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Inequality ~ 비겁한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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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상진은 자신이 평소 출근하던 분당지부가 아니라 본사로 출근을 하고 있었다. 전에 우사장에게 본사에서 근무를 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을때는 그저 농담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상진의 인사이동건은 상진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본사 인사과의 사람들과의 간단한 면담을 하는 날... 원래대로라면 그동안의 실적, 평판 등을 토대로 상진이 본사로 인사이동을 하는 것이 좋은지, 어디로 이동라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인사과의 높으신 분들에게 굉장히 오랜 시간동안 시달려야했지만, 우사장의 입김이 닿아서인지 그들과의 면담은 거의 잡담수준에 불과했다. 아니, 오히려 직급이 자신보다 훨씬 높은 그들이 상진의 눈치를 살피는 기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음... 그나저나 학부출신치고 설계부서에서 그렇게 실적을 올린 사람은 여태까지 아무도 없었네. 이건 왠만한 외국대학 박사출신들도 힘든건데... 대단하구만."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전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겸손하기까지 하구만. 그쯤되면 과장까지 승진해도 별 말은 없겠어."
"... 네...?"
"아, 얘기 못들었나? 이번 인사이동은 단순히 자네의 부서만 달라지는건 아닐세. 우리 회사에 비정기 승진제도가 있는건 알고 있지? 그중에 자네의 과장승진건도 있다네."
"하지만... 제가 과장을 달기에는 경력도 얼마 안되고..."
"허허, 승진에 경력이 중요한가? 자네보다 능력도 없고 실적도 없는데도 자네보다 빨리 승진한 케이스도 많아. 다들 알면서도 쉬쉬할 뿐이지. 그에 비하면 자네는 어쨋든 능력도 있고 확실한 실적이 있으니 딱하 다른 말은 안나올거네. 게다가 사장님도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커보이고 말이야."
"......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한테 감사할게 뭐있나. 사장님께 감사해야지. 아무튼 좋은 결과 기대해도 좋을거네."
아무래도 분당지부보다는 본사가 출근하기에도 편하고, 근무조건도 훨씬 좋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던 상진은 생각지도 못했던 자신의 승진소식에 어안이 벙벙했다. 믿겨지지 않았다. 아니, 어떤 회사가 인맥도 없이 이렇게 짧은 기간에 과장으로 승진을 시켜준다는 말인가. 자신과 면담을 맡은 사람의 직급이 직급인지라 대놓고 기뻐하지도 못하고, 그가 나간 후에도 상진은 멍하니 자리에 앉아있을 뿐이였다.
"최대리님. 사장님께서 올라오시랍니다."
면담실에 멍하니 앉아있던 상진을 한 여성직원이 불렀다. 그녀를 따라서 상진은 사장실로 향했다. 자신이 입사를 한 이후로는 단 한번도 근처에 갈 생각도 하지 못했던 사장실은 생각보다도 으리으리했다. 상진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오! 우리 최대리 왔구만! 하하하... 앉게나."
"네..."
멋지다, 그 이외에 어떤 수식어로 그 사장실을 묘사할 수 있을까. 상진은 자신의 승급건에 이어 그 화려한 사장실의 광경에 넋이 나가있었다.
"허허, 사람 참... 정신차리게 최대리!"
"아... 네... 네... 죄송합니다..."
"신이사한테 연락받았네. 신이사도 자네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네. 칭찬에 참 인색한 사람이말이야..."
"사장님... 그... 제가 승진을 하게 된다던데..."
"아? 그거? 당연하지. 자네가 어떤 사람인가. 앞으로 우리에게 닥친 시련을 함께 이겨나갈 동지 아닌가 동지. 내가 자네한테 섭섭하게 하면 안되지. 안그런가?"
"그래주시면야 저야 감사하지만... 사장님께 부담되는건 아닌지..."
"하하하. 쓸데없는 걱정말게. 잊었나? 내가 이 회사의 사장이란걸. 다른 말 없을거야. 그나저나..."
우사장은 서류 몇몇개를 살피면서 상진의 맞은편에 앉았고, 안전을 기하려는것인지 어둠을 살포하고 있었다. 이로써 만약 그들이 그 시험에 대한 대화를 하다가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위험은 사라졌다.
"최대리. 아직도 기술직에서 일하고싶나? 본사에 연구소쪽에 자리가 있긴한데... 알잖나. 그쪽이 워낙 텃세가 심하다는거. 다들 외국에서 박사학위 받고 나온 놈들이라서 콧대가 장난이 아니라네. 아마 힘들수도 있을거야."
"저는 사장님이 보내주시는대로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난 솔직히 자네를 보면서 자네가 단순히 기술직에서 머무는게 아쉬웠어. 엔지니어로 머물기에는 자네의 역량이 너무 아까워. 그래서 말인데... 인사과쪽에서 일하는건 어떤가? 마침 인사 E과에 자리가 비어서 말이야. 자네가 그쪽에 지식도 충분하고, 경험도 있고 하니 거기가 딱 적당한거같은데."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만... 인사과쪽 일을 해본적이 없어서 제가 잘 할 수 있을지는..."
"하하. 어려운거 없다네. 인사 E과가 하는 일은 그냥 입사시즌에 최종면접에 붙은 지원자들이랑 면접할 인원들 보내고, 결제만 하면 되는거야. 지원자들중에서도 연구직에 해당하는 인원들만 말이지. 어려운것도 없을거네. 눈치볼것도 없고. 정년을 앞둔 부장이 하나 있는데, 그 부장 바로 아래가 자네가 될걸세. 실질적인 자네의 직급은 부장이 되는거지. 다만 곧바로 부장으로 승진시키는건 너무 눈치가 보이고, 반대로 대리로 그 일을 맡는것도 눈치가 보이고 하니 과장정도까지만 승진을 시키는거고말이야."
"... 그... 후... 솔직히 사장님이니까 말씀드리는거지만 조금 부담됩니다..."
"하하, 사람 하고는... 부담가질거 없네. 아, 참. 그리고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아마 자네가 할 일은 굉장히 여유로울거야. 그래서말인데... 가끔 다른 회사쪽이랑 거래할 일이 있을때 자네에게 조금 그 일들을 맡기고 싶은데... 괜찮겠나?"
"... 분당지부에서도 늘 하던거였습니다. 맡겨만 주시면 최대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좋군. 좋구만. 하하... 그래도 어쨋든 회사라 형식이란게 필요하니까 다음주정도에 공지하겠네. 아마 본사로는 다다음주부터 출근하면 될거야. 그리고 승진은... 음... 보자. 2개월정도 후면 되겠구만."
"감사합니다. 사장님..."
상진은 우사장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였다. 사실 상진은 그 꿈을 꾸기 전까지는 우사장과의 안면이 거의 없다시피했었다. 술자리에서 한번 마주치긴 했었지만, 만약 꿈을 꾸지 않았다면 그정도의 인연으로는 이정도로 우사장이 자신을 위해 힘을 써주는 것을 상상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 꿈을 꾸고나서 하루하루가 지옥같고 불안한 시간의 연속이였다. 그 괴로움 속에 단 하나의 위안이 되주는 것, 아니... 어떻게 생각하면 남들은 가지지 못할 행운이 바로 이번 승진이라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이번엔 조금 다른 얘기일세. 성교수님이랑 장사장님이랑 말씀해서 이번주 금요일 밤에 부부끼리 모여서 저녁이라도 한끼 같이 하자는 얘기가 나왔네. 자네는 어떤가? 시간 괜찮지? 분당지부쪽에는 내가 자네의 시간을 비우라고 말은 해놓겠네만... 선약이라도 있으면..."
"아닙니다 아닙니다. 교수님이랑 사장님 두분께서 시간을 내주셨는데 제가 약속이 있었어도 깨고 거기로 가야죠. 수철이한테도 제가 연락하겠습니다."
"음... 그래... 자네... 와이프도 올 수 있는건가?"
