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 환타지
다섯 마녀의 전설(The Legend of Five Witches) 외전 3부 4장
본 야설은 강간, 윤간, 성고문 수준의 SM 등 비윤리적이고 중범죄에 해당하며 잔인하고 하드코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취향의 글을 좋아하시지 않는 분은 읽으시지 말 것을 미리 권고 드립니다.
- 외전 3부 - 잊혀진 전설들 (밤비르(흡혈귀) 백작 카를로스 반 피제프편 : 피와 빵) - 4장 -
소리도 없이.....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는, 백작의 서재 바닥 한편에서, 검은 빛의 기둥이 솟아 올랐다.
“안녕하셨습니까, 아버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짙은 갈색의, 나무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카를로스 백작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웃는 얼굴로 반갑게 인사했다.
백작이 고개를 숙임에 따라, 어깨에 살짝 닿을 정도로 기르고 있는 검은 머리카락이 가볍게 흔들렸다.
편해 보이는, 붉은 색의 실내 가운과, 검정 바지 차림인 백작은..... 책상 위에 검은색 표지의 두꺼운 마법서 한 권을 펼쳐 놓고, 한창 읽고 있던 참이었다.
막 어두워지기 시작한 초저녁 무렵이어서, 책상 위에 등잔 불을 한 개 켜놓고 있었다.
근 한달만에 찾아온, 그의 양아버지 타퀸 반 오쉴리아니 공작은, 늘 그렇듯, 무뚝뚝한 얼굴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흰 머리에, 주름살 투성이인 이마, 매부리코에, 사나운 갈색 눈매를 가진, 이 노인은..... 매우 호전적인 다크 매기아러(흑마법사)로 악명이 높았으나.....
사실,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꽤 자상한 편인 노인네였다.
수수하지만, 고급스런 느낌의, 무릎까지 내려오는 갈색 로브(헐렁하고, 긴 겉옷)와 갈색 바지 차림에.....
오른손에는, 항상 들고 다니며, 애지중지하는 수정구슬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지름 2토르(약 10센치) 정도 크기의, 투명한 수정구슬이 끝에 달려 있는, 갈색의 나무 지팡이는..... 구슬을 제외한 길이 2헥사(약 1미터) 정도로..... 아무 무늬나 장식없이 수수해 보였지만.....
마법사라면 누구나 욕심낼 정도로, 흠하나 없는 최상품의 수정구슬과 매우 단단한 참나무 지팡이로 만들어진 고급품이었다.
“투욱!”
타퀸 공작의 왼손에는..... 카를로스 백작도 처음 보는, 갈색의 작은 자루 한 개가 들려 있었다.
자루를 백작 앞의 책상 위에 올려 놓은 타퀸 공작이..... 투명한 병 두 개를 자루 안에서 꺼내, 역시 책상 위에 놓았다.
마법이 걸린 자루였는지, 자루보다도 훨씬 긴 병들은..... 1헥사(약 50센치) 정도의 높이에, 아래가 볼록하고 둥글며,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모양이었다.
옆에 달린 두 개의 손잡이들까지 통째로, 단단하면서도 투명한 크리스탈로 되어 있었고, 역시 크리스탈로 된 마개들이 각각의 병 입구를 막고 있었다.
"이게 뭔가요, 아버님?"
"네 피를 거기다 가득 붓고, "콘페시오 악티보"(작동) 매기아(마법)로 작동시켜라!
피가 다 떨어지면, 다시 또 채워주는 매기아(마법)를 걸어 놨다."
밤비르(흡혈귀)가 된 캐롤린을 생각해서 만들어온 게 틀림없었다.
빈 것을 다시 채우는 마법은..... 그 내용물이 복잡할 수록 구현하기 어려웠다.
하물며, 인간의 피를 다시 채우는 마법이라면..... 아무리, 9레벨의 고위 마법사인 타퀸 공작이라도, 고생깨나 했을 터였다.
"고맙습니다, 아버님!"
카를로스 백작은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며, 공손히 고개를 숙여 답례했다.
"지금 해봐! 사실, 나도 처음 만들어보는 거라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크리스탈 마개를 뽑은 카를로스 백작이..... 붉은 실내 가운의 소매를 걷은 후, 왼쪽 손목을 병 입구에 가져갔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샹 망게러"(피를 먹는 자)를 검집에서 뽑아들고, 예리한 톱니 검날의 검으로 손목을 그었다.
"툭! 투둑! 툭! ....."
가느다란 핏줄기가 붉은 실선을 이루며, 크리스탈 병 안으로 떨어졌다.
"멍청한 놈! 도무지, 적당히란 걸 모른다니까!
그렇게 깊이 벨 건 또 뭐냐?"
걱정스런 얼굴로 잔소리를 하는 타퀸 공작의 눈앞에서, 포도주처럼 고운 붉은 빛의 피가 천천히 병 속에 차 올랐다.
병의 크기가 워낙 커서..... 겨우 가득 채웠을 무렵에는, 거인처럼 덩치가 크고, 건강한 카를로스 백작도 어지럼증을 느낄 정도였다.
"됐다! 빨리 상처부터 싸매!
콘페시오 악티보!" (작동)
붉은 피가 가득 담겨 있는 크리스탈 병이 음산한 느낌의 붉은 빛으로 빛났다.
이윽고, 천천히 빛이 천천히 사라지자, 타퀸 공작의 주름진 얼굴에 만족스런 표정이 어렸다.
"됐다! 남은 하나는..... 한달후쯤 네가 직접 해 봐라!
반드시, 사람의 몸에서 직접 받은 피여야 하니까, 상처를 다시 내야 할 거다!
이 병 하나가 하루에 열 번까지 완전히 비웠다가 다시 채울 수 있다.
그리고, 마개가 닫혀 있는 한, 안에 있는 피는..... 시간이 얼마나 지나든, 항상 따뜻하고, 신선하게 유지될 거다."
"예?”
붕대를 찾아 왼쪽 손목을 싸매고 있던, 카를로스 백작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병이 이렇게 크니...... 이 병 하나에 한번 채운 분량만으로도, 캐롤린은 하루에 반의 반도 채 못 먹고, 많이 남을 겁니다.
제가 이것보다 조금 작은 병에 소나 양의 피를 받아서 가져다 주면, 삼사일씩 먹는 것 같더군요.
어째서, 하나도 만들기 힘든, 이런 큰 병을..... 두 개나 만드셨습니까, 아버님?"
"그야....."
뭔가 말하려던 타퀸 공작이 말끝을 흐렸다.
"혹시, 병이 깨질 수도 있고 하니까.....
참, 오늘은..... 나도 잠깐 캐롤린에게 데려다 다오!"
약간 걱정스런 표정이 되는 카를로스 백작에게, 타퀸 공작이 고개를 저었다.
"퇴치하러 가려는 거 전혀 아니니까..... 걱정말고, 데려다 다오!
내 귀엽..... 아니, 험! 주고 싶은 물건들이 더 있다."
"예!”
오른손에 톱니 날의 마법검 ‘샹 망게러’(피를 먹는 자)를 뽑아든 카를로스 백작이..... 왼손으로 타퀸 공작의 어깨를 잡았다.
“이무베아!(순간이동) 이무베아! 이무베아! 이무베아! ....."
단거리 이동마법인 "이무베아"를 열 번 정도 반복하자.....
울창한 숲속 깊숙히 자리잡은, 회색의 바위언덕 앞에 도착했다.
백작의 성으로부터는 꽤 떨어진 위치였다.
"이무베아"는 다른 사람의 어깨나 몸을 붙잡는 것만으로도..... 함께 이동할 수 있지만.....
장거리 이동마법인 "트랜스포라"는, 어째서인지, 항상 혼자밖에 이동할 수 없는 데다가..... 마법사 본인이 가본 적이 있는 장소로만 이동할 수 있는 마법이어서.....
데려가려는 마법사나 특정한 수정구슬과 연결된, ‘씨타씨온’(소환) 마법이 담긴 종이를 들고 먼저 가서, 찢는 방법으로..... 정확한 좌표를 알려 주거나.....
누구라도 이동시킬 수 있는 마법진을 출발지와 도착지 양쪽에 똑같이 그리지 않는 한.....
처음 가보는, 다른 사람을 데려가려면..... 이런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칸델라!” (빛)
백작의 외침과 함께..... 오른손에 들고 있는 ‘샹 망게러’의 톱니 검날이 하얀 빛으로 빛나며,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 주위를 밝게 비추어 주었다.
카를로스 백작이 앞장서서 바위언덕 주위의 가시덤불들을 조심스럽게 헤치고 들어갔다.
막혀 있는, 회색의 바위 벽으로 똑바로 걸어가자, 몸을 부딪치는 대신, 왠 넓은 동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사냥중 우연히 발견해 알고 있던 이 동굴에 캐롤린을 머무르게 하면서, 카를로스 백작이 동굴 입구에 환상 마법을 걸어 두었던 것이다.
"오셨어요, 백작님!
어머! 안녕하셨어요, 공작님?"
백작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타퀸 공작의 모습을 보고..... 동굴 안에 있던, 캐롤린은 약간 겁먹은 표정이 되었으나,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성에 있을 때 늘 입고 있던, 검정 드레스의 하녀복 차림이었다.
백작이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네 개의 등잔불을 바닥에 켜놓아 환하게 밝혀 놓고 있었다.
동굴 안은 안쪽으로 깊지는 않았지만, 정사각형 모양의 큰 방처럼, 옆으로는 제법 넓고, 천장도 머릴 부딪칠 걱정은 없을 정도로 꽤 높은 편이었다.
"그래! 우리 며느리 잘 있었느냐?"
밤비르(흡혈귀)가 된 캐롤린이 인간이었을 때와 다를 바 없이..... 타퀸 공작이 스스럼없는 태도로 인사하자..... 캐롤린도 따라서 생긋 웃으며, 겁먹었던 표정이 풀렸다.
"어머! 며느리라니요?"
왼손에 들고 있던 조그만 갈색 자루를 동굴 바닥에 내려 놓은, 타퀸 공작이 자루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역시 자루보다도 훨씬 큰 그것은..... 눈처럼 새하얗고, 무척 고급스런 느낌의 드레스였다.
크고, 작은 다이아들로 장식되어 등잔 불빛을 받아 화려하게 빛나는 모습이, 왕실 무도회나 파티 같은 곳에 입고 나가면, 어울릴 듯한.....
아니, 그보다는..... 아마도, 결혼식때 신부가 입으면, 가장 잘 어울릴 듯한.....
"이건 네 거다!"
캐롤린이 놀란 표정으로 드레스를 받아들자.....
타퀸 공작이 이번에는 남자용의 검정색 예복을 자루 안에서 꺼내, 카를로스 백작에게 내밀었다.
검정 바탕에, 금실 무늬들이 곡선으로 아로새겨져 있고, 다이아 단추들이 달려 있는..... 화려하고, 고급스런 예복이었다.
드레스와 예복을 받아들고, 의아한 표정들을 짓고 있는, 캐롤린과 카를로스 백작에게..... 타퀸 공작의 말이 이어졌다.
"처음 봤을 때부터..... 나는, 너희 둘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너희 둘이 싫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결혼식을 올려서, 캐롤린을 정식으로 네 둘째 부인으로 삼는 게 어떠냐?
하객들은 부를 수 없겠지만.....
주례가 공작이면, 격이 떨어지는 결혼은 아닐 거다!"
역시나. 괴팍스런 그의 양아버지답게..... 사전에 전혀 언급이 없었던, 갑작스런 말이었다.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카를로스 백작은 남자용 예복을 손에 든 채,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던 바입니다, 아버님!"
"너만 원하면 되냐?
청혼부터 해서, 승낙을 받아야지!"
타퀸 공작이 아주 조그만 나무 상자 한 개를 자루에서 꺼내며, 반쯤 열어 보였다.
붉은 색의 부드러운 천이 깔려 있는, 조그만 상자 안쪽에서는, 크고, 화려한 다이아 반지 한 개가 반짝이고 있었다.
