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후기-------------------------------------------------
간만에 지인과 쇠주잔을 기울이는 바람에 하루를 건너뛰었네요.
그럼 즐감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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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I was born to love you: https://www.youtube.com/watch?v=vNhhAEupU4g
퀸 Boheminan Rhapsody: http://www.youtube.com/watch?v=eA8CVQ-kfJA
락의 전설 퀸의 노래로 골라 봤습니다. 워낙에 유명한 그룹이라 설명이 필요 없을 듯 합니다.
가수는 노래따라 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우리나라에만 국한 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프레디 머큐리도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사처럼 모든걸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죠..
더 이상 그의 다른 신곡들은 접할 수 없지만 그가 남겨놓고 간 노래만으로도 충분히 그를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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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I was born to love you
희연이의 안색이 금세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그랬....구나......”
금세 풀이 죽어버린 희연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제 자신에게 너무나 화가 나기 시작합니다.
희연이에게는 항상 기쁨만 주고 싶었는데 벌써부터 저는 그녀를 아프게 만들고 있습니다.
투정이라도 하지 바보같이 속으로 삭히고만 있습니다.
제 남자답지 못한 행동에 앞으로 얼마나 더 그녀가 상처를 받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그날 지영이와 헤어졌다고 얘기했으면 되었을 텐데...’
후회가 밀려옵니다.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결국 전 똑같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지영이와 헤어진 걸 말했다면 희연이는 제가 자신만을 바라본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그와는 반대로 지영이와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바로 자신에게 왔다는 생각에 제 마음을 의심할지도 모릅니다.
후자라면 저를 얼마나 지조 없는 남자로 볼 것이며 자신을 지영이의 대타로 여기고 있다는 생각에 제 마음을 거절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생각에 제 낯빛이 어두워지자 옆에서 한참을 지켜보고만 있던 희연이가 제게 안겨와 달라붙습니다.
“왜 그렇게 심각한 얼굴을 하고 그래~~ 그 애랑 사귀는 거 알고도 내가 먼저 널 흔든 거잖아.. 그러니까 앞으론 내 앞에서 그런 얼굴 하지 마.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나만 봐라봐 주고 있는 지금의 너로도 충분하니까... 아직은.. 네 마음이 정리 될 때까지 난 이렇게 기다릴 수 있어!!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응?”
비록 나이로는 한 살 차이지만 정신연령은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또래와는 다르게 신중하면서도 침착하고 저를 배려해주는 모습에 전 더욱 희연이에게 빠져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심한 배려심에 어느새 제 고민은 어느새 봄눈 녹듯 사라져버렸습니다.
“고마워 희연아.. 넌 왜... 갈수록 자꾸 빠져들게만 만드니..”
희연이를 알아갈수록 그녀가 가진 매력이 외모만이 다가 아닌 걸 알게 됩니다.
전생에 전 나라를 구한 게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완벽한 여성이 제 옆에 있어줄 리가 없습니다.
저를 첫눈에 반하게 만들었던 희연이의 미소가 다시 제 눈을 멀게 하고 있습니다.
“치....알면 잘해~~~난 항상 네 옆에 있을 거라고 했잖아.”
희연이의 말에 저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만 갑니다.
비록 아직은 말을 못하지만 그녀와 제가 한 몸이 되는 날 전 그녀에게 모든 걸 고백할 생각입니다.
그 날이 빨리 오길 희망합니다. 그때까지만 제 마음속에 비밀을 묻어 두고 싶습니다.
희연이를 집에 바래다주고 집으로 왔습니다.
습관적으로 오자마자 컴퓨터부터 키게 됩니다.
그리곤 천리안 나우누리에 접속을 해 놓고 샤워를 하러 갑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 쇼파로 가서 TV를 켜놓고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혼자 살면서 어느새 이런 버릇들이 생겨버렸습니다.
쇼파에 누워 잠시 오늘 있었던 희연이와의 므훗한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습니다.
금세 아랫도리가 묵직해지며 불룩하게 솟아 올라와 있습니다.
이놈에 똘똘이는 정말이지 지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마음대로 껐다 켰다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발정 난 강아지 마냥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오늘도 주인님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가 봅니다.
‘에휴~~~ 오늘도 손양의 힘을 빌려야 겠구만.. 허구한 날 이게 뭐하는 꼴인지. 부탁해 손양.....’
오늘도 어김없이 제 자지에 손양이 찾아왔습니다.
그녀의 손길에 어느새 제 자지는 항복을 하려고 껄떡거리고 있습니다.
오늘따라 손양의 움직임이 너무나 자극적인 것 같습니다.
“슥 슥 슥 슥”
“아~~~~ 희연아!!!”
결국 손양의 노련함에 얼마 버티지를 못하고 백기투항을 해버렸습니다.
휴 DDR을 하고 나면 항상 뭔가 허무한 느낌이 듭니다.
손양으로 항상 불을 끄려니 끝이 허무하고 안 끄자니 계속 서있어서 불편하고, 또 며칠 쌓이게 되면 시도 때도 없이 서는 통에 결국 어쩔 수 없이 손양과 만나게 됩니다.
이 모든 게 하루빨리 끝나려면 손양이 아닌 한양!!!을 만나는 수밖에 없습니다.
돌돌 말은 휴지로 똘똘이를 닦아내고는 허망함에 컴퓨터 책상 앞으로 다가와 앉습니다.
켜 놓고 볼 일을 보고 온 사이 또 지인들의 안부 메시지가 들어와 있습니다.
일일이 확인하기가 귀찮아 우후죽순 떠있는 메시지창을 모두 닫아버립니다.
‘아.. 그러고 보니 아까 급하게 나가느라고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갔네.’
제 머릿속에 이제야 임지영이 생각났습니다.
대기실에 들어가자마자 접속 중인 친구목록부터 확인을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채팅을 하고 있나 봅니다.
그녀가 있는 채팅방을 귀신같이 찾아 들어갔습니다.
지영바라기님이 입장하였습니다.
아내이기전에여자: 어!! 뭐에요~~ 아까!!! 저 나가볼게요... 이 말만 하고 나가 버리고.. 좀 전에도 메시지 보냈는데 대답도 없고.... 흥~~
지영바라기: 아.... 너무 죄송해요. 당시 너무 급한 일이 생겨버려서 제 말만 하고 갔네요.. 그리고 좀 전엔 집에 들어오자마자 켜놓고 씻고 와서 그래요.
비록 씻고 온 게 다가 아니지만.
