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부터 남편은 주간근무에 들어간다.
아침 다섯 시 반에 집을 나가 오후 두 시 반에 집에 들어온다.
이 때가 남편이 자주 술을 마시는 때이다.
오후 두 시에 회사 일을 마치면 동료들과 어울려 회사 부근 식당으로 가서 소주를
마시고 저녁 일곱 시나 여덟 시쯤 술에 잔뜩 취해 집으로 돌아온다.
어떨 때는 이차, 삼차로 술을 마시러 가는지 밤 늦게 열 한시나 열 두시 쯤
집에 들어올 때도 있다.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전처럼 나를 불러 잔소리를 하거나 폭력을 쓰지는 않는다.
그저 차가운 뱀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차라리 전처럼 잔소리를 하거나 폭력을 쓸 때가 더 인간적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나랑 이혼하자고 하지, 뭣 때문에 가출한 경력이 있는 나를 데리고
사는지..
애들 때문인가?
이제 남편과 나는 한집에서 사는 남남들이다.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는 파출부에다, 애들을 키우는 유모에다가, 한번씩 필요할 때
몸을 대주는 창녀랑 뭐가 다른가?
다시 남자의 사랑이 그립다. 나를 이해하고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그렇다고 예전처럼 남자를 따라 같이 도망가는 짓 따위의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내 자리를 지키면서 인연이 되어 진정으로 나를 사랑해 주는 남자를 발견할 때
서로 사랑을 주고 받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조급하게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다. 내 사랑을 찾기 위해서..
조급히 서두르다 보면 또 다른 우를 범할지 모르기 때문에..
오후 세시가 되어도 남편이 오지 않는다.
아마, 오늘도 직장동료들이랑 같이 술을 마시고 올 모양이다.
전화벨이 울려 받아보니 옆집에 사는 미진이다.
“현숙이니? 지금 뭐해? 너네 집에 놀러 갈까?”
“남편이 언제 올지 모르는데 내가 너네 집에 놀러 갈게.”
“그럼.. 그렇게 해.”
아이들에게 옆집에 놀러 가니까 아빠 오면 그렇게 이야길 하라고 하고, 집을 나와
미진이네 집에 놀러 간다.
미진이 남편은 공무원이니까 여섯 시나 돼야 집에 올 것이다.
미진이와 같이 거실의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환담을 나눈다.
미진이가 말을 한다.
“어제 이야기 한 거 있잖아? 너에게 춤 배우기로 한 거..
시간 날 때 우리 집에서 카셋트 틀어놓고 춤을 배우면 안될까?”
“그렇게 해서 안될 거야 없지만.. 그래도 집에서 그러기는 좀 그렇잖아?”
“그럼.. 어디에서 하면 될까? 음.. 카바레는 어때?”
“미진이 너.. 카바레에 가봤니?”
“춤 배우면서 몇 번 갔었지. 넌? 참.. 너야 많이 가봤을 테지.”
“그럼, 카바레에 가는 것도 괜찮겠다. 낮 시간에 잠시 갔다 오면 되니까..”
“아유! 잘 됐다. 그럼, 그렇게 하자. 당장 오늘부터 시작할까? 지금 카바레에 갈래?”
“오늘은 좀 그렇고 내일 한번 가보자.”
“시간은?”
“지금 시간 정도로 하지 뭐..”
“그래. 그렇게 하자.”
한 시간 정도 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아직 남편은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저녁 일곱 시쯤 남편이 술에 취해서 집에 돌아온다.
다음 날, 약속한대로 오후 세시에 미진이와 같이 아파트를 나서 카바레로 간다.
시내버스를 타고 네 정류소 정도 지나 상가가 많이 있는 번화가에서 내려 조금 걸어서
골목으로 들어오니 카바레가 하나 보인다.
전에 미진이가 몇 번 와봤다던 카바레이다.
카바레로 들어서니 예전의 기억이 새롭다.