"아마 딱히 약속은 없을겁니다. 그래도 제가 와이프한테 말은 해놓겠습니다."
"그래그래. 자네는 몰라도 자네 와이프에게 미리 약속이 있으면 너무 무리해서 데리고 올 필요는 없네."
"알겠습니다..."
상진의 귀가길은 어느때보다도 가벼웠다. 본사로 출근, 승진... 그 기쁜 소식을 자신의 아내인 미애에게 전해줄 수 있다는 사실때문에 그는 적잖이 흥분한 상태였다. 기분이 기분인지라 집에 들어가기 전에 꽃집에 들려서 장미꽃 10송이까지 샀다. 미애는 비싼데 굳이 그런걸 왜 사오냐며 정색할 것이 뻔했지만, 그정도의 정색은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었다. 승진을 하게되면서 받을 월급차이에 비하면 이까짓 장미꽃 10송이는 껌값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꽃집만 들린것이 아니였다. 오는길에 빵집도 보여서 미애가 좋아하는 생크림 케?까지 구매했다. 그리고 적당한 가격의 화이트와인까지. 오랫만에 분위기를 잡고 한창 연애하던 시절로 돌아가서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다.
설레임을 가득안고 도착한 현관문 앞에서 벨을 울렸고, 그를 맞이하는 미애... 어떻게 두 손으로 그 많은 것을 가지고 왔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그의 어깨에는 출근할때 가지고 나갔던 가방이 메어져있었고, 오른손에는 케?과 와인이 담겨져있는 긴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그것을 한손에 들고 있는것도 힘들텐데 왜 왼손은 뒤를 향해 감춘 것일지 미애는 잔뜩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뭐야? 왜 이런걸 사왔어..."
"하하... 그냥~"
"어휴... 불편했겠다... 그나저나 그거 뭘 숨긴거야?"
"아~ 이거? 쨔잔~~"
등 뒤로 숨겨둔 상진의 손에 들려진 장미꽃... 미애는 케?이며 와인이며, 게다가 꽃까지 선물받자 기분이 좋았지만 그것도 순간이였다. 오늘이 특별한 날도 아닌데 상진은 왜 이런 선물을 준비해온 것일까. 혹시라도 그날 상진이 했던 실수를 자신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이런 이벤트를 준비한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미애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자 상진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미애를 바라봤다.
"왜에... 싫어?"
"아니... 그건 아닌데..."
"치... 내 딴에는 당신 생각해서 사온건데 당신이 그런 표정 하니까 조금 섭섭하네..."
"아니야 아니야... 일단 들어와. 무슨 일 있었어? 갑자기 이런걸 사오고그래?"
상진의 손에 들린 것들을 미애가 건네받자 상진은 자신이 신었던 구두를 벗고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미애는 그에게서 달아나려고 했지만 그의 입술이 미애의 입술을 덮치는것이 더 빨랐다.
"지... 진짜... 갑자기 왜그래... 당신...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후후... 무슨 일 있었지요~ 듣고싶어?"
"... 좋은 일이야? 아니면 안좋은 일이야?"
"당신도 참... 생각해봐. 안좋은 일이면 내가 이런거 사왔겠어?"
하긴... 안좋은 일에 이런 선물까지 사오고, 잔뜩 상기된 얼굴로 들어오자마자 키스를 할리는 없겠지, 라는 생각이 든 미애는 상진의 이끌림에 쇼파에 앉았다. 분명 그들의 말에 의하면 상진이 회사에서 큰 실수를 했다고 했는데 지금 자신의 눈 앞의 상진은 실수를 했다는 것에 불안해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의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는것 같았다. 그들이 거짓말을 한걸까... 아니, 그들의 말에 거짓은 없어보였다. 게다가 그들을 의심하는 자신의 표정에 그들이 보여줬던 몇장의 사진... 상진이 주점에서 다른 남자들과 함께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는 사진까지 봤기 때문에 그들을 의심할 순 없었다. 미애는 상진의 기쁜 표정에 대놓고 의심을 하는 표정을 짓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의심이 아예 사라지진 않았다.
"자, 잘 들어. 여보. 나 이제 본사로 출근해!"
"... 겨우 그거야...?"
"겨우 그거라니? 출퇴근하기도 좋은데데가 일까지 편해. 아마 예전처럼 집에 늦게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을거야."
"...... 그래? ... 잘됐네..."
"그리고 진짜 중요한 빅뉴스~ 나 과장으로 승진한대!"
"... 정말...? 당신 대리로 승진한지 얼마나 됐다고..."
"그치? 나도 믿지 못하겠는데 우리 사장님이 나를 좀 좋게 봤나봐."
"그... 당신 회사 사장님이...?"
상진은 미애에게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건넸다. 인사이동건부터 시작해서 승진까지... 그것을 다 듣고 나서야 미애는 상진에게 미소를 보였고, 미소짓는 미애를 보며 상진은 그녀를 힘껏 끌어안았다.
"다 잘 될거야... 여보... 2년, 아니... 1년... 1년만 더 참자... 그 다음에 우리 애들도 낳고... 집도 옮기고... 그렇게 행복하게 살자... 알았지...?"
"응... 여보... 다 잘... 될거야..."
상진에게 안긴 미애는 그의 따스한 품을 느끼면서도 그의 승진이 의미하는게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리고 아직 의심단계에 불과했지만 그들은 마치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것 같았다. 자신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상진이 승진을 하는지, 아니면 감옥을 가게 되는지 결정되니 네가 알아서 잘 선택해라, 라는 식의 협박...
하지만 그 불안감을 상진의 앞에서 차마 표출할 순 없었다. 상진이 말한 대로였다. 반년... 반년만 참으면 된다. 반년만 참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상진이 말한대로 상진과 자신이 꿈꿔왔던 미래를 가질 수 있었다. 그녀가 장현우의 악마같은 제안에 망설였었던 것 또한 지금 자신의 앞에서 기대감에 잔뜩 젖은채 말하는 상진의 모습을 보자 그녀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래... 내가... 여태까지 당신이 고생했으니까 이제는 내가 대신 우리의 미래를 위해 희생할게..."
"여보... 왠지 별로 안좋아하는거같은데....?"
"아냐아냐! 너무 갑작스러워서... 호호... 이제는 우리 여보를 최과장님이라고 불러야겠네~?"
"아직은 아니야. 2달정도 기다리라고 했으니깐... 아 참. 당신, 이번주 금요일에 시간 있어?"
"금요일? 갑자기 왜...?"
"어떻게 하다보니까 우리 사장님이랑 거래처 사장님이랑 나 대학다니던 시절 교수님, 그리고 전에 봤던 수철이놈 있지? 그렇게 모여서 부부동반으로 저녁이나 한끼 하자고 했거든. 혹시 시간 되나 해서."
"아... 응... 시간 되..."
올것이 왔다는 생각. 미애가 그런 생각을 하는지를 알리가 없는 상진은 그렇게 계속 미애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 자리에 앉은 상진에게도, 미애에게도 오늘처럼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 온 적은 없다고 생각했다. 어지간한 원룸방보다 큰 방에 커다란 원형테이블... 고급스러운 목재 식탁... 그리고 음식이라기보다는 장식에 가까워보이는 에피타이저들... 그곳에 앉은 5쌍의 부부는 어색하면서도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물론 미애는 그 중에서도 특히 장현우의 얼굴을 보는것만으로도 역겨울 지경이였지만 칼자루가 장현우의 손아귀에 쥐어져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태연하게 그들을 처음본다는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자자, 그럼 최과장. 승진기념으로 한마디 하지 그래."
"아... 저... 하하... 갑작스럽게 말을 하려니 참..."
"최군. 이런 자리에서 자네가 아니면 누가 말하겠나. 신경쓰지 말고 한마디 하게나."
"아... 그럼... 이렇게 저를 축하할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님부터 시작해서 교수님... 그리고 수철이까지...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저희의 앞날이 밝길 바라며 한잔 하시죠."