아내이기전에여자: 흠~~~ 뭐 그러셨다니 용서해 드려야겠네요. 제가 방 만들어서 초대할게요. 그쪽으로 오세요!!
방을 만들러 임지영이 나가게 되자 방안에 있던 남자들이 하나 둘 시비를 걸어옵니다.
아무래도 임지영이 여자라는 걸 밝혔나 봅니다.
‘으이구!! 같은 남자지만 여자라면 어떻게든 작업이나 해 볼라고...쯧쯧쯧 참 불쌍타.. 저 여자는 유부녀라고 이 불쌍한 중생들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지..’
지영바라기: 할 짓 없으면 딸이나 쳐...마!!!
저는 재빠르게 다음 글이 올라오기 전에 퇴장을 눌러 그 방을 빠져나왔습니다.
하마터면 그들이 쓴 욕을 보게 될 뻔 했습니다.
잠시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임지영으로부터 초대가 들어왔습니다.
지영바라기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아내이기전에여자: 왔어요?
지영바라기: 네 ㅋ.. 근데 그렇게 갑자기 나가시면 어떡해요!!! 그 방안에 있던 남자들이 지영씨 나가자마자 저를 막 잡아먹으려고 들던데.... 유일한 여자가 나가버렸다고...
아내이기전에여자: ㅎㅎㅎ 저 요즘 인기 왕많아요~~
그사이 또 채팅용어를 배웠나 봅니다.
어린 사람들이나 쓰는 용어를 그녀가 쓴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지영바라기: 오우~~ 담부터는 대화하려면 예약이라도 해야겠는데요. 그럼.
아내이기전에여자: ㅎㅎㅎ 뭐 지섭씨 정도는 언제나 콜을 해드릴게요. 제가 여기 적응하는데 많이 도와주신 분이니까요 호호호
임지영은 확실히 요즘 채팅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 진 듯 했습니다.
항상 올 때 마다 있는 종식이형처럼 완전 채팅에 빠져서 죽순이가 다 된 듯 했습니다.
지영바라기: 근데 애기도 있다면서 여기서 매일 시간 보내셔도 되요?
아내이기전에여자: ㅎㅎㅎ 저녁 먹고는 거의 저희 엄마 집에 주로 가 있어요. 조카가 딸아이 또래라 둘이 잘 놀거든요. 저희 엄마가 좀 고생이긴 하지만... 이게 친정이 가까운 장점이겠죠. 호호호.
지영바라기: 에이~~ 그래도 아이한테는 엄마가 더 필요하죠...
아내이기전에여자: 잘 모르겠어요.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인데 요즘은 전 같지가 않은 느낌이에요. 제가 못된 엄마인거 같기도 하고...
지영바라기: 못된 엄마 좋은 엄마가 어디 있어요.. 낳아주신걸 감사해야죠. 다만 너무 여기 빠지시는 건 별로 안 좋아요 지영씨나 아이에게나.
아내이기전에여자: 호호호. 알고 있어요. 우리 무거운 얘기는 그만해요~ 난 새로운 여친분과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는지 궁금한데~~ 좀 꺼내 봐요~~. 듣고 있으면 제가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아서요. 요즘 코코코
저는 임지영에게 오늘 있었던 희연이와의 일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아내이기전에여자: 와우~~ 기질이 보이는데요. 지섭씨?
지영바라기: 무슨 기질이요?
아내이기전에여자: ㅎㅎㅎ 저는 그저 팁을 드린 것뿐인데 금세 그걸 받아서 여친에게 써보고 성공을 시키셨다니까요. 아무래도 더 가르쳐 드리면 난봉꾼이 되실 것 같은 기질이.. ㅎㅎㅎ
지영바라기: 에이 난 또 뭐라고요. 전 난봉꾼이 될 만한 기질이 없어요. 그런 기질이 있었으면 진작 첫경험도 하고 다른...... 여자들을 후리고 다녔겠죠...
아내이기전에여자: 그건 모르는 거죠!! 경험이 없던 사람이 섹스에 눈을 뜨면 어떻게 변할지 는 모르는 거니까요.
‘하긴 내 첫사랑 지영이만 봐도 그렇지 않았던가. 나밖에 몰랐던 지영이도 그랬는데...’
생각을 해보니 그녀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나마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또다시 주먹을 쥐고 맙니다.
지영바라기: 그렇긴 한 것 같은데... 제가 좀 소심한 구석이 의외로 많은 인간이라서요.. 어쩔 때 보면 답답할 정도로 주변사람들을 의식하고 있고 또 그 사람들로부터 들려오는 평판에 무척이나 신경을 쓰고 있어요. 아마도 이런 기질 때문에 그러진 못 할 거 에요.
아내이기전에여자: 흠~~ 어떻게 될지 지켜보는 것도 참 재밌을 것 같네요. 앞으로도 종종 얘기 좀 해주세요.
처음 대화를 나눴을 때 느꼈던 임지영의 이미지와 지금의 이미지는 미묘하게 뭔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처음보다 좀 더 활기차고 나이보다 좀 더 어려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비록 채팅으로 알게 된 것이지만 서로간의 깊숙한 사생활을 공유해서인지 그녀가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지영바라기: 너무 깊숙이 알려고 하시면 다쳐요 ㅋ
아내이기전에여자: 그나저나 밥은 언제 쏠 거 에요?
지영바라기: 아~~ 잊지 않고 계시네요.... 제 소귀의 목적이 달성이 되면 사부님께 졸업식을 하는 기념으로 거하게 쏠게요 ㅋㅋㅋㅋ
아내이기전에여자: 제가 사부인건가요? ㅎㅎㅎ. 근데 무슨 밥 한번 사는데 그렇게 거창해야 되요?
지영바라기: 하긴 그렇네요... 흣 제가 한말에 책임은 져야겠죠? 그럼... 언제가 좋으세요?
채팅이기에 10살 차이가 인식이 안 될 뿐이지 막상 만나면 나이 차로 인해 만남자체가 불편할 것만 같아 쏘는 걸 미루고 미룰 생각이었는데 도움 받은 게 있으니 막상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아내이기전에여자: 음~~어디보자... 금, 토, 일은 신랑이 올라 올수도 있으니 안 되고 전 평일이 좋을 것 같은데요. 삐삐번호 줘보세요. 제가 한가한 날 벙개~~날릴게요.
지영바라기: ㅎㅎㅎ 어서 그런 말은 또 배우신거에요? 넘 능숙하신데 이제.
젊은 세대나 쓸 법한 말투를 척척 사용하는 걸 보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처음엔 모르는 것 투성이었는데 말이죠..
