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가 주스를 한모금 마시고는 잔을 내려 놓으며 물었다.
"이제 어쩔려구요?"
그녀가 근심스러운 얼굴표정으로 내게서 나올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난 나름 생각하고 있던 아내와의 정리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 볼려고 정혜를 불러 내었다. 내가 먼저 전화를 하여 만나자고 요청하기를 결정하기 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선릉 옆 한적한 골목 모퉁이에 있는 아담하고 조용한 커피점에 마주 앉아 있었다. 장마의 끝자락이 이틀째 도시를 적시고 있었다. 느지막한 토요일 오후의 도심 귀퉁이 한적한 곳에 비까지 내리니 호젓하기 그지없었다.
"변호사를 만났더랬습니다. 정말 아무리 강해질려해도 갑자기...물론 내가 무딘 것이었지만....어쨌거나 어느날 내게 닥친 이런 청천벽력같은 일을 처음 보는 변호사에게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다 보니 더더욱 현실감이 안 들더군요. 정말 내가 이혼 수속을, 그것도 은서를 상대로 이혼을 진행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을 하지 못했었는데.. 그야말로 삼류 소설 주인공이 된 기분이더군요."
목이 컥 막혀왔다. 그녀가 테이블위의 내손을 가만히 잡았다.
"충분히 이해가 되요." 그녀가 말했다.
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변호사에게 내 문제는 단순히 그냥 비즈니스일 뿐이더구만요. 어떤 경우든 그들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는것이고 의뢰인은 자기네들 장사의 한 고객 이상도 이하도 못되는 것이 현실입디다... 왈인즉 우린 서로 별도의 구좌 관리를 해 왔기 때문에 그리고 난 지금 그 집에 대해서는 아무런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니 남은건 단순한 서류상 절차 뿐이라 하더군요, 은서가 합의를 하여주지 않고 소를 제기하는 경우만 아니면.."
정혜의 날카로운 눈빛이 올려다 봤다. 그녀를 속이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내 마지막 말에 녹아 있던 여운을 읽어내었음이 분명했다. 마치 은서가 이혼에 합의를 해 주지 않기를 내가 바라듯. 나란 인간은 참 어찌해 볼 수 없는 감상주의적 멍청이였다.
포크로 애꿎은 케익 조각만 들 쑤셨다.
"정혜씨," 내가 말했다. "왜 은서는 내게 기대고 방패막이가 되어 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무슨 이유에서 내게 단 한번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지 말로는 날 사랑한다지만 그녀는 결코 날 사랑한것이 아니것 같아요.. 그리 하는게 무슨 사랑입니까?"
그녀는 한참을 아무 대꾸 없이 커피잔만 입술에 대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았다.
"그렇게 걔를 버리면 안되잖아요, 성우씨. 그건 누구보다 성우씨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잖아요."
가슴에 뜨거운 것이 울컥했다. 분노였던 것 같다.
"안되다니요? 누가 날더러 된다 안된다 할 수 있어요, 이런 상황에? 내가 은서를 버리는게 아니고 지가 날 버린 겁니다 정혜씨."
그녀는 눈도 끔쩍이지않고 가만 있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것 알죠, 성우씨? 걔가 성우씨를 버린 적은 없어요. 걘 죽었다 깨어나도 그리하지 못할거예요. 걘 성우씨 없으면 계속 살아갈 수 없는 애예요."
"내가 마지막으로 그 여편네를 보았을 때는 나 없이도 아주 잘 살겠던데 무슨." 비아냥 거리고자 하는 말이 아니었다. "하루도 그짓 않고는 살아 갈 수 없을 것라는데야 동의를 하지만."
그녀의 눈빛이 "고만 해라" 그러는 것 같았다.
"걔에 대해 그 정도 밖에 모르고 있었다고는 하지 마세요. 만약 성우씨가 그애를 떠나면 그앤 아마 일년도 채 못 버틸거에요."
"내가 지금 협박을 당하는 겁니까, 정혜씨?" 내 차분한 음성에 나자신도 놀랐다. 내 속에서는 소용돌이가 치고 있었기에. 갈고리가 내 영혼을 긁어 내리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예, 물론이죠." 그녀가 말했다. "난 성우씨가 그앨 죽이는 것을 바라보고 있지만은 않겠어요. 그게 성우씨가 되었던 누가 되었던."
내 입이 벌어졌다. 농담을 나누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 친구 정말로 사랑하는군요, 정혜씨."
그녀는 등나무 의자 깊숙히 뒤로 몸을 기댔다. 그녀의 통통한 손가락들이 서로간 치열하게 다툼을 벌리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의 눈에 눈물이 보였다.
"녜." 그녀가 낯설게 들리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난 열두살 때부터 그애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그 후 한번도 그애를 사랑하지 않아 본 적이 없어요. 심지어 그애가 성우씨를 만나고 나를 버린 때 조차도. 난 마치 한마리 강아지처럼 그앨 따라 다녔어요. 뚱뚱하고 얌전한 강아지로."
내 손이 그녀의 손을 찾아 테이블 위로 미끄러져갔다.
"몰랐어요, 정혜씨... 미안해요. 우리가 결혼한 이후에도 둘이 단순한 친구 이상이란 것은 알았지만 정혜씨에게 그 정도의 의미를 가지는 것인 줄은 몰랐던게 사실입니다."
"그앤 내게, 내 멍청한 사랑을 향해, 조롱을 했었어요." 그녀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입니다만 그래도 난 아직 그앨 사랑해요. 아주 오랜만에 정말 가끔씩 그앤 내가 자기를 안는 것을 허락해준답니다. 어떤 경우에도 내가 싫다고, 되었다고 하는적은 없었죠. 그앤 자기가 남자와 막 섹스를 갖고 그 남자의 정액이 아직 자기 몸안에 남아 있을 때 내가 자기를 사랑해 주는 것을 좋아하죠. 생각해 보세요. 여자 둘이서 사랑을 나누면서 할 수 있는 것이 몇가지 되는지. 그앤 그렇게 하는게 기분이 더 좋다더군요."
이어 흐르는 침묵은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난 그녀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그녀가 낄낄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우릴 봐요!" 그녀가 나지막히 외쳤다. "둘 다 한 여자를 사랑하는데, 그 여자가 사랑하는 상대는 이혼을 원하고 있어요. 이게 뭔가요, 성우씨? 말해 봐요. 이거 공평해요?"
난 잠시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녀의 손은 서늘했다.
"이렇게 한번 바라보세요 정혜씨. 정혜씨는 그럼 그 친구를 서울시내 남자 절반되는 수의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겠어요? 그럴 만큼 그 친구를 사랑할 수 있겠어요? 그러고는 그게 공평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그녀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결국 그녀는 답을 하지 않았다.
**********************
이혼 합의 서류는 은서의 집으로 배달이 되었다. 그녀는 그것을 배달온 사람이 보는 앞에서 갈갈이 찢어 버렸다. 내가 들은 바로는 그녀는 그러는 당시 아주 차분하고 이성을 잃지 않은 상태였다고 하였다. 그녀는 내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는 그 어떤 서류도 개봉해 읽어 보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한다.
변호사는 날더러 어쩔거냐고 물어 보았다. 난 그더러 만약 내가 은서와 이혼을 하지 않으면 어찌 되는 것이냐고 물어 보았다. 변호사의 답인즉슨, 둘 사이 자식이 없고 주택 소유권은 이미 갈등의 이슈가 아니니 유일한 결과는 내가 또다른 결혼을 할 수 없다는 것 말고는 없다고 하였다.
재혼이란 단어는 내게 이혼보다 더 생소한 것인만큼 변호사에게 일단 모든 진행을 보류하고 있어달라 하였다. 상황이 바뀌면 다시 찾아 오겠다고 하였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배웅했다. 하지만 그건 어쨌거나 상당한 액수의 수수료 청구서를 내 손에 건네 준 뒤였다.
무얼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제법 굵게 내리는 빗줄기가 우산을 썼음에도 불구 얼굴에 흩뿌려졌다. 은서는 비를 좋아했다. 주말에도 비만 오면 나가 걷자고 졸랐다. 그녀는 떨어져 부딪히는 빗소리가 좋다고 했었다.
서울을 떠나야 할건가 보다. 이곳에는 잔인한 추억들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어디를 가겠는가? 난 이 도시를 사랑했었다. 내 직업도 여기 있었다. 물론 부산에도 에이전시가 있긴 있겠지? 그보다 더 멀리 갈 곳은 없을까?
어쨌든 그랬다. 여기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모든 보도 블록, 모든 가로수에 그녀가 있었다. 물론 그녀 자신이 여기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결코 날 놓아 줄 준비가 되지 않을 것이고.
차가운 빗방울이 내 뒷목에 튀었다. 난 우산을 좀 더 뒤로 제키며 손으로 목에 묻은 빗물을 훔쳐 내었다. 얼마가지 않아 또 다시 빗물이 뒷목에 뿌려졌다. 뒤를 돌아 보았다. 반대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 댓명 뿐 내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산은 혹시나 싶어 다시 올려다봐도 어디 찢어진곳 없이 멀쩡하였다. 약 열발자욱 정도를 더 갔을까..다시 물이 뒷목 잔등에 튀었다. 이번엔 바로 훽하니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 보았다. 아직도 팽그르 돌고 있는 우산을 앞으로 잔뜩 숙인 사람이 내 뒤에서 바짝 붙어 걸어오다 내가 멈추듯이 하며 뒤를 돌아보자 부닺치지 않을려는 듯 살짝 옆으로 몸을 틀며 나를 부딪히듯 스쳐 지나쳐갔다. 우산을 잔뜩 내려들고 내쪽으로 기울이고 있어 상체는 나로부터 가려졌지만 바지나 신발로 보건데 분명 여자였고 내가 아는 바지, 내가 아는 신발이었다. 난 내 우산을 한쪽 옆으로 아예 제켜버린 체 지나가려는 그녀의 우산을 손으로 거칠게 나꿔챘다. 창 넓은 레인져 모자를 눌러쓴 은서가 눈을 반짝이며 베시시 웃고 서 있었다.
흥분도 되었고, 화도 치밀고 하여 서늘한 빗줄기 아래에서도 내 얼굴이 화끈거리는것이 느껴졌다.
"뭐 하는 짓이야? 이젠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줄수 없겠니 정말?"
그녀는 내 손에 제쳐졌던 우산을 아예 접어 버리고는 옷깃을 다시 치켜세우며 "안녕, 성우씨." 하며 내 우산 아래로 들어 오려는 듯 바짝 다가섰다. 난 얼른 뒤로 물러섰다.
"장난 치는 것 아니야, 은서."
"비맞고 추위에 떠는 여자에게 따뜻한 커피 한잔 안 사줄거야?" 그녀가 말했다, 내 말은 아예 무시한 체.
난 기가 막힌다는 몸짓을 짓고는 다시 걷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를 따랐다.
"저기 커피숍 있네!" 그녀가 길 건너편을 손으로 가르켰다.
잠시 후 그녀는 김이 피어오르는 머그잔을 두손으로 감싸고 내앞에 앉아 있었다. 마흔하나라고 누가 믿겠는가? 삼십이라면 믿을 것이다. 다른 것보다 애를 낳지 않아서 더 그런 것이리라. 어쨌던 그런 그녀의 모습은 사랑스러웠다. 게다가 그녀는 마치 새장속의 새를 낚아챈 고양이처럼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난 시종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지냈어 성우씬?" 그녀가 물었다. 난 그저 헛기침만 한번 했다.
"비 올때 이 거리 너무 좋지 않아? 우린 비 올때 종종 여기서 저기 고등학교 넘어가는 쪽으로 걸었잖아 기억나?"
"내게서 원하는게 뭐야?"
그녀는 그냥 날 지긋이 쳐다 보았다. 뜨거운 커피에서 올라오는 김이 그녀의 눈동자를 살짝 가렸다.
"내가 뭘 원하는지는 자기도 알고 있잖아. 자기 역시 같은걸 원한다는 것도 난 알아."
"착각 하지마 은서."
"나 다른 남자들 만나는 것 다 끊었어, 성우씨."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커다란 선물 꾸러미를 앞에 둔 어린 소녀처럼 활짝 펴져 있었다.
"언제부터?" 내가 물었다.
"이날 이후 부터!" 그녀는 자랑스레 그녀의 손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엔 아직 진분홍색의 흉터들이 남아 있었다.
난 벌떡 일어섰다.
"더러운... 그 좇빠는 더러운 혀에 목구멍이 막혀 뒈지지나 마라. 내 인생에서 꺼져, 샹년아, 이...입만 달싹하면 거짓말만 하는 나쁜년!"
난 돌아서서 나왔다.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 시팔,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겁니까, 하나님?
난 그녀의 발자욱 소리를 바로 내 뒤에서 들었다. 그녀는 날 불렀고 멈추라고 했다. 난 더 빨리 걸었다. 그러자 그녀가 내 소매를 잡아 당겼다.
"멈춰봐!" 그녀가 할딱이며 말했다. 내가 멈추지 않자 그녀는 우산을 버리고 내 앞으로 뛰어 가더니 나를 향해 다시 반대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사실이야, 성우씨. 맹세코! 돌아와 줘. 우리를 위해 싸워 이겨내 볼께. 내가 이겨내도록 도와 줘, 성우씨. 우린 할 수 있어. 우리 사랑을 위해 싸우는 거잖아!"
