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당포-
학교를 다니면서도 스스로 내가 듣고 있는 수업이 도대체 시간당 얼마나 되는 가를 따져 본 적은 없었다. 언제나 성적을 개판 쳐 놓고 나면 듣게 되는 핀잔 속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 하면서 까지, 그 돈을 갖다 내다 버렸냐는 점에서 곱씹어 보긴 했지만, 정신 못 차리기는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영양가도 없는 미팅에다, 커피값, 당구장, 오락실, 교정 잔디밭에서 벌어지는 마이티 판까지, 온통 돈독이 올라 있는 모냥새로 나는 제대로 공부 한번 못해보고, 권총을 그것도 여러 개씩이나 주욱 차는 첫 학기를 마무리 했다.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지 하면서도, 속으로는 정신 차리고 있는데 뭘? 이란 물음이 이어 나오고 있었던 걸 보면, 난 정말 구제불능 이었지 싶다. 집에서는 여름 방학 동안 월급이 동결될 것이며, 자신이 쓰고 싶은 곳이 있으면, 스스로 벌어서 메우라는 최후통첩도 받은 지 오래였다. 난 돈이 궁했다. 다들 어찌나 잘들 살고 있는지, 유럽 배낭 여행이다, 깔치를 대동한 마이카 섹스투어 등등, 여름 방학 또한 돈 있는 것들을 위한 나날로 꾸며져 있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으이그… 저 화상! 이젠 권총도 모자라 아예 바주카 포를 차요, 글쎄……니가 무신 저팔계냐? 아예 권총으로 도배를 허지? 내 남사 시러워 누구한테 얘기도 못해. 대학교 들어 갔다고 길길이 날 뛰며, 환장을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누구는 장학금에, 알바네 하면서 미끄러 지듯이, 학교 생활 하는 애들도 있는데, 뭐, 놀러 가게 돈 쫌 보태라구? 왜? 아예 길거리에서 적선을 허지?’
‘알았어여, 알았다구여…..주기 싫으면 말지…..’
‘아니, 똥 싼 놈이 뭐란다구, 니 주제비에 왜 눈은 부라리고 지랄이래?’
‘원래 이렇게 생겨 먹은 걸 어떡허라구? 뵈기 싫으면 성형을 해 주든가! 작품에 손대면 작가의 존심을 건드린다구? 웃겨! 요즈음은 덧칠도 예술로 평가 받는 시절 이우. 남자라고 칼 대지 말란 법 없듯이, 요즈음 얼마나 주위의 친구들이 수술들 받는지 알기나 해여? 급하게 한 거 뽀록 나면 안 된다고 설랑…….’
사실 졸업에 임박해서 스킨케어를 받는다, 성형을 한다 난리법석을 피우는 것 보담, 사전에 안정된 수술결과를 토착화 시키기 위해서, 신입생 때에 벌써부터 여름 방학을 이용해 얼굴에 칼을 대는 남자들을 나는 많이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말해 무엇 하리? 난 그나마 여름을 나기 위해, 일자리를 알아보러 구직란을 살펴 봤다.
‘허이구, 철 나겄네! 알바도 하시려구여? 이번엔 권총 안주는 곳으로 쫌 골라 보시지?’
가족들의 비아냥이 귀에 거슬리기도 했지만, 패자는 말이 없는 법. 난 이번 여름을 계기로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도 학생의 신분을 확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절박함도 함께 했기에……그러나, 전화를 거는 족족, 사람이 벌써 다 찼다는 얘기들뿐이었고, 그나마 괜찮은 곳들은 들어 보나마나 의심이 졸나게 가는 다단계가 대부분 이었다. 난, 발로 뛰어 알바를 구해볼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마음만 앞섰지, 동체 되는 일이 없었다. 문을 나서자 말자, 어떤 씨부랄 년이 데불고 다니는 똥깡아진지는 몰라도, 대문 앞에 보란 듯이 싸 놓은 개똥을 사뿐이 즈려 밟질 않나, 번번이 버스 놓치기는 예사 였고, 일껏 돈 쪼개서 사 들고 다니던 생수병 마저, 내 마음과 다르게 손에서 미끄러져 길바닥을 대굴대굴 굴러버려, 나는 일자리를 구하기도 전에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고 말았다. 날씨는 어찌 그리 개판 인지, 길바닥에 나서기만 하면 멈췄던 비가 쏟아져, 나는 그야말로 비오는 타이밍 맞춰 지렁이 잡으러 뛰쳐 나가는 애들 꼴이 되고 말았다. 배도 고프고, 온 몸에서는 비와 땀이 뒤엉킨 쉰내마저 푹푹….., 죽을 맛이었다.
‘아휴, 오줌보 터지겠네…..어디 화장실 없나?’
요즈음은 인심도 야박해 져서 그 놈의 쓴 커피라도 안 팔아 주면 화장실을 내주는 법이 없어서, 나는 할 수 없이 돈이라도 아끼자는 심정으로, 조금씩 빤쭈에 찔겨서 말릴까 하다가 근처의 건물 중에 딸린 화장실이 있는가 하고 들어섰다. 허름한 5층 건물에 제대로 상점이나 입점하겠는가 하는 의심이 핑 돌기까지 하는 그런 건물을 들어서면서도,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다. 2층과 3층 사이에 버티고 있던 화장실, 그것도 자물쇠가 달리지 않은…..스스로 구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신다는 말씀이 틀리지는 않았다. 난 화장실로 튀어 들어가 바지를 까고, 소변기 앞에 섰다.
‘아…..아….아…..이거이 오르가즘 이야.’
난 항상 참았던 오줌을 방출할 때나, 혹은 힘껏 힘주고 있던 괄약근을 풀어, 쏟아 내놓는 설사를 가리켜, 오르가즘의 원형체라고 불러왔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느낌이 가져다 주는 해방감 이야말로 쾌감의 정수와 동일시 해왔기 때문이었다.
‘주머니에 먼지만 쌓인 놈이, 싸기는 우라지게 많이도 싸요!’
‘엥?’
이건 무신, 오입하다 쌩무릎 홀라당, 발라당 까지는 씨츄에이숀?
‘누구세여?’
‘누구긴 누구야, 여기 앉아서 똥누는 사람이지……썩을 눔…’
쏴와 하는 물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은 한 50대로 보이는 아저씨 였다. 머리 빼고 말이다. 머리는 거의 검은 머리가 없을 정도로 하얗게 세었는데, 그 빛이 은발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쭈! 게다가 묶었어요. 내 참! 아자씨? 개나 소나 다 묶고 댕기던 시절, 이제 지났거덩여?
‘너 일자리 구하지?’
아니, 그걸 어떻게? 난 그렇다고 대답했다. 역시 오르가즘 뒤에 다가오는 좇대가리의 포만감이란 옛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던 가 보다. 좇대가리가 아닌, 나의 뱃속을 빵빵 하게 채워 줄 일이 되기만을 바라면서, 나는 열씸히 할 테니, 무슨 일이라도 시켜달라고 운을 뗐다.
‘어려운 일은 아니고, 한 밤중에 일을 해야 되는데 할 수 있겠어? 밤 12시부터 새벽 3시 전까지……..뭐 아님 말구……’
‘그 까이 꺼……하져, 뭐……얼마나 주실 껀데여?’
‘돈은 시간당 7만원, 그런데 기간이 짧아. 딱 3일, 게다가 내가 7만원 더 얹어서 칠십 채워 줄 텐데, 어떤가?’
하늘이시여! 이게 왠 감동탕의 웨이브란 말입니까? 난 이러고 저러고 할 상황도 아니었지만, 이런 횡재가 또 있겠나 싶은 생각에 일의 내용을 묻고 자시고도 없이, 꿀꺽 삼켜 버리고 말았다.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흥분을 가까스로 가라앉히고 나서야, 나는 물을 수 있었다.
‘근데, 아저씨…. 무슨 일인데…..’
‘학생? 나 아저씨 아니거덩여?’
‘그럼 뭐라고 불러여? 아님,…….. 오빠?’
난 말을 해놓고 좇나리 후회했지만, 뱉어 놓은 말을 주어 담을 수는 없었다.