결국 그녀가 편한 시간에 만나 밥을 쏘기로 했습니다.
서로의 삐삐번호까지 교환을 하고 나서야 그 날의 채팅을 마쳤습니다.
채팅을 마치고 침대에 눕자 괜스레 찜찜한 기분이 듭니다.
왠지 거하게 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괜한 호언장담을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란 참으로 간사한 동물입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 마음이 이렇게나 틀리니 말이죠..
오늘은 학교를 마치고 지영이 문병을 한번 다녀와야 할 듯합니다.
어제도 호출이 들어왔는데 무시해서인지 오늘은 아침부터 호출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학교에 도착하니 교문 입구부터 시끌벅적합니다.
동아리 가두모집 기간이라며 각종 동아리에서 교문에서부터 진을 치고 신입생들에게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댄스 동아리는 아침부터 노래를 틀어놓고 열띤 댄스 대결을 펼치고 풍물연구회에서는 꽹과리와 장구등이 어우러져 신명나게 우리가락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이리저리 유인물을 나눠주며 한명의 신입생이라도 더 건지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제 관심은 오로지 한곳으로만 향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사진동아리 앞 가판대에 앉아서 범접 못 할 아우라를 풍기고 있는 그녀에게로 말이죠..
“희연아~~여기 무지 시끄럽다~~”
“호호호, 정신없지? 교대해주러 동기 한명 온다고 했거든.. 잠시만 기다려줘 응?”
저를 올려다보며 눈을 깜빡이고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우면서도 귀엽기까지 합니다.
희연이를 위해서라면 전 잠시간이 아닌 영겁이라도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녀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약간 떨어져 있는 벤치에 앉아 희연이의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습니다.
희연이는 가판대로 찾아온 신입생들에게 능숙하게 각종 사진기와 사진집들을 설명해주며 은근슬쩍 가입신청서를 건네고 있습니다.
이런 데서는 어쩔 수 없이 희연이도 천사가 아닌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아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짓게 됩니다.
허나 사진동아리 앞에만 유독 많은 수의 남자들이 줄서있는 걸 보니 왠지 희연이가 얼굴마담이라도 된 것 같아 기분이 그닥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좀 과장해서 몰려있는 남자들을 일렬횡대로 세워놓으면 모르긴 몰라도 아마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고도 남을 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타가 도착했는지 희연이가 제 쪽으로 뛰어오고 있습니다.
제게 다가와 팔짱을 끼니 주변사람들이 시선이 하나같이 제게 쏠리고 있습니다.
‘그래 이놈들아~~~ 내거니까 이제 신경들 좀 꺼라 제발’
주변 남자들이 의식 되 평소에 남들 앞에선 잘 하지도 않던 행동까지 하게 됩니다.
희연이의 허리에 과감히 팔을 두르고 최대한 이 여자는 내 여자란 인상을 풍기며 도서관 앞 커피 자판기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희연이는 이상해 보였나봅니다.
“지섭아.. 너 지금 표정 너무 웃긴 거 알아? 호호호호”
뭐가 그리 우스꽝스러운지 희연이는 못내 참고 있던 웃음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왜...왜...뭐....뭐가 어때서 내 여자 내가 만진다는데..”
“으이구... 학교에서는 사람들 시선 때문에 창피하다고 팔짱도 제대로 못 끼던 사람이 대뜸 허리에다 팔을 감고 안지를 않나 그 거만해 보이는 표정은 또 뭐야~ 호호호., 차라리 내 등에다 임자 있다고 써놓지 그래? 호호호”
아 그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럴까? ‘임지섭 꺼’라고 포스트잇에라도 적어서 붙여놓을까 그럼?”
희연이는 너무나 진진해진 제 표정에 정색을 하고 맙니다.
“하~ 뭘 또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니~~하여튼 농담 진담도 구분도 못하고 으이구~”
“알고 있거든? 나도 농담해 본거라고...”
“아이궁~~ 요 시치미 떼는 것 좀 봐.. 아잉...귀여워라~”
희연이는 시치미 떼는 제 행동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 제 양 볼을 손으로 마구 비벼대고 있습니다.
“어허.... 자꾸 그러면 안아버리는 수가 있다!!! 손 치워~~~”
희연이는 제가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하는지 손을 치울 생각이 없어보였습니다.
그렇담 창피를 무릅쓰고서라도 허세를 보여줘야겠죠..
자판기 앞에 도착해 커피를 눌러놓고는 희연이가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 그대로 희연이의 허리를 양팔로 감아서 끌어안아버렸습니다.
방심하고 있던 희연이는 너무나 쉽게 제 몸에 끌려와 안겨버렸습니다.
순식간에 저도 희연이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버렸습니다.
“아이~ 미쳤어 정말~~. 빨리 놔~~ 빨리... 사람들 다 쳐다보자나 이씨~~”
봉긋한 젖가슴이 제 몸에 닿고 있어 놔주기 싫었지만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희연이의 표정에 금세 꼬리를 내리고 맙니다.
자신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에 힘이 풀리자 희연이는 곧바로 저를 밀쳐내고는 흘겨보고 있습니다.
흘겨보는 모습도 참으로 예쁘기만 합니다. 헤벌쭉....
“커피나 빨리 빼 사람들 기다리잖아!!!!”
그러고 보니 애정행각에 눈이 멀어 커피를 뺄 생각도 못하고 있었나 봅니다.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들의 눈빛이 제 뒤통수를 마구 쪼아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에 뒤늦게 창피함이 물밀듯이 들이닥치고 있습니다.
“윽~~ 뜨거!!!”
빨리 자리를 떠야겠다는 생각에 급하게 커피를 꺼내다 그만 커피를 옷에다 쏟고 말았습니다.
덕분에 상의가 뜨끈뜨끈하게 젖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구~~~ 조심 좀 하지!!! 이거 어떡해,”
급하게 손수건으로 닦아내긴 했지만 상의엔 커다란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결국 제 조심성 없는 행동을 타박하며 희연이는 절 자신의 동아리 방으로 데려갔습니다.
“뭐하고 있어!! 빨리,,,,, 벗어~~ 얼룩지기 전에 대충이라도 헹궈서 드라이기로 말리게”
희연이의 입에서 벗으라는 말이 나오니 왠지 모르게 야릇한 기분이 듭니다.
동아리방이라는 이 밀폐된 공간에 단 둘이 있다는 생각에 점점 야릇해지기만 합니다.
희연이가 벗으라는데 주저 할 것 없이 벗겠습니다.
