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친애하는 아젠티양…….
잘 지내는지요?
한 여름의 뜨거운 태양도 밤낮으로 계속되는 행군도 그댈 향한 나의 그리움은 막지 못하는 듯 합니다. 지금 나는 달란트의 남부 에 누스(Eh Nuse)를 향해 마을을 벗어나 맥클레어 남작 령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다다라 있답니다. 아직 그 패악 무도한 트란실바니아의 군대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도 않고, 그 어디에서도 전쟁에 기운을 느낄 수 없기에 앞뒤로 무리를 호위하고 있는 왕실의 기마병들이 아니었다면 마치 마을 남자들이 한데 모여 사냥이라도 나가는 것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 입니다. 패터슨도 맥키언 주니어도 모두들 그런 기분이라고 합니다.
친애하는 아젠티양,
부디 제가 돌아갈 때까지 건강하십시요. 전 지금 전쟁보다는 그대로 인해 더욱 큰 걱정을 하게 됩니다. 평소엔 이러지 않았는데, 무의식중에 전쟁에 대한 부담감이 제 마음을 불편하게 하나 봅니다. 꼭 다시 돌아갈 테니 전쟁이 끝나면 말이라도 빌려 누구보다 더 빨리 그대에게 돌아갈 테니 그때는 나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어 주십시오.
참, 그리고 패터슨의 가족들에게도 맥키언 족장님께도 모두가 무사하다고 전해 주십시오.
그럼 다시 볼 때까지 안녕. -
"자, 이제 휴식 시간 끝이다! 오늘 해가 지기 전에 맥클레어 남작 령의 케이트론 시에 도착해야 한다! 모두 출발!"
징집 병들을 이끄는 기마병의 재촉 소리에 앤더슨은 지친 몸을 추스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징집 병들의 대열로 복귀했다.
"야, 야 앤더슨…….이거 너무 한다고 생각되지 않냐? 벌써 사흘째 잠도 재대로 못자고 말이야."
"그런 가아…….휴……."
"그런가가 아니라고! 이건 인권 무시라고. 요즘엔 노예들도 이런 식으론 안할걸? 그냥 확 토껴버릴까?"
"그러던 지이……."
대열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패터슨이 다가와 불평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붉은 머리 대장장이 라이안 아저씨의 아들인 패터슨은 그 우람한 덩치에 걸맞지 않게 너무나 수다스러운 성격의 소유자 이었다. 이런 성격으로 인하여 라이안 아저씨에게 매일매일 엄청난 구타를 당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고 사실 패터슨은 남자가 아니라 변종 드워프 처녀라는 추측도 난무했었다.
"엉? 앤더슨? 맥키? 우리 확 도망쳐 버릴래? 앙? 앙? 앤더슨 너도 급하잖아 지금~ 흐흐……."
"응? 급하다니?"
"아젠티 말이야. 아젠티~ 우리 아젠티 양은 밤마다 널 기다리며 눈물로 지세우고 있을걸?"
"어휴……."
앤더슨은 한숨을 푹 쉬고는 맥키언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맥키언은 마을 촌장님의 손자로 앤더슨, 패터슨과는 형제처럼 지내는 사이였고, 무척이나 과묵한 성격 때문에 동갑이었지만 맏형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맥키언은 사냥꾼으로서의 능력도 뛰어났고 훤칠한 키에 근육질의 몸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남색 머리에 거기다 왠만큼 준수한 외모를 가졌기 때문에 마을에선 최고의 인기남이었다.
"쳇, 내 평생 저 입에서 곰팡이 피는 놈이 부러울 때가 다 있네.…….패터슨 이놈 맥키한테 가봤다 본전도 못 뽑을 것 같으니까 나한테만 이 지랄이야, 젠장…….나도 지금부터 입 닫고 지내버릴까?"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 아버지가 말이지……."
"그냥 저놈의 입을 꿰매버리는 쪽이 더 빠르지 않을까?"
"크크큭…….그래서 말이야, 그 오크 놈을……."
방금 전만 해도 푸르기만 했던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휴. 내 팔자야……."
====================================================================
"와아~! 역시 도시는 다르다니까!"
패터슨의 영양가 없는 수다를 다 들어주는 동안 징집 병 대열은 어느덧 캐이트론 시에 당도하여 있었다.
