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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한선배가 오늘을 마지막으로 해외출장을 간다고 해서... 송별회를 하려고 하는데....”
“송별회요?”
“응.. 송별회라고 해봐야 고기나 좀 먹으면서 수다나 떠는 게 다야. 몇 번 참석해봤는데 다 차를 가지고 와서 술도 거의 못 먹거든.”
“....”
“어떻게 할까? 그냥 집으로 갈까?”
“가요. 언젠 제 의사가 중요했어요?”
“...”
“혜빈이는... 누가 데리고 간데요?”
“응? 혜빈이?... 글쎄.. 원장님이 좋은 분들이라고 하셨으니까. 이번엔 걱정 없을 거야..”
“.....이번에? 그럼 벌써 입양을 갔었다고요?”
“......”
“입양을 간 아이가 왜 방금 전에 갔던 보육원에 있어요?”
“그게.. 많이 복잡해.. 사람들마다 각각 사정이 다 있잖아. 정말 아이가 필요해서 데리고 갔는데.. 막상 데리고 가선 적응을 못 하는 집도 있고.. 아이가 마음을 열어주지 않아서 힘들어하는 부모들도 있고... 그래서 다시 돌려보내는 일도 있다고 하더라고..”
“그게.. 그게 말이 되요?”
“응??”
“한 번 거둔 자식을.. 자기 사정이 있다고 다시 돌려보내다니요? 그럼 혜빈이.. 저 어린 것이 한 번도 아니고....”
“......”
“차 돌려요.”
“....뭐?”
“차 돌리라고요!!”
갑자기 신이가 소리를 버럭 지른다.
처음으로..
다시 신이를 만나고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화를 내며 이렇게 큰 소리를 지른 건 처음이었다.
“신이야..”
“가서 우리가 데리고 와요! 그럼 되잖아요!”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야. 그리고 지금은 당신 감정이 격해.. 억!!”
‘끼이익!!!!!’
죽을 뻔 했다.
아니.. 사고가 날 뻔했다.
신이가 갑자기 자신의 방향으로 핸들을 잡고 흔들었기에 중심을 잃고 차가 비틀거렸으며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차가 급정거 하게 된다.
“미..미쳤어!!”
“돌아가자고요!”
“신이야!”
“저 어린 것을.. 어떻게.....”
신이가 울먹인다.
“사람이라면.. 사람이라면 어떻게 품에 안은 아이를 버릴 생각을 해요? 그게 사람이에요!?”
만난이후 처음으로 신이가 서럽게 울며 감정을 온 얼굴로 드러낸다.
내 질타와 비아냥거림에도 이런 표정을 짓지 않던 신이가 나도 그 사람들과 만찬가지처럼 노려보듯 쳐다봤고 노려보는 그 두 눈으로 소리 없는 한 줄기의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우린... 입양 못 해...”
“...왜요?”
“입양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당신 마음.. 나도 충분히 이해하는데.. 입양이라는 것도 절차가 있고 법이 있더라.... 이혼한.... 제대로 된 가정이 아닌 우리한테 아이를 줄만큼 법이 호락호락하지 않더라고....”
“.........”
“혜빈이는.. 좋은 부모 만나서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특히나 다시 돌아온 아이는.. 심사 때 더 철저히 본다고 하더라고.. 너무... 걱정하지 마.”
“차라리.. 봉사 같은 걸 하지 마요....”
“신이야. 그 봉사라는 게.... 그래서 더 해야 돼.”
“....”
“나도.. 아이들과 헤어질 때마다 가슴이 송곳으로 찢는 듯 아픈데.. 그런 고통 때문에 안 간다면.. 아이들이 덜 괴로워할까? 자기만족이라고 그냥 한 달에 한 두 번 가는 게 아니야... 우리마저 안가면.. 우리가 저 보육원을 후원하지 않는다면 국가보조금만으로 보육원이 제대로 운영이 될까? 나도 처음 저 보육원을 갔다가.. 후회를 엄청 많이 했어. 너랑.... 헤어지고 나서 핸드폰을 정리하다가 이게 뭔가?..하고.. 그냥 끊어야지 라고 생각했다가.. 아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혼이나 치유하자는 생각으로 갔었는데.. 막상 가보니까.. 나올 땐 더 괴롭고 힘들더라.”
“치유요?”
“응.. 사실 엉뚱한 생각까지 했어.. 우리가 헤어진 게.. 아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더라.. 아이들도 알 건 다 알고.. 그래서 이런 뜨내기 같은 방문자한테는 정도 잘 안주려고 하더라고.. 그냥 놀아주는 아저씨?........ 그런데도 막상 나올 땐... 다시는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눈에 밟히더라....”
“.....”
“지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쁜 새끼가.. 동정심이랍시고.. 그런데 말이야.. 말은 안 해도 조용히 와서 안아주는 혜빈이를 보고 있으면.. 내가 동정을 받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나도 알아봤어. 입양을 할 수 있는지.. 비록 내 자식이 아니지만 서로 배워가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입양절차를 알아보고.. 입양을 할 수 있는 지 알아보고..”
“....그런데요?”
“이 좆같은 대한민국은 뭔 놈의 조건이 그렇게 많고 까다로운 지 처음 알았지. 가족관계증명서.. 건강진단서.. 입양적격추천서.. 자녀양육계획서.... 아니. 서류가 문제가 아니더라... 독신이라도 입양을 할 순 있지만.. 아이를 돌볼 수 있는 능력이란 게...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놈이란 걸 알았다고 해야 하나?..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을 건사할 능력이란 게 없다는 걸.. 말이야. 거기다가 이혼전적도 마이너스가 되더라고.. 그리고 재산도.. 양자를 부양하기에 충분한 재산이 있어야 한다는 자격조건이 있는데..”
“그걸.. 다 알아봤다고요?”
“응. 가족사진까지 제출해야 된다는 말을 듣고 웃기도 했다니까...크크크..”
말을 하면서도 다 잊었다 생각했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게 된 나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할 수 일만 최선을.. 마음을 담아서 하는 게 가장 좋은 게 아닐까?”
“할 수 있는 일이라뇨?”
“깨끗하게 씻겨주고,, 빨래해주고, 놀아주고.. 매주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건 오버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그렇게 매주 가면.. 정말 범죄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범죄자라뇨?”
“납치!.. 예쁜 혜빈이를 납치할 지도 모르잖아. 당신도 방금 살인미수였어! 운전 방해는 고의적인 살인 미수라고...크~”
“....”
“당신이 그 정돈데.. 난 어떻겠냐.. 하지만 다 그렇게 살잖아..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참고.. 법 잘 지키고.. 쥐 죽은 듯이.. 그리고 열심히....”
“....다..시.... 다시 결혼해서.. 다른 좋은 여자랑 결혼해서.. 자식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왜 안했겠냐! 나도 남자고 사람인데!”
“........”
“그런데.. 사람들이 말하잖아 결혼생활이 행복했던 사람일수록 재혼도 빨리 한다고.. 반대로 불행했던 사람은.. 결혼이라는 말만 나와도 진절머리를 친다고.. 그런데 나 같은 놈은 어떨까?”
“나..같은 놈이라뇨?”
“결혼 생활은 정말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이혼을 했잖아..... 조금만 더 참을 걸, 당신이 왜 그렇게 노이로제 걸린 여자처럼.. 꼭 미친 여자처럼 행동했던 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겠냐고... 생각부터 했으면 참을 수 있었을 텐데.. 라는 후회를 몇 번이나..”
“그만..해요.”
“...”
“어차피 지난 일이에요. 이미 떨어져서 뭉그러진 감은.. 주워 담는다고 원상태로 돌려놓을 수 없잖아요.”
신이의 말에 낮에 봤던 감나무 아래의 풍경을 머릿속에 떠올렸고 나무에서 떨어진 감들을 쓸어버리며 아깝다는 생각만을 했었는데.. 신이의 기분만큼이나 차안은 다시 고요함으로 채워져 간간히 차안에 울려 퍼진 요철의 둔탁함만이 귀를 간질인다.
차를 돌려 그냥 집으로 방향을 바꿀까를 몇 번이나 고민하게 되지만 이대로 집에 간다 해도 신이의 기분이 좋아질리 없다는 생각에 결국 한선배의 송별회가 있을 한우식당으로 직진하게 된다. 김선배란 놈의 존재가 마음속에 계속 걸림돌처럼 느껴지긴 했지만 형수도 있는 마당에 무슨 짓을 어떻게 할 수 있겠냐는 확신과 한선배에게 느꼈던 인간애를 신이도 느낄 수 있도록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더 이상의 잡념을 버리고 운전에만 집중을 한다.