"건배~"
상진을 포함한 10사람이 자신들의 잔에 든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원샷은 아니고 와인답게 한모금, 그 많은 사람중에 수철은 남들은 거의 티가 나지도 않게 마신것에 비해 거의 반이나 넘는 양을 들이삼켰고, 그런 수철의 모습을 보며 그의 아내인 희진이 눈치를 주었고, 그 모습을 보는 다른 부부들은 모두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수철씨라고 했죠?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저희 회사에 자리가 있어서말인데... 어떠신가요?"
"아... 그야... 자리만 마련해주신다면야... 하하..."
"어머, 사장님. 굳이 그러실 필요 없어요. 안그래도 저희 이이때문에 제가 얼마나 편한데요."
"아닙니다. 물론 희진씨가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남자가 너무 여자한테 의존하면 보기 안좋습니다.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그래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지금은 괜찮다고 생각하실지 몰라도 나중에 또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거고,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그렇게 나쁜놈은 아닙니다. 섭섭치 않게 수철씨를 대우해줄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 그래주시면야... 좋은데... 여보, 당신 생각은 어때? 당신도 그냥 취업하고싶어?"
"나... 나야... 아무래도 장사장님 아래서 일하는게 좋긴 하지... 아아 물론 당신 도와주는게 싫다는건 아니야. 그냥...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순 없는거니까..."
수철의 대답에 희진도 납득을 한다는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수철이 장사장의 회사에 입사되는 건이 마무리되었다. 상진은 내심 기뻐하는 수철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취업을 한것마냥 함께 기뻐해줬다. 요즘같은 시대에 취업하는것이 너무나도 힘들다고 다들 말하지만, 이런 인맥 하나에 참 쉽게도 취업문에 열린다는 생각이 들자 참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니 뭐니해도 결국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학연, 지연, 혈연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희진씨... 제가 부탁이 있는데.. 수철씨를 취업시켜주는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제 아내좀 희진씨 회사에 일하게 할 수 없을까요?"
"네? 뭐... 그거야... 어렵진 않은데... 호호... 그런데 언니가 굳이 밖에서 일할 필요가 있을까요?"
희진은 5쌍의 부부의 아내들 중 가장 어렸지만 그 특유의 외향적인 성격때문에 미애를 포함한 다른 부인들과 빠르게 친해졌고, 어느새 그녀들을 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상진도, 수철도 그들이 전에 한번 의논했었던, 소위 은연중에 서로의 아내를 보호한다는 -말이 좋아서 보호지, 실은 감시한다는 의미에 가까웠지만- 예의 그 이야기가 드디어 나온다는 생각에 그녀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속내를 알리가 없던 희진은 그저 뜻밖이라는 표정을 하고 있을 뿐이였다.
"뭐... 어차피 저희도 사람이 필요하기야 한데... 언니 생각은 어때요?"
"나도 뭐... 호호... 집에서 맨날 눌러앉아있기 따분해. 희진이만 OK하면 나야 좋지... 근데 일은 어때? 어려워?"
"아니요. 뭐... 게시판 확인하는거나 전화받는 일도 가능은 한데... 이건 조금 스트레스 받는 일이라서... 음. 아, 그거 좋겠네요. 사진같은거 확인하는 일, 어렵지도 않고 할 일도 많지도 않고... 쉽게 배우실 수 있을거에요. 전에 하던 남자는 조금 못미더워서..."
"어머, 그래? 그럼 어려운거 아니야?"
"아니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라요. 아무래도 남자라서 그런지 눈썰미가 조금... 꼼꼼하지도 못하고... 아무튼 마음에 안들었거든요."
"그렇구나~ 여보여보. 저 언제부터 나가면 될까요?"
"당신이 희진씨한테 물어봐야지. 내가 당신 사장인가? 앞으로 희진씨가 당신 사장일텐데. 하하..."
희진은 쿨하게 장현우의 아내인 이은영을 받아들이겠다고 말을 했다. 눈치를 살피던 성찬현 교수도 생각했던것보다 일이 쉽게 풀린다는것을 느끼고는 말을 꺼냈다.
"희진씨, 아까 들어서 알겠지만 제 아내가 장사장님의 아내의 동생이에요. 제 아내도 어떻게 좀... 안되겠어요?"
"호호... 은주언니까지요? 으음~ 그건 조금 생각해봐야겠는데 안될건 없죠. 생각해볼게요."
상진도, 그리고 미애 또한 이제는 미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차례라고 생각했다. 상진의 경우에는 미리 남자들끼리 모였을때 이야기를 했었기에 그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미애가 그들의 대화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였다. 다만, 그들이 각자의 부인을 신경써주는척 하는 것이 결국은 자연스럽게 미애를 자신의 곁에 두려고 한 장현우의 계획이라고만 생각할 뿐이였다. 그러나 뜻밖에 먼저 그녀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다름아닌 성찬현 교수였다.
"최군, 그나저나 자네 아내는 딱히 하는거 없나?"
"네... 뭐..."
"요즘 젊은 친구들은 다들 맞벌이를 한다던데, 자네 부부는 조금 다른가보구만."
"아... 결혼하면서 이사람이 집안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내조! 이야 최대리... 아니, 최과장. 부럽구만... 우리 아내는 여?까지 집에만 있으면서 내조는 커녕..."
"여... 여보...! 제가 언제..."
장현우의 부럽다는듯한 말에 다들 크게 웃었다. 그 분위기에서 자신만 웃지 않는것도 어색한것같아 미애도 억지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무튼 최과장. 자네가 아무리 승진을 한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벌이가 충분치 않을거야. 이참에 자네 부인도 어떻게 일자리좀 마련해야하는거 아닌가?"
"아... 어디 괜찮은 자리 있습니까 사장님?"
"으음... 마침 장사장님 회사에 비서자리가 빈다고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아 참, 미애씨 생각은.... 어떠세요...?"
마치 미리 짜인듯한 각본대로 흘러가는 그들의 대화, 미애는 순간 화가 나서 치가 떨릴 지경이였지만 애써 끓어오르는 분노를 삼켰다. 이곳엔 그들뿐만 아니라 그녀가 사랑하는 남편인 상진까지 있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화기애애한 이 자리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될수도 있는 노릇이니...
"아... 뭐... 저야... 시켜만 주신다면야..."
그것은 승낙의 의미였다. 하지만 단순한 승낙이 아니였다. 그저 장현우의 회사에서 비서로 일하는것이 어떻냐에 대한 승낙이 아닌, 그들이 제안했던 그 치욕적인 신체포기각서에 서명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의 질문은 그 신체포기각서에 서명을 하겠냐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사회생활이 없는 미애라고 할지라도 그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그것도 그럴것이 그녀의 대답을 들은 장현우의 미소가 어딘지모르게 게슴츠레했었다.
"하하, 자세한건 나중에 얘기합시다. 그나저나 벌써 시간이 이렇게 映봇? 음... 이제 각자 집에 갈 시간이군요."
"후훗. 당신들은 알아서 집으로 가요. 여자들은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인데 여자들끼리 놀테니까."
"뭐어?"
"그래그래, 여보. 나도 언니들이랑 같이 놀게. 괜찮지?"
갑작스러운 그녀들의 제안. 우도혁의 아내였던 김연희가 주도적으로 해서 희진까지 적극적으로 여자들끼리 나가서 따로 놀겠다는 말을 했다. 남편들은 그녀들을 막을 수 없었다. 불안하기도 했지만 여자가 5명이나 되는데, 딱히 헤코지를 할 위험은 없을 것이다. 특히나 같은 시험을 치고있는 그들의 경쟁자들이라고 할지라도, 각개격파식으로 여자들 한명씩 노리는 것이 아닌, 이렇게 다같이 모여있으면 섣부른 행동을 할 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저... 가기 전에 잠깐 화장실좀..."
"천천히 와요 언니. 아직 저는 아직 커피 다 안마셨으니까 기다릴게요. 아, 남자들은 먼저 가도 되요. 호호호..."