홀에는 여러 쌍쌍들이 어울려 춤을 추고 있다.
전에 나와 진수씨도 저렇게 짝을 맞춰 춤을 추었었지..
미옥이나 옥자도 같이 어울려 다녔었고.. 미옥이나 옥자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많이 보고 싶다.
곡이 하나 끝나고, 지루박 음악이 흘러 나온다.
“현숙아. 뭐해?”
옆에서 미진이가 손을 잡아 끈다.
미진이와 같이 홀로 나가 파트너가 되어 춤을 춘다.
물론 남자, 여자가 파트너가 되어 춤을 추는 게 원칙이지만, 내가 남자의 스텝을 밟고
미진이와 함께 춤을 춘다,
여자가 아무리 춤을 잘 춰도 남자의 스텝을 밟기는 힘들다.
애초에 여자의 스텝으로 춤을 배우니까..
하지만, 나는 대구에서 춤을 가르치다 보니, 남자의 스텝을 안 배울 수가 없었다.
아직은 많이 서툰 미진이에게 동작 하나하나를 지적해가며 춤을 춘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미진이와 함께 춤을 춘다.
오랜만에 춤을 추니까 운동도 되고 몸이 한결 가뿐해 지는 것 같다.
미진이가 좀 더 춤을 추다가 가자는 것을 만류해서 카바레를 나온다.
춤이란 한번에 많이 춘다고 해서 느는 것은 아니다.
조금씩이라도 꾸준하게 춰야 춤 실력이 느는 것이니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미진이가 내게 말한다.
“야.. 현숙이 너 대단하더라. 네가 아마추어 수준은 넘었다고 했지만,
그 정도인지는 몰랐어. 댄스 교습소를 차려도 되겠더라.”
“댄스 교습소라는 게 춤만 잘 춘다고 되니?”
“앞으로 매일매일 왔으면 좋겠다.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돈을 들여 헬스 클럽에도 다니는 데, 거기에 비하면 이게 훨씬 낮지..
재미도 있고, 운동도 되고.. 안 그래?”
“그렇기야 하지.. 별일 없으면 그렇게 하자.”
“나랑 약속한 거야? 대신 내가 종종 맛있는 것을 사줄게.
버스 내리거든 내가 저녁을 살 테니 같이 먹고 들어가자.”
“나도 좋아서 하는 건데.. 저녁까지 살 필요는 없어.”
“그래도 공짜로 춤의 대가한테 손수 지도를 받는데, 그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지.
다음에 우리 동창들 모임 있을 때 내가 춤을 추면 모두들 입이 쩍 벌어지겠다.
생각만 해도 즐거워..”
버스가 우리 동네에 들어서고 같이 버스에서 내린다.
“현숙이 너, 무슨 음식 좋아하니?”
“정말 저녁을 사려고?”
“현숙아. 뭐 먹을래?”
“뭐, 아무 거나..”
“그럼. 족발 먹으러 가자. 조금만 걸어가면 족발 맛있게 하는 데가 있어.”
둘이서 조금 걸어서 아파트에 거의 다 와갈 무렵, 골목 안에 있는 족발 집으로
들어가서 소주 한 병과 족발을 시켜 같이 먹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날 이후, 일주일에 네 번 정도는 미진이와 같이 그 카바레에 다닌다.
약 두 달이 흘러 이젠 미진이도 춤을 능숙하게 잘 춘다.
이젠 미진이와 같이 춤을 추는 것보다 카바레에 춤을 추러 오는 남자들과 각자 파트너가
되어 춤을 춘다.
어느 새, 내가 그 카바레에서 춤 도사라고 소문이 난다.
그날도 오후 세시에 카바레에 갔는데, 나와 같이 춤을 추지는 않았지만,
한번씩 보던 남자가 내게 손을 내민다.
키가 185cm정도 될까? 키가 많이 큰 편이고, 얼굴의 윤곽이 뚜렷한 게 남자답게
제법 잘 생긴 얼굴이다.
