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부-----------------------------
일주일 정도를 객점에서 머물며 즐겁게 놀았다.
정천을 생각하니 웃음도 나고 나의 성욕도 더욱 왕성해져서 운지가 더 좋아서 난리다.
이쯤 했으면 찾으러 갈 생각도 해야겠지?
정천의 기운을 찾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환영을 걸어놓은 진법이라 나처럼 정신력이 강한 사람은 걸려들지 않는다.
물론 운지도 사람이 아니기에 진법에 혼란을 일으키거나 하진 않았다.
밖의 사람은 보이지도 않을 텐데 문 앞에는 사람이 지키고 있었다.
“수고 많으시오. 사람을 찾으러 왔는데.”
“어... 어떻게... 내가 보이시오?”
“그럼 보이니까 말을 하지 않겠소.”
아마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정신이 없겠지.
지나가는 사람들을 모두 비웃음으로 보냈을게 분명한데 난 똑바로 자신을 쳐다보며 다가오니 어쩔줄을 모르는 것이다.
“문지기에게 물어서는 모르는 것인가?”
“잠시만 기다리시오.”
놀라긴 했어도 이런 상황을 미리 짐작은 했던가?
그런대로 진정을 하며 안으로 들어가 보고를 하는 듯 했다.
나와 운지는 집의 전경을 살피며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들어오십시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불과 한발자국의 거리인데 안과 밖은 다른 세상이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신기한 꽃과 나무들이 지천에 널려있고 그냥 먹어도 좋을 것 같은 싱싱한 과일이 잔뜩 보였다.
“우와. 이거 먹어도 되는건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 벌써 한 개의 과일이 입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야 이거 맛있네. 너도 하나 먹어봐.”
“정말이예요? 맛있어요?”
운지가 막 과일을 입에 넣으려는데 사색이 된 문지기가 소리를 쳤다.
“그걸 드시면 어떻해요.”
“왜 먹으면 안돼? 손님에게 너무하는구만. 널렸구만 한 개 먹는다고 난리야.”
“그게 아니라 그건 사람이 먹으면 안되는 것이라...”
“사람이 먹으면 안되는게 어딨어?”
“그건 보통 사람이 먹으면 몸에서 화기가 올라 심맥을 상하게 하는 과일입니다.”
어디서 청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문지기는 그 소리가 들리자 갑자기 오체투지를 했고 나와 운지는 영문을 몰라 그 음성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역시 보통 인물들은 아니군요. 정천님의 말이 옳았어요.”
정천님?
이 요괴가 님자를 붙인단 말이지.
그렇다는 것은 정천이 여자를 꼬시는데 성공했다는 소리고.
이놈이 얌전한 줄 알았더니 호박씨는 멋지게 깠구만.
“먹는 것을 먹고 탈이 난다면 체면이 말이 아니지. 그런데 맛있는데 더 먹어도 될까?”
“더 드시고 싶으면 드세요. 어짜피 여기서 그것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저도 가끔 하나 정도나 먹을까 질려서 이젠 생각도 없네요.”
“고마워. 역시 사람은 먹는 것에 쪼잔하게 굴면 안되는 법이야. 그나저나 정천은 어디서 뭘하길래 내가 와도 얼굴도 안비취는 거야?”
“지금 요양을 하고 계세요. 어제 무리를 하셔서...”
얼굴이 붉혀지는 것을 보니 내가 일러준 방중술이 대단하긴 했나보다.
이때까지 수많은 남성을 품었을 텐데 그 모든 것을 부정할 정도인걸 보면 말야.
“허허. 그놈이 소저를 생각하는 마음이 끔찍한가 보군.”
나의 짖꿋은 농에도 그녀는 그저 웃기만 했다.
“이곳까지 오신 것을 보니 그분이 주군으로 모실만한 실력을 가지고 계신가 보군요. 이곳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 제게 접근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뭐 다 알고 있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남자들을 홀리는 이유가 뭐야?”
