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신이의 간호덕분에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회사에 출근하게 된다.
아침까지 든든하게 챙겨먹고 출근을 하게 된 난 아직도 익숙지 않은 차장이라는 자리에 그것도 전혀 다른 업무의 시간을 보내며 배우기에 급급해하고 있는 것이 요즘 회사 내에서의 일과 중 하나였다. 말이 차장이지 사실상 대리직급과 비슷한 업무만 보던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고 그건 눈치를 보는 이전의 생활과 직급의 차이만 바뀌었을 뿐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진차장님.”
“..네?”
나보다 입사가 1년 늦은 김대리가 점심을 먹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날 불러 세운다.
며칠전만해도 사실상 나보다 회사 내에서 입지가 더 넓고 높은 친구로 이번 인사이동에서 과장을 노린다는 소문까지 들리던 김대리였다. 어떻게 보면 내 밑의 부장이나 과장보다도 더 날 아니꼽게 볼 놈일지 모른다.
사실상 부장이나 과장정도 급이면 내 진급이 이상하다는 것과 곧 제자리로 떨어질 거란 것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을 테고 그로 인해 날 대하는 정도에도 선이란 게 있었지만.. 이 김대리는 그렇지 않았다.
시기와 질투, 그리고 내 꼬투리를 찾아 잡으려는 뻔히 보이는 관찰의 시선과 함께 내 진급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려는 듯 한 의도적인 친한 척이 누구보다 날 껄끄럽게 만든다.
“말 편히 하십쇼. 진차장님.”
“...”
“혹시 지금 식사하러 가시는 거면, 저도 껴도 될까요? 다른 약속이 없다면요.”
“약속은 없는데.. 그냥 간단히 먹을 거라서..”
“같이 하시죠. 차장님한테도 말씀드릴 게 있고...”
“저한테요?”
“...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피하고 싶은 상대인 김대리와 회사 앞 순댓국밥집 안에서 마주보고 앉게 된다.
뭐.. 요즘은 요즘 점심은 항상 혼자 먹었으니....
“요건이 뭐죠?”
“네? 아.. 다른 게 아니고요. 차장님께서 갑자기 부임을 하셨으니 궁금하신 게 많으실 거 같아서 몇 가지 팁을 드리려고요.”
“팁이요?”
“네! 사실 저희 총괄부가 회사의 중추라고도 할 수 있잖아요. 오가는 정보다 엄청 많고요.”
“정보가 많다고요?”
“단연 가장 큰 이슈는 차장님이지만..”
“제가 이슈거리입니까?”
“그게 아니고.. 회사 내에서 초고속 승진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거기다가 소문이란 게 퍼질수록 살이 붙는 거고...”
“말씀해보세요.”
“..네?”
“어떤 소문인지 한 번 들어봅시다.”
“그..그게...”
내 자신도 놀랄 만큼 냉정하고 무덤덤한 반응으로 김대리를 지금 상대하고 있다. 자격지심? 사실 이 김대리란 친구가 나보다 빠른 승진과 업무처리 능력을 보여줬을 때 사실 자격지심이란 걸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시기와 질투란 건 내게 어울릴법한 행동이었고 지금 상황에서 이렇게 냉정한 태도를 보이는 내 행동자체가 아이러니 하게 느껴지기 한다.
아마도.. 강한상에게 단련이 된 내 정신이 유명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해 승승가도를 달리고 있는 이런 남자조차 피라미처럼 느껴지는 건 아닐까 생각하며 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봅시다. 일개 평직원이었던 사람이 차장이란 임원의 자리까지 올라왔으니 아니꼬운 사람들이 많을 테고.. 당연히 좋은 소문보다는 음해나 유언비어가 많겠죠. 그 정도는 누구나 다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고.. 그럼 김대리가 내 시간을 뺏으면서까지 나와 만나서 전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해 보시죠.”
“그..그러니까..”
“어떻게 차장이 됐냐고요?”
“......”
“아니면? 이유보다 과정이 더 궁금하십니까?”
“그..게.....”
“한 가지 충고를 해 드리죠. 설사 하나씩 올라가는 계단보다 빨리 날아가는 방법이 있다고 해도 의심부터 하십쇼. 날개가 없는 인간이란 동물이 두 개, 혹은 세 개의 계단을 뛰어넘을 순 있지만 한 층을 한 번에 건너뛸 순 없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기 주제에 맞게 살라는 겁니다. 주제가 뭔지 아십니까? 분수라는 겁니다. 사물을 식별하는 지혜를 분수라고 하고,,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를 분수라고 합니다. 자신의 신분도 잊은 채 상황조차 식별하지 않고 지혜롭지 못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자지 주제도 모르고 설친다고들 하죠.”
“........”
“나쁜 뜻은 아니었습니다. 제 입장에 대해서 돌려 말을 하는 거니까요.”
“.....”
말을 하면서도 내가 왜 이 얘기를 이 사람에게 하고 있는지조차 잘 모른 채 말을 하게 된다. 푸념? 아니며 자기성토?? 확실한 건 이 친구가 날 만나려고 했던 이유가 너무나 눈에 보였기에 오히려 귀엽게 보여졌다는 것이었고 그 이후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나와 김대리는 오로지 식사만을 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 업무에 복귀를 하게 된다.
식사 후 오후의 업무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업무 파악을 위한 공부였다. 이런 걸 내가 왜?? 라는 의문점에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차장실이라는 개인 업무실에서 업무 열람표라는 걸 뒤적거리며 오후 내내 시간을 보내고 앉아 있다.
김대리에게 충고라는 걸 했던 내가 더 우습게 느껴져 혼자 킥킥거리며 웃으면서 말이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퇴근 시간이 다가왔을 때.. 반가운 목소리가 내 핸드폰너머에서 들려왔다.
“이제 끝났어. 곧바로 들어갈게.”
[회사 앞이에요..]
“뭐? 회사??”
[네.]
“집에 있지.. 회사까지 찾아오고 그래?”
[싫어요?]
“싫긴. 그냥 사람들이 오해할까봐 그래서 그렇지..”
[.....]
“여보세요?”
[오해요?]
“응??”
나도 모르게 오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사실상 이혼한 사이인 우리가 다시 만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방금 차장이 된 남자에게, 그것도 비현실적인 초고속 승진을 한 내게 좋은 소문이 날 리 없다는 무의식중의 본심을 나도 모르게 지나가듯 얘기했고 금세 후회하며 변명을 하게 된다.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요즘 회사 분위기도 좀 그렇고.. 내 험담을 하는 사람도 꽤 있거든.. 당신도 알잖아.. 내가 어처구니없게 과장도 아니고 차장이 된 거..”
[그럼... 집으로 돌아갈게요.]
“.....”
[끊을게요.]
“아..아니야. 지금 나갈게. 어디? 회사 앞?”
[카페리네요..]
“응. 금방 갈게.”
서둘러 책상을 정리하곤 양복 상의를 챙겨 입는다.
보는 눈이 많은 만큼 혹시나 신이를 알아보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골치가 아픈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잡아보는데..