"자~! 자~! 모두들 영지 수비대의 초소로 향한다!! 거기서 오늘 밤을 지내고 내일 아침 다시 국경지역으로 출발할 예정이니, 모두 대열을 벗어나지 말 것이다. 만약! 어기는 자가 있을시 엔! 엄벌에 처할 것이니, 모두들 주의 하도록~!"
사령관인 듯 한 기사의 말에 패터슨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쳇~! 우리가 뭐 정규군이라도 되는 줄 아나보지? 사흘 동안 죽도록 고생만 시켜놓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게 하남?"
"야, 패터슨 그만 좀 투덜거려라. 그리고 내일 아침에 출발한다는데 놀 시간이 어디 있냐?"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대도시까지 와놓고 그냥 가다니. 넌 아깝지도 않냐? 저 봐라 저 맥키 녀석도 아쉬워하는 눈치 아니냐?"
"맥키가 너냐? 어딜 봐서……."
앞서 걸어가고 있는 맥키언의 모습을 본 앤더슨은 그 뒷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러기엔 맥키언의 모습이 너무 들떠 보였기 때문이었다.
"흐흠…….그, 그건 맥키는 이 캐이트론 시엔 처음 와 봤잖아. 넌 몇 번이나 너희 아버지 따라 와본 곳 이고.그리고 맥키가 너처럼 징징 대냐? 너 허튼짓 하다 걸리면 정말 큰일 난다구!"
"야, 말이야 바른 말이지 솔직히 내가 몇 번 와봤다고 해서 그 악독한 오우거 아버지 때문에 재대로 구경이나 해본 줄 알아? 매번 도망치다가 걸려서 두들겨 맞기만 했다고~ 그리고 너도 그렇게 여유 부릴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패터슨의 눈이 가늘어지며 사뭇 사악한 미소가 입가에 지어졌다. 앤더슨은 그 모습에 순간 등줄기가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엉? 뭐, 뭐가……."
"너 아까 편. 지 쓰더라아~? 그거 우리 마을까지 배달 하.려.면~ 흐흐~ 그러지 말고 어서 밤에 빠져나갈 작전이나 짜는 게 어때?"
"윽……."
그날 밤,
"야. 앤디~ 일어나~ 모두 잔다고……."
선잠을 자던 앤더슨은 누군가 자신의 아명(兒名)을 부르는 소리에 퍼뜩 잠에서 깨어났다.
"아. 패터슨."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패터슨 이였다. 자다 깬 앤더슨은 저놈이 기어이 일을 저지르는 구나하고 다시 한 번 가슴을 졸였지만, 어찌하랴 약자의 설움인 것을…….
"쉿~! 모두들 잔다구~ 밖에 보초도 없고. 흐흐. 어서 나가자~"
"그, 그래……."
앤더슨은 패터슨의 재촉에 몸을 일으켰다. 이미 밤은 깊고 초소 내에는 조그만 불빛 하나 없었기에 옆에서 자고 있는 사람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앤더슨은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자, 이제 어디로 가지?"
각고의 노력(?) 끝에 초소를 무사히 빠져나온 앤더슨, 패터슨, 맥키언은 들뜬 가슴을 진정 시키고 어디부터 가야할지를 정하려 했다.
"선술집으로 가자~!"
"야, 패터슨, 무슨 소리야! 물론 여행자 길드부터 가야지. 오늘 이렇게 빠져나온 이유도 편지 때문인데……."
"아, 그렇구나.…….그럼 여행자 길드부터 갈까?"
"편지 같은 건 언제라도 기사들한테 말하면 모아두었다가 전령들에게 시켜 가까운 마을에 전해준다고 하던데…….몰랐냐?"
여행자의 길드로 발길을 돌리려던 앤더슨은 맥키언의 나지막한 말에 인간을 돌로 만든다는 플레쉬 투 스톤(flesh to stone)이란 마법이라도 걸린 듯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패.터.스.은~~"
"하하.하….난 몰랐어……."
피식피식 허망한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보는 앤더슨의 모습에 패터슨은 생전 처음 살기(殺氣)라는 것을 느끼곤 비실비실 뒷걸음질 쳤다.
"이러다 날 세겠다. 작작 좀 하라고 둘 다…….슬라임 같은 놈들……."