“그야... 공자님도 꽤나 밝히게 생기셨는데 이유를 아실 것 같습니다만...”
“그럼 단지 남자와의 잠자리 때문에 이때까지 이런 행동을 한거야?”
“그 외의 다른 이유는 제가 말씀 드릴 이유가 없어보이네요.”
“다른 이유라... 남자의 정기가 필요한 일이 있나?”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천님은 이제 저에게 꼭 필요하신 분. 그 분을 놓아줄 수 있습니까?”
“내 의사가 아니라 정천에게 물어봐야지. 내가 그놈을 잡고 말고가 어딨어.”
“주군이란 사람이 좀 심하시군요.”
“이봐. 내가 그의 주군이라 하더라도 그의 의지는 내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야. 조금 있다가 그가 나와서 나와 가는 것을 거부한다면 그와 한평생 재미나게 살라고.”
끊듯이 말을 마치고 몇 개의 과일을 더 먹었다.
이미 안에도 기별이 갔을 테니 이놈이 날 배신할 생각이 아니라면 이제 몸을 추스르고 나올 것이다.
그럼 그놈의 의사를 물어보고 다음 목적지로 향하면 된다.
그런데 여자를 잡으라고 했더니 도려 잡힌거야?
기껏 가르친 기술이 허사로 돌아간 것인가?
정천은 그러고도 한참 뒤에야 밖으로 나왔다.
좌우에 시중드는 여인을 보니 제법 반반한게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주군을 뵙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그런데 여기 남기로 했냐?”
“예? 무슨 말씀이신지...”
“저 소저가 널 여기 남기고 가라는데. 그럼 여기서 잘 지내도록 해.”
“주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여기에 남다니요. 전 미랑을 데리고 주군을 따라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미랑 이리와서 무슨 말을 했는지 설명해 봐요.”
“전 여기서 님과 지내고 싶은데 제 맘을 모르시겠어요?”
이거 무슨 이수일과 심순애도 아니고 때아닌 신파극이라니...
“어이. 네가 알아서 정리하고 나와. 밖에 있을 테니까. 그리고 딱 10분만 기다릴거니까 알아서 하고.”
걱정한 일이 벌어지진 않았군.
여자가 저렇게 매달린다는 것은 내가 일러준 수법이 통했다는 말이지.
다만 정력이 딸리니 휴식이 필요한 것이고.
운지와 나는 웃으며 밖으로 나왔다.
인간과 요괴의 사랑이라.
그것도 구미호의 꼬리가 사람에게 빠진 사건이라니.
아무리 독립된 개체라 해도 구미호로선 열이 받을 것인데.
자신의 힘이 약해지는 문제니까.
나와는 상관없으니 아니 오히려 상대하기가 좋으니 잘된 것인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정천과 미랑은 같이 나왔다.
이제 짝을 맞추어 여행을 시작하는 것인가?
그간 눈치를 본다고 많이 못했는데 따로 방을 준다면 상관없겠지.
게다가 마차 안에 철저한 방음 시설인 강기막을 친다면 이동하면서도 가능하겠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미랑은 정천에게 다시 한번 다짐을 강요받았다.
“주군의 말에 위배되는 행동은 절대 하지 마시오. 그리고 버릇없이 구는 것은 나에게나 가능한 것이지 주군에겐 절대 그런 행동을 하지 마시오.”
미랑은 고개를 숙인 채 작은 대답 소리만 냈다.
아마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여인이라 쉽지가 않을 테데 그렇게도 정천의 밤기술이 좋았던가?
아무튼 괜찮은 동료가 한명 늘었으니 가는 길이 재밌겠지.
사천으로 가는 길은 뭔가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뒤를 따르는 천마대도 기분 나쁜 예감에 더욱 엄중한 경비를 했다.
원래 이런 일에는 호위가 없이 혼자 다니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저놈들은 절대로 물러나지 않으니 즐길 수도 없구만.