‘내 나이 벌써 89세 거덩요? 나이 처먹은 거 자랑은 아니라도, 대접은 꼭 받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다고나 할까? 정 부르기 그러면, 윤씨 아재라고 허등가? 내가 이래서 묶은 머리를 풀 수가 없어요. 다들 애 취급을 허니, 헐……’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건장한 체격은 20대 몸짱을 뺨치게 하고 있었고, 얼굴에는 주름이나 검버섯 하나 찾아 볼 수 없었을 뿐더러, 손은 얼마나 곱게 생겼는지…..내가 오빠라고 불렀는데, 아무런 대꾸가 없었던 것이 깨름찍 하기는 했다. 오빠라고 부르는 그 호칭에서 뭘 쫌 느껴댄 거 아냐? 그건 정말 아닌데……
‘암튼 그건 됐고, 일은 오늘 밤부터 당장 이야. 오늘 밤 11시 반 정도에 이 건물 4층으로 와. 내가 기둘릴 테니……’
‘4층에 뭐가 있는 데여?’
‘전당포….’
난 그 말을 들으며, 건물을 나오는 것과 동시에 오줌보가 터질 것 같아서 뛰어 들어간 그 건물의 외장을 그제서야 올려다 볼 수 있었다. 아무도 세 들어 있지 않고, 달랑 4층 유리창에 그려져 있는 전당포의 광고…….역시 건물이 후지니까, 장사하러 들어오는 사람이 없지 라며, 나는 혀를 끌끌 찼다. 난 보무도 당당하게 집으로 돌쳐 들어갔다.
‘왜 이런 대낮에 들어 오시나?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질 않든가벼?’
어머님의 비아냥에 나는 환한 미소로 답했다. 어찌 부모의 면전에서 인상을 구길 수 있느뇨?
‘일자리 구했지롱!’
난 자초지종을 자세히 늘어 놓았다. 떡 벌어지신 어머님의 입으로 파리라도 들어갈까 봐 나는 조용히 턱을 받쳐 드렸다.
‘궁하면 통한다구, 정말 잘 됐다. 한 밤중에 무슨 일이냐고 생각은 되어도, 뭐 지켜주고 그런 거 아니겄냐? 너야 내 몸으로 난 새끼 치고, 꽤 한 바디 하덜 않어? 밤사이 세상이 흉흉도 하니, 뭘 쫌 지켜달라는 거나 아닌가 싶다.’
난 일찌감치 자리를 틀고 벌렁 누워, 때 아닌 길고 긴 낮잠을 때렸다. 생활전선으로 과감히 뛰어든 아들내미의 역량을 높이 사는 의미에서 어머님께서는 발걸음도 조용조용, 저녁 먹기 전까지 나를 그렇게 내버려 두셨다.
‘일어나서 밥 먹어야지?’
집 안에 가득 감도는 음식 냄새….역시 돈이 좋긴 좋았다. 잔뜩 벌어진 밥상을 마주하면서 나는 신이 나고 있었다.
‘다녀 오겠습니다.’
평소 같으면 도끼 눈으로 이 밤중에 어딜 쏘다니려고 튀어 나가느냐, 정신이 있느냐, 없느냐 방방 뛰실 어머님께서 너무도 부드러운 음성으로,
‘쉬엄 쉬엄 혀.’
나는 대문을 나서면서 그렇게 어깨가 가벼울 수 없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었다. 11시 반이 거지반 되어서 난 그 건물에 도착했다. 사람의 인적도 뜸하고 건물의 뒤로 버티고 있는 작은 야산으로 인해, 을씨년스럽기 까질 했지만, 개의치는 않았다. 직장 아닌가 말이다!
‘똑똑’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에, 나는 문에 걸린 폐업이라는 종이를 보고 갸우뚱 했지만, 그냥 지나쳤다.
‘저 밖에 폐업이라고 적혀 있는데, 영업 안 하세여?’
‘응. 내건지 3일이 넘었는데도 계속들 두들겨서리, 귀찮아 죽겠쓰…..어서 정리를 해야지 원….’
‘그럼 일이란 게 이삿짐 나르기?’
‘뭐 그런 거랑 비슷허지. 없애기 위해 옥상으로 올려 보내야 허니껜 두루….’
‘이 많은 물건을요?’
‘거럼! 볼펜 찌끄래기 하나도 남김없이 위로 올려 보내야쥐, 안 그러면…….’
‘안 그러면여?’
‘암튼 내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내가 시키는 일에 대해서 질문은 지금부터 금물, 알았쪄? 주민등록증이랑, 학생증도 갖고 왔지?’
아효, 그 나이에 왠 애교? 주위를 살펴보니, 지금 당장 버려도 아깝지 않을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준비 되어 있던 목장갑을 끼고, 물건들을 5층위 옥상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물건을 나르면서 놀랐던 것은, 겉 모습만 몸짱이 아니라, 그 기운이 뻗치는 것처럼 나를 압도하는 분위기 때문에 난 제풀에 주눅이 들어가고 있었다.
‘아니, 사장님, 저건 뭐래여?’
난 첫 번째 물건인 오래된 괘종시계를 안고 올라가, 옥상에 내려 놓자마자, 눈에 들어온 커다란 쇠종 같은 물건에 시선이 고정되어 버렸다.
‘저거? 별거 아니야. 쇠로 만들어진 가마야. 쫌 커서 그렇지.’
‘가마여? 도자기 굽고 그러는….’
‘그럼, 타고 다닐까 봐?’
왠 썰렁? 옥상의 한 복판에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는, 그 쇠가마는 그 웅장함이 대단한 기세였다. 그 가마 주위로 멀찌감치 연결되어 있는 것은 여러 개의 충전 프로판 개스통 이었고, 그 옆에는 모터처럼 생긴 덩어리가 시커멓게 버티고 있었다.
‘궁금허지? 저 가마는 특수 제작한 가마야. 아마 수억 대 할 껄? 불붙은 개스의 화마가 펌프로 인해 벼락같이 뿜어져서 물건을 삽시간에 재로 만들지.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가마의 겉은 차다는 거야. 안 에서는 졸나리 불이 타서 생지옥을 방불케 하는데, 겉은 차갑기 그지없다. 꼭 뭐 영화의 한 장면 같질 않나? 쇠붙이도 여지없이 녹아 흐르지, 쇳물은 녹아서 밑으로 빠진 후에 바닥의 작은 구멍을 통해 밑으로 이어지지. 연기도 없고, 소리라고 해 봐야 저 모터 펌프의 진동뿐이니, 남들이 알 수도 없고……’
‘근데, 왜 이렇게 다 태워 없애여?’
‘질문은 금물 이라고 했는데, 그러니 권총을 수두룩 뻑뻑하게 차고 앉았지!’
‘아니, 일만 잘 하면 됐지, 왠 남의 성적은….’
‘본인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곳에 발을 들여 놓고도, 바로 볼 쭐을 모르니 그렇지….’
하긴 그랬다. 전공으로 밥 벌어 먹는 곳이 한국이 아닌 건, 삼척 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하물며, 평범한 3류 대학에서, 그것도 모자라 총까지 줄줄이 차고 있는 나란 사람이야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점수대로 학교와 학과를 찾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은 태클의 주제도 아니었는데….헐……
‘어여 물건이나 날러….놀고 앉아 있을 새 없쓰….’
정말 세 시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물건을 날라 올렸는데도, 별로 전당포의 내부는 티가 나질 않고 있었다. 그나마 3시가 거지반 되서 둘러 보니, 반정도의 물건이 빠지고 있어서, 내심 일한 티는 내는 구만 이라며, 목장갑을 벗어 옷을 털었다.
‘수고 했네. 보기 보담 강단 있어? 내일이면 거의 물건이 다 올라오지 싶네. 여기 오늘 일당……’
빳빳한 신권으로만 담겨 있는 일당이었다. 띠용! 봉투가 다 접히질 않았다. 내 좇대가리도 이러면 월매나 좋을꼬?
‘좇대가리야 생겨난 그대로, 타고난 그대로 놀고 자빠지는 걸, 뭣 하러 쓸데없는 기대는 하고 있어? 해바라기 피워 봐야 꽃이란 게 그렇잖나? 질 때가 반드시 있는 것이고, 약이랍시고 비료 쳐 봐야. 비 오고 나면 씻겨가는 걸…….’