자신과 캐롤린이 들고 있던 신랑 예복과 신부 드레스를 바닥의 담요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후..... 카를로스 백작이 다이아 반지가 든 상자를 받아 들었다.
왼쪽 무릎을 세운 자세로, 캐롤린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정중한 목소리로 진지하게 청했다.
"저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캐롤린 프리몰라양!"
"흐흑, 흐흑흑흑흑흑!"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캐롤린이 기쁨과 놀라움의 울음을 터뜨렸다.
"흐흑흑! 흐윽, 흐흑흑흑! 기꺼이요! 카를로스 백작님!"
다이아 반지를 상자에서 꺼내..... 흐느끼며 왼손을 내민, 캐롤린의 새하얗고 가느다란 약지 손가락에, 끼워 주었다.
얼핏 보기에는 커 보였으나, 손가락에 끼워주자 줄어들면서 꼭 맞게 변했다.
"잠깐 동굴 밖에 나가 있을테니, 옷들을 갈아 입으렴!"
잠시후, 다시 들어온 타퀸 공작 앞에..... 새로 결혼할 한 쌍이 화려한 예복 차림으로 섰다.
"결혼 예물도 지금 주마!
여기 있는..... 이 자루다!
조그만 자루같지만..... 수십 벌의 드레스들과 다른 옷들이 들어 있고, 다시 넣을 수도 있다.
자루보다 크기가 큰 모든 물건은..... 자루 입구에 닿는 대로, 크기가 20분의 1, 무게는 50분의 1로 줄어들 것이다.
반지와 목걸이들도 같이 들어 있다.
전부 특별한 매기아(마법)들이 걸려 있어서..... 더러움을 타지도, 낡지도 않을 것이며, 설사 찢어지거나 파손되더라도 다시 복구될 것이다.
카를로스 네 옷들도 같이 들어 있다.
뭐..... 좋은 옷들이니, 결혼 선물로 생각하렴.
그리고, 가장 큰 결혼 선물은 이것이다!
"티엠포 파레"(시간 정지) 매기아(마법)가 걸려 있는 종이다!
찢으면..... 큰 모래시계가 한 번 정도 떨어질 동안(약 30분), 사용자 본인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것이..... 심지어는, 흐르는 물과 바람조차도, 정지해버릴 것이다.
하지만, 사용자는 자신뿐만 아니라, 정지해있는 다른 것들도..... 자신의 힘으로 가능한 것들이라면, 뭐든지 움직일 수도, 부술 수도 있다."
화려한 검정 예복 차림의 카를로스 백작이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사용하기에 따라서..... 역사를 바꿀 수도 있을 매기아(마법)로군요!
그런 매기아가 정말로 가능합니까?"
"물론 불가능하지!
매기아(마법)만으로는 말이야!
악과 파괴의 신인 다곤과의 계약을 통해 최근에 얻어낸 거다.
다곤 신의 특별한 제약이 걸려 있어서..... 9레벨의 매기아러(마법사)인 나조차도, 저 종이에 한번 담았을 뿐, 두 번은 사용할 수 없다.
지금 네 피를 한 방울만 떨어뜨리렴, 아가!
그러면, 오직 너만이..... 종이를 찢으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게 될 거다!"
"지금까지 해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요, 아버님! 흐흑흑!
이런 귀한 것까지 받을 수는....."
울먹이는 캐롤린에게 타퀸 공작이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네게..... 가장 필요할 매기아(마법)다!
게다가, 너 이외의 다른 사람이 사용하게 해서도 안된다!
악용되면, 굉장히 큰 일을 초래할 수도 있는 매기아이니.....
어서 받으렴!"
타퀸 공작은 밤비르(흡혈귀)가 된 캐롤린이..... 밤비르를 퇴치하러 온 자들에게 몰려서 쫓긴다든가, 갑작스런 위험에 처할 상황을 우려하는 듯 했다.
"예, 아버님! 고맙습니다! 흐흑!""
울면서 종이를 받아든 캐롤린이 새하얀 신부용 장갑을 잠시 벗더니, 입안에 검지 손가락을 집어 넣었다.
작지만 예리하게 베인 상처가 생기면서, 손가락 끝에서 붉은 핏방울들이 똑똑 떨어져 종이 위에 떨어졌다.
음산한 느낌의 붉은 빛으로 종이가 한번 빛나더니, 천천히 빛이 가라앉으며 사라졌다.
캐롤린의 손가락에 났던 상처는 어느새 깨끗하게 다시 아물어 있었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밤비르(흡혈귀)의 치유력(낫는 능력) 덕분이었다.
"좋아! 내 앞에들 서라!
이제부터 보여주려는 것은..... 늙은 매기아러(마법사)의, 작은 눈속임에 불과하다.
하지만..... 명심해라!
눈앞의 모든 것이 환상이더라도..... 너희 둘의 결혼은..... 정말이라는 걸!
콘페시오 일루시온!" (환상 창조)
눈부실 정도로 새하얀 빛이 넓은 동굴 안을 가득 메웠다.
빛이 사라졌을 때..... 주위의 모습은 어느새, 넓고 화려한 어느 궁전의 홀로 바뀌어 있었다.
세 사람은..... 빨갛고, 파랗고, 노란, 색색의 꽃들로 화려하게 장식된, 넓은 나무 단상 위에 서 있었고,
화려한 옷차림의, 수많은 하객들이 단상 아래쪽을 가득 메운 채..... 이편을 향해 정답게 웃으며, 박수들을 치고 있었다.
수정으로 된 듯한, 화려하게 빛나는 천장에서는..... 은은한 향기와 함께, 붉은 장미 꽃잎들이 끝도 없이 떨어져 내렸다.
단상 위의, 나무 연설대 뒤에 선, 타퀸 공작이..... 두 사람을 앞에 세워 둔 채, 엄숙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기쁜 날, 자리를 빛내주고 계신 모든 분들께..... 주례로서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신랑, 신부의 새로운 이 가정에, 넘치는 행복이 항상 함께 하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신랑 카를로스 반 피제프 백작은..... 일레기아 왕국의 명문 피제프 백작가의 외아들로서, 장래가 촉망되는..... 8레벨의 고위 매기아러(마법사)입니다.
신부 캐롤린 프리몰라는..... 10살때 빵 한 조각의 작은 인연으로, 참으로 운이 좋았던 신랑과 만나게 되었으며, 상냥하고 따뜻한 마음씨라는, 가장 귀한 보물을 갖고 있는..... 착하고, 현숙하며, 아름다운 처녀입니다.
....."
제대로 준비를 해왔는지, 타퀸 공작의 주례사는 상당히 길었지만..... 마침내 끝나서, 결혼 선서를 할 때가 되었다.
"신랑 카를로스 반 피제프는..... 신부 캐롤린 프리몰라를 아내로 맞이하여,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변함없는 사랑을 나누며, 죽음도 그 사이를 갈라 놓을 수 없는..... 영원한 배우자로 맞이할 것을 서약합니까?"
"예!"
"신부 캐롤린 프리몰라는..... 신랑 카를로스 반 피제프를 남편으로 맞이하여,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변함없는 사랑을 나누며, 죽음도 그 사이를 갈라 놓을 수 없는..... 영원한 배우자로 맞이할 것을 서약합니까?"
"예! 흐흑, 흐흑흑!"
새하얗게 빛나는 드레스 차림의, 새하얗고, 조그만, 금발머리 신부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면서도.....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두 사람은 정식으로 부부가 되어.....
캐롤린 프리몰라는 캐롤린 반 피제프라는 이름으로 카를로스 반 피제프의 부인이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신랑은..... 신부에게 키스하시오!"
타퀸 공작의 결혼 선언에 이어.....
카를로스 백작은 고개를 숙여, 그의 조그맣고, 귀여운 신부 캐롤린의 작고, 붉은 입술에 깊이 키스했다.
달콤하고, 진한 키스와 함께, 눈을 감았던 두 사람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주위의 모습은..... 어느새 결혼식 홀에서, 화려한 무도회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새하얀 대리석 바닥의 홀에서, 화려한 색색 옷차림의 수많은 쌍쌍들이 부드러운 왈츠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고 있었다.
천장에서 비춰 내려오는, 둥글고, 새하얀 빛의 조명이..... 오늘의 주인공들인, 무도회장 중앙의 두 사람 - 갓 결혼한 신혼부부를 비추어 주고 있었다.
"자! 같이 춤 출까?"
"예, 백작님!"
"여보라고 해야지!"
"예..... 여보! 흐윽, 흐흑흑흑흑!"
긴 금발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회색 눈동자의, 조그맣고, 귀여운 신부와.....
검은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린, 갈색 눈동자의, 거인처럼 덩치가 크고, 잘생긴 신랑이.....
서로 포옹한 채..... 부드러운 왈츠 음악에 맞춰, 천천히 돌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하녀와 백작..... 밤비르(흡혈귀)와 마법기사라는..... 그들의 신분과, 본질 만큼이나..... 대조적인 모습의 한쌍이었으나.....
따뜻한 시선으로 마주 보며, 춤추고 있는 그들의 얼굴은..... 세상의 어떤 닮은 커플들보다도, 훨씬 더..... 다정하고, 행복해 보였다.
........................................................................................................................
다시, 8년의 세월이 흘렀다.
카를로스 반 피제프 백작의 나이 이제 44살이 되어, 눈에 띄게 늙기 시작했으나.....
양아버지 타퀸 반 오쉴리아니 공작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그의 둘째 부인 캐롤린 반 피제프는 변함없이 26살때의 외모 그대로였다.
"험험! 이제는 누가 봐도..... 아버지와 딸로 보이겠는데....."
"어머! 젊어 보이는 부인을 뒀다고, 부러워 하겠죠, 여보!"
귀엽게 웃으며, 캐롤린은 조그맣고, 날씬한 몸을 기대듯..... 백작의 품에 꼬옥 안겼다.
하녀시절 입었던 검정색 드레스 대신..... 고급스런, 녹색의 드레스 차림이었다.
카를로스 백작은, 바쁜 양아버지 타퀸 공작에게서 밤에 마법을 배울 수 밖에 없다는 핑계로..... 일주일에 세 번씩 캐롤린을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캐롤린이 지내고 있는 꽤 넓은 동굴 안은..... 변함없이, 입구가 마법으로 숨겨져 있었고,
바닥의 붉은 색 양탄자와 침대, 소파와 탁자, 의자 등등..... 이제는 살림집처럼, 이런저런 가구들을 제법 갖추고 있었으나, 거울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의 아내 캐롤린의 기분이 상할 것을 걱정한 카를로스 백작이 가져오지 않았던 것이다.
일반인들에게도 꽤 널리 알려진 얘기였지만.....
밤비르(흡혈귀)는..... 마치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존재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거울에 그 모습이 비치지 않는 존재였다.
"여보! 요새는 항상 뭔가 걱정거리가 있으신 것처럼 보여요! 무슨 일이 있으셔요?"
"그게..... 아버님이 계신, 매기아러(마법사)들의 왕국 만수리아가 벌써 석 달째, 내전에 휘말려 있다오.
만수리아 왕국만이 아니라, 매기아러들의 일곱 왕국들과 다섯 제국들 모두가 마찬가지라오.
네오 이브라(새로운 시대)라는 매기아러(마법사)들의 비밀 결사단체가..... "매기아(마법)의 정수(핵심)"를 다같이 공유할 것을 요구하면서,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오."
""매기아(마법)의 정수"요?"
"9레벨까지 있는 매기아는..... 얼핏 보기에는, 자질구레한 것들까지 전부 합쳐야, 수백 가지도 채 안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무수히..... 많다오!
왜냐하면, 똑같은 매기아(마법)라도 구현해내는 과정이 얼마나 효율적이냐에 따라서..... 그 위력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오.
잘 알려진 얘기로..... 저 악명높은 글레이셔(얼음) 일족의 경우에는 "글레이셔 란자"(얼음의 창)를 주무기로 애용하지만.....
그들의 2레벨 매기아(마법) "글레이셔 란자"를..... 7레벨이나 8레벨의 강화 바레라(방어막)로도 막기가 벅차다오.
