고, 내가 천천히 몇 번을 더 움직이자 어느새 미끈미끈해진게 느껴졌다. 그 느낌은 근사했고 환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나는 새삼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누나는 내 입술에 검지 손가락을 대고 다른 손의 검지로는 자기 입술에 갖다 댔다. 그리고는 몸을 흔드는데, 내 몸놀림은 어색했고 그런 끝에 물건이 빠져버리자 당황하는 나를 누나는 껴안아주면서 속삭여 나를 북돋아줬다.
“괜찮아. 천천히 해봐. 넌, 잘할 수 있어.”
어느새 슬픈 눈빛은 어디가고, 게슴츠레 뜬 눈으로 누나가 나에게 속삭인 달콤한 격려를 통해 나는 어색하나마 허리놀림을 반복했다. 그렇게 몇분이 흘렀을까, 어느새 내 남근에 찌릿한 느낌이 올라오기 시작하며 나를 다시금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누나 위에 맨 먼저 올라타서 사정하던 놈이 떠오르며 그놈 처럼 내 남근의 부풀어오르는 느낌과 저릿한 느낌이 동시에 들던 순간 누나의 음부에 내 것을 찍어박듯 거세게 짖쳐올렸다. 고요했던 도서과는 살부딪히는 소리가 몇번 크게 울렸고, 나에게는 아찔함과 함께 쾌감보다는 얼떨떨함이 나를 엄습했다.
나는 민교누나 덕에 자위도 건너뛴 채로 누나에게 내 동정을 바침과 동시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정을 해본 것이다. 첫사정은 분명 쾌감 보다는 밋밋한 느낌이 더 컸지만, 누나를 내가 가졌다는 만족감은 가공할만한 수준이었다. 밉다는 듯 내 가슴을 치면서도 베시시 웃는 누나의 얼굴이 더 예뻐보였고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도 없었음에도 괜히 부끄러워서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와 정처없이 거리를 걸었다. 그러면서 누나와 나는 손을 깎지껴 잡고 걸었다. 정확히는 내가 그렇게 잡았다. 하지만 걷는 동안 누나의 얼굴은 다시 수심과 슬픔이 점령했다는 것을 나는 한참 후에 깨달았다. 아마 내가 강제로 누나를 탐했던 때문이 아니었을까.
누나가 윤간당했던 일은 꼬리를 물고 계속 퍼져 누나는 동네 형들에게도 강제로 당하거나 추행당하는 일이 종종 생겼다. 나 또한 다른놈들 처럼 누나를 강제로 취했다는 생각이 더해져 누나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던 나는 내가 중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그런 일을 누나에게 들을 때마다 상대도 안되면서 무작정 누나를 욕보인 형들을 찾아가 선방을 날리곤 했다. 물론 몇은 내 선방에 고꾸라진 다음 나한테 죽도록 밟히고 끝나고, 몇은 내 선방에도 불구하고 나를 신체적 우위로 찍어누르거나 했다.
“내가 그러지 말라그랬지!”
“그러지 않으면! 누나가 계속 그런일 당하는걸 참으라고!?”
“안그러면 너가 자꾸 다치잖아.”
“내 몸이 다치는게 대수야? 누나는 마음이 다치잖아!”
“…….”
누나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눈물을 터뜨렸다.
“고마워. 근데 내가 뭐라고, 바보처럼 더러워진 나를, 더러운 나 때문에 자꾸 너가 다치니까.. 흐흑..”
눈두덩이든 입술이든 퉁퉁붓고 코에 피가 벤 휴지가 끼워진 내 얼굴을 부드러운 손으로 쓰다듬으며 누나는 펑펑 울었다.
“누가 더럽다그래? 강제로 당했다고 더러우면, 강제로 한놈들도 더러운거지. 누나 몸에 뭐가 남은것도 아니고, 왜 자꾸 그런말 하는데? 울지마. 내가 때려주고 왔으니까 울지마. 누나 더럽다고 하는 놈들도 다 내가 때려줄거야.”
누나가 학교를 그만 둔 이유가 바로 누나를 향한 몰상식한 비난 때문이었다. 누나는 그저 강제로 당했을 뿐인데, 이년, 저놈 할것 없이 누나를 창녀라느니, 더럽다느니 하며 놀렸고, 누나는 마음이 누더기가 되어버렸다. 지금생각하면, 누나는 정말 정신력이 남다른 여자였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는 그런 헤아림은 없었고 오로지 누나 걱정과 분노 뿐이었다. 마치 키우기 전에는 귀엽다는 정도만 느끼던 토끼나 강아지를 한마리 얻어와서 직접 먹이고 기르면서 애착이 생기고, 녀석이 다치거나 아프면 나도 아프고, 집을 나가는 일이라도 생기면 집착적으로 찾아다니는 경우와 거의 같은 이치 같았다. 그리고 그것에 더하여 사람은 그런 애착에 더하여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서 기꺼이 죽을 수도 있다고 각오하게 하는 그것.
“나 같은 것 때문에 다치지마….”
“그런 말투 듣기 싫어. 그런 식으로 말하지마.”
나는 정말로 그 말투가 듣기 싫었다. 그래서 그런 말을 들으면 차갑게 돌아서 집으로 가버리곤 했다. 중학교 1학년 동안 예닐곱놈과 엉겨붙었던 것 같고, 2학년 때에는 다섯놈 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진짜 큰 사건은 그 해의 겨울방학을 목전에 두고 일어났다.
