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저 것은.. 레오나드님 괜찮으십니까?"
레오나드가 남긴 표시를 보고 따라온 본대의 기사들이었다.
"치료사, 치료사 따라왔나?"
레오나드는 급했다. 오우거의 시체를 보고 신기해하는 기사들의 공치사에는 말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아이리를 조심스럽게 옮겼다.
같이 험한 모험을 할 때는 몰랐다.
하지만 위태로워 보이는 아이리의 모습을 보자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레오나드의 눈에 눈물이 어렸다.
"그레이, 나와 아이리는 본가로 귀환한다."
이런 오지에 오우거와 같은 상위몬스터가 출현할 이유가 없었다. 거기에다가 이야기에나 나오던 엘프까지 등장하였다.
더 깊게 조사할 필요가 있지만 아이리의 부상은 레오나드에게 여유를 사라지게 하였다.
"그레이, 이 근처 산맥 조사를 해주길 바란다. "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나드는 본대의 기사들에게 서류양식을 받아 그레이에게 바로 의뢰서를 작성해 주었다. 가문의 직인이 찍혔기에 레오나드 가문의 힘이 작용하는 곳이라면 신분을 증명하는 효과와 소액의 여행경비를 탈 수 있다.
또한 영주관 쪽으로 보고를 위한 편지를 보낼 때도 이 의뢰서를 보여주면 우선순위로 빠르게 배달될 것이다.
더 이상 폐허가 되는 마을은 없었다.
그리고 영지안에 "오우거 슬레이어 레오나드"라는 이름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레오나드는 웃지 않았다. 아니 웃음을 잃어버렸다.
여유 있던 표정은 사라졌다. 끊임없이 자신을 학대하듯 수련에 몰두하는 레오나드이었다.
아이리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신관이 와서 꾸준히 치료하면 점차 나아질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조금 안심하는 레오나드이었다.
"헉헉..헉"
레오나드는 수건을 들어 땀을 닦아내었다. 자신이 오우거에게 맞서서 한순간만이라도 버틸 수 있었다면 아이리의 부상 없이 후퇴할 수 있지 않았을 까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건 레오나드도 알고 있다. 하지만 한순간도 제대로 버티지 못한 것을 자책하는 것이었다.
오우거는 기사 한두 명이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대형석궁을 장비한 궁병대와 랜스돌격이 가능한 기사단으로 상대 해야 할 몬스터이었다.
"레오나드님 영주님께서 오시랍니다."
수련실에서 땀을 흘리고 있던 레오나드에게 하인이 찾아와 이야기를 전했다.
"무슨 일인데?"
"손님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응접실에 못 보던 얼굴이 있었다. 긴 로브을 입은 30대로 보이는 단정함이 돋보이는 여인이었다.
"인사해라, 메리엘 학파의 고위마법사 시르님이시다."
영주 로그너의 소개에 레오나드는 머리 숙여 인사를 했다. 로그너의 옆에는 장자 레이너도 와 있었다.
그만큼 오우거 등장은 중요한 사건이었다. 유사한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확신이 없었다. 그렇기에 조언을 위해서 마법사를 초대한 것이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다. 영주관으로 가지고 온 오우거의 시체는 각 부위 하나하나가 마법의 재료가 되는 비싼 것이었다.
제대로 된 처리를 위해서 마법을 아는 사람이 필요했다.
물론 마법사 시르도 초대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시체만으로도 연구할 가치가 있었다.
오랜 시간 회의가 계속되었다.
오우거의 출현에 대한 의문,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 시체의 처리 비용 문제, 마법 재료로서 판매할 것인가 ,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때 마법사로서 지원해줄 수 있는지에 관련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으흠, 저 하녀는?"
귀족손님을 위한 방으로 가던 시르는 안내하는 하녀에게 맞은 편으로 지나가던 소녀의 정체를 물었다.
하녀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영주관의 정식하녀랑은 복식이 약간 달랐다.
"유리안느님의 개인 하녀, 시엘입니다. 유리안느님은 가르린 영지에서 망명 오신 분이십니다."
안내하던 하녀는 공손하게 마법사의 질문에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시엘입니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었기에 한발 다가가 인사를 하였다. 그러면서도 마법사가 자신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고 두렵게도 한 시엘이었다.