====================================================================
이미 밤이란 말보다 새벽이란 단어가 어울릴 만한 시간대 이었지만 도심의 번화가는 활기가 넘쳤다. 아옹다옹하던 앤더슨 일행도 이 번화가에 들어서자 주위를 두리번거리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한참을 관광 아닌 관광(?)을 하던 일행이 들어선 곳은 "미키의 흑맥주"라는 이름의 선술집 이였다.
미키의 흑맥주
흑맥주가 유명한 곳인지 미키라는 여 주인이 유명한 곳인지 분간이 안가는 이름이었지만…솔직히 말하자면 흑맥주 보다는 여주인의 큰 가슴이 더 기억에 남을 법한 선술집이었다. G컵은 될 법한 가슴을 쫙 달라붙는 옷을 입은 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에 선술집을 찾은 손님들의 술잔은 하나 둘 늘어나고 있었다.
"하여튼 패터슨 니 수다에 속은 내가 바보다……."
"헤헷. 그래도 좋잖냐~ 맥주도 실컷 마시고~ 우리 아버지가 있잖아……."
언제 어느 때고 어김없이 패터슨의 수다는 시작 되었다. 선술집 안은 꽤 넓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에 따라 패터슨의 목청도 점점 커지고 있었고, 그 소리에 일일이 대꾸 해줘야만 하는 앤더슨의 고통도 점점 가중 되어 갔다.
"…….그랬단 말씀이야. 킥킥킥……."
"아하…….그~으러셔어~~"
벌써 여러 번 듣고 또 들은 얘기였다. 이야기인 즉은, 패터슨과 패터슨의 아버지가 철광석을 사러 이 도시에 들렀다가 패터슨이 소지금을 모두 잃어버리는 바람에 죽도록 맞았다는 이야기 이었다. 별 쓰잘대기 없는 이야길 뼈와 살을 붙여서 떠들다니, 그 재주에 감복할 따름 이었다. 물론 진심은 아니지만.
-와하하핫!!!-
====================================================================
-와하하핫!!-
"이야기 한번 감질나게 하는구먼, 형씨. 하하핫!"
패터슨의 목소리가 컸던 탓이었을까? 어느새 술집 안 모든 사람들의 이목은 패터슨에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사내가 다가와 패터슨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크크큭. 이 친구 덩치는 오거 뺨 칠만한데 이야기 솜씨는 거리의 음유시인 못지 않는구나! 하하핫"
"쳇, 덩치로 치면 아저씨는 할 말 없는 거 아닌가요?"
"뭐, 뭣?"
패터슨을 놀리려던 사내는 퉁명스런 패터슨의 대꾸에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사내의 몸집은 그리 자랑할 만한 게 되지 못했다. 드워프라고 해도 믿을만한 작은 키에 비썩 마르기까지 해서 꼭 성냥개비를 연상하게 하는 듯 한 몸매였기 때문이었다.
-와하하핫!!-
"완전 한방 먹었구먼!!"
"킥킥. 버넷, 그냥 얌전히 술이나 처먹으라고~"
장 내는 다시 한 번 폭소가 터졌다. 사람들의 웃음의 대상이 되던 버넷이라는 사내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졌고 눈치 없는 패터슨을 제외한 앤더슨과 맥키언은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야, 맥키. 아무래도 도망쳐야 되겠지?"
"으음. 여기서 소동을 일으키면 우린 영락없이 걸린다고 봐야겠지……."
앤더슨과 맥키언은 재빨리 튈 준비를 하였다. 패터슨과 함께 다니 단 필시 누군가에게 맞아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둘의 뇌리를 스쳤다.
"푸하하핫~~! 이제껏 이 크레이지 헤머 버넷님께 그런 말을 한 놈은 없었는데, 이 친구 정말 마음에 드는군~! 크하하핫! 자자, 마시게나. 오늘 이 버넷님께서 한턱 낼 테니까 맘껏 마시게나~!"
세상에는 별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걔 중에는 맞으면서 쾌락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때리면서 오르가즘에 도달하는 사람도 있단다. 놀림을 받으면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던가? 앤더슨과 맥키언이 몸을 반쯤 일으켰을 때 즈음 멍해 있던 버넷이란 사내가 장내가 떠나갈 듯 한 웃음을 터트렸다.
"헤헤헷, 아저씨 몸집에 비해 배포는 무지 크시네요~"
-크하하하핫!!-
이게 어떻게 되어가는 일인지 앤더슨과 맥키언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저 큰 소동은 일어나지 않는 듯해서 안심할 뿐이었다.