신이와 얘길 나누며 천천히 운전을 했기에 도착한 한우고깃집 안은 이미 모임의 인원들로 시끌벅적하게 변해 있었고 뒤늦게 합류하게 된 우린 가장 가장자리에 자리를 트고 앉게 되었다. 차안에서 망설이던 신이도 보육원을 나오며 마지막 위로를 했던 한선배에 형수의 자상함과 그 한선배가 해외출장을 가는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내말에 힘겹게 차에서 내려 내 뒤를 따라왔다.
여느 모임들과 마찬가지로 네 커플인 8명의 남녀가 둘러앉은 테이블은 공통된 주제로의 대화가 아닌 서로간의 짝을 지은 대화가 주를 이루는 듯 보였다. 나와 신이가 도착한 모습을 조금 늦게 확인한 김선배가 나서기 좋아하는 버릇처럼 맥주로 보이는 액체가 담긴 컵을 들고 건배를 제안한다.
“자자~ 이제 다 모인 거 같으니까. 우리 건배해야죠! 그동안 가장 맏형으로서 저희를 보듬어주신 한선배의 작별과 오지에서의 건강을 위해서~~ 건배!”
“지화자~~ 건배~~”
침울함에 빠져 힘겹게 든 잔을 애써 더 들어 오리면서도 내키지 않은 듯 굳은 표정을 짓는 사람은 신이 혼자였다.
당연한 모습이었지만.. 그런 신이의 모습은 마지막 건배를 크게 외친 김선배와 그리고 그 건배에 호응하던 우리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난 팔꿈치로 신이의 팔뚝을 ‘툭’하고 살짝 밀친다.
“하하하~ 우리 제수씨가 아직 이 분위기에 적응을 못 하시는데!!! 이럴 때일수록 우리들이라도 잘 놀아야죠!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저기요...”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김선배의 얘길 자르고 들어온다.
한선배였다.
“우리가 만난 지 벌써 5년이 넘은 분들도 계시고.. 적게는 1년도 채 안된 분들도 계시지만.. 모든 분들이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이 자리엔 없지만 공구진씨하고 오씨.. 그리고 김씨의 제수씨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기 위해 시작 한 모임이었는데.. 어느새 스물 한 쌍이 넘는 커플들이 동참을 했다가 사라지길 반복하게 되었네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좋은 취지로 시작된 모임이 많이 변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남아주신 분들에겐 정말 고마워하고 있다는 게 제 마음입니다. 그리고... 저희 부부가 떠나더라도... 이 모임은 계속 유지해 주셨으면 정말..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아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몇 안 될지도 모를 좋은 추억이 될 수 있게 말이죠.”
한선배는 잠시 목을 축이며 호흡을 가다듬고는 다시 연설과도 같은 소감을 시작하는데.. 한선배의 형수가 조용히 우리에게 다가와 앉아선 신이에게 맥주잔을 건넨다.
술을 잘 못 마시는 신이는 건네받은 맥주잔을 멀뚱히 바라보기만 하는데.. 형수가 급구 다시 목을 축이라 권했고 결국 작은 목 넘김으로 형수의 권유에 응하게 된다.
“오늘 많이 힘들었죠?”
“...아니에요.”
“아니긴..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구먼. 한동안은 혜빈이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을 거예요. 그래서 더 힘들 테고.. 아이 때문에 이혼했다고 하던데...”
“.....”
“주제넘을지 모르겠지만..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살아온 이 아줌마의 주제넘은 푸념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우리도 아이가 없어요. 태규씨랑 다르게 저흰 제가 문제가 있어서 아이를 못 가졌는데.. 뭐 운명이라고 받아드리고 같이 열심히 살고 있죠.”
“...”
“사실.. 6년 전 그 보육원에서 한 아이를 데리고 왔었는데..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린 건지...”
“그럼....”
“에고고~.. 제가 약간 취했나보네요. 괜한 헛소리만 늘어놓고..”
“아니에요.”
“그런데 신이씨.. 신이씨랑 태규씨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믿음이라는 얘길 해주고 싶이서 이렇게 주제넘게 왔어요. 이혼을 하고 다시 이곳까지 같이 동행을 한 이유를 전 모르지만.. 만약에, 만약에라도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 잊지 못하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만나기 시작한 거라면.. 믿으세요. 태규씨란 남자 몇 개월밖에 못 봤지만 진국이라는 걸 저도 알 수 있을 정도니까. 아마 신이씨도 너무 잘 알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비밀인데.. 저이랑 나도 한 번 이혼했었거든요. 그러니까 경험자로서 얘기 해주는 거니까.”
담담한 어투의 형수에 얘기가 이상하리만큼 시끄러운 이 홀 안에서 더 또렷하게 들려왔다. 어쩌면 형식적인 위로의 얘기일 수 있는 형수의 말을 들으면서도 신이는 작게 코를 훌쩍거렸고 그 훌쩍임을 가리려는 듯 남은 맥주를 조금씩 다 마신다.
그리곤 빈 잔을 형수 앞에 두 손으로 모아 내밀며 배시시 웃고는 입을 열었다.
“....언니.”
“네?”
“저 한 잔 더 마셔도 될까요?”
“그럼요! 이런 날엔 술만큼 좋은 약이 없죠! 자! 이 언니가 한 잔 더 따라줄게요.”
“에이~ 형수님 너무 하시네..”
“네? 김씨는 또 얼마나 마신거야! 내가 술 좀 적당히 마시라고 했지!”
“하하하~ 운전해주는 마누라가 있는데 이런 날 안마시면 언제 마십니까!! 형수가 자꾸 그러시면 저 정말 섭섭합니다!!”
불쑥 들어온 김선배의 입에선 이미 알코올의 쩌든 내가 풀풀 풍겨오고 있었다. 그 냄새에 형수도, 그리고 신이도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찡그리며 몸을 뒤로 빼게 된다.
“그나저나 진짜 넘하시넹! 우리 이쁘니 제수씨를 형수 혼자 독점하셨나!!”
“독점하긴 누가 독점을 해요. 그리고 김씨는 술 취했으면 차에라도 가서 누워요. 피곤한데 술 많이 마시면 더 빨리 취하는 거 몰라요?”
“어라! 지금 형수가 내 걱정 해주는 겨!? 우왕~~ 기분 좋네~~ 하하하하.”
“네네. 제가 걱정해주지 누가 걱정해줘요. 알았으니까. 그만 마시고,... 저 구석에 가서 좀 누워요.”
“푸하~.. 저 안 취했는데요. 누가 취했데요! 누가!?”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그나저나 진짜 섭하네.. 왜 우리 이쁘니 제수씨를 형수 혼자 독점하십니까~!”
“에고고.. 김씨 많이 취했네. 부영씨 얼른 와서 서방님부터 챙겨야지 뭐해.”
“네? 아유.. 이 사림이 또.. 여기서 뭐해요!”
“어!! 이거 놔라!”
“놓긴 뭘 놔! 엄한데 가서 주정부리지 말고 얼른 자리로 돌아와요! 에휴.. 죄송해요 형님.. 이 이가 한선배님이 가신다고 많이 속상했나 봐요.”
“죄송하긴.. 우리가 고맙지.. 얼른 김씨부터 챙겨.”
“신이씨 미안. 이이가 주정이 좀 있어. 이해해줘.”
“...아니에요.”
역시나 진상은 마지막까지 진상이란 생각을 확인시켜주며 김선배는 그렇게 자신의 자리로 끌려가듯 돌아가 버렸다.
예상대로 김선배의 주정이 조금 있긴 했지만 송별회는 무사히 끝이 났다.
아쉬움에 서로를 포옹하는 모습으로 시간을 마무리했고 남은 사람들은 다음 달을 기약하며 자리를 떠나갔다. 나와 신이도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으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한선배와 한선배의 와이프에게 인사를 했으며 한선배에게 한국을 떠나기 전에 식사나 한 번 하자는 말을 뒤로하고 차에 올랐다.
보육원의 방문은 매달 참석했던 내게도 작은 변화를 주었지만 그것보다 신이의 변화가 더 눈에 도드라졌다.
토요일 저녁은 신이만큼 나도 피곤했기에 집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지듯 누워 잠에 취했고, 단 두 잔의 맥주에 알딸딸해진 신이도 마찬가지였다. 정신없이 잠에 빠져 우리 둘은 일요일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에 눈을 비비며 일어날 수 있었다.