난 팔을 뻗어 그녀를 밀쳤다. 그녀가 거의 넘어질 뻔 하다 겨우 중심을 잡았다. 난 계속하여 내가 한 발짝 나아갈 때 마다 그녀를 강하게 밀었다.
악문 이빨 사이로 내가 말을 뱉았다.
"너 그리 거짓말을 하면 하늘이 무섭지도 않니, 이 망할 여편네야? 봤단 말이다! 니 아들이 될 수도 있는 애 집에 불러 들여 거실 한가운데서 사람이 할 수도 있는 일인가 싶은 짓거리를 눈물을 흘리며 좋아라 하던 니년 상판데기를! 입에서 나불거리면 거짓말이냐? 이 몹쓸... 붕대도 안 푼 손목으로 너 뭐 했니? 그애 똥구멍 후볐니...더러운 년. 뭐라? 날 사랑하기 때문에 니 손목 그었던거야? ...이젠 그만해라, 노은서. 니 한가닥 존심이 아직도 남아 있으면 부디 내 인생에서 사라져 주라. 다시 한번 더 그 주둥아리로 내 앞에서 거짓부렁이 씨부렸다간 내 손으로 니년 정말 죽여 버릴거다. 약속하마. 알았 들었어?"
난 그녀의 잿빛으로 변한 얼굴을 애써 외면하며 그녀를 옆으로 밀어 제키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주먹을 꼭 쥔 내 두손을 바지 주머니에 깊게 찔러 넣었다. 혹시나 나도 모르게 다른 짓 할까 두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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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여름은 부산 보다 나을 줄 알았는데 어째 부산이 한술 더 뜨는 것 같았다. 숨 막히는 폭염이 도시를 녹여 내리고 있었다. 택시 기사 이야기로는 이런 상태로 몇일 더 지속될 것이라 기상청 예보가 있었다고 하였다.
서울의 현재 회사 부산 지점장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 위해 부산을 찾았다. 지점 사무실이 광복동 제법 높은 빌딩의 상층에 세를 들고 있어 멀리 바다 쪽으로의 전경이 훤히 들어오는 시원한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틀 일정으로 내려 왔으나 상황 보아 일주일 정도 머물 수도 있는 준비를 미리 해왔다.
휴가철 특수를 준비하는 것인지 폭염에 달구어지고 있으면서도 도시 전체가 생동감이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서울을 벗어나 보기로 작정을 하였다. 그러지 않고는 내가 미쳐 나갈 것만 같았다. 지나가는 낯선 사람들 조차 날 이상하게 쳐다 보는것 처럼 느껴졌었다. 이런 저런 연유로 만나오던 사람들과의 접촉도 일절 끊은지 오래이다. 서울에서의 내 삶은 아주 작은 터울로 줄어들어 있었던 만큼 완전히 새로이 시작할 것이라면 그게 같은 서울에서일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는 정혜조차 나를 묵살하기로 작정한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은서가 비오는 날 우연이라 믿기 힘든 스토킹성 조우에 관한 이야기를 거의 신파로 각색하여 들려 주었을 것이다. 이젠 더 나빠질 일도 없지 않나..어떤 식으로던 나아질 것이다. 아파했던 부분도 고통은 결국 사라지고 커다란 구멍만 남게 되겠지. 뻥 뚫린 가슴 빌려주고 돈 벌 방법은 없을려나? 외부에서 막히는 부분없이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가슴 임대해 주는 것으로..
젠장, 다시 자기연민에 빠졌던건가?
밝은 면을 보도록 하자. 그날 비오는 길에서 만난 이후로는 계속하여 날라오던 메일, 문자, 음성 메시지들이 중단 되었다. 갑작스런 중단에 자칫 서운해지기까지 하였다. 물론 진정 그런것은 아니었지만.
비록 지점과는 거리가 있어 불편하기는 하였으나 시간에 ㅤㅉㅗㅈ길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닌고로 숙소를 해운대의 하이야트로 잡았었다. 내려가서 지하의 바가 문을 열었는지 살펴 보기로 했다. 달리 할 게 없기도 했거니와, 대리기사 신세질 일도 없는데다 초저녁부터 침대로 기어 들어갈 수는 없었다. 내가 술을 고꾸라지도록 퍼 마셨다하여 누가 마음 상해할 사람도 없지 않은가? 나 자신 이외 누가 상처를 입는다면 비자카드가 긁히며 입게되는 찰과상 말고는 없었다. 뭐 또 혹시 아나..괜찮은 대화상대라도 바에서 만나게 될지. 마지막으로 입을 열어 목소리를 내었던 것이 세시간 전이다.
하이야트 지하에는 그럭저럭 분위기 있는 바가 있었다. 의자들도 편한게 아주 고주망태가 되지 않는 한 앉은 체 뒤로 자빠질 일은 없어 보였다. 아이리쉬 펍 스타일이 아닌 모던한 재즈바 분위기였다.
첫잔은 시원한 생맥주로 시작했다. 바짝 말라붙어 있던 내 목구멍을 일단 흠뻑 적셔 줄 필요가 있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나 말고도 중년의 백인 손님 둘이 마주 앉아 있었다. 얼핏 보아도 비즈니스 출장을 같이 나온 직장 동료들 같았다.
빈 테이블들을 두고 바에 앉아 맥주를 몇잔째 비우고 있자니 손님들이 점차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들이킨 맥주를 버릴려 화장실을 다녀 나오며 보니 바의 내 옆 자리에 여자 한명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여자 나이를 맞추는데 아주 잼뱅이였던지라 한번도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던 나지만 멀찌감치서 흘낏 보아하니 내 나이 또래나 아니면 삼십 중반 근처로 보이는 세련된 미시 타입이었다. 뒷모습이 아주 아름다웠다. 날씬한 몸매에 갈색물을 들인 길지 않은 퍼머머리, 가죽으로 된 바 스툴을 깔고앉아 누르고 있는 엉덩이를 꽉 죄며 무릎 바로 위까지 감싸고 내려가 있는 짙은 군청색 스커트 위로 얼핏 보아도 오뜨꾸뚜르 브랜드임을 알 수 있는 심플하면서도 결코 범상해 보이지 않는 순백색의 얇은 면 자카드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내 자리 옆에 다달아 선 체인 내가 뭐라 괜찮은 인삿말을 꺼낼 것인지 아니면 아예 무시하고 바 너머의 진열된 양주병만 바라보며 앉아 술만 마실 것인지 순간적으로 고민을 하는데 그녀가 내쪽을 향해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었다. 젠장, 가까이서 보니 예사 미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주변으로 보이지 않는 벽을 둘러치고 쌀쌀맞게 앉아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혹시 자기가 앉아 있는 내 옆자리가 나와 동석한 사람 자린 아닌지 물어 보았고 나는 말도 안되게 더듬으며 허둥지둥 아니라고 부정을 했다. 단지 그녀의 바로 옆자리가 원래 내 자리인데 그냥 그대로 나란히 앉아도 괜찮겠느냐고 오버 썩인 간절함으로 묻자 목구멍에서 나오는 킥킥하는 웃음 소리와 함께 상관없다는 표시의 손을 내 저었다. 작업을 어찌하는지는 경험이 없어 모르지만 내 자리에 올라 앉으며 무얼 마시겠냐고 물었다.
그녀 역시 일로 서울에서 내려 왔으며 부산은 낯선 곳이라 혼자 어디 나가 돌아 볼 엄두도 못내고 해변 모래사장을 한바퀴 거닐고는 다시 호텔로 돌아 왔다고 했다. 안 볼려고 했었는데도 그녀의 손가락에 끼어진 결혼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반지를 힐끗 보는 내 시선을 눈치챈 그녀가 방긋이 미소를 지었다. 내 얼굴이 나도 모르게 달아 올랐고 당황스러워 하는 나를 보는 그녀의 미소는 더 커졌다.
"실제 위험한 상황은 아니니 안심하세요." 그녀가 말했다. "다른 한개의 반지는 지금 불가리아에 가 있고 돌아 올 계획이 없어요. 시간과 변호사의 문제지요. 그래도 그냥 끼고 있을려구요. 킁킁거리며 다가오는 개들을 물리쳐 주는 효과는 있거던요. 정말 용감한 무리들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지만..."
그녀의 웃음소리는 마치 노래를 하는 것 처럼 들렸다.
난 나도 서울에서 내려왔고 내가 근무하는 회사의 부산 지사를 잠시 방문하는 것이라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녀는 내가 일하는 회사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전 직장에서 거래를 한 적이 있었고 지금은 서울의 한 다국적 기업 마케팅 이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수영에 있는 공장에서 회의가 있어 내려온 것이라했다.
그때 즈음하여 내 느낌에는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로 이런 사소한 이야기들을 더 이상 이어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서 우린 그녀가 그나마 좋아한다는 잭 다니엘로 바꾸어 마시기 시작하며 맨숭맨숭함의 어색함을 서둘러 죽이기로 했다. 바로 효과가 왔다. 그녀는 아주 재미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에 호의적 혹은 긍정적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 시간 뒤 우리는 바에서 나와 붐비는 레스트랑에서 와인과 함께 저녁을 같이 먹었다.
또 다른 한 시간 뒤에는 난 그녀의 브라 클립을 풀었고 흥분으로 꽂꽂해진 그녀의 젖꼭지를 허기에 울던 애기가 엄마젖 빨 듯 빨고 있었다. 그녀의 피부는 너무도 보드랍고 매끄러워 마치 갓난 애기를 쓰다듬는 것 같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젖가슴은 너무도 희고 투명해 깊숙히 흐르는 가는 핏줄까지 보일 듯 했다. 피부에 깔린 촉감 신경도 그만큼 더 예민했기 때문인지는 모르나 내가 손을 대자마자 그녀는 신음을 흘리며 헐떡이기 시작했다.
내 머리는 꼭 술 때문에 몽롱한 것은 아니었다. 바에서 그녀를 보자마자 난 몸도 기분도 동시에 달아올랐었다. 그녀와의 대화는 시종 재미있었으며 대화 중에도 내내 상대에 대한 배려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사람을 편안하게 했다. 우린 마치 서로 공통분모를 수천개나 가지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레스토랑에서 계산서에 서명을 하고는 그녀를 그녀의 룸으로 데리고 올라 가는게 마치 이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일처럼 하였고 객실 도어 앞에서 시작한 길고도 부드러운 키스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간 것도 서로간 아주 지극히 당연한 일인 듯 이루어졌었다.
다시 여자의 따뜻한 포옹에 몸을 맡기니 너무도 좋았다. 아무 계산 없이, 편안함 가운데 그녀의 부드러운 나신 구석 구석에 입맞춤을 하는 것이 너무도 좋았다. 그녀는 꽤나 시끄러웠다. 말로 시끄러웠다는것이 아니다. 내가 그녀의 깊게 파인 배꼽을 혀 끝으로 장난치듯 건드리자 바로 괴이한 앓는 소리를 내질렀다. 그녀는 두 손으로 내 혀가 그녀의 솜털처럼 보드러운 음모 아래로 물기 머금은 채 불거져 있는 외음순에 이를때까지 내 머리를 밀어 내렸다. 입술을 모아 클리토리스가 숨겨져 있을 부분 위의 음순을 모이를 쪼으듯 가벼이 두 번 찍어 주고는 양손바닥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받쳐 올리듯, 엄지로 그녀의 사타구니 부위를 잡아 벌리며 혓끝에 힘을 주어 항문 바로 앞부터 그녀의 외음부 전체를 이랑따라 천천히 주욱 훑어 올린 후 이어 클리토리스를 찾아 혀끝으로 빠르게 튕겨 주기를 거듭한 뒤 입술로 당겨 물고는 빨아 들이자 그녀의 몸은 마치 머리가 달아난 닭처럼 튕기고 들썩이기를 계속 하다가 두 손으로 내 머릿체를 잡은 체 자신의 골반을 들어올려 문대고 또 비비면서 숨넘어 가는 비명소리를 끊임없이 내질렀다.
갑자기 그녀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힘으로 자신의 양허벅지를 조여 내 머리를 꼼짝 못하게 할 때 까지 난 그녀의 늪을 퍼내고 또 퍼내며 닦고 쓸기를 계속 하였다. 동시에 아마 같은 층의 객실에 있었던 사람은 다 들었을 것 같은 날카로운 괴성을 지르며 그녀는 절정을 맞았다. 난 질식할 것만 같아 있는 힘을 다해 그녀의 허벅지를 손으로 벌리고는 우선 차단되었던 공기 부터 허덕이며 들여 마셔야만 했다. 고개를 들어 몸을 위로 가져가자 그녀의 엉망이 된 얼굴이 있었다. 그녀의 활짝 벌어진 입에다 키스를 하고는 코끝을 맞댄체 끌어안고 누워 그녀의 올가즘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세상에," 그녀가 이윽고 아직도 가쁜 숨으로 속삭였다. "얼마 만인지 몰라요..고마워요 성우씨. ...이젠 내 차례예요."
내가 대꾸를 하려하자 검지 손가락을 내 입술에 누르며 저지를 했다. 그녀가 입술을 모아 내 한쪽 젖꼭지를 찝어 빨아 들이며 괴롭혔다. 그리고는 이빨로 잘근 잘근 거리다가 다시 혀로 핥기를 수차례. 반대쪽 젖꼭지에 그러기를 반복한 후 가슴과 배를 따라 핥아 내려갔다.