흰색 양복을 입고 하얀 구두를 신었는데, 아주 멋쟁이였다.
나이는 우리 정도 되었을까?
같이 손을 잡고 춤을 추는데, 영 춤이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보단 춤은 많이 미숙했다.
그렇다고 내색할 수도 없고, 내가 그 남자에게 잘 맞춰 춤을 춘다.
그렇게 한 곡이 끝이 나고, 그 남자와 인사를 하고 홀 가장자리로 나와서
잠시 쉬고 있는데, 나랑 춤을 춘 그 남자가 내 옆에 다가와서 음료 캔을 하나 건네며
말을 붙인다.
“내 손을 잡아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춤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많이 서툴렀을 텐데
진땀 좀 빼셨죠?”
음료를 사양하지 않고 받으면서 대답을 한다.
원래 카바레에서는 남자, 여자 구분 없이 하수(?)가 고수(?)에게 대접하는 것은
기본 예의이다.
“그런 데로 잘 하시던데요?”
“그 동안 여기서 아주머니께서 춤을 추시는 걸 봤는데, 아주 잘 추시더군요.
그 동안 용기가 나지 않아 춤 신청을 못했는데, 오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제가 춤 신청을 했는데 제 손을 잡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남자가 매너가 있는 것 같고 막 돼먹은 사람 같지는 않게 보인다.
“뭘, 그렇게 까지 말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 한번씩 부탁해도 될까요?”
“기회가 되면요..”
그 이후, 카바레에서 그 남자랑 한번씩 춤을 추게 된다.
처음엔 서먹하던 사이가 점점 스스럼이 없어지고 농담도 주고 받게 된다.
미진이 역시 이 남자와 서로 만만하게 지내게 된다.
그만큼 이 남자가 우리에게 신경을 써서 대한 탓일 것이다.
그 날은 토요일이었는데, 남편이 오후 근무를 하는 날이라 밤 열 시 반이 되어야
집에 돌아오고, 미진이 역시 남편이 상갓집에서 밤샘을 하고 온다고 하여
조금 늦게 까지 카바레에서 놀고 있었다.
여러 남자들의 손을 잡고 춤을 추다가 그 남자와도 손을 잡게 됐다.
예전엔 진수씨의 파트너가 되어 진수씨의 손만 잡고 춤을 추었지만, 지금은
내가 춤을 신청하는 남자를 골라서 춤을 춘다.
남자들 입장에서는 내가 춤을 워낙 능숙하게 추다 보니, 아예 접근할 생각을 하지
않는 모양인지 추근거리는 남자는 없었다.
한번은 나 정도의 실력이 되는 남자와 같이 손을 잡고 탱고를 추었는데,
주위에서 춤을 추던 사람들이 모두 물러나서 우리의 춤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누군가 한번 더 춤을 춰달라고 요청을 했었고, 밴드에게 부탁해서 같이 폴카 춤을 추었다.
그리고, 춤이 끝나자 그 카바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었다.
이젠 이 남자도 조금 춤이 늘었다. 하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한 상태이고..
이 남자랑 두 번을 연속해서 춤을 추고는 홀 가장자리로 나왔는데,
마침 미진이도 춤이 끝나서 밖으로 나와 있었다.
남자가 자판기에서 캔을 세 개 꺼내 와서 같이 마신다.
남자가 말을 꺼낸다.
“오늘은 조금 늦게 까지 노시는 걸 보니, 시간이 좀 있는 모양이죠?”
미진이가 대답을 한다.
“왜 물어 보세요?”
“시간이 있으면 제가 대접을 좀 하려고요.
그 동안 이 분 덕분에 제 춤이 많이 는 것 같고, 고마움의 표시로..”
미진이가 나를 보며 말한다.
“어때? 대접을 한다는데 좀 얻어 먹을까?”
“글쎄..”
남자가 다시 말을 한다.
“같이 가 주신다면 가문의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미진이가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을 한다.