“...”
“....배고 파.”
“풋~..크크~”
일어나자마자 대뜸 배부터 고프다는 내 얼굴을 보곤 눈을 비비며 일어나던 신이가 웃음을 짓는다. 어제의 먹먹함에 고기는 제대로 먹지도 않았고 그건 신이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미소를 짓고는 이내 그 먹먹함을 기억하는 지 날 멀뚱히 쳐다보며 양반다리로 앉은 내 다리에 발가락을 원을 그리듯 신이가 엄지손가락으로 문지르다 벌떡 일어난다.
“뭐 먹고 싶어요!?”
“응..응?? 뭐.. 먹지?”
“골뱅이 된장국?”
“골뱅이 된장국? 집에 골뱅이가 없잖아..”
“슈퍼에 가면 널린 게 골뱅이통조림인데. 우선 씻어요. 눈곱도 좀 떼고. 내가 금방 사올게요.”
“응..”
어제 복장 그대로 일어난 신이는 다시 가디건을 몸에 걸치곤 집을 나선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신이의 얼굴빛이 한층 밝아진 듯 느껴졌기에 나도 기분 좋게 일어나 욕실로 가벼운 발걸음을 나서게 된다.
골뱅이 해장국은 언제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소라나 조개를 넣고 끓이는 게 보통인 된장국에 실수로 사온 골뱅이통조림을 보며 난감해 하던 그때의 신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된장국을 떠먹게 된다.
“왜 웃어요?”
“응? 그냥..”
“근데... 보육원에 용품 같은 거 보내도 되요?”
“용품? 무슨 용품?”
“뭐.. 이것저것...”
“상관은 없는데.. 먹거리도 아니고 용품 같은 건 애들한테 다 보내려면 돈이 만만치 않을 텐데..”
“다 보내야 되요?”
“그럼.. 누군 주구 누군 안 주냐?”
“....아~. 그것도 그렇구나..... 생각이 짧았네..”
“혜빈이가 계속 밟히지? 나도 그랬어.. 한동안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게.. 꿈까지 꾸게 되더라고.. 그런데 익숙해져야 돼. 매달 찾아갈 때마다 그런 모습 보면서 매일을 힘들어하면 다시 찾아가고 싶다는 의욕까지도 꺾이게 되더라고.. 아프지만.. 참아야지... 능력이 안 되니까 더 참고 더 노력해야지.. 우리 7~80년 초 세대가 참는 거 하난 무지 잘하잖아.”
“....나보다 당신이 더 많이 변했네요.”
“응? 내가?”
“....네.”
“변하긴.. 그냥 생각하기 싫어서 몸을 막 굴리고 살았던 것뿐인데.. 운동도 열심히 하고.. 뭐.. 이것저것...”
“그럼 도우미는요?”
“....도우미라니?”
“최근에도 자주 갔어요?”
“어딜?......아~~”
신이의 말을 이해할 수 없던 난 그때 박항구와 함께 하며 얘길 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최근이란 단어에 창구의 얼굴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요즘 내가 갈 시간이 있냐? 참나.. 그리고 당신 은근히 뒤끝 장렬이네! 와~...”
“.......”
‘당신도 강한상이란 놈하고 신나게 놀아났잖아!!’ 라고 목까지 차오르던 말을 되삼키며 변명과도 같은 농담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돌싱이지 고자냐!? 건장한 30대 남자가 놀다보면 여자 끼고 놀 수도 있는 거지! 어디 감히 서방님 하시는 일에 왈가왈부를...”
“....”
“그나저나 오늘은 뭐 할까?”
“그냥 집에서 쉴까요?”
“집에서?”
“예.. 나간다고 특별할 것도 없고,, 청소도 좀 하고...”
“어제 그렇게 청소를 하고 또 청소를 하자고?”
“어제에 비하면 여긴 껌! 이죠!”
“껌 같은 소리하네.. 싫어! 오늘은 그냥 뒹굴 거야. 나도 뒹굴 권리가 있다 이 말이야!”
“아~~~ 네~~. 그럼 당신은 뒹굴 거려요. 청소는 제가 할게요.”
“그게 말이냐 밥이냐? 매일 뒹굴 거리라면서 귀찮게 만드는 게 누군데!”
“피~ 누가 귀찮게 했다고.. 청소를 하는데 옆에서 계속 걸리적거리니까 그렇지..”
“와~~~ 안방에 누워있으면 안방 이불 턴다고 그러고! 거실에서 티비라도 좀 보려면 청소기 돌리면서 하나도 못 보게 하면서..”
“내가 언제요! 그리고 남자가 힘쓰는 일 좀 도와주면 안 되나!?”
“하여튼 무조건! 싫어! 청소기만 돌려봐! 아주 차단기부터 내려버릴테니까!”
“.....”
“아~ 배부르니까 눈이 또 감긴다.. 난 낮잠이나 한 방 때릴 란다.”
“그러시든가.”
“....청소기 꺼내지마! 집도 깨끗하구만..”
이런 투정어린 부부싸움이 정말 오랜만이었기에 안방으로 들어가는 내내 입 꼬릴 올리게 된다. 생각해보면 이런 게 현실이고 일반적인 부부의 모습일 텐데.... 묘한 평온함에 침대에 대자로 눕자마자 눈을 감게 되었고 잠시 동안의 행복을 만끽하게 된다.
몇 시간 후면.. 신이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기에 지금 순간을 만끽하며 즐기자는 생각만을 머릿속에 곱씹으며 어제의 신이 모습을 떠올려본다. 신이에게 악이 될 지도 모를 예상치 못했던 보육원이란 곳의 방문이 결코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며 기분 좋게 두 눈을 감는데....
‘위윙윙윙윙~~~~’
거실의 창문부터 조용히 전부 열고는 다짜고짜 청소기부터 돌리는 신이의 행동은 내 그런 기억의 음미에 찬물을 끼얹는 행도이었고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게 된다.
작은 거실 구석까지 청소기를 밀어대는 신이의 행동을 쳐다보며 잔뜩 볼멘 얼굴을 하고 있는데, 신이는 내 표정조차 쳐다보지 않고 엎드려선 텔레비전 다이의 아래까지 청소기헤드를 바꿔 밀어 넣는데. 그 모습에 묘한 갈증을 느끼게 된다.
어제부터 계속 입고 있는 타이트한 청바지와 흰색 티셔츠..
아마도 갈아입기 귀찮아 청소를 다 끝낸 후에 갈아입을 작정인 듯 신이는 그 복장 그대로 무릎 굻고 엎드려 구석의 숨겨진 먼지들까지 뒤집어쓰며 청소를 시작하는데 실룩거리며 좌우를 번갈아 움직이는 동그란 엉덩이와 브래지어에 가려졌지만 중력에 의해 더 커 보이는 흰색의 볼록한 덩어리들을 그리며 더 커 보이는 신이의 가슴을 감상하듯 문턱에 서서 팔짱을 끼고 바라보다가 내 하반신을 내려다보게 된다.
“어제의 감흥은 감흥이고... 이건 이거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천천히 청소에 열중하고 있는 신이의 뒤로 발소리 죽여 다가간다.
청소기의 소음에 내 인기척조차 못 느끼는 듯 여전히 엎드린 그 자세 그대로 낑낑대며 거실 구석까지 움직이는 신이의 바로 뒤로 다가간 난 조심스럽게 입고 있던 팬티를 내리고 더 가까이 걸어간다.
“악!! 무..뭐 하는 거예요!”
신이에게 바짝 다가가선 팔을 둘러 스판 청바지의 후크와 지퍼를 단숨에 풀어버리곤 잘 내려가지 않는 청바지를 있는 힘껏 끌어내리는데. 신이가 깜짝 놀라 엉덩이를 돌려 빼려고 하지만 이미 탐스러운 엉덩이의 한쪽이 내 손에 꽉 움켜 잡혀있었기에 옆으로 쓰러지듯 눕게 된 신이였다.
그런데.. 이 스판 청바지라는 게 이렇게 벗기기가 어려운 지를 처음 알게 된 나였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입은 건지.. 라는 생각을 하며 신이의 바지를 힘으로 끌어내리며 낑낑대는데..
“아악.. 아..아프다고요!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이씨.. 이게 왜..”
“악!!..”
‘퍽!’
“욱...하..하필 거길..”