“차장님!! 어!!”
문이 거의 닫힐 때쯤 김대리의 목소리가 복도 끝쯤에서 들려 왔지만, 난 무시하고 닫히는 엘리베이터의 문을 바라만 본다. 어차피 못 들었다고 하면 끝일 테니까..
회사 문을 나와 행단보도 건너편에 있는 카페리네를 쳐다보는데..
새빨간 코트가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여성이 내 시야에 먼저 비춰졌다. 볼륨 있는 긴 머리에 검은색 스타킹과 검은색의 무광 하이힐을 신고 계산대 앞에 서 있는 여성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내 시선에도 너무나 선명하고 또렷하게 보여졌다.
행단보도를 막 건너 카페리네를 향해 걸어가며 그 빨간색 코트의 정체를 더 확실히 확인하려 발걸음을 빨리 움직이는데.. 역시나 신이였다.
생각보다 긴 코트였지만 역시나 검은색 스타킹에 매끄럽게 둘러싸인 허벅지의 중간쯤을 겨우 가리고 있는 길이였고 사파리 형식의 호박 단추 코트에도 허리를 끈으로 조여매고 있었기에 가는 라인과 가슴의 볼륨의 차이가 훤히 드러나 있었기에 신이라는 걸 멀리서도 충분히 알아 볼 수 있었다.
행단보도를 거의 다 지났을 때 신이도 날 발견했는지 카운터에서 받은 종이컵에 서둘러 시럽을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거의 카페리네에 도착했을 때 신이가 카페 문을 열고 웃으며 손을 흔든다.
“태...”
“진차장님!!”
엉뚱하게도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게 된 나였고 손을 흔들며 계단을 내려오던 신이도 발걸음을 멈췄다.
점심시간에 같이 식사를 한 김대리였다.
“귀가 좀 어두우세요? 그렇게 불렀는..데..”
“아직도 용건이 남...”
“어...”
김대리의 시선이 내가 아닌 내 등 뒤에 꽂힌 채 움직이질 않는다.
저 표정을 난 몇 번이나 봤었다. 식당에서도 봤었고 놀이공원에서도 봤었다. 최근에 다녀온 헬스클럽과 수영장에서도 많이 봤던 표정이었다..
“누...구십니까?”
“...네?”
“사..모님?”
“...”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결국 내가 걸어오던 발걸음을 이어 다가온 신이를 김대리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번갈아 내 얼굴과 함께 쳐다보며 믿기지 않는 듯 말까지 더듬으며 신이에게 인사를 한다.
“이..혼 하셨다고...”
“태규씨를 잠깐.. 만나러 왔어요.”
“아~.. 하긴 이혼했다고 원수가 될 이유는 없죠....”
“네??”
“네?.. 아니 제 말은..”
김대리가 신이의 날씬하게 빠진 각선미에 정신을 못 차리고 횡설수설하는 동안 난 신이가 들고 온 커피를 건네받아 목을 축인다. 커피 잔을 입에 대고 목을 젖히면서도 불안감에 신이의 복장을 스캔한다.
역시나...
어제의 대화를 몸소 실천한 듯 신이는 분명 스타킹과 빨간색 코트만을 입고 온 게 분명했다.
“중요한 용건이 아니시면.. 와이프하고 선약이 있어서요. 저흰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네?...아.......”
“그럼.. 들어가자.”
“부..부장님이 헛소문을 퍼트..리고 다니...십니다.”
“....네?”
“예?? 헛...소문이라뇨? 태규씨 소문을 부장님이란 분이 내고 다닌다고요?”
“네!!.. 중요한.. 얘기라서...”
“왜요?”
“...네?”
“부장님이 왜 태규씨 소문을 퍼트리냐고요.”
“그...거야...”
거짓말이다.
아니 부장이란 남자가 나에 대해 뒷다마를 까고 다녔을 진 모르지만, 지금 신이의 얼굴과 몸, 그리고 다리를 오가는 김대리의 시선이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허풍이나 부풀린 얘기라는 걸 반증해주고 있었다.
“나란님 사석에서는 뒷다마도 까는데 그게 뭐 대수라고.. 그런 걸 고자질하고 다니는 당신이 더 문제 아닙니까?.”
“네?? 죄..죄송합니다. 그냥.. 왕따를 시키자는 말에 그건 아닌 거 같아서.... 죄송합니다.”
그제야 김대리의 시선이 내 얼굴을 향했지만 이내 신이의 목소리에 다시 시선을 돌린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태규씨가 왕따를 당해요?”
“아니.. 당한다는 게 아니고요. 그냥 없는 사람 치자고....”
“.....”
“알겠으니까. 김대리 그만 돌아가지..”
김대리가 돌아간 후에도 잠시 동안 신이는 왕따라는 단어가 마음속에 계속 걸리는지 걱정스럽게 날 쳐다본다.
“이러고 온 거야? 지하철까지 타고?”
“택시타고 왔어요.. 그것보다 회사에서 왕따 당해요?”
“왕따는 무슨.. 사람들이 아니꼽게 봐서 그런 거야. 갑자기 차장이라고 나타난 대리급 인물한테 누가 좋은 시선을 주겠냐? 그냥 헛소리들이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
“걱정 말라니까.. 그보다... 안에는??”
“..예?”
“설마.. 안에 아무것도 안 입은 거야?”
“안..에 아무것도 안 입고 나오려다가...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속옷은 입었어요.”
“......큭~”
“왜 웃어요?”
“아니.. 발가벗고 코트만 입고 나오려다가 다시 들어가서 속옷을 챙겨 입는 모습이 상상이 돼서...”
“....치.”
“그래서? 어디서 사진을 찍으려고?”
“글쎄요..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는데......”
“야노란 게... 사람들 시선을 피해서 찍는 거 맞지?”
“아..마.. 그럴걸요...”
“음....우선 카페로 들어가자.”
“..네.”
신이와 들어간 카페는 사람들의 수만큼 북적거리며 조금은 시끄러웠다. 우린 신이가 방금 앉았던 곳인 가장 구석진 자리로 이동했고 벽을 등지고 신을 바라보며 안쪽에 내가 앉는다. 사람들에게 신이를 보이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행동처럼 조금 더 빨리 걸어가 안쪽자리를 차지한 나였다.
자리에 앉은 신이의 복장은 섹시한 자태를 더 뽐내고 있었다.
높은 하이힐과 검은색 스타킹으로 더 잘록해 보이는 발목과 매끈한 종아리 그리고 다소곳이 모은 허벅지도 셀로라이트 하나 없는 흠잡을 데 없는 각선미를 그리고 있었고 가려진 코트안에서도 그 크기가 남다른 가슴과 보이진 않지만 25인치정도로 보이는 잘록한 허리까지..
커다란 가슴에 이질적인 허리라인이라 여길 수 있는 모델과도 같은 신이의 몸매를 다시 한 번 감상하게 된다.