주로 읽던 무협 소설에선 이럴 때 주인공은 모든 사랑하는 여인들을 두고도 외로운 길을 가면서 새로운 여인을 만나고 하는데 난 충분히 실력도 외모도 되는데 운지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새로 여인이 생기면 자기도 같이 해야 한다는데 어떤 여인이 그런 생각을 가질까?
둘이 몰래하는 맛이 있는 법인데 말야.
아무튼 사천을 가기 위해서는 산을 하나 넘어야 하는데 노숙을 한번은 해야지만 넘어갈 수 있었다.
돌아가는 방법도 있지만 내가 너무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는 관계로 가로지르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현사가 잘 하고 있지만 그래도 조직엔 장이 자리에 있어야 잘 돌아가는 법이다.
일단 산 아래에서 휴식을 하며 다음날 준비를 했다.
작은 마을이지만 그런대도 상점이며 객잔은 있었다.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살까란 생각이 들었지만 사람이 어디서인들 살지 못하랴.
그 생명의 끈질김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데.
간단한 요기와 반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어짜피 노숙을 하긴 하겠지만 조금이라도 일찍 일어나야 시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방에 올라오자마자 정천과 미랑의 신음을 들어야 했다.
이것들이 어떻게 쉴 시간도 없이 저러는지.
덕분에 나도 운지의 묘한 시선을 끝내 외면하지 못하여 열정의 밤을 보내었다.
다음날 집주인의 말에 따르면 두 여인의 신음으로 밤새 한숨 짓는 사내들이 많았다고 한다.
우린 그런 시선을 꿋꿋이 무시하고 마차를 몰았다.
산길이지만 상인들이 이용하는 곳이라 마차를 가지고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곳이다.
다만 산적이 있겠지만 나의 명으로 녹림은 이제 산도적은 하지 않는다.
뭐 겁을 상실한 몇몇이 하겠지만 아직은 보고된 바가 없다.
세상에 예외라는 것이 없으면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여기 그런 예외의 인물들이 우리의 길을 막고 섰다.
“크하하. 제법 반반한 계집이군. 마차와 계집을 두고 간다면 목숨은 살려두도록 하지.”
마부석에서 열심히 애정행각을 벌이던 정천과 미랑은 방금 들려온 소리를 기점으로 인상이 확 돌아가 버렸다.
불쌍한 것들.
평상시에 말을 해도 죽지 않을 만큼 맞을 것인데 지금처럼 한창 물이 끓으려고 하는 찰나라면 어디 성한 곳이 있겠어?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젊은 놈이 귀가 먹었나. 이 어르신의 말을 이해 못하겠어?”
버럭 소리를 지르지만 이미 정천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즐거운 한때를 방해 했으니.
게다가 나의 더러운 성질도 조금 배워 버렸으니 어쩌겠어.
정천은 다짜고짜 자리를 박차고 날아가 앞에 보이는 5명을 순식간에 제압해 버렸다.
연습용으로 쓰는 목검이지만 내력이 담기면 일반 목검이 아니다.
내가 일러준 8방향의 검로를 정확히 집어가고 있었다.
따로 초식이 필요 없는 완벽한 기본기가 처음 세상에 선보였다.
가로베기와 수평베기를 기본으로 사선배기를 착실히 하자 이내 앞을 막았던 사내들은 모두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어디서 이딴 짓을 하는거야. 지금 마차에 계신 분이 누군지 알아?”
“아이구... 대협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역시 정신 나간 것들은 패야 된다니까.
“지금 마차에 계신 분이 바로 녹림의 지존이시다. 그런데 감히 너희가 여기서 산도적질을 하다니. 참 어처구니가 없구나.”
그들의 안색이 파랗게 질려버렸다.
날 모르는 사람은 백도에서 난 소문만 들었을 테니 날 인면수심의 악마로 알고 있을 것이다.