동네에서 곧 군대가게 된 어떤 형이 누나를 몰래 뒷산으로 끌고가서 몸을 범한 후 누나는 그 어느때 보다슬픈 눈으로 나에게 그 일을 고백했고 나는 그 놈을 찾아가 늘 그랬듯 일단 선방을 꽂아넣었는데, 제대로 맞았는지 그놈의 코가 ‘우직’ 하는 느낌이 아주 잠깐 느껴졌다. 놈은 얼굴을 감싸쥔채로 나뒹굴었는데 그 괴성이 정말 끔찍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나는 다른놈들이라면 더 밟았을텐데, 그 놈은 하도 고래고래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내가 질려버렸던건지 뒤로 돌아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종업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뒤에서 누군가에게 칼로 옆구리를 찔리고 허벅지를 두번 찔렸다. 피가 얼마나 많이 흐르는지, 나는 다리가 후들거리면서도 바닥에 흐르는 내 피를 보며 오늘은 꼼짝없이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이 걸어가고 있던 녀석은 나를 찔렀던 마스크를 끼고 모자를 쓴 놈이 도망가자 나를 들쳐업고 가장 가까운 가게로 들어갔는데 가게 아저씨가 나와 녀석을 오토바이에 태우고 병원에 데려다 주셨다. 아마 119를 기다렸다면 난 꼼짝 없이 죽었을텐데, 나를 살려준 그 놈이 경호다. 그리고 연락을 받은 부모님은 물론 민수네도 달려왔고, 민수는 나를 위해 수혈까지 했다. 목발 짚은채로 나를 미안한 눈으로 바라보던 민수 아빠와 그런 민수 아빠와 민교 누나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던 내 부모님…
누나에게 무던히도 달라붙은 똥파리들 때문에 우리는 이어질 수 없었다. 엄마가 병실에서
“나중에 혹여 엮여서 살아도 서방잡아먹을 년이다. 얼른 정신차려, 이 불효막심한놈아.”
라고 말씀하신걸 듣고 그것을 확신했다. 누나와 나는 결혼하지는 못할 것 같다고.
이후로 누나는 더욱 더 나에게 미안해 했다. 병문안 와도 싸늘한 엄마의 시선을 참아내며 내 손을 꼭 잡고 있다가 말없이 가고는 했다. 나는 누나에게 애틋한 모습을 모이면 엄마의 원망이 더욱 커질께 빤히 보였던 지라 누나를 잠깐 보다가 시선을 돌리고는 했다.
그러다가 퇴원이 가까웠을 즈음 우연히 엄마가 안계실때 누나가 문병을 왔는데, 나는 그러면 안됨에도 불구하고 펄펄끓는 욕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누나를 복도 끝의 계단으로 데려가서 층간에서 누나의 치마를 올리고 급하게 내 성난 놈을 밀어넣었다. 누나는 나를 거절하기는 커녕 내 욕정에 화답해주며 호흡을 맞춰 내 물건이 들어갈 틈을 만들려고 팬티를 살짝 옆으로 걷어줬고, 우악스러운 삽입때문에 많이 아팠을 텐데도 얼굴만 찡그리며 통증을 꾹 참는게 보였다. 발정난 개처럼 나는 누나를 벽에 세워놓고 본능이 시키는대로 누나의 왼쪽 다리를 들고 내 허리를 움직였다. 꿰멘 상처가 욱신거렸지만 그것은 누나와 나누는 사랑의 쾌감에 사뿐히 파묻혀버렸다.
“헉, 헉, 헉!”
누나와 나는 거세게 숨만 쉬었고, 나는 내 호두알 두쪽의 아래 깊은 곳에서 부터 짜릿하게 올라오는 배출의 욕망을 키워내며 끝내 나의 사랑과 정을 듬뿍 담아 누나의 소중한 질 속에 내 정액을 가득 부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일방적인 행위였지만, 누나는 아무 말 없이 내 머리를 안아 가슴에 밀착시켰고 내 등을 어루만져주었다. 아무런 말 없이.
누나는 내 헌신에 대한 보답이었는지, 우리의 관계가 더이상 공공연할 수 없는 처지가 된 이후에도 내가 누나를 원하면 언제든지 그곳을 열어주었다.
민교누나는 지금생각하면 미인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남자를 끌어들이는 형용불가한 매력도 넘쳐흘렀다고 할 수 있었다. 똥파리들이 그렇게까지 몰려든걸 보면 그걸 확실하게 증명한다고 본다. 그리고 정말 지혜롭기도 했던 여자였는데, 수 많은 놈들이 누나의 몸안에 정액을 무수히 싸넣었어도 누나는 임신하는 불상사를 겪지 않았는데, 그것도 나중에 알고보니 먹는 피임약을 구해서 먹고 있었던 것을 알았다. 물론 그 피임약을 먹게된 계기는 아내에게 편지를 쓰고 잠적해서 누나를 만나러 갔을때 들었다.