1년이란 시간동안 너무나 변한 신이의 몸매에 나도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으니... 미모도 한 몸에 시선을 받는데 한 몫을 하고 있었다. 원래 수수한 이미지에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듯던 신이였지만 수술로 인해 손예진과 한지민을 섞어놓은 듯한 얼굴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남자의 시선들이 충분히 머물 만 했다.
문득..
날 빤히 쳐다보는 신이의 모습에 확인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M이 뭔지도 잘 몰랐던 시절 한상에게 들었던 신이의 취향과 변한 육체.. 정확히는 그 변한 육체를 내가 어디까지 감당을 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다는 충동과 함께.. 정말 신이의 이성과 생각들을 강한상이 없는 상태에서 확실히 확인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며 신이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왜...요? 뭐 묻었어요?”
“....”
“부끄럽게 왜 그렇게 쳐다봐요..”
어느새 신이는 내 아내였던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대도 느껴지는 이 불안감은.. 아마도 이 게임이란 것에서 이기고 난 후를 걱정하게 될 수 있는 지금에서야 느낄 수 있는 불안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아이인 해빈이를 데리고 올 수 있다면, 아니... 데리고 온 후 과연 신이와 예전처럼 살 수 있을까?
신이란 여자를 내 아이의 엄마로서 아무 의심과 불만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그만.. 봐요...”
“응? 알았어.”
신이의 얼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신이야.”
“..예?”
“지금은 내가 주인이지?”
“.....?”
엉뚱한 내 질문에 신이가 이해를 못 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게임이란 거.. 지금 하고 있는 거잖아..”
“.....네.”
약간은 들뜬?? 그런 신이가 내 말에 이내 어두운 그림자를 얼굴에 드리우며 대답을 한다.
“그럼.. 내가 주인이잖아.. 수목금..은...”
“...네.”
“물론 신이 네가 마지막 거부권을 갖고 있지만.. 내가 시키는 건 다 해야 되는 거지?”
“.....”
“시키는 건... 다 할 수 있니?”
“...................네.”
망설임을 뒤로하고 신이가 대답을 한다.
“사실.. 신이 네 행동을 완전히 이해한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게 지금 나야.. 몸이 변했다고 수없이 말을 하는데.. 왜 변했는지도 잘 모르겠고...”
우선은 신이에게 계획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을 한다.
“사실.. 한상이한테 들었던 허무맹랑한 얘기가 사실일리도 없겠지만.. 여자란 게 몸의 쾌락 때문에 이렇게 변할 수 있는지도 믿기지 않는 게 사실이잖아. 아무리 그 쾌감이 마약하고 똑같다고 해도 말이야. 다른 여자면 몰라도 신이 너니까 더 그렇고..”
“....”
“그래서 내가 주인이라면.. 정말 사실을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 했었어.. 강한상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신이 너 말고.. 정말로 쾌락이란 이유 때문에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는 건지....”
“아빠요...”
“...응? 장인 어르신?”
내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신이가 뜻밖의 인물을 입에 올리며 내 말을 끊는다. 아마도 처음으로 내게 변명이란 걸 하려는 듯 보였다.
“많이 힘들어했던 건 사실이에요.. 제가 이혼이란 걸해서 힘들어 하시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교육부..에서 맡았던 일이 문제가 많으셨대요. 무슨 조직하고 연관이 되셔서 일도 제대로 못 하셨고요.”
“그런데?”
“사실.. 가족이란 게 붕괴가 되기 직전까지 갔었는데... 그걸 구해 준 게 한상씨에요.”
“한상이가 왜?”
“...한상씨와 처음 만났을 때.. 아버지가 회식자리에 앓아누운 어머니 대신에 절 데리고 갔던 모임이란 자리에서..”
“장모님이 앓아누웠는데 모임이란 걸 나갔다고?”
“...네. 어쩔 수 없었어요. 도움을 받기 위한 부부동반 모임이라서...”
“그럼 거기서 한상이를 처음 만난건가?”
“네.. 처음엔 제 얼굴을 너무 뚫어져라 쳐다봐서.. 솔직히 누군가의 아들이 저처럼 대신 나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 모임이란 곳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오른 남자란 걸 알았을 때.. 아빠가 너무 힘들어 하는 모습에 나라도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빠가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든 분들한테 같이 인사를 했었고.. 어쩌면 아빠의 일을 다 해결할 수 있을 거란 사람들의 말에 나이도 어린 한상씨에게 어렵게 부탁까지 했었고요... 당신이.. 더럽다고 욕한다고 해도... 사실 그땐 내 몸을 받칠 생각으로.. 영화처럼 로비라는 걸 할 생각을 했었어요.”
“로비? 그걸 한상이가 원하던가?”
“아니요.. 걱정과는 달리 누나처럼 따르더라고요.”
“누나?”
“누나라고 하기보단.. 엄마라고 해야 할까? 좋은 옷에.. 맛있는 음식.. 효도를 못한 자식처럼 좋은 것만 주면서 꼭 응석을 부리는 아들 같은 느낌? 그런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엄마..라고... 그럼 한상이랑.. 처음으로 몸을 섞었을 땐? 아무리 세상이 개차반처럼 돌아간다고 해도.. 엄마...를 범할 자식이 없잖아..아니.. 널 엄마처럼 대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말이야.”
“자..연스럽게 친해진 한상씨랑.. 저도 목적을 두고 만나기가 힘들어서 한상씨한테 사실대로 얘길 했어요.. 난 이혼녀고...... 아직도.........”
말을 하던 신이가 머뭇거리며 입술을 깨문다.
“아직도?”
“.....잊질 못..한다고요.”
“...”
“그때.... 술을 많이 먹고.. 그 동영상처럼 절 강간하려고 했었는데....”
“그 동영상?? 그땐 첫 만남이라고..”
“네.. 꼭 처음 만난 남자처럼 클럽이란 델 데리고 가서는 가족처럼 대하던 행동은 온데간데없이 막 대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첫 관계를.. 다른 남자랑 같이 하려고 했던 거 같고요.”
“....”
“그때부터.. 이중인격자처럼 절 대하기 시작했을 거예요.. 사람들 앞에선.. 누나처럼 소개를 하고.. 단 둘이 있을 땐...”
“그럼.. 몸이 변했다는 건?? 그것도 거짓..말이었나?”
“................아.니요.”
“뭐? 아니라니?”
“몸이.. 변한 건 사..실이에요. 어쩌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그런 몸뚱이가 된 게.. 그래서 당신한테는 미안하지만.. 죄스럽지만 이런 게임도 싫다고.. 비록 다시 만나게 된 그 순간부터 거짓말로 일색 하긴 했지만... 당신을 이용하기 싫었어요. 아마 전 당신에게 돌아간다고 해도.. 지금의 그 쾌감을 못 잊을 게 분명해요.........”
신이가 날 시험한다.
아니.. 너무 뻔히 보이는 내 표정에 신이도 솔직히 털어놓고는 오리려 내게 질문을 한다.