상의를 벗어 건네는데 희연이의 모습이 조금 이상합니다.
금세 홍조를 띈 얼굴로 저와는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쳐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아직까지 서로에게 신체를 노출한 적은 없다보니 희연이 역시 이 상황이 야릇하게 느껴졌나 봅니다.
슬며시 희연이 옆으로 바짝 다가가 옷을 건네는 척 하면서 다시 한 번 그녀의 몸을 제 품으로 당겨왔습니다.
춘삼월 동아리방 내부는 춥기 그지없었지만 희연이의 온기에 그 추위는 그대로 물러나고 있었습니다.
“음~~ 따듯하다....”
희연이의 고운 양 볼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던 희연이의 손이 살짝이 제 맨 어깨 위를 덮어오고 있습니다.
희연이도 분위기에 빠졌나 싶었지만 어깨에 올려 진 손이 제 몸을 밀어내기 시작합니다.
희연이는 초조한 눈빛으로 동아리방 출입문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아이 안 돼~~, 여기서 이러다 사람들 오면 곤란하단 말야.. 빨리 놔줘..”
쉽게 놓아주지 않고 있자 이제는 제 어깨를 두드려오고 있습니다.
“아이..... 사람들 앞에서 내가 밝히는 여자로 인식됐으면 좋겠어? 그리고 이거 얼룩진단 말야. 빨리 가서 헹궈야 해!!! 얼릉!!!”
희연이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출입문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좀 더 안고만 싶은데 제 욕심만 부릴 수는 없었습니다.
제 손에 붙들려 있던 허리를 풀어주자 희연이는 부리나케 제 상의를 들고 동방을 나가 버립니다.
물론 저를 흘겨보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잠시 동아리 방을 구경하며 희연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심히 보니 동아리 방 벽면에 동아리 사람들이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들이 여러 장 걸려 있었습니다.
아마도 출사를 나가 찍은 사진들 같습니다.
잠시 동안 사진을 구경하던 중 한 장의 사진이 자꾸 제 눈에 밟히고 있었습니다.
동아리 사람들끼리 찍은 단체 사진으로 보이는데 희연이의 옆에 서 있는 한 남자가 희연이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한 어색한 포즈가 아닌 몸에 밴 듯 무척이나 자연스런 모습이었습니다.
희연이 또한 고개를 살짝 그 남자의 어깨에 뉘인 채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제 마음속에 질투심이 마구 솟구쳐 올랐습니다.
아직까지도 사람들 많은 곳에선 스킨쉽도 제대로 못하게 하는 부끄럼쟁이가 사진 속에선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둘 사이가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너무나 다정해 보여 질투가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가까운 사람이기에 저토록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묘한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는 사이 희연이가 물에 헹궈진 옷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저는 다짜고짜 그 사진에 대해 희연이게 따지듯 물었습니다.
“희연아 저 남자 누구야?”
희연이는 거리가 멀어 잘 보이지 않는지 제 앞에 까지 와서야 사진을 확인하고는 씨익 웃음을 내보입니다.
“뭐야? 우리 자기~~ 질투하는 거야 지금?”
제 물음에 제대로 답을 하기는커녕 도리어 웃으며 저를 약 올리는 것 같아 순간 기분이 상해버렸습니다.
질투하는 제 모습을 즐기기라도 하는 것인지 또다시 도리어 물으며 제 옆구리를 콕콕 찔러오고만 있습니다.
가뜩이나 사진 속 모습에 언짢아 있는데 대답은커녕 장난만 치고 있다니요..
순간적으로 희연이의 행동에 정색을 해버리곤 멀리 떨어져 앉아버렸습니다.
“하지 말라고 좀. 대답부터 하라고,,,, 저놈 누구냐고!!!!”
갑작스런 정색에 희연이가 제법 놀란 것 같습니다.
지영이와의 그 일 때문에 없던 트라우마라도 생겨버린 모양입니다.
사진 속 모습에 질투를 느낀 나머지 희연이에게 처음으로 화를 내 버리고 말았습니다.
“뭘 그런 것 가지고 화를 내~~~ 그리고 넌 나 만나면서 지영이도 만났잖아.. 겨우 이 사진 한 장 가지고 그래~”
희연이는 자신이 말해놓고도 지영이를 입에 올린 자신의 말에 스스로 놀랐는지 당황해하고 있습니다.
희연이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제 아픈 구석이 찔려오자 저도 모르게 더 욱하고 말았습니다.
“아!! 얘기 안 할 거면 말어... 옷이나 줘 가게”
희연이의 손에 들려 있는, 물기가 아직 제법 남아있는 옷을 그대로 뺏어 들고는 입기 시작했습니다.
희연이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아니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래 남자가~.. 그냥.... 선배야 친한 선배...”
쉽게 넘어 갈 일이 점점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저를 그저 질투에 눈이 먼 좀생이로만 보고 있나봅니다.
그게 아닌데 말이죠.
“아니 너는 친한 선배한테 어깨 내주고 그렇게 고개까지 기대고 있니?”
저는 자존심이 긁힌 것 같아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친한 선배면 그럼 어디까지 가능한 건데?”
아차 싶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습니다.
희연이가 저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난 지영이 존재까지 이해해주면서 널 만나고 있는데, 너는 고작 이 사진하나 가지고 나한테 이러는 거야 지금?”
‘너는 고작 그 사진하나 때문에 내가 이런다고 생각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입을 닫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상태에서 아무리 얘기를 해봤자 싸움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아 젖은 옷을 입은 채로 그대로 동아리방을 나와 버렸습니다.
그냥 간단하게 친한 선배다 그 말 한마디였으면 저도 쉽게 끝날 일이었는데 지영이 얘기와 그런 남자밖에 안되냐는 투의 희연이의 말에 자존심이 상해버렸습니다.
그 사진하나 때문에 우리는 처음으로 다투었고 저는 희연이를 동방에 혼자 내려둔 채 나와 버렸습니다.
옷이 축축해서 수업을 듣고 있기도 불편할 것만 같습니다.
오늘은 그냥 오전 수업은 재껴 버리고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집으로 다시 가기 위해 지하철 역사로 들어서려는데 때마침 호출이 들어왔습니다.
‘뭐야... 벌써부터 사과 하는 건가..’
희연이겠거니 하고 호출기를 확인하니 생소한 번호가 찍혀있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랴부랴 역사 안 공중전화 부스에 도착해 전화부터 걸었습니다.
“여보세요?”
첨 듣는 음색의 여자 목소립니다.