"혹시, 마법을 배운 적이 있나? "
질문과 함께 시르의 몸에서 기묘한 기운이 미세하게 피어올랐다. 시엘의 몸이 흠칫 떨리면서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시르와 바로 옆에 붙어있던 하녀는 아무것도 못 느낀 듯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전혀 배운 적이 없습니다. 여기 영지에 오기 전에도 하녀일을 했습니다."
기묘한 압박감에 겁을 먹은 시엘이었다.
"개인 하녀라, 일단 유리안느라는 분을 만나봐야겠군."
시르는 자신의 숙소가 아니라 유리안느를 시엘과 함께 찾아갔다.
그리고는 시엘이 마법사로서의 재능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마법사가 필요한 것은 학문적인 재능과 감각적인 것 둘 다 이었다. 학문적인 것은 시간과 노력으로 되지만 감각적인 것은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시르는 시엘이 체계적인 훈련을 통한 마나를 모운 것은 아니지만 몸의 통로가 상당히 열려 있어 마법을 익히기에 적합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은 10살 넘어가면 발견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시엘처럼 나이가 들어서도 마나에 친숙한 경우는 드물었다.
시르는 유리안느에게 제자로 키워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유리안느는 상당히 놀랐다. 보통 돈을 들고 찾아가도 마법사의 제자가 되는 것은 힘들었다.
그런데 마법사가 먼저 제자로 키워보고 싶다고 요청할 정도라면 상당한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이었다.
하긴 유리안느도 가끔 시엘이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을 느끼긴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레이와 사랑을 하기에 예뻐지는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유리안느는 오히려 자신이 부탁하고 싶을 정도이었다. 자신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자신은 귀족의 이름만 있는 재산 하나 없는 식객일 뿐이었다.
로이트란의 기사로서의 급여와 시엘의 급여 역시 영주관에서 대신 지급해주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법사가 생긴다는 것은 상당한 힘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시엘을 위해서도 좋았다. 힘없는 귀족의 개인하녀와 낮은 단계의 마법사는 신분 자체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마법을 익히면 출신이 무엇이든지 간에 귀족보다는 못하겠지만 평민보다는 나은 대접을 받았다. 아마 시엘이 마법사가 된다면 말뿐인 귀족인 자신보다 더 높은 대접을 받을 것이다.
"저는 좋습니다. 하지만 그레이와의 약속이..."
시엘은 남은 말을 마저 하지 못하고 시선을 유리안느에게 던졌다.
일 년간 그레이와 밤을 함께하기로 한 약속이 생각난 것이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시엘은 신경쓰지마."
유리안느는 결심을 한 표정으로 시엘을 안심시켰다.
유리안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내심 답답하였다. 믿을 만한 사람이 큰 힘을 가지게 되는 데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탈출구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라면 기회를 잡아야 했다.
어차피 정략결혼으로 팔려갈지도 모르는 순결이었다. 거기에다가 지금 영주 로그너와 자신은 알고 지내던 사이가 아니기에 운이 나쁘면 본처가 아니라 늙은 귀족의 첩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유리안느는 자신의 결심을 굳혔다.
그레이가 시엘의 몸을 찾아 따지면 자신이 대신하겠다는 결심이었다.
귀족으로서의 품위는 망해가는귀족에게는 족쇄일 뿐이었다. 그레이가 귀족이 아니라서 자신과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한쪽 구석으로 밀어넣었다.
어쩌면 시엘이 재능을 나타나게 된 이유가 그레이 때문이 아닐지 추측하는 유리안느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레이와 만남과 시엘의 분위기가 변한 것은 시기가 같았다.
유리안느는 자신을 만져주던 따듯했던 손길이 그리워서 그런 결심을 한 것은 아니라고 마음속으로 변명할 뿐이었다.
어쩌면 점점 표정이 굳어져가는 자신과는 다르게 하루하루가 행복해 보이는 시엘이 부러워서 일지도 몰랐다.
비오릭 산맥 아래 희생된 마을에서는 기사들과 병사들의 작업이 한창이었다.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사람들의 시체를 묻었다. 피가 튀고 오염이 심하게 된 집은 아예 불태워 버렸다. 그대로 두면 질병이 발생해서 커다란 혼란이 야기될 수 있었다.
돈이 될 만한 것은 모두 다른 마을로 옮겼다.