“호호호! 뭘.. 거창하게 가문의 영광씩이나요? 얘. 현숙아. 이렇게 까지 이야기 하는데
웬만하면 같이 가자.”
“그러든지..”
셋이서 카바레를 나와 부근에 있는 아구찜 전문 식당으로 간다.
방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 아구찜과 소주를 시키고, 같이 아구찜을 먹으며
소주를 마신다.
“전.. 한 수철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서른 여섯이고요.
성함들이 어떻게 되세요?”
미진이가 재미있다는 듯이 빙글거리며 톡 쏜다.
“숙녀의 이름을 물어보는 것은 실례가 아닌가요?”
남자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무안하다는 듯 말한다.
“아이구.. 이거 죄송합니다.”
내가 대답을 한다.
“난 정 현숙이라고 하고, 이 친구는 박 미진이라고 해요.
그러고 보니, 나이가 다 동갑이네요?”
“아.. 그렇습니까?”
남자가 나이에 비해 때가 덜 묻은 것 같고 순진해 보인다.
술이 여러 순배 돌아가고, 기분이 알맞게 오른다.
내가 장난기가 슬슬 발동한다.
“우리 세 사람 모두 동갑인데 친구처럼 서로 말 놓고 지내지?”
옆에서 미진이가 맞장구를 친다.
“그럴까? 수철씨. 어때요?”
예상외로 남자가 정색을 한다.
“남자, 여자 사이에는 친구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설사 나이가 똑같고 친구 사이가 된다고 해도 서로 존댓말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로 반말을 하다 보면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미진이가 호들갑을 떤다.
“어머? 농담인데, 정색을 하세요?”
보기보다 괜찮은 남자 같다.
그렇게 술자리가 끝나고 그 남자.. 수철씨와 헤어져 미진이와 같이 집으로 돌아오니
시간이 아홉 시가 다 되어간다.
********************************************************************************
드디어, 두 번째 남자를 만나는 순간이군요..
앞으로 두 사람의 만남을 기대하세요. ^^*
아침 다섯 시 반에 집을 나가 오후 두 시 반에 집에 들어온다.
이 때가 남편이 자주 술을 마시는 때이다.
오후 두 시에 회사 일을 마치면 동료들과 어울려 회사 부근 식당으로 가서 소주를
마시고 저녁 일곱 시나 여덟 시쯤 술에 잔뜩 취해 집으로 돌아온다.
어떨 때는 이차, 삼차로 술을 마시러 가는지 밤 늦게 열 한시나 열 두시 쯤
집에 들어올 때도 있다.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전처럼 나를 불러 잔소리를 하거나 폭력을 쓰지는 않는다.
그저 차가운 뱀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차라리 전처럼 잔소리를 하거나 폭력을 쓸 때가 더 인간적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나랑 이혼하자고 하지, 뭣 때문에 가출한 경력이 있는 나를 데리고
사는지..
애들 때문인가?
이제 남편과 나는 한집에서 사는 남남들이다.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는 파출부에다, 애들을 키우는 유모에다가, 한번씩 필요할 때
몸을 대주는 창녀랑 뭐가 다른가?
다시 남자의 사랑이 그립다. 나를 이해하고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그렇다고 예전처럼 남자를 따라 같이 도망가는 짓 따위의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내 자리를 지키면서 인연이 되어 진정으로 나를 사랑해 주는 남자를 발견할 때
서로 사랑을 주고 받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조급하게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다. 내 사랑을 찾기 위해서..
조급히 서두르다 보면 또 다른 우를 범할지 모르기 때문에..
오후 세시가 되어도 남편이 오지 않는다.
아마, 오늘도 직장동료들이랑 같이 술을 마시고 올 모양이다.
전화벨이 울려 받아보니 옆집에 사는 미진이다.
“현숙이니? 지금 뭐해? 너네 집에 놀러 갈까?”
“남편이 언제 올지 모르는데 내가 너네 집에 놀러 갈게.”