이상한 것은 내가 하는 속내를 어찌 그리도 잘 알고 대답을 하느냐 하는 점이었다. 하긴 장사로 오랜 세월, 사람들을, 그것도 전당포에서 대하려면, 상대를 대쪽같이 판단할 수 있는 눈이 길러지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손님은 한 푼이라도 더 얻어 내려고 뺑끼를 때릴 것이고, 사장은 한 푼이라도 덜 주려고, 아귀다툼을, 그 오랜 세월 해 왔을 테니, 반 점장이는 다 되었을 거라는 나만의 판단 이기도 했다.
‘내일 뵙죠!’
난 지친 몸을 이끌고, 옥상에서 내려 왔다. 옥상의 비상열쇠도 갖고 있는 걸 보면, 그가 이 건물의 주인인 것도 같았다. 이제 나이도 있고 허니, 손님들과의 입씨름도 귀찮을 테고, 돈 구경도 제법 하셨을 테니 미련은 더더욱 없을 것 같았다. 그 다음 날도 나는 같은 일을 했다. 그것도 노동이라고, 전신에 쑤시고 땡기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이틀째 일당을 받으면서 나는 감개 무량해 지고 있었다. 벌써 오십만원에 육박하고 있다니!.......흑흑….이렇게 눈물이 앞서서리…….
‘내일은 물건 나를 일 없으니, 오기 전에 목욕이나 깨끗이 하고 와.’
목욕? 땀 쫄쫄 뺄 판에 왠 목욕?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이틀 동안 무보수로 일하면 어쩌나 하는 심정을 아시기라도 한 것처럼, 턱 하니 건네는 일당하며, 믿지 말아야 할 구석은 없었기에 말이다. 어머님도 한 밤중에 목욕하고 나서는 나를 보시면서 의아해 하셨지만, 당당히 내 보였던 빳빳한 신권의 일당을 보시고서는 덧말이 없으셨다.
‘왔는가?’
‘저, 오늘 할 일은?’
‘그저 여기서 물건을 소각하는 걸 도와 주면 돼.’
그러나, 벌써 물건의 4분의 3은 그 자리에 없었다. 내가 없는 하루 종일 물건을 소각하신 게 분명했다.
‘자네는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허나?’
‘네? 영혼이여? 그거 없으면 죽은 목숨이져 뭐.’
‘그렇지?’
‘네.’
‘여기 있는 물건들을 어째서 주인들이 찾아가지 않는다고 생각해 본 적 있나?’
그건 그랬다. 아무리 기한을 넘겨서 전당포 사장의 소유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저렇게 임의 대로 소각하고, 재로 만들 권리는 없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이 물건들은 모두 영원히 내 소유가 되기를 바라는 어떤 사람들의 의지로 여기에 이렇게 남게 된 것이지. 이거 한번 볼 텐가?’
사장이 내미는 것은 빛 바랜 가족 사진 이었다. 젊은 청년이 육사생도의 옷을 입고 가족과 함께 찍은 단란한 모습……평범했다.
‘그 아버지처럼 보이는 사람이 누군지 아나?’
‘글쎄여. 워낙 평범하게 생겨 놔서, 눈매가 좀 작은 거 이외에는….’
‘그래, 나이가 나이니 모르겠지. 그 사진은 이기붕 씨의 가족 사진이야. 육사에 다니던 아들내미가 가족을 모두 죽이고, 자기도 자살했었지. 이기붕씨는 이승만 정권 시절,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었고…….아마 자네는 잘 모를게야. 그 사진을 갖고 온 사람의 이름을 말 할 수는 없어도, 난 그 의중을, 만나는 순간, 단박에 알 수 있었지…..’
‘사진만 가져 온다고 그런 인면수심의 살인을 저지를 수 있나여?’
계속해서 가마는 물건을 태우고 있었다.
‘그럼, 이 스카프 좀 볼텐가?’
아주 묘한 색으로 바래져 있는 스카프 였다. 오래된 것이 그런 물건도 전당 잡을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
‘윤심덕이 아끼는 스카프 였지. 아깝게 현해탄에서 몸을 던져 정부와 정사를 했고….그걸 가져다 준 사람도 이제는 죽었지만 말이야. 윤심덕은 누군지 아나? 애끓는 목소리의 가수 였다네….’
나는 반신반의 하고 있었다. 사람의 물건을 저당 잡아 이렇게나 오랜 세월 보관했다는 것도 의심스러웠거니와, 저마다 슬픈 결말의 죽음이 장식되어 있는 사연들……난 질문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지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사장님은 청부 살인 업자?’
‘뭐 그것과 비슷한 셈이지. 이게 뭔지나 아나?’
태우기 전에 내 손에 들려진 것은 딱딱한 나무를 거칠게 깎은 방망이 같은 것이었는데, 꼭 좇대가리를 닮은 것이 반질거리기 까지 하고 있었다.
‘그건 황진이가 애용하던 모형 좇일세. 그 당시 규수들이나 과부, 창기들은 그런 물건을 하나씩 깎아서 지니고 있다가 한가할 적이면 보지에 쑤셔 넣고 꺼뻑대며 넘어가기 일 쑤 였지. 딜도? 그거 예전부터 우리한테 있었다니깐? 그 나무는 황진이가 사랑했던 님의 시신을 담기 위해 만든 관을 쪼개서 만든 것이지……이걸 기어이 훔쳐서 갖고 온 그 사대부 집 대감 자제…..억수로 황진이를 연모했던 모양이지? 죽여서 라도 갖고 싶었다니 말이야. 황진이의 시신을 찾지 못한 건, 그 자가 자기 옆에 두고 3개월에 걸쳐서 야금야금 먹어 치웠기 때문이지……알려져 있질 않아서 언제나 황진이는 홀연히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건 아닐쎄……..’
‘사람들이 물건을 사장님께 갖고 오는 이유는 도대체 뭡니까?’
‘그건 바로 내가 영혼을 저당 잡기 때문이지. 사람들은 무생물이나, 심지어는 동물들에게 영혼이 깃들지 않는다고 믿지. 교회라는 곳에서도 그렇게 가리키질 않나? 주인을 구한 명견이 버젓이 살아 있는대도 본능에 충실해서 움직였을 뿐이고, 그들에게는 천당도, 지옥도 없다고 말이야. 웃기는 똥덩어리들…..생명을 창조하신 분이 만든 피조물 치고 혼이 없는 것은 없지. 게다가 그 혼은 가끔 씹물 처럼 비질 대며 흘러나와서 자신이 아끼는 물건에 자욱을 남기기도 해. 그런 물건을 가져오면, 난 그것을 낚싯줄처럼 엮어서 슬슬, 아주 천천히 당기는 거야. 목을 죄듯이……’
‘에이, 그런다고 다 죽나여?’
‘내가 죽이는 게 아니지, 모르겠나?’
‘그럼 누가 죽여여?’
‘사람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지만, 난 악한 쪽에 언제나 베팅을 하지. 왜냐구? 인간은 신에게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회개가 가능하다는 안전장치에 기대서, 끝끝내 악인스러워 질 수 있는 구석을 생명처럼 의지하며 살아가는 종족들 이거든. 저주라고 들어 봤지? 그 저주를 신이 하는 걸까? 그럼 악마가? 노우! 노우! 노우! 아니지. 그들은 옆에서 지켜 볼 뿐이야.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는 또라이 짓을 그들이 할 리가 있겠나? 이를테면 지 스스로 꼴려가는 좇대가리 같은 거겠지. 난 이를 테면 그들을 대신해서 처형을 집행해 준다 랄까? 자살이든, 살인이든 간에….’
‘당신도 인간 아닌가여?’
