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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2:36 912회 0건
늦어서 죄송합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오늘은 야한 장면이 없습니다.(__)a. 또 죄송합니다.ㅋ
내용의 흐름상 한 부분이긴 하지만.. 무거운 주제가 싫으시다는 분들은 다음편으로 이어지는 내용에도 이번편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을 할 예정이니 그냥 넘기셔도 무관할거라 생각합니다.


19..


“저기.....”
“네?”
“등산할 건데 그러고 가게?”
“등산이요?”

앞섬이 교차하는 붉은 색 와인 블라우스에 무광의 앞트임 회색 스커트로 한 것 멋을 낸 신이를 보며 조금은 툭명스럽고 어이없다는 말투로 얘길 하는 내게 신이도 ‘갑자기 웬 등산?’이라며 맞받아쳤다

“당신 친구들 만나러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어제 도움 준 지인이라고..”
“응. 지인을 꼭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만나라는 법 있나? 그 분들이 등산을 좋아하시니까. 항상 산 초입에서 만났는데.”
“갑자기 등산이라니.... 그런 건 미리 좀 얘길 해줘야죠.. 등산복도 없는데..”
“그냥 청바지에 티셔츠, 운동화만 신으면 돼. 어차피 높은 산에 올라가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청바지하고 당신이 즐겨 입던 흰색 티셔츠도 빨아 놨으니까. 그거 입어.”
“당신이 세탁을 해 놨다고요?”
“왜? 난 세탁기 돌리면 안 되나? 그리고 당신 없는 동안 나도 빨래는 하면서 살었거든!”

으름장을 놓듯 말을 하며 옷장에서 어제 새벽에 들어와 챙겨둔 옷가지를 침대에 던지듯 올려놓는다.
그런 내 행동에 ‘피식~’하고 웃은 신이는 옷을 벗고는 내가 준 옷으로 갈아입는데...

“그럼 그렇지...”
“왜?”

청바지는 어차피 스판으로 된 재질이었기에 신이의 각선미와 빵빵한 엉덩이를 더 돋보이게 드러내며 찰싹 달라붙어 보기 좋았지만.. 문제는 티셔츠였다. 내 메리아스처럼 흰색 빨래는 분명 온수빨래로 돌려도 무관할거란 생각에 온수전용으로 티셔츠와 내 매리아스 등을 같이 넣고 빨았는데,, 크기가 아가 옷 마냥 엄청 작아져있었다.

아니.. 신이의 커진 가슴으로 더 작게 보이는 흰색 티셔츠는 신이의 몸에 파고들 듯 달라붙어 가슴의 굴곡과 잘록한 허리의 경계를 확연하게 드러내며 속옷처럼 보여졌다.

“내가 못 살아.. 이거 손빨래해야 되는데....그냥 세탁기에 돌렸어요? 그것도 온수로?”
“응?...그렇긴 한데... 어쩌지?”
“이걸 입고 나가라고요? 요즘 고등학생도 이렇겐 안 입겠다!”
“옷이.. 없지?......그럼... 내 메리아스라도 줄까?”
“에휴.. 믿은 내가 잘못이지..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요. 나가다가 티셔츠라도 하나 사야지..”

체념하듯 티셔츠 위에 얇은 가디건을 걸친 신이는 한숨을 푸~욱 하며 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모습이 싫지만은 않은 듯 보였다. 몇 번 신지 않았던 하얀 운동화를 툭툭 털어내고 마지막 코디를 완성한 신이를 보며 나도 서둘러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향한다.

보통 때였다면 버스와 기차를 이용해 혼자 움직였을 테지만, 오늘은 어처구니없는 게임에 공짜로 얻은 고급스러운 외제차로 드라이브의 기분까지 내며 출발을 하게 된다.