생존자가 있어서 마을로 돌아온다면 물건을 반납받을 수 있을 것이다.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물품은 영지의 소유가 될 것이다.
그러한 기사들과 병사들과는 별개로 그레이는 마을을 조사했다.
그레이는 희생자의 마을 바깥쪽에서 또 다른 시체를 발견하였다.
"으흠,"
대충 시체의 모습을 눈으로 살피던 그레이는 의아함을 느끼고 다시 시체를 자세히 뒤졌다.
죽은 원인이 오우거에 당한 것이 아니었다. 오우거가 엘프에게 당한 상처처럼 깔끔한 검상이었다. 상처도 급소에 하나뿐이었다. 한번의 칼질로 사망한 시체이었다.
그레이는 죽은 남자의 소지품을 뒤졌다.
약간의 돈과 응급치료약이 나왔다. 응급치료약을 들고 다닌다는 것은 이 마을 사람이 아니거나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이었다.
"가레이든 지역?"
두장의 지도가 나왔다.
하나는 비오릭 산맥의 지역, 희생된 마을 근처 산맥의 지도이었다. 또 한장은 멀리 떨어진는 가레이든 지역이었다.
말이 다닐 수 있는 평탄한 길로 가면 상당히 돌아가야 하는 길이었다. 그레이는 산맥을 타고 넘어가기로 생각을 굳혔다.
그레이는 엘프에게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자의 물건을 커다란 보자기에 단단히 묶었다.
"병사님, 여기 좀 와 보시겠습니까?"
그레이는 현장 정리를 하고 있던 병사들을 불렀다. 레오나드가 그레이에게 임무를 맡기는 모습을 보았던 병사들은 고개를 끄덕이곤 다가왔다.
"여기 이자의 소지품을 레오나드님께 가져다 주셨으면 합니다. "
그레이는 간단한 보고서도 같이 첨가해서 보냈다.
병사는 이 소지품과 보고서를 자신의 상관에게 보고할 것이고 곧 레오나드에게 전달될 것이다.
그레이는 본대의 병사들에게 여행용품을 몇 개 충원하고는 가레이든 지역으로 가기 위해서 산맥 안쪽으로 걸어갔다.
레오나드가 남긴 표시를 보고 따라온 본대의 기사들이었다.
"치료사, 치료사 따라왔나?"
레오나드는 급했다. 오우거의 시체를 보고 신기해하는 기사들의 공치사에는 말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아이리를 조심스럽게 옮겼다.
같이 험한 모험을 할 때는 몰랐다.
하지만 위태로워 보이는 아이리의 모습을 보자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레오나드의 눈에 눈물이 어렸다.
"그레이, 나와 아이리는 본가로 귀환한다."
이런 오지에 오우거와 같은 상위몬스터가 출현할 이유가 없었다. 거기에다가 이야기에나 나오던 엘프까지 등장하였다.
더 깊게 조사할 필요가 있지만 아이리의 부상은 레오나드에게 여유를 사라지게 하였다.
"그레이, 이 근처 산맥 조사를 해주길 바란다. "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나드는 본대의 기사들에게 서류양식을 받아 그레이에게 바로 의뢰서를 작성해 주었다. 가문의 직인이 찍혔기에 레오나드 가문의 힘이 작용하는 곳이라면 신분을 증명하는 효과와 소액의 여행경비를 탈 수 있다.
또한 영주관 쪽으로 보고를 위한 편지를 보낼 때도 이 의뢰서를 보여주면 우선순위로 빠르게 배달될 것이다.
더 이상 폐허가 되는 마을은 없었다.
그리고 영지안에 "오우거 슬레이어 레오나드"라는 이름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레오나드는 웃지 않았다. 아니 웃음을 잃어버렸다.
여유 있던 표정은 사라졌다. 끊임없이 자신을 학대하듯 수련에 몰두하는 레오나드이었다.
아이리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신관이 와서 꾸준히 치료하면 점차 나아질 것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조금 안심하는 레오나드이었다.
"헉헉..헉"
레오나드는 수건을 들어 땀을 닦아내었다. 자신이 오우거에게 맞서서 한순간만이라도 버틸 수 있었다면 아이리의 부상 없이 후퇴할 수 있지 않았을 까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건 레오나드도 알고 있다. 하지만 한순간도 제대로 버티지 못한 것을 자책하는 것이었다.