“그런대도 이 게임에서.. 이기고 싶어요? 이런 더러운 여자를.. 당신이 어떤 기분으로 지금 게임을 하고 있는 질 전 상상도 못 해요.. 아니.. 상상만 해도 싫어요.. 그런데...... 아무리 우리 해..”
“그만!!!”
“!!!?”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게 된다.
지금 순간.. 신이의 입에서 분명 해빈이란 이름이 나오려고 했고 난 황급히 신이의 말을 끊는다.
어떻게???
신이가 해빈이의 얘길 왜 지금 이 타이밍에 하는 것일까? 고백을 하기 위해 전부를 털어놓으려고? 아니면.. 아!! 어제의 통화 내용을 들었던 게 분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제 부은 눈두덩이가...... 그래서 자발적으로 야사란 걸 찍으려고????
그러나 어떤 이유라고 해도 신이의 핸드폰이 순간 뇌리에 떠오른 나였다.
신이의 핸드폰엔 신이 자신도 모르는 도청장치가 달려 있었다. 아까 회사에서 내게 전화를 걸어온 것도 신이였고 그 번호도 신이의 핸드폰 번호였다. 그렇디른건 지금 순간 신이의 핸드폰이 신이의 몸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안일했다.
신이와 대화에 너무 열중했고 신이의 고백에 나도 모르게 경계를 풀게 돼 버렸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일까? 이런 실수를 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한 나였다. 황급히 신이의 말을 끊고.. 조금은 짜증 섞인 말투로 신이의 고백을 묵살하듯 얘길 한다.
“그럼.. 내 예상대로 몸 로비를 하려고 했던 게 맞네... 대단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 아빠가 힘들다고 몸을 받친다고? 현대판 심청이냐?”
“태..규씨....”
“어차피 게임이란 건 변함이 없으니까.. 그래 하자. 확인하자고.”
“확..인이라뇨?”
“내 앞에서도.. 내가 주인일 때도 그렇게 음란할 수 있는지.. 아니 내 명령에 정말 흥분을 감출 수 없는 지 확인을 하자고..”
“....”
“나가자.”
“어..어디를요?”
“나가서 생각하자.”
이런 유사한 경험은 예전에도 있었다.
술집에서 신이를 만났었고 불특정다수의 다른 놈들의 시선을 느낀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때와 지금은 다르다. 정확히 말해 긴가민가했던 그때의 내 자신감과 불확실했던 추리만으로 대했던 신이에 대한 생각조차 지금과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머뭇거리던 신이가 날 따라 나오는 동안 내 머릿속도 복잡하긴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확인을 한다면..
“먼저 걸어가 봐...”
“걸어..요?”
“응. 뒤에서 사진 좀 찍어보게..”
신이가 날 앞서 또각거리는 하이힐의 소리를 내며 도로가를 걸어가기 시작했을 때 3~5m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핸드폰을 꺼내들고 뒤를 따르게 된 나였다. 뒷모습에서도 잘 빠진 다리가 빨간 코트 아래에 더 섹스럽게 보이는 옅은 검은색의 스타킹의 흔들리는 모습을 감상하며 몇 장의 사진을 핸드폰에 담아본다.
몰카범이 느끼는 스릴감이라고 하기엔 좀 부족한 감정이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몰래 찍는 카메라 질은 그 나름대로의 스릴을 내게 안겨줬다.
그렇게 넓은 도로를 거리를 두고 지나던 우리는 너무 어색한 듯 연신 뒤를 돌아 날 확인하는 신이의 행동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어색함이란 생각보다 더 무거운 것이었다.
그건 신이에게만 한정된 건 아닌 듯 느껴졌다. 나도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쌩초보였기에 마냥 신이의 뒷모습만 찍는 행동을 했었고 당연히 이후의 계획조차 없었다. 어쩌면 이게 현실적인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아니.. 평범한 남자의 모습일 것이다. 아무리 지금 순간 연기를 해야 하다고 해도 말이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난.. 시야에 들어온 마사지샵이라는 간판을 보게 된다.
“저기로.. 들어가자.”
“네??”
“마사지샵. 들어가자고.”
“....왜..왜요?”
“강한상이 앞에서는 거부 했잖아? 네 말대로 날 못 잊었다면서.. 그럼 보여줘봐.”
“태규씨....”
“왜? 싫어? 나도 적응이란 걸 해야 되잖아. 이미 못 볼 거까지 다 본 상태인데. 어차피 놀 거 진하게 놀아야지. 안 그래?”
“왜..그래요? 태규씨?”
“내 말은 듣기 싫다는 건가?”
“.......알았어요. 들어가요.”
좁은 계단을 올라 도착한 마사지샵은 하필 은밀하게 운영 중인 안마방이었다.
몇 명의 남자들이 좁은 복도를 걸어가다가 신이의 모습에 놀란 표정을 짓기도, 음흉한 미소를 짓기도 했는데.. 신이도 당황한건 마찬가지였다.
당황한 기색을 난 숨기며 의아한 듯 우릴 쳐다보는 점원을 향해 걸어가 말을 건다.
“남자 마사지사는 없나요?”
“...네? 남자.....”
“응. 남자 마사지사.. 특별한 서비스도 해주는 남자마사지사 말이야.”
“...있..죠.. 왜 없겠습니까... 그런데 비용이 좀....”
“불러주시죠.”
“.....네... 저기 끝..방으로 들어가서 기다리세요.”
휘트니스 클럽과는 완전히 다른..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좁고 더러운 마사지 룸으로 들어간 우리는 멀뚱히 서 있다가 곧 뚱뚱한 한 남자와 마주하게 된다.
수많은 고민을 하고 있던 난 그 남자의 모습에 한숨을 쉬게 된다. 안타까워서가 아니라.. 하필 저런 인간이...
우리 대화 내용을 분명 다 듣고 있을 강한상의 존재에 대한 압박은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크게 내 머릿속을 조여 왔다. 만약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걸 다 알게 된다면... 이 계획이란 것조차 전부 무용지물로서 정말 비참한 결말만이 남아 있었거란 걸 뻔히 알고 있었기에 신이에게 더 매몰차고 모질게 대하기 시작한다..
“그럼.. 사모님만 해드리면 되나요?”
“...네. 대신.. 코트만 벗고 해도 됩니까?”
“옷은 다 벗으셔야...”
“속옷만 입고 왔습니다. 신이야 벗어.”
“..네?? 지..금요?”
“그럼? 언제 벗으려고?.. 아.. 사진 좀 찍어도 되겠습니까? 물론 선생님 얼굴은 안 찍겠습니다.”
“하...하..... 좋습니다....”
이미 이 마사지사의 시선엔 신이밖에 보이질 않는 듯 보였다.
원망스러운 시선이란 걸 느낄 정도의 신이의 눈동자를 쳐다보면서도 내가 좀 더 강하게 나가는 모습을 보이자, 신이가 체념한 듯.. 천천히 코트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계속--
늦어서 죄송합니다.
역시 월요일 오전은 힘드네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식사들 맛있게 하세요~.
신이의 간호덕분에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회사에 출근하게 된다.