난 질문을 해 놓고도 의미가 맞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인간 맞지….그러나, 언제나 애프터 써비스가 잇따르는 좀 다른 형태의 인간이지. 그게 뭐냐구? 우리 같은 부류들에겐 애초에 천국과 지옥 같은 설정은 없어. 언제나 벽 틈에 끼여 있는 중간자 라고나 할까? 스님은 윤회가 없다며? 죽어서 다시 태어나도 땡중 이라며? 그래, 그런 거라고 보면 돼. 항상 이 세상에서의 할 일은 변함없이 지정 되어 있고, 천국도 지옥도 아닌, 휴게소를 거쳐 다시 이곳으로 내려오는 그런 방랑객 같은 존재……우리가 있기에 역사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 아까 태운, 말라 비틀어진 뱀 쪼가리, 뭔질 아나? 클레오파트라의 젖탱이를 물어 재낀 독사의 시체……이쯤 하면 알아 듣겠나? 여기 옆에 놓여 있는 도끼 보이지? 우리 나라 최초의 연쇄 살해범이 애용한 살인 도구…….저 권총? 대통령 시해 사건중에 격발이 되질 않았던 그 문제의 호신용 권총……..또 무어가 더 필요하지? 사람들은 두마리 토끼를 무척 좋아해. 나도 물론 이고……수요와 공급의 철칙이 살아있는 죄악의 정글에서 난 유명한 인물이었지. 난 돈을 내 줄 필요가 없었어. 전당포 주인 이었는데도 말이야. 오히려 그들이 돈을 싸질머지고 왔으니까. 그들은 물건과 함께 목적하는 바를 이루게 되고, 난 그들의 요구를 눈 감은 채, 표적이 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죽음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준 것 밖에는…..아 참참….또 있다. 하늘의 죄명부에 착실하게 리스트를 올린 점…그들은 모르겠지. 하늘이 보기에 그게 나의 공이 된다는 사실을…….죽어서 영혼이 된 후에야 자신의 어깨 위에 철퇴를 지고 살았다는 걸 알게 될 테니 말이야.’
‘그럼 사장님은 죽지 않나여?’
‘죽긴 왜 안 죽어? 나도 죽기야 죽지. 그러나, 이쯤에서 한번 물걸레 질을 할 필요가 있어서 말이야. 누구의 도움을 받을 필요 없이, 재생 할 수 있는 기틀도 마련 되게 말이지….’
‘재생 이라녀?’
‘재생 몰라? 폐휴지 모아다가 녹여서 다시 종이 만드는 거? 우리 같은 부류들이 다시 태어나는 그걸 환생이나, 뭐 그 딴 거로 부르지는 않지. 재생이 가장 적합한 표현 일게야.’
‘우리 라녀, 여기 사장님이랑 저 말고 또 누가 있나여?’
나는 컴컴한 주위를 둘러 보며,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있긴 뭐가 있다구? 다 내 속에 들어가 지랄 발광하고 있지만 말이야. 그들은 죽어서 어딜 가는 게 아니야. 내 손에, 아니 내 속에 들어와 살 게 되지. 영원히 다시 태어남도 없게 말이야. 이 편이 더 낫잖아? 다시 태어나 좇같이 살아가는 것 보다는 내 안에서 지지고 볶으면서 평안히 살아대는 게 말이야. 우리 같은 부류를 가리켜 영혼수집가라고 부르지.흐흐….’
‘자꾸 우리라고 하시는데, 그 우리가 누군데여?’
‘자네지 누구야?’
‘네?’
‘난 다 알고 있었네. 자네는 물건을 나르면서 그 물건에 속해져 내 안에서 지글대는 영혼 나부랭이 들의 속삭임을 전부 듣고 있었지?, 아닌가? 말해봐. 어제 나 몰래 훔쳐서 들고 간 거, 내가 모를 줄 알았나?’
‘그건……’
난 어제 물건을 나르다가 머리에 두르는 두건 같은 것을 주머니에 슬쩍 넣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두건을 붙들고 있으면, 머릿속으로 오만 색스런 환영이 지천으로 펼쳐지기에 나는 에라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훔치고 말았던 것이다. 검은 동굴 안에서 여럿의 남자들이 아랫도리를 깐 채, 여러 여성을 무작시리 겁탈하고, 쑤셔대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음란한 형상으로 섹스를 해대다가, 기어이 그 많고 많은 사람들을 몽조리 죽여 버리는…. 끔찍 하면서도 끝끝내 그 두건을 손에서 놓질 못하게 하는 그 마력……
‘그 두건이 뭔질 아나? 백백교의 교주가 이마에 두르고 있던 바로 그 두건 이지. 사형 후에 자른 머리야 국과수의 냉동고에 잘 모셔져 있다고는 하지만, 그 두건이 내 손에 있는 건 모를 게야. 그 눈에 보이던 환상…..…끝내 줬을 거야. 내가 이 나이 되도록 가끔 손에 쥐고, 밤이 새도록 좇대가리가 벌떡 서 있게 만드는 요상한 물건 이거덩! 비아그라? 웃기지 말라고 그래! 외국에서 떼씹이 들어온 줄 알고들 있는데, 천만의 말씀, 만만의 나이롱 뽕! 백백교, 정말 죽였다. 한국 여인네들, 그 당시도 순했지만, 색도 얼마나 좋아 했다구? 그 환영에서 봤지? 이 놈 저놈 가릴 것 없이 들러 붙어도, 디리 가랑이 벌려 가면서, 자세도 안 나오는 동굴 안에서, 치마 벗어 깔고 해대던 것! 종국에 가서 지 죽을 줄도 모르고……그 당시 죽은 사람들…..지금도 설쳐대는 부동산 마님들이랑 똑 같은 미끼로 백백교에 걸려 들었다는 사실, 알고나 있을까 싶네…..어떤가?’
‘어떻다녀?’
‘이 일이 어떻겠냐 이거지, 내 말은…..’
‘저 보고 전당포를 하라구여? 에이 농담도 지나치시네. 이제까지 하신 말씀 다 뻥이져?’
‘그래? 그럼 마지막으로 이 봉투를 자네에게 줌세. 나에게 더 이상 필요 없으니…..이 건물의 등기랑, 내 구좌의 모든 돈….이미 자네 명의로 바꾸어 놓았네. 3일이 걸리더구만. 물건 태우는 짓, 까이꺼 그냥 자네를 붙들려고 해 본 짓거리지. 그럼, 난 가네. 내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지. 우리 같은 부류들에겐 전생도, 내세도, 윤회도 다 부질 없어. 그냥 그렇게 생긴대로 갈 길을, 할 일을 할 뿐이야. 태고적 부텀 정해진 그 일들을……’
그렇게 얘기 하시는 가 싶더니만, 사장님은 곧장 뛰어서 옥상의 담을 풀쩍 뛰어 넘었다. 나는 추락한다는 사실도 잊고서 그게 무슨 장난처럼 보여,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질 못했다. 나는 신고할 생각도 하질 못하고, 덜덜 떨리는 몸을 겨우 추스리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신학기가 시작될 때까지, 경찰에 불려 다니느라 녹초가 되었고, 급기야 무혐의로 풀려나고 나서 두 달인가를 자리에 누워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얘, 누가 찾아왔다?’
‘누가여?’
‘젊은 여자 분인데, 학교 후배라나 뭐라나? 몸도 성치 않은데, 그냥 누워 있지….’
방안에는 선글라스를 낀 요염한 자태의 여자가 들어서고 있었다. 어머님께서 과일을 내어 놓으시고 자리를 비켜 주실 동안, 그 여인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내내 쓰고 있던 썬글라스를 벗는 순간, 나는 기절할 뻔 했다. 사장님 처럼 한쪽 눈이 시커멓게 뻥 뚫린 그 경악스런 공포……
‘하하….아직 모르겠나? 내가 무신 예수님도 아닌데, 재생된 몸뚱아리를 몰라 봐서야 쓰나? 내가 그랬었지? 이런 일을 하는 우리 같은 치들에게는 눈깔 두 개가 필요 없다고 말이야. 한쪽 눈깔로만 봐도 훤히 다 보이는 죄악의 리스트를 두 눈으로 보면 돌아버리지 않겠쑤? 하느님의 섭리는 오묘하기도 하지, 우리 같은 청소부도 때로는 필요하다고 하시니 말이야…..깔깔깔’
난 시름시름 앓으면서 기어이 시력을 상실한 한 쪽 눈의 병이, 조사를 받다가 생긴 과로로 연유된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그녀가, 아니 사장님께서 나란 사람에게 주어진 운명의 굴레를 설명해 주기 위해, 손수 다시 찾아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전당포를 다시 열어야만 할 것 같았다.……천하에 미련한 것 같으니라구…..