바동거리며 자기가 벗겠다는 말을 하던 신이의 모습에도 벗기는 건 내 몫이란 듯 힘을 더 주기 시작한 나였는데.. 고통을 못 이기곤 신이가 바동거리다가 무릎으로 내 거시기를 차버렸다.
“어! 괘..괜찮아요?”
“으욱.. 지..진짜... 아파..”
“풋...큭큭큭.. 고거 쌤통이다!”
“진짜 아프다고!! 웃음이 나오냐! 아윽.. 터진 거 아닌가..”
“터져?? 터졌어요?!”
“아윽..”
식은땀까지 흘리게 된 내 모습을 발견한 신이의 얼굴이 웃음기가 싹 사라진 표정으로 다급히 새우처럼 쪼그리고 옆으로 누운 내게 달려왔다.
“아악! 마..만지지 마!”
“가만히 좀 있어 봐요. 괜찮은 가 봐야죠.”
“윽..”
런닝구에 검은색 양말만을 신고 있는.. 그런데 내가 왜 양말은 안 벗었지?.. 라는 생각을 그 와중에 했고, 신이가 고통에 허우적거리던 내 허벅지를 벌리곤 개구리 자세처럼 만들어 내 자지가 괜찮은지 여기저기를 살피는 모습을 보게 된다.
엄청난 고통에 언제 발기를 했냐는 듯 추~욱 쳐져버린 내 자지를 들고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흔들어대는 신이는 급기야 자지를 배꼽 쪽으로 젖히고는 불알을 만지작거린다.
당연히... 자지의 본성대로 욕구를 찾아 위로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
“........”
잠시 동안의 침묵...
누운 개구리처럼 다리를 ㅇ자로 벌린 채 자지를 발기시키는 내 꼴이 우습기도, 창피하다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고통은 정말 사실이었기에 아무 말도 못하고 어이없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는 신이의 시선을 피하고 만 있다.
“참나.. 난 진짜 터진 줄 알았네..”
“.......진짜... 아팠다. 뭐...”
“아픈 사람이!!!... 에휴. 빨리 청소나 도와요.”
“...”
“뭐해요! 일어나요!”
“나.. 진짜 아파...”
“흠.. 아프다고요?”
“...응!”
“진~짜!!! 아프게 해드려요?”
“응? 진짜라니까. 나 진짜... 으으으윽윽!!자..잠깐!!”
기차놀이? 경운기놀이?
이 걸 뭐라고 하더라...
갑자기 신이가 내 두 발목을 잡고는 자지를 발바닥으로 있는 힘껏 짓누르기 시작한다...
“아아악!..타..타임!! 탐모!!! 스탑!!!”
“왜요!? 말짱하구만. 어라!!! 요게 미쳤네.. 아프다면서 더 커지네!!!”
“아악!! 하..하지 마!!!”
“빨랑 일어날래요! 안 일어날래요!”
“아..알았어!! 알았다고!!”
난 그렇게 한 번의 쓰라린 고문을 당하고 나서야.... 다시 팬티를 주워 입게 된다...........
역시나 청소를 끝내야 마음이 평온해지는 여자인 듯 신이는 청소를 다 끝내고서야 욕실로 향하다 말고 축 처진 어깨로 소파에 앉은 날 측은하다는 듯 바라본다.
“나.. 힘들다고.. 또 뭘 시키려고 그러냐..”
“씻..겨 줄까요?”
“응?.. 씻겨 줘?”
“응..”
“..진짜? 정말??”
“.... 먼저 들어가요. 옷 벗고 들어갈게요.”
“진짜지! 오키!! 크크..”
1초맨처럼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런닝구와 팬티를 한꺼번에 벗고는 욕실로 뛰어 들어갔고 이내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샤워기로 적시기 시작한다. 휘파람까지 불며 곧 들어올 신이를 위해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줄기의 온도를 맞추는데.. 신이가 좀처럼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신이야~~~?”
문을 빠끔히 열어 거실의 동향을 살피는데.. 신이가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
불안감이 순간 스쳐지나가는 어쩔 수 없는 본능에 신이의 얼굴을 살피는데.. 통화를 끝낸 신이가 날 쳐다보며 멋쩍은 미소를 보낸다....
“누구야?”
“오늘은.. 혼자 씻어요.”
“뭐? 왜?”
“한상씨에요.. 지금 오라고 하시네요.”
“지금?”
순간 고민을 한다.
신이를 붙잡을지.. 아니면...
“지금 가야 돼?”
“....네.”
“...”
“미안해요.”
사과의 한마디만을 남겨둔 채 신이는 벗던 옷을 다시 입고는 안방으로 걸어간다.
힘으로라도 신이를 막는다고.. 이 게임이란 게 달라질 리도 없었고, 토요일과 일요일.. 이 계약 된 룰을 부탁으로 변경한 내가 신이를 막을 권리란 게 있는 질 다시 생각하게 된다.
과연 이게 권리라는 말이 어울리는지를, 권리라는 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며 냉수로 샤워기를 조절하곤 달아오르는 머리를 그대로 가져다 식히기 시작했다.
대충 몸을 씻고 나온 거실은 방금 전의 신이란 존재의 부제를 너무도 크게 말해주는 듯 고요한 적막감마저 흐르고 있었다...
“어쩐 일이세요? 김선배.”
정말 출근하기 싫은 월요일의 무료함을 단숨에 깨버린 건 한통의 전화였다.
[모임에 관해서 공지할 게 있어서..]
“공지요?”
또 어이없는 이유를 가져다 붙여선 자기 위주로 바꾸려는 김선배의 통화일거란 생각에 벌써부터 짜증이 밀려왔다. 하긴.. 호랑이가 없어지면 여우가 날뛴다고 하더니.. 한선배가 떠날 이 마당에 김선배가 이 모임의 주도자 몫을 하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런 봉사모임에 주도자나 리더란 게 어울리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무슨 공지요?”
[오늘부로 해산해야 될 거 같다.]
“해산이라뇨!? 갑자기 무슨... 잠시 만요.”
사무실 안에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직원들의 눈치를 살피며 서둘러 사무실에서 나와 길게 한숨을 들이쉰 후 또박또박 김선배의 말을 물어보려 마음을 다진다.
“이것보세요. 진짜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한선배님이 자리를 비우신다고 해도 김선배가 마음대로 결정할 일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이 모임에 주최가 왜 김선배인것처럼 구시는데요!? 차라리 형수님한테 리더자리란 걸 넘겨..”
[위에서 무슨 공문이 내려왔다나 봐.]
“네??”
[위생상태 불량, 보육 상태 불량... 또 뭐더라... 하여튼 급하게 보육원 문을 닫아야 된다고 하더라고. 뭔 소린지 잘 몰라서 오늘 저녁에 보육원으로 찾아가기로 했는데.. 원장님도 한숨만 쉬면서 벌써 결정이 난 거라고만 말하시더라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갑자기 머릿속에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런 점검을 언제 했어요? 그저께 갔을 땐 그런 말 못 들었는데.”
[몰라.. 갑자기 암행 감산가 뭔가 나왔다는데..]
“그럼... 아이들은요? 거기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건데요!?”
[원장님 말로는 다 흩어질 거라고 하던데.. 보통은 집행기간을 좀 주는데.. 오늘 바로 분산처리 한다고 하더라고..]
“분산... 애들이 물건입니까!”
[나도 잘 몰라.. 그냥 그렇다고만 전화를 받은 건지...]
“알겠습니다. 저도 더 알아볼게요.”
[알아보다니? 우리가 알아본다고 위에서 공문까지 보낸 일을 물릴 수 있겠냐? 그냥... 보육원이 없어지니까 모임을 해산하는 거지.]
“.....”
[공씨하고 차씨한테는 네가 전화 좀 해줘라.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나도 정신이 하나도 없다..]
“....우선 끊어 봐요.”
“이.. 개새......”
통화를 끊자마자 전화번호를 찾아 누른다..
[띠리리링~~~~ 띠리리리링~~~~~~~ 띠리리리리리링~~~]
신호만 울릴 뿐.. 통화는 연결이 되질 않는다.
“이 개새끼야!!!!!”
‘꽝!!!!!!!!’
소화전이 찌그러질 정도로 발로 걷어차곤.. 분노를 참지 못하고 사무실로 돌아가 양복 상의에 있는 자동차 키를 꺼낸다.
--계속--
즐건 불금들 보내세요.
욕은 하지마시고.. 야설을 야설일뿐입죠.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기.. 한선배가 오늘을 마지막으로 해외출장을 간다고 해서... 송별회를 하려고 하는데....”