“여보세요 저 1234 호출하신 분 좀 부탁드립니다.”
“아 네,, 제가 했는데요...”
순간 원주율을 머릿속에 떠올려 봤습니다.
3.141592653589793238462643383279
π의 소숫점 30자리까지 정확히 외울 정도로 기억력이 좋은 편인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저 실례지만 누구....신지....”
“아~~ 저 임.....임지영이에요..”
아~~~~ 그동안 까먹고 있었는데 결국 오늘에서야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목소리가 젊어 보입니다.
그리고 꽤나 아름답게 들려옵니다.
허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뭔 얘기를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채팅할 때는 능수능란하게 말을 걸던 저였는데 말이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기 시작했습니다.
“아 네.. 임지섭입니다. 목소리 듣고 너무 놀랐어요. 너무 젊게 들려서 하하하”
“어머... 그거 너무 여자한테 실례인데~~~ 저 아직 젊어요~”
예기치 못한 통화에 말실수라도 한 것 같습니다.
“아... 그런 뜻이 아니라.. 생각보다 목소리가 어려보인다고 말하려고 한 건데...”
“후후 알아요... 그냥 장난쳐 본거에요.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오셨다고 해서 충분히 감안해서 알아들었어요. 호호호”
농담을 한 거라고 하니 다행이었지만 미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단어에 붙는 조사하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게 한글이다 보니 왠지 말하기가 무척 조심스러워 졌습니다.
“아... 정말 미안해요.. 너무 목소리가 동안이라서 제가 당황해서 그랬나 봐요”
“호호호. 동안은 얼굴이 어려 보일 때 쓰는 거구요. 한자로 유성이라고 하시거나 ‘목소리가 앳되다’라고 표현하시게 맞아요. 호호호”
순간 M본부에서 하는 우리말나들이란 프로가 생각이 났습니다.
가끔 볼게 없을 때 멍하니 틀어놓곤 했었는데 꼭 거기서 잘못된 말을 바로 잡아주고 있는 아나운서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결국 저를 가르치듯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전 점점 기가 눌리고 말았습니다.
“아... 네...”
“어머... 미안해요... 제가 버릇이 돼서 그만... ”
“아.. 아뇨 괜찮습니다. 틀린 표현이면 정정을 해주시는 게 맞죠... ㅡㅡ;; 하하”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습니다.
임지영 앞에서는 앞으로 언어 선택을 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대 어쩐 일로 호출을 하셨어요?”
“아 ~~~ 딴 얘기 하느라 얘기가 샜네요. 호호호. 오늘 시간이 괜찮을 것 같은데... 오늘 벙개나 하시죠. 호호호”
아 오늘은 지영이 병문안을 갈 생각이었는데 하필 날짜도 기가 막히게 정했습니다.
아무래도 오후 수업도 재끼고 그 시간에 병문안을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네 그러시죠. 제가 오후까지는 수업이 있으니 저녁에 만나서 가볍게 식사랑 술 한 잔 하시죠. 그럼”
“네 그래요 그럼. 장소는 어떻게 할까요?”
“아 제가 근처로 갈게요. 창천동이니까.... 신촌 그레이스백화점 앞에서 뵙기로 하시죠. 시간은 넉넉하게 6시로 할까요?”
“네 좋아요”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서로 알아보기 쉽게 하기 위해서 입고 나올 옷과 인상착의를 알려주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찝찝한 몸을 씻고 호출기를 확인해 봤습니다.
희연이에게 아직도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그녀 또한 단단히 화가 난 모양입니다.
저 역시도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라 먼저 연락하기는 싫었습니다.
‘고작 그런 일로 화를 내는 그런 남자라니....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
저는 입고 나가기로 한 옷으로 갈아입고 우선 지영이의 병문안부터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술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차를 가지고 나가긴 그랬지만 아무래도 이동 할 일이 많아서 차를 가지고 가기로 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니 그제야 희연이에게서 호출이 왔습니다.
공중전화로 가서 잠시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죄다 호출기를 들고 있는 게 아무래도 음성 메시지까지 확인하러 온 것 같았습니다.
잠시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좀처럼 줄이 줄어들지가 않습니다.
여유 있게 일정을 잡았지만 집에서 한참을 노닥거리다 나왔다 보니 시간이 꽤 타이트 했습니다.
더 지체하고 있다간 아무래도 늦어질 것만 같아 우선 병실부터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병실 앞으로 가니 오랜만에 뵙는 지영이 아버님이 서 계셨습니다,
“안녕하셨어요. 아버님”
처음 뵐 때부터 아버님이란 말이 입에 붙어있었던 저인지라 차마 아저씨란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생각지 못한 저의 방문에 깜짝 놀라고 계셨습니다.
하긴 그 일이 있은 후 첨 뵙게 되는 거니 놀랄 만도 하셨을 겁니다.
“어.. 그래 그래.. 이거 딸자식 가진 부모가 죄인이라더니 내가 정말 그 짝이군.. 자네 볼 면목이 없네...”
말씀을 하시면서도 제게 너무나 미안해하시는 모습이 절 너무나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아.. 아닙니다. 지영이는 안에 있나요?”
“어...어.. 안 그래도 어제 오늘 호출을 했다고 그래서, 자네가 오는 걸 기다리던 눈치더군.. 어서 나 신경 쓰지 말고 들어가 보게”
병실 안으로 들어서니 지영이가 방긋 웃는 모습으로 저를 반기고 있습니다.
웬일로 화장까지 한 것이 이제는 환자 같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왔어 자기야...아. 아니..지섭아...”
지영이는 저를 자기라고 부르고는 놀란 눈으로 다시 제 이름으로 고쳐 부르며 미안해하고 있습니다.
“미안해... 나도 모르게 그만...”
“아니야 괜찮아. 그런데 너 다 나은 것 같아 보인다. 표정도 밝고 화장까지 하고 있고. 환자가 아닌데 이젠...”
지영이가 부끄러운지 금세 얼굴을 붉히고 있습니다.
“아니....너 올 것 같아서... 어제, 오늘 화장하고 있었지..”
제가 냉정했어야 했는데 괜한 기대감을 지영이에게 심어준 건 아닌가 싶어 막상 후회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마셔 너 오면 주려고 사다놨어. 너 엄청 좋아하는 거잖아..”
화장을 한 얼굴과는 다르게 핏기 없어 보이는 지영이의 창백한 손에 키위쥬스가 힘없이 들려 있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챙겨주고 싶었나 봅니다.
저는 신맛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편이었습니다.