“어느 산으로 가요?”
“응? 경기도 쪽으로...”
“서울에 있는 산이 아니고요?”
“응. 가보면 알아.”
“아...”
“왜?”
“왜긴 왜에요!? 사람이 참... 에휴.. 아파 죽겠네.“
“........많이 아파?”
“그럼 안 아파요!? 무식하게 그걸 말도 없이 막 쑤셔 넣고...”
“기분.. 안 좋았어?”
“기분이요? 그럼 좋았겠어요!? 꼭! 변비로 한 달 동안 고생한 기분이라고 하면! 혈변 싸는 기분이라면 알겠냐고요!”
“.....그 정도구나..”
“그 정도구나?? 참나.. 오늘 저녁엔 제가 해드립죠!”
“뭐?”
“또~~옥같이! 제가 태규씨 똥꼬에 넣어주겠다고요!”
“허.. 그러다가 나 중독되면 어쩌냐? 만날 똥꼬 좀 쑤셔달라고 하면??”
“이 이가! 진짜....”
“크크크크~. 항문섹스 한 번 맛들이면 헤어 나오질 못한다고 하던데.. 남녀 구분 없이 말이야. 그리고 당신도 좀 느끼지 않았어? 막 몸을 부르르 떨면서 즐기던데..”
“그거야 당신이... 하여튼 다시는 그거 할 생각도 하지마라요! 알았죠!”
“그게.. 은근히 중독성 있던데.. 와~ 그 조임이 진짜....”
“그래서 계속 하겠다고요?”
“뭐~.. 하다가 또 생각나면 나도 모르지~. 어차피 수목금은 내가 주인이잖아. 당신은 내 노예고! 아니야?”
“......”
“그리고 하다보면 당신도 거기로 더 잘 느끼게 될지 누가 알아?”
“절대 아니거든요! 얼마나 아팠는데! 아무리 반복해서 한다고 해도... 전 절대로 적응 안 될 거 같아요. 하나도 좋지도 않았고...”
“정말? 에이~~ 솔직히 말 해봐. 그래도 조금은 느끼지 않았어? 내가 볼 땐 항구가 사정할 때 똥꼬까지 움찔거리면서 진짜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니까.”
“그거야 당신이 좋아하니....까.. 그냥 참았던 거죠.”
“참아?”
“뭐.. 항구씨가 너무 열심히 해주니까 더 참을 만 했고.”
“그럼 뒤로는 전혀 못 느꼈다고? 그게 그냥 참은 거라고?”
“네!! 그러니까 다시는 꿈도 꾸지 마세욧! 알았죠!”
“음... 그래도 가끔.. 아주 가끔은 안 될까? 해보니까 당신 보지하고는 완전히 딴 맛이더라고.”
“......”
“알았어! 알았다고. 그렇다고 그런 표정을 짓냐.”
“혹시..요...”
“응? 혹시 뭐?”
“...아니에요.”
“아니긴 뭔데?”
“제.. 거기요.. 헐......”
“헐??”
“헐거웠어요?”
“헐겁다니? 아! 아니!! 절대 아니야!”
“정말요?”
“그럼! 한상이 그 새끼 왕자지가 들락거렸다고는 전혀 생...가.....”

엉뚱한 신이의 반응에 괜히 황급히 변명처럼 말을 하다 뒤를 흐리게 된다.

“....”
“정말이야. 항구도 느꼈으니까 몇 번이나 싸질렀지! 당신 보지가 맛없었으면 그 놈이 그렇게 네 번이나 싸고 또 쌌겠냐!? 아주 발정난 개새끼처럼 계속 벌떡거리기만 하던데. 안 그랬어?”
“발정난 개는 또 뭐에요.. 말을 해도...”
“크크크~ 하긴.. 그런데 이런 대화도 나름 재밌네.”
“...재밌어요?”
“응. 뭔가 꼴릿하면서.. 섹스까지 솔직해지니까 편하다고 해야 하나??”
“....아직 멀었어요?”
“응?? 한 30분??”

신이가 조용히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어느새 고속도로에 진입한 우리의 차는 토요일이라는 것도 잊을 만큼 훤히 뚫린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기 시작했다. 신이가 그 바람을 만끽하려는 듯 창문을 열었다.



“여기에 산이 있어요?”
“......”
“어디로 가는 거예요?”
“금방 도착해.”

우리의 차는 시골진 골목을 지나 산이라고 하기엔 초라한 언덕을 올라가 학교 같은 건물 앞에 도착하게 된다. 아무렇게나 차를 세운 난 무심한 듯 시동을 끄고 차문을 열었다.
그런 날 영문도 모른 채 쫓아온 신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빤히 쳐다본다.

“여기가 어디에요?”
“내려.”

또 무심한 듯 트렁크 쪽으로 걸어가 미리 실어둔 상자들을 꺼낸다.

“아저씨!!!!!”

한 무더기의 아이들이 날 발견하곤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다.
언제나 아무 대가 없이 웃음으로 날 반겨주는 이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속까지 푸르게 정화되는 듯 느껴진다. 비록 더럽고 지저분한 일을 바로 어제 했어도 난 아이들의 웃음으로 씻기는 듯 한 느낌을 받으며 트렁크에서 커다란 박스 두 개를 힘겹게 내리며 그 아이들의 미소를 미소로 화답했다.

“오셨어요.”
“안녕하셨죠. 오늘은 좀 늦었습니다.”
“아니요. 잊지 않고 매달 찾아와주시는 것만도 감사한데요.”
“내려? 뭐하냐?”

“안녕하세요. 애들아~ 원장님하고 얘기를 해야 되니까. 잠시 저기 가서 놀아요~.”
“아..안...녕하세요.”

내 큰 목소리에 신이가 머뭇거리다말고 차에서 내린다. 그리곤 신이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는 푸근해 보이는 아줌마에게 얼떨결에 인사를 한다.

“인사드려 여긴 장원장님. 여기 관리해주시는 분이셔.”
“......네.”

