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호의 오피스텔로 갔을 때 불은 꺼져 있는 것 같았고 나는 열쇠가 없었다.
벨을 누르고 문을 밀어 보았으나 문은 잠겨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서관에서 준호가 돌아왔지만
준호를 기다리는 그 몇 분간은 내 생애에서 최악의 시간이었다.
준호는 나를 보더니 잠깐 낯선 미소를 띠어 보였다.
예고 없는 나의 방문이 기쁘지만 동시에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두려워하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전화 주지 그랬어요. 그랬다면 데리러 갔을텐데..
라고 준호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방 안을 왔다 갔다 했다.
의자에 앉은 준호의 시선이 방을 거니는 나를 죽 따라오더니
-사랑해요.
라고 말했다.
준호는 내 눈 속에 떠 있는 공포의 빛을 눈치 채고 안심시키려는 듯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준호의 말은 도대체 이 공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이 들려왔다.
-아니에요. 그렇다면 나를 이렇게 괴롭힐 리가 없어요.
나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괴었으나 울지는 않았다.
준호의 눈이 놀람으로 크게 떠졌다.
-나는 당신 밖에는 아무도 없어요. 하지만 나는 위험을 사랑하는 거에요.
나는 마치 모든 것에 지친 것처럼 말했다.
-위험을 사랑한다구요?
준호의 목소리에 들어 있는 적의가 나를 놀라게 했다.
나는 내가 싸움을 걸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중단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모험과 생을 사랑하는 거에요. 당신을 통해서 생을 사랑하는 거에요.
그런데 준호씨는 더 이상 나를 원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은가요?
-이리와요.
준호가 다정한 명령조로 말하며 방 안을 서성이는 나를 자기의 품속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언제나 연희씨를 원해요.
준호가 내 블라우스의 앞섶에 얼굴을 묻고 가볍게 키스했다.
그리고 한 손으로 블라우스의 단추를 끄르며 천천히 아래로 입술을 옮겨 갔다.
나른한 도취가 내 전신을 감싸고 돌았다.
그러나 나는 준호의 품에서 달아나며 고통과 정열에 찢겨 외쳤다.
-이런 식으로 위로받는 건 싫어요!
거부당한 준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당신은 끔찍해요. 아니 내 삶이 끔찍해!
-나를 무섭게 오해하지 말아줘요. 우리는 헤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헤어지는 게 아니라구요? 뭐가 다른가요?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지만 공급이 중단됐다면 끊긴 것과 같아요.
무슨 까닭인지 몰라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니, 아마 당신 자신도 모르게 내면적으로 나로부터 멀어져간 거에요.
나는 그 사실을 준호에게 인식시키기 위해서 언쟁이 필요했다.
나를 보는 준호의 태도는 매우 서먹서먹하고 낯설었다.
잠시 후에 준호가 나의 허리에 팔을 감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었으랴.
-미안해요. 연희씨가 그렇게 느끼게 만들어서..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나는 서투른 또는 익숙한 배우가 무대에서 했을 것 같은 짓을 하고 말았다.
즉 나는 준호의 발 밑에 내 몸을 던졌다.
나는 찬 바닥에 얼굴을 부비며 울기 시작했다.
고여 있던 눈물이 범람해 빰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울면서 음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뼈와 살과 관절들의 기능을 통틀어,
아니 오장육부 모두를 폭발시키며 소리 없이 외치는 것이었다.
나의 자유분망한 자존심은 어디로 갔는가.
그러나 이 수치심에는 미스테리한 쾌감이 동반해 있었다.
그런 감정은 나에게 처녀적인 것이었고 준호에게 조차 비밀스러운 무엇이었다.
나의 절망은 그처럼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어서 준호의 심장을 아프게 찌르는 것 같았는데도
준호는 마치 송장처럼 앉아있었다.
정말로 죽은 것이 아닌가 하는 바보 같은 공포를 느꼈을 정도로
준호의 얼굴은 냉담의 빛을 띠며 차갑게 굳어졌다.
-연희씨..
이렇게 부르는 준호의 음성은 감출 수 없는 충격을 나타내고 있었다.
준호는 마치 매 맞은 짐승을 애처롭게 쳐다보듯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자기도 모르게 생기는 비인간적인 거만함 같았다.
아, 나는 사람을 아주 다른 사람으로 변질시키는 고통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독자들이여,
한 사람이 헐벗은 영혼의 속살의 부끄러움을
글로 쓰는 것으로 세상에 완전히 드러내는 일이란 얼마나 수치스러운 형벌인 것일까.