-끝-
학교를 다니면서도 스스로 내가 듣고 있는 수업이 도대체 시간당 얼마나 되는 가를 따져 본 적은 없었다. 언제나 성적을 개판 쳐 놓고 나면 듣게 되는 핀잔 속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 하면서 까지, 그 돈을 갖다 내다 버렸냐는 점에서 곱씹어 보긴 했지만, 정신 못 차리기는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영양가도 없는 미팅에다, 커피값, 당구장, 오락실, 교정 잔디밭에서 벌어지는 마이티 판까지, 온통 돈독이 올라 있는 모냥새로 나는 제대로 공부 한번 못해보고, 권총을 그것도 여러 개씩이나 주욱 차는 첫 학기를 마무리 했다. 이제는 정신을 차려야지 하면서도, 속으로는 정신 차리고 있는데 뭘? 이란 물음이 이어 나오고 있었던 걸 보면, 난 정말 구제불능 이었지 싶다. 집에서는 여름 방학 동안 월급이 동결될 것이며, 자신이 쓰고 싶은 곳이 있으면, 스스로 벌어서 메우라는 최후통첩도 받은 지 오래였다. 난 돈이 궁했다. 다들 어찌나 잘들 살고 있는지, 유럽 배낭 여행이다, 깔치를 대동한 마이카 섹스투어 등등, 여름 방학 또한 돈 있는 것들을 위한 나날로 꾸며져 있는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으이그… 저 화상! 이젠 권총도 모자라 아예 바주카 포를 차요, 글쎄……니가 무신 저팔계냐? 아예 권총으로 도배를 허지? 내 남사 시러워 누구한테 얘기도 못해. 대학교 들어 갔다고 길길이 날 뛰며, 환장을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누구는 장학금에, 알바네 하면서 미끄러 지듯이, 학교 생활 하는 애들도 있는데, 뭐, 놀러 가게 돈 쫌 보태라구? 왜? 아예 길거리에서 적선을 허지?’
‘알았어여, 알았다구여…..주기 싫으면 말지…..’
‘아니, 똥 싼 놈이 뭐란다구, 니 주제비에 왜 눈은 부라리고 지랄이래?’
‘원래 이렇게 생겨 먹은 걸 어떡허라구? 뵈기 싫으면 성형을 해 주든가! 작품에 손대면 작가의 존심을 건드린다구? 웃겨! 요즈음은 덧칠도 예술로 평가 받는 시절 이우. 남자라고 칼 대지 말란 법 없듯이, 요즈음 얼마나 주위의 친구들이 수술들 받는지 알기나 해여? 급하게 한 거 뽀록 나면 안 된다고 설랑…….’
사실 졸업에 임박해서 스킨케어를 받는다, 성형을 한다 난리법석을 피우는 것 보담, 사전에 안정된 수술결과를 토착화 시키기 위해서, 신입생 때에 벌써부터 여름 방학을 이용해 얼굴에 칼을 대는 남자들을 나는 많이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말해 무엇 하리? 난 그나마 여름을 나기 위해, 일자리를 알아보러 구직란을 살펴 봤다.
‘허이구, 철 나겄네! 알바도 하시려구여? 이번엔 권총 안주는 곳으로 쫌 골라 보시지?’
가족들의 비아냥이 귀에 거슬리기도 했지만, 패자는 말이 없는 법. 난 이번 여름을 계기로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도 학생의 신분을 확립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절박함도 함께 했기에……그러나, 전화를 거는 족족, 사람이 벌써 다 찼다는 얘기들뿐이었고, 그나마 괜찮은 곳들은 들어 보나마나 의심이 졸나게 가는 다단계가 대부분 이었다. 난, 발로 뛰어 알바를 구해볼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마음만 앞섰지, 동체 되는 일이 없었다. 문을 나서자 말자, 어떤 씨부랄 년이 데불고 다니는 똥깡아진지는 몰라도, 대문 앞에 보란 듯이 싸 놓은 개똥을 사뿐이 즈려 밟질 않나, 번번이 버스 놓치기는 예사 였고, 일껏 돈 쪼개서 사 들고 다니던 생수병 마저, 내 마음과 다르게 손에서 미끄러져 길바닥을 대굴대굴 굴러버려, 나는 일자리를 구하기도 전에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고 말았다. 날씨는 어찌 그리 개판 인지, 길바닥에 나서기만 하면 멈췄던 비가 쏟아져, 나는 그야말로 비오는 타이밍 맞춰 지렁이 잡으러 뛰쳐 나가는 애들 꼴이 되고 말았다. 배도 고프고, 온 몸에서는 비와 땀이 뒤엉킨 쉰내마저 푹푹….., 죽을 맛이었다.
‘아휴, 오줌보 터지겠네…..어디 화장실 없나?’
요즈음은 인심도 야박해 져서 그 놈의 쓴 커피라도 안 팔아 주면 화장실을 내주는 법이 없어서, 나는 할 수 없이 돈이라도 아끼자는 심정으로, 조금씩 빤쭈에 찔겨서 말릴까 하다가 근처의 건물 중에 딸린 화장실이 있는가 하고 들어섰다. 허름한 5층 건물에 제대로 상점이나 입점하겠는가 하는 의심이 핑 돌기까지 하는 그런 건물을 들어서면서도,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다. 2층과 3층 사이에 버티고 있던 화장실, 그것도 자물쇠가 달리지 않은…..스스로 구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신다는 말씀이 틀리지는 않았다. 난 화장실로 튀어 들어가 바지를 까고, 소변기 앞에 섰다.
‘아…..아….아…..이거이 오르가즘 이야.’
난 항상 참았던 오줌을 방출할 때나, 혹은 힘껏 힘주고 있던 괄약근을 풀어, 쏟아 내놓는 설사를 가리켜, 오르가즘의 원형체라고 불러왔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느낌이 가져다 주는 해방감 이야말로 쾌감의 정수와 동일시 해왔기 때문이었다.
‘주머니에 먼지만 쌓인 놈이, 싸기는 우라지게 많이도 싸요!’
‘엥?’
이건 무신, 오입하다 쌩무릎 홀라당, 발라당 까지는 씨츄에이숀?
‘누구세여?’
‘누구긴 누구야, 여기 앉아서 똥누는 사람이지……썩을 눔…’
쏴와 하는 물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은 한 50대로 보이는 아저씨 였다. 머리 빼고 말이다. 머리는 거의 검은 머리가 없을 정도로 하얗게 세었는데, 그 빛이 은발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쭈! 게다가 묶었어요. 내 참! 아자씨? 개나 소나 다 묶고 댕기던 시절, 이제 지났거덩여?
‘너 일자리 구하지?’
아니, 그걸 어떻게? 난 그렇다고 대답했다. 역시 오르가즘 뒤에 다가오는 좇대가리의 포만감이란 옛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던 가 보다. 좇대가리가 아닌, 나의 뱃속을 빵빵 하게 채워 줄 일이 되기만을 바라면서, 나는 열씸히 할 테니, 무슨 일이라도 시켜달라고 운을 뗐다.
‘어려운 일은 아니고, 한 밤중에 일을 해야 되는데 할 수 있겠어? 밤 12시부터 새벽 3시 전까지……..뭐 아님 말구……’
‘그 까이 꺼……하져, 뭐……얼마나 주실 껀데여?’
‘돈은 시간당 7만원, 그런데 기간이 짧아. 딱 3일, 게다가 내가 7만원 더 얹어서 칠십 채워 줄 텐데, 어떤가?’
하늘이시여! 이게 왠 감동탕의 웨이브란 말입니까? 난 이러고 저러고 할 상황도 아니었지만, 이런 횡재가 또 있겠나 싶은 생각에 일의 내용을 묻고 자시고도 없이, 꿀꺽 삼켜 버리고 말았다.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흥분을 가까스로 가라앉히고 나서야, 나는 물을 수 있었다.
‘근데, 아저씨…. 무슨 일인데…..’
‘학생? 나 아저씨 아니거덩여?’
‘그럼 뭐라고 불러여? 아님,…….. 오빠?’
난 말을 해놓고 좇나리 후회했지만, 뱉어 놓은 말을 주어 담을 수는 없었다.