“그런데 누구? 애인?”
“네? 하하하하하하하. 음~~ 전 와이프라고 할까요?”
“전 와이프라니?”
“언젠가 말씀드렸죠. 저 이혼했다고.. 그 상댑니다.”
“응?? 이혼.. 아~~~.. 그런데 여긴 어떻게???”
“점수 좀 따려고요. 오늘이 셋째 주 토요일이기도 하고.. 그래서 눈 딱 감고 데려왔습니다. 하하하.”
“호호호. 점수를 다시 딴다면.. 그럼 왜 이혼을 했나?”
“그러게요. 듣고 보니 그러내요. 하하하하하.”
“하여튼.. 그나저나 태규씨한테 흑심 좀 품어볼라고 했는데.. 아쉽네요~ 호호호호.”
“앗! 진작 말씀 하시지! 이 사람 다시 만나기 전에 말씀해주셨으면 혹 했을 텐데 말이에요!”
“때끼!! 애인이 바로 옆에 있는데 그런 말 하면 못쓰지!”
“원장님이 먼저 말씀하셨는데요! 크크.. 그리고 전 와이프라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애인 사이잖아.”
“아~~ 그런가? 하하하.”
“실없이 웃지만 말고.. 밥 안 먹었죠? 밥 먹어요.”
“넵!”

“왕찌찌!!!!”
“어.어머!! 그런 말 하면 못써요! 호호..호호호호호...”

인사를 나누던 우리 사이에서 갑자기 한 아이가 끼어들어선 신이의 가슴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신이가 입고 있는 옷이 아직도 몸에 바짝 달라붙는 흰색 티셔츠였고, 아무 생각 없이 운전만 하다 여기까지 왔다는 걸 깨닫게 된 나였다.

물론 누구보다도 얼굴이 발개진 건 신이였다.
그런 신이의 얼굴을 확인한 원장님이 황급히 아이를 데리고 건물 안으로 빠른 걸음으로 도망가 버렸다. 그 뒤를 쫓아가던 날 신이가 팔목을 잡아 멈춰 세웠다.

“옷 사러 간다는 걸 깜빡했다.. 당신도 잊었지?”
“등산로 초입에 있는 용품점에서 사려고 했죠.. 그런데 이게 뭐에요?”
“응? 뭐라니?”
“천사보육원이라는 간판을 보면 여기가 어딘지는 알겠어요! 그런데.. 여긴 왜 왔냐고요. 그리고 당신이 저 원장이라는 분을 어떻게 알고 있어요?”
“당신 기억 안나?”
“네??”
“매월 2만원씩 내 핸드폰에서 빠져나가는 거.”
“....?”
“있잖아. 예전에 우리 병원에 갔을 때.. 그때 전단지 중에 고아들 도와주는 전단지 같이 봤잖아. 그리고 내 핸드폰 요금으로 도와주자고 동의도 했으면서.”
“그걸 아직도 하고 있어요? 당신이??”
“뭐... 귀찮아서 해지를 안했다고 하는 게 정답이지만.. 그럼 폼이 안서니까 계속 도와주고 싶어서 일부러 안 끊은 걸로 하자고.”
“......”
“밥 먹으러 가자. 여기 원장님이 해주시는 씨레기국이 진짜 일품이야. 뭐해?”
“그럼.. 여길 계속 온 거예요?”
“.....응. 자주는 못 오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언제부터요?”
“그래도 꽤 됐어.. 한 7개월??”
“....”
“뭐 해? 가자. 어!! 혜빈아!!!!!”

머뭇거리며 우릴 빤히 쳐다보고 있는 여자아이를 향해 쪼그려 앉아 두 팔을 벌린다. 그제야 신이를 경계하듯 쳐다보던 혜빈이가 쪼르르 달려와서 내 품에 안겼다.

“우리 혜빈이 아저씨 보고싶었죵!?”
“....”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혜빈이를 품에 안고 일어난 난 볼을 내밀었고 여전히 신이를 경계하듯 쳐다보던 혜빈이가 내 볼에 뽀뽀를 해준다. 일반 보육원과 마찬가지로 1:1임시보육시스템이란 것이 이 보육원에도 존재했으며 내가 지원해주는 상대가 바로 이 혜빈이었다.

5살의 혜빈이는 보육원 안의 아이들이 거의 다 그렇지만 그중 극도로 말이 없는 아이로 참담한 마음으로 찾아왔던 그 날의 기억 속에 유난히 내 마음속 깊숙이 다가왔던 아이였다.

“아! 이를 어쩌지?”
“뭐가요?”
“오늘.. 사람 많을 텐데..”
“사람이 많다뇨?”
“나 혼자 찾아오는 게 아니야. 사람들이 날짜 정해서 모이는 거거든.”
“그걸 지금 얘기하면 어떻게 해요! 옷도... 아~..”
“뭐.. 어쩔 수 없지.. 우선 들어가자.”
“참...”