대외적으로 천마교의 사위이기도 하기에 얼마나 심하겠어.
뭐 웃기지도 않는 상황이지만 내가 신경을 쓰지 않으니 누구도 문제 삼지는 않았다.
다만 녹림삼군이 이를 갈 뿐이지.
“됐다. 그만해라. 가던 길이나 가자.”
정천은 분풀이를 확실히 하려고 폼을 잡다가 내가 재촉하는 소리를 듣고는 입맛을 다지며 다시금 마차를 몰았다.
씩씩대던 정천을 미랑이 살그머니 안으며 달랬고 이내 둘은 하던 작업에 몰입했다.
이럴 때 보면 말이 똑똑한 것이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산으로 난 길을 그대로 따라 걸으니 굳이 재촉을 하지 않아도 마차는 자연스럽게 산길을 타고 있었다.
해가 뜨고 저무는 것은 자연의 섭리라 하지만 산속에서 맞이하는 밤은 조금 이른감이 든다.
아직 어두워질 시간이 아닌데도 벌써 땅거미가 지더니 이내 깜깜해 졌다.
말도 어둠이 두려운지 가던 길을 멈추고 바닥의 풀을 뜯었다.
군대도 계급이듯 조직은 무조건 계급이다.
나와 운지는 마차에서 정천과 미랑은 나무숲에서 노숙을 준비했다.
“상공. 아무리 그래도 너무 하셨어요. 어떻게 여자를 밖에서 노숙 시킬 수가 있어요? 전 당연히 운지님과 함께 마차에서 자고 상공과 주군이 밖에서 자는 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그런 소리 마시오. 그분은 우리와 다른 사람이오.”
젠장 그런 소리는 안들리게 하는게 예의 아닌가?
정말 같잖지도 않구만.
“그래 내가 생각이 짧았군. 각자가 뜻 깊은 노숙이 되리라 생각하고 짝짝이 보내자고 한 것인데 이렇게 말하니 내가 좀 모자랐군. 미랑도 들어가서 자도록 해. 내가 밖에서 자도록 하지. 그럼 준비하자고.”
정천은 내게 미안한 표정을 하면서도 미랑을 보며 슬그머니 미소를 보냈다.
“자식이 그런건 니가 말해도 되잖아. 여자가 말하게 하냐.”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주군께서 이슬을 맞으시게 하다니.”
“괜찮다. 많이 했는데 뭘.”
불을 피우고 동물을 잡아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건량이 있지만 난 그런건 체질이 아니라 싫어해서 직접 만들었다.
항상 이럴 때 생각하는 것이지만 천마대는 과연 식사를 어떻게 할까?
밥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는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협지를 보면 이런 대목이 항상 신기하답니다. 부하들은 먹지도 싸지도 않고 사는 것인지. 아니면 알아서 처리를 하는 것인지...)
불을 약하게 피워 놓고 각자 자리에 들었다.
마차 안의 기운이 잠시 술렁였지만 다시금 잠잠해 졌다.
무슨 막을 쳐서 차단을 한듯 한데 내 능력을 무시하는 것인가?
“운지님. 솔직하게 대답해 주세요. 환계에서 어떻게 이곳으로 오신거죠?”
“알고 있었어? 미리 말하지 않길래 모르는줄 알았지.”
“설마 제가 봉황의 기운을 잊어버렸겠어요? 우리 환계 최고의 실력자를요.”
“호호호.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그래 내가 왜 왔는지 궁금해?”
“뭐 뻔한 내용이지만 듣고 싶네요.”
“네가 알고 있듯이 구미호를 잡으러 온거야. 그녀의 잘못은 너도 알잖아?”
“그렇다고 해서 사람과 같이 다니는 것은 너무 하지 않아요? 환계의 수호자만 해도 충분히 제압을 할 수 있을 텐데요.”
“마치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태도구나. 아무튼 주인님은 선택 받은 인간이야. 그래서...”