누나의 첫경험은 약사라는 친척오빠에게 명절에 반강제로 당한 것이었는데, 다음 명절에 만나니 뭔가를 건네주더란다. 그게 피임약이라는건 알았지만 왜 먹어야 하는지는 그 오빠에게서 듣지 못했고, 그녀는 약갑안의 설명서를 통해서 스스로 자각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걸 먹게 된 것은 읍내에서 어떤 양아치 놈에게 희롱 당한 직후였다고 했다. 학교 선배였다는데, 그녀는 그 놈의 희롱이 희롱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직감을 한것이 아니었을까. 아니나 다를까, 몇주 후 부터 그 놈의 추행이 다시 시작되었는데, 한달을 넘기고 부터는 으슥한 곳으로 끌고가서 자기 물건을 만지게 하고 입으로 빨게 하더니, 얼마 안가 강제로 누나의 그곳에 삽입을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누나는 이후 저금통을 깨서 피임약을 잔뜩 사놓고 꼬박꼬박 먹었다. 아마도 약사라는 친척오빠놈이 피임약을 사준 저의는 죄책감때문일지, 아니면 명절을 앞두고 먹게 해서 마음껏 누나의 몸안에 사정하고 싶었던 때문일지는 몰라도, 그 덕분에 누나는 누나를 탐하기 시작한 똥파리들로부터 최악의 재앙은 피할 수 있게 되었으니 역설적인 일이 아닐까.
아무튼, 누나는 그렇게 피임을 하며 구겨진채로 멈춰진 학창시절을 뒤로 하고 이사를 가기로 했다. 우리 집도 서울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하고 내가 중3이 되던 봄, 우리 둘이 헤어질때까지 누나는 언제나 내가 원하면 모든것을 허락했다. 나는 병적으로 누나를 탐했고, 누나의 얼굴을 보며 내 허리를 거세게 움직일때마다 누나가 그 놈들에게 몇번이나 둘러싸여 정액으로 몸을 적셨다는 생각에 더욱더 흥분하여 누나의 질 속에 내 씨앗을 뿌려댔고, 어느 날에는 내 정액을 누나의 입속에 쏟아붓고 삼키게 한다거나, 누나의 가슴에 뿌린다거나 하는 행동도 했다. 야동이라는 걸 몰랐던 당시에도 나는 충동에 의해 그런 것들을 과감하게 원했는데, 누나는 아무 싫은 내색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면, 갱뱅 말고는.. 모든 걸 다 허락해주었다.
나는 누나 입속에 사정을 하던, 누나의 질속에 사정을 하던, 가슴에 사정하던, 사정 후에는 누나를 꼭 안아주고 땀이 송글송글 맺힌 누나의 이마에 뽀뽀해주고는 했는데. 누나는 한결같이 눈을 감고 내 입맞춤이 끝날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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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것은"을 쓰다가 개인사정으로 삭제하고 몇달을 생계에 집중하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자주는 못올리구요. 어쩌면 그것은은 추후 수정하여 재연재 하겠습니다.
늘 그랬었듯, 이 글도 올린 이후에 수시로 수정해놓도록 하겠습니다...
눈꺼풀만근 올림...
프롤로그
시골에서 같이 자란 불알친구들과 다시 엮이게 된건 내 삐뚤어진 성욕 때문에 반강제로 시작했던 아내에 대한 돌림빵, 즉 갱뱅 때문이었다. 아내는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좇아다녔던 여인이고 나에게 무수한 절망과 슬픔을 안겨준 끝에 무려 12년만에 결혼 하게 된 여인이다. 첫만남은 고등학생때 연합써클 활동으로 시작되었지만, 그녀가 먼저 나에게 좋다하였고, 난 일찍겪었던 경험 덕분에 그녀를 별 어려움없이 정복하고 만끽하고 또 버렸다. 그러나 그녀의 절절한 매달림이 나에게 울림이 되어 내 마음이 그녀에게 돌아갔을 때부터 그녀에 대한 나의 일방적인 술래잡기가 시작되었고 그게 장장 12년이 걸렸다.
하지만 오매불망의 시간이 너무 길었고 여러번 그녀에 대한 연정과 자존심이 다쳤기 때문일까, 결혼 후 나는 그녀를 육체적으로 만족시켰을 지언정 첫째를 낳은 직후부터 나는 아내에 대한 권태감의 해일에 휩쓸려 무료함의 해변에 내동댕이 쳐졌다. 내 아내는 정녕 내가 젊음을 다 바쳐 사랑할 가치가 있는 여인이 확실한건가, 왜 내 마누라가 일찍 되어주지 않고 다른 놈들의 품속에서 몇번이고 안기다가 결국 돌아왔는가, 나는 이 여자에게 정확하게 어떤 존재였을까.