남들이 먹기 힘들어 하는 레몬 같은 경우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순식간에 먹어 치울 정도였습니다.
전 레몬만큼이나 키위에도 환장한 놈입니다.
않은 자리에서 키위를 10개까지도 까먹은 적이 있을 정도로 좋아합니다.
지영이에게 키위쥬스를 받아들고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왠지 모르게 한결 부담스러운 마음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저기 나 부탁...있는데 들어 줄 수 있어?”
부탁이란 말에 금세 움츠러들었지만 간절한 그녀의 표정을 쉽게 지나칠 수 가 없었습니다.
“뭐...뭔데?”
어려워하던 지영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있습니다.
“나 저기에 태워서 바람 좀 쐬게 해 주라. 병실 안에만 맨날 있으니 답답해서~~”
그다지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기에 속으로 다행스럽게 여겼습니다.
휠체어에 그녀를 앉히곤 잠시 병실 밖으로 그녀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동안 답답한 병실 안에 박혀있었을 생각에 볕이 잘 드는 쪽으로 그녀를 데려갔습니다.
화창한 봄 날씨에 너무 눈이 부셨는지 그녀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습니다.
“미안.. 너무 눈부시지?”
저는 급하게 지영이 앞으로 가서 빛을 몸으로 막아주었습니다.
그런 제게 지영이가 손을 뻗어왔습니다.
순간 몸이 움찔하며 피하려 했지만 저번처럼 또 크게 울 것만 같아 이내 손길을 뿌리치지 않고 그냥 서 있어 주었습니다.
그런 절 지영이가 애매한 표정으로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순간 밀려오는 민망함에 말을 꺼내게 됩니다.
“왜...왜.. 뭐.. 묻었어?”
제 말에 지영이는 가볍게 고개를 저어 보입니다.
“그냥 예전에 내 손만 닿아도 환하게 웃어줬는데... 이제는....”
지영이가 말끝을 흐리고 있지만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어색해지는 걸 막기 위해 순간 화제를 돌렸습니다.
“그런데... 승민이란 그 친구는 왜 안보여? 어디 갔어?”
휠체어를 잠시 벤치 앞에 세워두고는 맞은편에 앉아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고 얘기를 나눴습니다.
“어.... 이제 오지 말라고 했어... 괜히 나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아서”
그놈은 고생하는 게 싫고 저는 고생해도 된다는 말로 느껴지니 은근 기분이 나쁩니다.
“참네... 아무리 승민이란 놈이랑 사귄다고 해도 나는 이렇게 부려먹고,, 승민이란 놈은 고생시킨다고 들여보내고 너무 대놓고 그러지 마라....”
제 말에 지영이는 여전히 알 듯 모를 듯 묘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그...그게 아니고. 보지 말자고 했다고... 난 걔 사랑하지도 않아...”
그제야 지영이의 말을 잘못 이해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승민이란 놈 내가 봐도 괜찮은 녀석 같은데 왜 그랬니. 꽤나 용기 있고 너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던데....”
제 말에 지영이는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넌 어떻게 그렇게 쉽게 승민이를 인정하니..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날 좋아하긴 한 거니? 너한테 원수와도 같은 애를 그렇게 쉽게 인정을 하는 거냐고!!”
전 지영이의 말에 잠시 흥분을 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따라 이 곳 저 곳에서 저를 마구 찔러 대기만 합니다.
하지만 아픈 애를 앞에 두고 화를 낼 수는 없기에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이를 악물고 얘기를 했습니다.
“네가 나를 배신했다고 느꼈을 때보다도 지금 그 말이 더 나를 화나게 하거든. 난 너한테 최선을 다했고 내 남아 있는 심지마저 다 태웠다고.. 알아? 어떻게 네가 지금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니? 하.... 무슨 말을 해도 좋은데.,, 내가 널 좋아하고 사랑했었다는 걸 의심하는 그런 말은 앞으로라도 하지마라.”
지영이는 절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말을 하다 보니 점점 기분이 나빠지고 맙니다.
“앞으로 그런 말 하려면 나 볼 생각하지도 마. 난 너랑 사랑했던 것까지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근데 네가 내 사랑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평가한다는 게 정말 웃긴다.”
독한 제 말에 결국 지영이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훌쩍이고 있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독한 말을 잘 뱉어 낼까요.
아무래도 그 날 이후로 저는 변한 것 같습니다.
남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있습니다.
“미...미안해... 나도 모르게..흑...흑,,너무 쉽게 네가 승민이를 인정하는 게... 너처럼 소유욕이 강한애가....”
지영이의 눈물을 보게 되자 참지 못하고 화를 낸 것이 미안해지고 있습니다.
“그래... 나 소유욕 강한 건 잘 아네.... 근데 내가 승민이를 인정한 건 나한테 또 맞을 각오를 하고 나한테 와서 용서를 빌며 너를 사랑한다고 해서야. 그 자식이라면 최소한 나처럼 사랑하는 여자 남한테 뺏기지는 않겠다 싶었거든.... 웃기지만. 정말 어처구니없지만... 넌 내 첫사랑이었구.. 내가 한때나마 무척 사랑했던 여자였으니까.. 네가 그 자식이랑 행복하게 지내길 바랐다고.. 불행해 지는 것은 원치 않았어..”
“흑흑흑...미안해....그런 것도 모르고....흑흑흑”
지영이가 소리 내 울기 시작하니 주변사람들 시선이 제 쪽으로 이내 집중이 돼버렸습니다.
“그만 울어.. 사람들 다 쳐다보자나.. 자꾸 그러면 나 정말 다음부터 안 온다 이제..”
“알았어.. 훌쩍.. 안 울게 이제..훌쩍..너무 미안해.....”
“미안하단 말도 이젠 그만해.. 난 털어 버렸어 이제는..”
비록 그녀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한 말이지만 제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는 여전히 그 때의 상처가 응어리로 똘똘 뭉쳐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는 지영이를 한참 달래고 나서야 병실로 데려다 주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어느덧 시간을 보니 지금가지 않으면 약속 시간을 늦을 것만 같습니다.
희연이에게 전화를 해야 하는데 여전히 공중전화는 만원이라 포기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에 올라 약속 장소로 향했습니다.
퇴근 전 시간대라 막히지도 않았는데 겨우 제 시간에 도착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성격이 성격인지라 규정 속도를 절대 벗어나지 않는 운전 스타일 때문이었습니다.
가벼운 만남인데도 단둘이 만나는 거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나이차가 꽤 나는 사람과 만나는 거라서 그런 건지 약간은 긴장이 되었습니다.