일주일 정도를 객점에서 머물며 즐겁게 놀았다.
정천을 생각하니 웃음도 나고 나의 성욕도 더욱 왕성해져서 운지가 더 좋아서 난리다.
이쯤 했으면 찾으러 갈 생각도 해야겠지?
정천의 기운을 찾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환영을 걸어놓은 진법이라 나처럼 정신력이 강한 사람은 걸려들지 않는다.
물론 운지도 사람이 아니기에 진법에 혼란을 일으키거나 하진 않았다.
밖의 사람은 보이지도 않을 텐데 문 앞에는 사람이 지키고 있었다.
“수고 많으시오. 사람을 찾으러 왔는데.”
“어... 어떻게... 내가 보이시오?”
“그럼 보이니까 말을 하지 않겠소.”
아마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정신이 없겠지.
지나가는 사람들을 모두 비웃음으로 보냈을게 분명한데 난 똑바로 자신을 쳐다보며 다가오니 어쩔줄을 모르는 것이다.
“문지기에게 물어서는 모르는 것인가?”
“잠시만 기다리시오.”
놀라긴 했어도 이런 상황을 미리 짐작은 했던가?
그런대로 진정을 하며 안으로 들어가 보고를 하는 듯 했다.
나와 운지는 집의 전경을 살피며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들어오십시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불과 한발자국의 거리인데 안과 밖은 다른 세상이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신기한 꽃과 나무들이 지천에 널려있고 그냥 먹어도 좋을 것 같은 싱싱한 과일이 잔뜩 보였다.
“우와. 이거 먹어도 되는건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 벌써 한 개의 과일이 입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야 이거 맛있네. 너도 하나 먹어봐.”
“정말이예요? 맛있어요?”
운지가 막 과일을 입에 넣으려는데 사색이 된 문지기가 소리를 쳤다.
“그걸 드시면 어떻해요.”
“왜 먹으면 안돼? 손님에게 너무하는구만. 널렸구만 한 개 먹는다고 난리야.”
“그게 아니라 그건 사람이 먹으면 안되는 것이라...”
“사람이 먹으면 안되는게 어딨어?”
“그건 보통 사람이 먹으면 몸에서 화기가 올라 심맥을 상하게 하는 과일입니다.”
어디서 청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문지기는 그 소리가 들리자 갑자기 오체투지를 했고 나와 운지는 영문을 몰라 그 음성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역시 보통 인물들은 아니군요. 정천님의 말이 옳았어요.”
정천님?
이 요괴가 님자를 붙인단 말이지.
그렇다는 것은 정천이 여자를 꼬시는데 성공했다는 소리고.
이놈이 얌전한 줄 알았더니 호박씨는 멋지게 깠구만.
“먹는 것을 먹고 탈이 난다면 체면이 말이 아니지. 그런데 맛있는데 더 먹어도 될까?”
“더 드시고 싶으면 드세요. 어짜피 여기서 그것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저도 가끔 하나 정도나 먹을까 질려서 이젠 생각도 없네요.”
“고마워. 역시 사람은 먹는 것에 쪼잔하게 굴면 안되는 법이야. 그나저나 정천은 어디서 뭘하길래 내가 와도 얼굴도 안비취는 거야?”
“지금 요양을 하고 계세요. 어제 무리를 하셔서...”
얼굴이 붉혀지는 것을 보니 내가 일러준 방중술이 대단하긴 했나보다.
이때까지 수많은 남성을 품었을 텐데 그 모든 것을 부정할 정도인걸 보면 말야.
“허허. 그놈이 소저를 생각하는 마음이 끔찍한가 보군.”
나의 짖꿋은 농에도 그녀는 그저 웃기만 했다.
“이곳까지 오신 것을 보니 그분이 주군으로 모실만한 실력을 가지고 계신가 보군요. 이곳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 제게 접근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뭐 다 알고 있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남자들을 홀리는 이유가 뭐야?”