"... 이거이거 쫓겨나게 생겼네... 알았어 알았어. 사라져줄게. 참내..."
화장실을 갈 사람은 화장실로 가고, 우사장과 성교수는 먼저 일어나서 계산을 한 후 담배를 핀다며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상진과 수철은 우사장 일행을 따라갈지, 아니면 화장실에 간 장사장을 기다릴지 고민했지만 장사장이 전화를 받으며 비상구 계단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는 그를 기다리는것보다는 먼저 나가서 우사장, 그리고 성교수와 함께 있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고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한편 소변을 본 후 미애는 거울을 보며 살짝 상기된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장현우가 바라보는것만으로도 너무나도 치욕스러운 기분이였다. 눈으로 강간당한다, 라는 표현은 이런때에 쓰이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한숨을 내쉬는 사이, 그녀의 핸드폰에 문자가 도착했다.
-최과장 내려갔어. 여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비상구 계단으로 와. 안오면 알지?
장현우였다. 장현우가 문자를 보낸것도 기분이 나빳지만 더욱 기분이 나빳던 것은 그가 어느새 자신에게 반말을 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그녀의 기분따위 중요한 것이 아니였다. 그녀가 아까 승낙을 한 이상 그녀의 기분따위 그에겐 전혀 중요치 않았으리라...
미애는 조심스럽게 화장실에서 나와 그녀들이 앉아있는 곳을 쳐다봤다. 다행히 미애는 그녀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 말은 즉 그녀들 또한 미애를 볼 수 없다는 말이였다. 미애는 눈치를 살피며 밖으로 향한 후 비상구계단이라고 써져있는 곳의 문을 열었다. 잠시 두리번거리니 몇 계단 위에서 장현우가 비열한 웃음을 짓고는 마치 자신에게 오라는듯 손가락을 까딱대고 있었다.
죽고만 싶었다. 절대로 그자의 곁에 가고 싶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상진의 품에 달려가 모든 것을 놓아버리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상진을 위해서, 상진의 마음을 배신해야하는... 그녀의 행동이 모순 그 자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녀는 상진이 아닌, 장현우가 서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하하. 마음을 정했나보군."
"......"
"어디, 한번 비서로 쓸만한지 확인해볼까?"
"자... 잠깐!! 어... 어딜 만지는거에요!!!"
"쉿!! 누구한테 망신당하고 싶어서 그렇게 큰 소리를 지르는거야? 조용히해봐. 으으~~ 엉덩이가 빵빵하니 좋구만."
이럴걸 어느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밖에서 다른 남자에게 엉덩이를 유린당하니 미애는 죽고만 싶은 심정이였다. 여자를 배려해주는 마음따위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장현우의 손길에 미애는 소름이 돋을 지경이였다. 비록 꽤 긴 정장 치마를 입고 있었던 미애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발가벗은 그녀의 몸을 장현우가 만지는듯한 기분이였다.
"하하하. 더 만지고 싶으면 우리가 함께할 날이 많으니까. 그럼 앞으로 기대하지. 미애씨. 아니... 정비서. 하하하!!"
미애의 엉덩이를 우악스럽게 만지던 장현우가 미애의 젖가슴을 한번 움켜쥐는것을 끝으로 비상구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 어두운 계단에 홀로 남겨진 미애는 가까스로 몸을 추스려 다시 화장실로 향한 후 빈 칸의 문을 닫았다. 밀폐된 공간, 아무리 장현우가 변태같은 놈이라고 할지라도 여자화장실을 열고 들이닥치진 않을 것이다... 안전한 공간에 도착했다는 생각이 들고나서야 그녀는 몸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변기에 주저앉았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미안... 미안 여보... 흑흑... 죽고싶어... 나 못하겠어... 못하겠단말이야... 흑흑..."
~ 성찬현의 집
그들, 즉 우사장을 비롯해 장사장, 상진, 그리고 수철과 함께 가볍게 2차에서 맥주 한잔을 걸치고 집에 들어온 찬현이 샤워를 마친채 가운을 입고 욕실에서 나오자, 그 시간에 맞추기라도 한듯 성찬현의 부인인 이은주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찬현은 은주에게 시선 한번 던지지 않았다. 그것이 뭘 의미하는건지 은주는 아는지 들어오자마자 서랍을 열어 회초리같이 생긴 물건을 손에 들고는 찬현의 앞으로 향했다.
"죄송해요 주인님. 제가 오늘따라 주인님께 말대답을 많이 했어요. 벌해주세요."
"됐어. 후후... 그정도야 용서해주지. 내가 시킨대로 잘 따라줬잖아."
"... 그래도..."
"그나저나 오늘 어땟나? 오랫만에 네년의 옛 주인을 본 소감이."
"저의 주인님은 제 눈앞에 계신..."
"거짓말치지마. 후후... 아마 그녀석의 얼굴을 보자마자 보지가 벌렁벌렁거려서 견딜수가 없었겠지. 안그래?"
"아아... 주인님... 너무해요..."
"후후... 은주야... 주인한테 거짓말치면 안좋은거야... 그래도 거짓말 칠래? 다시 한번 물어볼게. 그녀석 보고 흥분했어 안했어?"
"... 죄송해요... 죄송해요..."
"하하하. 아니야. 괜찮아. 이해해주지. 오늘은 기분이 아주 좋으니말이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은주. 하지만 여전히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은채로 있었다. 찬현은 그녀에게 씻으라고 말을 한 후 전화기를 주워들었다.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찬현...
"아아, 그래. 오늘 어땟나?"
-큭큭... 그년 그거 아주 죽여주더군요. 엉덩이만 만졌는데 어찌나 꼴리는지. 하마터면 그자리에서 자빠트릴뻔했다니깐요.
"이사람아. 앞으로 훨씬 더 많이 참아야할텐데 벌써부터 그래서 어떻게하나!"
-압니다 압니다. 그래서 참지 않았습니까. 뭐... 그나저나 그년 가슴도 죽여주더군요. 후후...
"자네도 참 못말리는군."
-그나저나 정말 괜찮은겁니까? 그대로 실행해도?
"응. 오늘 그자가 말해줬다네. 후후... 그건 상관없는 모양이야. 뭐... 영상까지 보내줬으니까 확실하겠지."
-그자도 참 무서운자군요. 복수를 위해 그렇게까지 하다니...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 잊었나? 하하하... 아무튼 자게나."
-네, 알겠습니다. 형님도 주무십시오.
전화가 끊기자 욕실에서 은주가 알몸으로 나왔다. 어차피 찬현의 말 없이는 옷을 입을 수 없는 그녀였기에 가운마저 걸칠 수 없는 그녀였다.
"주인님... 요즘... 작은 주인님이랑 재미있는거 꾸미시는거에요...?"
"후후...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궁금해하지 말고 천천히 기대해보라고."
그들의 집은 찬현의 비열한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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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네요. 죄송합니다.
밀린 야설도 좀 보고
애니메이션도 좀 보고
이래저래 머리좀 식혔어요.
근데 나름 자체휴가를 즐긴거 치고는 글쓰는 속도는 여전히 더딘...
이게 특정 부분 쓰면 진짜 뭐에 홀린듯 글을 써내려가게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속도도 안나고 괴롭기만 괴롭고 이래저래 짜증.
무엇보다... 이 소설의 메인 장르가 네토잖아요?
근데 저는 네토를 싫어해요.
하지만 네토장르의 글을 쓰고있죠.
무슨 말을 하고 싶냐면....
글을 쓰는 저 자신도 이 글을 쓰면서 멘탈에 타격을 입는다는거 ㅠㅠ
아..... 글을 읽으시는분은 뭐 이정도가지고 멘탈에 타격을 입냐고 하겠지만
저는 이 글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잖아요?
윽.... 멘탈이... 후....
아무튼 다음편은 조금 더 일찍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요.
목요는 목요일 안에.
그럼 이만...