나의 터질것만 같던 물건이 그녀의 입술을 느끼고 이어 뜨겁지만 부드러운 용암의 동굴에 담겨지는 것을 느꼈을 때 난 떨리던 숨을 멈추듯 들이킬 수 밖에 없었다. 바로 그 순간 거의 사정을 할 뻔 했다. 하지만 그녀가 능숙하게 두 손으로 나의 기둥 뿌리를 꽉 감아 쥐어 누르며 조으는 바람에 가까스로 사정의 고비를 넘길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뽁" 소리가 나도록 내 귀두를 그녀의 입술에서 튕겨 나오게 풀어 준 후 따뜻하고 부드럽기 그지없는 그녀의 혀와 숨길로 나의 음낭을 물고 핥아 나갔다. 불알 한쪽을 완전히 입압에 빨아 들인 체 혀로 고문을 하며 손은 내 기둥과 주변 음모들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정말이지 난 내가 어찌 사정을 하지 않고 참아 내었는지 모르겠다. 그걸 콘트롤 한 것은 사실 내가 아니었다. 그녀는 대단했으며, 조심스러웠고 그리고 애정어린 진심을 가지고 섹스에 임했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은 다 가진듯 느긋했으며 그러는 와중에도 어떻게 시종 날 사정 일보 직전의 상태에 붙들어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내 사타구니에서 몸을 일으켜 올라와 날 미소 가득한 얼굴로 내려다 보며 말했다.
"말해줘, 우리 애인. 내 어디에 하고 싶어, 최초의 사정을?"
난 그녀의 머리를 당겨 내리며 고통을 호소하지 않을 만큼의 한도 내에서 최대한 강력한 키스를 했다. 그녀의 숨결은 향기롭다 못해 최음제 같았으며 그녀의 가늘고 긴 혀는 수밀도 처럼 달았다. 그녀의 보드러운 손이 내 용트림치는 불기둥을 감아 쥐고 있었다.
"날 올라타. 내 위에서 날 자기안에 넣은 체 날 타고 같이 가자."
그녀는 쌔액 미소를 짓고는 혀로 내 코를 한번 주욱 핥았다.
"우~우 예!", 그녀의 모습은 정말이지 나 혼자 보기가 안타까울 정도로 아름다웠고 또 요염했다. "하지만 그전에 우린 둘다 책임감있는 애인이 되어야 해."
어디서 꺼낸지 알 길이 없었지만 그녀가 콘돔 하나를 들고 있었다. 포장지를 이빨로 뜯어 꺼내어서는 내 꿈틀거리는 불기둥에 훑어 내렸다. "으음....," 얇은 막으로 코팅된 내 귀두를 손가락으로 톡 톡 치며 그녀가 응얼거렸다. "딱 맞네..자 이젠 나랑 같이 가요."
무릎으로 몸을 세우고선 내 위로 걸쳐 오르더니 혈관이 터져 버릴 것만 같은, 아프기까지 한 내 불기둥 위로 천천히 내려 앉았다. 그 느낌을 어찌 말로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내 기둥을 물고 내려 앉는 그녀의 부드럽디 부드러운 주름의 조임과 감싸오는 질내의 체온이 주는 따뜻함은 내 머리속을 하얗게 만들어 버렸다.
한참을 그렇게 깊숙히 내려 앉아 미세하게 허리로 작은 원을 그리던 그녀가 천천히 상하 움직임을 시작했다. 난 그녀의 출렁이는 젖가슴 너머 그녀의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그녀가 씩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곧 다시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그녀의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상반신을 뒤로 확 제키며 고통에서 나오는 듯한 신음을 지르더니 훽하니 다시 몸을 앞으로 덮어 와서 엎드린 체 피스톤 운동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벌어진 입에서 침이 흘러 내려 내 한 쪽 눈 두덩이에 떨어졌다. 입을 벌려 이어 떨어지는 침을 받아 먹으려 하자 그녀가 입을 오물여 침을 잔뜩 모으더니만 위에서 조준을 하여 벌어진 내 입안으로 듬뿍 흘려 내려 주었다. 떨어지는 잠깐 동안 체온이 실내 온도에 식는 것인지 그녀의 침은 내 혀에 시원하게 느껴졌다. 천정 불빛이 그녀의 머리채로 가려지나 싶더니 그녀의 혀와 뜨겁디 뜨거운 헐떡임이 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우린 둘 다 이르렀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그녀의 몸을 더욱 꼭 끌어안으려 팔을 그녀의 목뒤로 둘러가는 순간 그녀의 상체가 튕기듯 다시 일어서며 뒤로 제켜져 뻣뻣해졌다. 내 불알에서 정액이 터져 분출하는 순간이었다. 수백만 볼트의 전류가 내 몸에서 그녀에게로 옮겨 가는 것 같았다. 경직에 이은 절정의 여운에 훔찔 거리면서도 손가락 하나 까닥일 힘도 없었다.
"여태 어디에 있었던거야, 성우씨?" 그녀가 숨을 가누었을 때 내게 속삭였다. 우리 두 몸뚱아리는 침대보와 함께 뒤엉켜져 안은 체 누워있었다. 땀이 에어컨에 식어가자 등뒤가 서늘해져 소름이 돋아왔다. 얇은 린넨 침대보를 당겨 펴 우리 둘 몸둥아리를 목까지 푹 덮었다.
"나 여기 있어." 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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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도대체 어떤 족속일까? 생존을 위한 본능적 욕구일까? 아니면 끔찍할 정도의 얄팍함일까? 나로선 알 수가 없었다. 분명한 것은 그게 무엇이든 난 상관하지 않았다.
부산에서의 그날 밤은 전구에 불이 들어온 것과 같았다. 그 사건은 날 박쥐들만 가득한 어두운 심연으로부터 눈부시도록 밝은 세상으로 끌어내 주었다.
내 절박함으로 움켜쥐어 숨이 막혀 죽어가는 맥주를 내려다 보던 한 순간에서 바로 그 다음 순간 성주와 난 어린애들 마냥 물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며 하룻밤만에 우리들 세상의 중심이 되어 버린 낮선 도시에서 즐거워 하고 있었다.
여름휴가의 피크를 맞은 광안리의 불빛들이 마법에 걸린 우리들 눈동자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괜스리 바보들처럼 웃었고 머그 잔 하나에 아이스 와인을 한병 다 따루어서는 같이 마시며 즐거워했다. 모든 것이 너무도 달아서 마치 우리들 이빨의 상아질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지난 이틀은 마치 아득한 추억과 같은 물안개였다. 우린 같이 침대를, 샤워를 그리고 서로간을 들락 거렸다. 무얼 먹을 시간은 아주 어쩌다 가끔씩 만들 수 있었다.
성주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들려 주었고 난 내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녀는 나랑 같이 울어 주었고 나는 그녀랑 같이 웃었다. 그리고는 떠날때가 되었다. 그녀의 비행기편이 내것보다 빨랐다. 사람들이 지켜보건 말건 우린 보딩 게이트가 닫히기 직전까지 서로를 부둥켜 안은 체 있었다.
다시 혼자가 된다는게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내게서 안보이는 빛이 발산되는 듯 했다. 공항의 대기 라운지는 화나고 신경질적인 승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단지 어서 떠날 수 있기를 바랬지만 빠듯한 일정의 왕복 국내선 일정에는 항상 사소한 문제들이 생길 수 있는 것이고 늦어지는 출발로 인한 승객들의 짜증과 불평은 공항 청사안의 공기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난 전혀 무관했다. 난 그 짓누르는 답답한 공기 위로 분홍빛 향수로 채워진 비눗방울 안에서 떠 다니고 있었다. 낯선 모든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으면 돌아오는 반응은 어둡고 냉담한 표정들이었지만 난 그저 낄낄거리기만 했다 난 속으로 그 모든 사람들이 기분 좋은 여행이 되도록 빌고 있었다.
서울은 아직도 장마의 흔적에 젖어 있었고 군데 군데 빗물들이 고여 있었다. 내겐 그것도 화창한 봄날이나 진배 없었다. 심지어 난 내 빈 아파트로 들어서며 나도 모르는 음조를 휘파람으로 불고 있었다.
현관문을 따자 우편물 한 무더기를 옆으로 밀쳐 내야 발을 들여 놓을 수 있었다. 고지서, 청구서 그리고 광고 우편물들 사이로 크림색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법률 사무소의 이름이 인쇄되어 있었다. 이혼서류였다.
읽으며 소파에 일단 철퍼덕 앉았다. 내용은 내가 진작에 이미 스스로 작성하였던 것과 하나도 다를게 없었다. 이게 무슨 돈낭비인가 당시 생각했던 게 다시 떠올랐다.
봉투 안에는 법률 사무소의 서류와는 다른 색상의 종이가 한장 같이 동봉되어 있었다. 은서의 큼직 큼직하고 거리낌없는 남자 필체같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성우씨,
내가 형편없는,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진 괴물이었다는 것 알아. 물론 내가 이리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당신이나 정혜는 이미 잘 알고 있다는 것도.
아마 내가 미쳤었기에 내가 당신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도 내 동물적 욕구에 그때 그때 내키는대로 따를 수 있을거란 생각을 했었던것 같아. 아마 난 단 한번도 사랑을 줄 줄 아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적이 없었던 것 같아. 난 내 쾌락에 대해 타협을 할려 하지 않았을 뿐더러 난 내가 나 자신을 위해 그리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을 했었어. 심지어는 난 당신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권리와 이해를 구할 권리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애.
그래, 난 내게만 있는듯한 별난 욕구가, 주체할 수 없도록 커다란 많은 욕구들이 있어. 그 중의 하나는 당신이 날 사랑해 주길 바라는 욕구야. 그걸 당신이 거두어 가 버렸을 때 난 정말 견디기 힘들만큼 괴로웠어. 당신이 왜 그래야만 했는지 이해를 할 수조차 없었어. 당신이 어쩌면 그리도 이기적으로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내 욕망을 허락하지 않을 수 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던거야. 마치 맛있는 과자를 거부당한 어린 걔집아이 같았던 거지.
그날 밤 병원에서 이미 당신은 알고 있었어. 어찌해서 내가 내 손목을 그리 엉성하게 잘랐는지 알고 있는 당신을 난 그날 보았어. 맞아, 그건 협박이었어. 난 어쨌거나 당신을 보낼 수가 없었던 거야. 나중에는 정혜까지 떠밀어 보내어 협박으로라도 당신을 다시 내사람으로 되찾아오려 했었어. 그리고 얼마전 비오던날 선릉 근처에서 내가 우산을 돌리며 비를 당신에게 흩뿌렸던 것도 당신에게 엣정을 불러 일으키게 하여 다시 예전으로 돌이킬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어.
당신은 내 소중한 삶의 균형을 망가뜨려 버렸어. 사랑과 욕망 사이의 균형을. 난 그 둘다를 가졌었고 어느 하나도 포기할 생각이 없었어. 내가 당신에게 돌아와 주기를 애원하던 때에도 난 한번도 내 가증스런 작은 욕망을 짓눌렀던 적이 없었어. 당신 두눈으로 직접 그걸 본 것이지만.
그날 선릉에서의 해프닝 이후 용기를 내어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러 갔었더랬어. 그 여의사가 내게 보여준 것은 항상 바로 내 코밑에 있던 것들이었어. 이기심, 욕심. 사랑을 줄 줄도 받을 줄도 모르는 무능함.
그 의사가 말하기를 나의 이 부적절한 자긍심을 바로 세워 지탱 해주기 위해서는 난 언제까지고 외부로부터의 목발이 필요할 거라고 그러더군. 내가 이해하기론 그녀는 당신의 나를 향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받아 들였어. 그래 맞어. 난 못내 당신의 사랑을 그리워할 거야. 그저 그것 없이도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게 되기만을 바랄 뿐이야.
자기. 이젠 끝 났다는 것 알아. 난 곧 서울을 떠날 거야. 홍콩에 새로운 직장을 찾았어. 현재의 이런 헝클어진 일들을 정리하지 않은 체 떠나고 싶은 마음은 정말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이해하고 도와 주길 바래. 난 이일을 최대한 빠른 시간내에 최소한의 고통으로 마무리를 짓고 싶어.
지금와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이라 하더라도 해야만 하겠어...너무 너무 미안해.
은서
P.S.: 아무것도 바라거나 요청할 입장 아니라는 것 알지만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번만 나랑 이야기를 해주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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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안으로 들어서니 왁자지끌하고 붐볐다. 어두운 밤 하늘에서는 비가 축축히 내리고 있었던지라 술집안은 손님들의 빗물 머금은 우산들과 젖은 옷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습한 내음을 품고 있었다.
은서의 편지는 커다란 안도였다. 허나 그것이 나의 끊일줄 모르는 성주에 대한 사랑의 열병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마치 나 자신이 사춘기 학생때 같이 느껴졌다. 혹은 41살이나 먹은 사춘기 학생이었으리라. 도무지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난 편지를 다 읽고 내려놓자 마자 성주에게 전화를 하였다.심장이 쿵쾅거렸다. 부산에서 돌아와 처음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부산에서의 그 시간이 마치 동화속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래봐야 시간적으로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지만 그 기억들은 이미 핑크빛 유리구슬 안에 모셔져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비현실적인 몽상 같은 것으로 남게 되는 것 같았다.
단 일초의 누락도 없이 완벽하게 떠올릴 수 있는 그때의 기억들이 날 두렵게 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확실히 나를 다시 현실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스스로에게의 질문은 과연 그 현실이 어떤 것이 될 것인가였다.
