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경민입니다."
"보셨습니까?"
"네. 방금 보게 됐습니다."
"읽으셨나요?"
"네. 부분 부분 읽었습니다."
"맨 마지막 페이지도 읽으셨나요?"
"아뇨."
"제가 10분쯤 있으면 별장에 도착합니다. 그 때까지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네."
전화를 끊고, 일기장의 맨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거기엔 무협작가라면 100번도 더 봤을 흔해빠진 스토리가 적혀 있었다. 전형적인 회귀물의 내용이었다. 내게 보내는 편지형식의 글이었다.
"경민씨. 이런 이야기를 믿을 사람이 없을 거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한 사람쯤에겐 제 진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요. 어쩌면 제일 이해를 해 줄 수 있을 사람 같기도 하고요. 전 한 번 죽었다가 다시 깨어난 사람입니다. 임사체험 같은 것이 아니고, 새로 태어났습니다. 전 전생에서 서른 다섯 정도까지의 삶을 살았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겠죠."
정말로 믿을 수 없었다. 믿기지 않는 일을 직접 다루는 무협기획을 하고 있지만, 무협이 흥미로운 건, 가상의 세계를 진짜처럼 다루기 때문이지, 실제의 일을 다루기 때문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 줄을 보는 순간 난 정말 굳어지고 말았다. 거기엔 더 놀라운 글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 전생에서 1982년 12월 27일에 창동에서 태어났죠. 신기하죠? 네 전생에서 전 이경민이라는 이름으로 서른 다섯해를 살았습니다. 한 여자를 좋아하다 결혼을 했고, 자식을 하나 두었는데, 교통사고로 그 둘을 잃고 자살을 했었습니다. 네 전 경민씨의 삶을 살았습니다. 무슨 개소리인가 싶겠지만, 제가 몇 가지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제 전생에서 가장 강렬한 기억 이야기를 해볼까요. 경민씨는 아니, 전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혼자 늦게까지 영어듣기 평가 준비를 하고 돌아가다가 여자 화장실에서 수학선생님이었던 정미경 선생님의 자위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거의 5분을 기다려서 선생님이 화장실을 나오는 장면을 봤는데, 그때 선생님이 추리닝 하의를 정리하다가 살짝 보지털을 본 적이 있죠. 도망치듯 나왔고 집에 도착하고서도 한동안 그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기억하시죠?"
소름이 돋았다. 난 그랬던 적이 있고, 평생 누구에게도 심지어는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할 때도 그 말을 입에 올린 적이 없다. 당시 학교엔 나 혼자만이 남아 있었고, 정미경 선생님께도 들키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아니고서야 누구도 그 일을 알 수 없다. 그것도 내가 중학교 때의 일이다.
"또 한가지를 말해볼까요? 당신은 아니 나는 말이죠. 도둑질을 한 적이 있어요. 그것도 교회의 헌금함에서요. 두 번이잔, 죄책감에 8년을 고민했고, 교회에 그 금액의 100배를 헌금했죠. 이제 믿겠어요? 난 당신이고, 당신은 나라는 것을요."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진섭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들은 정말로 내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일들이었다. 난 고등학교 때 진짜로 헌금함에 손을 댄 적이 있다. 이유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돈이 딱히 필요한 것도 아니었는데, 돈이 눈앞에 보이자 나도 모르게 훔쳤었다. 액수 자체는 크지 않아서 오천원 한 번과 만원 한 번이었는데, 돈을 훔친 이후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아 작년에 150만원을 헌금한 적이 있었다. 이런 건 나를 아무리 깊이 조사했다고 해도 알 수 없는 일들이다. 난 그제야 왜 내가 이진섭에게 그토록 끌렸는지 알 수 있었다. 어쟀거나 이진섭은 죽고 다시 살아났다고 해도 결국 나였던 것이다.
십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난 별장의 밖으로 나왔다. 테리우스가 그 때까지도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밖으로 나가려는 나를 보고 일찍 들어와를 외쳤다. 테리우스가 내게 끌렸던 것도 내가 자기 형과 맞는 부분이 있어서였을까?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소형차 한대가 서더니 비상등을 깜빡였다. 가까이 가서 봤더니, 이진섭이었다.
"반가워요."
"뭐죠?"
"혼란스럽겠지만, 만약 나였다면, 지금쯤 어느 정도는 수긍을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난 이성적인 사람이었지만, 편견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아, 궁금한 것을 말해줄까요? 경민씨가 누구랑 결혼했으냐면요. 오세인이랑 결혼을 하고서 딸을 하나 낳게 되죠. 이번 겨울에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거든요."
"지금 하고 싶은 말이 뭐죠? 왜 이제야 나를 찾아왔죠?"