~
오늘 상진은 자신이 평소 출근하던 분당지부가 아니라 본사로 출근을 하고 있었다. 전에 우사장에게 본사에서 근무를 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을때는 그저 농담인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상진의 인사이동건은 상진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본사 인사과의 사람들과의 간단한 면담을 하는 날... 원래대로라면 그동안의 실적, 평판 등을 토대로 상진이 본사로 인사이동을 하는 것이 좋은지, 어디로 이동라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인사과의 높으신 분들에게 굉장히 오랜 시간동안 시달려야했지만, 우사장의 입김이 닿아서인지 그들과의 면담은 거의 잡담수준에 불과했다. 아니, 오히려 직급이 자신보다 훨씬 높은 그들이 상진의 눈치를 살피는 기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음... 그나저나 학부출신치고 설계부서에서 그렇게 실적을 올린 사람은 여태까지 아무도 없었네. 이건 왠만한 외국대학 박사출신들도 힘든건데... 대단하구만."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전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겸손하기까지 하구만. 그쯤되면 과장까지 승진해도 별 말은 없겠어."
"... 네...?"
"아, 얘기 못들었나? 이번 인사이동은 단순히 자네의 부서만 달라지는건 아닐세. 우리 회사에 비정기 승진제도가 있는건 알고 있지? 그중에 자네의 과장승진건도 있다네."
"하지만... 제가 과장을 달기에는 경력도 얼마 안되고..."
"허허, 승진에 경력이 중요한가? 자네보다 능력도 없고 실적도 없는데도 자네보다 빨리 승진한 케이스도 많아. 다들 알면서도 쉬쉬할 뿐이지. 그에 비하면 자네는 어쨋든 능력도 있고 확실한 실적이 있으니 딱하 다른 말은 안나올거네. 게다가 사장님도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커보이고 말이야."
"......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한테 감사할게 뭐있나. 사장님께 감사해야지. 아무튼 좋은 결과 기대해도 좋을거네."
아무래도 분당지부보다는 본사가 출근하기에도 편하고, 근무조건도 훨씬 좋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던 상진은 생각지도 못했던 자신의 승진소식에 어안이 벙벙했다. 믿겨지지 않았다. 아니, 어떤 회사가 인맥도 없이 이렇게 짧은 기간에 과장으로 승진을 시켜준다는 말인가. 자신과 면담을 맡은 사람의 직급이 직급인지라 대놓고 기뻐하지도 못하고, 그가 나간 후에도 상진은 멍하니 자리에 앉아있을 뿐이였다.
"최대리님. 사장님께서 올라오시랍니다."
면담실에 멍하니 앉아있던 상진을 한 여성직원이 불렀다. 그녀를 따라서 상진은 사장실로 향했다. 자신이 입사를 한 이후로는 단 한번도 근처에 갈 생각도 하지 못했던 사장실은 생각보다도 으리으리했다. 상진이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오! 우리 최대리 왔구만! 하하하... 앉게나."
"네..."
멋지다, 그 이외에 어떤 수식어로 그 사장실을 묘사할 수 있을까. 상진은 자신의 승급건에 이어 그 화려한 사장실의 광경에 넋이 나가있었다.
"허허, 사람 참... 정신차리게 최대리!"
"아... 네... 네... 죄송합니다..."
"신이사한테 연락받았네. 신이사도 자네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네. 칭찬에 참 인색한 사람이말이야..."
"사장님... 그... 제가 승진을 하게 된다던데..."
"아? 그거? 당연하지. 자네가 어떤 사람인가. 앞으로 우리에게 닥친 시련을 함께 이겨나갈 동지 아닌가 동지. 내가 자네한테 섭섭하게 하면 안되지. 안그런가?"
"그래주시면야 저야 감사하지만... 사장님께 부담되는건 아닌지..."
"하하하. 쓸데없는 걱정말게. 잊었나? 내가 이 회사의 사장이란걸. 다른 말 없을거야. 그나저나..."
우사장은 서류 몇몇개를 살피면서 상진의 맞은편에 앉았고, 안전을 기하려는것인지 어둠을 살포하고 있었다. 이로써 만약 그들이 그 시험에 대한 대화를 하다가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위험은 사라졌다.
"최대리. 아직도 기술직에서 일하고싶나? 본사에 연구소쪽에 자리가 있긴한데... 알잖나. 그쪽이 워낙 텃세가 심하다는거. 다들 외국에서 박사학위 받고 나온 놈들이라서 콧대가 장난이 아니라네. 아마 힘들수도 있을거야."
"저는 사장님이 보내주시는대로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난 솔직히 자네를 보면서 자네가 단순히 기술직에서 머무는게 아쉬웠어. 엔지니어로 머물기에는 자네의 역량이 너무 아까워. 그래서 말인데... 인사과쪽에서 일하는건 어떤가? 마침 인사 E과에 자리가 비어서 말이야. 자네가 그쪽에 지식도 충분하고, 경험도 있고 하니 거기가 딱 적당한거같은데."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만... 인사과쪽 일을 해본적이 없어서 제가 잘 할 수 있을지는..."
"하하. 어려운거 없다네. 인사 E과가 하는 일은 그냥 입사시즌에 최종면접에 붙은 지원자들이랑 면접할 인원들 보내고, 결제만 하면 되는거야. 지원자들중에서도 연구직에 해당하는 인원들만 말이지. 어려운것도 없을거네. 눈치볼것도 없고. 정년을 앞둔 부장이 하나 있는데, 그 부장 바로 아래가 자네가 될걸세. 실질적인 자네의 직급은 부장이 되는거지. 다만 곧바로 부장으로 승진시키는건 너무 눈치가 보이고, 반대로 대리로 그 일을 맡는것도 눈치가 보이고 하니 과장정도까지만 승진을 시키는거고말이야."
"... 그... 후... 솔직히 사장님이니까 말씀드리는거지만 조금 부담됩니다..."
"하하, 사람 하고는... 부담가질거 없네. 아, 참. 그리고 한가지 부탁이 있는데... 아마 자네가 할 일은 굉장히 여유로울거야. 그래서말인데... 가끔 다른 회사쪽이랑 거래할 일이 있을때 자네에게 조금 그 일들을 맡기고 싶은데... 괜찮겠나?"
"... 분당지부에서도 늘 하던거였습니다. 맡겨만 주시면 최대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좋군. 좋구만. 하하... 그래도 어쨋든 회사라 형식이란게 필요하니까 다음주정도에 공지하겠네. 아마 본사로는 다다음주부터 출근하면 될거야. 그리고 승진은... 음... 보자. 2개월정도 후면 되겠구만."
"감사합니다. 사장님..."
상진은 우사장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였다. 사실 상진은 그 꿈을 꾸기 전까지는 우사장과의 안면이 거의 없다시피했었다. 술자리에서 한번 마주치긴 했었지만, 만약 꿈을 꾸지 않았다면 그정도의 인연으로는 이정도로 우사장이 자신을 위해 힘을 써주는 것을 상상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 꿈을 꾸고나서 하루하루가 지옥같고 불안한 시간의 연속이였다. 그 괴로움 속에 단 하나의 위안이 되주는 것, 아니... 어떻게 생각하면 남들은 가지지 못할 행운이 바로 이번 승진이라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이번엔 조금 다른 얘기일세. 성교수님이랑 장사장님이랑 말씀해서 이번주 금요일 밤에 부부끼리 모여서 저녁이라도 한끼 같이 하자는 얘기가 나왔네. 자네는 어떤가? 시간 괜찮지? 분당지부쪽에는 내가 자네의 시간을 비우라고 말은 해놓겠네만... 선약이라도 있으면..."
"아닙니다 아닙니다. 교수님이랑 사장님 두분께서 시간을 내주셨는데 제가 약속이 있었어도 깨고 거기로 가야죠. 수철이한테도 제가 연락하겠습니다."
"음... 그래... 자네... 와이프도 올 수 있는건가?"
"아마 딱히 약속은 없을겁니다. 그래도 제가 와이프한테 말은 해놓겠습니다."