지금 시내로 나가 옷을 사기엔 너무 늦을 거란 생각에 우선 먼저 온 사람들에게 인사부터 시키기 위해 보육원 안으로 신이를 데리고 들어간다. 신이도 들어오던 길목을 나와 함께 봤기에 이 한적한 곳에서 옷을 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날 뒤쫓아 온다.

“안녕하십니까!~~”
“오~ 태규씨 왔어!”
“오늘은 늦었네. 가장 먼저 오더니.”
“안녕하세... 어.”

이미 세 커플이 밥을 먹고 있었다.
내가 알기론 둘째 주엔 학생들이 와서 봉사를 하고 첫째 주엔 일반 단체인가가 온다고 했었다. 그리고 부부들로 이뤄진 우리 모임 같지 않은 모임은 총 여섯 커플과 나로 이뤄진 셋째 주 방문모임이었다. 사실 그 당시에 이혼이란 단어조차 말로 꺼내기 어려웠던 나였기에 어쩌다보니 커플들 모임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나까지 네 커플이 이 보육원을 찾았다.

“누구셔?”

리더 격인 김선배가 신이를 늦게 발견하곤 어색하게 인사를 하며 날 쳐다본다.

“인사드려. 여긴 어쩌다가 모인 떨거지들이시고...”

“야! 우리가 왜 떨거지냐! 우리가 메인이지!”
“맞아요!”
“그러게!!!!!”
“하여튼!..”

“크크~. 이 사람은 제 와이프요. 이름은 한신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와~~.. 그렇게 여자 소개시켜준다고 말을 해도 귓등으로 듣던 이유가 있었네! 김선배 제수씨 진짜 예쁘지 않아요?”
“그러니까.. 와~~”

“자기야! 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며!”
“응? 하하하.. 내 눈엔 자기가 제일 예쁘지!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땐...크크~”
“객관적으로 봤을 땐??!”
“자기가 제~~~일 예쁘지..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식사 아직이죠. 같이 먹어요.”

“자자. 먼저 먹은 사람들은 오늘 할 일이 많아요! 먹을 사람은 먹고 나머지는 빨리 가서 일 합시다! 일!!”

김선배의 주도로 세 커플 중 김선배 커플과 신이의 미모를 극찬하던 강씨 커플이 다 먹은 그릇들을 싱크대에 넣고는 먼저 일어났다. 쭈삣거리며 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 신이를 한선배 커플이 의자로 인도를 한다.

“환영해요.”
“네?...네.”
“보육원은 처음이죠?”

리더겪인 김선배보다 나이가 많은 한 선배, 그리고 신이를 자리에 앉히며 부드럽게 환영하는 한 선배의 형수는 나와 가장 사이가 좋은 커플이다. 나이는 많지만 생각하는 이념과 사상도 나와 비슷했고 거기에 형제가 없다며 날 더 잘 챙겨주는 한선배의 친근감이 더 사이를 좋게 했었다.

셋째 주 보육원에 모인 우리는 가슴속 상처들이 있는 커플들로, 공감대가 있지만 그 공감대 속에 서로의 치부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불문율과도 같은 보이지 않는 룰 속에 밖에선 연락도 잘 안하는 사이였지만 한선배 커플과는 아주 가끔 저녁도 같이 먹은 사이였다.

“......네.”
“저흰 이 보육원에만 3년째 다니고 있어요.”
“.........”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아이들의 시선에 맞춰 그냥 놀아주다가 간다고 생각해요.”
“......네.”

“다 먹었어? 그럼 우리도 나가지.”
“네. 태규씨가 꼴찌니까. 오늘 설거지 부탁해요.”

“아~.. 이럴 줄 알고 항상 제일 먼저 왔었는데...”
“그러니까요~ 오늘 설거지는 태규씨 몫이에요. 호호호.”


“맛있지? 좀 팍팍 먹어라. 그게 뭐냐?”