1,000년이 넘는 동안 다듬어진 그들의 "글레이셔 란자"(얼음의 창)는..... 이미, 그 위력이 "글레이셔 란자"라고 불릴 수도 없을 정도라오.
그들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많은, 전통있는 매기아(마법) 명문 집안들은, 그들만의 매우 정제되고 다듬어진..... 이름만 같을 뿐, 그 위력에서 천지차이인 매기아들을 많이 갖고 있소.
이러한 지식들을..... "매기아(마법)의 정수"라고 한다오."
마법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캐롤린으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요 몇 달째 항상 걱정에 휩싸여 있는 남편을 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너무 아팠다.
"스르르륵!"
입고 있던 고급스런 녹색의 드레스를 벗은 캐롤린이 가슴 가리개와 하얗고, 조그만, 앙증맞은 아래 속옷을 벗어, 새하얗고, 날씬한 알몸을 드러냈다.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는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으며, 새하얀 두 다리를 넓게 벌린 채, 양손으로 성기를 활짝 벌렸다.
"당신만을 위한..... 음란하고, 조그만, 금발머리 창녀 캐롤린 반 피제프입니다!
캐롤린의 새하얗고, 귀여운 알몸을..... 오늘도 마음껏 귀여워해 주셔요!
바깅(보지), 항문, 입..... 어디든 마음대로 사용해 주셔요!
입안을 변기로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성기의 주름이 양옆으로 한계까지 잡아당겨 벌려져.....
분홍에 가까운 고운 빛의, 촉촉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속살과, 꼬옥 아물려 있는 성기 구멍, 아래쪽의 항문 구멍까지 환히 드러난..... 아름다우면서도, 한없이 음란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남들의 눈을 피해 성관계를 맺기 시작한지 21년째, 타퀸 공작의 주례로 두 사람이 정식으로 결혼한지도 8년째였지만.....
‘어리고, 귀여운" 캐롤린이 음란한 말과 함께, 이렇게 음란한 모습을 보이는 걸..... 생전 처음 보는 카를로스 백작이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검정 바지를 입고 있는. 백작의 아랫도리가 흥분해서 부풀어오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캐롤린으로서는 떠올리기 싫은..... 매우 고통스러웠던..... 가슴 아프고, 수치스런 기억들이 담겨 있는 "인사말"이었으나.....
예전에, 그녀를 발가벗겨 놓은 채, 장난감 다루듯 학대하고, 윤간했던 남자들 모두가..... 캐롤린에게 이런 인사말을 시키며, 좋아들 해서.....
이런 "인사말"이 있었다는 걸 모르는, 그의 남편 카를로스 백작도..... 틀림없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도저히, 다시 입밖에 낼 엄두가 나지 않았었지만.....
몇 달째 어두운 표정인 그녀의 남편이 잠시라도 걱정을 잊고, 기뻐하게 할 수 있다면.....
캐롤린은..... 자기가 아무리 괴롭더라도,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다.
남편에게 다가가 무릎꿇은 채로, 바지 단추들을 풀고, 바지와 속옷을 내린 후.....
작고, 붉은 입술을 벌려, 흥분해 일어선 그것을 깊숙히 물었다.
"추웁! 추우웁! 할짝! 할짝!
혹시 소변을 보고 싶으시면..... 할짝, 할짝! 입안에 그대로 소변을 보셔도 돼요, 여보! 추웁!
전부 삼켜 드릴게요! 추웁, 추웁!"
물론, 카를로스 백작으로서는 실제로 그런 일을 한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지만.....
귀엽고, 순진한 얼굴로, 음란한 말을 하는 그의 아내에 대해, 아찔할 정도로 큰 흥분감을 느꼈다.
충분히 흥분한 듯한 남편의 모습에, 뒤로 돌아 엎드린 캐롤린이 새하얗고, 조그만 엉덩이를 높이 쳐들며, 유혹하듯 흔들어 보였다.
"어느 쪽이든 넣어 주셔요, 여보!
바깅(보지)도 좋고, 항문도 좋아요!"
으응! 아아아, 하앙! 아응, 아아아아앙!"
카를로스 백작의 손이 성기의 갈라진 틈을 벌리며, 부드럽고, 예민한 부위들을 애무하기 시작하자..... 캐롤린이 새하얗고, 가냘픈 알몸을 떨며 신음했다.
아래쪽의 성기를 손으로 애무해 주면서..... 카를로스 백작이, 천천히, 새하얗고 부드러운 엉덩이 사이의 항문 구멍에 자신의 대물을 밀어넣기 시작했다.
캐롤린이 혹시 아프기라도 할까봐 몹시 조심스런 태도였다.
캐롤린이 말한 "인사말"은 이전의 수치스러웠던 때와 비슷했지만..... 그 말을 듣고 흥분해, 지금 캐롤린의 몸을 가지려는 사람은 그 때의 자들과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으으으으응! 우웃, 하앗, 아우우웅!
좋, 좋아요, 여보! 으으응, 하아아! 제 엉덩이 예뻐요?"
"그렇소! 새하얀 보석으로 된 것처럼..... 너무 예쁘고, 너무 부드럽군!"
나이를 먹으면서, 카를로스 백작은 캐롤린에게, 완전히 반말투의 말은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밤비르(흡혈귀)인, 그의 부인의 외모는..... 8년전 26살 때의, 그 당시에도 나이에 비해 많이 어려 보였던 그 모습 그대로, 전혀 달라지지 않았지만.....
때로는, 어린애에, 하녀였던 자신에게, 편하게 반말을 했던 시절의 말투가 나았던 듯한 기분도 들었지만.....
캐롤린은 불평하는 대신, 새하얗고 부드러운 엉덩이를 더욱 뒤쪽으로 내밀어, 그의 사랑하는 남편을 더욱 몸속 깊숙히 받아 들였다.
"아응, 으우웅, 우우우..... 하앙, 너무 좋아요, 여보!
캐롤린의 음란한 바깅(보지)에도 손가락들을 넣어서..... 아앙! 항문과 같이 귀여워해 주셔요!
하아앙, 아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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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린이 다소 심하게 무리까지 해가면서, 자극적이고, 달콤한 섹스를 갖게 해줬지만..... 카를로스 백작의 근심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었다.
마그나 매기아(위대한 마법)력 1,106년.....
비밀결사단체인 "네오 이브라"(새로운 시대)가 일으킨 내전의 먹구름은..... 마법사들의 5대 제국들과 7개의 왕국들 전부를 뒤덮고 있었다.
마법 실력에 따라 작위며, 권력, 재산 등이 부여되는, 마법사들의 질서체계는..... 얼핏 보기에는 매우 공정하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오랜 세월 정제되고, 발전된 "매기아(마법)의 정수(핵심)"를 물려받는 명문 귀족가의 후손들이나 그 제자들은..... 남들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서 출발한다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출발점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무리 뛰어난 천재거나, 아무리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한다고 해도..... 마법 학교에 가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공개된 마법지식들만 손에 쥔 마법사들은.....
몇 백년, 때로는 심지어 1,0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정제된 "매기아(마법)의 정수"를 손에 쥔, 명문 귀족가의 마법사들을..... 절대로, 넘어설 수 없었다.
역시나, 마법 실력에서..... 보다 정확하게는, 이름이 같은 마법이라도, 그 위력에서 크게 뒤지는 이상.....
처음, 반란을 선언하고, "매기아의 정수"의 공개를 요구했던 "네오 이브라(새로운 시대)"의 지도자급 마법사들이 연거푸 제압당하고, 체포당하면서.....
그들의 반란은 손쉽게 진압될 것처럼 보였었다.
그러나,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네오 이브라"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명분을 발표하고, 스스로의 희생을 처음부터 각오하고 있었던, 명목상의 지도자들에 불과했다.
놀랄 정도로 많은 수의 마법사들이..... "네오 이브라"의 숨겨진 단원들이거나, 적어도 속으로 그들을 지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는, 마법사들의 제국들과 왕국들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조차도, 언제 수정구슬 지팡이를 들이대면서..... "쥬빌리아, 네오 이브라!"(네오 이브라, 만세!)를 외칠지 모를 지경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명문 귀족가 출신의 고위 마법사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의 핵심인 "매기아(마법)의 정수(핵심)"를 남들과 나눌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번거롭고, 혼란스런 상황이 몇 달째 이어지고 있기는 했으나.....
실질적인 전투에서는..... 마법의 위력에서 훨씬 앞서는 명문 귀족 마법사 진영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것이다.
"네오 이브라"(새로운 시대) 단원들이 반란을 일으켜 힘들게 점령한 성들은..... 고위 마법사들이 참가한 중앙군의 본격적인 진압을 견뎌내지 못했고.....
고위 마법사들에 대한 "네오 이브라" 단원들의 목숨을 건 암살 시도도 번번히 실패로 돌아갈 뿐이었다.
카를로스 반 피제프 백작은..... 그의 양아버지이자, 마법사들의 왕국인 만수리아 왕국의 공작 타퀸 반 오쉴리아니에게 몇 차례나 자신도 함께 도울 뜻을 밝혔으나.....
자질구레한 일에 불과하니 신경쓸 필요없다는 대답만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잠깐씩 들러서, 마법 공부를 봐주기도 하고, 얼굴도 보고 가던 타퀸 공작이..... 카를로스 백작의 성에 찾아오지 않은지도 한달 가까이 돼가면서.....
카를로스 백작은 마침내 자기쪽에서 공작의 성에 찾아가 보기로 했다.
"트랜스포라!" (장거리 이동)
가문의 보검 "샹 망게러"(피를 먹는 자)를 뽑아든 백작의 발밑에서..... 검은 빛의 기둥이 솟아 올랐다.
공작의 성이 위험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내전중이라는 점을 생각해서..... 적대적인 마법을 막아주는, 검은 색의, 전신 철판 갑옷을 입은 채였다.
투구까지 쓰진 않았지만.....
대리석처럼 새하얀 돌로 된, 웅장하고, 아름다운, 타퀸 공작의 성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법으로 타퀸 공작의 방으로 바로 이동했으면 편했겠지만.....
공작의 성은 전체가 특별한 마법으로 보호되고 있어서, 성 안에 가본 적이 있는 마법사라도 "트랜스포라"나 ‘이무베아’로 외부에서 바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 트랜스포라 : 장거리 이동 마법; 6레벨; 마법사가 최소한 한번 이상 가본 적이 있어서, 머리속에 기억하고 있는 장소로만 이동할 수 있음; 마법사 본인만 이동할 수 있음
* 이무베아 : 단거리 이동 마법; 4레벨; 이동거리가 짧지만, 익숙해지면, 매우 빠른 속도로 구사할 수 있어서 ‘순간이동’ 마법으로 불리기도 함; 다른 사람을 붙잡고, 함께 이동할 수도 있음)
"응?"
카를로스 백작의 갈색 눈동자들이 가늘어졌다.
넓은 해자(성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물)를 건너 성안으로 들어가는 다리 입구에..... 지키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평화시에도 8명의 병사들이 중무장한 채, 항상 지키고 있었던 곳을.....
하물며, 비밀결사단체 "네오 이브라"(새로운 시대)와 내전중인 지금, 비워놓는다는 것은 상식밖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톱니 날의 양날 검 "샹 망게러"(피를 먹는 자)의 칼자루를 쥔, 백작의 오른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다리를 건너, 성안으로 들어가자 더욱 예상밖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통로와 복도, 계단 등등..... 성안 곳곳에 이런저런 물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마치 좀도둑들의 약탈이라도 있었거나, 성안 사람들이 급하게 도망이라도 가다가 떨어뜨린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갈색 로브(헐렁하고, 긴 겉옷) 차림의 마법사들이 시체가 되어 쓰러져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상처는 없어 보였으나..... 하나같이 왼쪽 가슴께를 움켜쥔 채, 괴로운 표정으로 숨이 끊어져 있었다.
"놀랍군! 전부 매기아러(마법사)들의 시체들뿐이잖아!
매기아러만 골라서 공격하는 매기아(마법)가 있었던가?"
카를로스 백작이 고개를 저었다.
모양으로 봐서, 어떤 종류의 마법 공격을 받았다는 건 틀림없었지만.....