‘내 나이 벌써 89세 거덩요? 나이 처먹은 거 자랑은 아니라도, 대접은 꼭 받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다고나 할까? 정 부르기 그러면, 윤씨 아재라고 허등가? 내가 이래서 묶은 머리를 풀 수가 없어요. 다들 애 취급을 허니, 헐……’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건장한 체격은 20대 몸짱을 뺨치게 하고 있었고, 얼굴에는 주름이나 검버섯 하나 찾아 볼 수 없었을 뿐더러, 손은 얼마나 곱게 생겼는지…..내가 오빠라고 불렀는데, 아무런 대꾸가 없었던 것이 깨름찍 하기는 했다. 오빠라고 부르는 그 호칭에서 뭘 쫌 느껴댄 거 아냐? 그건 정말 아닌데……
‘암튼 그건 됐고, 일은 오늘 밤부터 당장 이야. 오늘 밤 11시 반 정도에 이 건물 4층으로 와. 내가 기둘릴 테니……’
‘4층에 뭐가 있는 데여?’
‘전당포….’
난 그 말을 들으며, 건물을 나오는 것과 동시에 오줌보가 터질 것 같아서 뛰어 들어간 그 건물의 외장을 그제서야 올려다 볼 수 있었다. 아무도 세 들어 있지 않고, 달랑 4층 유리창에 그려져 있는 전당포의 광고…….역시 건물이 후지니까, 장사하러 들어오는 사람이 없지 라며, 나는 혀를 끌끌 찼다. 난 보무도 당당하게 집으로 돌쳐 들어갔다.
‘왜 이런 대낮에 들어 오시나?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질 않든가벼?’
어머님의 비아냥에 나는 환한 미소로 답했다. 어찌 부모의 면전에서 인상을 구길 수 있느뇨?
‘일자리 구했지롱!’
난 자초지종을 자세히 늘어 놓았다. 떡 벌어지신 어머님의 입으로 파리라도 들어갈까 봐 나는 조용히 턱을 받쳐 드렸다.
‘궁하면 통한다구, 정말 잘 됐다. 한 밤중에 무슨 일이냐고 생각은 되어도, 뭐 지켜주고 그런 거 아니겄냐? 너야 내 몸으로 난 새끼 치고, 꽤 한 바디 하덜 않어? 밤사이 세상이 흉흉도 하니, 뭘 쫌 지켜달라는 거나 아닌가 싶다.’
난 일찌감치 자리를 틀고 벌렁 누워, 때 아닌 길고 긴 낮잠을 때렸다. 생활전선으로 과감히 뛰어든 아들내미의 역량을 높이 사는 의미에서 어머님께서는 발걸음도 조용조용, 저녁 먹기 전까지 나를 그렇게 내버려 두셨다.
‘일어나서 밥 먹어야지?’
집 안에 가득 감도는 음식 냄새….역시 돈이 좋긴 좋았다. 잔뜩 벌어진 밥상을 마주하면서 나는 신이 나고 있었다.
‘다녀 오겠습니다.’
평소 같으면 도끼 눈으로 이 밤중에 어딜 쏘다니려고 튀어 나가느냐, 정신이 있느냐, 없느냐 방방 뛰실 어머님께서 너무도 부드러운 음성으로,
‘쉬엄 쉬엄 혀.’
나는 대문을 나서면서 그렇게 어깨가 가벼울 수 없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었다. 11시 반이 거지반 되어서 난 그 건물에 도착했다. 사람의 인적도 뜸하고 건물의 뒤로 버티고 있는 작은 야산으로 인해, 을씨년스럽기 까질 했지만, 개의치는 않았다. 직장 아닌가 말이다!
‘똑똑’
‘들어와!’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에, 나는 문에 걸린 폐업이라는 종이를 보고 갸우뚱 했지만, 그냥 지나쳤다.
‘저 밖에 폐업이라고 적혀 있는데, 영업 안 하세여?’
‘응. 내건지 3일이 넘었는데도 계속들 두들겨서리, 귀찮아 죽겠쓰…..어서 정리를 해야지 원….’
‘그럼 일이란 게 이삿짐 나르기?’
‘뭐 그런 거랑 비슷허지. 없애기 위해 옥상으로 올려 보내야 허니껜 두루….’
‘이 많은 물건을요?’
‘거럼! 볼펜 찌끄래기 하나도 남김없이 위로 올려 보내야쥐, 안 그러면…….’
‘안 그러면여?’
‘암튼 내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내가 시키는 일에 대해서 질문은 지금부터 금물, 알았쪄? 주민등록증이랑, 학생증도 갖고 왔지?’
아효, 그 나이에 왠 애교? 주위를 살펴보니, 지금 당장 버려도 아깝지 않을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준비 되어 있던 목장갑을 끼고, 물건들을 5층위 옥상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물건을 나르면서 놀랐던 것은, 겉 모습만 몸짱이 아니라, 그 기운이 뻗치는 것처럼 나를 압도하는 분위기 때문에 난 제풀에 주눅이 들어가고 있었다.
‘아니, 사장님, 저건 뭐래여?’
난 첫 번째 물건인 오래된 괘종시계를 안고 올라가, 옥상에 내려 놓자마자, 눈에 들어온 커다란 쇠종 같은 물건에 시선이 고정되어 버렸다.
‘저거? 별거 아니야. 쇠로 만들어진 가마야. 쫌 커서 그렇지.’
‘가마여? 도자기 굽고 그러는….’
‘그럼, 타고 다닐까 봐?’
왠 썰렁? 옥상의 한 복판에 떡 하니 버티고 서 있는, 그 쇠가마는 그 웅장함이 대단한 기세였다. 그 가마 주위로 멀찌감치 연결되어 있는 것은 여러 개의 충전 프로판 개스통 이었고, 그 옆에는 모터처럼 생긴 덩어리가 시커멓게 버티고 있었다.
‘궁금허지? 저 가마는 특수 제작한 가마야. 아마 수억 대 할 껄? 불붙은 개스의 화마가 펌프로 인해 벼락같이 뿜어져서 물건을 삽시간에 재로 만들지.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가마의 겉은 차다는 거야. 안 에서는 졸나리 불이 타서 생지옥을 방불케 하는데, 겉은 차갑기 그지없다. 꼭 뭐 영화의 한 장면 같질 않나? 쇠붙이도 여지없이 녹아 흐르지, 쇳물은 녹아서 밑으로 빠진 후에 바닥의 작은 구멍을 통해 밑으로 이어지지. 연기도 없고, 소리라고 해 봐야 저 모터 펌프의 진동뿐이니, 남들이 알 수도 없고……’
‘근데, 왜 이렇게 다 태워 없애여?’
‘질문은 금물 이라고 했는데, 그러니 권총을 수두룩 뻑뻑하게 차고 앉았지!’
‘아니, 일만 잘 하면 됐지, 왠 남의 성적은….’
‘본인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곳에 발을 들여 놓고도, 바로 볼 쭐을 모르니 그렇지….’
하긴 그랬다. 전공으로 밥 벌어 먹는 곳이 한국이 아닌 건, 삼척 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하물며, 평범한 3류 대학에서, 그것도 모자라 총까지 줄줄이 차고 있는 나란 사람이야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점수대로 학교와 학과를 찾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은 태클의 주제도 아니었는데….헐……
‘어여 물건이나 날러….놀고 앉아 있을 새 없쓰….’
정말 세 시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물건을 날라 올렸는데도, 별로 전당포의 내부는 티가 나질 않고 있었다. 그나마 3시가 거지반 되서 둘러 보니, 반정도의 물건이 빠지고 있어서, 내심 일한 티는 내는 구만 이라며, 목장갑을 벗어 옷을 털었다.
‘수고 했네. 보기 보담 강단 있어? 내일이면 거의 물건이 다 올라오지 싶네. 여기 오늘 일당……’
빳빳한 신권으로만 담겨 있는 일당이었다. 띠용! 봉투가 다 접히질 않았다. 내 좇대가리도 이러면 월매나 좋을꼬?
‘좇대가리야 생겨난 그대로, 타고난 그대로 놀고 자빠지는 걸, 뭣 하러 쓸데없는 기대는 하고 있어? 해바라기 피워 봐야 꽃이란 게 그렇잖나? 질 때가 반드시 있는 것이고, 약이랍시고 비료 쳐 봐야. 비 오고 나면 씻겨가는 걸…….’