식당에 둘 만 남게 된 후 난 신이에게 깨작거리는 젓가락질을 훈계하듯 타박하며 잔소리를 시작했다.
신이의 굳은 표정에 그런 행동을 했고 이 공간에서의 신이 마음을 조금은 알고 있다 생각했기에 오버하듯 잔소리를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먹으면 들어오던 복도 다 나가겠다! 여기선 무조건 팍팍 퍼 먹어야 돼. 안 그러면 원장님한테 혼난다고.”
“절... 왜 여기로 데리고 왔어요?”
“....응?”
“뭘.. 보여주려고요?”
“뭘 보여주다니?”
“난.. 이혼하고 이렇게 살았다? 너같이 더럽고... 지저분하게 살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려고 여길 데려온 거예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
“그럼요? 도대체 왜 절...”
“오늘 오는 날이라서 온 것뿐인데.”
“...네?”
“매달 셋째 주엔 이렇게 모여. 그리고 오늘이 셋째 주 토요일이고.”
“.......”
“사실 오늘은 그냥 넘기려고 했는데... 내 마음대로 하라며 그러니까 하던 일은 하려고. 그런데 보육원 일은 몰랐나? 한상이 놈이 다 알고 있었을 텐데. 그 놈이라면 모를 리가 없잖아. 박미지란 여자 일도 다 알고 있던 놈이 말이야. 넌 몰랐어?”
“....입양이라도 하게요?”
“..뭐?”
“아이로 제 마음이라도 흔드시려고요?”
“...”
“왜 이렇게 어리석어요! 이런 거 보여준다고 제가 흔들릴 여자로 보여요? 아니.. 흔들리기엔 너무 많이 온 여자라..”
“너 입양이 쉬운 줄 아니?”
“....네?”
“어쭙잖은 동정심이 아이들에게 더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거 혹시 아냐고.. 그리고 입양이란 거.. 유기견보호센터에 있는 강아지들 중에 마음에 든다고 데리고 와서 함부로 키울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럼 절 왜 데리고 왔어요?”
“얘기했잖아. 오늘이 셋째 주 토요일이라고. 그런데 한상이 놈이 아무 말도 안 해 줬냐?”
“.....네.”
“흠.. 이상하네. 난 당신이 알고 있는데 시치미를 떼고 있는 줄 알.. 어! 혜빈아!.. 아고~ 이 아저씨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네.. 그래~~ 뭐 해주까? 비행기 태워주까~?”

설거지를 하라는 제스처로 턱을 신이에게 까딱거리곤 혜빈을 안고 식당을 나간다.

보육원 방문은 어쩌면 자기만족이고 자기방어일지도 모른 생각을 몇 번이나 했었다. 신이에게 말 한대로 어쭙잖은 동정심을 정작 내가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를 몇 번이나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이 방문을 회의적으로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런 잡념은 아이들의 웃음을 보는 순간 사라지고 만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한 달에 한 번하는 청소와 빨래, 그리고 같이 놀아주는 게 전부일지 모르지만 그런 도움마저도 이 아이들에겐 절실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 번 찾아온 후로는 매 달 셋째 주를 기다릴 때도 있었다.
번거롭다고, 귀찮다고 너무나 가식적이라고 나도 생각했던 일들을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아직까지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좀 찬 아이들은 이런 만남조차 지겹다는 시선을 보일 때도 있었지만 그 것마저 아이들의 상처들이라 생각해본다면 그 시선이 그렇게 기분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예상대로 신이는 설거지 이후 계속 겉돌고 있다.
그건 신이의 성격이나 지금의 상황, 그리고 지금까지의 일들과 게임이란 저질스러운 행동에서 온 죄책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도 저랬다.
첫 방문 날. 아이들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고 어울려서 일을 하는 커플들을 바라보며 겉돌기만 했었으니 신이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아이로 인해 겪은 고통이 나와는 비교도 안 될 신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난 신이를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내 입장이란 게 중요할 이유가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들도 중요한 게 아니었고 말이다. 그냥 묵묵히 모임 사람들이 하는 빨래를 도와주고 청소를 하며 내 할 일만 하면 된다.

“진짜 누구야?”
“와이프라니까요.”
“진짜?”
“그럼 가짜 와이프도 있어요?”
“혹시 오피스 와이프는 아니고?”

“이이가!! 태규씨한테 못 하는 말이 없어..”

김선배의 짓궂은 질문에 김선배의 형수가 그런 선배를 타박한다.
하지만 형수조차 신이의 정체를 정말 궁금해 하는 눈치였고 선배를 타박하면서도 시선은 조용히 옆쪽 계단에서 홀로 빗자루 질을 하고 있는 신이를 연신 훔쳐보고 있었다. 이 모임에서 내가 이혼을 했다는 사실은 한 선배와 원장님만이 알 고 있었다. 남의 입에 오르내리는 게 싫어서 말을 안 했을 뿐인데 그냥 각자의 상상으로 날 평가한 게 분명했다.

형수의 물음에도 묵묵히 빨래들만 널고 있는 내 모습에 결국 형수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정말 와이프야?”
“.....”
“와~... 모델같이 이쁘시네. 그래서 그렇게 꽁꽁 숨겨놨구나~”
“숨겨놓긴 뭘 숨겨놔요. 선배도 참...”
“1년 동안 한 번 도 안 데리고 왔으면 그게 숨겨놓은 거지. 이 친구 은근히 음흉한 면이 있네.”
“....”

리더라고 자칭하는 김선배의 이런 면이 싫어서 사실 모임 후 뒤풀이에도 잘 참석을 안했었다. 내가 듣기론 몇 번이나 바람을 피우다 형수한테 걸려서 아작이났었고 또 그 짓을 반복하는 정형적인 난봉꾼 스타일이 이 김선배란 사람이었다.