- 친애하는 아젠티양…….
잘 지내는지요?
한 여름의 뜨거운 태양도 밤낮으로 계속되는 행군도 그댈 향한 나의 그리움은 막지 못하는 듯 합니다. 지금 나는 달란트의 남부 에 누스(Eh Nuse)를 향해 마을을 벗어나 맥클레어 남작 령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다다라 있답니다. 아직 그 패악 무도한 트란실바니아의 군대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도 않고, 그 어디에서도 전쟁에 기운을 느낄 수 없기에 앞뒤로 무리를 호위하고 있는 왕실의 기마병들이 아니었다면 마치 마을 남자들이 한데 모여 사냥이라도 나가는 것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 입니다. 패터슨도 맥키언 주니어도 모두들 그런 기분이라고 합니다.
친애하는 아젠티양,
부디 제가 돌아갈 때까지 건강하십시요. 전 지금 전쟁보다는 그대로 인해 더욱 큰 걱정을 하게 됩니다. 평소엔 이러지 않았는데, 무의식중에 전쟁에 대한 부담감이 제 마음을 불편하게 하나 봅니다. 꼭 다시 돌아갈 테니 전쟁이 끝나면 말이라도 빌려 누구보다 더 빨리 그대에게 돌아갈 테니 그때는 나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어 주십시오.
참, 그리고 패터슨의 가족들에게도 맥키언 족장님께도 모두가 무사하다고 전해 주십시오.
그럼 다시 볼 때까지 안녕. -
"자, 이제 휴식 시간 끝이다! 오늘 해가 지기 전에 맥클레어 남작 령의 케이트론 시에 도착해야 한다! 모두 출발!"
징집 병들을 이끄는 기마병의 재촉 소리에 앤더슨은 지친 몸을 추스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징집 병들의 대열로 복귀했다.
"야, 야 앤더슨…….이거 너무 한다고 생각되지 않냐? 벌써 사흘째 잠도 재대로 못자고 말이야."
"그런 가아…….휴……."
"그런가가 아니라고! 이건 인권 무시라고. 요즘엔 노예들도 이런 식으론 안할걸? 그냥 확 토껴버릴까?"
"그러던 지이……."
대열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패터슨이 다가와 불평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붉은 머리 대장장이 라이안 아저씨의 아들인 패터슨은 그 우람한 덩치에 걸맞지 않게 너무나 수다스러운 성격의 소유자 이었다. 이런 성격으로 인하여 라이안 아저씨에게 매일매일 엄청난 구타를 당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고 사실 패터슨은 남자가 아니라 변종 드워프 처녀라는 추측도 난무했었다.
"엉? 앤더슨? 맥키? 우리 확 도망쳐 버릴래? 앙? 앙? 앤더슨 너도 급하잖아 지금~ 흐흐……."
"응? 급하다니?"
"아젠티 말이야. 아젠티~ 우리 아젠티 양은 밤마다 널 기다리며 눈물로 지세우고 있을걸?"
"어휴……."
앤더슨은 한숨을 푹 쉬고는 맥키언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맥키언은 마을 촌장님의 손자로 앤더슨, 패터슨과는 형제처럼 지내는 사이였고, 무척이나 과묵한 성격 때문에 동갑이었지만 맏형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리고 맥키언은 사냥꾼으로서의 능력도 뛰어났고 훤칠한 키에 근육질의 몸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남색 머리에 거기다 왠만큼 준수한 외모를 가졌기 때문에 마을에선 최고의 인기남이었다.
"쳇, 내 평생 저 입에서 곰팡이 피는 놈이 부러울 때가 다 있네.…….패터슨 이놈 맥키한테 가봤다 본전도 못 뽑을 것 같으니까 나한테만 이 지랄이야, 젠장…….나도 지금부터 입 닫고 지내버릴까?"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 아버지가 말이지……."
"그냥 저놈의 입을 꿰매버리는 쪽이 더 빠르지 않을까?"
"크크큭…….그래서 말이야, 그 오크 놈을……."
방금 전만 해도 푸르기만 했던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휴. 내 팔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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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 역시 도시는 다르다니까!"
패터슨의 영양가 없는 수다를 다 들어주는 동안 징집 병 대열은 어느덧 캐이트론 시에 당도하여 있었다.