어쩌면 나는 준호가 아닌 내가 만들어 내가 가지는 나의 사랑,
허구일 수밖에 없는 그 사람에게서 피 묻은 갈망으로 진실을 뽑아내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가슴에 불이 꺼지면 할 수 없는 노릇.
준호와 나는 구르고 또 굴러서 점점 빨리 아래로 굴러 떨어져
막을 수 없는 미지의 곳으로 가는 차와도 같았다.
나는 어리석음에 지배당했다.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극단을 요구했고 그것을 준호로 부터도 요구했다.
나는 준호와 멀어질수록
향수의 심정으로 무의미하게 살갗을 지져 태우는 상처를 자처했던 것이다.
나에게는 흥미 있는 일이 조금도 없었다.
나는 창백한 수면부족의 얼굴을 하고 슬픔 때문에 몸치장도 안 하고
아무 희망도 없이, 침울하게, 마치 폭풍우에 파손된,
그러나 대해에 떠 있고 바람을 맞고 있는 배와도 같았다.
엄마의 병세는 급격히 안 좋아졌다.
대수술 후에 엄마는 병원에서 지냈고
나는 엄마의 마지막 시간을 간병인에게 맡기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엄마를 보살피기 위해 잠정적으로 일을 그만두었다.
내가 엄마의 곁으로 가는 것이
엄마를 미워한 죄를 지었기때문에 스스로 형틀을 만들어 속죄하기 위한 것이기 보다는
엄마의 불행의 한 복판에서 내 불행을 극복하려는 생존본능이라는 아이러니함은
나를 아프게 했다.
준호는 면허시험을 통과하고 K대학병원에 근무하게 되었고 바빠졌다.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나는 종종 준호와 만났고
그럴 때면 준호는 나의 생활을 응원하면서도
나의 의무에 충실한 인내를 어리석고 자살적인 자기학대라고 설명함으로써
나의 절망적인 거만한 안정감을 망쳐버리곤 했다.
우리는 대수롭지 않은 일상회화를 하다가도 자꾸만 말이 막히고
마침내는 더 이상 말을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의 긴 침묵이 우리의 대화를 끊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치욕으로 몰고 갔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매순간 서로의 육체를 탐욕했다는 사실이다.
어느 날 나는 죽어가는 엄마의 몸뚱이를 병실에 내버려둔 채로
사지를 꿈틀거리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지 않은 나 자신이 끔찍스러워서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느끼며 엄마에게로 돌아왔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나는
그리움에 짓눌려 가슴둘레가 오므라든 듯이 죄고 못 견디게 답답해도
엄마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6월이 되자 엄마는 음식을 씹지 못하기 시작했고 대소변도 가릴 수 없게 되었다.
스스로 돌아 눕는 것조차 못했기 때문에 나는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두 시간 마다 한번씩
몸을 돌려 뉘어주어야 했다.
엄마의 생은 끝난 것이었다.
다만 죽음을 기다릴 뿐이었다.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관찰하게 되는 일이란 무서웠다.
아주 정직하게 말한다면 나는 이러한 종류의 경험을 겪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이 감옥과도 같은 병실에서 소변통과 약냄새를 견디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다른 고통에 대한 무서운 예감이 오히려 나를 대담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생이나 사의 직후와도 같은 투명한,
가장 신비스러운 조화의 순간이기도 했다.
이상스럽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나에게 선사된 단 하나의 순간이었고
엄마가 참여하지 않는 고독한 혼자만의 화해였다.
병실에 갇혀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나쁜 상황이겠지만
어떤 의미로는 오히려 편한 것이었다.
나 자신은 자유 속으로 나가면서 엄마를 창살 뒤에 남겨 둔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나는 엄마가 약물로 온갖 종류의 고통에 마비된 비참한 죽음을 맞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엄마는 자기의 생명을
마치 구역질나는 구멍투성이의 누더기같이 내던져 버리고 싶어했다.
나의 하루하루는 매우 고단했고 단조로웠고 고독했다.
나는 물 한 모금 삼키기도 힘들어 하는 사람을 두고서 잘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거의 굶다시피 했고 점점 수척해졌다.
나는 서 있기가 힘들었고 자주 숨이 차올랐고 어지럽고 메스꺼웠다.
어느 날 아침 나는 몹시 지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났고 급기야 화장실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영양실조인 것 같았다.
그러나 영양실조가 아니었다.
나는 하혈을 하며 응급실로 실려 갔고 의사가 내게 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임신인데 모르고 계셨나요. 4주쯤 된 것 같은데 사산이라 수술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이 닥쳐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타격을 머리에 받고 죄에 의해 정복당하는 사람처럼
뼈마디마다 아프고 저린 불치의 충격을 입었다.