“송별회요?”
“응.. 송별회라고 해봐야 고기나 좀 먹으면서 수다나 떠는 게 다야. 몇 번 참석해봤는데 다 차를 가지고 와서 술도 거의 못 먹거든.”
“....”
“어떻게 할까? 그냥 집으로 갈까?”
“가요. 언젠 제 의사가 중요했어요?”
“...”
“혜빈이는... 누가 데리고 간데요?”
“응? 혜빈이?... 글쎄.. 원장님이 좋은 분들이라고 하셨으니까. 이번엔 걱정 없을 거야..”
“.....이번에? 그럼 벌써 입양을 갔었다고요?”
“......”
“입양을 간 아이가 왜 방금 전에 갔던 보육원에 있어요?”
“그게.. 많이 복잡해.. 사람들마다 각각 사정이 다 있잖아. 정말 아이가 필요해서 데리고 갔는데.. 막상 데리고 가선 적응을 못 하는 집도 있고.. 아이가 마음을 열어주지 않아서 힘들어하는 부모들도 있고... 그래서 다시 돌려보내는 일도 있다고 하더라고..”
“그게.. 그게 말이 되요?”
“응??”
“한 번 거둔 자식을.. 자기 사정이 있다고 다시 돌려보내다니요? 그럼 혜빈이.. 저 어린 것이 한 번도 아니고....”
“......”
“차 돌려요.”
“....뭐?”
“차 돌리라고요!!”
갑자기 신이가 소리를 버럭 지른다.
처음으로..
다시 신이를 만나고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화를 내며 이렇게 큰 소리를 지른 건 처음이었다.
“신이야..”
“가서 우리가 데리고 와요! 그럼 되잖아요!”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야. 그리고 지금은 당신 감정이 격해.. 억!!”
‘끼이익!!!!!’
죽을 뻔 했다.
아니.. 사고가 날 뻔했다.
신이가 갑자기 자신의 방향으로 핸들을 잡고 흔들었기에 중심을 잃고 차가 비틀거렸으며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차가 급정거 하게 된다.
“미..미쳤어!!”
“돌아가자고요!”
“신이야!”
“저 어린 것을.. 어떻게.....”
신이가 울먹인다.
“사람이라면.. 사람이라면 어떻게 품에 안은 아이를 버릴 생각을 해요? 그게 사람이에요!?”
만난이후 처음으로 신이가 서럽게 울며 감정을 온 얼굴로 드러낸다.
내 질타와 비아냥거림에도 이런 표정을 짓지 않던 신이가 나도 그 사람들과 만찬가지처럼 노려보듯 쳐다봤고 노려보는 그 두 눈으로 소리 없는 한 줄기의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우린... 입양 못 해...”
“...왜요?”
“입양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당신 마음.. 나도 충분히 이해하는데.. 입양이라는 것도 절차가 있고 법이 있더라.... 이혼한.... 제대로 된 가정이 아닌 우리한테 아이를 줄만큼 법이 호락호락하지 않더라고....”
“.........”
“혜빈이는.. 좋은 부모 만나서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특히나 다시 돌아온 아이는.. 심사 때 더 철저히 본다고 하더라고.. 너무... 걱정하지 마.”
“차라리.. 봉사 같은 걸 하지 마요....”
“신이야. 그 봉사라는 게.... 그래서 더 해야 돼.”
“....”
“나도.. 아이들과 헤어질 때마다 가슴이 송곳으로 찢는 듯 아픈데.. 그런 고통 때문에 안 간다면.. 아이들이 덜 괴로워할까? 자기만족이라고 그냥 한 달에 한 두 번 가는 게 아니야... 우리마저 안가면.. 우리가 저 보육원을 후원하지 않는다면 국가보조금만으로 보육원이 제대로 운영이 될까? 나도 처음 저 보육원을 갔다가.. 후회를 엄청 많이 했어. 너랑.... 헤어지고 나서 핸드폰을 정리하다가 이게 뭔가?..하고.. 그냥 끊어야지 라고 생각했다가.. 아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혼이나 치유하자는 생각으로 갔었는데.. 막상 가보니까.. 나올 땐 더 괴롭고 힘들더라.”
“치유요?”
“응.. 사실 엉뚱한 생각까지 했어.. 우리가 헤어진 게.. 아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 일이 아니더라.. 아이들도 알 건 다 알고.. 그래서 이런 뜨내기 같은 방문자한테는 정도 잘 안주려고 하더라고.. 그냥 놀아주는 아저씨?........ 그런데도 막상 나올 땐... 다시는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눈에 밟히더라....”
“.....”
“지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쁜 새끼가.. 동정심이랍시고.. 그런데 말이야.. 말은 안 해도 조용히 와서 안아주는 혜빈이를 보고 있으면.. 내가 동정을 받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나도 알아봤어. 입양을 할 수 있는지.. 비록 내 자식이 아니지만 서로 배워가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입양절차를 알아보고.. 입양을 할 수 있는 지 알아보고..”
“....그런데요?”
“이 좆같은 대한민국은 뭔 놈의 조건이 그렇게 많고 까다로운 지 처음 알았지. 가족관계증명서.. 건강진단서.. 입양적격추천서.. 자녀양육계획서.... 아니. 서류가 문제가 아니더라... 독신이라도 입양을 할 순 있지만.. 아이를 돌볼 수 있는 능력이란 게...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놈이란 걸 알았다고 해야 하나?.. 30년 넘게 살아오면서 다른 사람을 건사할 능력이란 게 없다는 걸.. 말이야. 거기다가 이혼전적도 마이너스가 되더라고.. 그리고 재산도.. 양자를 부양하기에 충분한 재산이 있어야 한다는 자격조건이 있는데..”
“그걸.. 다 알아봤다고요?”
“응. 가족사진까지 제출해야 된다는 말을 듣고 웃기도 했다니까...크크크..”
말을 하면서도 다 잊었다 생각했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게 된 나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할 수 일만 최선을.. 마음을 담아서 하는 게 가장 좋은 게 아닐까?”
“할 수 있는 일이라뇨?”
“깨끗하게 씻겨주고,, 빨래해주고, 놀아주고.. 매주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건 오버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그렇게 매주 가면.. 정말 범죄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범죄자라뇨?”
“납치!.. 예쁜 혜빈이를 납치할 지도 모르잖아. 당신도 방금 살인미수였어! 운전 방해는 고의적인 살인 미수라고...크~”
“....”
“당신이 그 정돈데.. 난 어떻겠냐.. 하지만 다 그렇게 살잖아.. 나도 그렇게 살아야지.. 참고.. 법 잘 지키고.. 쥐 죽은 듯이.. 그리고 열심히....”
“....다..시.... 다시 결혼해서.. 다른 좋은 여자랑 결혼해서.. 자식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왜 안했겠냐! 나도 남자고 사람인데!”
“........”
“그런데.. 사람들이 말하잖아 결혼생활이 행복했던 사람일수록 재혼도 빨리 한다고.. 반대로 불행했던 사람은.. 결혼이라는 말만 나와도 진절머리를 친다고.. 그런데 나 같은 놈은 어떨까?”
“나..같은 놈이라뇨?”
“결혼 생활은 정말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이혼을 했잖아..... 조금만 더 참을 걸, 당신이 왜 그렇게 노이로제 걸린 여자처럼.. 꼭 미친 여자처럼 행동했던 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겠냐고... 생각부터 했으면 참을 수 있었을 텐데.. 라는 후회를 몇 번이나..”
“그만..해요.”
“...”
“어차피 지난 일이에요. 이미 떨어져서 뭉그러진 감은.. 주워 담는다고 원상태로 돌려놓을 수 없잖아요.”
신이의 말에 낮에 봤던 감나무 아래의 풍경을 머릿속에 떠올렸고 나무에서 떨어진 감들을 쓸어버리며 아깝다는 생각만을 했었는데.. 신이의 기분만큼이나 차안은 다시 고요함으로 채워져 간간히 차안에 울려 퍼진 요철의 둔탁함만이 귀를 간질인다.
차를 돌려 그냥 집으로 방향을 바꿀까를 몇 번이나 고민하게 되지만 이대로 집에 간다 해도 신이의 기분이 좋아질리 없다는 생각에 결국 한선배의 송별회가 있을 한우식당으로 직진하게 된다. 김선배란 놈의 존재가 마음속에 계속 걸림돌처럼 느껴지긴 했지만 형수도 있는 마당에 무슨 짓을 어떻게 할 수 있겠냐는 확신과 한선배에게 느꼈던 인간애를 신이도 느낄 수 있도록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생각에 더 이상의 잡념을 버리고 운전에만 집중을 한다.