"그래그래. 자네는 몰라도 자네 와이프에게 미리 약속이 있으면 너무 무리해서 데리고 올 필요는 없네."
"알겠습니다..."
상진의 귀가길은 어느때보다도 가벼웠다. 본사로 출근, 승진... 그 기쁜 소식을 자신의 아내인 미애에게 전해줄 수 있다는 사실때문에 그는 적잖이 흥분한 상태였다. 기분이 기분인지라 집에 들어가기 전에 꽃집에 들려서 장미꽃 10송이까지 샀다. 미애는 비싼데 굳이 그런걸 왜 사오냐며 정색할 것이 뻔했지만, 그정도의 정색은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었다. 승진을 하게되면서 받을 월급차이에 비하면 이까짓 장미꽃 10송이는 껌값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꽃집만 들린것이 아니였다. 오는길에 빵집도 보여서 미애가 좋아하는 생크림 케?까지 구매했다. 그리고 적당한 가격의 화이트와인까지. 오랫만에 분위기를 잡고 한창 연애하던 시절로 돌아가서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다.
설레임을 가득안고 도착한 현관문 앞에서 벨을 울렸고, 그를 맞이하는 미애... 어떻게 두 손으로 그 많은 것을 가지고 왔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그의 어깨에는 출근할때 가지고 나갔던 가방이 메어져있었고, 오른손에는 케?과 와인이 담겨져있는 긴 쇼핑백이 들려있었다. 그것을 한손에 들고 있는것도 힘들텐데 왜 왼손은 뒤를 향해 감춘 것일지 미애는 잔뜩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뭐야? 왜 이런걸 사왔어..."
"하하... 그냥~"
"어휴... 불편했겠다... 그나저나 그거 뭘 숨긴거야?"
"아~ 이거? 쨔잔~~"
등 뒤로 숨겨둔 상진의 손에 들려진 장미꽃... 미애는 케?이며 와인이며, 게다가 꽃까지 선물받자 기분이 좋았지만 그것도 순간이였다. 오늘이 특별한 날도 아닌데 상진은 왜 이런 선물을 준비해온 것일까. 혹시라도 그날 상진이 했던 실수를 자신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이런 이벤트를 준비한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미애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자 상진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미애를 바라봤다.
"왜에... 싫어?"
"아니... 그건 아닌데..."
"치... 내 딴에는 당신 생각해서 사온건데 당신이 그런 표정 하니까 조금 섭섭하네..."
"아니야 아니야... 일단 들어와. 무슨 일 있었어? 갑자기 이런걸 사오고그래?"
상진의 손에 들린 것들을 미애가 건네받자 상진은 자신이 신었던 구두를 벗고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미애는 그에게서 달아나려고 했지만 그의 입술이 미애의 입술을 덮치는것이 더 빨랐다.
"지... 진짜... 갑자기 왜그래... 당신...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후후... 무슨 일 있었지요~ 듣고싶어?"
"... 좋은 일이야? 아니면 안좋은 일이야?"
"당신도 참... 생각해봐. 안좋은 일이면 내가 이런거 사왔겠어?"
하긴... 안좋은 일에 이런 선물까지 사오고, 잔뜩 상기된 얼굴로 들어오자마자 키스를 할리는 없겠지, 라는 생각이 든 미애는 상진의 이끌림에 쇼파에 앉았다. 분명 그들의 말에 의하면 상진이 회사에서 큰 실수를 했다고 했는데 지금 자신의 눈 앞의 상진은 실수를 했다는 것에 불안해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의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는것 같았다. 그들이 거짓말을 한걸까... 아니, 그들의 말에 거짓은 없어보였다. 게다가 그들을 의심하는 자신의 표정에 그들이 보여줬던 몇장의 사진... 상진이 주점에서 다른 남자들과 함께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는 사진까지 봤기 때문에 그들을 의심할 순 없었다. 미애는 상진의 기쁜 표정에 대놓고 의심을 하는 표정을 짓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의심이 아예 사라지진 않았다.
"자, 잘 들어. 여보. 나 이제 본사로 출근해!"
"... 겨우 그거야...?"
"겨우 그거라니? 출퇴근하기도 좋은데데가 일까지 편해. 아마 예전처럼 집에 늦게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을거야."
"...... 그래? ... 잘됐네..."
"그리고 진짜 중요한 빅뉴스~ 나 과장으로 승진한대!"
"... 정말...? 당신 대리로 승진한지 얼마나 됐다고..."
"그치? 나도 믿지 못하겠는데 우리 사장님이 나를 좀 좋게 봤나봐."
"그... 당신 회사 사장님이...?"
상진은 미애에게 자신이 들은 이야기를 건넸다. 인사이동건부터 시작해서 승진까지... 그것을 다 듣고 나서야 미애는 상진에게 미소를 보였고, 미소짓는 미애를 보며 상진은 그녀를 힘껏 끌어안았다.
"다 잘 될거야... 여보... 2년, 아니... 1년... 1년만 더 참자... 그 다음에 우리 애들도 낳고... 집도 옮기고... 그렇게 행복하게 살자... 알았지...?"
"응... 여보... 다 잘... 될거야..."
상진에게 안긴 미애는 그의 따스한 품을 느끼면서도 그의 승진이 의미하는게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리고 아직 의심단계에 불과했지만 그들은 마치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것 같았다. 자신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상진이 승진을 하는지, 아니면 감옥을 가게 되는지 결정되니 네가 알아서 잘 선택해라, 라는 식의 협박...
하지만 그 불안감을 상진의 앞에서 차마 표출할 순 없었다. 상진이 말한 대로였다. 반년... 반년만 참으면 된다. 반년만 참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상진이 말한대로 상진과 자신이 꿈꿔왔던 미래를 가질 수 있었다. 그녀가 장현우의 악마같은 제안에 망설였었던 것 또한 지금 자신의 앞에서 기대감에 잔뜩 젖은채 말하는 상진의 모습을 보자 그녀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래... 내가... 여태까지 당신이 고생했으니까 이제는 내가 대신 우리의 미래를 위해 희생할게..."
"여보... 왠지 별로 안좋아하는거같은데....?"
"아냐아냐! 너무 갑작스러워서... 호호... 이제는 우리 여보를 최과장님이라고 불러야겠네~?"
"아직은 아니야. 2달정도 기다리라고 했으니깐... 아 참. 당신, 이번주 금요일에 시간 있어?"
"금요일? 갑자기 왜...?"
"어떻게 하다보니까 우리 사장님이랑 거래처 사장님이랑 나 대학다니던 시절 교수님, 그리고 전에 봤던 수철이놈 있지? 그렇게 모여서 부부동반으로 저녁이나 한끼 하자고 했거든. 혹시 시간 되나 해서."
"아... 응... 시간 되..."
올것이 왔다는 생각. 미애가 그런 생각을 하는지를 알리가 없는 상진은 그렇게 계속 미애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 자리에 앉은 상진에게도, 미애에게도 오늘처럼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 온 적은 없다고 생각했다. 어지간한 원룸방보다 큰 방에 커다란 원형테이블... 고급스러운 목재 식탁... 그리고 음식이라기보다는 장식에 가까워보이는 에피타이저들... 그곳에 앉은 5쌍의 부부는 어색하면서도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물론 미애는 그 중에서도 특히 장현우의 얼굴을 보는것만으로도 역겨울 지경이였지만 칼자루가 장현우의 손아귀에 쥐어져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태연하게 그들을 처음본다는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자자, 그럼 최과장. 승진기념으로 한마디 하지 그래."
"아... 저... 하하... 갑작스럽게 말을 하려니 참..."
"최군. 이런 자리에서 자네가 아니면 누가 말하겠나. 신경쓰지 말고 한마디 하게나."
"아... 그럼... 이렇게 저를 축하할 자리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님부터 시작해서 교수님... 그리고 수철이까지...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저희의 앞날이 밝길 바라며 한잔 하시죠."