아침까지 든든하게 챙겨먹고 출근을 하게 된 난 아직도 익숙지 않은 차장이라는 자리에 그것도 전혀 다른 업무의 시간을 보내며 배우기에 급급해하고 있는 것이 요즘 회사 내에서의 일과 중 하나였다. 말이 차장이지 사실상 대리직급과 비슷한 업무만 보던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고 그건 눈치를 보는 이전의 생활과 직급의 차이만 바뀌었을 뿐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진차장님.”
“..네?”
나보다 입사가 1년 늦은 김대리가 점심을 먹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날 불러 세운다.
며칠전만해도 사실상 나보다 회사 내에서 입지가 더 넓고 높은 친구로 이번 인사이동에서 과장을 노린다는 소문까지 들리던 김대리였다. 어떻게 보면 내 밑의 부장이나 과장보다도 더 날 아니꼽게 볼 놈일지 모른다.
사실상 부장이나 과장정도 급이면 내 진급이 이상하다는 것과 곧 제자리로 떨어질 거란 것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을 테고 그로 인해 날 대하는 정도에도 선이란 게 있었지만.. 이 김대리는 그렇지 않았다.
시기와 질투, 그리고 내 꼬투리를 찾아 잡으려는 뻔히 보이는 관찰의 시선과 함께 내 진급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려는 듯 한 의도적인 친한 척이 누구보다 날 껄끄럽게 만든다.
“말 편히 하십쇼. 진차장님.”
“...”
“혹시 지금 식사하러 가시는 거면, 저도 껴도 될까요? 다른 약속이 없다면요.”
“약속은 없는데.. 그냥 간단히 먹을 거라서..”
“같이 하시죠. 차장님한테도 말씀드릴 게 있고...”
“저한테요?”
“...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피하고 싶은 상대인 김대리와 회사 앞 순댓국밥집 안에서 마주보고 앉게 된다.
뭐.. 요즘은 요즘 점심은 항상 혼자 먹었으니....
“요건이 뭐죠?”
“네? 아.. 다른 게 아니고요. 차장님께서 갑자기 부임을 하셨으니 궁금하신 게 많으실 거 같아서 몇 가지 팁을 드리려고요.”
“팁이요?”
“네! 사실 저희 총괄부가 회사의 중추라고도 할 수 있잖아요. 오가는 정보다 엄청 많고요.”
“정보가 많다고요?”
“단연 가장 큰 이슈는 차장님이지만..”
“제가 이슈거리입니까?”
“그게 아니고.. 회사 내에서 초고속 승진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거기다가 소문이란 게 퍼질수록 살이 붙는 거고...”
“말씀해보세요.”
“..네?”
“어떤 소문인지 한 번 들어봅시다.”
“그..그게...”
내 자신도 놀랄 만큼 냉정하고 무덤덤한 반응으로 김대리를 지금 상대하고 있다. 자격지심? 사실 이 김대리란 친구가 나보다 빠른 승진과 업무처리 능력을 보여줬을 때 사실 자격지심이란 걸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시기와 질투란 건 내게 어울릴법한 행동이었고 지금 상황에서 이렇게 냉정한 태도를 보이는 내 행동자체가 아이러니 하게 느껴지기 한다.
아마도.. 강한상에게 단련이 된 내 정신이 유명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해 승승가도를 달리고 있는 이런 남자조차 피라미처럼 느껴지는 건 아닐까 생각하며 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봅시다. 일개 평직원이었던 사람이 차장이란 임원의 자리까지 올라왔으니 아니꼬운 사람들이 많을 테고.. 당연히 좋은 소문보다는 음해나 유언비어가 많겠죠. 그 정도는 누구나 다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고.. 그럼 김대리가 내 시간을 뺏으면서까지 나와 만나서 전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해 보시죠.”
“그..그러니까..”
“어떻게 차장이 됐냐고요?”
“......”
“아니면? 이유보다 과정이 더 궁금하십니까?”
“그..게.....”
“한 가지 충고를 해 드리죠. 설사 하나씩 올라가는 계단보다 빨리 날아가는 방법이 있다고 해도 의심부터 하십쇼. 날개가 없는 인간이란 동물이 두 개, 혹은 세 개의 계단을 뛰어넘을 순 있지만 한 층을 한 번에 건너뛸 순 없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자기 주제에 맞게 살라는 겁니다. 주제가 뭔지 아십니까? 분수라는 겁니다. 사물을 식별하는 지혜를 분수라고 하고,,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를 분수라고 합니다. 자신의 신분도 잊은 채 상황조차 식별하지 않고 지혜롭지 못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자지 주제도 모르고 설친다고들 하죠.”
“........”
“나쁜 뜻은 아니었습니다. 제 입장에 대해서 돌려 말을 하는 거니까요.”
“.....”
말을 하면서도 내가 왜 이 얘기를 이 사람에게 하고 있는지조차 잘 모른 채 말을 하게 된다. 푸념? 아니며 자기성토?? 확실한 건 이 친구가 날 만나려고 했던 이유가 너무나 눈에 보였기에 오히려 귀엽게 보여졌다는 것이었고 그 이후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나와 김대리는 오로지 식사만을 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 업무에 복귀를 하게 된다.
식사 후 오후의 업무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업무 파악을 위한 공부였다. 이런 걸 내가 왜?? 라는 의문점에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차장실이라는 개인 업무실에서 업무 열람표라는 걸 뒤적거리며 오후 내내 시간을 보내고 앉아 있다.
김대리에게 충고라는 걸 했던 내가 더 우습게 느껴져 혼자 킥킥거리며 웃으면서 말이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퇴근 시간이 다가왔을 때.. 반가운 목소리가 내 핸드폰너머에서 들려왔다.
“이제 끝났어. 곧바로 들어갈게.”
[회사 앞이에요..]
“뭐? 회사??”
[네.]
“집에 있지.. 회사까지 찾아오고 그래?”
[싫어요?]
“싫긴. 그냥 사람들이 오해할까봐 그래서 그렇지..”
[.....]
“여보세요?”
[오해요?]
“응??”
나도 모르게 오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사실상 이혼한 사이인 우리가 다시 만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방금 차장이 된 남자에게, 그것도 비현실적인 초고속 승진을 한 내게 좋은 소문이 날 리 없다는 무의식중의 본심을 나도 모르게 지나가듯 얘기했고 금세 후회하며 변명을 하게 된다.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요즘 회사 분위기도 좀 그렇고.. 내 험담을 하는 사람도 꽤 있거든.. 당신도 알잖아.. 내가 어처구니없게 과장도 아니고 차장이 된 거..”
[그럼... 집으로 돌아갈게요.]
“.....”
[끊을게요.]
“아..아니야. 지금 나갈게. 어디? 회사 앞?”
[카페리네요..]
“응. 금방 갈게.”
서둘러 책상을 정리하곤 양복 상의를 챙겨 입는다.
보는 눈이 많은 만큼 혹시나 신이를 알아보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골치가 아픈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잡아보는데..
“차장님!! 어!!”