신이와 얘길 나누며 천천히 운전을 했기에 도착한 한우고깃집 안은 이미 모임의 인원들로 시끌벅적하게 변해 있었고 뒤늦게 합류하게 된 우린 가장 가장자리에 자리를 트고 앉게 되었다. 차안에서 망설이던 신이도 보육원을 나오며 마지막 위로를 했던 한선배에 형수의 자상함과 그 한선배가 해외출장을 가는 오늘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내말에 힘겹게 차에서 내려 내 뒤를 따라왔다.
여느 모임들과 마찬가지로 네 커플인 8명의 남녀가 둘러앉은 테이블은 공통된 주제로의 대화가 아닌 서로간의 짝을 지은 대화가 주를 이루는 듯 보였다. 나와 신이가 도착한 모습을 조금 늦게 확인한 김선배가 나서기 좋아하는 버릇처럼 맥주로 보이는 액체가 담긴 컵을 들고 건배를 제안한다.
“자자~ 이제 다 모인 거 같으니까. 우리 건배해야죠! 그동안 가장 맏형으로서 저희를 보듬어주신 한선배의 작별과 오지에서의 건강을 위해서~~ 건배!”
“지화자~~ 건배~~”
침울함에 빠져 힘겹게 든 잔을 애써 더 들어 오리면서도 내키지 않은 듯 굳은 표정을 짓는 사람은 신이 혼자였다.
당연한 모습이었지만.. 그런 신이의 모습은 마지막 건배를 크게 외친 김선배와 그리고 그 건배에 호응하던 우리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난 팔꿈치로 신이의 팔뚝을 ‘툭’하고 살짝 밀친다.
“하하하~ 우리 제수씨가 아직 이 분위기에 적응을 못 하시는데!!! 이럴 때일수록 우리들이라도 잘 놀아야죠!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
“저기요...”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김선배의 얘길 자르고 들어온다.
한선배였다.
“우리가 만난 지 벌써 5년이 넘은 분들도 계시고.. 적게는 1년도 채 안된 분들도 계시지만.. 모든 분들이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이 자리엔 없지만 공구진씨하고 오씨.. 그리고 김씨의 제수씨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기 위해 시작 한 모임이었는데.. 어느새 스물 한 쌍이 넘는 커플들이 동참을 했다가 사라지길 반복하게 되었네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좋은 취지로 시작된 모임이 많이 변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남아주신 분들에겐 정말 고마워하고 있다는 게 제 마음입니다. 그리고... 저희 부부가 떠나더라도... 이 모임은 계속 유지해 주셨으면 정말..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아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몇 안 될지도 모를 좋은 추억이 될 수 있게 말이죠.”
한선배는 잠시 목을 축이며 호흡을 가다듬고는 다시 연설과도 같은 소감을 시작하는데.. 한선배의 형수가 조용히 우리에게 다가와 앉아선 신이에게 맥주잔을 건넨다.
술을 잘 못 마시는 신이는 건네받은 맥주잔을 멀뚱히 바라보기만 하는데.. 형수가 급구 다시 목을 축이라 권했고 결국 작은 목 넘김으로 형수의 권유에 응하게 된다.
“오늘 많이 힘들었죠?”
“...아니에요.”
“아니긴..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구먼. 한동안은 혜빈이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을 거예요. 그래서 더 힘들 테고.. 아이 때문에 이혼했다고 하던데...”
“.....”
“주제넘을지 모르겠지만.. 그나마 조금이라도 더 살아온 이 아줌마의 주제넘은 푸념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우리도 아이가 없어요. 태규씨랑 다르게 저흰 제가 문제가 있어서 아이를 못 가졌는데.. 뭐 운명이라고 받아드리고 같이 열심히 살고 있죠.”
“...”
“사실.. 6년 전 그 보육원에서 한 아이를 데리고 왔었는데..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린 건지...”
“그럼....”
“에고고~.. 제가 약간 취했나보네요. 괜한 헛소리만 늘어놓고..”
“아니에요.”
“그런데 신이씨.. 신이씨랑 태규씨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믿음이라는 얘길 해주고 싶이서 이렇게 주제넘게 왔어요. 이혼을 하고 다시 이곳까지 같이 동행을 한 이유를 전 모르지만.. 만약에, 만약에라도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 잊지 못하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만나기 시작한 거라면.. 믿으세요. 태규씨란 남자 몇 개월밖에 못 봤지만 진국이라는 걸 저도 알 수 있을 정도니까. 아마 신이씨도 너무 잘 알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비밀인데.. 저이랑 나도 한 번 이혼했었거든요. 그러니까 경험자로서 얘기 해주는 거니까.”
담담한 어투의 형수에 얘기가 이상하리만큼 시끄러운 이 홀 안에서 더 또렷하게 들려왔다. 어쩌면 형식적인 위로의 얘기일 수 있는 형수의 말을 들으면서도 신이는 작게 코를 훌쩍거렸고 그 훌쩍임을 가리려는 듯 남은 맥주를 조금씩 다 마신다.
그리곤 빈 잔을 형수 앞에 두 손으로 모아 내밀며 배시시 웃고는 입을 열었다.
“....언니.”
“네?”
“저 한 잔 더 마셔도 될까요?”
“그럼요! 이런 날엔 술만큼 좋은 약이 없죠! 자! 이 언니가 한 잔 더 따라줄게요.”
“에이~ 형수님 너무 하시네..”
“네? 김씨는 또 얼마나 마신거야! 내가 술 좀 적당히 마시라고 했지!”
“하하하~ 운전해주는 마누라가 있는데 이런 날 안마시면 언제 마십니까!! 형수가 자꾸 그러시면 저 정말 섭섭합니다!!”
불쑥 들어온 김선배의 입에선 이미 알코올의 쩌든 내가 풀풀 풍겨오고 있었다. 그 냄새에 형수도, 그리고 신이도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찡그리며 몸을 뒤로 빼게 된다.
“그나저나 진짜 넘하시넹! 우리 이쁘니 제수씨를 형수 혼자 독점하셨나!!”
“독점하긴 누가 독점을 해요. 그리고 김씨는 술 취했으면 차에라도 가서 누워요. 피곤한데 술 많이 마시면 더 빨리 취하는 거 몰라요?”
“어라! 지금 형수가 내 걱정 해주는 겨!? 우왕~~ 기분 좋네~~ 하하하하.”
“네네. 제가 걱정해주지 누가 걱정해줘요. 알았으니까. 그만 마시고,... 저 구석에 가서 좀 누워요.”
“푸하~.. 저 안 취했는데요. 누가 취했데요! 누가!?”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그나저나 진짜 섭하네.. 왜 우리 이쁘니 제수씨를 형수 혼자 독점하십니까~!”
“에고고.. 김씨 많이 취했네. 부영씨 얼른 와서 서방님부터 챙겨야지 뭐해.”
“네? 아유.. 이 사림이 또.. 여기서 뭐해요!”
“어!! 이거 놔라!”
“놓긴 뭘 놔! 엄한데 가서 주정부리지 말고 얼른 자리로 돌아와요! 에휴.. 죄송해요 형님.. 이 이가 한선배님이 가신다고 많이 속상했나 봐요.”
“죄송하긴.. 우리가 고맙지.. 얼른 김씨부터 챙겨.”
“신이씨 미안. 이이가 주정이 좀 있어. 이해해줘.”
“...아니에요.”
역시나 진상은 마지막까지 진상이란 생각을 확인시켜주며 김선배는 그렇게 자신의 자리로 끌려가듯 돌아가 버렸다.
예상대로 김선배의 주정이 조금 있긴 했지만 송별회는 무사히 끝이 났다.
아쉬움에 서로를 포옹하는 모습으로 시간을 마무리했고 남은 사람들은 다음 달을 기약하며 자리를 떠나갔다. 나와 신이도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으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한선배와 한선배의 와이프에게 인사를 했으며 한선배에게 한국을 떠나기 전에 식사나 한 번 하자는 말을 뒤로하고 차에 올랐다.
보육원의 방문은 매달 참석했던 내게도 작은 변화를 주었지만 그것보다 신이의 변화가 더 눈에 도드라졌다.
토요일 저녁은 신이만큼 나도 피곤했기에 집에 들어오자마자 쓰러지듯 누워 잠에 취했고, 단 두 잔의 맥주에 알딸딸해진 신이도 마찬가지였다. 정신없이 잠에 빠져 우리 둘은 일요일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에 눈을 비비며 일어날 수 있었다.