말로는 리더라고 하지만 사실 이 모임에 동참하기 시작한 것도 먼저 2년 동안 봉사를 시작한 형수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참가했었다고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뭐라고 할까.. 귀찮은 건 진짜 싫어하는 스타일인데 사람들 위에 나서는 건 좋아하는 스타일? 하여튼 첫 인상부터 썩 좋은 기억은 아니었던 것만은 분명했다.

“진짜 볼수록 장난이 아니시네.. 와~~~~”
“김선배 일 하시죠! 일!”
“응?? 허~ 이친구가.. 그런데 자네 능력도 좋네. 그렇게 안 봤는데.”
“그럼 절 어떻게 보셨는데요?”
“응? 아니 그냥.. 평범.. 하다고 생각했지. 하하하하하하하.”
“신이는 평범하지 않아 보입니까?”
“신이? 아 제수씨!? 하하.. 솔직히 까놓고 얘기해서 평범한 건 아니지! 저 몸매가 아주.... 슴가가 하고 엉덩이를 어떻게 평범하게 볼 수 있.. 하하하하하..”

무섭게 노려보는 내 시선에 말꼬리를 흐리는 김선배의 행동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화를 삭이게 된다.

“태규씨.. 저 뭐하면 되요?”
“응?.. 그냥 쉬어.”
“아니에요.. 계단은 다 청소했는데.. 빨래 어디서 해요?”

“거기 가 봐야 시끄럽기만 하지 일도 제대로 못 해!. 여기서 빨래나 같이 널자고.”
“네?....네.”

신이의 표정이 계속 어둡다.
아이들을 향한 시선을 일부러 피하려는지 차라리 일을 찾는 모습으로 내게 긴 빗자루를 들고 걸어왔다. 그리곤 다음 일을 찾아 조용히 말을 하지만 나보다 먼저 김선배가 신이를 붙잡았다.

“빨래가 보통 많은 게 아니야. 애들 옷은 매일매일 해결하는데 이불 같은 큰 빨래거리는 이렇게 이 주일에 한 번씩은 빨래를 해줘야 한다니까. 그래서 내가 전담하자고 먼저 제안을 했다는 거 아니냐. 이거 우리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제대로 하지도 않아요!”
“......네.”
“수건만 100장이 넘으니까 그거부터 널자고.”
“...”

“제가 널게요.”
“자넨 이불 널어야지. 힘 뒀다 뭐해!?”
“....”

생각지도 못했던 골칫거리가 생긴 이 순간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건 골똘히 생각에 잠겨 몸을 혹사시키려는 신이의 행동을 훔쳐보기 시작한 김선배의 행동에 더 그랬다. 정작 수건을 털기 시작한 신이는 김선배의 시선도 모른 체 잡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한 듯 수건만 힘껏 털기 시작했다.

그 행동은 신이의 타이트한 티셔츠로 인해 더 자극적으로 보여졌다.
왜 저 옷을 입혔는지, 왜 매장에서 옷을 안 사 왔는 질 후회하며 덜렁거리며 출렁이는 신이의 가슴에 시선을 완전히 뺏긴 김선배에게 걸어간다.

“김선배!”
“으..응...응!?? 왜.왜???”
“이불 다 널었습니다. 청소하러 가시죠.”
“청소?.. 난 수건 털어야 되는데..”
“신이보고 하라고 하세요.”
“이 많은 걸 어떻게 혼자하나.. 나라도 도와야지..”
“괜찮지?”

“네?.....네.”

“괜찮다내요. 가시죠.”
“허.. 이거 다 털고 널면 팔 떨어질 텐데..”
“괜찮다잖아요. 같이 가요.”
“허....”

내게 끌려오듯 뒤쫓아 오는 김선배의 시선은 아직도 신이의 모습을 향해 있었고 아쉬움이 가득 차 있었다.

“진짜 와이프야?”
“......”
“와~~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한 주부가 아닌데!”
“그만 하시죠.”
“응? 내가 뭘?”
“..........”
“오늘 모임 끝나고 회식에 갈 거지?”
“아니요. 평소처럼 그냥 갈 겁니다.”
“오늘은 꼭 참석해야 돼!”
“...왜요?”
“한선배가 이번 달까지만 나오시고 못 나오신다잖아. 송별회라고 오늘이.”
“...송별회요? 한선배가 왜요?”
“중국에 2년 동안 해외 발령이 나셨다고 하던데.”
“그거 보류 됐다고 하지 않았어요?”
“갈 사람이 없어서 한선배가 자청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오늘 뒤풀이엔 꼭 참가해야 돼. 자네랑 한선배가 사이가 제일 좋잖아!”
“....”

“태..규씨...”

하필 왜 오늘.. 이라는 생각을 하며 걸어가던 내 등 뒤에서 신이의 작은 목소리가 날 불러 세웠다.
고개를 돌려 수건을 널고 있는 신이를 쳐다보는데.. 혜빈이가 신이의 가디건을 잡고는 눈물을 훌쩍이고 있었다. 아이의 울음에 신이가 종말 곤란한 표정으로 날 부른 것이다.