그리고 그랬다. 성주의 목소리는 꿈결처럼 몽롱하던 그 모든 것을 똑바로 관통하며 내게 들려왔다. 그랬던 것 처럼 그녀는 역시 가까운데서, 손에 만지키듯 현실로 있었다. 가장 완벽한 현실이었다. 난 긴장을 풀며 마치 우리가 그 날 이후 한번도 헤이지지 않은 것 처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나를 보기를 간절히 바랬고 나랑 다시 같이 있기를 원했다. 하지만 출장 본연의 업무를 내 팽개쳐버렸던 그녀에게 그 이틀은 몇배로 더 불어난 만회의 일들로 되돌아 왔다. 매일 야근을 해야 했고 이틀간 대전으로 차를 몰고 출장을 가야 했다. 미안함으로 나는 신음했고 그녀가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그건 마치 전화기를 통한 포옹처럼 내게 스며 들었다. 마치 포근한 자리에 안아 놓여진 한마리 강아지가 된 느낌이었다.
그녀가 다가오는 금요일은 월차를 내겠다고 하였고 나도 그러기로 했다. 내 지평선 저 멀리 3일간의 낙원이 펼쳐져 열렸다. 십대들처럼 우린 서로의 전화기에 쪽하고 키스를 했다. 정말 끊기 싫었다.
지금은 여기 술집에 도착해 은서를 찾고 있었다. 난 내심 그녀의 용기있고 솔직한 편지에 대한 보답으로 그녀의 마지막 요청에 즉각적인 답을 주리라 결심을 하였던 터였다. 성주와의 통화를 마치고 난 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고 주눅이 들어 있었다. 긴 침묵들이 중간 중간 계속 되었었고 통화 내내 그녀의 대답은 길어서 세마디를 넘는게 없었었다.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늦는 것이겠지. 이런 날 퇴근 길이면 막히지 않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전화를 주겠지 기다렸다. 일단 어렵게 빈자리를 찾아 삼겹살에 소주를 한병 시켰다.
두 잔째 소줏잔을 기다리는데 손가락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거구의 사내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자는 내가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맞는지를 물었다. 맞다고 했더니 자기와 같이 가자고 하였다. 은서가 자기를 보내 데려오라 하였다한다.
난 망설였다. 왜 직접 오지 않은 것일까? 그 남자 이야기는 일에서 몸을 빼 낼수가 없어 자기더러 가서 사무실로 나를 데려오는 수고를 좀 해 달라고 하였다 한다, 그러지 않으면 너무 많은 시간의 낭비가 있을 것 같아.
이 모든일이 상당히 이상하고 논리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회사 대표 번호로 전화를 걸었으나 이미 교환수들이 퇴근을 한지라 회사에 남아 있는 누군가가 손수 받지 않는 한 밤새 벨만 울릴 것이었다. 어쨌거나 이런 것은 은서가 충분히 취할 수 있는 행동인지라 그 남자를 따라 가기로 동의를 하였다. 잠시 후 우리는 다시 비내리는 거리로 나왔고 곧 옆의 남자가 거타란 손으로 내 팔꿈치를 잡더니 술집 옆의 조그만 골목쪽으로 나를 밀치며 이끌었다. 난 잡힌 팔을 뿌리칠려고 하였다.
"어디를 가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그는 말없이 날 밀어 부치기만 했다.
그때 골목안으로부터 두 사내가 더 나타났다.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둘 다 첫 남자의 덩치보다 더하면 했지 작지는 않았다. 한명이 내 목의 옷깃을 나꿔채고 어두운 골목안으로 잡아 끌었다. 좁은 골목안에 들어서자 나를 음식물 쓰레기 수거통 옆 담벼락에다 밀어 붙였다. 숨이 막힐듯한 고통으로 인한 하얀 별이 보이며 나는 꼬꾸라졌다. 강하면서도 사정두지 않는 주먹이 나의 복부에 수차례 꽂혔다. 헉하고 들이킨 숨을 다시 뱉을 수가 없었다. 고통으로 인한 비명도 나오지 않았고 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난 질척하고 더러운 콘크리트 골목 바닥으로 무너져 내리며 위액을 게워내었다. 셀 수도 없는 주먹과 발길질이 이어지며 내 몸 구석 구석에 꽂혔다. 난 조금이라도 매를 줄이고자 몸을 잔뜩 웅크린체 뒹굴 뿐이었다. 그러기를 한참하자 이제는 더 이상 발길질도 아프게 느껴지지 않는 무감각이 찾아 들었다.
마침내 난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는 나중에 의식의 일부를 다시 찾았던 것 같은게 굽이 높은 긴 가죽 부츠를 신은 발이 기억이 났다. 그 역시 꿈일 수도 있었겠지만...은서의 목소리도 들리는 꿈...
난 정확히 그녀가 한 말을 기억하지를 못한다. 단어들이 있었고, 하나의 문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단편적 말들이 있었다..."비겁하게, 이성우...이해를 해 주었어야지." 그리고 "어떻게 내게 그럴수가 있어?" " 난 그래야만 했어." "다시 바로 잡아야만 했어, 알어?" 그리고 "안녕", "사랑해 성우씨" 등의 단어들도 들었던것 같다. 그리고는 다시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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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백지 사이로 고운 하지만 윤곽이 맺어지지 않는 얼굴이 나타났다. 굵은 웨이브의 풍성한 머릿결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춤을 추며 불그스럼한 후광을 그 주변으로 만들고 있었다.
"성우씨?" 그 입이 말했다. 아마 나를 부르는 것이리라.
내 머리는 교회 종소리와 돌을 때리는 해머 소리로 가득찼다. 하얀 불빛이 다시 그 고운 얼굴을 흡수해 버렸다.
다시 얼굴이 돌아 왔을때 난 내가 그 얼굴의 주인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게 그녀가 중요한 사람이란걸 느끼며 신음을 했다.
내가 꺼억대는 소리로 간신히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눈부시는 미소가 섬광처럼 번쩍였고 그 섬광은 내 눈을 멀게 했다.
"서-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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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뼈 두대가 부러졌고, 광대뼈가 금 갔으며 코뼈가 부러졌다. 물론 다른 부상들도 많았지만 영구적인 것은 없었다. 내 피부는 마치 멍자국과 벗겨진 상처 그리고 부어오른 둔덕으로 구성되어진 입체 조감도 같았다. 어디 한 곳 결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경찰도 와 있는게 보였다. 질문할 것이 많았겠지만 내가 줄 수 있는 대답은 몇가지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이 알아 들을 수도 없는 소리들이었다.
어쨌거나 감사한것은 옆에 성주가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 골목 세멘트 바닥에 패대기 쳐진 개구리처럼 뻗어 비를 맞고 있은지가 몇시간은 족히 된 모양이었다. 파출소에서 신원을 밝히지 않는 제보자의 전화를 받은게 자정 무렵인 듯 했다.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그들에게 그 골목을 가보라고 하였다 했다.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했다.
119 구급차가 나를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겼다. 내겐 아직 지갑과 휴대폰이 그대로 있는 상태였다. 병원에서 내 지갑 한쪽켠에 꽂혀 있던 조그만 증명 사진의 뒷면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연락을 취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을 한 것이었으리라. 해서 대전의 호텔방에서 잠들어 있던 성주를 깨웠던 것이고 그녀는 바로 차를 타고 달려 서울로 돌아온 것이었다.
사건이 있고 3일 후 형사 둘이 다시 병원으로 찾아 왔다. 집에 보관되어 있는 은서의 편지 내용과 약속 장소로 찾아 왔던 남자의 자세한 인상 착의를 알려주며 그들이 알아야만 할 전후 이야기만 들려 주었다. 형사들에게 난 지금 이것으로 모든 게 끝나는 것이면 고소를 할 의사가 없지만 만에 하나 성주에게도 비슷한 테러가 가해진다면 난 영원히 내 자신 용서를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만약 고소에 이은 구속을 바라지 않는 상태에서 달리 합당한 신변보호를 경찰로부터 기대할 수 없는 정황이라면 고소를 하겠지만 그 어느 경우에든 성주의 보호 이외 다른 목적은 없다라고 하였고 그들의 답을 들은 나는 결국 폭행으로 은서와 하수인 일당들을 고소하는 소장을 작성하고 지난번 변호사에게 연락을 하여 자초지종을 간략히 알려준 뒤, 이혼 수속을 소송으로 바꾸어 속계해 줄것을 요청했다.
성주는 이 모든 것을 아무런 말 없이 옆에서 지켜보며 듣기만 했다. 둘만 남게 되자 그녀는 나의 손을 살포시 쥐고는 각별히 주의할테니 자기 염려는 크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날 안심을 시킬려 했지만 그녀 또한 사이코의 양상을 보이는 은서의 집착에 불안해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병원으로부터 전치 8주의 진단이 나왔고 은서는 이틀 후 직장으로 찾아 온 형사들에 의해 구속 수감되었다.
아팠다. 무지 아팠다 하지만 기분은 무지 좋았다.
내가 퇴원 후 통원 치료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하기 까지는 열흘이 걸렸다. 성주는 내가 자신의 집에 와 있어야 한다고 고집을 했고 내가 아니라고 맞고집을 부리기에는 온 몸이 너무도 성치 않은 상태였다. 그럴것 같으면 좀 더 오래 성치않은 몸으로 있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다시 한 주가 더 흐른 뒤 우리는 조심스레 섹스를 했다. 그런 달콤한 고통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녀의 휴대폰 기록으로부터 추적하여 검거한 하수인들의 자백 및 그녀가 내게 보낸 편지 등을 증거로 은서는 공판에서 5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고 그녀측 변호사는 즉각 항소를 한 뒤 합의에 응해 줄 것을 정혜와 함께 찾아와 간청해 왔다. 나는 이혼 소송 변호사의 도움을 빌려 내가 원하는 내용의 각서를 겸한 합의문을 A4 두장 분량으로 작성 그녀의 날인을 받은 후 그녀에 대한 소를 취하하였다.
6개월 후 성주와 나는 결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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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들 핑크빛 뭉게구름은 아직 걷히지 않았다. 바라건데 오래 오랫동안 걷히지 않기를.
다시 여름이었다. 도시는 폭염으로 녹아 내리고 있었다. 성주의 절친한 친구가 춘천에 있는 그들의 집으로 우리 부부를 초대를 하여 피서겸 초대에 응하기로 했다. 강을 낀 산자락 아래에 지워진 전원 주택은 처음 보는이로 하여금 절로 탄성을 짓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모든 어느 것들도 그늘에서 아내 성주를 지켜보는 즐거움으로 부터 날 떼어놓지는 못했다. 하늘거리는 얇은 원피스에 감싸인 그녀의 아름다운 굴곡들을 난 사랑했다.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녀의 갈색 머릿결을 난 사랑했다. 아마 그녀도 내가 자신을 지켜 보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하지만 내가 지난번 여행때 사 준 선글래스를 끼고 있어 알 수는 없다. 내가 발라준 선탠 오일이 그녀의 팔과 원피스 치맛단 아래 종아리 피부위에서 반짝이고 있다.
사람들은 여자가 결혼 후 새로운 삶의 미묘한균형을 찾아내는 것에 성공했을 때 여러가지 형태로 표가 난다고 이야기 한다. 남편 본인은 아마도 그것을 알아 차리는 제일 마지막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다. 은연 중 나타나는 그런 사인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일지도 모를 일이다. 무슨 상관이겠나? 보이는 사인들은 전부 긍정적이고 좋은 것들 뿐인데. 내 ego만 다둑거려 주는것이지.
망할 은서년. 이혼소송은 그녀가 2년 6월의 집행유예로 석방이 되기 훨씬 전 이미 바로 판결이 내려졌고 그녀는 집행유예 후 서울의 모든 것을 청산하고 떠났고 정말 홍콩으로 옮겨 간 것인지는 정혜조차 알지를 못했었다. 난 지금도 그녀의 나 없는 삶이 불행하지 않은 것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이 나 자신의 유약한 대응으로 더 악화된 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은서가 남자였고 나 자신이 여자였다면 하등 경악할 일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부간의 갈등이었을지도 모를 것이었다. 어찌 같이 살고 있었던 나만 그녀의 그런 상상을 초월하는 난잡한 삶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더란 말인가? 난 성주에 관해 또 우리 결혼 이전의 그녀 삶에 관해 도대체 얼마를 알고 있는 것일까? 나의 현재 이 행복은 당연하고 견고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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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처음 의도와는 달리 서둘러 귀결을 지어야만 하였던 점에 대해 보잘것 없는 글에도 불구 성원을 보내주신 여러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립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도 실망스럽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를 짓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전처와의 갈등은 이 정도에서 종결을 짓고 다음 편부터는 성주를 화자로 하여 그녀의 전 남편 내지는 남자와, 또 결혼 후 태어나는 애기의 친부가 누군가에 복선을 가지며 좀 더 많이 야(!)한 내용을 그려가다가 마지막 대단원에서는 반전(?) 아닌 반전을 만들어 볼 요량이었습니다만 무엇보다 현재 개인적 사정상 아무래도 그러기가 여의치 않을 것 같아 결국 포기하기로 하였습니다.
여건이 허락하는대로 다시 한번 다른 이야기로 제대로 도전해 볼 것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며 그럼...
"이제 어쩔려구요?"