“그야... 공자님도 꽤나 밝히게 생기셨는데 이유를 아실 것 같습니다만...”
“그럼 단지 남자와의 잠자리 때문에 이때까지 이런 행동을 한거야?”
“그 외의 다른 이유는 제가 말씀 드릴 이유가 없어보이네요.”
“다른 이유라... 남자의 정기가 필요한 일이 있나?”
“대답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천님은 이제 저에게 꼭 필요하신 분. 그 분을 놓아줄 수 있습니까?”
“내 의사가 아니라 정천에게 물어봐야지. 내가 그놈을 잡고 말고가 어딨어.”
“주군이란 사람이 좀 심하시군요.”
“이봐. 내가 그의 주군이라 하더라도 그의 의지는 내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야. 조금 있다가 그가 나와서 나와 가는 것을 거부한다면 그와 한평생 재미나게 살라고.”
끊듯이 말을 마치고 몇 개의 과일을 더 먹었다.
이미 안에도 기별이 갔을 테니 이놈이 날 배신할 생각이 아니라면 이제 몸을 추스르고 나올 것이다.
그럼 그놈의 의사를 물어보고 다음 목적지로 향하면 된다.
그런데 여자를 잡으라고 했더니 도려 잡힌거야?
기껏 가르친 기술이 허사로 돌아간 것인가?
정천은 그러고도 한참 뒤에야 밖으로 나왔다.
좌우에 시중드는 여인을 보니 제법 반반한게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주군을 뵙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그런데 여기 남기로 했냐?”
“예? 무슨 말씀이신지...”
“저 소저가 널 여기 남기고 가라는데. 그럼 여기서 잘 지내도록 해.”
“주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여기에 남다니요. 전 미랑을 데리고 주군을 따라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미랑 이리와서 무슨 말을 했는지 설명해 봐요.”
“전 여기서 님과 지내고 싶은데 제 맘을 모르시겠어요?”
이거 무슨 이수일과 심순애도 아니고 때아닌 신파극이라니...
“어이. 네가 알아서 정리하고 나와. 밖에 있을 테니까. 그리고 딱 10분만 기다릴거니까 알아서 하고.”
걱정한 일이 벌어지진 않았군.
여자가 저렇게 매달린다는 것은 내가 일러준 수법이 통했다는 말이지.
다만 정력이 딸리니 휴식이 필요한 것이고.
운지와 나는 웃으며 밖으로 나왔다.
인간과 요괴의 사랑이라.
그것도 구미호의 꼬리가 사람에게 빠진 사건이라니.
아무리 독립된 개체라 해도 구미호로선 열이 받을 것인데.
자신의 힘이 약해지는 문제니까.
나와는 상관없으니 아니 오히려 상대하기가 좋으니 잘된 것인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정천과 미랑은 같이 나왔다.
이제 짝을 맞추어 여행을 시작하는 것인가?
그간 눈치를 본다고 많이 못했는데 따로 방을 준다면 상관없겠지.
게다가 마차 안에 철저한 방음 시설인 강기막을 친다면 이동하면서도 가능하겠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미랑은 정천에게 다시 한번 다짐을 강요받았다.
“주군의 말에 위배되는 행동은 절대 하지 마시오. 그리고 버릇없이 구는 것은 나에게나 가능한 것이지 주군에겐 절대 그런 행동을 하지 마시오.”
미랑은 고개를 숙인 채 작은 대답 소리만 냈다.
아마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여인이라 쉽지가 않을 테데 그렇게도 정천의 밤기술이 좋았던가?
아무튼 괜찮은 동료가 한명 늘었으니 가는 길이 재밌겠지.
사천으로 가는 길은 뭔가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뒤를 따르는 천마대도 기분 나쁜 예감에 더욱 엄중한 경비를 했다.
원래 이런 일에는 호위가 없이 혼자 다니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저놈들은 절대로 물러나지 않으니 즐길 수도 없구만.