벨을 누르고 문을 밀어 보았으나 문은 잠겨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서관에서 준호가 돌아왔지만
준호를 기다리는 그 몇 분간은 내 생애에서 최악의 시간이었다.
준호는 나를 보더니 잠깐 낯선 미소를 띠어 보였다.
예고 없는 나의 방문이 기쁘지만 동시에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두려워하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전화 주지 그랬어요. 그랬다면 데리러 갔을텐데..
라고 준호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방 안을 왔다 갔다 했다.
의자에 앉은 준호의 시선이 방을 거니는 나를 죽 따라오더니
-사랑해요.
라고 말했다.
준호는 내 눈 속에 떠 있는 공포의 빛을 눈치 채고 안심시키려는 듯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준호의 말은 도대체 이 공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이 들려왔다.
-아니에요. 그렇다면 나를 이렇게 괴롭힐 리가 없어요.
나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괴었으나 울지는 않았다.
준호의 눈이 놀람으로 크게 떠졌다.
-나는 당신 밖에는 아무도 없어요. 하지만 나는 위험을 사랑하는 거에요.
나는 마치 모든 것에 지친 것처럼 말했다.
-위험을 사랑한다구요?
준호의 목소리에 들어 있는 적의가 나를 놀라게 했다.
나는 내가 싸움을 걸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중단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모험과 생을 사랑하는 거에요. 당신을 통해서 생을 사랑하는 거에요.
그런데 준호씨는 더 이상 나를 원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은가요?
-이리와요.
준호가 다정한 명령조로 말하며 방 안을 서성이는 나를 자기의 품속으로 끌어당겼다.
-나는 언제나 연희씨를 원해요.
준호가 내 블라우스의 앞섶에 얼굴을 묻고 가볍게 키스했다.
그리고 한 손으로 블라우스의 단추를 끄르며 천천히 아래로 입술을 옮겨 갔다.
나른한 도취가 내 전신을 감싸고 돌았다.
그러나 나는 준호의 품에서 달아나며 고통과 정열에 찢겨 외쳤다.
-이런 식으로 위로받는 건 싫어요!
거부당한 준호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당신은 끔찍해요. 아니 내 삶이 끔찍해!
-나를 무섭게 오해하지 말아줘요. 우리는 헤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헤어지는 게 아니라구요? 뭐가 다른가요?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지만 공급이 중단됐다면 끊긴 것과 같아요.
무슨 까닭인지 몰라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니, 아마 당신 자신도 모르게 내면적으로 나로부터 멀어져간 거에요.
나는 그 사실을 준호에게 인식시키기 위해서 언쟁이 필요했다.
나를 보는 준호의 태도는 매우 서먹서먹하고 낯설었다.
잠시 후에 준호가 나의 허리에 팔을 감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었으랴.
-미안해요. 연희씨가 그렇게 느끼게 만들어서..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나는 서투른 또는 익숙한 배우가 무대에서 했을 것 같은 짓을 하고 말았다.
즉 나는 준호의 발 밑에 내 몸을 던졌다.
나는 찬 바닥에 얼굴을 부비며 울기 시작했다.
고여 있던 눈물이 범람해 빰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울면서 음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뼈와 살과 관절들의 기능을 통틀어,
아니 오장육부 모두를 폭발시키며 소리 없이 외치는 것이었다.
나의 자유분망한 자존심은 어디로 갔는가.
그러나 이 수치심에는 미스테리한 쾌감이 동반해 있었다.
그런 감정은 나에게 처녀적인 것이었고 준호에게 조차 비밀스러운 무엇이었다.
나의 절망은 그처럼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어서 준호의 심장을 아프게 찌르는 것 같았는데도
준호는 마치 송장처럼 앉아있었다.
정말로 죽은 것이 아닌가 하는 바보 같은 공포를 느꼈을 정도로
준호의 얼굴은 냉담의 빛을 띠며 차갑게 굳어졌다.
-연희씨..
이렇게 부르는 준호의 음성은 감출 수 없는 충격을 나타내고 있었다.
준호는 마치 매 맞은 짐승을 애처롭게 쳐다보듯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자기도 모르게 생기는 비인간적인 거만함 같았다.
아, 나는 사람을 아주 다른 사람으로 변질시키는 고통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독자들이여,
한 사람이 헐벗은 영혼의 속살의 부끄러움을
글로 쓰는 것으로 세상에 완전히 드러내는 일이란 얼마나 수치스러운 형벌인 것일까.