"건배~"
상진을 포함한 10사람이 자신들의 잔에 든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원샷은 아니고 와인답게 한모금, 그 많은 사람중에 수철은 남들은 거의 티가 나지도 않게 마신것에 비해 거의 반이나 넘는 양을 들이삼켰고, 그런 수철의 모습을 보며 그의 아내인 희진이 눈치를 주었고, 그 모습을 보는 다른 부부들은 모두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수철씨라고 했죠?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저희 회사에 자리가 있어서말인데... 어떠신가요?"
"아... 그야... 자리만 마련해주신다면야... 하하..."
"어머, 사장님. 굳이 그러실 필요 없어요. 안그래도 저희 이이때문에 제가 얼마나 편한데요."
"아닙니다. 물론 희진씨가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남자가 너무 여자한테 의존하면 보기 안좋습니다. 최소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그래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지금은 괜찮다고 생각하실지 몰라도 나중에 또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거고,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그렇게 나쁜놈은 아닙니다. 섭섭치 않게 수철씨를 대우해줄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 그래주시면야... 좋은데... 여보, 당신 생각은 어때? 당신도 그냥 취업하고싶어?"
"나... 나야... 아무래도 장사장님 아래서 일하는게 좋긴 하지... 아아 물론 당신 도와주는게 싫다는건 아니야. 그냥...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순 없는거니까..."
수철의 대답에 희진도 납득을 한다는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수철이 장사장의 회사에 입사되는 건이 마무리되었다. 상진은 내심 기뻐하는 수철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취업을 한것마냥 함께 기뻐해줬다. 요즘같은 시대에 취업하는것이 너무나도 힘들다고 다들 말하지만, 이런 인맥 하나에 참 쉽게도 취업문에 열린다는 생각이 들자 참 허무하게만 느껴졌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니 뭐니해도 결국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학연, 지연, 혈연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희진씨... 제가 부탁이 있는데.. 수철씨를 취업시켜주는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제 아내좀 희진씨 회사에 일하게 할 수 없을까요?"
"네? 뭐... 그거야... 어렵진 않은데... 호호... 그런데 언니가 굳이 밖에서 일할 필요가 있을까요?"
희진은 5쌍의 부부의 아내들 중 가장 어렸지만 그 특유의 외향적인 성격때문에 미애를 포함한 다른 부인들과 빠르게 친해졌고, 어느새 그녀들을 언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상진도, 수철도 그들이 전에 한번 의논했었던, 소위 은연중에 서로의 아내를 보호한다는 -말이 좋아서 보호지, 실은 감시한다는 의미에 가까웠지만- 예의 그 이야기가 드디어 나온다는 생각에 그녀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속내를 알리가 없던 희진은 그저 뜻밖이라는 표정을 하고 있을 뿐이였다.
"뭐... 어차피 저희도 사람이 필요하기야 한데... 언니 생각은 어때요?"
"나도 뭐... 호호... 집에서 맨날 눌러앉아있기 따분해. 희진이만 OK하면 나야 좋지... 근데 일은 어때? 어려워?"
"아니요. 뭐... 게시판 확인하는거나 전화받는 일도 가능은 한데... 이건 조금 스트레스 받는 일이라서... 음. 아, 그거 좋겠네요. 사진같은거 확인하는 일, 어렵지도 않고 할 일도 많지도 않고... 쉽게 배우실 수 있을거에요. 전에 하던 남자는 조금 못미더워서..."
"어머, 그래? 그럼 어려운거 아니야?"
"아니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라요. 아무래도 남자라서 그런지 눈썰미가 조금... 꼼꼼하지도 못하고... 아무튼 마음에 안들었거든요."
"그렇구나~ 여보여보. 저 언제부터 나가면 될까요?"
"당신이 희진씨한테 물어봐야지. 내가 당신 사장인가? 앞으로 희진씨가 당신 사장일텐데. 하하..."
희진은 쿨하게 장현우의 아내인 이은영을 받아들이겠다고 말을 했다. 눈치를 살피던 성찬현 교수도 생각했던것보다 일이 쉽게 풀린다는것을 느끼고는 말을 꺼냈다.
"희진씨, 아까 들어서 알겠지만 제 아내가 장사장님의 아내의 동생이에요. 제 아내도 어떻게 좀... 안되겠어요?"
"호호... 은주언니까지요? 으음~ 그건 조금 생각해봐야겠는데 안될건 없죠. 생각해볼게요."
상진도, 그리고 미애 또한 이제는 미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차례라고 생각했다. 상진의 경우에는 미리 남자들끼리 모였을때 이야기를 했었기에 그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미애가 그들의 대화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였다. 다만, 그들이 각자의 부인을 신경써주는척 하는 것이 결국은 자연스럽게 미애를 자신의 곁에 두려고 한 장현우의 계획이라고만 생각할 뿐이였다. 그러나 뜻밖에 먼저 그녀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다름아닌 성찬현 교수였다.
"최군, 그나저나 자네 아내는 딱히 하는거 없나?"
"네... 뭐..."
"요즘 젊은 친구들은 다들 맞벌이를 한다던데, 자네 부부는 조금 다른가보구만."
"아... 결혼하면서 이사람이 집안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내조! 이야 최대리... 아니, 최과장. 부럽구만... 우리 아내는 여?까지 집에만 있으면서 내조는 커녕..."
"여... 여보...! 제가 언제..."
장현우의 부럽다는듯한 말에 다들 크게 웃었다. 그 분위기에서 자신만 웃지 않는것도 어색한것같아 미애도 억지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무튼 최과장. 자네가 아무리 승진을 한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벌이가 충분치 않을거야. 이참에 자네 부인도 어떻게 일자리좀 마련해야하는거 아닌가?"
"아... 어디 괜찮은 자리 있습니까 사장님?"
"으음... 마침 장사장님 회사에 비서자리가 빈다고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아 참, 미애씨 생각은.... 어떠세요...?"
마치 미리 짜인듯한 각본대로 흘러가는 그들의 대화, 미애는 순간 화가 나서 치가 떨릴 지경이였지만 애써 끓어오르는 분노를 삼켰다. 이곳엔 그들뿐만 아니라 그녀가 사랑하는 남편인 상진까지 있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화기애애한 이 자리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될수도 있는 노릇이니...
"아... 뭐... 저야... 시켜만 주신다면야..."
그것은 승낙의 의미였다. 하지만 단순한 승낙이 아니였다. 그저 장현우의 회사에서 비서로 일하는것이 어떻냐에 대한 승낙이 아닌, 그들이 제안했던 그 치욕적인 신체포기각서에 서명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의 질문은 그 신체포기각서에 서명을 하겠냐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사회생활이 없는 미애라고 할지라도 그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그것도 그럴것이 그녀의 대답을 들은 장현우의 미소가 어딘지모르게 게슴츠레했었다.
"하하, 자세한건 나중에 얘기합시다. 그나저나 벌써 시간이 이렇게 映봇? 음... 이제 각자 집에 갈 시간이군요."
"후훗. 당신들은 알아서 집으로 가요. 여자들은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인데 여자들끼리 놀테니까."
"뭐어?"
"그래그래, 여보. 나도 언니들이랑 같이 놀게. 괜찮지?"
갑작스러운 그녀들의 제안. 우도혁의 아내였던 김연희가 주도적으로 해서 희진까지 적극적으로 여자들끼리 나가서 따로 놀겠다는 말을 했다. 남편들은 그녀들을 막을 수 없었다. 불안하기도 했지만 여자가 5명이나 되는데, 딱히 헤코지를 할 위험은 없을 것이다. 특히나 같은 시험을 치고있는 그들의 경쟁자들이라고 할지라도, 각개격파식으로 여자들 한명씩 노리는 것이 아닌, 이렇게 다같이 모여있으면 섣부른 행동을 할 순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저... 가기 전에 잠깐 화장실좀..."
"천천히 와요 언니. 아직 저는 아직 커피 다 안마셨으니까 기다릴게요. 아, 남자들은 먼저 가도 되요. 호호호..."