이상한 것은 내가 하는 속내를 어찌 그리도 잘 알고 대답을 하느냐 하는 점이었다. 하긴 장사로 오랜 세월, 사람들을, 그것도 전당포에서 대하려면, 상대를 대쪽같이 판단할 수 있는 눈이 길러지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손님은 한 푼이라도 더 얻어 내려고 뺑끼를 때릴 것이고, 사장은 한 푼이라도 덜 주려고, 아귀다툼을, 그 오랜 세월 해 왔을 테니, 반 점장이는 다 되었을 거라는 나만의 판단 이기도 했다.
‘내일 뵙죠!’
난 지친 몸을 이끌고, 옥상에서 내려 왔다. 옥상의 비상열쇠도 갖고 있는 걸 보면, 그가 이 건물의 주인인 것도 같았다. 이제 나이도 있고 허니, 손님들과의 입씨름도 귀찮을 테고, 돈 구경도 제법 하셨을 테니 미련은 더더욱 없을 것 같았다. 그 다음 날도 나는 같은 일을 했다. 그것도 노동이라고, 전신에 쑤시고 땡기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이틀째 일당을 받으면서 나는 감개 무량해 지고 있었다. 벌써 오십만원에 육박하고 있다니!.......흑흑….이렇게 눈물이 앞서서리…….
‘내일은 물건 나를 일 없으니, 오기 전에 목욕이나 깨끗이 하고 와.’
목욕? 땀 쫄쫄 뺄 판에 왠 목욕?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이틀 동안 무보수로 일하면 어쩌나 하는 심정을 아시기라도 한 것처럼, 턱 하니 건네는 일당하며, 믿지 말아야 할 구석은 없었기에 말이다. 어머님도 한 밤중에 목욕하고 나서는 나를 보시면서 의아해 하셨지만, 당당히 내 보였던 빳빳한 신권의 일당을 보시고서는 덧말이 없으셨다.
‘왔는가?’
‘저, 오늘 할 일은?’
‘그저 여기서 물건을 소각하는 걸 도와 주면 돼.’
그러나, 벌써 물건의 4분의 3은 그 자리에 없었다. 내가 없는 하루 종일 물건을 소각하신 게 분명했다.
‘자네는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허나?’
‘네? 영혼이여? 그거 없으면 죽은 목숨이져 뭐.’
‘그렇지?’
‘네.’
‘여기 있는 물건들을 어째서 주인들이 찾아가지 않는다고 생각해 본 적 있나?’
그건 그랬다. 아무리 기한을 넘겨서 전당포 사장의 소유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저렇게 임의 대로 소각하고, 재로 만들 권리는 없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이 물건들은 모두 영원히 내 소유가 되기를 바라는 어떤 사람들의 의지로 여기에 이렇게 남게 된 것이지. 이거 한번 볼 텐가?’
사장이 내미는 것은 빛 바랜 가족 사진 이었다. 젊은 청년이 육사생도의 옷을 입고 가족과 함께 찍은 단란한 모습……평범했다.
‘그 아버지처럼 보이는 사람이 누군지 아나?’
‘글쎄여. 워낙 평범하게 생겨 놔서, 눈매가 좀 작은 거 이외에는….’
‘그래, 나이가 나이니 모르겠지. 그 사진은 이기붕 씨의 가족 사진이야. 육사에 다니던 아들내미가 가족을 모두 죽이고, 자기도 자살했었지. 이기붕씨는 이승만 정권 시절,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이었고…….아마 자네는 잘 모를게야. 그 사진을 갖고 온 사람의 이름을 말 할 수는 없어도, 난 그 의중을, 만나는 순간, 단박에 알 수 있었지…..’
‘사진만 가져 온다고 그런 인면수심의 살인을 저지를 수 있나여?’
계속해서 가마는 물건을 태우고 있었다.
‘그럼, 이 스카프 좀 볼텐가?’
아주 묘한 색으로 바래져 있는 스카프 였다. 오래된 것이 그런 물건도 전당 잡을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
‘윤심덕이 아끼는 스카프 였지. 아깝게 현해탄에서 몸을 던져 정부와 정사를 했고….그걸 가져다 준 사람도 이제는 죽었지만 말이야. 윤심덕은 누군지 아나? 애끓는 목소리의 가수 였다네….’
나는 반신반의 하고 있었다. 사람의 물건을 저당 잡아 이렇게나 오랜 세월 보관했다는 것도 의심스러웠거니와, 저마다 슬픈 결말의 죽음이 장식되어 있는 사연들……난 질문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지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사장님은 청부 살인 업자?’
‘뭐 그것과 비슷한 셈이지. 이게 뭔지나 아나?’
태우기 전에 내 손에 들려진 것은 딱딱한 나무를 거칠게 깎은 방망이 같은 것이었는데, 꼭 좇대가리를 닮은 것이 반질거리기 까지 하고 있었다.
‘그건 황진이가 애용하던 모형 좇일세. 그 당시 규수들이나 과부, 창기들은 그런 물건을 하나씩 깎아서 지니고 있다가 한가할 적이면 보지에 쑤셔 넣고 꺼뻑대며 넘어가기 일 쑤 였지. 딜도? 그거 예전부터 우리한테 있었다니깐? 그 나무는 황진이가 사랑했던 님의 시신을 담기 위해 만든 관을 쪼개서 만든 것이지……이걸 기어이 훔쳐서 갖고 온 그 사대부 집 대감 자제…..억수로 황진이를 연모했던 모양이지? 죽여서 라도 갖고 싶었다니 말이야. 황진이의 시신을 찾지 못한 건, 그 자가 자기 옆에 두고 3개월에 걸쳐서 야금야금 먹어 치웠기 때문이지……알려져 있질 않아서 언제나 황진이는 홀연히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고 하지만, 그건 아닐쎄……..’
‘사람들이 물건을 사장님께 갖고 오는 이유는 도대체 뭡니까?’
‘그건 바로 내가 영혼을 저당 잡기 때문이지. 사람들은 무생물이나, 심지어는 동물들에게 영혼이 깃들지 않는다고 믿지. 교회라는 곳에서도 그렇게 가리키질 않나? 주인을 구한 명견이 버젓이 살아 있는대도 본능에 충실해서 움직였을 뿐이고, 그들에게는 천당도, 지옥도 없다고 말이야. 웃기는 똥덩어리들…..생명을 창조하신 분이 만든 피조물 치고 혼이 없는 것은 없지. 게다가 그 혼은 가끔 씹물 처럼 비질 대며 흘러나와서 자신이 아끼는 물건에 자욱을 남기기도 해. 그런 물건을 가져오면, 난 그것을 낚싯줄처럼 엮어서 슬슬, 아주 천천히 당기는 거야. 목을 죄듯이……’
‘에이, 그런다고 다 죽나여?’
‘내가 죽이는 게 아니지, 모르겠나?’
‘그럼 누가 죽여여?’
‘사람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지만, 난 악한 쪽에 언제나 베팅을 하지. 왜냐구? 인간은 신에게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회개가 가능하다는 안전장치에 기대서, 끝끝내 악인스러워 질 수 있는 구석을 생명처럼 의지하며 살아가는 종족들 이거든. 저주라고 들어 봤지? 그 저주를 신이 하는 걸까? 그럼 악마가? 노우! 노우! 노우! 아니지. 그들은 옆에서 지켜 볼 뿐이야.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는 또라이 짓을 그들이 할 리가 있겠나? 이를테면 지 스스로 꼴려가는 좇대가리 같은 거겠지. 난 이를 테면 그들을 대신해서 처형을 집행해 준다 랄까? 자살이든, 살인이든 간에….’
‘당신도 인간 아닌가여?’