8레벨 마법사인 그의 지식 범위 내에서는..... 건물이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피해없이, 오직 마법사들에게만 치명타를 줄 수 있는, 그런 마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였지만, 혹시나 있을지 모를 기습을 주의하면서..... 카를로스 백작은 양아버지 타퀸 공작의 방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아버님! 아버님!"
머리가 하얗게 센, 매부리코의 마법사 - 사납고, 호전적이고, 오만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와 캐롤린에게는, 누구보다도 자상하고, 따뜻했던 양아버지 타퀸 반 오쉴리아니 공작은.....
여느 때의 갈색 로브 차림으로, 넓은 자신의 방 책상 옆 바닥에 누워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중, 뭔가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일어서던 도중에 쓰러져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다행히도, 타퀸 공작은..... 몸이 따뜻한 것이, 아직 숨이 붙어있는 상태였다.
바닥에 앉아, 타퀸 공작의 머리를 받쳐들며, 카를로스 백작은 다급한 목소리로 그의 양아버지를 불렀다.
"아버님! 아버님!"
갈색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힘없이 떠졌다.
입술이 움찔거리며 열렸다.
"멍청이! 여긴..... 왜 왔냐?
나를 놔두고, 어서... 가! 너도..... 위험하... 다! 쿨럭! 쿨럭!"
말끝에 터져나온 기침과 함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아버님! 이게 어떻게 되신 겁니까?
제 캐츄(성)로 어서 가서, 치료를 하시죠!"
힘없이 타퀸 공작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미 틀렸... 다.
"네오 이브라"(새로운 시대) 놈들이..... 금지된 매기아(마법)를 사용... 했다. 쿨럭!
모든 매기아러(마법사)들의 심장에 치명타를... 쿨럭! 우욱! 가하는.....
"네오 이브라" 놈들 자신을 포함해서.....
왕국 내의 모든... 쿨럭! 매기아러들이 전멸했다!
너는..... 집안에 심장 발작... 쿨럭! 내력도 있다면서..... 쿨럭! 쿨럭!
나를 놔두고..... 어서 떠나라!
아직 남아... 쿨럭! 있는 매기아(마법)의 힘에..... 너도 영향받... 을 수 있다."
카를로스 백작이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놀랍고, 끔찍한 위력의 매기아(마법)가 있었다니..... 그런 매기아가 가능합니까?"
"물론 불가능... 하지! 쿨럭!
매기아(마법) 단독... 쿨럭! 으로는 말이야! 쿨럭! 쿨럭!"
기침을 할 때마다, 입에서 피를 토하는 모습이..... 타퀸 공작도 이미 상당히 치명적인 내상을 입고 있는 듯 했다.
"악과 파괴의 신... 우우욱! 다곤과의... 쿨럭! 계약을 통해 힘을 빌린 것이다!
8레벨 이상의 매기아러(마법사) 16명이..... 쿨럭! 쿠욱!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 을 각기 제물로 바치고, 복잡한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우욱! 쿨럭! 쿨럭!
매기아(마법)를 다루는 모든 자들의 심장을 터뜨... 리는, 금지된 매기아(마법) - "하트 데바스티온(심장 파괴)"..... 쿨럭!
그런 미친 매기아를... 우욱! 쿨럭! 정말로 쓰는, 미친 놈들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쿠우욱! 쿨럭!"
믿어지지 않는 얘기에 고개를 저으며, 카를로스 백작이 그의 양아버지를 조심스럽게 다시 바닥에 내려 놓았다.
"지금..... "트랜스포라"(장거리 이동 마법)를 사용하실 수 없는 상태이시죠?
제 캐츄(성)까지는 "이무베아"(단거리용 순간 이동 마법)로 가기에는 너무 머니.....
지금부터 매기아(마법) 진을 양쪽에 그려서, 모셔 가도록 하겠습니다."
씁쓸한 표정으로 타퀸 공작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다, 아들아!
내 몸 상태는..... 쿨럭! 내가... 쿠욱! 가장 잘 알아!
나는... 길어야... 쿨럭! 쿨럭! 큰 모래시계가 한번 떨어질 시간(약 30분)도..... 쿨럭! 버티지 못한다!
저 책꽂이 밑에서 다섯 번째줄에..... "리브레 데 다크 매기아"(흑마법의 서)가 꽂혀... 쿨럭! 있을 거다. 쿨럭!"
타퀸 공작이 힘없는 턱짓으로 방 한쪽의 크고, 고급스런 책꽂이를 가리켰다.
"그걸..... 반쯤 뺐다가 다시 집어넣기를 세 번 반복하면..... 책꽂이가 뒤집히면서, 안쪽에 숨겨져 있는, 수백 권의 책들이 나타날 거다. 쿠욱!
그것들을..... 쿨럭! 우욱! 쿨럭! 꼭 가져가라!
그 책들이야말로..... 쿠욱! 쿨럭! 700년의 역사를 가진 명문 오쉴리아니 가문의 "매기아(마법)의 정수"로다! 쿨럭!
너는 이미..... 쿨럭! 배우고 있었던 내용이다만..... 쿨럭!
나의 계승자로서..... 잘 관리하고, 익힌 후에..... 쿠욱! 쿠우욱! 우욱! 쿨럭! 쿨럭!"
책꽂이쪽을 잠시 쳐다보던, 카를로스 백작이 공작의 머리를 받쳐든 채로 말렸다.
"아버님! 더 이상 말씀하지 마십시오!
몸에 해로우십니다!"
"자격있는 후계자에게... 우욱! 넘겨 주어라! 쿨럭! 쿨럭!
지금 바로 해야... 한다! 쿨럭!
내가 숨이 멎은지 하루 안에... 쿨럭! 정확한 방법으로 꺼내지 않으면..... 쿠우욱! 자동으로 전부 타버리는... 쿨럭! 매기아(마법)가 걸려 있다. 쿨럭! 크윽!
내 귀엽고, 착한 며느리에게도..... 항상 잘 해주렴, 아들아!"
마지막 말과 함께 공작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아버님! 아버님!"
카를로스 백작이 다급하게 불렀으나, 그의 양아버지 타퀸 공작은 이미 숨이 멎어 있었다.
마치 잠든 것처럼 평안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구요?"
붉은 머리에, 새파란 눈을 가진 미청년이 홀 안에 들어서며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고급스런 파란 색 튜닉(허벅지 가까이까지 오는 긴 웃옷)과 바지 차림에 허리띠에는 긴 칼을 차고 있는 미청년은..... 3헥사 7토르(약 185센치) 정도의 키에, 그림처럼 늘씬하고 잘생긴 모습이었다.
"그래! 네 조부님만이 아니라..... 모든 매기아러(마법사)들이 세상을 떠났다.
매기아러들간의 내전중에..... 금지된, 끔찍한 매기아(마법)가 사용되는 바람에....."
자신의 성에 돌아와, 하인들과 함께 타퀸 공작의 시체를 관에 모시고, 장례를 준비하던 카를로스 백작이 우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검정 튜닉에, 검정 바지를 입은, 검정색 일색의 옷차림이었다.
"예? 그 지긋지긋한 매기아러(마법사)들이..... 전부 죽었단 말인가요?
그렇다면, 아버님!
이러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리안 국왕 폐하께 알리고, 병사들을 모아서..... 이제 빈 땅이 된 매기아러(마법사)들의 땅을 차지하러 가야죠!"
우울한 표정으로 카를로스 백작이 고개를 저었다.
"폐하께는 이미 전갈을 보냈다, 켄드릭!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네 조부님이신 타퀸 반 오쉴리아니 공작님의 장례식을 격식에 맞게 치뤄드리며, 그분을 애도하는 일이다.”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젓던 미청년 켄드릭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시다면, 장례식이 끝나는 대로, 바로 진군할 수 있도록..... 병사들을 준비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매기아러(마법사) 놈들이 100중 40으로 비율을 고정시켜 놓은 세금도..... 60이든 70이든 우리 마음대로 거둬서, 전부 우리가 가질 수 있겠군요!
우리 가문의 사병들도, 지금까지처럼 백여 명 수준이 아니라..... 어쩌면 몇천 명으로 늘릴 수도 있겠습니다!"
켄드릭은 사뭇 신난 표정이었지만, 카를로스 백작은 그의 장남을 힐끔 쳐다봤을 뿐이었다.
여전히, 타퀸 공작의 관 앞에 무릎꿇고 앉은 채, 묵념이라도 하듯, 다시 두 눈을 감았다.
붉은 천 위에 놓여진, 관 주위를..... 그의 하인들이 새하얀 꽃으로 온통 뒤덮듯 장식하고 있었다.
전혀 호응해주지 않는 부친의 모습에, 잠시 머뭇거리던 켄드릭이 부리나케 홀 밖으로 뛰어 나가며 소리쳤다.
"고급 장교들을 모두 불러 모아라!
중요한 지시사항이 있다!"
양아버지 타퀸 공작의 관 앞에 무릎꿇은 채로, 카를로스 백작은 남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친조부는 아니라지만, 어쨌든 조부인 타퀸 공작이 세상을 떠난 이 상황에서.....
세금을 더 거두고, 땅뺏을 궁리를 하며, 신나하는 그의 장남 켄드릭이 영 못마땅했으나.....
조만간, 임자가 없어진, 마법사들이 다스리던 땅을 두고 치열한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켄드릭이 신이 나서 열심히 준비한다면, 혼내거나 말릴 필요까지는 없는 일이었다.
사흘뒤,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할 무렵.....
온통 흰꽃으로 뒤덮힌 타퀸 공작의 관이 "캐츄 데 샹"(피의 성)에서 조금 떨어진, 피제프 백작가의 가족 묘지에 안장되었다.
세라피나 공주와 장남인 켄드릭은..... 보통보다 늦은 장례식 시간에 대해 투덜거렸으나.....
카를로스 백작은 못들은 척 엄숙한 표정으로, 장례식을 거행하고..... 새로 만들어진 타퀸 공작의 무덤 위에 하얀 꽃잎들을 손수 뿌리며, 양아버지인 공작을 떠나 보냈다.
"먼저들 돌아가라!
나는..... 잠시 더 여기 머물다가 가겠다!"
그의 가족들과 하인들, 호위병들까지 전부 사라진 후..... 묘지 한편의 나무 뒤에서, 검정 드레스 차림의 금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흐흐흑! 흐흑, 흐윽! 흐흑흑흑흑흑흑! 아버님! 아버님!"
울어서 눈가가 퉁퉁 부은 얼굴로 다가온 금발머리 여자는 흐느끼며, 카를로스 백작의 품에 쓰러지듯 안겼다.
"울지 마시오!
아버님께서도 마지막 유언으로 말씀하셨다오!
내 귀엽고, 착한 며느리에게 잘 해주라고....."
타퀸 공작이 마지막에 말한 "며느리"가..... 첫째 부인인, 아름답고, 당당한, 붉은 머리 여자 - 세라피나 공주가 아니라.....
눈앞에 있는..... 둘째 부인이자, 밤비르(흡혈귀)인, 예쁘고, 가냘픈, 금발머리 여자 - 캐롤린이라는 걸..... 백작은 잘 알고 있었다.
슬프게 흐느끼는 캐롤린을 꼬옥 품에 안은 채로, 카를로스 백작은 캐롤린의 부드러운 금발머리를 위로하듯 쓰다듬어 주었다.
백작의 갈색 눈동자들에서도 눈물이 흘러 넘쳐, 두 볼을 타고 캐롤린의 머리 위에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햇빛 아래서는 활동할 수 없는 밤비르(흡혈귀)인 캐롤린도, 먼 발치에서나마, 참석할 수 있도록..... 장례식 시간을 저녁 무렵으로 잡았던 것이다.
비록, 타퀸 공작은 이미 묘지의 땅속에 묻혀 있었지만.....
카를로스 백작은..... "귀엽고, 착한 며느리"가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해줘서, 그의 양아버지도 틀림없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다섯 마녀의 전설(The Legend of Five Witches) 외전 3부 4장
본 야설은 강간, 윤간, 성고문 수준의 SM 등 비윤리적이고 중범죄에 해당하며 잔인하고 하드코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취향의 글을 좋아하시지 않는 분은 읽으시지 말 것을 미리 권고 드립니다.