"자~! 자~! 모두들 영지 수비대의 초소로 향한다!! 거기서 오늘 밤을 지내고 내일 아침 다시 국경지역으로 출발할 예정이니, 모두 대열을 벗어나지 말 것이다. 만약! 어기는 자가 있을시 엔! 엄벌에 처할 것이니, 모두들 주의 하도록~!"
사령관인 듯 한 기사의 말에 패터슨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쳇~! 우리가 뭐 정규군이라도 되는 줄 아나보지? 사흘 동안 죽도록 고생만 시켜놓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게 하남?"
"야, 패터슨 그만 좀 투덜거려라. 그리고 내일 아침에 출발한다는데 놀 시간이 어디 있냐?"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대도시까지 와놓고 그냥 가다니. 넌 아깝지도 않냐? 저 봐라 저 맥키 녀석도 아쉬워하는 눈치 아니냐?"
"맥키가 너냐? 어딜 봐서……."
앞서 걸어가고 있는 맥키언의 모습을 본 앤더슨은 그 뒷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러기엔 맥키언의 모습이 너무 들떠 보였기 때문이었다.
"흐흠…….그, 그건 맥키는 이 캐이트론 시엔 처음 와 봤잖아. 넌 몇 번이나 너희 아버지 따라 와본 곳 이고.그리고 맥키가 너처럼 징징 대냐? 너 허튼짓 하다 걸리면 정말 큰일 난다구!"
"야, 말이야 바른 말이지 솔직히 내가 몇 번 와봤다고 해서 그 악독한 오우거 아버지 때문에 재대로 구경이나 해본 줄 알아? 매번 도망치다가 걸려서 두들겨 맞기만 했다고~ 그리고 너도 그렇게 여유 부릴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패터슨의 눈이 가늘어지며 사뭇 사악한 미소가 입가에 지어졌다. 앤더슨은 그 모습에 순간 등줄기가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엉? 뭐, 뭐가……."
"너 아까 편. 지 쓰더라아~? 그거 우리 마을까지 배달 하.려.면~ 흐흐~ 그러지 말고 어서 밤에 빠져나갈 작전이나 짜는 게 어때?"
"윽……."
그날 밤,
"야. 앤디~ 일어나~ 모두 잔다고……."
선잠을 자던 앤더슨은 누군가 자신의 아명(兒名)을 부르는 소리에 퍼뜩 잠에서 깨어났다.
"아. 패터슨."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패터슨 이였다. 자다 깬 앤더슨은 저놈이 기어이 일을 저지르는 구나하고 다시 한 번 가슴을 졸였지만, 어찌하랴 약자의 설움인 것을…….
"쉿~! 모두들 잔다구~ 밖에 보초도 없고. 흐흐. 어서 나가자~"
"그, 그래……."
앤더슨은 패터슨의 재촉에 몸을 일으켰다. 이미 밤은 깊고 초소 내에는 조그만 불빛 하나 없었기에 옆에서 자고 있는 사람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앤더슨은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자, 이제 어디로 가지?"
각고의 노력(?) 끝에 초소를 무사히 빠져나온 앤더슨, 패터슨, 맥키언은 들뜬 가슴을 진정 시키고 어디부터 가야할지를 정하려 했다.
"선술집으로 가자~!"
"야, 패터슨, 무슨 소리야! 물론 여행자 길드부터 가야지. 오늘 이렇게 빠져나온 이유도 편지 때문인데……."
"아, 그렇구나.…….그럼 여행자 길드부터 갈까?"
"편지 같은 건 언제라도 기사들한테 말하면 모아두었다가 전령들에게 시켜 가까운 마을에 전해준다고 하던데…….몰랐냐?"
여행자의 길드로 발길을 돌리려던 앤더슨은 맥키언의 나지막한 말에 인간을 돌로 만든다는 플레쉬 투 스톤(flesh to stone)이란 마법이라도 걸린 듯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패.터.스.은~~"
"하하.하….난 몰랐어……."
피식피식 허망한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보는 앤더슨의 모습에 패터슨은 생전 처음 살기(殺氣)라는 것을 느끼곤 비실비실 뒷걸음질 쳤다.
"이러다 날 세겠다. 작작 좀 하라고 둘 다…….슬라임 같은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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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밤이란 말보다 새벽이란 단어가 어울릴 만한 시간대 이었지만 도심의 번화가는 활기가 넘쳤다. 아옹다옹하던 앤더슨 일행도 이 번화가에 들어서자 주위를 두리번거리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한참을 관광 아닌 관광(?)을 하던 일행이 들어선 곳은 "미키의 흑맥주"라는 이름의 선술집 이였다.