"아뇨. 훨씬 더 전부터 알고 있었죠. 하지만, 말이에요. 난 이경민이기도 하지만, 이찬용씨의 아들인 이진섭이기도 했으니까요. 좀 더 다르게 살고 싶었죠. 두어번 찾아본 적도 있죠. 대강 지금 이때쯤 내가 뭘 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요. 거의 똑같이 흘러갔어요. 그리고 경민씨는 아니 전생에서의 난 거의 평탄한 삶을 살지 않았으니까요. 이진섭으로 사는 것도 만족하고 있었고, 해서 두 명의 인생을 그저 분리해서 살자라고 정해뒀었죠. 그런데, 내가 이뤄가는 삶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경민씨가 궁금해졌어요. 원래 나와의 접점은 없어야 하는데, 내 동생이랑 엮이면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됐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경민씨가 죽은 후의 내 삶은 어떻게 될까. 이제 겨우 4년이 남았거든요. 나는 온전할까.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좀 무섭더라고요. 이쪽은 이제 시작인데요. 이제 막 내 일을 시작하려는데, 내 과거가 죽어버리면 나는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거기에다 결혼을 말리고도 싶었거든요. 난 내 아내였던 세인이를 사랑했지만, 그건 속은 결혼이었어요."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다만, 나도 내 4년후가 궁금해졌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난 정말로 세인이를 다시 만나서 결혼하고, 자살했을까? 이진섭이 나를 태우고 도착한 곳은 작은 교회였다.
"여긴 말이죠. 아버지로부터 독립해서 새로 시작한 제 교회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를 이용해 일으켜 세웠던 교회를 발전시켜서 새로 일어날 수 있는 제 교회라는 게 맞다고 해야 하나. 진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었는데 말이죠."
"당신이 원하는 삶이 뭐죠?"
"내가 원하는 삶이요? 알고 있잖아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죠? 기본적으로 난 이경민이에요. 몇 십년을 더 살았대도 그건 변하는 게 없죠. 경민씨 경민씨가 원하는 삶이란 어떤 거죠? 꿈꾸던 일이 있었잖아요. 낙원을 만드는 일."
의심을 풀지 않고 있던, 내가 비로소 이진섭이라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믿게 됐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내 꿈은 빼앗긴 낙원을 만드는 것. 누군가 선물로 던져주는 구원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뜻이 하나가 되는 낙원을 만드는 거였다. 이진섭이 말을 이어갔다.
"새로 태어난 난 운이 좋은 편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아버지가 있었고, 적당한 상실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사는 강원도였고, 이 곳은 산으로 격리된 공간들이 많았어요. 난 사람도 땅도 재산도 모두 모아가고 있었죠. 거기에 내 많은 자식들까지요. 가족이 아니면 믿을 수 없는 게 낙원이니까요. 굳이 설명하지 않겠어요. 이경민씨 당신이 꿈꾸던 일을 내가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한 10년 정도면 난 대한민국 안에 온전한 내 영토를 만들 수 있었어요. 그런데, 당신이 나타난 거죠."
"이진섭이라는 사람이 서른 한살에 이경민 앞에 나타나는 건, 전생에서는 없었던 일인가요?"
"예리하네요. 없었던 일이죠. 그 이유에 대해 몹시 고민하고 있는데, 아직 답을 찾진 못했어요."
"내가 어떤 것을 하기 원하죠?"
"나와 함께 하는 건 어떨까요? 계획이 있어요. 나와 경민씨가 만들어가야 할 낙원의 땅은 두 명의 지도자가 필요하죠. 하나는 영적인 지도자. 모두가 원하는 성스런 사람. 하지만, 사회는 그렇게 존경받는 사람의 교화만으로 다스려지지 않아요. 나쁜 일들이 생기고 말죠. 분쟁도 생길 거예요. 그 모든 것들을 신의 아들로 살아갈 내가 조정할 수는 없어요. 정치적인 인물이 필요해요. 하지만, 속내를 아는 사람이어야 하죠. 거기에, 정의롭지 않은 인물도 될 수 없어요. 결론은 이경민씨면 좋겠다는 거에요. 경민씨의 속내를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어요. 그런 욕심이 있었잖아요. 경민씨는 낙원의 새주인이 되어야겠어요."
허황된 말이지만, 정말로 깊이 빠져들었다. 이진섭이 말하고 있는 낙원도, 낙원의 새주인도 모두 간절히 원해오던 일이었다. 이진섭이 말했다.
"다음 달에 강릉시장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날 거에요. 일단 그 자리부터 시작하죠. 이사를 하세요. 강릉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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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셨습니까?"