- 외전 3부 - 잊혀진 전설들 (밤비르(흡혈귀) 백작 카를로스 반 피제프편 : 피와 빵) - 4장 -
소리도 없이.....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는, 백작의 서재 바닥 한편에서, 검은 빛의 기둥이 솟아 올랐다.
“안녕하셨습니까, 아버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짙은 갈색의, 나무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카를로스 백작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며, 웃는 얼굴로 반갑게 인사했다.
백작이 고개를 숙임에 따라, 어깨에 살짝 닿을 정도로 기르고 있는 검은 머리카락이 가볍게 흔들렸다.
편해 보이는, 붉은 색의 실내 가운과, 검정 바지 차림인 백작은..... 책상 위에 검은색 표지의 두꺼운 마법서 한 권을 펼쳐 놓고, 한창 읽고 있던 참이었다.
막 어두워지기 시작한 초저녁 무렵이어서, 책상 위에 등잔 불을 한 개 켜놓고 있었다.
근 한달만에 찾아온, 그의 양아버지 타퀸 반 오쉴리아니 공작은, 늘 그렇듯, 무뚝뚝한 얼굴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흰 머리에, 주름살 투성이인 이마, 매부리코에, 사나운 갈색 눈매를 가진, 이 노인은..... 매우 호전적인 다크 매기아러(흑마법사)로 악명이 높았으나.....
사실,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꽤 자상한 편인 노인네였다.
수수하지만, 고급스런 느낌의, 무릎까지 내려오는 갈색 로브(헐렁하고, 긴 겉옷)와 갈색 바지 차림에.....
오른손에는, 항상 들고 다니며, 애지중지하는 수정구슬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지름 2토르(약 10센치) 정도 크기의, 투명한 수정구슬이 끝에 달려 있는, 갈색의 나무 지팡이는..... 구슬을 제외한 길이 2헥사(약 1미터) 정도로..... 아무 무늬나 장식없이 수수해 보였지만.....
마법사라면 누구나 욕심낼 정도로, 흠하나 없는 최상품의 수정구슬과 매우 단단한 참나무 지팡이로 만들어진 고급품이었다.
“투욱!”
타퀸 공작의 왼손에는..... 카를로스 백작도 처음 보는, 갈색의 작은 자루 한 개가 들려 있었다.
자루를 백작 앞의 책상 위에 올려 놓은 타퀸 공작이..... 투명한 병 두 개를 자루 안에서 꺼내, 역시 책상 위에 놓았다.
마법이 걸린 자루였는지, 자루보다도 훨씬 긴 병들은..... 1헥사(약 50센치) 정도의 높이에, 아래가 볼록하고 둥글며,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모양이었다.
옆에 달린 두 개의 손잡이들까지 통째로, 단단하면서도 투명한 크리스탈로 되어 있었고, 역시 크리스탈로 된 마개들이 각각의 병 입구를 막고 있었다.
"이게 뭔가요, 아버님?"
"네 피를 거기다 가득 붓고, "콘페시오 악티보"(작동) 매기아(마법)로 작동시켜라!
피가 다 떨어지면, 다시 또 채워주는 매기아(마법)를 걸어 놨다."
밤비르(흡혈귀)가 된 캐롤린을 생각해서 만들어온 게 틀림없었다.
빈 것을 다시 채우는 마법은..... 그 내용물이 복잡할 수록 구현하기 어려웠다.
하물며, 인간의 피를 다시 채우는 마법이라면..... 아무리, 9레벨의 고위 마법사인 타퀸 공작이라도, 고생깨나 했을 터였다.
"고맙습니다, 아버님!"
카를로스 백작은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며, 공손히 고개를 숙여 답례했다.
"지금 해봐! 사실, 나도 처음 만들어보는 거라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크리스탈 마개를 뽑은 카를로스 백작이..... 붉은 실내 가운의 소매를 걷은 후, 왼쪽 손목을 병 입구에 가져갔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샹 망게러"(피를 먹는 자)를 검집에서 뽑아들고, 예리한 톱니 검날의 검으로 손목을 그었다.
"툭! 투둑! 툭! ....."
가느다란 핏줄기가 붉은 실선을 이루며, 크리스탈 병 안으로 떨어졌다.
"멍청한 놈! 도무지, 적당히란 걸 모른다니까!
그렇게 깊이 벨 건 또 뭐냐?"
걱정스런 얼굴로 잔소리를 하는 타퀸 공작의 눈앞에서, 포도주처럼 고운 붉은 빛의 피가 천천히 병 속에 차 올랐다.
병의 크기가 워낙 커서..... 겨우 가득 채웠을 무렵에는, 거인처럼 덩치가 크고, 건강한 카를로스 백작도 어지럼증을 느낄 정도였다.
"됐다! 빨리 상처부터 싸매!
콘페시오 악티보!" (작동)
붉은 피가 가득 담겨 있는 크리스탈 병이 음산한 느낌의 붉은 빛으로 빛났다.
이윽고, 천천히 빛이 천천히 사라지자, 타퀸 공작의 주름진 얼굴에 만족스런 표정이 어렸다.
"됐다! 남은 하나는..... 한달후쯤 네가 직접 해 봐라!
반드시, 사람의 몸에서 직접 받은 피여야 하니까, 상처를 다시 내야 할 거다!
이 병 하나가 하루에 열 번까지 완전히 비웠다가 다시 채울 수 있다.
그리고, 마개가 닫혀 있는 한, 안에 있는 피는..... 시간이 얼마나 지나든, 항상 따뜻하고, 신선하게 유지될 거다."
"예?”
붕대를 찾아 왼쪽 손목을 싸매고 있던, 카를로스 백작이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병이 이렇게 크니...... 이 병 하나에 한번 채운 분량만으로도, 캐롤린은 하루에 반의 반도 채 못 먹고, 많이 남을 겁니다.
제가 이것보다 조금 작은 병에 소나 양의 피를 받아서 가져다 주면, 삼사일씩 먹는 것 같더군요.
어째서, 하나도 만들기 힘든, 이런 큰 병을..... 두 개나 만드셨습니까, 아버님?"
"그야....."
뭔가 말하려던 타퀸 공작이 말끝을 흐렸다.
"혹시, 병이 깨질 수도 있고 하니까.....
참, 오늘은..... 나도 잠깐 캐롤린에게 데려다 다오!"
약간 걱정스런 표정이 되는 카를로스 백작에게, 타퀸 공작이 고개를 저었다.
"퇴치하러 가려는 거 전혀 아니니까..... 걱정말고, 데려다 다오!
내 귀엽..... 아니, 험! 주고 싶은 물건들이 더 있다."
"예!”
오른손에 톱니 날의 마법검 ‘샹 망게러’(피를 먹는 자)를 뽑아든 카를로스 백작이..... 왼손으로 타퀸 공작의 어깨를 잡았다.
“이무베아!(순간이동) 이무베아! 이무베아! 이무베아! ....."
단거리 이동마법인 "이무베아"를 열 번 정도 반복하자.....
울창한 숲속 깊숙히 자리잡은, 회색의 바위언덕 앞에 도착했다.
백작의 성으로부터는 꽤 떨어진 위치였다.
"이무베아"는 다른 사람의 어깨나 몸을 붙잡는 것만으로도..... 함께 이동할 수 있지만.....
장거리 이동마법인 "트랜스포라"는, 어째서인지, 항상 혼자밖에 이동할 수 없는 데다가..... 마법사 본인이 가본 적이 있는 장소로만 이동할 수 있는 마법이어서.....
데려가려는 마법사나 특정한 수정구슬과 연결된, ‘씨타씨온’(소환) 마법이 담긴 종이를 들고 먼저 가서, 찢는 방법으로..... 정확한 좌표를 알려 주거나.....
누구라도 이동시킬 수 있는 마법진을 출발지와 도착지 양쪽에 똑같이 그리지 않는 한.....
처음 가보는, 다른 사람을 데려가려면..... 이런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었다.
“칸델라!” (빛)
백작의 외침과 함께..... 오른손에 들고 있는 ‘샹 망게러’의 톱니 검날이 하얀 빛으로 빛나며,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 주위를 밝게 비추어 주었다.
카를로스 백작이 앞장서서 바위언덕 주위의 가시덤불들을 조심스럽게 헤치고 들어갔다.
막혀 있는, 회색의 바위 벽으로 똑바로 걸어가자, 몸을 부딪치는 대신, 왠 넓은 동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사냥중 우연히 발견해 알고 있던 이 동굴에 캐롤린을 머무르게 하면서, 카를로스 백작이 동굴 입구에 환상 마법을 걸어 두었던 것이다.
"오셨어요, 백작님!
어머! 안녕하셨어요, 공작님?"
백작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타퀸 공작의 모습을 보고..... 동굴 안에 있던, 캐롤린은 약간 겁먹은 표정이 되었으나,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성에 있을 때 늘 입고 있던, 검정 드레스의 하녀복 차림이었다.
백작이 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네 개의 등잔불을 바닥에 켜놓아 환하게 밝혀 놓고 있었다.
동굴 안은 안쪽으로 깊지는 않았지만, 정사각형 모양의 큰 방처럼, 옆으로는 제법 넓고, 천장도 머릴 부딪칠 걱정은 없을 정도로 꽤 높은 편이었다.
"그래! 우리 며느리 잘 있었느냐?"
밤비르(흡혈귀)가 된 캐롤린이 인간이었을 때와 다를 바 없이..... 타퀸 공작이 스스럼없는 태도로 인사하자..... 캐롤린도 따라서 생긋 웃으며, 겁먹었던 표정이 풀렸다.
"어머! 며느리라니요?"
왼손에 들고 있던 조그만 갈색 자루를 동굴 바닥에 내려 놓은, 타퀸 공작이 자루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역시 자루보다도 훨씬 큰 그것은..... 눈처럼 새하얗고, 무척 고급스런 느낌의 드레스였다.
크고, 작은 다이아들로 장식되어 등잔 불빛을 받아 화려하게 빛나는 모습이, 왕실 무도회나 파티 같은 곳에 입고 나가면, 어울릴 듯한.....
아니, 그보다는..... 아마도, 결혼식때 신부가 입으면, 가장 잘 어울릴 듯한.....
"이건 네 거다!"
캐롤린이 놀란 표정으로 드레스를 받아들자.....
타퀸 공작이 이번에는 남자용의 검정색 예복을 자루 안에서 꺼내, 카를로스 백작에게 내밀었다.
검정 바탕에, 금실 무늬들이 곡선으로 아로새겨져 있고, 다이아 단추들이 달려 있는..... 화려하고, 고급스런 예복이었다.
드레스와 예복을 받아들고, 의아한 표정들을 짓고 있는, 캐롤린과 카를로스 백작에게..... 타퀸 공작의 말이 이어졌다.
"처음 봤을 때부터..... 나는, 너희 둘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너희 둘이 싫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결혼식을 올려서, 캐롤린을 정식으로 네 둘째 부인으로 삼는 게 어떠냐?
하객들은 부를 수 없겠지만.....
주례가 공작이면, 격이 떨어지는 결혼은 아닐 거다!"
역시나. 괴팍스런 그의 양아버지답게..... 사전에 전혀 언급이 없었던, 갑작스런 말이었다.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카를로스 백작은 남자용 예복을 손에 든 채,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던 바입니다, 아버님!"
"너만 원하면 되냐?
청혼부터 해서, 승낙을 받아야지!"
타퀸 공작이 아주 조그만 나무 상자 한 개를 자루에서 꺼내며, 반쯤 열어 보였다.
붉은 색의 부드러운 천이 깔려 있는, 조그만 상자 안쪽에서는, 크고, 화려한 다이아 반지 한 개가 반짝이고 있었다.
자신과 캐롤린이 들고 있던 신랑 예복과 신부 드레스를 바닥의 담요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후..... 카를로스 백작이 다이아 반지가 든 상자를 받아 들었다.