“그럼.. 그렇게 해.”
아이들에게 옆집에 놀러 가니까 아빠 오면 그렇게 이야길 하라고 하고, 집을 나와
미진이네 집에 놀러 간다.
미진이 남편은 공무원이니까 여섯 시나 돼야 집에 올 것이다.
미진이와 같이 거실의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환담을 나눈다.
미진이가 말을 한다.
“어제 이야기 한 거 있잖아? 너에게 춤 배우기로 한 거..
시간 날 때 우리 집에서 카셋트 틀어놓고 춤을 배우면 안될까?”
“그렇게 해서 안될 거야 없지만.. 그래도 집에서 그러기는 좀 그렇잖아?”
“그럼.. 어디에서 하면 될까? 음.. 카바레는 어때?”
“미진이 너.. 카바레에 가봤니?”
“춤 배우면서 몇 번 갔었지. 넌? 참.. 너야 많이 가봤을 테지.”
“그럼, 카바레에 가는 것도 괜찮겠다. 낮 시간에 잠시 갔다 오면 되니까..”
“아유! 잘 됐다. 그럼, 그렇게 하자. 당장 오늘부터 시작할까? 지금 카바레에 갈래?”
“오늘은 좀 그렇고 내일 한번 가보자.”
“시간은?”
“지금 시간 정도로 하지 뭐..”
“그래. 그렇게 하자.”
한 시간 정도 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아직 남편은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다.
저녁 일곱 시쯤 남편이 술에 취해서 집에 돌아온다.
다음 날, 약속한대로 오후 세시에 미진이와 같이 아파트를 나서 카바레로 간다.
시내버스를 타고 네 정류소 정도 지나 상가가 많이 있는 번화가에서 내려 조금 걸어서
골목으로 들어오니 카바레가 하나 보인다.
전에 미진이가 몇 번 와봤다던 카바레이다.
카바레로 들어서니 예전의 기억이 새롭다.
홀에는 여러 쌍쌍들이 어울려 춤을 추고 있다.
전에 나와 진수씨도 저렇게 짝을 맞춰 춤을 추었었지..
미옥이나 옥자도 같이 어울려 다녔었고.. 미옥이나 옥자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많이 보고 싶다.
곡이 하나 끝나고, 지루박 음악이 흘러 나온다.
“현숙아. 뭐해?”
옆에서 미진이가 손을 잡아 끈다.
미진이와 같이 홀로 나가 파트너가 되어 춤을 춘다.
물론 남자, 여자가 파트너가 되어 춤을 추는 게 원칙이지만, 내가 남자의 스텝을 밟고
미진이와 함께 춤을 춘다,
여자가 아무리 춤을 잘 춰도 남자의 스텝을 밟기는 힘들다.
애초에 여자의 스텝으로 춤을 배우니까..
하지만, 나는 대구에서 춤을 가르치다 보니, 남자의 스텝을 안 배울 수가 없었다.
아직은 많이 서툰 미진이에게 동작 하나하나를 지적해가며 춤을 춘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미진이와 함께 춤을 춘다.
오랜만에 춤을 추니까 운동도 되고 몸이 한결 가뿐해 지는 것 같다.
미진이가 좀 더 춤을 추다가 가자는 것을 만류해서 카바레를 나온다.
춤이란 한번에 많이 춘다고 해서 느는 것은 아니다.
조금씩이라도 꾸준하게 춰야 춤 실력이 느는 것이니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미진이가 내게 말한다.
“야.. 현숙이 너 대단하더라. 네가 아마추어 수준은 넘었다고 했지만,
그 정도인지는 몰랐어. 댄스 교습소를 차려도 되겠더라.”
“댄스 교습소라는 게 춤만 잘 춘다고 되니?”
“앞으로 매일매일 왔으면 좋겠다.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일부러 돈을 들여 헬스 클럽에도 다니는 데, 거기에 비하면 이게 훨씬 낮지..
재미도 있고, 운동도 되고.. 안 그래?”