아내에 대한 지난 12년간의 누적된 섭섭함은 무료함에 더하여 나를 견딜 수 없게끔 했다. 짜증이 나도 그녀에게 의식적으로 티내지 않았고, 그녀가 나를 귀찮게 해도 나는 티내지 않고 그녀의 일상 속 요구들을 들어주었지만 첫째가 막 태어나고 부터 기저귀 갈기, 분유 타기, 아이 달래기, 좀 익숙해지니 쉬고 싶은 주말에 아이 업고 장보러가기, 좀 더 지나니 자신이 일이 많다고 첫째를 어린이 집에서 데려오기 등등의 아빠노릇하기가 고단한 직장생활과 맞물려 너무도 고단하기 그지 없는 상태가 되자 나도 억제할 수 없는 신경질이 이따금씩 터져나왔다. 그러나 곧 내 마음을 부여잡고 사과하고 내색내 아들은 사랑스러웠지만, 아내에겐 그런 마음이 12년간 재로 다 변했는지 그냥 귀찮은 여동생 같은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은 내 약속, 내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고집 같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태감은 결국 누군가의 선전포고도 없이 우리에게 갈등을 안겨주기 시작했는데, 내 통제할 수 없는 짜증이 한번씩 삐져나온 이후 부쩍 늘어난 아내의 짜증에 대하여 나는 논리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하나 짚으며 따지려 하다가 결국 회피를 선택했다. 그러다가 술에 잔뜩 취해서 늦게 들어간 어느날, 그녀가 가슴을 드러내고 아이를 곁에 두고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며 뭉클, 마음이 북받혀올라 그녀의 얼굴을 양손으로 부드럽게 감싸고 한참을 바라봤었다. 아이가 네살이 되었으니 장장 16년. 나는 서른 넷이 된 지금까지 귀찮아졌을지언정 이 여자를 바라보고 살아왔다. 섭섭하고 미운느낌도 종종 들었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여자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벗어나고 싶었다.
그녀의 칭얼거림으로 부터.. 그리고 그녀가 회복시켜주지 않은 내 상처들로 부터.. 그녀가 잠든동안 두어시간인가 써둔 편지 한통을 남기고.
그렇게 사흘을 가출했다가 돌아왔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거나 내 뺨을 때리는 대신 내 가슴에 천천히 안겼다. 무슨 내용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그녀는 미안하다 했다. 그리고 자신을 또 버리지 말아달라고 했다. 내가 그녀에게 처음에 안겨준 커다란 상처에 대한 죄책감으로 나는 12년을 다치며 그녀에게 만회할 기회를 달라고 구걸했는데, 만회했다고 자신하자마자 꺼져버린 그녀에 대한 나의 집착은 그 편지 속에서 그녀에게 어떤 깨달음을 던진 것일까.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 애틋한 마음이 극렬할 때에는 그녀와 나누는 잠깐의 사랑에도 내 사정의 순간이 우주 저편까지 순식간에 날아가버리는 듯한 쾌감과 아찔함이 나를 휘감았는데, 그렇지 않을 때에는 그게 없었다. 무료함은 한 여인을 여러명의 남자가 범하고, 두어커플이 서로 뒤엉켜 서로의 연인을 탐닉하는 야동과 야설을 탐닉하며 풀었고, 그 마저도 싫을 때에는 굶주린 개처럼 밤거리를 배회하며 혼자 어둑한 호프에 기어들어가 여주인이 한 번 자봤으면 하는 정도의 매력이 있고, 성격이 까칠하지 않다 싶으면 말을 걸어서 며칠, 몇주가 걸려서라도 그녀와 관계를 맺곤 했다. 결혼 후에는 오로지 자위 뿐이었지만, 내 극한까지 차오른 권태감 끝에 가출했던 사흘 동안 나는 회사에도 휴가를 내고 어릴때 나와 서슴없이 몸을 섞던 민교누나를 찾아가서 잠을 자고 왔다.
민교누나.. 갱뱅의 추억이 시작된 지점은 민교누나 부터였다. 하지만 민교누나를 보러가는 차 안에서 나는 갱뱅의 추억의 마지막은 분명 내 아내 은미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리고 묘한 죄책감과 희열이 내 몸을 휘감았다.
갱뱅의 추억 1.
민교누나, 옆집 살던 누나, 민교누나 아빠는 왼쪽 다리가 무릎 아래 정강이 중간 쯤부터 없었다. 그래서 늘 집에 계셨고, 그런 때문인지 마당에 온갖 화분을 기르고, 내가 놀러갈때 종종 봉투를 붙이고 계시기도 했는데, 나를 무척 귀여워 해주셨다. 민교누나의 동생, 내 친구 민수는 빠른생일이라 그런지 키도 나보다 작았는데 키랑 상관없이 얼마나 민첩한지, 늘 나를 약올리고 도망가면 나는 녀석을 쫓다가 포기하고 민수네 집, 바로 우리 옆집으로 들어가 녀석을 기다리곤 했다. 그런데 처음엔 민수를 때려주고 싶어서 갔던 그 집에서 민수의 아빠와 민교 누나를 보다 보면 화가 풀리곤 했는데, 민수녀석도 집에만 들어오면 심술이나 장난끼는 어디가고 착한 양으로 변해서 우리 셋은 도란도란 이런저런 보드게임 같은걸 하며 놀고는 했다.
밤이 되면 민수네 엄마가 공장에서 돌아오셨고, 우리 엄마도 밥먹으라며 나를 찾으러 오시곤 했다.
우리 아빠는 엄한 분이었고, 약간의 결벽증도 있는 터라 집으로 돌아오면 내 방 정리먼저 시키셨는데, 노는게 제일 좋았던 철부지 시절에는 몇 번이나 아빠에게 회초리로 종아리에 피가 나도록 얻어맞았던 끔찍한 기억이 있다. 나 보다 세살 적은 내 남동생도 나에게 귀찮게 하고 덤비고 하다가 아빠에게 몇 번 혼쭐 난 뒤로는 나와는 더이상 놀자고 하지 않고 제 또래의 친구들을 잔뜩 몰고 골목을 누볐더랬다.