미키의 흑맥주
흑맥주가 유명한 곳인지 미키라는 여 주인이 유명한 곳인지 분간이 안가는 이름이었지만…솔직히 말하자면 흑맥주 보다는 여주인의 큰 가슴이 더 기억에 남을 법한 선술집이었다. G컵은 될 법한 가슴을 쫙 달라붙는 옷을 입은 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에 선술집을 찾은 손님들의 술잔은 하나 둘 늘어나고 있었다.
"하여튼 패터슨 니 수다에 속은 내가 바보다……."
"헤헷. 그래도 좋잖냐~ 맥주도 실컷 마시고~ 우리 아버지가 있잖아……."
언제 어느 때고 어김없이 패터슨의 수다는 시작 되었다. 선술집 안은 꽤 넓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에 따라 패터슨의 목청도 점점 커지고 있었고, 그 소리에 일일이 대꾸 해줘야만 하는 앤더슨의 고통도 점점 가중 되어 갔다.
"…….그랬단 말씀이야. 킥킥킥……."
"아하…….그~으러셔어~~"
벌써 여러 번 듣고 또 들은 얘기였다. 이야기인 즉은, 패터슨과 패터슨의 아버지가 철광석을 사러 이 도시에 들렀다가 패터슨이 소지금을 모두 잃어버리는 바람에 죽도록 맞았다는 이야기 이었다. 별 쓰잘대기 없는 이야길 뼈와 살을 붙여서 떠들다니, 그 재주에 감복할 따름 이었다. 물론 진심은 아니지만.
-와하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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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하하핫!!-
"이야기 한번 감질나게 하는구먼, 형씨. 하하핫!"
패터슨의 목소리가 컸던 탓이었을까? 어느새 술집 안 모든 사람들의 이목은 패터슨에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사내가 다가와 패터슨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크크큭. 이 친구 덩치는 오거 뺨 칠만한데 이야기 솜씨는 거리의 음유시인 못지 않는구나! 하하핫"
"쳇, 덩치로 치면 아저씨는 할 말 없는 거 아닌가요?"
"뭐, 뭣?"
패터슨을 놀리려던 사내는 퉁명스런 패터슨의 대꾸에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사내의 몸집은 그리 자랑할 만한 게 되지 못했다. 드워프라고 해도 믿을만한 작은 키에 비썩 마르기까지 해서 꼭 성냥개비를 연상하게 하는 듯 한 몸매였기 때문이었다.
-와하하핫!!-
"완전 한방 먹었구먼!!"
"킥킥. 버넷, 그냥 얌전히 술이나 처먹으라고~"
장 내는 다시 한 번 폭소가 터졌다. 사람들의 웃음의 대상이 되던 버넷이라는 사내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졌고 눈치 없는 패터슨을 제외한 앤더슨과 맥키언은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야, 맥키. 아무래도 도망쳐야 되겠지?"
"으음. 여기서 소동을 일으키면 우린 영락없이 걸린다고 봐야겠지……."
앤더슨과 맥키언은 재빨리 튈 준비를 하였다. 패터슨과 함께 다니 단 필시 누군가에게 맞아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둘의 뇌리를 스쳤다.
"푸하하핫~~! 이제껏 이 크레이지 헤머 버넷님께 그런 말을 한 놈은 없었는데, 이 친구 정말 마음에 드는군~! 크하하핫! 자자, 마시게나. 오늘 이 버넷님께서 한턱 낼 테니까 맘껏 마시게나~!"
세상에는 별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걔 중에는 맞으면서 쾌락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때리면서 오르가즘에 도달하는 사람도 있단다. 놀림을 받으면서 쾌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던가? 앤더슨과 맥키언이 몸을 반쯤 일으켰을 때 즈음 멍해 있던 버넷이란 사내가 장내가 떠나갈 듯 한 웃음을 터트렸다.
"헤헤헷, 아저씨 몸집에 비해 배포는 무지 크시네요~"
-크하하하핫!!-
이게 어떻게 되어가는 일인지 앤더슨과 맥키언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저 큰 소동은 일어나지 않는 듯해서 안심할 뿐이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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