오우거는 기사 한두 명이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대형석궁을 장비한 궁병대와 랜스돌격이 가능한 기사단으로 상대 해야 할 몬스터이었다.
"레오나드님 영주님께서 오시랍니다."
수련실에서 땀을 흘리고 있던 레오나드에게 하인이 찾아와 이야기를 전했다.
"무슨 일인데?"
"손님이 찾아온 것 같습니다."
응접실에 못 보던 얼굴이 있었다. 긴 로브을 입은 30대로 보이는 단정함이 돋보이는 여인이었다.
"인사해라, 메리엘 학파의 고위마법사 시르님이시다."
영주 로그너의 소개에 레오나드는 머리 숙여 인사를 했다. 로그너의 옆에는 장자 레이너도 와 있었다.
그만큼 오우거 등장은 중요한 사건이었다. 유사한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확신이 없었다. 그렇기에 조언을 위해서 마법사를 초대한 것이었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다. 영주관으로 가지고 온 오우거의 시체는 각 부위 하나하나가 마법의 재료가 되는 비싼 것이었다.
제대로 된 처리를 위해서 마법을 아는 사람이 필요했다.
물론 마법사 시르도 초대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시체만으로도 연구할 가치가 있었다.
오랜 시간 회의가 계속되었다.
오우거의 출현에 대한 의문,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 시체의 처리 비용 문제, 마법 재료로서 판매할 것인가 ,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때 마법사로서 지원해줄 수 있는지에 관련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으흠, 저 하녀는?"
귀족손님을 위한 방으로 가던 시르는 안내하는 하녀에게 맞은 편으로 지나가던 소녀의 정체를 물었다.
하녀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영주관의 정식하녀랑은 복식이 약간 달랐다.
"유리안느님의 개인 하녀, 시엘입니다. 유리안느님은 가르린 영지에서 망명 오신 분이십니다."
안내하던 하녀는 공손하게 마법사의 질문에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시엘입니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었기에 한발 다가가 인사를 하였다. 그러면서도 마법사가 자신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이상하기도 하고 두렵게도 한 시엘이었다.
"혹시, 마법을 배운 적이 있나? "
질문과 함께 시르의 몸에서 기묘한 기운이 미세하게 피어올랐다. 시엘의 몸이 흠칫 떨리면서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시르와 바로 옆에 붙어있던 하녀는 아무것도 못 느낀 듯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전혀 배운 적이 없습니다. 여기 영지에 오기 전에도 하녀일을 했습니다."
기묘한 압박감에 겁을 먹은 시엘이었다.
"개인 하녀라, 일단 유리안느라는 분을 만나봐야겠군."
시르는 자신의 숙소가 아니라 유리안느를 시엘과 함께 찾아갔다.
그리고는 시엘이 마법사로서의 재능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마법사가 필요한 것은 학문적인 재능과 감각적인 것 둘 다 이었다. 학문적인 것은 시간과 노력으로 되지만 감각적인 것은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시르는 시엘이 체계적인 훈련을 통한 마나를 모운 것은 아니지만 몸의 통로가 상당히 열려 있어 마법을 익히기에 적합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러한 현상은 10살 넘어가면 발견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시엘처럼 나이가 들어서도 마나에 친숙한 경우는 드물었다.
시르는 유리안느에게 제자로 키워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유리안느는 상당히 놀랐다. 보통 돈을 들고 찾아가도 마법사의 제자가 되는 것은 힘들었다.
그런데 마법사가 먼저 제자로 키워보고 싶다고 요청할 정도라면 상당한 재능이 있다는 이야기이었다.
하긴 유리안느도 가끔 시엘이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을 느끼긴 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레이와 사랑을 하기에 예뻐지는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유리안느는 오히려 자신이 부탁하고 싶을 정도이었다. 자신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자신은 귀족의 이름만 있는 재산 하나 없는 식객일 뿐이었다.
로이트란의 기사로서의 급여와 시엘의 급여 역시 영주관에서 대신 지급해주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법사가 생긴다는 것은 상당한 힘이 될 수 있었다.
물론 시엘을 위해서도 좋았다. 힘없는 귀족의 개인하녀와 낮은 단계의 마법사는 신분 자체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마법을 익히면 출신이 무엇이든지 간에 귀족보다는 못하겠지만 평민보다는 나은 대접을 받았다. 아마 시엘이 마법사가 된다면 말뿐인 귀족인 자신보다 더 높은 대접을 받을 것이다.