민교누나와 나도 세살차이. 곱상한 얼굴, 쌍꺼풀은 없고, 도톰한 입술과 눈꺼풀, 옅은 주근깨, 안경까지 낀 민교누나는 내 눈에는 누나인데도 귀엽고 예뻤다.(물론 미인이라거나 그런 느낌은 아니고 귀여운데 매력있는??) 누나가 6학년때 까지는 학교에서 마주치는 일이 많아서 웃으면서 장난도 치고 그랬지만, 누나가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부쩍 마주치는 일이 드물어졌는데, 그 때 즈음 어느샌가 누나의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는 느낌, 그리고 부쩍 예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내가 6학년이던 해의 겨울의 어느날, 민교 누나 집에서 본의 얼굴에는 부쩍 수심과 슬픔이 묻어있었는데, 민수에게 버럭 화도 내는 것을 보며 놀란 나에게 민교 아버지는 나에게만 살짝, 사춘기라 그런것 같다며 귀뜸해주셨다.
그런가보다 하고 방학을 나던 중, 나는 읍내에서 누나가 처음보는 형들에게 둘러쌓여 있는걸 목격했고, 개학 직전에는 누나가 다니던 중학교에서도 그런 모습을 목격했다. 결정적인 사건은 동네축구를 하러 갔다 본 그 광경속에서 누나의 절박한 눈과 마주친 다음 일어났다. 나는 누나가 무슨 상황에 빠진건지 확신이 안가 잠깐 멍하니 있다가 공을 건성으로 주고받은 다음 누나가 나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라는 직감으로 순식간에 운동장에서 이탈하여 누나가 끌려들어간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이곳 저곳을 헤메다가 4층에까지 올라가서야 알수없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다가가게 되었는데, 꼭꼭 닫힌 교실 안에서 누나의 신음소리가 나고 있는게 확실해지자 나는 상황을 보려고 열려진 옆 교실에서 책상을 하나 내어와 올라간 다음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 보았다.
"흐읍!"
숨이 막히고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머리까지 저려왔다. 잔뜩 성난 고추를 저마다 꺼내놓고 주무르는 동안 어떤놈이 누나를 여러개 잇댄 책상위에 눕혀놓고 올라가서는 누나의 긴 치마를 올린 채로 누나의 그곳에 열심히 제 것을 넣었다 뺐다 하고 있었다. 누나의 들려진 다리 끝, 오른쪽 발목에 누나의 팬티가 걸려져 있었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지만 본능적으로 이게 엄마 아빠가 큰방에서 하시던 "그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으흑, 윽, 윽."
"이 썅년아, 조용히 안해?"
누나에게 올라타서 열심히 몸을 움직이던 놈이 누나를 때릴듯 오른손을 들어올리며 조용히 하라고 겁박했고, 누나는 입을 막은 채로 흔들리는 몸을 어쩌지 못하고 게슴츠레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러다가 놈의 움직임이 격하게 빨라졌고 이내 몸을 떨며 몇번이나 강하게 누나의 몸을 짖쳐댄 다음 번들거리는 물건을 잡고 빼냈는데, 뭔가 하얀것이 누나의 소중한 곳에서 쭈욱 흘러나오는게 보였고 직후에 옆에서 기다리던 놈이 누나의 다리를 다시 벌린 다음 제 것을 꽂아넣었다.
누나의 눈이 나와 마주친건 두번째 놈이 사정하고 나서였는데, 나는 애틋한 누나의 눈과 마주치자 마자 이것저것 가리지 못하고 문을 벌컥 연 다음 아까 처음에 누나를 올라 탔던 놈을 가장 먼저 발로 차고 두번째 사정한 놈의 얼굴, 정확히는 코를 내 주먹으로 뭉개버렸다. 그러나 그 다음 부턴 줄기차게 쏟아지는 발길질과 주먹질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몸을 웅크린 채로 소리만 질렀다. 경황없이 잔뜩 흥분해서 그런지 내가 얼마나 악을 써댔는지, 얼마나 맞은건지 기억나지 않았고, 내가 기억하는건 여기저기 찢기고 부은 내 몸뚱이와 나를 일으켜주던 친구들, 어느새 옷을 갖춰입은 채로 친구들이 나를 일으키기 전까지 나를 안고 있던 누나만 선명했다.
그리고 학교 수위가 달려왔고, 그 다음 기억은 내가 그 불량한 형들에게 끌려가서 다시 엄청나게 얻어맞아 갈비뼈가 금이 갔다는 것, 그 일로 아빠가 경찰과 함께 그 놈들을 모두 잡아넣었다는 것. 그리고 민교누나는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민교누나랑 편지를 주고 받게 되었는데, 누나가 보낸 수십통의 편지들은 나에게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시작하여 사랑한다는 말로 끝맺었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때 다른 고등학교에 다니던 누나는 그 고등학교에서도 소문이 퍼져 곧 다시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고, 끝내 학교를 다시 다니지 못했다. 나도 누나를 연모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내 뇌리에는 누나가 놈들에게 둘러 쌓여 번갈아가며 유린당하던 모습이 떠나지 못했다. 너무 어려서 그 모습이 너무나 강렬했고, 또 흥분되기도 하면서 혐오스러웠는데, 그걸 쉽사리 떨쳐내지를 못했다. 그래도 어른들 몰래 내 동갑내기들 보다 훨씬 성숙한 누나를 안아보고 누나의 체향을 맡는게 좋아서 종종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서 누나와의 밀회를 즐기고는 했다. 물론 그 밀회의 농도는 누나의 입술과 가슴을 탐하던 정도까지를 말한다.