왼쪽 무릎을 세운 자세로, 캐롤린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정중한 목소리로 진지하게 청했다.
"저와.....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캐롤린 프리몰라양!"
"흐흑, 흐흑흑흑흑흑!"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캐롤린이 기쁨과 놀라움의 울음을 터뜨렸다.
"흐흑흑! 흐윽, 흐흑흑흑! 기꺼이요! 카를로스 백작님!"
다이아 반지를 상자에서 꺼내..... 흐느끼며 왼손을 내민, 캐롤린의 새하얗고 가느다란 약지 손가락에, 끼워 주었다.
얼핏 보기에는 커 보였으나, 손가락에 끼워주자 줄어들면서 꼭 맞게 변했다.
"잠깐 동굴 밖에 나가 있을테니, 옷들을 갈아 입으렴!"
잠시후, 다시 들어온 타퀸 공작 앞에..... 새로 결혼할 한 쌍이 화려한 예복 차림으로 섰다.
"결혼 예물도 지금 주마!
여기 있는..... 이 자루다!
조그만 자루같지만..... 수십 벌의 드레스들과 다른 옷들이 들어 있고, 다시 넣을 수도 있다.
자루보다 크기가 큰 모든 물건은..... 자루 입구에 닿는 대로, 크기가 20분의 1, 무게는 50분의 1로 줄어들 것이다.
반지와 목걸이들도 같이 들어 있다.
전부 특별한 매기아(마법)들이 걸려 있어서..... 더러움을 타지도, 낡지도 않을 것이며, 설사 찢어지거나 파손되더라도 다시 복구될 것이다.
카를로스 네 옷들도 같이 들어 있다.
뭐..... 좋은 옷들이니, 결혼 선물로 생각하렴.
그리고, 가장 큰 결혼 선물은 이것이다!
"티엠포 파레"(시간 정지) 매기아(마법)가 걸려 있는 종이다!
찢으면..... 큰 모래시계가 한 번 정도 떨어질 동안(약 30분), 사용자 본인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것이..... 심지어는, 흐르는 물과 바람조차도, 정지해버릴 것이다.
하지만, 사용자는 자신뿐만 아니라, 정지해있는 다른 것들도..... 자신의 힘으로 가능한 것들이라면, 뭐든지 움직일 수도, 부술 수도 있다."
화려한 검정 예복 차림의 카를로스 백작이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사용하기에 따라서..... 역사를 바꿀 수도 있을 매기아(마법)로군요!
그런 매기아가 정말로 가능합니까?"
"물론 불가능하지!
매기아(마법)만으로는 말이야!
악과 파괴의 신인 다곤과의 계약을 통해 최근에 얻어낸 거다.
다곤 신의 특별한 제약이 걸려 있어서..... 9레벨의 매기아러(마법사)인 나조차도, 저 종이에 한번 담았을 뿐, 두 번은 사용할 수 없다.
지금 네 피를 한 방울만 떨어뜨리렴, 아가!
그러면, 오직 너만이..... 종이를 찢으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게 될 거다!"
"지금까지 해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요, 아버님! 흐흑흑!
이런 귀한 것까지 받을 수는....."
울먹이는 캐롤린에게 타퀸 공작이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네게..... 가장 필요할 매기아(마법)다!
게다가, 너 이외의 다른 사람이 사용하게 해서도 안된다!
악용되면, 굉장히 큰 일을 초래할 수도 있는 매기아이니.....
어서 받으렴!"
타퀸 공작은 밤비르(흡혈귀)가 된 캐롤린이..... 밤비르를 퇴치하러 온 자들에게 몰려서 쫓긴다든가, 갑작스런 위험에 처할 상황을 우려하는 듯 했다.
"예, 아버님! 고맙습니다! 흐흑!""
울면서 종이를 받아든 캐롤린이 새하얀 신부용 장갑을 잠시 벗더니, 입안에 검지 손가락을 집어 넣었다.
작지만 예리하게 베인 상처가 생기면서, 손가락 끝에서 붉은 핏방울들이 똑똑 떨어져 종이 위에 떨어졌다.
음산한 느낌의 붉은 빛으로 종이가 한번 빛나더니, 천천히 빛이 가라앉으며 사라졌다.
캐롤린의 손가락에 났던 상처는 어느새 깨끗하게 다시 아물어 있었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밤비르(흡혈귀)의 치유력(낫는 능력) 덕분이었다.
"좋아! 내 앞에들 서라!
이제부터 보여주려는 것은..... 늙은 매기아러(마법사)의, 작은 눈속임에 불과하다.
하지만..... 명심해라!
눈앞의 모든 것이 환상이더라도..... 너희 둘의 결혼은..... 정말이라는 걸!
콘페시오 일루시온!" (환상 창조)
눈부실 정도로 새하얀 빛이 넓은 동굴 안을 가득 메웠다.
빛이 사라졌을 때..... 주위의 모습은 어느새, 넓고 화려한 어느 궁전의 홀로 바뀌어 있었다.
세 사람은..... 빨갛고, 파랗고, 노란, 색색의 꽃들로 화려하게 장식된, 넓은 나무 단상 위에 서 있었고,
화려한 옷차림의, 수많은 하객들이 단상 아래쪽을 가득 메운 채..... 이편을 향해 정답게 웃으며, 박수들을 치고 있었다.
수정으로 된 듯한, 화려하게 빛나는 천장에서는..... 은은한 향기와 함께, 붉은 장미 꽃잎들이 끝도 없이 떨어져 내렸다.
단상 위의, 나무 연설대 뒤에 선, 타퀸 공작이..... 두 사람을 앞에 세워 둔 채, 엄숙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기쁜 날, 자리를 빛내주고 계신 모든 분들께..... 주례로서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신랑, 신부의 새로운 이 가정에, 넘치는 행복이 항상 함께 하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신랑 카를로스 반 피제프 백작은..... 일레기아 왕국의 명문 피제프 백작가의 외아들로서, 장래가 촉망되는..... 8레벨의 고위 매기아러(마법사)입니다.
신부 캐롤린 프리몰라는..... 10살때 빵 한 조각의 작은 인연으로, 참으로 운이 좋았던 신랑과 만나게 되었으며, 상냥하고 따뜻한 마음씨라는, 가장 귀한 보물을 갖고 있는..... 착하고, 현숙하며, 아름다운 처녀입니다.
....."
제대로 준비를 해왔는지, 타퀸 공작의 주례사는 상당히 길었지만..... 마침내 끝나서, 결혼 선서를 할 때가 되었다.
"신랑 카를로스 반 피제프는..... 신부 캐롤린 프리몰라를 아내로 맞이하여,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변함없는 사랑을 나누며, 죽음도 그 사이를 갈라 놓을 수 없는..... 영원한 배우자로 맞이할 것을 서약합니까?"
"예!"
"신부 캐롤린 프리몰라는..... 신랑 카를로스 반 피제프를 남편으로 맞이하여,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변함없는 사랑을 나누며, 죽음도 그 사이를 갈라 놓을 수 없는..... 영원한 배우자로 맞이할 것을 서약합니까?"
"예! 흐흑, 흐흑흑!"
새하얗게 빛나는 드레스 차림의, 새하얗고, 조그만, 금발머리 신부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면서도.....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두 사람은 정식으로 부부가 되어.....
캐롤린 프리몰라는 캐롤린 반 피제프라는 이름으로 카를로스 반 피제프의 부인이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신랑은..... 신부에게 키스하시오!"
타퀸 공작의 결혼 선언에 이어.....
카를로스 백작은 고개를 숙여, 그의 조그맣고, 귀여운 신부 캐롤린의 작고, 붉은 입술에 깊이 키스했다.
달콤하고, 진한 키스와 함께, 눈을 감았던 두 사람이 다시 눈을 떴을 때.....
주위의 모습은..... 어느새 결혼식 홀에서, 화려한 무도회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새하얀 대리석 바닥의 홀에서, 화려한 색색 옷차림의 수많은 쌍쌍들이 부드러운 왈츠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고 있었다.
천장에서 비춰 내려오는, 둥글고, 새하얀 빛의 조명이..... 오늘의 주인공들인, 무도회장 중앙의 두 사람 - 갓 결혼한 신혼부부를 비추어 주고 있었다.
"자! 같이 춤 출까?"
"예, 백작님!"
"여보라고 해야지!"
"예..... 여보! 흐윽, 흐흑흑흑흑!"
긴 금발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회색 눈동자의, 조그맣고, 귀여운 신부와.....
검은 머리를 어깨까지 늘어뜨린, 갈색 눈동자의, 거인처럼 덩치가 크고, 잘생긴 신랑이.....
서로 포옹한 채..... 부드러운 왈츠 음악에 맞춰, 천천히 돌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하녀와 백작..... 밤비르(흡혈귀)와 마법기사라는..... 그들의 신분과, 본질 만큼이나..... 대조적인 모습의 한쌍이었으나.....
따뜻한 시선으로 마주 보며, 춤추고 있는 그들의 얼굴은..... 세상의 어떤 닮은 커플들보다도, 훨씬 더..... 다정하고, 행복해 보였다.
........................................................................................................................
다시, 8년의 세월이 흘렀다.
카를로스 반 피제프 백작의 나이 이제 44살이 되어, 눈에 띄게 늙기 시작했으나.....
양아버지 타퀸 반 오쉴리아니 공작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그의 둘째 부인 캐롤린 반 피제프는 변함없이 26살때의 외모 그대로였다.
"험험! 이제는 누가 봐도..... 아버지와 딸로 보이겠는데....."
"어머! 젊어 보이는 부인을 뒀다고, 부러워 하겠죠, 여보!"
귀엽게 웃으며, 캐롤린은 조그맣고, 날씬한 몸을 기대듯..... 백작의 품에 꼬옥 안겼다.
하녀시절 입었던 검정색 드레스 대신..... 고급스런, 녹색의 드레스 차림이었다.
카를로스 백작은, 바쁜 양아버지 타퀸 공작에게서 밤에 마법을 배울 수 밖에 없다는 핑계로..... 일주일에 세 번씩 캐롤린을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캐롤린이 지내고 있는 꽤 넓은 동굴 안은..... 변함없이, 입구가 마법으로 숨겨져 있었고,
바닥의 붉은 색 양탄자와 침대, 소파와 탁자, 의자 등등..... 이제는 살림집처럼, 이런저런 가구들을 제법 갖추고 있었으나, 거울만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의 아내 캐롤린의 기분이 상할 것을 걱정한 카를로스 백작이 가져오지 않았던 것이다.
일반인들에게도 꽤 널리 알려진 얘기였지만.....
밤비르(흡혈귀)는..... 마치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존재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거울에 그 모습이 비치지 않는 존재였다.
"여보! 요새는 항상 뭔가 걱정거리가 있으신 것처럼 보여요! 무슨 일이 있으셔요?"
"그게..... 아버님이 계신, 매기아러(마법사)들의 왕국 만수리아가 벌써 석 달째, 내전에 휘말려 있다오.
만수리아 왕국만이 아니라, 매기아러들의 일곱 왕국들과 다섯 제국들 모두가 마찬가지라오.
네오 이브라(새로운 시대)라는 매기아러(마법사)들의 비밀 결사단체가..... "매기아(마법)의 정수(핵심)"를 다같이 공유할 것을 요구하면서,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오."
""매기아(마법)의 정수"요?"
"9레벨까지 있는 매기아는..... 얼핏 보기에는, 자질구레한 것들까지 전부 합쳐야, 수백 가지도 채 안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무수히..... 많다오!
왜냐하면, 똑같은 매기아(마법)라도 구현해내는 과정이 얼마나 효율적이냐에 따라서..... 그 위력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오.
잘 알려진 얘기로..... 저 악명높은 글레이셔(얼음) 일족의 경우에는 "글레이셔 란자"(얼음의 창)를 주무기로 애용하지만.....
그들의 2레벨 매기아(마법) "글레이셔 란자"를..... 7레벨이나 8레벨의 강화 바레라(방어막)로도 막기가 벅차다오.
1,000년이 넘는 동안 다듬어진 그들의 "글레이셔 란자"(얼음의 창)는..... 이미, 그 위력이 "글레이셔 란자"라고 불릴 수도 없을 정도라오.