“...”
“....배고 파.”
“풋~..크크~”
일어나자마자 대뜸 배부터 고프다는 내 얼굴을 보곤 눈을 비비며 일어나던 신이가 웃음을 짓는다. 어제의 먹먹함에 고기는 제대로 먹지도 않았고 그건 신이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미소를 짓고는 이내 그 먹먹함을 기억하는 지 날 멀뚱히 쳐다보며 양반다리로 앉은 내 다리에 발가락을 원을 그리듯 신이가 엄지손가락으로 문지르다 벌떡 일어난다.
“뭐 먹고 싶어요!?”
“응..응?? 뭐.. 먹지?”
“골뱅이 된장국?”
“골뱅이 된장국? 집에 골뱅이가 없잖아..”
“슈퍼에 가면 널린 게 골뱅이통조림인데. 우선 씻어요. 눈곱도 좀 떼고. 내가 금방 사올게요.”
“응..”
어제 복장 그대로 일어난 신이는 다시 가디건을 몸에 걸치곤 집을 나선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신이의 얼굴빛이 한층 밝아진 듯 느껴졌기에 나도 기분 좋게 일어나 욕실로 가벼운 발걸음을 나서게 된다.
골뱅이 해장국은 언제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소라나 조개를 넣고 끓이는 게 보통인 된장국에 실수로 사온 골뱅이통조림을 보며 난감해 하던 그때의 신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된장국을 떠먹게 된다.
“왜 웃어요?”
“응? 그냥..”
“근데... 보육원에 용품 같은 거 보내도 되요?”
“용품? 무슨 용품?”
“뭐.. 이것저것...”
“상관은 없는데.. 먹거리도 아니고 용품 같은 건 애들한테 다 보내려면 돈이 만만치 않을 텐데..”
“다 보내야 되요?”
“그럼.. 누군 주구 누군 안 주냐?”
“....아~. 그것도 그렇구나..... 생각이 짧았네..”
“혜빈이가 계속 밟히지? 나도 그랬어.. 한동안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게.. 꿈까지 꾸게 되더라고.. 그런데 익숙해져야 돼. 매달 찾아갈 때마다 그런 모습 보면서 매일을 힘들어하면 다시 찾아가고 싶다는 의욕까지도 꺾이게 되더라고.. 아프지만.. 참아야지... 능력이 안 되니까 더 참고 더 노력해야지.. 우리 7~80년 초 세대가 참는 거 하난 무지 잘하잖아.”
“....나보다 당신이 더 많이 변했네요.”
“응? 내가?”
“....네.”
“변하긴.. 그냥 생각하기 싫어서 몸을 막 굴리고 살았던 것뿐인데.. 운동도 열심히 하고.. 뭐.. 이것저것...”
“그럼 도우미는요?”
“....도우미라니?”
“최근에도 자주 갔어요?”
“어딜?......아~~”
신이의 말을 이해할 수 없던 난 그때 박항구와 함께 하며 얘길 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최근이란 단어에 창구의 얼굴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요즘 내가 갈 시간이 있냐? 참나.. 그리고 당신 은근히 뒤끝 장렬이네! 와~...”
“.......”
‘당신도 강한상이란 놈하고 신나게 놀아났잖아!!’ 라고 목까지 차오르던 말을 되삼키며 변명과도 같은 농담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돌싱이지 고자냐!? 건장한 30대 남자가 놀다보면 여자 끼고 놀 수도 있는 거지! 어디 감히 서방님 하시는 일에 왈가왈부를...”
“....”
“그나저나 오늘은 뭐 할까?”
“그냥 집에서 쉴까요?”
“집에서?”
“예.. 나간다고 특별할 것도 없고,, 청소도 좀 하고...”
“어제 그렇게 청소를 하고 또 청소를 하자고?”
“어제에 비하면 여긴 껌! 이죠!”
“껌 같은 소리하네.. 싫어! 오늘은 그냥 뒹굴 거야. 나도 뒹굴 권리가 있다 이 말이야!”
“아~~~ 네~~. 그럼 당신은 뒹굴 거려요. 청소는 제가 할게요.”
“그게 말이냐 밥이냐? 매일 뒹굴 거리라면서 귀찮게 만드는 게 누군데!”
“피~ 누가 귀찮게 했다고.. 청소를 하는데 옆에서 계속 걸리적거리니까 그렇지..”
“와~~~ 안방에 누워있으면 안방 이불 턴다고 그러고! 거실에서 티비라도 좀 보려면 청소기 돌리면서 하나도 못 보게 하면서..”
“내가 언제요! 그리고 남자가 힘쓰는 일 좀 도와주면 안 되나!?”
“하여튼 무조건! 싫어! 청소기만 돌려봐! 아주 차단기부터 내려버릴테니까!”
“.....”
“아~ 배부르니까 눈이 또 감긴다.. 난 낮잠이나 한 방 때릴 란다.”
“그러시든가.”
“....청소기 꺼내지마! 집도 깨끗하구만..”
이런 투정어린 부부싸움이 정말 오랜만이었기에 안방으로 들어가는 내내 입 꼬릴 올리게 된다. 생각해보면 이런 게 현실이고 일반적인 부부의 모습일 텐데.... 묘한 평온함에 침대에 대자로 눕자마자 눈을 감게 되었고 잠시 동안의 행복을 만끽하게 된다.
몇 시간 후면.. 신이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기에 지금 순간을 만끽하며 즐기자는 생각만을 머릿속에 곱씹으며 어제의 신이 모습을 떠올려본다. 신이에게 악이 될 지도 모를 예상치 못했던 보육원이란 곳의 방문이 결코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며 기분 좋게 두 눈을 감는데....
‘위윙윙윙윙~~~~’
거실의 창문부터 조용히 전부 열고는 다짜고짜 청소기부터 돌리는 신이의 행동은 내 그런 기억의 음미에 찬물을 끼얹는 행도이었고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게 된다.
작은 거실 구석까지 청소기를 밀어대는 신이의 행동을 쳐다보며 잔뜩 볼멘 얼굴을 하고 있는데, 신이는 내 표정조차 쳐다보지 않고 엎드려선 텔레비전 다이의 아래까지 청소기헤드를 바꿔 밀어 넣는데. 그 모습에 묘한 갈증을 느끼게 된다.
어제부터 계속 입고 있는 타이트한 청바지와 흰색 티셔츠..
아마도 갈아입기 귀찮아 청소를 다 끝낸 후에 갈아입을 작정인 듯 신이는 그 복장 그대로 무릎 굻고 엎드려 구석의 숨겨진 먼지들까지 뒤집어쓰며 청소를 시작하는데 실룩거리며 좌우를 번갈아 움직이는 동그란 엉덩이와 브래지어에 가려졌지만 중력에 의해 더 커 보이는 흰색의 볼록한 덩어리들을 그리며 더 커 보이는 신이의 가슴을 감상하듯 문턱에 서서 팔짱을 끼고 바라보다가 내 하반신을 내려다보게 된다.
“어제의 감흥은 감흥이고... 이건 이거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천천히 청소에 열중하고 있는 신이의 뒤로 발소리 죽여 다가간다.
청소기의 소음에 내 인기척조차 못 느끼는 듯 여전히 엎드린 그 자세 그대로 낑낑대며 거실 구석까지 움직이는 신이의 바로 뒤로 다가간 난 조심스럽게 입고 있던 팬티를 내리고 더 가까이 걸어간다.
“악!! 무..뭐 하는 거예요!”
신이에게 바짝 다가가선 팔을 둘러 스판 청바지의 후크와 지퍼를 단숨에 풀어버리곤 잘 내려가지 않는 청바지를 있는 힘껏 끌어내리는데. 신이가 깜짝 놀라 엉덩이를 돌려 빼려고 하지만 이미 탐스러운 엉덩이의 한쪽이 내 손에 꽉 움켜 잡혀있었기에 옆으로 쓰러지듯 눕게 된 신이였다.
그런데.. 이 스판 청바지라는 게 이렇게 벗기기가 어려운 지를 처음 알게 된 나였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입은 건지.. 라는 생각을 하며 신이의 바지를 힘으로 끌어내리며 낑낑대는데..
“아악.. 아..아프다고요!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이씨.. 이게 왜..”
“악!!..”
‘퍽!’
“욱...하..하필 거길..”