그녀가 근심스러운 얼굴표정으로 내게서 나올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난 나름 생각하고 있던 아내와의 정리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 볼려고 정혜를 불러 내었다. 내가 먼저 전화를 하여 만나자고 요청하기를 결정하기 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우리는 선릉 옆 한적한 골목 모퉁이에 있는 아담하고 조용한 커피점에 마주 앉아 있었다. 장마의 끝자락이 이틀째 도시를 적시고 있었다. 느지막한 토요일 오후의 도심 귀퉁이 한적한 곳에 비까지 내리니 호젓하기 그지없었다.
"변호사를 만났더랬습니다. 정말 아무리 강해질려해도 갑자기...물론 내가 무딘 것이었지만....어쨌거나 어느날 내게 닥친 이런 청천벽력같은 일을 처음 보는 변호사에게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다 보니 더더욱 현실감이 안 들더군요. 정말 내가 이혼 수속을, 그것도 은서를 상대로 이혼을 진행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을 하지 못했었는데.. 그야말로 삼류 소설 주인공이 된 기분이더군요."
목이 컥 막혀왔다. 그녀가 테이블위의 내손을 가만히 잡았다.
"충분히 이해가 되요." 그녀가 말했다.
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변호사에게 내 문제는 단순히 그냥 비즈니스일 뿐이더구만요. 어떤 경우든 그들에겐 아무런 상관이 없는것이고 의뢰인은 자기네들 장사의 한 고객 이상도 이하도 못되는 것이 현실입디다... 왈인즉 우린 서로 별도의 구좌 관리를 해 왔기 때문에 그리고 난 지금 그 집에 대해서는 아무런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니 남은건 단순한 서류상 절차 뿐이라 하더군요, 은서가 합의를 하여주지 않고 소를 제기하는 경우만 아니면.."
정혜의 날카로운 눈빛이 올려다 봤다. 그녀를 속이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다. 내 마지막 말에 녹아 있던 여운을 읽어내었음이 분명했다. 마치 은서가 이혼에 합의를 해 주지 않기를 내가 바라듯. 나란 인간은 참 어찌해 볼 수 없는 감상주의적 멍청이였다.
포크로 애꿎은 케익 조각만 들 쑤셨다.
"정혜씨," 내가 말했다. "왜 은서는 내게 기대고 방패막이가 되어 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무슨 이유에서 내게 단 한번도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지 말로는 날 사랑한다지만 그녀는 결코 날 사랑한것이 아니것 같아요.. 그리 하는게 무슨 사랑입니까?"
그녀는 한참을 아무 대꾸 없이 커피잔만 입술에 대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보았다.
"그렇게 걔를 버리면 안되잖아요, 성우씨. 그건 누구보다 성우씨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잖아요."
가슴에 뜨거운 것이 울컥했다. 분노였던 것 같다.
"안되다니요? 누가 날더러 된다 안된다 할 수 있어요, 이런 상황에? 내가 은서를 버리는게 아니고 지가 날 버린 겁니다 정혜씨."
그녀는 눈도 끔쩍이지않고 가만 있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것 알죠, 성우씨? 걔가 성우씨를 버린 적은 없어요. 걘 죽었다 깨어나도 그리하지 못할거예요. 걘 성우씨 없으면 계속 살아갈 수 없는 애예요."
"내가 마지막으로 그 여편네를 보았을 때는 나 없이도 아주 잘 살겠던데 무슨." 비아냥 거리고자 하는 말이 아니었다. "하루도 그짓 않고는 살아 갈 수 없을 것라는데야 동의를 하지만."
그녀의 눈빛이 "고만 해라" 그러는 것 같았다.
"걔에 대해 그 정도 밖에 모르고 있었다고는 하지 마세요. 만약 성우씨가 그애를 떠나면 그앤 아마 일년도 채 못 버틸거에요."
"내가 지금 협박을 당하는 겁니까, 정혜씨?" 내 차분한 음성에 나자신도 놀랐다. 내 속에서는 소용돌이가 치고 있었기에. 갈고리가 내 영혼을 긁어 내리는것 같은 느낌이었다.
"예, 물론이죠." 그녀가 말했다. "난 성우씨가 그앨 죽이는 것을 바라보고 있지만은 않겠어요. 그게 성우씨가 되었던 누가 되었던."
내 입이 벌어졌다. 농담을 나누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 친구 정말로 사랑하는군요, 정혜씨."
그녀는 등나무 의자 깊숙히 뒤로 몸을 기댔다. 그녀의 통통한 손가락들이 서로간 치열하게 다툼을 벌리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의 눈에 눈물이 보였다.
"녜." 그녀가 낯설게 들리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난 열두살 때부터 그애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그 후 한번도 그애를 사랑하지 않아 본 적이 없어요. 심지어 그애가 성우씨를 만나고 나를 버린 때 조차도. 난 마치 한마리 강아지처럼 그앨 따라 다녔어요. 뚱뚱하고 얌전한 강아지로."
내 손이 그녀의 손을 찾아 테이블 위로 미끄러져갔다.
"몰랐어요, 정혜씨... 미안해요. 우리가 결혼한 이후에도 둘이 단순한 친구 이상이란 것은 알았지만 정혜씨에게 그 정도의 의미를 가지는 것인 줄은 몰랐던게 사실입니다."
"그앤 내게, 내 멍청한 사랑을 향해, 조롱을 했었어요." 그녀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입니다만 그래도 난 아직 그앨 사랑해요. 아주 오랜만에 정말 가끔씩 그앤 내가 자기를 안는 것을 허락해준답니다. 어떤 경우에도 내가 싫다고, 되었다고 하는적은 없었죠. 그앤 자기가 남자와 막 섹스를 갖고 그 남자의 정액이 아직 자기 몸안에 남아 있을 때 내가 자기를 사랑해 주는 것을 좋아하죠. 생각해 보세요. 여자 둘이서 사랑을 나누면서 할 수 있는 것이 몇가지 되는지. 그앤 그렇게 하는게 기분이 더 좋다더군요."
이어 흐르는 침묵은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난 그녀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그녀가 낄낄거리며 웃음을 흘렸다.
"우릴 봐요!" 그녀가 나지막히 외쳤다. "둘 다 한 여자를 사랑하는데, 그 여자가 사랑하는 상대는 이혼을 원하고 있어요. 이게 뭔가요, 성우씨? 말해 봐요. 이거 공평해요?"
난 잠시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녀의 손은 서늘했다.
"이렇게 한번 바라보세요 정혜씨. 정혜씨는 그럼 그 친구를 서울시내 남자 절반되는 수의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겠어요? 그럴 만큼 그 친구를 사랑할 수 있겠어요? 그러고는 그게 공평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그녀는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결국 그녀는 답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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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합의 서류는 은서의 집으로 배달이 되었다. 그녀는 그것을 배달온 사람이 보는 앞에서 갈갈이 찢어 버렸다. 내가 들은 바로는 그녀는 그러는 당시 아주 차분하고 이성을 잃지 않은 상태였다고 하였다. 그녀는 내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는 그 어떤 서류도 개봉해 읽어 보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한다.
변호사는 날더러 어쩔거냐고 물어 보았다. 난 그더러 만약 내가 은서와 이혼을 하지 않으면 어찌 되는 것이냐고 물어 보았다. 변호사의 답인즉슨, 둘 사이 자식이 없고 주택 소유권은 이미 갈등의 이슈가 아니니 유일한 결과는 내가 또다른 결혼을 할 수 없다는 것 말고는 없다고 하였다.
재혼이란 단어는 내게 이혼보다 더 생소한 것인만큼 변호사에게 일단 모든 진행을 보류하고 있어달라 하였다. 상황이 바뀌면 다시 찾아 오겠다고 하였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배웅했다. 하지만 그건 어쨌거나 상당한 액수의 수수료 청구서를 내 손에 건네 준 뒤였다.
무얼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제법 굵게 내리는 빗줄기가 우산을 썼음에도 불구 얼굴에 흩뿌려졌다. 은서는 비를 좋아했다. 주말에도 비만 오면 나가 걷자고 졸랐다. 그녀는 떨어져 부딪히는 빗소리가 좋다고 했었다.
서울을 떠나야 할건가 보다. 이곳에는 잔인한 추억들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어디를 가겠는가? 난 이 도시를 사랑했었다. 내 직업도 여기 있었다. 물론 부산에도 에이전시가 있긴 있겠지? 그보다 더 멀리 갈 곳은 없을까?
어쨌든 그랬다. 여기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모든 보도 블록, 모든 가로수에 그녀가 있었다. 물론 그녀 자신이 여기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결코 날 놓아 줄 준비가 되지 않을 것이고.
차가운 빗방울이 내 뒷목에 튀었다. 난 우산을 좀 더 뒤로 제키며 손으로 목에 묻은 빗물을 훔쳐 내었다. 얼마가지 않아 또 다시 빗물이 뒷목에 뿌려졌다. 뒤를 돌아 보았다. 반대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 댓명 뿐 내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산은 혹시나 싶어 다시 올려다봐도 어디 찢어진곳 없이 멀쩡하였다. 약 열발자욱 정도를 더 갔을까..다시 물이 뒷목 잔등에 튀었다. 이번엔 바로 훽하니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 보았다. 아직도 팽그르 돌고 있는 우산을 앞으로 잔뜩 숙인 사람이 내 뒤에서 바짝 붙어 걸어오다 내가 멈추듯이 하며 뒤를 돌아보자 부닺치지 않을려는 듯 살짝 옆으로 몸을 틀며 나를 부딪히듯 스쳐 지나쳐갔다. 우산을 잔뜩 내려들고 내쪽으로 기울이고 있어 상체는 나로부터 가려졌지만 바지나 신발로 보건데 분명 여자였고 내가 아는 바지, 내가 아는 신발이었다. 난 내 우산을 한쪽 옆으로 아예 제켜버린 체 지나가려는 그녀의 우산을 손으로 거칠게 나꿔챘다. 창 넓은 레인져 모자를 눌러쓴 은서가 눈을 반짝이며 베시시 웃고 서 있었다.
흥분도 되었고, 화도 치밀고 하여 서늘한 빗줄기 아래에서도 내 얼굴이 화끈거리는것이 느껴졌다.
"뭐 하는 짓이야? 이젠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줄수 없겠니 정말?"
그녀는 내 손에 제쳐졌던 우산을 아예 접어 버리고는 옷깃을 다시 치켜세우며 "안녕, 성우씨." 하며 내 우산 아래로 들어 오려는 듯 바짝 다가섰다. 난 얼른 뒤로 물러섰다.
"장난 치는 것 아니야, 은서."
"비맞고 추위에 떠는 여자에게 따뜻한 커피 한잔 안 사줄거야?" 그녀가 말했다, 내 말은 아예 무시한 체.
난 기가 막힌다는 몸짓을 짓고는 다시 걷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를 따랐다.
"저기 커피숍 있네!" 그녀가 길 건너편을 손으로 가르켰다.
잠시 후 그녀는 김이 피어오르는 머그잔을 두손으로 감싸고 내앞에 앉아 있었다. 마흔하나라고 누가 믿겠는가? 삼십이라면 믿을 것이다. 다른 것보다 애를 낳지 않아서 더 그런 것이리라. 어쨌던 그런 그녀의 모습은 사랑스러웠다. 게다가 그녀는 마치 새장속의 새를 낚아챈 고양이처럼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난 시종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지냈어 성우씬?" 그녀가 물었다. 난 그저 헛기침만 한번 했다.
"비 올때 이 거리 너무 좋지 않아? 우린 비 올때 종종 여기서 저기 고등학교 넘어가는 쪽으로 걸었잖아 기억나?"
"내게서 원하는게 뭐야?"
그녀는 그냥 날 지긋이 쳐다 보았다. 뜨거운 커피에서 올라오는 김이 그녀의 눈동자를 살짝 가렸다.
"내가 뭘 원하는지는 자기도 알고 있잖아. 자기 역시 같은걸 원한다는 것도 난 알아."
"착각 하지마 은서."
"나 다른 남자들 만나는 것 다 끊었어, 성우씨."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커다란 선물 꾸러미를 앞에 둔 어린 소녀처럼 활짝 펴져 있었다.
"언제부터?" 내가 물었다.
"이날 이후 부터!" 그녀는 자랑스레 그녀의 손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엔 아직 진분홍색의 흉터들이 남아 있었다.
난 벌떡 일어섰다.
"더러운... 그 좇빠는 더러운 혀에 목구멍이 막혀 뒈지지나 마라. 내 인생에서 꺼져, 샹년아, 이...입만 달싹하면 거짓말만 하는 나쁜년!"
난 돌아서서 나왔다.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 시팔,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겁니까, 하나님?
난 그녀의 발자욱 소리를 바로 내 뒤에서 들었다. 그녀는 날 불렀고 멈추라고 했다. 난 더 빨리 걸었다. 그러자 그녀가 내 소매를 잡아 당겼다.
"멈춰봐!" 그녀가 할딱이며 말했다. 내가 멈추지 않자 그녀는 우산을 버리고 내 앞으로 뛰어 가더니 나를 향해 다시 반대로 걸어오기 시작했다.
"사실이야, 성우씨. 맹세코! 돌아와 줘. 우리를 위해 싸워 이겨내 볼께. 내가 이겨내도록 도와 줘, 성우씨. 우린 할 수 있어. 우리 사랑을 위해 싸우는 거잖아!"
난 팔을 뻗어 그녀를 밀쳤다. 그녀가 거의 넘어질 뻔 하다 겨우 중심을 잡았다. 난 계속하여 내가 한 발짝 나아갈 때 마다 그녀를 강하게 밀었다.