그들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많은, 전통있는 매기아(마법) 명문 집안들은, 그들만의 매우 정제되고 다듬어진..... 이름만 같을 뿐, 그 위력에서 천지차이인 매기아들을 많이 갖고 있소.
이러한 지식들을..... "매기아(마법)의 정수"라고 한다오."
마법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캐롤린으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요 몇 달째 항상 걱정에 휩싸여 있는 남편을 보고 있으려니, 가슴이 너무 아팠다.
"스르르륵!"
입고 있던 고급스런 녹색의 드레스를 벗은 캐롤린이 가슴 가리개와 하얗고, 조그만, 앙증맞은 아래 속옷을 벗어, 새하얗고, 날씬한 알몸을 드러냈다.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는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으며, 새하얀 두 다리를 넓게 벌린 채, 양손으로 성기를 활짝 벌렸다.
"당신만을 위한..... 음란하고, 조그만, 금발머리 창녀 캐롤린 반 피제프입니다!
캐롤린의 새하얗고, 귀여운 알몸을..... 오늘도 마음껏 귀여워해 주셔요!
바깅(보지), 항문, 입..... 어디든 마음대로 사용해 주셔요!
입안을 변기로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성기의 주름이 양옆으로 한계까지 잡아당겨 벌려져.....
분홍에 가까운 고운 빛의, 촉촉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속살과, 꼬옥 아물려 있는 성기 구멍, 아래쪽의 항문 구멍까지 환히 드러난..... 아름다우면서도, 한없이 음란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남들의 눈을 피해 성관계를 맺기 시작한지 21년째, 타퀸 공작의 주례로 두 사람이 정식으로 결혼한지도 8년째였지만.....
‘어리고, 귀여운" 캐롤린이 음란한 말과 함께, 이렇게 음란한 모습을 보이는 걸..... 생전 처음 보는 카를로스 백작이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검정 바지를 입고 있는. 백작의 아랫도리가 흥분해서 부풀어오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캐롤린으로서는 떠올리기 싫은..... 매우 고통스러웠던..... 가슴 아프고, 수치스런 기억들이 담겨 있는 "인사말"이었으나.....
예전에, 그녀를 발가벗겨 놓은 채, 장난감 다루듯 학대하고, 윤간했던 남자들 모두가..... 캐롤린에게 이런 인사말을 시키며, 좋아들 해서.....
이런 "인사말"이 있었다는 걸 모르는, 그의 남편 카를로스 백작도..... 틀림없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도저히, 다시 입밖에 낼 엄두가 나지 않았었지만.....
몇 달째 어두운 표정인 그녀의 남편이 잠시라도 걱정을 잊고, 기뻐하게 할 수 있다면.....
캐롤린은..... 자기가 아무리 괴롭더라도,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다.
남편에게 다가가 무릎꿇은 채로, 바지 단추들을 풀고, 바지와 속옷을 내린 후.....
작고, 붉은 입술을 벌려, 흥분해 일어선 그것을 깊숙히 물었다.
"추웁! 추우웁! 할짝! 할짝!
혹시 소변을 보고 싶으시면..... 할짝, 할짝! 입안에 그대로 소변을 보셔도 돼요, 여보! 추웁!
전부 삼켜 드릴게요! 추웁, 추웁!"
물론, 카를로스 백작으로서는 실제로 그런 일을 한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었지만.....
귀엽고, 순진한 얼굴로, 음란한 말을 하는 그의 아내에 대해, 아찔할 정도로 큰 흥분감을 느꼈다.
충분히 흥분한 듯한 남편의 모습에, 뒤로 돌아 엎드린 캐롤린이 새하얗고, 조그만 엉덩이를 높이 쳐들며, 유혹하듯 흔들어 보였다.
"어느 쪽이든 넣어 주셔요, 여보!
바깅(보지)도 좋고, 항문도 좋아요!"
으응! 아아아, 하앙! 아응, 아아아아앙!"
카를로스 백작의 손이 성기의 갈라진 틈을 벌리며, 부드럽고, 예민한 부위들을 애무하기 시작하자..... 캐롤린이 새하얗고, 가냘픈 알몸을 떨며 신음했다.
아래쪽의 성기를 손으로 애무해 주면서..... 카를로스 백작이, 천천히, 새하얗고 부드러운 엉덩이 사이의 항문 구멍에 자신의 대물을 밀어넣기 시작했다.
캐롤린이 혹시 아프기라도 할까봐 몹시 조심스런 태도였다.
캐롤린이 말한 "인사말"은 이전의 수치스러웠던 때와 비슷했지만..... 그 말을 듣고 흥분해, 지금 캐롤린의 몸을 가지려는 사람은 그 때의 자들과는 전혀 달랐던 것이다.
"으으으으응! 우웃, 하앗, 아우우웅!
좋, 좋아요, 여보! 으으응, 하아아! 제 엉덩이 예뻐요?"
"그렇소! 새하얀 보석으로 된 것처럼..... 너무 예쁘고, 너무 부드럽군!"
나이를 먹으면서, 카를로스 백작은 캐롤린에게, 완전히 반말투의 말은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밤비르(흡혈귀)인, 그의 부인의 외모는..... 8년전 26살 때의, 그 당시에도 나이에 비해 많이 어려 보였던 그 모습 그대로, 전혀 달라지지 않았지만.....
때로는, 어린애에, 하녀였던 자신에게, 편하게 반말을 했던 시절의 말투가 나았던 듯한 기분도 들었지만.....
캐롤린은 불평하는 대신, 새하얗고 부드러운 엉덩이를 더욱 뒤쪽으로 내밀어, 그의 사랑하는 남편을 더욱 몸속 깊숙히 받아 들였다.
"아응, 으우웅, 우우우..... 하앙, 너무 좋아요, 여보!
캐롤린의 음란한 바깅(보지)에도 손가락들을 넣어서..... 아앙! 항문과 같이 귀여워해 주셔요!
하아앙, 아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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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린이 다소 심하게 무리까지 해가면서, 자극적이고, 달콤한 섹스를 갖게 해줬지만..... 카를로스 백작의 근심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었다.
마그나 매기아(위대한 마법)력 1,106년.....
비밀결사단체인 "네오 이브라"(새로운 시대)가 일으킨 내전의 먹구름은..... 마법사들의 5대 제국들과 7개의 왕국들 전부를 뒤덮고 있었다.
마법 실력에 따라 작위며, 권력, 재산 등이 부여되는, 마법사들의 질서체계는..... 얼핏 보기에는 매우 공정하고, 합리적인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로는, 오랜 세월 정제되고, 발전된 "매기아(마법)의 정수(핵심)"를 물려받는 명문 귀족가의 후손들이나 그 제자들은..... 남들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서 출발한다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출발점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무리 뛰어난 천재거나, 아무리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한다고 해도..... 마법 학교에 가면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공개된 마법지식들만 손에 쥔 마법사들은.....
몇 백년, 때로는 심지어 1,00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정제된 "매기아(마법)의 정수"를 손에 쥔, 명문 귀족가의 마법사들을..... 절대로, 넘어설 수 없었다.
역시나, 마법 실력에서..... 보다 정확하게는, 이름이 같은 마법이라도, 그 위력에서 크게 뒤지는 이상.....
처음, 반란을 선언하고, "매기아의 정수"의 공개를 요구했던 "네오 이브라(새로운 시대)"의 지도자급 마법사들이 연거푸 제압당하고, 체포당하면서.....
그들의 반란은 손쉽게 진압될 것처럼 보였었다.
그러나, 처음 모습을 드러냈던 "네오 이브라"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명분을 발표하고, 스스로의 희생을 처음부터 각오하고 있었던, 명목상의 지도자들에 불과했다.
놀랄 정도로 많은 수의 마법사들이..... "네오 이브라"의 숨겨진 단원들이거나, 적어도 속으로 그들을 지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는, 마법사들의 제국들과 왕국들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조차도, 언제 수정구슬 지팡이를 들이대면서..... "쥬빌리아, 네오 이브라!"(네오 이브라, 만세!)를 외칠지 모를 지경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명문 귀족가 출신의 고위 마법사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의 핵심인 "매기아(마법)의 정수(핵심)"를 남들과 나눌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번거롭고, 혼란스런 상황이 몇 달째 이어지고 있기는 했으나.....
실질적인 전투에서는..... 마법의 위력에서 훨씬 앞서는 명문 귀족 마법사 진영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것이다.
"네오 이브라"(새로운 시대) 단원들이 반란을 일으켜 힘들게 점령한 성들은..... 고위 마법사들이 참가한 중앙군의 본격적인 진압을 견뎌내지 못했고.....
고위 마법사들에 대한 "네오 이브라" 단원들의 목숨을 건 암살 시도도 번번히 실패로 돌아갈 뿐이었다.
카를로스 반 피제프 백작은..... 그의 양아버지이자, 마법사들의 왕국인 만수리아 왕국의 공작 타퀸 반 오쉴리아니에게 몇 차례나 자신도 함께 도울 뜻을 밝혔으나.....
자질구레한 일에 불과하니 신경쓸 필요없다는 대답만을 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한번씩은 잠깐씩 들러서, 마법 공부를 봐주기도 하고, 얼굴도 보고 가던 타퀸 공작이..... 카를로스 백작의 성에 찾아오지 않은지도 한달 가까이 돼가면서.....
카를로스 백작은 마침내 자기쪽에서 공작의 성에 찾아가 보기로 했다.
"트랜스포라!" (장거리 이동)
가문의 보검 "샹 망게러"(피를 먹는 자)를 뽑아든 백작의 발밑에서..... 검은 빛의 기둥이 솟아 올랐다.
공작의 성이 위험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내전중이라는 점을 생각해서..... 적대적인 마법을 막아주는, 검은 색의, 전신 철판 갑옷을 입은 채였다.
투구까지 쓰진 않았지만.....
대리석처럼 새하얀 돌로 된, 웅장하고, 아름다운, 타퀸 공작의 성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법으로 타퀸 공작의 방으로 바로 이동했으면 편했겠지만.....
공작의 성은 전체가 특별한 마법으로 보호되고 있어서, 성 안에 가본 적이 있는 마법사라도 "트랜스포라"나 ‘이무베아’로 외부에서 바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 트랜스포라 : 장거리 이동 마법; 6레벨; 마법사가 최소한 한번 이상 가본 적이 있어서, 머리속에 기억하고 있는 장소로만 이동할 수 있음; 마법사 본인만 이동할 수 있음
* 이무베아 : 단거리 이동 마법; 4레벨; 이동거리가 짧지만, 익숙해지면, 매우 빠른 속도로 구사할 수 있어서 ‘순간이동’ 마법으로 불리기도 함; 다른 사람을 붙잡고, 함께 이동할 수도 있음)
"응?"
카를로스 백작의 갈색 눈동자들이 가늘어졌다.
넓은 해자(성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물)를 건너 성안으로 들어가는 다리 입구에..... 지키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평화시에도 8명의 병사들이 중무장한 채, 항상 지키고 있었던 곳을.....
하물며, 비밀결사단체 "네오 이브라"(새로운 시대)와 내전중인 지금, 비워놓는다는 것은 상식밖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톱니 날의 양날 검 "샹 망게러"(피를 먹는 자)의 칼자루를 쥔, 백작의 오른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다리를 건너, 성안으로 들어가자 더욱 예상밖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통로와 복도, 계단 등등..... 성안 곳곳에 이런저런 물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마치 좀도둑들의 약탈이라도 있었거나, 성안 사람들이 급하게 도망이라도 가다가 떨어뜨린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갈색 로브(헐렁하고, 긴 겉옷) 차림의 마법사들이 시체가 되어 쓰러져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상처는 없어 보였으나..... 하나같이 왼쪽 가슴께를 움켜쥔 채, 괴로운 표정으로 숨이 끊어져 있었다.
"놀랍군! 전부 매기아러(마법사)들의 시체들뿐이잖아!
매기아러만 골라서 공격하는 매기아(마법)가 있었던가?"
카를로스 백작이 고개를 저었다.
