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1%의 엘리트라는 걸까?”
짝궁인 희연이가 물어왔다. 강연회에 초대된 모 대기업의 CEO의 인상은 그만큼 위엄과 자신감에 가득 차있었다. 강당에서 치루어지는 이 강연회는 K여자고등학교의 연중 행사였다. 이정도의 사회적 지휘가 있는 인사를 초청해올 정도였으니 명문고교라는 이름이 무색하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학생들에게 지루한 강연은 이보다 조금 더 지루한 수업의 대체라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뿐이었다.
“왜 있잖아? 한국 사회를 먹여 살리는 1%의 엘리트라는 말.”
내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짓자 희연이가 설명해주었다. 뭐- 확실히 옷은 비싼 거겠지? 강당에 웅웅 울리는 마이크 소리의 뒤로 소곤소곤 말했다.
“그런거 왠지 이상해. 99%가 손 놓고 노는 건 아니잖아?”
내 말에 희연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생긋 웃으며 말한다.
“음~ 적어도, 저런 사람 만나면 인생 피는 거겠지? 헤헤”
“풋. 그런 모든 여자가 한번쯤 꿔보는 꿈같은 건 이제 졸업하세요.”
난 그렇게 웃으며 눈을 떴다.
천정이다.
내 시야에 넓게 펼쳐진 검고 어두운 천정이 비추었다. 오래되어 낡은 시맨트가 조금씩 금이 가 떨어지는 낡은 천정이었다. 강연이 울려퍼지던 강당도, 불편한 철제 의자도, 희연이도 없었다. 난 홀로 이 어두운 방에 누워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몸으로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일하게 목에 걸린 커다란 가죽 개목걸이가 존재감을 뿜어댄다.
아... 꿈이었구나. 내가 아직 인간이었을 무렵의 꿈...
참을 수 없는 그리움과 설움이 복받쳐 올라왔다. 몸의 상처는 이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통증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 통증과 공포, 상처의 생생한 기억이 떠올라 흠칫 떨려온다. 나는 양팔을 감싸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리운 얼굴들과 생활, 내가 알던 세계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다신 찾을 수 없는 파편이 되어 평생 그리워하게 될 추억들이 나를 전율시킨다. 그러나 이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나는 마음 것 통곡하지도 못한다. 내게 주어진 이 비참한 환경이 이 억제력을 제공해준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간신히 목으로, 심장으로 눌러담아 소리죽여 울 수 있었다.
나의 아침은 새벽 5시에 시작된다. 전날 몇 시에 잠들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정해져있는 것이다. 새벽 5시가 되면 아무리 피곤이 쌓이고 잠이 모잘라도 눈이 떠진다. 이것을 그녀는 정언명령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로써 나는 내 기상 시간조차 선택할 수 없게 되었다. 무서운 것은 이것이 환경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차라리 생리적인 강제이다. 그리고 이 강제는 내 의사를 초월한다.
그러니까 아마도 지금은 5시일 태지.
아무것도 없는 지하의 어둠이 달칵하는 스위치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매이드 복장을 한 소녀가 들어왔다.
“일어났습니까? 율희씨”
“예.”
나는 애써 울음의 기색을 지웠지만 완벽하게 숨기는 것은 불가능 했다. 그럼에도 소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평소처럼 지하방의 철창의 자물쇠를 딴다.
“밖에서 세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네...”
내 방, 아니 내가 갖혀지내는 장소. 이 넓은 지하에는 수많은 감옥들이 있고 그중 한 곳에서 나는 몸을 숙여 조심스레 철창의 문을 통과한다. 알몸인 것이 이 하녀들에게는 더 이상 부끄럽지도 않았다. 언제나 무표정한 이들은 차라리 로봇만 같았다. 하녀가 가져온 긴 줄은 나의 가죽 목걸이에 이어져 세척을 준비하고 있는 다른 하녀에게까지 안내된다. 네발로 기어서 계단을 오르는 것은 이젠 익숙해져 있었다.
꿈에서 짝궁 희연의 상위 1% 엘리트와 만나는 희망을 나는 조금 다르고 더욱 절망적인 방식으로 이루었다.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나는 인간이 아니게 되었다. 그것은 세상 어떤 인간보다도 저급한 계급이었다.
기괴한 목욕과 간단한 단장이 끝나자 나는 하녀의 안내를 받아 알몸인체로 식당으로 간다. 이 저택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넓고 커서 혼자서 돌아다닐 엄두는 내기도 힘들었고, 그럴 기회를 갖지도 못했다. 항상 누군가에 이렇게 개줄로 연결되어 이끌리는 것이다. 이런 서양식 저택이 우리나라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식당에 도착하자 하녀는 내 목에 묶인 끈을 회수하여 영화에서나 보던 커다란 테이블 옆에 가지런히 선다. 식사의 수발을 들기 위해서다. 그리고 물론 그 서비스는 날 위한 것이 아니다. 내 자리는 식탁의 의자가 아니라, 식탁 의자 옆이었다. 그곳에 무릎을 꿇고 얌전히 주인님을 기다려야한다. 7시쯤 됐을까. 식당의 커다란 문이 열리며 하녀와 한 소녀가 들어온다. 올해 17세를 맞은 이 소녀의 하얀 피부와 커다란 눈은 활발해 보이는 갈색의 보브단발과 더불어 무척 매력적이다. 그리고 내게는 그 무엇보다 큰 절대적인 공포의 대상이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언니.”
그녀가 앉을 식탁의 의자 옆에서 알몸으로 무릎을 꿇어 엎드린 나는 그렇게 지옥 같은 하루의 시작을 고한다.