그리고 가을이 지날 무렵, 누나와 나는 한적하다 못해 음산할정도의 어느 도서관 구석에서 입을 맞추며 혀를 섞고 서로의 몸을 주무르다가 내가 먼저 누나를 널찍한 책상에 눕힌 다음 올라타서 내 바지를 벗고 내 고추를 누나의 사타구니로 가져가는데, 누나는 나의 급작스러운 행동에 무척 거센 저항을 했다. 그리고 누나의 힘겨운 저항이 서서히 무뎌지자 나는 손가락으로 누나 팬티가 누나의 소중한 곳을 덮고 있는 부분을 살짝 겉고 내 물건을 쑥 집어넣으려고 했다. 누나는 더욱 안타깝게 저행했고, 나는 잘 들어가지 않아서 어디가 내 좆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인지를 찾으려고 내 물건을 잡고 더 아래로, 더 아래로 향하며 계속 전진했다. 그리고 거의 똥구멍에 닿겠다 싶은 생각이 들 즈음, 내 귀두를 통해 누나의 뻑뻑한 동굴이 느껴지기 시작했을때, 나는 본능적으로 그곳이 맞다는 확신이 들어 더욱 앞으로 밀어넣었다, 누나의 눈은 촉촉했고 충혈된채로 슬픈 눈빛을 나에게 쏟았는데, 나는 그런 누나에게 미안하면서도 이전의 이쁘다는 느낌이 아니라 아름답다는 느낌이 이런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누나가 애틋하고 화사하게 보였다.
다 들어가버린 내 물건을 다시 어색한 움직임으로 뒤로 뺄때도 뻑뻑했는데, 누나가 얼굴을 찡그린채로 입술을 질끈 깨무는게 보였고, 내가 천천히 몇 번을 더 움직이자 어느새 미끈미끈해진게 느껴졌다. 그 느낌은 근사했고 환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나는 새삼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누나는 내 입술에 검지 손가락을 대고 다른 손의 검지로는 자기 입술에 갖다 댔다. 그리고는 몸을 흔드는데, 내 몸놀림은 어색했고 그런 끝에 물건이 빠져버리자 당황하는 나를 누나는 껴안아주면서 속삭여 나를 북돋아줬다.
“괜찮아. 천천히 해봐. 넌, 잘할 수 있어.”
어느새 슬픈 눈빛은 어디가고, 게슴츠레 뜬 눈으로 누나가 나에게 속삭인 달콤한 격려를 통해 나는 어색하나마 허리놀림을 반복했다. 그렇게 몇분이 흘렀을까, 어느새 내 남근에 찌릿한 느낌이 올라오기 시작하며 나를 다시금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누나 위에 맨 먼저 올라타서 사정하던 놈이 떠오르며 그놈 처럼 내 남근의 부풀어오르는 느낌과 저릿한 느낌이 동시에 들던 순간 누나의 음부에 내 것을 찍어박듯 거세게 짖쳐올렸다. 고요했던 도서과는 살부딪히는 소리가 몇번 크게 울렸고, 나에게는 아찔함과 함께 쾌감보다는 얼떨떨함이 나를 엄습했다.
나는 민교누나 덕에 자위도 건너뛴 채로 누나에게 내 동정을 바침과 동시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정을 해본 것이다. 첫사정은 분명 쾌감 보다는 밋밋한 느낌이 더 컸지만, 누나를 내가 가졌다는 만족감은 가공할만한 수준이었다. 밉다는 듯 내 가슴을 치면서도 베시시 웃는 누나의 얼굴이 더 예뻐보였고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도 없었음에도 괜히 부끄러워서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와 정처없이 거리를 걸었다. 그러면서 누나와 나는 손을 깎지껴 잡고 걸었다. 정확히는 내가 그렇게 잡았다. 하지만 걷는 동안 누나의 얼굴은 다시 수심과 슬픔이 점령했다는 것을 나는 한참 후에 깨달았다. 아마 내가 강제로 누나를 탐했던 때문이 아니었을까.
누나가 윤간당했던 일은 꼬리를 물고 계속 퍼져 누나는 동네 형들에게도 강제로 당하거나 추행당하는 일이 종종 생겼다. 나 또한 다른놈들 처럼 누나를 강제로 취했다는 생각이 더해져 누나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던 나는 내가 중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그런 일을 누나에게 들을 때마다 상대도 안되면서 무작정 누나를 욕보인 형들을 찾아가 선방을 날리곤 했다. 물론 몇은 내 선방에 고꾸라진 다음 나한테 죽도록 밟히고 끝나고, 몇은 내 선방에도 불구하고 나를 신체적 우위로 찍어누르거나 했다.
“내가 그러지 말라그랬지!”
“그러지 않으면! 누나가 계속 그런일 당하는걸 참으라고!?”