"저는 좋습니다. 하지만 그레이와의 약속이..."
시엘은 남은 말을 마저 하지 못하고 시선을 유리안느에게 던졌다.
일 년간 그레이와 밤을 함께하기로 한 약속이 생각난 것이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시엘은 신경쓰지마."
유리안느는 결심을 한 표정으로 시엘을 안심시켰다.
유리안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내심 답답하였다. 믿을 만한 사람이 큰 힘을 가지게 되는 데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탈출구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이라면 기회를 잡아야 했다.
어차피 정략결혼으로 팔려갈지도 모르는 순결이었다. 거기에다가 지금 영주 로그너와 자신은 알고 지내던 사이가 아니기에 운이 나쁘면 본처가 아니라 늙은 귀족의 첩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유리안느는 자신의 결심을 굳혔다.
그레이가 시엘의 몸을 찾아 따지면 자신이 대신하겠다는 결심이었다.
귀족으로서의 품위는 망해가는귀족에게는 족쇄일 뿐이었다. 그레이가 귀족이 아니라서 자신과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머릿속에서 한쪽 구석으로 밀어넣었다.
어쩌면 시엘이 재능을 나타나게 된 이유가 그레이 때문이 아닐지 추측하는 유리안느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레이와 만남과 시엘의 분위기가 변한 것은 시기가 같았다.
유리안느는 자신을 만져주던 따듯했던 손길이 그리워서 그런 결심을 한 것은 아니라고 마음속으로 변명할 뿐이었다.
어쩌면 점점 표정이 굳어져가는 자신과는 다르게 하루하루가 행복해 보이는 시엘이 부러워서 일지도 몰랐다.
비오릭 산맥 아래 희생된 마을에서는 기사들과 병사들의 작업이 한창이었다.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사람들의 시체를 묻었다. 피가 튀고 오염이 심하게 된 집은 아예 불태워 버렸다. 그대로 두면 질병이 발생해서 커다란 혼란이 야기될 수 있었다.
돈이 될 만한 것은 모두 다른 마을로 옮겼다.
생존자가 있어서 마을로 돌아온다면 물건을 반납받을 수 있을 것이다.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물품은 영지의 소유가 될 것이다.
그러한 기사들과 병사들과는 별개로 그레이는 마을을 조사했다.
그레이는 희생자의 마을 바깥쪽에서 또 다른 시체를 발견하였다.
"으흠,"
대충 시체의 모습을 눈으로 살피던 그레이는 의아함을 느끼고 다시 시체를 자세히 뒤졌다.
죽은 원인이 오우거에 당한 것이 아니었다. 오우거가 엘프에게 당한 상처처럼 깔끔한 검상이었다. 상처도 급소에 하나뿐이었다. 한번의 칼질로 사망한 시체이었다.
그레이는 죽은 남자의 소지품을 뒤졌다.
약간의 돈과 응급치료약이 나왔다. 응급치료약을 들고 다닌다는 것은 이 마을 사람이 아니거나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는 이야기이었다.
"가레이든 지역?"
두장의 지도가 나왔다.
하나는 비오릭 산맥의 지역, 희생된 마을 근처 산맥의 지도이었다. 또 한장은 멀리 떨어진는 가레이든 지역이었다.
말이 다닐 수 있는 평탄한 길로 가면 상당히 돌아가야 하는 길이었다. 그레이는 산맥을 타고 넘어가기로 생각을 굳혔다.
그레이는 엘프에게 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자의 물건을 커다란 보자기에 단단히 묶었다.
"병사님, 여기 좀 와 보시겠습니까?"
그레이는 현장 정리를 하고 있던 병사들을 불렀다. 레오나드가 그레이에게 임무를 맡기는 모습을 보았던 병사들은 고개를 끄덕이곤 다가왔다.
"여기 이자의 소지품을 레오나드님께 가져다 주셨으면 합니다. "
그레이는 간단한 보고서도 같이 첨가해서 보냈다.
병사는 이 소지품과 보고서를 자신의 상관에게 보고할 것이고 곧 레오나드에게 전달될 것이다.
그레이는 본대의 병사들에게 여행용품을 몇 개 충원하고는 가레이든 지역으로 가기 위해서 산맥 안쪽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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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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