문이 거의 닫힐 때쯤 김대리의 목소리가 복도 끝쯤에서 들려 왔지만, 난 무시하고 닫히는 엘리베이터의 문을 바라만 본다. 어차피 못 들었다고 하면 끝일 테니까..
회사 문을 나와 행단보도 건너편에 있는 카페리네를 쳐다보는데..
새빨간 코트가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여성이 내 시야에 먼저 비춰졌다. 볼륨 있는 긴 머리에 검은색 스타킹과 검은색의 무광 하이힐을 신고 계산대 앞에 서 있는 여성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있는 내 시선에도 너무나 선명하고 또렷하게 보여졌다.
행단보도를 막 건너 카페리네를 향해 걸어가며 그 빨간색 코트의 정체를 더 확실히 확인하려 발걸음을 빨리 움직이는데.. 역시나 신이였다.
생각보다 긴 코트였지만 역시나 검은색 스타킹에 매끄럽게 둘러싸인 허벅지의 중간쯤을 겨우 가리고 있는 길이였고 사파리 형식의 호박 단추 코트에도 허리를 끈으로 조여매고 있었기에 가는 라인과 가슴의 볼륨의 차이가 훤히 드러나 있었기에 신이라는 걸 멀리서도 충분히 알아 볼 수 있었다.
행단보도를 거의 다 지났을 때 신이도 날 발견했는지 카운터에서 받은 종이컵에 서둘러 시럽을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거의 카페리네에 도착했을 때 신이가 카페 문을 열고 웃으며 손을 흔든다.
“태...”
“진차장님!!”
엉뚱하게도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게 된 나였고 손을 흔들며 계단을 내려오던 신이도 발걸음을 멈췄다.
점심시간에 같이 식사를 한 김대리였다.
“귀가 좀 어두우세요? 그렇게 불렀는..데..”
“아직도 용건이 남...”
“어...”
김대리의 시선이 내가 아닌 내 등 뒤에 꽂힌 채 움직이질 않는다.
저 표정을 난 몇 번이나 봤었다. 식당에서도 봤었고 놀이공원에서도 봤었다. 최근에 다녀온 헬스클럽과 수영장에서도 많이 봤던 표정이었다..
“누...구십니까?”
“...네?”
“사..모님?”
“...”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결국 내가 걸어오던 발걸음을 이어 다가온 신이를 김대리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번갈아 내 얼굴과 함께 쳐다보며 믿기지 않는 듯 말까지 더듬으며 신이에게 인사를 한다.
“이..혼 하셨다고...”
“태규씨를 잠깐.. 만나러 왔어요.”
“아~.. 하긴 이혼했다고 원수가 될 이유는 없죠....”
“네??”
“네?.. 아니 제 말은..”
김대리가 신이의 날씬하게 빠진 각선미에 정신을 못 차리고 횡설수설하는 동안 난 신이가 들고 온 커피를 건네받아 목을 축인다. 커피 잔을 입에 대고 목을 젖히면서도 불안감에 신이의 복장을 스캔한다.
역시나...
어제의 대화를 몸소 실천한 듯 신이는 분명 스타킹과 빨간색 코트만을 입고 온 게 분명했다.
“중요한 용건이 아니시면.. 와이프하고 선약이 있어서요. 저흰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네?...아.......”
“그럼.. 들어가자.”
“부..부장님이 헛소문을 퍼트..리고 다니...십니다.”
“....네?”
“예?? 헛...소문이라뇨? 태규씨 소문을 부장님이란 분이 내고 다닌다고요?”
“네!!.. 중요한.. 얘기라서...”
“왜요?”
“...네?”
“부장님이 왜 태규씨 소문을 퍼트리냐고요.”
“그...거야...”
거짓말이다.
아니 부장이란 남자가 나에 대해 뒷다마를 까고 다녔을 진 모르지만, 지금 신이의 얼굴과 몸, 그리고 다리를 오가는 김대리의 시선이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허풍이나 부풀린 얘기라는 걸 반증해주고 있었다.
“나란님 사석에서는 뒷다마도 까는데 그게 뭐 대수라고.. 그런 걸 고자질하고 다니는 당신이 더 문제 아닙니까?.”
“네?? 죄..죄송합니다. 그냥.. 왕따를 시키자는 말에 그건 아닌 거 같아서.... 죄송합니다.”
그제야 김대리의 시선이 내 얼굴을 향했지만 이내 신이의 목소리에 다시 시선을 돌린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태규씨가 왕따를 당해요?”
“아니.. 당한다는 게 아니고요. 그냥 없는 사람 치자고....”
“.....”
“알겠으니까. 김대리 그만 돌아가지..”
김대리가 돌아간 후에도 잠시 동안 신이는 왕따라는 단어가 마음속에 계속 걸리는지 걱정스럽게 날 쳐다본다.
“이러고 온 거야? 지하철까지 타고?”
“택시타고 왔어요.. 그것보다 회사에서 왕따 당해요?”
“왕따는 무슨.. 사람들이 아니꼽게 봐서 그런 거야. 갑자기 차장이라고 나타난 대리급 인물한테 누가 좋은 시선을 주겠냐? 그냥 헛소리들이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
“걱정 말라니까.. 그보다... 안에는??”
“..예?”
“설마.. 안에 아무것도 안 입은 거야?”
“안..에 아무것도 안 입고 나오려다가...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속옷은 입었어요.”
“......큭~”
“왜 웃어요?”
“아니.. 발가벗고 코트만 입고 나오려다가 다시 들어가서 속옷을 챙겨 입는 모습이 상상이 돼서...”
“....치.”
“그래서? 어디서 사진을 찍으려고?”
“글쎄요..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는데......”
“야노란 게... 사람들 시선을 피해서 찍는 거 맞지?”
“아..마.. 그럴걸요...”
“음....우선 카페로 들어가자.”
“..네.”
신이와 들어간 카페는 사람들의 수만큼 북적거리며 조금은 시끄러웠다. 우린 신이가 방금 앉았던 곳인 가장 구석진 자리로 이동했고 벽을 등지고 신을 바라보며 안쪽에 내가 앉는다. 사람들에게 신이를 보이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행동처럼 조금 더 빨리 걸어가 안쪽자리를 차지한 나였다.
자리에 앉은 신이의 복장은 섹시한 자태를 더 뽐내고 있었다.
높은 하이힐과 검은색 스타킹으로 더 잘록해 보이는 발목과 매끈한 종아리 그리고 다소곳이 모은 허벅지도 셀로라이트 하나 없는 흠잡을 데 없는 각선미를 그리고 있었고 가려진 코트안에서도 그 크기가 남다른 가슴과 보이진 않지만 25인치정도로 보이는 잘록한 허리까지..
커다란 가슴에 이질적인 허리라인이라 여길 수 있는 모델과도 같은 신이의 몸매를 다시 한 번 감상하게 된다.