“안그러면 너가 자꾸 다치잖아.”
“내 몸이 다치는게 대수야? 누나는 마음이 다치잖아!”
“…….”
누나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눈물을 터뜨렸다.
“고마워. 근데 내가 뭐라고, 바보처럼 더러워진 나를, 더러운 나 때문에 자꾸 너가 다치니까.. 흐흑..”
눈두덩이든 입술이든 퉁퉁붓고 코에 피가 벤 휴지가 끼워진 내 얼굴을 부드러운 손으로 쓰다듬으며 누나는 펑펑 울었다.
“누가 더럽다그래? 강제로 당했다고 더러우면, 강제로 한놈들도 더러운거지. 누나 몸에 뭐가 남은것도 아니고, 왜 자꾸 그런말 하는데? 울지마. 내가 때려주고 왔으니까 울지마. 누나 더럽다고 하는 놈들도 다 내가 때려줄거야.”
누나가 학교를 그만 둔 이유가 바로 누나를 향한 몰상식한 비난 때문이었다. 누나는 그저 강제로 당했을 뿐인데, 이년, 저놈 할것 없이 누나를 창녀라느니, 더럽다느니 하며 놀렸고, 누나는 마음이 누더기가 되어버렸다. 지금생각하면, 누나는 정말 정신력이 남다른 여자였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는 그런 헤아림은 없었고 오로지 누나 걱정과 분노 뿐이었다. 마치 키우기 전에는 귀엽다는 정도만 느끼던 토끼나 강아지를 한마리 얻어와서 직접 먹이고 기르면서 애착이 생기고, 녀석이 다치거나 아프면 나도 아프고, 집을 나가는 일이라도 생기면 집착적으로 찾아다니는 경우와 거의 같은 이치 같았다. 그리고 그것에 더하여 사람은 그런 애착에 더하여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었다. 누군가를 위해서 기꺼이 죽을 수도 있다고 각오하게 하는 그것.
“나 같은 것 때문에 다치지마….”
“그런 말투 듣기 싫어. 그런 식으로 말하지마.”
나는 정말로 그 말투가 듣기 싫었다. 그래서 그런 말을 들으면 차갑게 돌아서 집으로 가버리곤 했다. 중학교 1학년 동안 예닐곱놈과 엉겨붙었던 것 같고, 2학년 때에는 다섯놈 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진짜 큰 사건은 그 해의 겨울방학을 목전에 두고 일어났다.
동네에서 곧 군대가게 된 어떤 형이 누나를 몰래 뒷산으로 끌고가서 몸을 범한 후 누나는 그 어느때 보다슬픈 눈으로 나에게 그 일을 고백했고 나는 그 놈을 찾아가 늘 그랬듯 일단 선방을 꽂아넣었는데, 제대로 맞았는지 그놈의 코가 ‘우직’ 하는 느낌이 아주 잠깐 느껴졌다. 놈은 얼굴을 감싸쥔채로 나뒹굴었는데 그 괴성이 정말 끔찍해서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나는 다른놈들이라면 더 밟았을텐데, 그 놈은 하도 고래고래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내가 질려버렸던건지 뒤로 돌아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종업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뒤에서 누군가에게 칼로 옆구리를 찔리고 허벅지를 두번 찔렸다. 피가 얼마나 많이 흐르는지, 나는 다리가 후들거리면서도 바닥에 흐르는 내 피를 보며 오늘은 꼼짝없이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이 걸어가고 있던 녀석은 나를 찔렀던 마스크를 끼고 모자를 쓴 놈이 도망가자 나를 들쳐업고 가장 가까운 가게로 들어갔는데 가게 아저씨가 나와 녀석을 오토바이에 태우고 병원에 데려다 주셨다. 아마 119를 기다렸다면 난 꼼짝 없이 죽었을텐데, 나를 살려준 그 놈이 경호다. 그리고 연락을 받은 부모님은 물론 민수네도 달려왔고, 민수는 나를 위해 수혈까지 했다. 목발 짚은채로 나를 미안한 눈으로 바라보던 민수 아빠와 그런 민수 아빠와 민교 누나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던 내 부모님…
누나에게 무던히도 달라붙은 똥파리들 때문에 우리는 이어질 수 없었다. 엄마가 병실에서
“나중에 혹여 엮여서 살아도 서방잡아먹을 년이다. 얼른 정신차려, 이 불효막심한놈아.”
라고 말씀하신걸 듣고 그것을 확신했다. 누나와 나는 결혼하지는 못할 것 같다고.
이후로 누나는 더욱 더 나에게 미안해 했다. 병문안 와도 싸늘한 엄마의 시선을 참아내며 내 손을 꼭 잡고 있다가 말없이 가고는 했다. 나는 누나에게 애틋한 모습을 모이면 엄마의 원망이 더욱 커질께 빤히 보였던 지라 누나를 잠깐 보다가 시선을 돌리고는 했다.