악문 이빨 사이로 내가 말을 뱉았다.
"너 그리 거짓말을 하면 하늘이 무섭지도 않니, 이 망할 여편네야? 봤단 말이다! 니 아들이 될 수도 있는 애 집에 불러 들여 거실 한가운데서 사람이 할 수도 있는 일인가 싶은 짓거리를 눈물을 흘리며 좋아라 하던 니년 상판데기를! 입에서 나불거리면 거짓말이냐? 이 몹쓸... 붕대도 안 푼 손목으로 너 뭐 했니? 그애 똥구멍 후볐니...더러운 년. 뭐라? 날 사랑하기 때문에 니 손목 그었던거야? ...이젠 그만해라, 노은서. 니 한가닥 존심이 아직도 남아 있으면 부디 내 인생에서 사라져 주라. 다시 한번 더 그 주둥아리로 내 앞에서 거짓부렁이 씨부렸다간 내 손으로 니년 정말 죽여 버릴거다. 약속하마. 알았 들었어?"
난 그녀의 잿빛으로 변한 얼굴을 애써 외면하며 그녀를 옆으로 밀어 제키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주먹을 꼭 쥔 내 두손을 바지 주머니에 깊게 찔러 넣었다. 혹시나 나도 모르게 다른 짓 할까 두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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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여름은 부산 보다 나을 줄 알았는데 어째 부산이 한술 더 뜨는 것 같았다. 숨 막히는 폭염이 도시를 녹여 내리고 있었다. 택시 기사 이야기로는 이런 상태로 몇일 더 지속될 것이라 기상청 예보가 있었다고 하였다.
서울의 현재 회사 부산 지점장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 위해 부산을 찾았다. 지점 사무실이 광복동 제법 높은 빌딩의 상층에 세를 들고 있어 멀리 바다 쪽으로의 전경이 훤히 들어오는 시원한 전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틀 일정으로 내려 왔으나 상황 보아 일주일 정도 머물 수도 있는 준비를 미리 해왔다.
휴가철 특수를 준비하는 것인지 폭염에 달구어지고 있으면서도 도시 전체가 생동감이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서울을 벗어나 보기로 작정을 하였다. 그러지 않고는 내가 미쳐 나갈 것만 같았다. 지나가는 낯선 사람들 조차 날 이상하게 쳐다 보는것 처럼 느껴졌었다. 이런 저런 연유로 만나오던 사람들과의 접촉도 일절 끊은지 오래이다. 서울에서의 내 삶은 아주 작은 터울로 줄어들어 있었던 만큼 완전히 새로이 시작할 것이라면 그게 같은 서울에서일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는 정혜조차 나를 묵살하기로 작정한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은서가 비오는 날 우연이라 믿기 힘든 스토킹성 조우에 관한 이야기를 거의 신파로 각색하여 들려 주었을 것이다. 이젠 더 나빠질 일도 없지 않나..어떤 식으로던 나아질 것이다. 아파했던 부분도 고통은 결국 사라지고 커다란 구멍만 남게 되겠지. 뻥 뚫린 가슴 빌려주고 돈 벌 방법은 없을려나? 외부에서 막히는 부분없이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가슴 임대해 주는 것으로..
젠장, 다시 자기연민에 빠졌던건가?
밝은 면을 보도록 하자. 그날 비오는 길에서 만난 이후로는 계속하여 날라오던 메일, 문자, 음성 메시지들이 중단 되었다. 갑작스런 중단에 자칫 서운해지기까지 하였다. 물론 진정 그런것은 아니었지만.
비록 지점과는 거리가 있어 불편하기는 하였으나 시간에 ㅤㅉㅗㅈ길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닌고로 숙소를 해운대의 하이야트로 잡았었다. 내려가서 지하의 바가 문을 열었는지 살펴 보기로 했다. 달리 할 게 없기도 했거니와, 대리기사 신세질 일도 없는데다 초저녁부터 침대로 기어 들어갈 수는 없었다. 내가 술을 고꾸라지도록 퍼 마셨다하여 누가 마음 상해할 사람도 없지 않은가? 나 자신 이외 누가 상처를 입는다면 비자카드가 긁히며 입게되는 찰과상 말고는 없었다. 뭐 또 혹시 아나..괜찮은 대화상대라도 바에서 만나게 될지. 마지막으로 입을 열어 목소리를 내었던 것이 세시간 전이다.
하이야트 지하에는 그럭저럭 분위기 있는 바가 있었다. 의자들도 편한게 아주 고주망태가 되지 않는 한 앉은 체 뒤로 자빠질 일은 없어 보였다. 아이리쉬 펍 스타일이 아닌 모던한 재즈바 분위기였다.
첫잔은 시원한 생맥주로 시작했다. 바짝 말라붙어 있던 내 목구멍을 일단 흠뻑 적셔 줄 필요가 있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나 말고도 중년의 백인 손님 둘이 마주 앉아 있었다. 얼핏 보아도 비즈니스 출장을 같이 나온 직장 동료들 같았다.
빈 테이블들을 두고 바에 앉아 맥주를 몇잔째 비우고 있자니 손님들이 점차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들이킨 맥주를 버릴려 화장실을 다녀 나오며 보니 바의 내 옆 자리에 여자 한명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여자 나이를 맞추는데 아주 잼뱅이였던지라 한번도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던 나지만 멀찌감치서 흘낏 보아하니 내 나이 또래나 아니면 삼십 중반 근처로 보이는 세련된 미시 타입이었다. 뒷모습이 아주 아름다웠다. 날씬한 몸매에 갈색물을 들인 길지 않은 퍼머머리, 가죽으로 된 바 스툴을 깔고앉아 누르고 있는 엉덩이를 꽉 죄며 무릎 바로 위까지 감싸고 내려가 있는 짙은 군청색 스커트 위로 얼핏 보아도 오뜨꾸뚜르 브랜드임을 알 수 있는 심플하면서도 결코 범상해 보이지 않는 순백색의 얇은 면 자카드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내 자리 옆에 다달아 선 체인 내가 뭐라 괜찮은 인삿말을 꺼낼 것인지 아니면 아예 무시하고 바 너머의 진열된 양주병만 바라보며 앉아 술만 마실 것인지 순간적으로 고민을 하는데 그녀가 내쪽을 향해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미소를 지었다. 젠장, 가까이서 보니 예사 미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주변으로 보이지 않는 벽을 둘러치고 쌀쌀맞게 앉아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혹시 자기가 앉아 있는 내 옆자리가 나와 동석한 사람 자린 아닌지 물어 보았고 나는 말도 안되게 더듬으며 허둥지둥 아니라고 부정을 했다. 단지 그녀의 바로 옆자리가 원래 내 자리인데 그냥 그대로 나란히 앉아도 괜찮겠느냐고 오버 썩인 간절함으로 묻자 목구멍에서 나오는 킥킥하는 웃음 소리와 함께 상관없다는 표시의 손을 내 저었다. 작업을 어찌하는지는 경험이 없어 모르지만 내 자리에 올라 앉으며 무얼 마시겠냐고 물었다.
그녀 역시 일로 서울에서 내려 왔으며 부산은 낯선 곳이라 혼자 어디 나가 돌아 볼 엄두도 못내고 해변 모래사장을 한바퀴 거닐고는 다시 호텔로 돌아 왔다고 했다. 안 볼려고 했었는데도 그녀의 손가락에 끼어진 결혼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반지를 힐끗 보는 내 시선을 눈치챈 그녀가 방긋이 미소를 지었다. 내 얼굴이 나도 모르게 달아 올랐고 당황스러워 하는 나를 보는 그녀의 미소는 더 커졌다.
"실제 위험한 상황은 아니니 안심하세요." 그녀가 말했다. "다른 한개의 반지는 지금 불가리아에 가 있고 돌아 올 계획이 없어요. 시간과 변호사의 문제지요. 그래도 그냥 끼고 있을려구요. 킁킁거리며 다가오는 개들을 물리쳐 주는 효과는 있거던요. 정말 용감한 무리들은 그래도 포기하지 않지만..."
그녀의 웃음소리는 마치 노래를 하는 것 처럼 들렸다.
난 나도 서울에서 내려왔고 내가 근무하는 회사의 부산 지사를 잠시 방문하는 것이라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녀는 내가 일하는 회사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전 직장에서 거래를 한 적이 있었고 지금은 서울의 한 다국적 기업 마케팅 이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수영에 있는 공장에서 회의가 있어 내려온 것이라했다.
그때 즈음하여 내 느낌에는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로 이런 사소한 이야기들을 더 이상 이어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서 우린 그녀가 그나마 좋아한다는 잭 다니엘로 바꾸어 마시기 시작하며 맨숭맨숭함의 어색함을 서둘러 죽이기로 했다. 바로 효과가 왔다. 그녀는 아주 재미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에 호의적 혹은 긍정적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 시간 뒤 우리는 바에서 나와 붐비는 레스트랑에서 와인과 함께 저녁을 같이 먹었다.
또 다른 한 시간 뒤에는 난 그녀의 브라 클립을 풀었고 흥분으로 꽂꽂해진 그녀의 젖꼭지를 허기에 울던 애기가 엄마젖 빨 듯 빨고 있었다. 그녀의 피부는 너무도 보드랍고 매끄러워 마치 갓난 애기를 쓰다듬는 것 같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젖가슴은 너무도 희고 투명해 깊숙히 흐르는 가는 핏줄까지 보일 듯 했다. 피부에 깔린 촉감 신경도 그만큼 더 예민했기 때문인지는 모르나 내가 손을 대자마자 그녀는 신음을 흘리며 헐떡이기 시작했다.
내 머리는 꼭 술 때문에 몽롱한 것은 아니었다. 바에서 그녀를 보자마자 난 몸도 기분도 동시에 달아올랐었다. 그녀와의 대화는 시종 재미있었으며 대화 중에도 내내 상대에 대한 배려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사람을 편안하게 했다. 우린 마치 서로 공통분모를 수천개나 가지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레스토랑에서 계산서에 서명을 하고는 그녀를 그녀의 룸으로 데리고 올라 가는게 마치 이세상에서 가장 당연한 일처럼 하였고 객실 도어 앞에서 시작한 길고도 부드러운 키스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간 것도 서로간 아주 지극히 당연한 일인 듯 이루어졌었다.
다시 여자의 따뜻한 포옹에 몸을 맡기니 너무도 좋았다. 아무 계산 없이, 편안함 가운데 그녀의 부드러운 나신 구석 구석에 입맞춤을 하는 것이 너무도 좋았다. 그녀는 꽤나 시끄러웠다. 말로 시끄러웠다는것이 아니다. 내가 그녀의 깊게 파인 배꼽을 혀 끝으로 장난치듯 건드리자 바로 괴이한 앓는 소리를 내질렀다. 그녀는 두 손으로 내 혀가 그녀의 솜털처럼 보드러운 음모 아래로 물기 머금은 채 불거져 있는 외음순에 이를때까지 내 머리를 밀어 내렸다. 입술을 모아 클리토리스가 숨겨져 있을 부분 위의 음순을 모이를 쪼으듯 가벼이 두 번 찍어 주고는 양손바닥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받쳐 올리듯, 엄지로 그녀의 사타구니 부위를 잡아 벌리며 혓끝에 힘을 주어 항문 바로 앞부터 그녀의 외음부 전체를 이랑따라 천천히 주욱 훑어 올린 후 이어 클리토리스를 찾아 혀끝으로 빠르게 튕겨 주기를 거듭한 뒤 입술로 당겨 물고는 빨아 들이자 그녀의 몸은 마치 머리가 달아난 닭처럼 튕기고 들썩이기를 계속 하다가 두 손으로 내 머릿체를 잡은 체 자신의 골반을 들어올려 문대고 또 비비면서 숨넘어 가는 비명소리를 끊임없이 내질렀다.
갑자기 그녀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힘으로 자신의 양허벅지를 조여 내 머리를 꼼짝 못하게 할 때 까지 난 그녀의 늪을 퍼내고 또 퍼내며 닦고 쓸기를 계속 하였다. 동시에 아마 같은 층의 객실에 있었던 사람은 다 들었을 것 같은 날카로운 괴성을 지르며 그녀는 절정을 맞았다. 난 질식할 것만 같아 있는 힘을 다해 그녀의 허벅지를 손으로 벌리고는 우선 차단되었던 공기 부터 허덕이며 들여 마셔야만 했다. 고개를 들어 몸을 위로 가져가자 그녀의 엉망이 된 얼굴이 있었다. 그녀의 활짝 벌어진 입에다 키스를 하고는 코끝을 맞댄체 끌어안고 누워 그녀의 올가즘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세상에," 그녀가 이윽고 아직도 가쁜 숨으로 속삭였다. "얼마 만인지 몰라요..고마워요 성우씨. ...이젠 내 차례예요."
내가 대꾸를 하려하자 검지 손가락을 내 입술에 누르며 저지를 했다. 그녀가 입술을 모아 내 한쪽 젖꼭지를 찝어 빨아 들이며 괴롭혔다. 그리고는 이빨로 잘근 잘근 거리다가 다시 혀로 핥기를 수차례. 반대쪽 젖꼭지에 그러기를 반복한 후 가슴과 배를 따라 핥아 내려갔다.