----<프롤로그 완>
처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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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궁인 희연이가 물어왔다. 강연회에 초대된 모 대기업의 CEO의 인상은 그만큼 위엄과 자신감에 가득 차있었다. 강당에서 치루어지는 이 강연회는 K여자고등학교의 연중 행사였다. 이정도의 사회적 지휘가 있는 인사를 초청해올 정도였으니 명문고교라는 이름이 무색하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학생들에게 지루한 강연은 이보다 조금 더 지루한 수업의 대체라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뿐이었다.
“왜 있잖아? 한국 사회를 먹여 살리는 1%의 엘리트라는 말.”
내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짓자 희연이가 설명해주었다. 뭐- 확실히 옷은 비싼 거겠지? 강당에 웅웅 울리는 마이크 소리의 뒤로 소곤소곤 말했다.
“그런거 왠지 이상해. 99%가 손 놓고 노는 건 아니잖아?”
내 말에 희연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생긋 웃으며 말한다.
“음~ 적어도, 저런 사람 만나면 인생 피는 거겠지? 헤헤”
“풋. 그런 모든 여자가 한번쯤 꿔보는 꿈같은 건 이제 졸업하세요.”
난 그렇게 웃으며 눈을 떴다.
천정이다.
내 시야에 넓게 펼쳐진 검고 어두운 천정이 비추었다. 오래되어 낡은 시맨트가 조금씩 금이 가 떨어지는 낡은 천정이었다. 강연이 울려퍼지던 강당도, 불편한 철제 의자도, 희연이도 없었다. 난 홀로 이 어두운 방에 누워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몸으로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일하게 목에 걸린 커다란 가죽 개목걸이가 존재감을 뿜어댄다.
아... 꿈이었구나. 내가 아직 인간이었을 무렵의 꿈...
참을 수 없는 그리움과 설움이 복받쳐 올라왔다. 몸의 상처는 이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통증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 통증과 공포, 상처의 생생한 기억이 떠올라 흠칫 떨려온다. 나는 양팔을 감싸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리운 얼굴들과 생활, 내가 알던 세계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다신 찾을 수 없는 파편이 되어 평생 그리워하게 될 추억들이 나를 전율시킨다. 그러나 이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나는 마음 것 통곡하지도 못한다. 내게 주어진 이 비참한 환경이 이 억제력을 제공해준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간신히 목으로, 심장으로 눌러담아 소리죽여 울 수 있었다.
나의 아침은 새벽 5시에 시작된다. 전날 몇 시에 잠들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정해져있는 것이다. 새벽 5시가 되면 아무리 피곤이 쌓이고 잠이 모잘라도 눈이 떠진다. 이것을 그녀는 정언명령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로써 나는 내 기상 시간조차 선택할 수 없게 되었다. 무서운 것은 이것이 환경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차라리 생리적인 강제이다. 그리고 이 강제는 내 의사를 초월한다.
그러니까 아마도 지금은 5시일 태지.
아무것도 없는 지하의 어둠이 달칵하는 스위치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매이드 복장을 한 소녀가 들어왔다.
“일어났습니까? 율희씨”
“예.”
나는 애써 울음의 기색을 지웠지만 완벽하게 숨기는 것은 불가능 했다. 그럼에도 소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평소처럼 지하방의 철창의 자물쇠를 딴다.
“밖에서 세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네...”
내 방, 아니 내가 갖혀지내는 장소. 이 넓은 지하에는 수많은 감옥들이 있고 그중 한 곳에서 나는 몸을 숙여 조심스레 철창의 문을 통과한다. 알몸인 것이 이 하녀들에게는 더 이상 부끄럽지도 않았다. 언제나 무표정한 이들은 차라리 로봇만 같았다. 하녀가 가져온 긴 줄은 나의 가죽 목걸이에 이어져 세척을 준비하고 있는 다른 하녀에게까지 안내된다. 네발로 기어서 계단을 오르는 것은 이젠 익숙해져 있었다.
꿈에서 짝궁 희연의 상위 1% 엘리트와 만나는 희망을 나는 조금 다르고 더욱 절망적인 방식으로 이루었다.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나는 인간이 아니게 되었다. 그것은 세상 어떤 인간보다도 저급한 계급이었다.
기괴한 목욕과 간단한 단장이 끝나자 나는 하녀의 안내를 받아 알몸인체로 식당으로 간다. 이 저택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넓고 커서 혼자서 돌아다닐 엄두는 내기도 힘들었고, 그럴 기회를 갖지도 못했다. 항상 누군가에 이렇게 개줄로 연결되어 이끌리는 것이다. 이런 서양식 저택이 우리나라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식당에 도착하자 하녀는 내 목에 묶인 끈을 회수하여 영화에서나 보던 커다란 테이블 옆에 가지런히 선다. 식사의 수발을 들기 위해서다. 그리고 물론 그 서비스는 날 위한 것이 아니다. 내 자리는 식탁의 의자가 아니라, 식탁 의자 옆이었다. 그곳에 무릎을 꿇고 얌전히 주인님을 기다려야한다. 7시쯤 됐을까. 식당의 커다란 문이 열리며 하녀와 한 소녀가 들어온다. 올해 17세를 맞은 이 소녀의 하얀 피부와 커다란 눈은 활발해 보이는 갈색의 보브단발과 더불어 무척 매력적이다. 그리고 내게는 그 무엇보다 큰 절대적인 공포의 대상이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언니.”
그녀가 앉을 식탁의 의자 옆에서 알몸으로 무릎을 꿇어 엎드린 나는 그렇게 지옥 같은 하루의 시작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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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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