그러다가 퇴원이 가까웠을 즈음 우연히 엄마가 안계실때 누나가 문병을 왔는데, 나는 그러면 안됨에도 불구하고 펄펄끓는 욕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누나를 복도 끝의 계단으로 데려가서 층간에서 누나의 치마를 올리고 급하게 내 성난 놈을 밀어넣었다. 누나는 나를 거절하기는 커녕 내 욕정에 화답해주며 호흡을 맞춰 내 물건이 들어갈 틈을 만들려고 팬티를 살짝 옆으로 걷어줬고, 우악스러운 삽입때문에 많이 아팠을 텐데도 얼굴만 찡그리며 통증을 꾹 참는게 보였다. 발정난 개처럼 나는 누나를 벽에 세워놓고 본능이 시키는대로 누나의 왼쪽 다리를 들고 내 허리를 움직였다. 꿰멘 상처가 욱신거렸지만 그것은 누나와 나누는 사랑의 쾌감에 사뿐히 파묻혀버렸다.
“헉, 헉, 헉!”
누나와 나는 거세게 숨만 쉬었고, 나는 내 호두알 두쪽의 아래 깊은 곳에서 부터 짜릿하게 올라오는 배출의 욕망을 키워내며 끝내 나의 사랑과 정을 듬뿍 담아 누나의 소중한 질 속에 내 정액을 가득 부어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일방적인 행위였지만, 누나는 아무 말 없이 내 머리를 안아 가슴에 밀착시켰고 내 등을 어루만져주었다. 아무런 말 없이.
누나는 내 헌신에 대한 보답이었는지, 우리의 관계가 더이상 공공연할 수 없는 처지가 된 이후에도 내가 누나를 원하면 언제든지 그곳을 열어주었다.
민교누나는 지금생각하면 미인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남자를 끌어들이는 형용불가한 매력도 넘쳐흘렀다고 할 수 있었다. 똥파리들이 그렇게까지 몰려든걸 보면 그걸 확실하게 증명한다고 본다. 그리고 정말 지혜롭기도 했던 여자였는데, 수 많은 놈들이 누나의 몸안에 정액을 무수히 싸넣었어도 누나는 임신하는 불상사를 겪지 않았는데, 그것도 나중에 알고보니 먹는 피임약을 구해서 먹고 있었던 것을 알았다. 물론 그 피임약을 먹게된 계기는 아내에게 편지를 쓰고 잠적해서 누나를 만나러 갔을때 들었다.
누나의 첫경험은 약사라는 친척오빠에게 명절에 반강제로 당한 것이었는데, 다음 명절에 만나니 뭔가를 건네주더란다. 그게 피임약이라는건 알았지만 왜 먹어야 하는지는 그 오빠에게서 듣지 못했고, 그녀는 약갑안의 설명서를 통해서 스스로 자각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걸 먹게 된 것은 읍내에서 어떤 양아치 놈에게 희롱 당한 직후였다고 했다. 학교 선배였다는데, 그녀는 그 놈의 희롱이 희롱에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직감을 한것이 아니었을까. 아니나 다를까, 몇주 후 부터 그 놈의 추행이 다시 시작되었는데, 한달을 넘기고 부터는 으슥한 곳으로 끌고가서 자기 물건을 만지게 하고 입으로 빨게 하더니, 얼마 안가 강제로 누나의 그곳에 삽입을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누나는 이후 저금통을 깨서 피임약을 잔뜩 사놓고 꼬박꼬박 먹었다. 아마도 약사라는 친척오빠놈이 피임약을 사준 저의는 죄책감때문일지, 아니면 명절을 앞두고 먹게 해서 마음껏 누나의 몸안에 사정하고 싶었던 때문일지는 몰라도, 그 덕분에 누나는 누나를 탐하기 시작한 똥파리들로부터 최악의 재앙은 피할 수 있게 되었으니 역설적인 일이 아닐까.
아무튼, 누나는 그렇게 피임을 하며 구겨진채로 멈춰진 학창시절을 뒤로 하고 이사를 가기로 했다. 우리 집도 서울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하고 내가 중3이 되던 봄, 우리 둘이 헤어질때까지 누나는 언제나 내가 원하면 모든것을 허락했다. 나는 병적으로 누나를 탐했고, 누나의 얼굴을 보며 내 허리를 거세게 움직일때마다 누나가 그 놈들에게 몇번이나 둘러싸여 정액으로 몸을 적셨다는 생각에 더욱더 흥분하여 누나의 질 속에 내 씨앗을 뿌려댔고, 어느 날에는 내 정액을 누나의 입속에 쏟아붓고 삼키게 한다거나, 누나의 가슴에 뿌린다거나 하는 행동도 했다. 야동이라는 걸 몰랐던 당시에도 나는 충동에 의해 그런 것들을 과감하게 원했는데, 누나는 아무 싫은 내색 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면, 갱뱅 말고는.. 모든 걸 다 허락해주었다.
나는 누나 입속에 사정을 하던, 누나의 질속에 사정을 하던, 가슴에 사정하던, 사정 후에는 누나를 꼭 안아주고 땀이 송글송글 맺힌 누나의 이마에 뽀뽀해주고는 했는데. 누나는 한결같이 눈을 감고 내 입맞춤이 끝날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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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것은"을 쓰다가 개인사정으로 삭제하고 몇달을 생계에 집중하다가 다시 돌아왔습니다.. 자주는 못올리구요. 어쩌면 그것은은 추후 수정하여 재연재 하겠습니다.
늘 그랬었듯, 이 글도 올린 이후에 수시로 수정해놓도록 하겠습니다...
눈꺼풀만근 올림...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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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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