바동거리며 자기가 벗겠다는 말을 하던 신이의 모습에도 벗기는 건 내 몫이란 듯 힘을 더 주기 시작한 나였는데.. 고통을 못 이기곤 신이가 바동거리다가 무릎으로 내 거시기를 차버렸다.
“어! 괘..괜찮아요?”
“으욱.. 지..진짜... 아파..”
“풋...큭큭큭.. 고거 쌤통이다!”
“진짜 아프다고!! 웃음이 나오냐! 아윽.. 터진 거 아닌가..”
“터져?? 터졌어요?!”
“아윽..”
식은땀까지 흘리게 된 내 모습을 발견한 신이의 얼굴이 웃음기가 싹 사라진 표정으로 다급히 새우처럼 쪼그리고 옆으로 누운 내게 달려왔다.
“아악! 마..만지지 마!”
“가만히 좀 있어 봐요. 괜찮은 가 봐야죠.”
“윽..”
런닝구에 검은색 양말만을 신고 있는.. 그런데 내가 왜 양말은 안 벗었지?.. 라는 생각을 그 와중에 했고, 신이가 고통에 허우적거리던 내 허벅지를 벌리곤 개구리 자세처럼 만들어 내 자지가 괜찮은지 여기저기를 살피는 모습을 보게 된다.
엄청난 고통에 언제 발기를 했냐는 듯 추~욱 쳐져버린 내 자지를 들고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흔들어대는 신이는 급기야 자지를 배꼽 쪽으로 젖히고는 불알을 만지작거린다.
당연히... 자지의 본성대로 욕구를 찾아 위로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
“........”
잠시 동안의 침묵...
누운 개구리처럼 다리를 ㅇ자로 벌린 채 자지를 발기시키는 내 꼴이 우습기도, 창피하다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고통은 정말 사실이었기에 아무 말도 못하고 어이없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는 신이의 시선을 피하고 만 있다.
“참나.. 난 진짜 터진 줄 알았네..”
“.......진짜... 아팠다. 뭐...”
“아픈 사람이!!!... 에휴. 빨리 청소나 도와요.”
“...”
“뭐해요! 일어나요!”
“나.. 진짜 아파...”
“흠.. 아프다고요?”
“...응!”
“진~짜!!! 아프게 해드려요?”
“응? 진짜라니까. 나 진짜... 으으으윽윽!!자..잠깐!!”
기차놀이? 경운기놀이?
이 걸 뭐라고 하더라...
갑자기 신이가 내 두 발목을 잡고는 자지를 발바닥으로 있는 힘껏 짓누르기 시작한다...
“아아악!..타..타임!! 탐모!!! 스탑!!!”
“왜요!? 말짱하구만. 어라!!! 요게 미쳤네.. 아프다면서 더 커지네!!!”
“아악!! 하..하지 마!!!”
“빨랑 일어날래요! 안 일어날래요!”
“아..알았어!! 알았다고!!”
난 그렇게 한 번의 쓰라린 고문을 당하고 나서야.... 다시 팬티를 주워 입게 된다...........
역시나 청소를 끝내야 마음이 평온해지는 여자인 듯 신이는 청소를 다 끝내고서야 욕실로 향하다 말고 축 처진 어깨로 소파에 앉은 날 측은하다는 듯 바라본다.
“나.. 힘들다고.. 또 뭘 시키려고 그러냐..”
“씻..겨 줄까요?”
“응?.. 씻겨 줘?”
“응..”
“..진짜? 정말??”
“.... 먼저 들어가요. 옷 벗고 들어갈게요.”
“진짜지! 오키!! 크크..”
1초맨처럼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런닝구와 팬티를 한꺼번에 벗고는 욕실로 뛰어 들어갔고 이내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샤워기로 적시기 시작한다. 휘파람까지 불며 곧 들어올 신이를 위해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줄기의 온도를 맞추는데.. 신이가 좀처럼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신이야~~~?”
문을 빠끔히 열어 거실의 동향을 살피는데.. 신이가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
불안감이 순간 스쳐지나가는 어쩔 수 없는 본능에 신이의 얼굴을 살피는데.. 통화를 끝낸 신이가 날 쳐다보며 멋쩍은 미소를 보낸다....
“누구야?”
“오늘은.. 혼자 씻어요.”
“뭐? 왜?”
“한상씨에요.. 지금 오라고 하시네요.”
“지금?”
순간 고민을 한다.
신이를 붙잡을지.. 아니면...
“지금 가야 돼?”
“....네.”
“...”
“미안해요.”
사과의 한마디만을 남겨둔 채 신이는 벗던 옷을 다시 입고는 안방으로 걸어간다.
힘으로라도 신이를 막는다고.. 이 게임이란 게 달라질 리도 없었고, 토요일과 일요일.. 이 계약 된 룰을 부탁으로 변경한 내가 신이를 막을 권리란 게 있는 질 다시 생각하게 된다.
과연 이게 권리라는 말이 어울리는지를, 권리라는 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며 냉수로 샤워기를 조절하곤 달아오르는 머리를 그대로 가져다 식히기 시작했다.
대충 몸을 씻고 나온 거실은 방금 전의 신이란 존재의 부제를 너무도 크게 말해주는 듯 고요한 적막감마저 흐르고 있었다...
“어쩐 일이세요? 김선배.”
정말 출근하기 싫은 월요일의 무료함을 단숨에 깨버린 건 한통의 전화였다.
[모임에 관해서 공지할 게 있어서..]
“공지요?”
또 어이없는 이유를 가져다 붙여선 자기 위주로 바꾸려는 김선배의 통화일거란 생각에 벌써부터 짜증이 밀려왔다. 하긴.. 호랑이가 없어지면 여우가 날뛴다고 하더니.. 한선배가 떠날 이 마당에 김선배가 이 모임의 주도자 몫을 하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런 봉사모임에 주도자나 리더란 게 어울리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무슨 공지요?”
[오늘부로 해산해야 될 거 같다.]
“해산이라뇨!? 갑자기 무슨... 잠시 만요.”
사무실 안에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직원들의 눈치를 살피며 서둘러 사무실에서 나와 길게 한숨을 들이쉰 후 또박또박 김선배의 말을 물어보려 마음을 다진다.
“이것보세요. 진짜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아무리 한선배님이 자리를 비우신다고 해도 김선배가 마음대로 결정할 일이 아니잖아요. 그리고! 이 모임에 주최가 왜 김선배인것처럼 구시는데요!? 차라리 형수님한테 리더자리란 걸 넘겨..”
[위에서 무슨 공문이 내려왔다나 봐.]
“네??”
[위생상태 불량, 보육 상태 불량... 또 뭐더라... 하여튼 급하게 보육원 문을 닫아야 된다고 하더라고. 뭔 소린지 잘 몰라서 오늘 저녁에 보육원으로 찾아가기로 했는데.. 원장님도 한숨만 쉬면서 벌써 결정이 난 거라고만 말하시더라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갑자기 머릿속에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런 점검을 언제 했어요? 그저께 갔을 땐 그런 말 못 들었는데.”
[몰라.. 갑자기 암행 감산가 뭔가 나왔다는데..]
“그럼... 아이들은요? 거기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 건데요!?”
[원장님 말로는 다 흩어질 거라고 하던데.. 보통은 집행기간을 좀 주는데.. 오늘 바로 분산처리 한다고 하더라고..]
“분산... 애들이 물건입니까!”
[나도 잘 몰라.. 그냥 그렇다고만 전화를 받은 건지...]
“알겠습니다. 저도 더 알아볼게요.”
[알아보다니? 우리가 알아본다고 위에서 공문까지 보낸 일을 물릴 수 있겠냐? 그냥... 보육원이 없어지니까 모임을 해산하는 거지.]
“.....”
[공씨하고 차씨한테는 네가 전화 좀 해줘라.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나도 정신이 하나도 없다..]
“....우선 끊어 봐요.”
“이.. 개새......”
통화를 끊자마자 전화번호를 찾아 누른다..
[띠리리링~~~~ 띠리리리링~~~~~~~ 띠리리리리리링~~~]
신호만 울릴 뿐.. 통화는 연결이 되질 않는다.
“이 개새끼야!!!!!”
‘꽝!!!!!!!!’
소화전이 찌그러질 정도로 발로 걷어차곤.. 분노를 참지 못하고 사무실로 돌아가 양복 상의에 있는 자동차 키를 꺼낸다.
--계속--
즐건 불금들 보내세요.
욕은 하지마시고.. 야설을 야설일뿐입죠.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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