“우리 혜빈이 왜 울어? 넘어졌어?”
“....”

말 없이 훌쩍거리는 아이를 보며 좀 더 다가가자 아이가 신이의 뒤로 더 숨어버렸다.

“얘가.. 왜 이러지.. 혜빈..”
“아... 알..았어요. 이 언..니랑 같이 가요.”
“응? 어딜?”

신이는 내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은 채 혜빈을 번쩍 안아 들고는 뒤쪽 건물로 걸어가다 말고 다시 돌아와 내게 조용히 속삭이며 물어본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요?”
“저쪽 뒤에.. 안쪽 화장실은 청소중이라서 뒤쪽 이용해야 될 걸.. 뒤 쪽은 구식이라서...”
“원장님은요? 어디 계세요?”
“응? 지금은.. 같이 빨래하고 계실걸..”
“....알았어요.”


나중에야 혜빈이가 오줌을 지린 걸 알게 된 나였다.
대청소로 바쁜 이곳에서 낯가림이 심한 혜빈은 참다 참다 결국 그대로 실례를 한 모양이었고 혼자 남아 수건을 털고 있는 신이에게 매달린 듯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이 대신에 수건을 털고 있는 내게 옷을 갈아입고 돌아온 혜빈과 그런 혜빈의 손을 꼭 잡고 돌아온 신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꼭 맞잡고 있는 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 한 구석의 가장 안쪽이 아련해지고 먹먹한 답답함을 느끼게 된 나였다.

“아줌마 힘들겠다. 이 아저씨랑 놀러 갈까?”
“...”

역시 대답이 없는 혜빈은 고개만 가로 젓는다.

“아줌마랑 같이 꽃 보러 갈까?”

혜빈이 잠시 고민하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가자. 그런데 이름이 뭐야? 아줌마도 이름 알고 싶은데..”
“......”
“말하기 싫어? 음~.. 그럼 아저씨가 말한 혜빈이가 맞아? 아줌마도 혜빈이라고 불러도 돼?”

날 한 번 쳐다보고는 수줍은 듯 신이를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여주는 혜빈이다. 그리곤 맞잡은 두 손을 풀지 않고 둘은 입구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약 1시간이 지났을 무렵..
몸을 열심히 혹사시켰는지 벌써 허기가 진다. 둘이 나간 입구를 멍하니 쳐다보던 난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다는 걸 확인했고 그때 보유원으로 돌아오는 혜빈이와 신이를 볼 수 있었다. 혜빈이를 품에 안고 신이가 천천히 걸어온다. 등을 토닥이며 걸어오는 신이의 모습에 또 아련한 감정이 나도 모르게 시야를 흐릿하게 물들였다.

“어디까지 갔다가 왔..”
“쉿~..”
“...”
“방금 전에 잠들었어요.”
“낯가림이 심한데.. 당신을 잘 따르네..”
“애라고만 생각했는데.. 벌써 아가씨네요.”
“아가씨??”
“....네.”
“안 힘들어? 내가 안을까?”
“아뇨.. 제가....... 안고 있을게요.”


그늘진 벤치로 걸어간 신이가 천천히 자리를 잡고 앉아 연신 혜빈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뭐라고 소곤거린다. 조용한 보유원의 마당에서 아주 작게 들리는 신이의 자장가 소리가 내 마음처럼 촉촉이 젖은 빨래들을 따뜻하게 말리는 듯 느껴졌다.

일을 바쁘게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하더니, 보유원의 하루는 너무나 빨리 지나갔다. 청소를 끝내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우리들과 달리 신이는 혜빈과의 시간만을 보냈고, 그런 신이를 이젠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나였다. 그리고 그 시선은 나만이 아니었다.

“너무 정 주지 말라고 말해줘.”
“네?....네.”
“혜빈이.. 좋은 엄마 아빠한테 갈 수 있을 거 같아.”
“엄마 아빠요?”
“응. 입양 의사를 밝힌 사람들이 있는데.. 지금 망설이고 있지만 곧 결정을 할 거 같아.”
“그..렇군요.”
“이번엔 정말 상처받지 말아야 되는데..”
“.........”

보유원에서 입양절차를 정식으로 받고 아이를 데리고 간 부모 중에서도 다시 돌려보내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한다. 여러 가지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만.. 누구보다 상처받는 건 버려지듯 다시 돌려보내진 아이들이었다. 그나마 보유원이나 입양시설로 고충을 토로하며 포기를 하는 경우는 나은 편이었다.
데리고 가선 아무 말도 없이 버리는.. 그런 인간말종같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임을 알 게 된 후 엄청난 분노를 느꼈지만..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정작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혜빈이도 한 번의 입양과 돌려보내짐을 겪은 아이였다.

시간이 흘러 6시가 다 되었을 때 우리는 아이들과 오늘도 여지없는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게 된다. 이 시간이 괴롭다 느껴질 때도 있지만.. 다음 달에 꼭 다시 온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다짐하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태규씨...”
“....왜?”
“혜빈이가...”