약속 장소인 신촌 그레이스 백화점 앞에 도착해 보니 북적대는 인파로 주변을 살피기가 불편했습니다.
‘흰색에 검은색 체크무늬의 원피스라고 했겠다.’
저는 눈을 크게 뜨고 그레이스 백화점 앞에 있는 사람들을 탐색해 보았습니다.
아직까지 도착을 하지 않았는지 그런 의상을 입은 여자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저는 평소처럼 지석 주위에 앉고 싶었지만 옷이 더러워 질까봐 앉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10살이나 위인 사람을 만나는 자리인지라 간만에 격식을 갖춰 슈트를 입고 왔기 때문입니다.
더러워지면 세탁소로 가야하니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10분 이상을 아무것도 없이 기다리고 있으려니 점점 지겨워져만 갑니다.
마침 챙겨온 워크맨을 틀고 헤드셋을 끼고는 노래를 들으며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괜히 입구쪽에서 만나기로 했나 봅니다.
시간이 갈수록 퇴근시간이 겹치면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차라리 우측에 있는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보자고 할 걸 그랬나 봅니다.
30분이 지나가고 있음에도 아직 모습조차 보이지가 않습니다.
아무래도 바람을 맞은 건 아닌가 싶습니다.
아까부터 20대 중반정도로 보이는 사람도 제 근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지 몇 번을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녀도 바람을 맞았는지 한참을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뭐야... 여자를 기다리게나 하고... 남자가 참 매너 없는 놈인가 보네.. 쯧쯧..’
혹시나 그녀가 아닐까란 생각도 해봤지만 임지영이 얘기해 준 의상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긴 회색코트로 몸을 감싸고 있었고 30이라고 하기엔 너무 젊어보였습니다.
40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고 있습니다.
‘어휴. 안 나올 거면서 만나자고 먼저 얘기나 하지 말지’
무료함에 지쳐 이제는 노래를 듣는 것마저 슬슬 지겨워져만 갑니다.
헤드셋을 귀에서 빼고 워크맨에 줄을 감으며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순간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제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습니다.
“저기....임지섭씨?”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확인을 하기위해 고개를 뒤로 돌렸습니다.
아까부터 저와 몇 번이나 눈이 마주쳤던 그 여자였습니다.
‘설마... 이 여자가 임지영???’
30살 이라고는 믿겨 지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였습니다.
약간 마른 듯 보였고 키는 165 정도는 될까 싶었습니다.
“네... 혹시... 임지영씨..??”
그녀가 저를 보곤 어색해하며 수줍게 웃고 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외모에 당황해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까 몇 번이나 눈이 마주쳐서 긴가민가했는데 헤드셋을 끼고 계셔서...”
아... 아무래도 헤드셋을 끼고 있어서 말 걸기가 힘들었었나 봅니다.
“아 저도 몇 번 눈이 마주치긴 했는데 옷이.... 오늘 입고 오기로 하신거랑 달라서 제가 알아보지 못했네요. 생각보다 엄청 어려보이시기도 하고.....”
혹시나 또 말실수를 할까싶어 조심스럽게 얘기를 했습니다.
다행히 표정을 보니 실수한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아... 생각보다 날이 추워서 코트를 껴입고 있어서 못 보셨나 봐요.”
코트를 유심히 보니 그제야 사이사이로 검은색의 체크무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근데 생각보다 너무 젊어 보이셔서 원피스만 입고 계셔도 못 알아 볼 뻔 했어요.”
잠시 동안 백화점 앞에서 얘기를 나누며 저녁 메뉴를 고르고 있었습니다.
“피자 먹고 싶은데... 괜찮으시죠?”
그녀를 데리고 근처 피자헛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솔직히 30대면 피자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을 줄 알았는데 식성도 우리나이 때랑 별반 차이가 없나 봅니다.
막상 피자헛에 도착해서 주문을 하고 나니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난감했습니다.
얼굴도 모른 채 채팅을 했을 때는 서로 술술 나오던 말이 막상 만나고 나니 서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잠시간의 적막이 흐르고만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니 무지 신기하네요..늘 머릿속으로만 상상했는데. 훨씬 멋있는데요. 약간 서구적인 마스크에 호호호.. 채팅 할 때는 많이 어리숙해 보이셨는데 호호호”
이게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네... 유전이라 친탁을 해서 그래요.. 그리고 아직 그쪽으로는 경험이 많지 않아서 그래요. 표현도 많이 서툴구요..”
“아참 외국에서 살다 왔다고 했죠? 그러고 보니 유학생 느낌도 좀 나는 것 같네요. 호호호.”
“뭐...유학은 유학이죠. 청주에서 올라왔으니 하하하.”
대화가 오고가자 처음보단 어색함이 줄어들었습니다.
서로 말문이 터지자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술술 말이 오가고 있습니다.
왠지 이렇게 연령대가 틀린 새로운 사람을 알아 나가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문한 피자가 나오자 저는 먹기 좋게 잘라서 접시에 담아 그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생각보다 먹성도 좋은 듯 내숭도 떨지 않고 잘만 먹고 있습니다.
저렇게 밝은 사람이 매일 방구석에서 채팅만 하고 있었다니 얼마나 심심했을지 가히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무지 밝은 성격이시네요. 오히려 제가 처음 벙개에 나온 사람 같은데요..”
“호호 생각보다 재밌는데요, 혹시나 이상한 사람은 아닐지 약간 걱정이 돼서 올까말까 계속 망설였었거든요.”
그래서 늦게 온 모양입니다.
최대한 매너를 지키고 편안하게 보내도록 배려를 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근처에 우드스탁이라고 뮤직바가 있는데 식사 후에 거기서 가볍게 맥주나 하시죠?”
“음~~~ 좋아요. 저도 가본 적 있긴 한데.. 오랜만에 가보게 되는 것 같은 데요. 호호호”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우드스탁으로 향했습니다.
철문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니 메탈리카의 “Seek and Destroy”가 힘찬 기타 리프와 함께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들어오면서부터 머리와 어깨가 기타 리프를 따라 들썩여졌습니다.
뿌연 담배 연기와 함께 안에 있던 사람들은 마치 귀신에라도 홀린 듯 기타 리프를 쫓아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당시, 인기 있던 HOT 같은 아이돌 음악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전 혼자서 우드스탁을 가거나 롤링스톤즈라는 라이브바에서 인디밴드의 공연을 보는 걸 더 선호했습니다.