모양으로 봐서, 어떤 종류의 마법 공격을 받았다는 건 틀림없었지만.....
8레벨 마법사인 그의 지식 범위 내에서는..... 건물이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피해없이, 오직 마법사들에게만 치명타를 줄 수 있는, 그런 마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였지만, 혹시나 있을지 모를 기습을 주의하면서..... 카를로스 백작은 양아버지 타퀸 공작의 방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아버님! 아버님!"
머리가 하얗게 센, 매부리코의 마법사 - 사납고, 호전적이고, 오만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와 캐롤린에게는, 누구보다도 자상하고, 따뜻했던 양아버지 타퀸 반 오쉴리아니 공작은.....
여느 때의 갈색 로브 차림으로, 넓은 자신의 방 책상 옆 바닥에 누워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중, 뭔가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일어서던 도중에 쓰러져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다행히도, 타퀸 공작은..... 몸이 따뜻한 것이, 아직 숨이 붙어있는 상태였다.
바닥에 앉아, 타퀸 공작의 머리를 받쳐들며, 카를로스 백작은 다급한 목소리로 그의 양아버지를 불렀다.
"아버님! 아버님!"
갈색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힘없이 떠졌다.
입술이 움찔거리며 열렸다.
"멍청이! 여긴..... 왜 왔냐?
나를 놔두고, 어서... 가! 너도..... 위험하... 다! 쿨럭! 쿨럭!"
말끝에 터져나온 기침과 함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아버님! 이게 어떻게 되신 겁니까?
제 캐츄(성)로 어서 가서, 치료를 하시죠!"
힘없이 타퀸 공작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미 틀렸... 다.
"네오 이브라"(새로운 시대) 놈들이..... 금지된 매기아(마법)를 사용... 했다. 쿨럭!
모든 매기아러(마법사)들의 심장에 치명타를... 쿨럭! 우욱! 가하는.....
"네오 이브라" 놈들 자신을 포함해서.....
왕국 내의 모든... 쿨럭! 매기아러들이 전멸했다!
너는..... 집안에 심장 발작... 쿨럭! 내력도 있다면서..... 쿨럭! 쿨럭!
나를 놔두고..... 어서 떠나라!
아직 남아... 쿨럭! 있는 매기아(마법)의 힘에..... 너도 영향받... 을 수 있다."
카를로스 백작이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놀랍고, 끔찍한 위력의 매기아(마법)가 있었다니..... 그런 매기아가 가능합니까?"
"물론 불가능... 하지! 쿨럭!
매기아(마법) 단독... 쿨럭! 으로는 말이야! 쿨럭! 쿨럭!"
기침을 할 때마다, 입에서 피를 토하는 모습이..... 타퀸 공작도 이미 상당히 치명적인 내상을 입고 있는 듯 했다.
"악과 파괴의 신... 우우욱! 다곤과의... 쿨럭! 계약을 통해 힘을 빌린 것이다!
8레벨 이상의 매기아러(마법사) 16명이..... 쿨럭! 쿠욱!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심장... 을 각기 제물로 바치고, 복잡한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우욱! 쿨럭! 쿨럭!
매기아(마법)를 다루는 모든 자들의 심장을 터뜨... 리는, 금지된 매기아(마법) - "하트 데바스티온(심장 파괴)"..... 쿨럭!
그런 미친 매기아를... 우욱! 쿨럭! 정말로 쓰는, 미친 놈들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쿠우욱! 쿨럭!"
믿어지지 않는 얘기에 고개를 저으며, 카를로스 백작이 그의 양아버지를 조심스럽게 다시 바닥에 내려 놓았다.
"지금..... "트랜스포라"(장거리 이동 마법)를 사용하실 수 없는 상태이시죠?
제 캐츄(성)까지는 "이무베아"(단거리용 순간 이동 마법)로 가기에는 너무 머니.....
지금부터 매기아(마법) 진을 양쪽에 그려서, 모셔 가도록 하겠습니다."
씁쓸한 표정으로 타퀸 공작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다, 아들아!
내 몸 상태는..... 쿨럭! 내가... 쿠욱! 가장 잘 알아!
나는... 길어야... 쿨럭! 쿨럭! 큰 모래시계가 한번 떨어질 시간(약 30분)도..... 쿨럭! 버티지 못한다!
저 책꽂이 밑에서 다섯 번째줄에..... "리브레 데 다크 매기아"(흑마법의 서)가 꽂혀... 쿨럭! 있을 거다. 쿨럭!"
타퀸 공작이 힘없는 턱짓으로 방 한쪽의 크고, 고급스런 책꽂이를 가리켰다.
"그걸..... 반쯤 뺐다가 다시 집어넣기를 세 번 반복하면..... 책꽂이가 뒤집히면서, 안쪽에 숨겨져 있는, 수백 권의 책들이 나타날 거다. 쿠욱!
그것들을..... 쿨럭! 우욱! 쿨럭! 꼭 가져가라!
그 책들이야말로..... 쿠욱! 쿨럭! 700년의 역사를 가진 명문 오쉴리아니 가문의 "매기아(마법)의 정수"로다! 쿨럭!
너는 이미..... 쿨럭! 배우고 있었던 내용이다만..... 쿨럭!
나의 계승자로서..... 잘 관리하고, 익힌 후에..... 쿠욱! 쿠우욱! 우욱! 쿨럭! 쿨럭!"
책꽂이쪽을 잠시 쳐다보던, 카를로스 백작이 공작의 머리를 받쳐든 채로 말렸다.
"아버님! 더 이상 말씀하지 마십시오!
몸에 해로우십니다!"
"자격있는 후계자에게... 우욱! 넘겨 주어라! 쿨럭! 쿨럭!
지금 바로 해야... 한다! 쿨럭!
내가 숨이 멎은지 하루 안에... 쿨럭! 정확한 방법으로 꺼내지 않으면..... 쿠우욱! 자동으로 전부 타버리는... 쿨럭! 매기아(마법)가 걸려 있다. 쿨럭! 크윽!
내 귀엽고, 착한 며느리에게도..... 항상 잘 해주렴, 아들아!"
마지막 말과 함께 공작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아버님! 아버님!"
카를로스 백작이 다급하게 불렀으나, 그의 양아버지 타퀸 공작은 이미 숨이 멎어 있었다.
마치 잠든 것처럼 평안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구요?"
붉은 머리에, 새파란 눈을 가진 미청년이 홀 안에 들어서며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고급스런 파란 색 튜닉(허벅지 가까이까지 오는 긴 웃옷)과 바지 차림에 허리띠에는 긴 칼을 차고 있는 미청년은..... 3헥사 7토르(약 185센치) 정도의 키에, 그림처럼 늘씬하고 잘생긴 모습이었다.
"그래! 네 조부님만이 아니라..... 모든 매기아러(마법사)들이 세상을 떠났다.
매기아러들간의 내전중에..... 금지된, 끔찍한 매기아(마법)가 사용되는 바람에....."
자신의 성에 돌아와, 하인들과 함께 타퀸 공작의 시체를 관에 모시고, 장례를 준비하던 카를로스 백작이 우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검정 튜닉에, 검정 바지를 입은, 검정색 일색의 옷차림이었다.
"예? 그 지긋지긋한 매기아러(마법사)들이..... 전부 죽었단 말인가요?
그렇다면, 아버님!
이러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리안 국왕 폐하께 알리고, 병사들을 모아서..... 이제 빈 땅이 된 매기아러(마법사)들의 땅을 차지하러 가야죠!"
우울한 표정으로 카를로스 백작이 고개를 저었다.
"폐하께는 이미 전갈을 보냈다, 켄드릭!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네 조부님이신 타퀸 반 오쉴리아니 공작님의 장례식을 격식에 맞게 치뤄드리며, 그분을 애도하는 일이다.”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젓던 미청년 켄드릭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시다면, 장례식이 끝나는 대로, 바로 진군할 수 있도록..... 병사들을 준비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매기아러(마법사) 놈들이 100중 40으로 비율을 고정시켜 놓은 세금도..... 60이든 70이든 우리 마음대로 거둬서, 전부 우리가 가질 수 있겠군요!
우리 가문의 사병들도, 지금까지처럼 백여 명 수준이 아니라..... 어쩌면 몇천 명으로 늘릴 수도 있겠습니다!"
켄드릭은 사뭇 신난 표정이었지만, 카를로스 백작은 그의 장남을 힐끔 쳐다봤을 뿐이었다.
여전히, 타퀸 공작의 관 앞에 무릎꿇고 앉은 채, 묵념이라도 하듯, 다시 두 눈을 감았다.
붉은 천 위에 놓여진, 관 주위를..... 그의 하인들이 새하얀 꽃으로 온통 뒤덮듯 장식하고 있었다.
전혀 호응해주지 않는 부친의 모습에, 잠시 머뭇거리던 켄드릭이 부리나케 홀 밖으로 뛰어 나가며 소리쳤다.
"고급 장교들을 모두 불러 모아라!
중요한 지시사항이 있다!"
양아버지 타퀸 공작의 관 앞에 무릎꿇은 채로, 카를로스 백작은 남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친조부는 아니라지만, 어쨌든 조부인 타퀸 공작이 세상을 떠난 이 상황에서.....
세금을 더 거두고, 땅뺏을 궁리를 하며, 신나하는 그의 장남 켄드릭이 영 못마땅했으나.....
조만간, 임자가 없어진, 마법사들이 다스리던 땅을 두고 치열한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켄드릭이 신이 나서 열심히 준비한다면, 혼내거나 말릴 필요까지는 없는 일이었다.
사흘뒤,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할 무렵.....
온통 흰꽃으로 뒤덮힌 타퀸 공작의 관이 "캐츄 데 샹"(피의 성)에서 조금 떨어진, 피제프 백작가의 가족 묘지에 안장되었다.
세라피나 공주와 장남인 켄드릭은..... 보통보다 늦은 장례식 시간에 대해 투덜거렸으나.....
카를로스 백작은 못들은 척 엄숙한 표정으로, 장례식을 거행하고..... 새로 만들어진 타퀸 공작의 무덤 위에 하얀 꽃잎들을 손수 뿌리며, 양아버지인 공작을 떠나 보냈다.
"먼저들 돌아가라!
나는..... 잠시 더 여기 머물다가 가겠다!"
그의 가족들과 하인들, 호위병들까지 전부 사라진 후..... 묘지 한편의 나무 뒤에서, 검정 드레스 차림의 금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흐흐흑! 흐흑, 흐윽! 흐흑흑흑흑흑흑! 아버님! 아버님!"
울어서 눈가가 퉁퉁 부은 얼굴로 다가온 금발머리 여자는 흐느끼며, 카를로스 백작의 품에 쓰러지듯 안겼다.
"울지 마시오!
아버님께서도 마지막 유언으로 말씀하셨다오!
내 귀엽고, 착한 며느리에게 잘 해주라고....."
타퀸 공작이 마지막에 말한 "며느리"가..... 첫째 부인인, 아름답고, 당당한, 붉은 머리 여자 - 세라피나 공주가 아니라.....
눈앞에 있는..... 둘째 부인이자, 밤비르(흡혈귀)인, 예쁘고, 가냘픈, 금발머리 여자 - 캐롤린이라는 걸..... 백작은 잘 알고 있었다.
슬프게 흐느끼는 캐롤린을 꼬옥 품에 안은 채로, 카를로스 백작은 캐롤린의 부드러운 금발머리를 위로하듯 쓰다듬어 주었다.
백작의 갈색 눈동자들에서도 눈물이 흘러 넘쳐, 두 볼을 타고 캐롤린의 머리 위에까지 떨어지고 있었다.
햇빛 아래서는 활동할 수 없는 밤비르(흡혈귀)인 캐롤린도, 먼 발치에서나마, 참석할 수 있도록..... 장례식 시간을 저녁 무렵으로 잡았던 것이다.
비록, 타퀸 공작은 이미 묘지의 땅속에 묻혀 있었지만.....
카를로스 백작은..... "귀엽고, 착한 며느리"가 자신의 장례식에 참석해줘서, 그의 양아버지도 틀림없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다.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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