난 질문을 해 놓고도 의미가 맞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인간 맞지….그러나, 언제나 애프터 써비스가 잇따르는 좀 다른 형태의 인간이지. 그게 뭐냐구? 우리 같은 부류들에겐 애초에 천국과 지옥 같은 설정은 없어. 언제나 벽 틈에 끼여 있는 중간자 라고나 할까? 스님은 윤회가 없다며? 죽어서 다시 태어나도 땡중 이라며? 그래, 그런 거라고 보면 돼. 항상 이 세상에서의 할 일은 변함없이 지정 되어 있고, 천국도 지옥도 아닌, 휴게소를 거쳐 다시 이곳으로 내려오는 그런 방랑객 같은 존재……우리가 있기에 역사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 아까 태운, 말라 비틀어진 뱀 쪼가리, 뭔질 아나? 클레오파트라의 젖탱이를 물어 재낀 독사의 시체……이쯤 하면 알아 듣겠나? 여기 옆에 놓여 있는 도끼 보이지? 우리 나라 최초의 연쇄 살해범이 애용한 살인 도구…….저 권총? 대통령 시해 사건중에 격발이 되질 않았던 그 문제의 호신용 권총……..또 무어가 더 필요하지? 사람들은 두마리 토끼를 무척 좋아해. 나도 물론 이고……수요와 공급의 철칙이 살아있는 죄악의 정글에서 난 유명한 인물이었지. 난 돈을 내 줄 필요가 없었어. 전당포 주인 이었는데도 말이야. 오히려 그들이 돈을 싸질머지고 왔으니까. 그들은 물건과 함께 목적하는 바를 이루게 되고, 난 그들의 요구를 눈 감은 채, 표적이 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죽음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준 것 밖에는…..아 참참….또 있다. 하늘의 죄명부에 착실하게 리스트를 올린 점…그들은 모르겠지. 하늘이 보기에 그게 나의 공이 된다는 사실을…….죽어서 영혼이 된 후에야 자신의 어깨 위에 철퇴를 지고 살았다는 걸 알게 될 테니 말이야.’
‘그럼 사장님은 죽지 않나여?’
‘죽긴 왜 안 죽어? 나도 죽기야 죽지. 그러나, 이쯤에서 한번 물걸레 질을 할 필요가 있어서 말이야. 누구의 도움을 받을 필요 없이, 재생 할 수 있는 기틀도 마련 되게 말이지….’
‘재생 이라녀?’
‘재생 몰라? 폐휴지 모아다가 녹여서 다시 종이 만드는 거? 우리 같은 부류들이 다시 태어나는 그걸 환생이나, 뭐 그 딴 거로 부르지는 않지. 재생이 가장 적합한 표현 일게야.’
‘우리 라녀, 여기 사장님이랑 저 말고 또 누가 있나여?’
나는 컴컴한 주위를 둘러 보며,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있긴 뭐가 있다구? 다 내 속에 들어가 지랄 발광하고 있지만 말이야. 그들은 죽어서 어딜 가는 게 아니야. 내 손에, 아니 내 속에 들어와 살 게 되지. 영원히 다시 태어남도 없게 말이야. 이 편이 더 낫잖아? 다시 태어나 좇같이 살아가는 것 보다는 내 안에서 지지고 볶으면서 평안히 살아대는 게 말이야. 우리 같은 부류를 가리켜 영혼수집가라고 부르지.흐흐….’
‘자꾸 우리라고 하시는데, 그 우리가 누군데여?’
‘자네지 누구야?’
‘네?’
‘난 다 알고 있었네. 자네는 물건을 나르면서 그 물건에 속해져 내 안에서 지글대는 영혼 나부랭이 들의 속삭임을 전부 듣고 있었지?, 아닌가? 말해봐. 어제 나 몰래 훔쳐서 들고 간 거, 내가 모를 줄 알았나?’
‘그건……’
난 어제 물건을 나르다가 머리에 두르는 두건 같은 것을 주머니에 슬쩍 넣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 두건을 붙들고 있으면, 머릿속으로 오만 색스런 환영이 지천으로 펼쳐지기에 나는 에라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훔치고 말았던 것이다. 검은 동굴 안에서 여럿의 남자들이 아랫도리를 깐 채, 여러 여성을 무작시리 겁탈하고, 쑤셔대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음란한 형상으로 섹스를 해대다가, 기어이 그 많고 많은 사람들을 몽조리 죽여 버리는…. 끔찍 하면서도 끝끝내 그 두건을 손에서 놓질 못하게 하는 그 마력……
‘그 두건이 뭔질 아나? 백백교의 교주가 이마에 두르고 있던 바로 그 두건 이지. 사형 후에 자른 머리야 국과수의 냉동고에 잘 모셔져 있다고는 하지만, 그 두건이 내 손에 있는 건 모를 게야. 그 눈에 보이던 환상…..…끝내 줬을 거야. 내가 이 나이 되도록 가끔 손에 쥐고, 밤이 새도록 좇대가리가 벌떡 서 있게 만드는 요상한 물건 이거덩! 비아그라? 웃기지 말라고 그래! 외국에서 떼씹이 들어온 줄 알고들 있는데, 천만의 말씀, 만만의 나이롱 뽕! 백백교, 정말 죽였다. 한국 여인네들, 그 당시도 순했지만, 색도 얼마나 좋아 했다구? 그 환영에서 봤지? 이 놈 저놈 가릴 것 없이 들러 붙어도, 디리 가랑이 벌려 가면서, 자세도 안 나오는 동굴 안에서, 치마 벗어 깔고 해대던 것! 종국에 가서 지 죽을 줄도 모르고……그 당시 죽은 사람들…..지금도 설쳐대는 부동산 마님들이랑 똑 같은 미끼로 백백교에 걸려 들었다는 사실, 알고나 있을까 싶네…..어떤가?’
‘어떻다녀?’
‘이 일이 어떻겠냐 이거지, 내 말은…..’
‘저 보고 전당포를 하라구여? 에이 농담도 지나치시네. 이제까지 하신 말씀 다 뻥이져?’
‘그래? 그럼 마지막으로 이 봉투를 자네에게 줌세. 나에게 더 이상 필요 없으니…..이 건물의 등기랑, 내 구좌의 모든 돈….이미 자네 명의로 바꾸어 놓았네. 3일이 걸리더구만. 물건 태우는 짓, 까이꺼 그냥 자네를 붙들려고 해 본 짓거리지. 그럼, 난 가네. 내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지. 우리 같은 부류들에겐 전생도, 내세도, 윤회도 다 부질 없어. 그냥 그렇게 생긴대로 갈 길을, 할 일을 할 뿐이야. 태고적 부텀 정해진 그 일들을……’
그렇게 얘기 하시는 가 싶더니만, 사장님은 곧장 뛰어서 옥상의 담을 풀쩍 뛰어 넘었다. 나는 추락한다는 사실도 잊고서 그게 무슨 장난처럼 보여, 그 자리에서 한동안 움직이질 못했다. 나는 신고할 생각도 하질 못하고, 덜덜 떨리는 몸을 겨우 추스리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신학기가 시작될 때까지, 경찰에 불려 다니느라 녹초가 되었고, 급기야 무혐의로 풀려나고 나서 두 달인가를 자리에 누워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얘, 누가 찾아왔다?’
‘누가여?’
‘젊은 여자 분인데, 학교 후배라나 뭐라나? 몸도 성치 않은데, 그냥 누워 있지….’
방안에는 선글라스를 낀 요염한 자태의 여자가 들어서고 있었다. 어머님께서 과일을 내어 놓으시고 자리를 비켜 주실 동안, 그 여인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내내 쓰고 있던 썬글라스를 벗는 순간, 나는 기절할 뻔 했다. 사장님 처럼 한쪽 눈이 시커멓게 뻥 뚫린 그 경악스런 공포……
‘하하….아직 모르겠나? 내가 무신 예수님도 아닌데, 재생된 몸뚱아리를 몰라 봐서야 쓰나? 내가 그랬었지? 이런 일을 하는 우리 같은 치들에게는 눈깔 두 개가 필요 없다고 말이야. 한쪽 눈깔로만 봐도 훤히 다 보이는 죄악의 리스트를 두 눈으로 보면 돌아버리지 않겠쑤? 하느님의 섭리는 오묘하기도 하지, 우리 같은 청소부도 때로는 필요하다고 하시니 말이야…..깔깔깔’
난 시름시름 앓으면서 기어이 시력을 상실한 한 쪽 눈의 병이, 조사를 받다가 생긴 과로로 연유된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그녀가, 아니 사장님께서 나란 사람에게 주어진 운명의 굴레를 설명해 주기 위해, 손수 다시 찾아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전당포를 다시 열어야만 할 것 같았다.……천하에 미련한 것 같으니라구…..
-끝-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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