"네. 방금 보게 됐습니다."
"읽으셨나요?"
"네. 부분 부분 읽었습니다."
"맨 마지막 페이지도 읽으셨나요?"
"아뇨."
"제가 10분쯤 있으면 별장에 도착합니다. 그 때까지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네."
전화를 끊고, 일기장의 맨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거기엔 무협작가라면 100번도 더 봤을 흔해빠진 스토리가 적혀 있었다. 전형적인 회귀물의 내용이었다. 내게 보내는 편지형식의 글이었다.
"경민씨. 이런 이야기를 믿을 사람이 없을 거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한 사람쯤에겐 제 진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요. 어쩌면 제일 이해를 해 줄 수 있을 사람 같기도 하고요. 전 한 번 죽었다가 다시 깨어난 사람입니다. 임사체험 같은 것이 아니고, 새로 태어났습니다. 전 전생에서 서른 다섯 정도까지의 삶을 살았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겠죠."
정말로 믿을 수 없었다. 믿기지 않는 일을 직접 다루는 무협기획을 하고 있지만, 무협이 흥미로운 건, 가상의 세계를 진짜처럼 다루기 때문이지, 실제의 일을 다루기 때문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 줄을 보는 순간 난 정말 굳어지고 말았다. 거기엔 더 놀라운 글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 전생에서 1982년 12월 27일에 창동에서 태어났죠. 신기하죠? 네 전생에서 전 이경민이라는 이름으로 서른 다섯해를 살았습니다. 한 여자를 좋아하다 결혼을 했고, 자식을 하나 두었는데, 교통사고로 그 둘을 잃고 자살을 했었습니다. 네 전 경민씨의 삶을 살았습니다. 무슨 개소리인가 싶겠지만, 제가 몇 가지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제 전생에서 가장 강렬한 기억 이야기를 해볼까요. 경민씨는 아니, 전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혼자 늦게까지 영어듣기 평가 준비를 하고 돌아가다가 여자 화장실에서 수학선생님이었던 정미경 선생님의 자위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거의 5분을 기다려서 선생님이 화장실을 나오는 장면을 봤는데, 그때 선생님이 추리닝 하의를 정리하다가 살짝 보지털을 본 적이 있죠. 도망치듯 나왔고 집에 도착하고서도 한동안 그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기억하시죠?"
소름이 돋았다. 난 그랬던 적이 있고, 평생 누구에게도 심지어는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할 때도 그 말을 입에 올린 적이 없다. 당시 학교엔 나 혼자만이 남아 있었고, 정미경 선생님께도 들키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아니고서야 누구도 그 일을 알 수 없다. 그것도 내가 중학교 때의 일이다.
"또 한가지를 말해볼까요? 당신은 아니 나는 말이죠. 도둑질을 한 적이 있어요. 그것도 교회의 헌금함에서요. 두 번이잔, 죄책감에 8년을 고민했고, 교회에 그 금액의 100배를 헌금했죠. 이제 믿겠어요? 난 당신이고, 당신은 나라는 것을요."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진섭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들은 정말로 내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일들이었다. 난 고등학교 때 진짜로 헌금함에 손을 댄 적이 있다. 이유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돈이 딱히 필요한 것도 아니었는데, 돈이 눈앞에 보이자 나도 모르게 훔쳤었다. 액수 자체는 크지 않아서 오천원 한 번과 만원 한 번이었는데, 돈을 훔친 이후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아 작년에 150만원을 헌금한 적이 있었다. 이런 건 나를 아무리 깊이 조사했다고 해도 알 수 없는 일들이다. 난 그제야 왜 내가 이진섭에게 그토록 끌렸는지 알 수 있었다. 어쟀거나 이진섭은 죽고 다시 살아났다고 해도 결국 나였던 것이다.
십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난 별장의 밖으로 나왔다. 테리우스가 그 때까지도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밖으로 나가려는 나를 보고 일찍 들어와를 외쳤다. 테리우스가 내게 끌렸던 것도 내가 자기 형과 맞는 부분이 있어서였을까?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소형차 한대가 서더니 비상등을 깜빡였다. 가까이 가서 봤더니, 이진섭이었다.
"반가워요."
"뭐죠?"
"혼란스럽겠지만, 만약 나였다면, 지금쯤 어느 정도는 수긍을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난 이성적인 사람이었지만, 편견이 없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아, 궁금한 것을 말해줄까요? 경민씨가 누구랑 결혼했으냐면요. 오세인이랑 결혼을 하고서 딸을 하나 낳게 되죠. 이번 겨울에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거든요."
"지금 하고 싶은 말이 뭐죠? 왜 이제야 나를 찾아왔죠?"