1년이란 시간동안 너무나 변한 신이의 몸매에 나도 처음엔 내 눈을 의심했으니... 미모도 한 몸에 시선을 받는데 한 몫을 하고 있었다. 원래 수수한 이미지에 예쁘다는 말을 많이 듯던 신이였지만 수술로 인해 손예진과 한지민을 섞어놓은 듯한 얼굴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남자의 시선들이 충분히 머물 만 했다.
문득..
날 빤히 쳐다보는 신이의 모습에 확인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된다.
M이 뭔지도 잘 몰랐던 시절 한상에게 들었던 신이의 취향과 변한 육체.. 정확히는 그 변한 육체를 내가 어디까지 감당을 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다는 충동과 함께.. 정말 신이의 이성과 생각들을 강한상이 없는 상태에서 확실히 확인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며 신이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왜...요? 뭐 묻었어요?”
“....”
“부끄럽게 왜 그렇게 쳐다봐요..”
어느새 신이는 내 아내였던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대도 느껴지는 이 불안감은.. 아마도 이 게임이란 것에서 이기고 난 후를 걱정하게 될 수 있는 지금에서야 느낄 수 있는 불안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아이인 해빈이를 데리고 올 수 있다면, 아니... 데리고 온 후 과연 신이와 예전처럼 살 수 있을까?
신이란 여자를 내 아이의 엄마로서 아무 의심과 불만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그만.. 봐요...”
“응? 알았어.”
신이의 얼굴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신이야.”
“..예?”
“지금은 내가 주인이지?”
“.....?”
엉뚱한 내 질문에 신이가 이해를 못 했다는 표정을 짓는다.
“게임이란 거.. 지금 하고 있는 거잖아..”
“.....네.”
약간은 들뜬?? 그런 신이가 내 말에 이내 어두운 그림자를 얼굴에 드리우며 대답을 한다.
“그럼.. 내가 주인이잖아.. 수목금..은...”
“...네.”
“물론 신이 네가 마지막 거부권을 갖고 있지만.. 내가 시키는 건 다 해야 되는 거지?”
“.....”
“시키는 건... 다 할 수 있니?”
“...................네.”
망설임을 뒤로하고 신이가 대답을 한다.
“사실.. 신이 네 행동을 완전히 이해한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게 지금 나야.. 몸이 변했다고 수없이 말을 하는데.. 왜 변했는지도 잘 모르겠고...”
우선은 신이에게 계획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을 한다.
“사실.. 한상이한테 들었던 허무맹랑한 얘기가 사실일리도 없겠지만.. 여자란 게 몸의 쾌락 때문에 이렇게 변할 수 있는지도 믿기지 않는 게 사실이잖아. 아무리 그 쾌감이 마약하고 똑같다고 해도 말이야. 다른 여자면 몰라도 신이 너니까 더 그렇고..”
“....”
“그래서 내가 주인이라면.. 정말 사실을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 했었어.. 강한상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신이 너 말고.. 정말로 쾌락이란 이유 때문에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는 건지....”
“아빠요...”
“...응? 장인 어르신?”
내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신이가 뜻밖의 인물을 입에 올리며 내 말을 끊는다. 아마도 처음으로 내게 변명이란 걸 하려는 듯 보였다.
“많이 힘들어했던 건 사실이에요.. 제가 이혼이란 걸해서 힘들어 하시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교육부..에서 맡았던 일이 문제가 많으셨대요. 무슨 조직하고 연관이 되셔서 일도 제대로 못 하셨고요.”
“그런데?”
“사실.. 가족이란 게 붕괴가 되기 직전까지 갔었는데... 그걸 구해 준 게 한상씨에요.”
“한상이가 왜?”
“...한상씨와 처음 만났을 때.. 아버지가 회식자리에 앓아누운 어머니 대신에 절 데리고 갔던 모임이란 자리에서..”
“장모님이 앓아누웠는데 모임이란 걸 나갔다고?”
“...네. 어쩔 수 없었어요. 도움을 받기 위한 부부동반 모임이라서...”
“그럼 거기서 한상이를 처음 만난건가?”
“네.. 처음엔 제 얼굴을 너무 뚫어져라 쳐다봐서.. 솔직히 누군가의 아들이 저처럼 대신 나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 모임이란 곳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오른 남자란 걸 알았을 때.. 아빠가 너무 힘들어 하는 모습에 나라도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빠가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모든 분들한테 같이 인사를 했었고.. 어쩌면 아빠의 일을 다 해결할 수 있을 거란 사람들의 말에 나이도 어린 한상씨에게 어렵게 부탁까지 했었고요... 당신이.. 더럽다고 욕한다고 해도... 사실 그땐 내 몸을 받칠 생각으로.. 영화처럼 로비라는 걸 할 생각을 했었어요.”
“로비? 그걸 한상이가 원하던가?”
“아니요.. 걱정과는 달리 누나처럼 따르더라고요.”
“누나?”
“누나라고 하기보단.. 엄마라고 해야 할까? 좋은 옷에.. 맛있는 음식.. 효도를 못한 자식처럼 좋은 것만 주면서 꼭 응석을 부리는 아들 같은 느낌? 그런 이상한 느낌이 들었어요.”
“엄마..라고... 그럼 한상이랑.. 처음으로 몸을 섞었을 땐? 아무리 세상이 개차반처럼 돌아간다고 해도.. 엄마...를 범할 자식이 없잖아..아니.. 널 엄마처럼 대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말이야.”
“자..연스럽게 친해진 한상씨랑.. 저도 목적을 두고 만나기가 힘들어서 한상씨한테 사실대로 얘길 했어요.. 난 이혼녀고...... 아직도.........”
말을 하던 신이가 머뭇거리며 입술을 깨문다.
“아직도?”
“.....잊질 못..한다고요.”
“...”
“그때.... 술을 많이 먹고.. 그 동영상처럼 절 강간하려고 했었는데....”
“그 동영상?? 그땐 첫 만남이라고..”
“네.. 꼭 처음 만난 남자처럼 클럽이란 델 데리고 가서는 가족처럼 대하던 행동은 온데간데없이 막 대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첫 관계를.. 다른 남자랑 같이 하려고 했던 거 같고요.”
“....”
“그때부터.. 이중인격자처럼 절 대하기 시작했을 거예요.. 사람들 앞에선.. 누나처럼 소개를 하고.. 단 둘이 있을 땐...”
“그럼.. 몸이 변했다는 건?? 그것도 거짓..말이었나?”
“................아.니요.”
“뭐? 아니라니?”
“몸이.. 변한 건 사..실이에요. 어쩌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그런 몸뚱이가 된 게.. 그래서 당신한테는 미안하지만.. 죄스럽지만 이런 게임도 싫다고.. 비록 다시 만나게 된 그 순간부터 거짓말로 일색 하긴 했지만... 당신을 이용하기 싫었어요. 아마 전 당신에게 돌아간다고 해도.. 지금의 그 쾌감을 못 잊을 게 분명해요.........”
신이가 날 시험한다.
아니.. 너무 뻔히 보이는 내 표정에 신이도 솔직히 털어놓고는 오리려 내게 질문을 한다.