나의 터질것만 같던 물건이 그녀의 입술을 느끼고 이어 뜨겁지만 부드러운 용암의 동굴에 담겨지는 것을 느꼈을 때 난 떨리던 숨을 멈추듯 들이킬 수 밖에 없었다. 바로 그 순간 거의 사정을 할 뻔 했다. 하지만 그녀가 능숙하게 두 손으로 나의 기둥 뿌리를 꽉 감아 쥐어 누르며 조으는 바람에 가까스로 사정의 고비를 넘길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뽁" 소리가 나도록 내 귀두를 그녀의 입술에서 튕겨 나오게 풀어 준 후 따뜻하고 부드럽기 그지없는 그녀의 혀와 숨길로 나의 음낭을 물고 핥아 나갔다. 불알 한쪽을 완전히 입압에 빨아 들인 체 혀로 고문을 하며 손은 내 기둥과 주변 음모들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정말이지 난 내가 어찌 사정을 하지 않고 참아 내었는지 모르겠다. 그걸 콘트롤 한 것은 사실 내가 아니었다. 그녀는 대단했으며, 조심스러웠고 그리고 애정어린 진심을 가지고 섹스에 임했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은 다 가진듯 느긋했으며 그러는 와중에도 어떻게 시종 날 사정 일보 직전의 상태에 붙들어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내 사타구니에서 몸을 일으켜 올라와 날 미소 가득한 얼굴로 내려다 보며 말했다.
"말해줘, 우리 애인. 내 어디에 하고 싶어, 최초의 사정을?"
난 그녀의 머리를 당겨 내리며 고통을 호소하지 않을 만큼의 한도 내에서 최대한 강력한 키스를 했다. 그녀의 숨결은 향기롭다 못해 최음제 같았으며 그녀의 가늘고 긴 혀는 수밀도 처럼 달았다. 그녀의 보드러운 손이 내 용트림치는 불기둥을 감아 쥐고 있었다.
"날 올라타. 내 위에서 날 자기안에 넣은 체 날 타고 같이 가자."
그녀는 쌔액 미소를 짓고는 혀로 내 코를 한번 주욱 핥았다.
"우~우 예!", 그녀의 모습은 정말이지 나 혼자 보기가 안타까울 정도로 아름다웠고 또 요염했다. "하지만 그전에 우린 둘다 책임감있는 애인이 되어야 해."
어디서 꺼낸지 알 길이 없었지만 그녀가 콘돔 하나를 들고 있었다. 포장지를 이빨로 뜯어 꺼내어서는 내 꿈틀거리는 불기둥에 훑어 내렸다. "으음....," 얇은 막으로 코팅된 내 귀두를 손가락으로 톡 톡 치며 그녀가 응얼거렸다. "딱 맞네..자 이젠 나랑 같이 가요."
무릎으로 몸을 세우고선 내 위로 걸쳐 오르더니 혈관이 터져 버릴 것만 같은, 아프기까지 한 내 불기둥 위로 천천히 내려 앉았다. 그 느낌을 어찌 말로 표현을 할 수 있을까. 내 기둥을 물고 내려 앉는 그녀의 부드럽디 부드러운 주름의 조임과 감싸오는 질내의 체온이 주는 따뜻함은 내 머리속을 하얗게 만들어 버렸다.
한참을 그렇게 깊숙히 내려 앉아 미세하게 허리로 작은 원을 그리던 그녀가 천천히 상하 움직임을 시작했다. 난 그녀의 출렁이는 젖가슴 너머 그녀의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그녀가 씩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곧 다시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그녀의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상반신을 뒤로 확 제키며 고통에서 나오는 듯한 신음을 지르더니 훽하니 다시 몸을 앞으로 덮어 와서 엎드린 체 피스톤 운동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벌어진 입에서 침이 흘러 내려 내 한 쪽 눈 두덩이에 떨어졌다. 입을 벌려 이어 떨어지는 침을 받아 먹으려 하자 그녀가 입을 오물여 침을 잔뜩 모으더니만 위에서 조준을 하여 벌어진 내 입안으로 듬뿍 흘려 내려 주었다. 떨어지는 잠깐 동안 체온이 실내 온도에 식는 것인지 그녀의 침은 내 혀에 시원하게 느껴졌다. 천정 불빛이 그녀의 머리채로 가려지나 싶더니 그녀의 혀와 뜨겁디 뜨거운 헐떡임이 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우린 둘 다 이르렀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그녀의 몸을 더욱 꼭 끌어안으려 팔을 그녀의 목뒤로 둘러가는 순간 그녀의 상체가 튕기듯 다시 일어서며 뒤로 제켜져 뻣뻣해졌다. 내 불알에서 정액이 터져 분출하는 순간이었다. 수백만 볼트의 전류가 내 몸에서 그녀에게로 옮겨 가는 것 같았다. 경직에 이은 절정의 여운에 훔찔 거리면서도 손가락 하나 까닥일 힘도 없었다.
"여태 어디에 있었던거야, 성우씨?" 그녀가 숨을 가누었을 때 내게 속삭였다. 우리 두 몸뚱아리는 침대보와 함께 뒤엉켜져 안은 체 누워있었다. 땀이 에어컨에 식어가자 등뒤가 서늘해져 소름이 돋아왔다. 얇은 린넨 침대보를 당겨 펴 우리 둘 몸둥아리를 목까지 푹 덮었다.
"나 여기 있어." 내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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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도대체 어떤 족속일까? 생존을 위한 본능적 욕구일까? 아니면 끔찍할 정도의 얄팍함일까? 나로선 알 수가 없었다. 분명한 것은 그게 무엇이든 난 상관하지 않았다.
부산에서의 그날 밤은 전구에 불이 들어온 것과 같았다. 그 사건은 날 박쥐들만 가득한 어두운 심연으로부터 눈부시도록 밝은 세상으로 끌어내 주었다.
내 절박함으로 움켜쥐어 숨이 막혀 죽어가는 맥주를 내려다 보던 한 순간에서 바로 그 다음 순간 성주와 난 어린애들 마냥 물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며 하룻밤만에 우리들 세상의 중심이 되어 버린 낮선 도시에서 즐거워 하고 있었다.
여름휴가의 피크를 맞은 광안리의 불빛들이 마법에 걸린 우리들 눈동자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괜스리 바보들처럼 웃었고 머그 잔 하나에 아이스 와인을 한병 다 따루어서는 같이 마시며 즐거워했다. 모든 것이 너무도 달아서 마치 우리들 이빨의 상아질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지난 이틀은 마치 아득한 추억과 같은 물안개였다. 우린 같이 침대를, 샤워를 그리고 서로간을 들락 거렸다. 무얼 먹을 시간은 아주 어쩌다 가끔씩 만들 수 있었다.
성주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들려 주었고 난 내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녀는 나랑 같이 울어 주었고 나는 그녀랑 같이 웃었다. 그리고는 떠날때가 되었다. 그녀의 비행기편이 내것보다 빨랐다. 사람들이 지켜보건 말건 우린 보딩 게이트가 닫히기 직전까지 서로를 부둥켜 안은 체 있었다.
다시 혼자가 된다는게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내게서 안보이는 빛이 발산되는 듯 했다. 공항의 대기 라운지는 화나고 신경질적인 승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단지 어서 떠날 수 있기를 바랬지만 빠듯한 일정의 왕복 국내선 일정에는 항상 사소한 문제들이 생길 수 있는 것이고 늦어지는 출발로 인한 승객들의 짜증과 불평은 공항 청사안의 공기를 짓누르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난 전혀 무관했다. 난 그 짓누르는 답답한 공기 위로 분홍빛 향수로 채워진 비눗방울 안에서 떠 다니고 있었다. 낯선 모든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으면 돌아오는 반응은 어둡고 냉담한 표정들이었지만 난 그저 낄낄거리기만 했다 난 속으로 그 모든 사람들이 기분 좋은 여행이 되도록 빌고 있었다.
서울은 아직도 장마의 흔적에 젖어 있었고 군데 군데 빗물들이 고여 있었다. 내겐 그것도 화창한 봄날이나 진배 없었다. 심지어 난 내 빈 아파트로 들어서며 나도 모르는 음조를 휘파람으로 불고 있었다.
현관문을 따자 우편물 한 무더기를 옆으로 밀쳐 내야 발을 들여 놓을 수 있었다. 고지서, 청구서 그리고 광고 우편물들 사이로 크림색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법률 사무소의 이름이 인쇄되어 있었다. 이혼서류였다.
읽으며 소파에 일단 철퍼덕 앉았다. 내용은 내가 진작에 이미 스스로 작성하였던 것과 하나도 다를게 없었다. 이게 무슨 돈낭비인가 당시 생각했던 게 다시 떠올랐다.
봉투 안에는 법률 사무소의 서류와는 다른 색상의 종이가 한장 같이 동봉되어 있었다. 은서의 큼직 큼직하고 거리낌없는 남자 필체같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성우씨,
내가 형편없는,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진 괴물이었다는 것 알아. 물론 내가 이리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당신이나 정혜는 이미 잘 알고 있다는 것도.
아마 내가 미쳤었기에 내가 당신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도 내 동물적 욕구에 그때 그때 내키는대로 따를 수 있을거란 생각을 했었던것 같아. 아마 난 단 한번도 사랑을 줄 줄 아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던적이 없었던 것 같아. 난 내 쾌락에 대해 타협을 할려 하지 않았을 뿐더러 난 내가 나 자신을 위해 그리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을 했었어. 심지어는 난 당신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권리와 이해를 구할 권리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애.
그래, 난 내게만 있는듯한 별난 욕구가, 주체할 수 없도록 커다란 많은 욕구들이 있어. 그 중의 하나는 당신이 날 사랑해 주길 바라는 욕구야. 그걸 당신이 거두어 가 버렸을 때 난 정말 견디기 힘들만큼 괴로웠어. 당신이 왜 그래야만 했는지 이해를 할 수조차 없었어. 당신이 어쩌면 그리도 이기적으로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내 욕망을 허락하지 않을 수 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던거야. 마치 맛있는 과자를 거부당한 어린 걔집아이 같았던 거지.
그날 밤 병원에서 이미 당신은 알고 있었어. 어찌해서 내가 내 손목을 그리 엉성하게 잘랐는지 알고 있는 당신을 난 그날 보았어. 맞아, 그건 협박이었어. 난 어쨌거나 당신을 보낼 수가 없었던 거야. 나중에는 정혜까지 떠밀어 보내어 협박으로라도 당신을 다시 내사람으로 되찾아오려 했었어. 그리고 얼마전 비오던날 선릉 근처에서 내가 우산을 돌리며 비를 당신에게 흩뿌렸던 것도 당신에게 엣정을 불러 일으키게 하여 다시 예전으로 돌이킬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어.
당신은 내 소중한 삶의 균형을 망가뜨려 버렸어. 사랑과 욕망 사이의 균형을. 난 그 둘다를 가졌었고 어느 하나도 포기할 생각이 없었어. 내가 당신에게 돌아와 주기를 애원하던 때에도 난 한번도 내 가증스런 작은 욕망을 짓눌렀던 적이 없었어. 당신 두눈으로 직접 그걸 본 것이지만.
그날 선릉에서의 해프닝 이후 용기를 내어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러 갔었더랬어. 그 여의사가 내게 보여준 것은 항상 바로 내 코밑에 있던 것들이었어. 이기심, 욕심. 사랑을 줄 줄도 받을 줄도 모르는 무능함.
그 의사가 말하기를 나의 이 부적절한 자긍심을 바로 세워 지탱 해주기 위해서는 난 언제까지고 외부로부터의 목발이 필요할 거라고 그러더군. 내가 이해하기론 그녀는 당신의 나를 향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받아 들였어. 그래 맞어. 난 못내 당신의 사랑을 그리워할 거야. 그저 그것 없이도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게 되기만을 바랄 뿐이야.
자기. 이젠 끝 났다는 것 알아. 난 곧 서울을 떠날 거야. 홍콩에 새로운 직장을 찾았어. 현재의 이런 헝클어진 일들을 정리하지 않은 체 떠나고 싶은 마음은 정말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이해하고 도와 주길 바래. 난 이일을 최대한 빠른 시간내에 최소한의 고통으로 마무리를 짓고 싶어.
지금와서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이라 하더라도 해야만 하겠어...너무 너무 미안해.
은서
P.S.: 아무것도 바라거나 요청할 입장 아니라는 것 알지만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번만 나랑 이야기를 해주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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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 안으로 들어서니 왁자지끌하고 붐볐다. 어두운 밤 하늘에서는 비가 축축히 내리고 있었던지라 술집안은 손님들의 빗물 머금은 우산들과 젖은 옷들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습한 내음을 품고 있었다.
은서의 편지는 커다란 안도였다. 허나 그것이 나의 끊일줄 모르는 성주에 대한 사랑의 열병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마치 나 자신이 사춘기 학생때 같이 느껴졌다. 혹은 41살이나 먹은 사춘기 학생이었으리라. 도무지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난 편지를 다 읽고 내려놓자 마자 성주에게 전화를 하였다.심장이 쿵쾅거렸다. 부산에서 돌아와 처음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부산에서의 그 시간이 마치 동화속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래봐야 시간적으로 얼마 지나지 않은 일이지만 그 기억들은 이미 핑크빛 유리구슬 안에 모셔져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비현실적인 몽상 같은 것으로 남게 되는 것 같았다.
단 일초의 누락도 없이 완벽하게 떠올릴 수 있는 그때의 기억들이 날 두렵게 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확실히 나를 다시 현실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스스로에게의 질문은 과연 그 현실이 어떤 것이 될 것인가였다.