"... 이거이거 쫓겨나게 생겼네... 알았어 알았어. 사라져줄게. 참내..."
화장실을 갈 사람은 화장실로 가고, 우사장과 성교수는 먼저 일어나서 계산을 한 후 담배를 핀다며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상진과 수철은 우사장 일행을 따라갈지, 아니면 화장실에 간 장사장을 기다릴지 고민했지만 장사장이 전화를 받으며 비상구 계단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는 그를 기다리는것보다는 먼저 나가서 우사장, 그리고 성교수와 함께 있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고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한편 소변을 본 후 미애는 거울을 보며 살짝 상기된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장현우가 바라보는것만으로도 너무나도 치욕스러운 기분이였다. 눈으로 강간당한다, 라는 표현은 이런때에 쓰이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한숨을 내쉬는 사이, 그녀의 핸드폰에 문자가 도착했다.
-최과장 내려갔어. 여자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비상구 계단으로 와. 안오면 알지?
장현우였다. 장현우가 문자를 보낸것도 기분이 나빳지만 더욱 기분이 나빳던 것은 그가 어느새 자신에게 반말을 하고 있다는 것... 하지만 그녀의 기분따위 중요한 것이 아니였다. 그녀가 아까 승낙을 한 이상 그녀의 기분따위 그에겐 전혀 중요치 않았으리라...
미애는 조심스럽게 화장실에서 나와 그녀들이 앉아있는 곳을 쳐다봤다. 다행히 미애는 그녀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 말은 즉 그녀들 또한 미애를 볼 수 없다는 말이였다. 미애는 눈치를 살피며 밖으로 향한 후 비상구계단이라고 써져있는 곳의 문을 열었다. 잠시 두리번거리니 몇 계단 위에서 장현우가 비열한 웃음을 짓고는 마치 자신에게 오라는듯 손가락을 까딱대고 있었다.
죽고만 싶었다. 절대로 그자의 곁에 가고 싶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상진의 품에 달려가 모든 것을 놓아버리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상진을 위해서, 상진의 마음을 배신해야하는... 그녀의 행동이 모순 그 자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녀는 상진이 아닌, 장현우가 서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하하. 마음을 정했나보군."
"......"
"어디, 한번 비서로 쓸만한지 확인해볼까?"
"자... 잠깐!! 어... 어딜 만지는거에요!!!"
"쉿!! 누구한테 망신당하고 싶어서 그렇게 큰 소리를 지르는거야? 조용히해봐. 으으~~ 엉덩이가 빵빵하니 좋구만."
이럴걸 어느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밖에서 다른 남자에게 엉덩이를 유린당하니 미애는 죽고만 싶은 심정이였다. 여자를 배려해주는 마음따위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장현우의 손길에 미애는 소름이 돋을 지경이였다. 비록 꽤 긴 정장 치마를 입고 있었던 미애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발가벗은 그녀의 몸을 장현우가 만지는듯한 기분이였다.
"하하하. 더 만지고 싶으면 우리가 함께할 날이 많으니까. 그럼 앞으로 기대하지. 미애씨. 아니... 정비서. 하하하!!"
미애의 엉덩이를 우악스럽게 만지던 장현우가 미애의 젖가슴을 한번 움켜쥐는것을 끝으로 비상구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 어두운 계단에 홀로 남겨진 미애는 가까스로 몸을 추스려 다시 화장실로 향한 후 빈 칸의 문을 닫았다. 밀폐된 공간, 아무리 장현우가 변태같은 놈이라고 할지라도 여자화장실을 열고 들이닥치진 않을 것이다... 안전한 공간에 도착했다는 생각이 들고나서야 그녀는 몸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변기에 주저앉았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미안... 미안 여보... 흑흑... 죽고싶어... 나 못하겠어... 못하겠단말이야... 흑흑..."
~ 성찬현의 집
그들, 즉 우사장을 비롯해 장사장, 상진, 그리고 수철과 함께 가볍게 2차에서 맥주 한잔을 걸치고 집에 들어온 찬현이 샤워를 마친채 가운을 입고 욕실에서 나오자, 그 시간에 맞추기라도 한듯 성찬현의 부인인 이은주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찬현은 은주에게 시선 한번 던지지 않았다. 그것이 뭘 의미하는건지 은주는 아는지 들어오자마자 서랍을 열어 회초리같이 생긴 물건을 손에 들고는 찬현의 앞으로 향했다.
"죄송해요 주인님. 제가 오늘따라 주인님께 말대답을 많이 했어요. 벌해주세요."
"됐어. 후후... 그정도야 용서해주지. 내가 시킨대로 잘 따라줬잖아."
"... 그래도..."
"그나저나 오늘 어땟나? 오랫만에 네년의 옛 주인을 본 소감이."
"저의 주인님은 제 눈앞에 계신..."
"거짓말치지마. 후후... 아마 그녀석의 얼굴을 보자마자 보지가 벌렁벌렁거려서 견딜수가 없었겠지. 안그래?"
"아아... 주인님... 너무해요..."
"후후... 은주야... 주인한테 거짓말치면 안좋은거야... 그래도 거짓말 칠래? 다시 한번 물어볼게. 그녀석 보고 흥분했어 안했어?"
"... 죄송해요... 죄송해요..."
"하하하. 아니야. 괜찮아. 이해해주지. 오늘은 기분이 아주 좋으니말이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은주. 하지만 여전히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은채로 있었다. 찬현은 그녀에게 씻으라고 말을 한 후 전화기를 주워들었다.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찬현...
"아아, 그래. 오늘 어땟나?"
-큭큭... 그년 그거 아주 죽여주더군요. 엉덩이만 만졌는데 어찌나 꼴리는지. 하마터면 그자리에서 자빠트릴뻔했다니깐요.
"이사람아. 앞으로 훨씬 더 많이 참아야할텐데 벌써부터 그래서 어떻게하나!"
-압니다 압니다. 그래서 참지 않았습니까. 뭐... 그나저나 그년 가슴도 죽여주더군요. 후후...
"자네도 참 못말리는군."
-그나저나 정말 괜찮은겁니까? 그대로 실행해도?
"응. 오늘 그자가 말해줬다네. 후후... 그건 상관없는 모양이야. 뭐... 영상까지 보내줬으니까 확실하겠지."
-그자도 참 무서운자군요. 복수를 위해 그렇게까지 하다니...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 잊었나? 하하하... 아무튼 자게나."
-네, 알겠습니다. 형님도 주무십시오.
전화가 끊기자 욕실에서 은주가 알몸으로 나왔다. 어차피 찬현의 말 없이는 옷을 입을 수 없는 그녀였기에 가운마저 걸칠 수 없는 그녀였다.
"주인님... 요즘... 작은 주인님이랑 재미있는거 꾸미시는거에요...?"
"후후...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궁금해하지 말고 천천히 기대해보라고."
그들의 집은 찬현의 비열한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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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네요. 죄송합니다.
밀린 야설도 좀 보고
애니메이션도 좀 보고
이래저래 머리좀 식혔어요.
근데 나름 자체휴가를 즐긴거 치고는 글쓰는 속도는 여전히 더딘...
이게 특정 부분 쓰면 진짜 뭐에 홀린듯 글을 써내려가게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속도도 안나고 괴롭기만 괴롭고 이래저래 짜증.
무엇보다... 이 소설의 메인 장르가 네토잖아요?
근데 저는 네토를 싫어해요.
하지만 네토장르의 글을 쓰고있죠.
무슨 말을 하고 싶냐면....
글을 쓰는 저 자신도 이 글을 쓰면서 멘탈에 타격을 입는다는거 ㅠㅠ
아..... 글을 읽으시는분은 뭐 이정도가지고 멘탈에 타격을 입냐고 하겠지만
저는 이 글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잖아요?
윽.... 멘탈이... 후....
아무튼 다음편은 조금 더 일찍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요.
목요는 목요일 안에.
그럼 이만...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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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2-28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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