“그렇기야 하지.. 별일 없으면 그렇게 하자.”
“나랑 약속한 거야? 대신 내가 종종 맛있는 것을 사줄게.
버스 내리거든 내가 저녁을 살 테니 같이 먹고 들어가자.”
“나도 좋아서 하는 건데.. 저녁까지 살 필요는 없어.”
“그래도 공짜로 춤의 대가한테 손수 지도를 받는데, 그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니지.
다음에 우리 동창들 모임 있을 때 내가 춤을 추면 모두들 입이 쩍 벌어지겠다.
생각만 해도 즐거워..”
버스가 우리 동네에 들어서고 같이 버스에서 내린다.
“현숙이 너, 무슨 음식 좋아하니?”
“정말 저녁을 사려고?”
“현숙아. 뭐 먹을래?”
“뭐, 아무 거나..”
“그럼. 족발 먹으러 가자. 조금만 걸어가면 족발 맛있게 하는 데가 있어.”
둘이서 조금 걸어서 아파트에 거의 다 와갈 무렵, 골목 안에 있는 족발 집으로
들어가서 소주 한 병과 족발을 시켜 같이 먹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날 이후, 일주일에 네 번 정도는 미진이와 같이 그 카바레에 다닌다.
약 두 달이 흘러 이젠 미진이도 춤을 능숙하게 잘 춘다.
이젠 미진이와 같이 춤을 추는 것보다 카바레에 춤을 추러 오는 남자들과 각자 파트너가
되어 춤을 춘다.
어느 새, 내가 그 카바레에서 춤 도사라고 소문이 난다.
그날도 오후 세시에 카바레에 갔는데, 나와 같이 춤을 추지는 않았지만,
한번씩 보던 남자가 내게 손을 내민다.
키가 185cm정도 될까? 키가 많이 큰 편이고, 얼굴의 윤곽이 뚜렷한 게 남자답게
제법 잘 생긴 얼굴이다.
흰색 양복을 입고 하얀 구두를 신었는데, 아주 멋쟁이였다.
나이는 우리 정도 되었을까?
같이 손을 잡고 춤을 추는데, 영 춤이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보단 춤은 많이 미숙했다.
그렇다고 내색할 수도 없고, 내가 그 남자에게 잘 맞춰 춤을 춘다.
그렇게 한 곡이 끝이 나고, 그 남자와 인사를 하고 홀 가장자리로 나와서
잠시 쉬고 있는데, 나랑 춤을 춘 그 남자가 내 옆에 다가와서 음료 캔을 하나 건네며
말을 붙인다.
“내 손을 잡아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춤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많이 서툴렀을 텐데
진땀 좀 빼셨죠?”
음료를 사양하지 않고 받으면서 대답을 한다.
원래 카바레에서는 남자, 여자 구분 없이 하수(?)가 고수(?)에게 대접하는 것은
기본 예의이다.
“그런 데로 잘 하시던데요?”
“그 동안 여기서 아주머니께서 춤을 추시는 걸 봤는데, 아주 잘 추시더군요.
그 동안 용기가 나지 않아 춤 신청을 못했는데, 오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제가 춤 신청을 했는데 제 손을 잡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남자가 매너가 있는 것 같고 막 돼먹은 사람 같지는 않게 보인다.
“뭘, 그렇게 까지 말씀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 한번씩 부탁해도 될까요?”
“기회가 되면요..”
그 이후, 카바레에서 그 남자랑 한번씩 춤을 추게 된다.
처음엔 서먹하던 사이가 점점 스스럼이 없어지고 농담도 주고 받게 된다.
미진이 역시 이 남자와 서로 만만하게 지내게 된다.
그만큼 이 남자가 우리에게 신경을 써서 대한 탓일 것이다.
그 날은 토요일이었는데, 남편이 오후 근무를 하는 날이라 밤 열 시 반이 되어야
집에 돌아오고, 미진이 역시 남편이 상갓집에서 밤샘을 하고 온다고 하여
조금 늦게 까지 카바레에서 놀고 있었다.