"아뇨. 훨씬 더 전부터 알고 있었죠. 하지만, 말이에요. 난 이경민이기도 하지만, 이찬용씨의 아들인 이진섭이기도 했으니까요. 좀 더 다르게 살고 싶었죠. 두어번 찾아본 적도 있죠. 대강 지금 이때쯤 내가 뭘 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요. 거의 똑같이 흘러갔어요. 그리고 경민씨는 아니 전생에서의 난 거의 평탄한 삶을 살지 않았으니까요. 이진섭으로 사는 것도 만족하고 있었고, 해서 두 명의 인생을 그저 분리해서 살자라고 정해뒀었죠. 그런데, 내가 이뤄가는 삶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경민씨가 궁금해졌어요. 원래 나와의 접점은 없어야 하는데, 내 동생이랑 엮이면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됐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경민씨가 죽은 후의 내 삶은 어떻게 될까. 이제 겨우 4년이 남았거든요. 나는 온전할까.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좀 무섭더라고요. 이쪽은 이제 시작인데요. 이제 막 내 일을 시작하려는데, 내 과거가 죽어버리면 나는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죠. 거기에다 결혼을 말리고도 싶었거든요. 난 내 아내였던 세인이를 사랑했지만, 그건 속은 결혼이었어요."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다만, 나도 내 4년후가 궁금해졌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난 정말로 세인이를 다시 만나서 결혼하고, 자살했을까? 이진섭이 나를 태우고 도착한 곳은 작은 교회였다.
"여긴 말이죠. 아버지로부터 독립해서 새로 시작한 제 교회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를 이용해 일으켜 세웠던 교회를 발전시켜서 새로 일어날 수 있는 제 교회라는 게 맞다고 해야 하나. 진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었는데 말이죠."
"당신이 원하는 삶이 뭐죠?"
"내가 원하는 삶이요? 알고 있잖아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죠? 기본적으로 난 이경민이에요. 몇 십년을 더 살았대도 그건 변하는 게 없죠. 경민씨 경민씨가 원하는 삶이란 어떤 거죠? 꿈꾸던 일이 있었잖아요. 낙원을 만드는 일."
의심을 풀지 않고 있던, 내가 비로소 이진섭이라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믿게 됐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내 꿈은 빼앗긴 낙원을 만드는 것. 누군가 선물로 던져주는 구원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뜻이 하나가 되는 낙원을 만드는 거였다. 이진섭이 말을 이어갔다.
"새로 태어난 난 운이 좋은 편이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 아버지가 있었고, 적당한 상실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사는 강원도였고, 이 곳은 산으로 격리된 공간들이 많았어요. 난 사람도 땅도 재산도 모두 모아가고 있었죠. 거기에 내 많은 자식들까지요. 가족이 아니면 믿을 수 없는 게 낙원이니까요. 굳이 설명하지 않겠어요. 이경민씨 당신이 꿈꾸던 일을 내가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 시간이 조금만 흐르면, 한 10년 정도면 난 대한민국 안에 온전한 내 영토를 만들 수 있었어요. 그런데, 당신이 나타난 거죠."
"이진섭이라는 사람이 서른 한살에 이경민 앞에 나타나는 건, 전생에서는 없었던 일인가요?"
"예리하네요. 없었던 일이죠. 그 이유에 대해 몹시 고민하고 있는데, 아직 답을 찾진 못했어요."
"내가 어떤 것을 하기 원하죠?"
"나와 함께 하는 건 어떨까요? 계획이 있어요. 나와 경민씨가 만들어가야 할 낙원의 땅은 두 명의 지도자가 필요하죠. 하나는 영적인 지도자. 모두가 원하는 성스런 사람. 하지만, 사회는 그렇게 존경받는 사람의 교화만으로 다스려지지 않아요. 나쁜 일들이 생기고 말죠. 분쟁도 생길 거예요. 그 모든 것들을 신의 아들로 살아갈 내가 조정할 수는 없어요. 정치적인 인물이 필요해요. 하지만, 속내를 아는 사람이어야 하죠. 거기에, 정의롭지 않은 인물도 될 수 없어요. 결론은 이경민씨면 좋겠다는 거에요. 경민씨의 속내를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어요. 그런 욕심이 있었잖아요. 경민씨는 낙원의 새주인이 되어야겠어요."
허황된 말이지만, 정말로 깊이 빠져들었다. 이진섭이 말하고 있는 낙원도, 낙원의 새주인도 모두 간절히 원해오던 일이었다. 이진섭이 말했다.
"다음 달에 강릉시장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날 거에요. 일단 그 자리부터 시작하죠. 이사를 하세요. 강릉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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