“그런대도 이 게임에서.. 이기고 싶어요? 이런 더러운 여자를.. 당신이 어떤 기분으로 지금 게임을 하고 있는 질 전 상상도 못 해요.. 아니.. 상상만 해도 싫어요.. 그런데...... 아무리 우리 해..”
“그만!!!”
“!!!?”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게 된다.
지금 순간.. 신이의 입에서 분명 해빈이란 이름이 나오려고 했고 난 황급히 신이의 말을 끊는다.
어떻게???
신이가 해빈이의 얘길 왜 지금 이 타이밍에 하는 것일까? 고백을 하기 위해 전부를 털어놓으려고? 아니면.. 아!! 어제의 통화 내용을 들었던 게 분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제 부은 눈두덩이가...... 그래서 자발적으로 야사란 걸 찍으려고????
그러나 어떤 이유라고 해도 신이의 핸드폰이 순간 뇌리에 떠오른 나였다.
신이의 핸드폰엔 신이 자신도 모르는 도청장치가 달려 있었다. 아까 회사에서 내게 전화를 걸어온 것도 신이였고 그 번호도 신이의 핸드폰 번호였다. 그렇디른건 지금 순간 신이의 핸드폰이 신이의 몸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안일했다.
신이와 대화에 너무 열중했고 신이의 고백에 나도 모르게 경계를 풀게 돼 버렸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일까? 이런 실수를 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한 나였다. 황급히 신이의 말을 끊고.. 조금은 짜증 섞인 말투로 신이의 고백을 묵살하듯 얘길 한다.
“그럼.. 내 예상대로 몸 로비를 하려고 했던 게 맞네... 대단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 아빠가 힘들다고 몸을 받친다고? 현대판 심청이냐?”
“태..규씨....”
“어차피 게임이란 건 변함이 없으니까.. 그래 하자. 확인하자고.”
“확..인이라뇨?”
“내 앞에서도.. 내가 주인일 때도 그렇게 음란할 수 있는지.. 아니 내 명령에 정말 흥분을 감출 수 없는 지 확인을 하자고..”
“....”
“나가자.”
“어..어디를요?”
“나가서 생각하자.”
이런 유사한 경험은 예전에도 있었다.
술집에서 신이를 만났었고 불특정다수의 다른 놈들의 시선을 느낀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때와 지금은 다르다. 정확히 말해 긴가민가했던 그때의 내 자신감과 불확실했던 추리만으로 대했던 신이에 대한 생각조차 지금과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머뭇거리던 신이가 날 따라 나오는 동안 내 머릿속도 복잡하긴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확인을 한다면..
“먼저 걸어가 봐...”
“걸어..요?”
“응. 뒤에서 사진 좀 찍어보게..”
신이가 날 앞서 또각거리는 하이힐의 소리를 내며 도로가를 걸어가기 시작했을 때 3~5m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핸드폰을 꺼내들고 뒤를 따르게 된 나였다. 뒷모습에서도 잘 빠진 다리가 빨간 코트 아래에 더 섹스럽게 보이는 옅은 검은색의 스타킹의 흔들리는 모습을 감상하며 몇 장의 사진을 핸드폰에 담아본다.
몰카범이 느끼는 스릴감이라고 하기엔 좀 부족한 감정이었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몰래 찍는 카메라 질은 그 나름대로의 스릴을 내게 안겨줬다.
그렇게 넓은 도로를 거리를 두고 지나던 우리는 너무 어색한 듯 연신 뒤를 돌아 날 확인하는 신이의 행동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어색함이란 생각보다 더 무거운 것이었다.
그건 신이에게만 한정된 건 아닌 듯 느껴졌다. 나도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는 쌩초보였기에 마냥 신이의 뒷모습만 찍는 행동을 했었고 당연히 이후의 계획조차 없었다. 어쩌면 이게 현실적인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아니.. 평범한 남자의 모습일 것이다. 아무리 지금 순간 연기를 해야 하다고 해도 말이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난.. 시야에 들어온 마사지샵이라는 간판을 보게 된다.
“저기로.. 들어가자.”
“네??”
“마사지샵. 들어가자고.”
“....왜..왜요?”
“강한상이 앞에서는 거부 했잖아? 네 말대로 날 못 잊었다면서.. 그럼 보여줘봐.”
“태규씨....”
“왜? 싫어? 나도 적응이란 걸 해야 되잖아. 이미 못 볼 거까지 다 본 상태인데. 어차피 놀 거 진하게 놀아야지. 안 그래?”
“왜..그래요? 태규씨?”
“내 말은 듣기 싫다는 건가?”
“.......알았어요. 들어가요.”
좁은 계단을 올라 도착한 마사지샵은 하필 은밀하게 운영 중인 안마방이었다.
몇 명의 남자들이 좁은 복도를 걸어가다가 신이의 모습에 놀란 표정을 짓기도, 음흉한 미소를 짓기도 했는데.. 신이도 당황한건 마찬가지였다.
당황한 기색을 난 숨기며 의아한 듯 우릴 쳐다보는 점원을 향해 걸어가 말을 건다.
“남자 마사지사는 없나요?”
“...네? 남자.....”
“응. 남자 마사지사.. 특별한 서비스도 해주는 남자마사지사 말이야.”
“...있..죠.. 왜 없겠습니까... 그런데 비용이 좀....”
“불러주시죠.”
“.....네... 저기 끝..방으로 들어가서 기다리세요.”
휘트니스 클럽과는 완전히 다른..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좁고 더러운 마사지 룸으로 들어간 우리는 멀뚱히 서 있다가 곧 뚱뚱한 한 남자와 마주하게 된다.
수많은 고민을 하고 있던 난 그 남자의 모습에 한숨을 쉬게 된다. 안타까워서가 아니라.. 하필 저런 인간이...
우리 대화 내용을 분명 다 듣고 있을 강한상의 존재에 대한 압박은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크게 내 머릿속을 조여 왔다. 만약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걸 다 알게 된다면... 이 계획이란 것조차 전부 무용지물로서 정말 비참한 결말만이 남아 있었거란 걸 뻔히 알고 있었기에 신이에게 더 매몰차고 모질게 대하기 시작한다..
“그럼.. 사모님만 해드리면 되나요?”
“...네. 대신.. 코트만 벗고 해도 됩니까?”
“옷은 다 벗으셔야...”
“속옷만 입고 왔습니다. 신이야 벗어.”
“..네?? 지..금요?”
“그럼? 언제 벗으려고?.. 아.. 사진 좀 찍어도 되겠습니까? 물론 선생님 얼굴은 안 찍겠습니다.”
“하...하..... 좋습니다....”
이미 이 마사지사의 시선엔 신이밖에 보이질 않는 듯 보였다.
원망스러운 시선이란 걸 느낄 정도의 신이의 눈동자를 쳐다보면서도 내가 좀 더 강하게 나가는 모습을 보이자, 신이가 체념한 듯.. 천천히 코트의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계속--
늦어서 죄송합니다.
역시 월요일 오전은 힘드네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식사들 맛있게 하세요~.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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