주로 읽던 무협 소설에선 이럴 때 주인공은 모든 사랑하는 여인들을 두고도 외로운 길을 가면서 새로운 여인을 만나고 하는데 난 충분히 실력도 외모도 되는데 운지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새로 여인이 생기면 자기도 같이 해야 한다는데 어떤 여인이 그런 생각을 가질까?
둘이 몰래하는 맛이 있는 법인데 말야.
아무튼 사천을 가기 위해서는 산을 하나 넘어야 하는데 노숙을 한번은 해야지만 넘어갈 수 있었다.
돌아가는 방법도 있지만 내가 너무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는 관계로 가로지르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현사가 잘 하고 있지만 그래도 조직엔 장이 자리에 있어야 잘 돌아가는 법이다.
일단 산 아래에서 휴식을 하며 다음날 준비를 했다.
작은 마을이지만 그런대도 상점이며 객잔은 있었다.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살까란 생각이 들었지만 사람이 어디서인들 살지 못하랴.
그 생명의 끈질김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데.
간단한 요기와 반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어짜피 노숙을 하긴 하겠지만 조금이라도 일찍 일어나야 시간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방에 올라오자마자 정천과 미랑의 신음을 들어야 했다.
이것들이 어떻게 쉴 시간도 없이 저러는지.
덕분에 나도 운지의 묘한 시선을 끝내 외면하지 못하여 열정의 밤을 보내었다.
다음날 집주인의 말에 따르면 두 여인의 신음으로 밤새 한숨 짓는 사내들이 많았다고 한다.
우린 그런 시선을 꿋꿋이 무시하고 마차를 몰았다.
산길이지만 상인들이 이용하는 곳이라 마차를 가지고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곳이다.
다만 산적이 있겠지만 나의 명으로 녹림은 이제 산도적은 하지 않는다.
뭐 겁을 상실한 몇몇이 하겠지만 아직은 보고된 바가 없다.
세상에 예외라는 것이 없으면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여기 그런 예외의 인물들이 우리의 길을 막고 섰다.
“크하하. 제법 반반한 계집이군. 마차와 계집을 두고 간다면 목숨은 살려두도록 하지.”
마부석에서 열심히 애정행각을 벌이던 정천과 미랑은 방금 들려온 소리를 기점으로 인상이 확 돌아가 버렸다.
불쌍한 것들.
평상시에 말을 해도 죽지 않을 만큼 맞을 것인데 지금처럼 한창 물이 끓으려고 하는 찰나라면 어디 성한 곳이 있겠어?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젊은 놈이 귀가 먹었나. 이 어르신의 말을 이해 못하겠어?”
버럭 소리를 지르지만 이미 정천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즐거운 한때를 방해 했으니.
게다가 나의 더러운 성질도 조금 배워 버렸으니 어쩌겠어.
정천은 다짜고짜 자리를 박차고 날아가 앞에 보이는 5명을 순식간에 제압해 버렸다.
연습용으로 쓰는 목검이지만 내력이 담기면 일반 목검이 아니다.
내가 일러준 8방향의 검로를 정확히 집어가고 있었다.
따로 초식이 필요 없는 완벽한 기본기가 처음 세상에 선보였다.
가로베기와 수평베기를 기본으로 사선배기를 착실히 하자 이내 앞을 막았던 사내들은 모두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어디서 이딴 짓을 하는거야. 지금 마차에 계신 분이 누군지 알아?”
“아이구... 대협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역시 정신 나간 것들은 패야 된다니까.
“지금 마차에 계신 분이 바로 녹림의 지존이시다. 그런데 감히 너희가 여기서 산도적질을 하다니. 참 어처구니가 없구나.”
그들의 안색이 파랗게 질려버렸다.
날 모르는 사람은 백도에서 난 소문만 들었을 테니 날 인면수심의 악마로 알고 있을 것이다.
대외적으로 천마교의 사위이기도 하기에 얼마나 심하겠어.