여러 남자들의 손을 잡고 춤을 추다가 그 남자와도 손을 잡게 됐다.
예전엔 진수씨의 파트너가 되어 진수씨의 손만 잡고 춤을 추었지만, 지금은
내가 춤을 신청하는 남자를 골라서 춤을 춘다.
남자들 입장에서는 내가 춤을 워낙 능숙하게 추다 보니, 아예 접근할 생각을 하지
않는 모양인지 추근거리는 남자는 없었다.
한번은 나 정도의 실력이 되는 남자와 같이 손을 잡고 탱고를 추었는데,
주위에서 춤을 추던 사람들이 모두 물러나서 우리의 춤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누군가 한번 더 춤을 춰달라고 요청을 했었고, 밴드에게 부탁해서 같이 폴카 춤을 추었다.
그리고, 춤이 끝나자 그 카바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었다.
이젠 이 남자도 조금 춤이 늘었다. 하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한 상태이고..
이 남자랑 두 번을 연속해서 춤을 추고는 홀 가장자리로 나왔는데,
마침 미진이도 춤이 끝나서 밖으로 나와 있었다.
남자가 자판기에서 캔을 세 개 꺼내 와서 같이 마신다.
남자가 말을 꺼낸다.
“오늘은 조금 늦게 까지 노시는 걸 보니, 시간이 좀 있는 모양이죠?”
미진이가 대답을 한다.
“왜 물어 보세요?”
“시간이 있으면 제가 대접을 좀 하려고요.
그 동안 이 분 덕분에 제 춤이 많이 는 것 같고, 고마움의 표시로..”
미진이가 나를 보며 말한다.
“어때? 대접을 한다는데 좀 얻어 먹을까?”
“글쎄..”
남자가 다시 말을 한다.
“같이 가 주신다면 가문의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미진이가 입을 가리고 웃으며 말을 한다.
“호호호! 뭘.. 거창하게 가문의 영광씩이나요? 얘. 현숙아. 이렇게 까지 이야기 하는데
웬만하면 같이 가자.”
“그러든지..”
셋이서 카바레를 나와 부근에 있는 아구찜 전문 식당으로 간다.
방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 아구찜과 소주를 시키고, 같이 아구찜을 먹으며
소주를 마신다.
“전.. 한 수철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서른 여섯이고요.
성함들이 어떻게 되세요?”
미진이가 재미있다는 듯이 빙글거리며 톡 쏜다.
“숙녀의 이름을 물어보는 것은 실례가 아닌가요?”
남자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무안하다는 듯 말한다.
“아이구.. 이거 죄송합니다.”
내가 대답을 한다.
“난 정 현숙이라고 하고, 이 친구는 박 미진이라고 해요.
그러고 보니, 나이가 다 동갑이네요?”
“아.. 그렇습니까?”
남자가 나이에 비해 때가 덜 묻은 것 같고 순진해 보인다.
술이 여러 순배 돌아가고, 기분이 알맞게 오른다.
내가 장난기가 슬슬 발동한다.
“우리 세 사람 모두 동갑인데 친구처럼 서로 말 놓고 지내지?”
옆에서 미진이가 맞장구를 친다.
“그럴까? 수철씨. 어때요?”
예상외로 남자가 정색을 한다.
“남자, 여자 사이에는 친구가 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설사 나이가 똑같고 친구 사이가 된다고 해도 서로 존댓말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로 반말을 하다 보면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미진이가 호들갑을 떤다.
“어머? 농담인데, 정색을 하세요?”
보기보다 괜찮은 남자 같다.
그렇게 술자리가 끝나고 그 남자.. 수철씨와 헤어져 미진이와 같이 집으로 돌아오니
시간이 아홉 시가 다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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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두 번째 남자를 만나는 순간이군요..
앞으로 두 사람의 만남을 기대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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