나도 처음 왔을 때 아이들과의 헤어짐이 가장 힘들었는데 신이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예상했던 일이라 생각을 하며 신이를 향해 걸어간다.

“혜빈아.. 다음 달에 꼭 올게. 아저씨 알잖아.”
“......”

혜빈이가 고개를 크게 가로 젓는다.
신이의 가디건을 쥔 손을 더 꽉 쥐며 아예 다리에 달라붙는 혜빈이었다.

“어허! 장혜빈!!! 떼쓰면 원장엄마가 혼난다고 했지!”
“훌쩍..훌..쭉....”
“혜빈아. 아줌마 아저씨도 집에 가야지. 다음 달에 또 보면 되잖아.”
“...”

혜빈이가 또 고개를 가로 젓는다.

“혜빈아.. 이 아줌마가.. 다음 달에도 또 올게.. 응? 우리 약속할까?”
“시러..”
“.....”
“가지..마... 시러.”

처음으로 혜빈이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7개월이란 시간동안 많이 신경을 쓴 아이라 생각했고 보유원에서 가장 친해진 아이라고 생각했던 혜빈이었지만 정작 혜빈의 목소리는 오늘 처음 듣게 된다.

“아줌마가.. 꼭 다시 올게.. 자. 약속!”
“시다고!!!”

“장혜빈!!! 원장아줌마한테 혼난다!”
“시러!! 시다고!!! 시러!!!!! 으앙.... 시..러.. 앙앙..”
“얘가 오늘 왜 이래.. 이리 와!”

울음보를 터트린 혜빈은 서럽게 울기 시작했고 당황하며 그런 혜빈을 안으려던 신이에게서 원장님이 억지로 때어놓는다. 이런 일은 사실 어린 아이들에겐 많이 발생했었다. 그러나 마음을 닫았다 생각했던 혜빈이의 이런 돌발행동은 나도 예상 못 했던 일이었기에 먹먹히 젖은 가슴으로 신이와 혜빈, 그리고 원장님만을 바라만 보게 된다.

혜빈을 힘을 떨어트린 원장님은 우리에게 얼른 가라며 손짓을 했고 난 혜빈을 바라보며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신이의 팔을 잡고 도망치듯 주차장 쪽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떼게 된다.


“에고.. 혜빈이가 신이씨를 많이 따르네.. 신이씨 너무 마음 쓰지 말아요. 아이들이 엄마 생각나서 그런 거니까.. 마음 아프겠지만 다음에 오면 또 언제 그랬냐면서 웃어줘요.”
“...네.”

한선배의 형수가 신이를 위로하지만 신이는 힘없이 대답을 하곤 우리 차로 발걸음을 옮긴다.


“잔인..하네요.”
“...”
“이럴 거면.. 왜 절 데리고 왔어요?”

걸어가는 동안 신이가 날 원망스럽다는 듯 작게 속삭인다.
제대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오늘 일정은 결코 즉흥적이거나 계산적인 게 아니었다. 그냥 내 삶을 신이에게 거짓 없이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행동했었고 부작용을 각오하고 신이를 데리고 왔지만.. 이런 내 행동이 이런 결과를 낳으리라고는 전혀 예상도 못했다. 아니.. 내 생각이 짧았다는 걸 이제 와서 후회하게 된다.

“미안... 혜빈이가 이렇게 빨리 당신한테 마음을 열 줄은 몰랐어..”
“......”
“너무... 마음 주지 마.. 잔인하다고 생각하겠지만.. 혜빈이도 조만간 좋은 부모한테 입양 간데..”
“입양이요?”
“.....응.”
“...........”
“왜?”
“당신... 진짜 잔인해요.”
“.....”

신이가 소리 없이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내 팔을 뿌리치고 차로 걸어간다.

“태규씨!”
“.....네.”

신이의 뒷모습에 쓰린 가슴을 애써 억누르는데 뒤에서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내로 가자고. 거기 한우고기집으로 전부 모이기로 했다.”
“김선배.. 오늘은 그냥 갈게요. 신이 기분도..”
“한선배 마지막이라니까! 그냥 보낼 거야!?”
“......”
“먼저 출발 할 테니까 제수씨 좀 잘 다독여서 쫓아오라고! 한선배도 괜히 부르지 말라고 하는데. 그건 아니지!”
“.......................”

차에 탔을 때 신이가 훌쩍이던 눈물을 훔치며 창밖으로 보육원 건물을 바라본다.

--계속--

사실 이번 회차의 장면을 원래 12부정도의 결말이었다면 초중반에 넣으려고 구상했던 내용이었습니다. 조금은 무거운 내용을 최대한 둥그스름하게 묘사하려 노력했고, 그래도 올릴까 말까를 많이 고민하다 내용의 흐름상 올리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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