그리고 그랬다. 성주의 목소리는 꿈결처럼 몽롱하던 그 모든 것을 똑바로 관통하며 내게 들려왔다. 그랬던 것 처럼 그녀는 역시 가까운데서, 손에 만지키듯 현실로 있었다. 가장 완벽한 현실이었다. 난 긴장을 풀며 마치 우리가 그 날 이후 한번도 헤이지지 않은 것 처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나를 보기를 간절히 바랬고 나랑 다시 같이 있기를 원했다. 하지만 출장 본연의 업무를 내 팽개쳐버렸던 그녀에게 그 이틀은 몇배로 더 불어난 만회의 일들로 되돌아 왔다. 매일 야근을 해야 했고 이틀간 대전으로 차를 몰고 출장을 가야 했다. 미안함으로 나는 신음했고 그녀가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그건 마치 전화기를 통한 포옹처럼 내게 스며 들었다. 마치 포근한 자리에 안아 놓여진 한마리 강아지가 된 느낌이었다.
그녀가 다가오는 금요일은 월차를 내겠다고 하였고 나도 그러기로 했다. 내 지평선 저 멀리 3일간의 낙원이 펼쳐져 열렸다. 십대들처럼 우린 서로의 전화기에 쪽하고 키스를 했다. 정말 끊기 싫었다.
지금은 여기 술집에 도착해 은서를 찾고 있었다. 난 내심 그녀의 용기있고 솔직한 편지에 대한 보답으로 그녀의 마지막 요청에 즉각적인 답을 주리라 결심을 하였던 터였다. 성주와의 통화를 마치고 난 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고 주눅이 들어 있었다. 긴 침묵들이 중간 중간 계속 되었었고 통화 내내 그녀의 대답은 길어서 세마디를 넘는게 없었었다.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늦는 것이겠지. 이런 날 퇴근 길이면 막히지 않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전화를 주겠지 기다렸다. 일단 어렵게 빈자리를 찾아 삼겹살에 소주를 한병 시켰다.
두 잔째 소줏잔을 기다리는데 손가락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거구의 사내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자는 내가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맞는지를 물었다. 맞다고 했더니 자기와 같이 가자고 하였다. 은서가 자기를 보내 데려오라 하였다한다.
난 망설였다. 왜 직접 오지 않은 것일까? 그 남자 이야기는 일에서 몸을 빼 낼수가 없어 자기더러 가서 사무실로 나를 데려오는 수고를 좀 해 달라고 하였다 한다, 그러지 않으면 너무 많은 시간의 낭비가 있을 것 같아.
이 모든일이 상당히 이상하고 논리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회사 대표 번호로 전화를 걸었으나 이미 교환수들이 퇴근을 한지라 회사에 남아 있는 누군가가 손수 받지 않는 한 밤새 벨만 울릴 것이었다. 어쨌거나 이런 것은 은서가 충분히 취할 수 있는 행동인지라 그 남자를 따라 가기로 동의를 하였다. 잠시 후 우리는 다시 비내리는 거리로 나왔고 곧 옆의 남자가 거타란 손으로 내 팔꿈치를 잡더니 술집 옆의 조그만 골목쪽으로 나를 밀치며 이끌었다. 난 잡힌 팔을 뿌리칠려고 하였다.
"어디를 가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그는 말없이 날 밀어 부치기만 했다.
그때 골목안으로부터 두 사내가 더 나타났다.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둘 다 첫 남자의 덩치보다 더하면 했지 작지는 않았다. 한명이 내 목의 옷깃을 나꿔채고 어두운 골목안으로 잡아 끌었다. 좁은 골목안에 들어서자 나를 음식물 쓰레기 수거통 옆 담벼락에다 밀어 붙였다. 숨이 막힐듯한 고통으로 인한 하얀 별이 보이며 나는 꼬꾸라졌다. 강하면서도 사정두지 않는 주먹이 나의 복부에 수차례 꽂혔다. 헉하고 들이킨 숨을 다시 뱉을 수가 없었다. 고통으로 인한 비명도 나오지 않았고 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난 질척하고 더러운 콘크리트 골목 바닥으로 무너져 내리며 위액을 게워내었다. 셀 수도 없는 주먹과 발길질이 이어지며 내 몸 구석 구석에 꽂혔다. 난 조금이라도 매를 줄이고자 몸을 잔뜩 웅크린체 뒹굴 뿐이었다. 그러기를 한참하자 이제는 더 이상 발길질도 아프게 느껴지지 않는 무감각이 찾아 들었다.
마침내 난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는 나중에 의식의 일부를 다시 찾았던 것 같은게 굽이 높은 긴 가죽 부츠를 신은 발이 기억이 났다. 그 역시 꿈일 수도 있었겠지만...은서의 목소리도 들리는 꿈...
난 정확히 그녀가 한 말을 기억하지를 못한다. 단어들이 있었고, 하나의 문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단편적 말들이 있었다..."비겁하게, 이성우...이해를 해 주었어야지." 그리고 "어떻게 내게 그럴수가 있어?" " 난 그래야만 했어." "다시 바로 잡아야만 했어, 알어?" 그리고 "안녕", "사랑해 성우씨" 등의 단어들도 들었던것 같다. 그리고는 다시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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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백지 사이로 고운 하지만 윤곽이 맺어지지 않는 얼굴이 나타났다. 굵은 웨이브의 풍성한 머릿결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춤을 추며 불그스럼한 후광을 그 주변으로 만들고 있었다.
"성우씨?" 그 입이 말했다. 아마 나를 부르는 것이리라.
내 머리는 교회 종소리와 돌을 때리는 해머 소리로 가득찼다. 하얀 불빛이 다시 그 고운 얼굴을 흡수해 버렸다.
다시 얼굴이 돌아 왔을때 난 내가 그 얼굴의 주인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게 그녀가 중요한 사람이란걸 느끼며 신음을 했다.
내가 꺼억대는 소리로 간신히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눈부시는 미소가 섬광처럼 번쩍였고 그 섬광은 내 눈을 멀게 했다.
"서-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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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비뼈 두대가 부러졌고, 광대뼈가 금 갔으며 코뼈가 부러졌다. 물론 다른 부상들도 많았지만 영구적인 것은 없었다. 내 피부는 마치 멍자국과 벗겨진 상처 그리고 부어오른 둔덕으로 구성되어진 입체 조감도 같았다. 어디 한 곳 결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경찰도 와 있는게 보였다. 질문할 것이 많았겠지만 내가 줄 수 있는 대답은 몇가지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이 알아 들을 수도 없는 소리들이었다.
어쨌거나 감사한것은 옆에 성주가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 골목 세멘트 바닥에 패대기 쳐진 개구리처럼 뻗어 비를 맞고 있은지가 몇시간은 족히 된 모양이었다. 파출소에서 신원을 밝히지 않는 제보자의 전화를 받은게 자정 무렵인 듯 했다.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그들에게 그 골목을 가보라고 하였다 했다.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했다.
119 구급차가 나를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겼다. 내겐 아직 지갑과 휴대폰이 그대로 있는 상태였다. 병원에서 내 지갑 한쪽켠에 꽂혀 있던 조그만 증명 사진의 뒷면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연락을 취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을 한 것이었으리라. 해서 대전의 호텔방에서 잠들어 있던 성주를 깨웠던 것이고 그녀는 바로 차를 타고 달려 서울로 돌아온 것이었다.
사건이 있고 3일 후 형사 둘이 다시 병원으로 찾아 왔다. 집에 보관되어 있는 은서의 편지 내용과 약속 장소로 찾아 왔던 남자의 자세한 인상 착의를 알려주며 그들이 알아야만 할 전후 이야기만 들려 주었다. 형사들에게 난 지금 이것으로 모든 게 끝나는 것이면 고소를 할 의사가 없지만 만에 하나 성주에게도 비슷한 테러가 가해진다면 난 영원히 내 자신 용서를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만약 고소에 이은 구속을 바라지 않는 상태에서 달리 합당한 신변보호를 경찰로부터 기대할 수 없는 정황이라면 고소를 하겠지만 그 어느 경우에든 성주의 보호 이외 다른 목적은 없다라고 하였고 그들의 답을 들은 나는 결국 폭행으로 은서와 하수인 일당들을 고소하는 소장을 작성하고 지난번 변호사에게 연락을 하여 자초지종을 간략히 알려준 뒤, 이혼 수속을 소송으로 바꾸어 속계해 줄것을 요청했다.
성주는 이 모든 것을 아무런 말 없이 옆에서 지켜보며 듣기만 했다. 둘만 남게 되자 그녀는 나의 손을 살포시 쥐고는 각별히 주의할테니 자기 염려는 크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날 안심을 시킬려 했지만 그녀 또한 사이코의 양상을 보이는 은서의 집착에 불안해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병원으로부터 전치 8주의 진단이 나왔고 은서는 이틀 후 직장으로 찾아 온 형사들에 의해 구속 수감되었다.
아팠다. 무지 아팠다 하지만 기분은 무지 좋았다.
내가 퇴원 후 통원 치료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하기 까지는 열흘이 걸렸다. 성주는 내가 자신의 집에 와 있어야 한다고 고집을 했고 내가 아니라고 맞고집을 부리기에는 온 몸이 너무도 성치 않은 상태였다. 그럴것 같으면 좀 더 오래 성치않은 몸으로 있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다시 한 주가 더 흐른 뒤 우리는 조심스레 섹스를 했다. 그런 달콤한 고통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녀의 휴대폰 기록으로부터 추적하여 검거한 하수인들의 자백 및 그녀가 내게 보낸 편지 등을 증거로 은서는 공판에서 5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고 그녀측 변호사는 즉각 항소를 한 뒤 합의에 응해 줄 것을 정혜와 함께 찾아와 간청해 왔다. 나는 이혼 소송 변호사의 도움을 빌려 내가 원하는 내용의 각서를 겸한 합의문을 A4 두장 분량으로 작성 그녀의 날인을 받은 후 그녀에 대한 소를 취하하였다.
6개월 후 성주와 나는 결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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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들 핑크빛 뭉게구름은 아직 걷히지 않았다. 바라건데 오래 오랫동안 걷히지 않기를.
다시 여름이었다. 도시는 폭염으로 녹아 내리고 있었다. 성주의 절친한 친구가 춘천에 있는 그들의 집으로 우리 부부를 초대를 하여 피서겸 초대에 응하기로 했다. 강을 낀 산자락 아래에 지워진 전원 주택은 처음 보는이로 하여금 절로 탄성을 짓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모든 어느 것들도 그늘에서 아내 성주를 지켜보는 즐거움으로 부터 날 떼어놓지는 못했다. 하늘거리는 얇은 원피스에 감싸인 그녀의 아름다운 굴곡들을 난 사랑했다. 태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녀의 갈색 머릿결을 난 사랑했다. 아마 그녀도 내가 자신을 지켜 보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리라. 하지만 내가 지난번 여행때 사 준 선글래스를 끼고 있어 알 수는 없다. 내가 발라준 선탠 오일이 그녀의 팔과 원피스 치맛단 아래 종아리 피부위에서 반짝이고 있다.
사람들은 여자가 결혼 후 새로운 삶의 미묘한균형을 찾아내는 것에 성공했을 때 여러가지 형태로 표가 난다고 이야기 한다. 남편 본인은 아마도 그것을 알아 차리는 제일 마지막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다. 은연 중 나타나는 그런 사인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일지도 모를 일이다. 무슨 상관이겠나? 보이는 사인들은 전부 긍정적이고 좋은 것들 뿐인데. 내 ego만 다둑거려 주는것이지.
망할 은서년. 이혼소송은 그녀가 2년 6월의 집행유예로 석방이 되기 훨씬 전 이미 바로 판결이 내려졌고 그녀는 집행유예 후 서울의 모든 것을 청산하고 떠났고 정말 홍콩으로 옮겨 간 것인지는 정혜조차 알지를 못했었다. 난 지금도 그녀의 나 없는 삶이 불행하지 않은 것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이 나 자신의 유약한 대응으로 더 악화된 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은서가 남자였고 나 자신이 여자였다면 하등 경악할 일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부간의 갈등이었을지도 모를 것이었다. 어찌 같이 살고 있었던 나만 그녀의 그런 상상을 초월하는 난잡한 삶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더란 말인가? 난 성주에 관해 또 우리 결혼 이전의 그녀 삶에 관해 도대체 얼마를 알고 있는 것일까? 나의 현재 이 행복은 당연하고 견고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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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처음 의도와는 달리 서둘러 귀결을 지어야만 하였던 점에 대해 보잘것 없는 글에도 불구 성원을 보내주신 여러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립니다.
솔직히 개인적으로도 실망스럽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를 짓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전처와의 갈등은 이 정도에서 종결을 짓고 다음 편부터는 성주를 화자로 하여 그녀의 전 남편 내지는 남자와, 또 결혼 후 태어나는 애기의 친부가 누군가에 복선을 가지며 좀 더 많이 야(!)한 내용을 그려가다가 마지막 대단원에서는 반전(?) 아닌 반전을 만들어 볼 요량이었습니다만 무엇보다 현재 개인적 사정상 아무래도 그러기가 여의치 않을 것 같아 결국 포기하기로 하였습니다.
여건이 허락하는대로 다시 한번 다른 이야기로 제대로 도전해 볼 것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며 그럼...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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