뭐 웃기지도 않는 상황이지만 내가 신경을 쓰지 않으니 누구도 문제 삼지는 않았다.
다만 녹림삼군이 이를 갈 뿐이지.
“됐다. 그만해라. 가던 길이나 가자.”
정천은 분풀이를 확실히 하려고 폼을 잡다가 내가 재촉하는 소리를 듣고는 입맛을 다지며 다시금 마차를 몰았다.
씩씩대던 정천을 미랑이 살그머니 안으며 달랬고 이내 둘은 하던 작업에 몰입했다.
이럴 때 보면 말이 똑똑한 것이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산으로 난 길을 그대로 따라 걸으니 굳이 재촉을 하지 않아도 마차는 자연스럽게 산길을 타고 있었다.
해가 뜨고 저무는 것은 자연의 섭리라 하지만 산속에서 맞이하는 밤은 조금 이른감이 든다.
아직 어두워질 시간이 아닌데도 벌써 땅거미가 지더니 이내 깜깜해 졌다.
말도 어둠이 두려운지 가던 길을 멈추고 바닥의 풀을 뜯었다.
군대도 계급이듯 조직은 무조건 계급이다.
나와 운지는 마차에서 정천과 미랑은 나무숲에서 노숙을 준비했다.
“상공. 아무리 그래도 너무 하셨어요. 어떻게 여자를 밖에서 노숙 시킬 수가 있어요? 전 당연히 운지님과 함께 마차에서 자고 상공과 주군이 밖에서 자는 것으로 생각을 했는데...”
“그런 소리 마시오. 그분은 우리와 다른 사람이오.”
젠장 그런 소리는 안들리게 하는게 예의 아닌가?
정말 같잖지도 않구만.
“그래 내가 생각이 짧았군. 각자가 뜻 깊은 노숙이 되리라 생각하고 짝짝이 보내자고 한 것인데 이렇게 말하니 내가 좀 모자랐군. 미랑도 들어가서 자도록 해. 내가 밖에서 자도록 하지. 그럼 준비하자고.”
정천은 내게 미안한 표정을 하면서도 미랑을 보며 슬그머니 미소를 보냈다.
“자식이 그런건 니가 말해도 되잖아. 여자가 말하게 하냐.”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주군께서 이슬을 맞으시게 하다니.”
“괜찮다. 많이 했는데 뭘.”
불을 피우고 동물을 잡아 간단하게 요기를 했다.
건량이 있지만 난 그런건 체질이 아니라 싫어해서 직접 만들었다.
항상 이럴 때 생각하는 것이지만 천마대는 과연 식사를 어떻게 할까?
밥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는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협지를 보면 이런 대목이 항상 신기하답니다. 부하들은 먹지도 싸지도 않고 사는 것인지. 아니면 알아서 처리를 하는 것인지...)
불을 약하게 피워 놓고 각자 자리에 들었다.
마차 안의 기운이 잠시 술렁였지만 다시금 잠잠해 졌다.
무슨 막을 쳐서 차단을 한듯 한데 내 능력을 무시하는 것인가?
“운지님. 솔직하게 대답해 주세요. 환계에서 어떻게 이곳으로 오신거죠?”
“알고 있었어? 미리 말하지 않길래 모르는줄 알았지.”
“설마 제가 봉황의 기운을 잊어버렸겠어요? 우리 환계 최고의 실력자를요.”
“호호호.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그래 내가 왜 왔는지 궁금해?”
“뭐 뻔한 내용이지만 듣고 싶네요.”
“네가 알고 있듯이 구미호를 잡으러 온거야. 그녀의 잘못은 너도 알잖아?”
“그렇다고 해서 사람과 같이 다니는 것은 너무 하지 않아요? 환계의 수호자만 해도 충분히 제압을 할 수 있을 텐데요.”
“마치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태도구나. 아무튼 주인님은 선택 받은 인간이야.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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