어쩌면 나는 준호가 아닌 내가 만들어 내가 가지는 나의 사랑,
허구일 수밖에 없는 그 사람에게서 피 묻은 갈망으로 진실을 뽑아내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가슴에 불이 꺼지면 할 수 없는 노릇.
준호와 나는 구르고 또 굴러서 점점 빨리 아래로 굴러 떨어져
막을 수 없는 미지의 곳으로 가는 차와도 같았다.
나는 어리석음에 지배당했다.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극단을 요구했고 그것을 준호로 부터도 요구했다.
나는 준호와 멀어질수록
향수의 심정으로 무의미하게 살갗을 지져 태우는 상처를 자처했던 것이다.
나에게는 흥미 있는 일이 조금도 없었다.
나는 창백한 수면부족의 얼굴을 하고 슬픔 때문에 몸치장도 안 하고
아무 희망도 없이, 침울하게, 마치 폭풍우에 파손된,
그러나 대해에 떠 있고 바람을 맞고 있는 배와도 같았다.
엄마의 병세는 급격히 안 좋아졌다.
대수술 후에 엄마는 병원에서 지냈고
나는 엄마의 마지막 시간을 간병인에게 맡기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엄마를 보살피기 위해 잠정적으로 일을 그만두었다.
내가 엄마의 곁으로 가는 것이
엄마를 미워한 죄를 지었기때문에 스스로 형틀을 만들어 속죄하기 위한 것이기 보다는
엄마의 불행의 한 복판에서 내 불행을 극복하려는 생존본능이라는 아이러니함은
나를 아프게 했다.
준호는 면허시험을 통과하고 K대학병원에 근무하게 되었고 바빠졌다.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나는 종종 준호와 만났고
그럴 때면 준호는 나의 생활을 응원하면서도
나의 의무에 충실한 인내를 어리석고 자살적인 자기학대라고 설명함으로써
나의 절망적인 거만한 안정감을 망쳐버리곤 했다.
우리는 대수롭지 않은 일상회화를 하다가도 자꾸만 말이 막히고
마침내는 더 이상 말을 계속할 수 없을 정도의 긴 침묵이 우리의 대화를 끊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치욕으로 몰고 갔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매순간 서로의 육체를 탐욕했다는 사실이다.
어느 날 나는 죽어가는 엄마의 몸뚱이를 병실에 내버려둔 채로
사지를 꿈틀거리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지 않은 나 자신이 끔찍스러워서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느끼며 엄마에게로 돌아왔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나는
그리움에 짓눌려 가슴둘레가 오므라든 듯이 죄고 못 견디게 답답해도
엄마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6월이 되자 엄마는 음식을 씹지 못하기 시작했고 대소변도 가릴 수 없게 되었다.
스스로 돌아 눕는 것조차 못했기 때문에 나는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두 시간 마다 한번씩
몸을 돌려 뉘어주어야 했다.
엄마의 생은 끝난 것이었다.
다만 죽음을 기다릴 뿐이었다.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관찰하게 되는 일이란 무서웠다.
아주 정직하게 말한다면 나는 이러한 종류의 경험을 겪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이 감옥과도 같은 병실에서 소변통과 약냄새를 견디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다른 고통에 대한 무서운 예감이 오히려 나를 대담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생이나 사의 직후와도 같은 투명한,
가장 신비스러운 조화의 순간이기도 했다.
이상스럽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나에게 선사된 단 하나의 순간이었고
엄마가 참여하지 않는 고독한 혼자만의 화해였다.
병실에 갇혀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나쁜 상황이겠지만
어떤 의미로는 오히려 편한 것이었다.
나 자신은 자유 속으로 나가면서 엄마를 창살 뒤에 남겨 둔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나는 엄마가 약물로 온갖 종류의 고통에 마비된 비참한 죽음을 맞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엄마는 자기의 생명을
마치 구역질나는 구멍투성이의 누더기같이 내던져 버리고 싶어했다.
나의 하루하루는 매우 고단했고 단조로웠고 고독했다.
나는 물 한 모금 삼키기도 힘들어 하는 사람을 두고서 잘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거의 굶다시피 했고 점점 수척해졌다.
나는 서 있기가 힘들었고 자주 숨이 차올랐고 어지럽고 메스꺼웠다.
어느 날 아침 나는 몹시 지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났고 급기야 화장실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나는 영양실조인 것 같았다.
그러나 영양실조가 아니었다.
나는 하혈을 하며 응급실로 실려 갔고 의사가 내게 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임신인데 모르고 계셨나요. 4주쯤 된 것 같은데 사산이라 수술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이 닥쳐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타격을 머리에 받고 죄에 의해 정복당하는 사람처럼
뼈마디마다 아프고 저린 불치의 충격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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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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