이곳에 얼마 있지도 않았는데 오늘 지영이와 희연이 때문에 무거웠던 마음이 다 풀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임지영은 메탈리카의 노래에 심취해 흥겨워하고 있는 저를 보곤 무척이나 신기해하고 있습니다.
“여기 자주 오시나 봐요? 무척이나 자연스러운데요. 호호호.”
우퍼 스피커 근처라 그런지 그녀는 꽤나 높은 소리로 외치듯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 몇 번 와봤는데 저하곤 잘 맞더라구요. 듣고 싶은 노래를 모르는 사람들이랑 같이 교감하며 즐기는 것이 꽤 재밌더라구요, 보시면 혼자 오는 사람들도 많아요. 방금 전 곡이 제가 고등학생 시절 미친 듯 들었던 메탈리카 1집 곡이라서 저도 모르게 그만 삘이 꽂혀서요, 하하하”
“보고 있으려니 저도 같이 덩달아 흥겹네요,”
“좋아하시는 곡 있으시면 제가 신청하고 올게요.~”
저는 그녀가 말한 곡을 신청하고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담배 연기가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금세 그 안의 열기에 취해, 맥주에 취해, 락음악에 취해 우린 그런 것조차 신경 쓸 겨를이 없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신청한 곡이 나왔습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열정적인 목소리가 흥겨운 드럼라인과 어울려 너무나 듣기 좋은 곡 ‘I was born to love you" 였습니다.
자신이 신청한 곡이 나오자 그녀는 무척이나 아이처럼 즐거워하고 신기해하고 있었습니다.
“퀸 좋아하시나 봐요?”
“네. 알게 된 건 첫사랑이 때문이었어요. 워낙에 음악에 미쳐있던 사람이라 같이 있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된 거죠. 그러다 남자 보컬의 목소리가 너무 열정적이라 저도 모르게 퀸에 빠져들었죠. 프레디 머큐리는 비록 죽었지만 그의 음악은 여전히 살아 있는 느낌이거든요”
“오늘 좀 기분이 별로 안 좋았는데 지금은 마음이 한결 상쾌해진 것 같아요~~”
“저도 간만에 이런 업 된 기분으로 같이 즐기고 있으니까 한층 젊어진 것 같아 너무 좋네요~~”
“에이 아직 한창 젊어보이세요~ 그런 말 하면 너무 나이 든 사람 같잖아요, ~~”
젊어 보인 다는 말에 그녀는 기분이 무척이나 좋은 듯합니다.
여자는 아줌마든 할머니든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고 하면 최고의 칭찬인 듯합니다.
“너무 비행기 태우지 마세요~~ 자꾸 올려주시면 떨어질 때 너무 아프거든요~~”
11시가 다 돼서야 우린 우드스탁을 빠져 나왔다.
한껏 달아올랐던 가슴이 밖으로 나오니 뻥하고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때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죠?~~~”
“네.. 무지무지... 너무 가슴이 후련해진 거 같아요, 그동안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간 것 같네요 호호호”
그녀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업 된 모습의 그녀가 나이에 맞지 않게 총총걸음으로 뛰고 있습니다.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다음에는 제가 쏘도록 할게요. 호호호.”
“네 저도 기분전환도 되고 모처럼 즐거웠습니다,”
임지영과 헤어지고 집으로 가는 중 간만에 들었던 메탈리카의 사운드가 귀안에서 계속 멤 돌았습니다.
업 된 기분으로 3층으로 올라가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집안에 불이 켜져 있고 TV소리까지 들립니다.
신발을 보니 희연이가 와있는 것 같습니다.
그제야 아까 전화하지 못한 게 생각이 났습니다..
‘아차 이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들어오는 인기척에 티비를 보고 있던 희연이의 눈이 저를 향합니다.
그녀의 두 눈에 한가득 원망이 쌓여있었습니다.
평소라면 그녀의 노려보는 모습도 예뻐 보였을 텐데 지은 죄가 있어서인지 그저 무섭기만 합니다.
옆으로 다가가 앉자 희연이가 살짝 거리를 벌려 앉습니다.
다시 한 번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자 또 다시 살짝 거리를 벌려 앉습니다.
그녀를 쇼파끝까지 몰아가자 그제야 피하지 않고 앉아있습니다.
저는 누그러진 마음으로 희연이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희연이의 표정을 보니 처음보다는 풀어진 듯 보였습니다.
살짝 옆에서 희연이를 안았습니다.
희연이가 제 품안으로 들어옵니다.
이것으로 우리의 첫 다툼은 끝이 나는 걸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희연이가 저를 강하게 밀쳐내 버립니다.
‘아직 풀리지 않은 건가’
저를 또다시 노려보고 있는데 아까와는 다른 느낌입니다.
“왜 그래?”
“너 누구 만나고 왔어?”
저는 뜨끔했지만 모른 척 했습니다.
“아니 내가 누굴 만나고 와”
희연이는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절 보고 있습니다.
“여자 향수 냄새가 온몸에서 진동을 하는데 지금 나보고 그걸 믿으라는 거야?”
***********현재 시점
“자기야.. 좀 밟아.... 앞뒤로 차가 하나도 없는데...”
“안 돼... 주차선도 지키라고 있듯이 규정속도도 지키라고 있는 건데...”
“어휴~~ 속 터져 진짜... 갓 길에 세워봐... 내가 운전하고 말지..”
“어허.... 하늘같은 서방님한테... 일분일초 먼저 가려다 고속도로로 황천길부터 먼저 간다... 난 최소한 100살까지는 살아야 되는데...”
“으이구. 벽에 똥칠 할 때 까지 살고 싶어??”
“아니... 100살까지 산다고 해도... 널 사랑하기에는 그저 시간이 부족해 보이거든...”
“으이구 진짜... 아 몰라... 나 그럼 잘래... 집에 도착하면 깨워줘...”
아내는 이내 보조석에 앉아 눈을 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입꼬리는 올라가서 내려올 줄은 모르고 있습니다.
천성이라는 건 쉽게 바뀌지 않는지 20살 때부터 해오던 운전습관은 30후반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바뀌지 않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이제껏 살면서 딱지라고는 딱 한번밖에 떼어 본 적이 없습니다.
첫 아이의 출산이 임박해서 과속을 한 번 했던 것 말고는 말이죠.
운전 중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옵니다.
기어에 올라가 있는 제 손 위에 어느새 아내의 손의 올라와 포개어져 있습니다.
간만에 지인과 쇠주잔을 기울이는 바람에 하루를 건너뛰었네요.
그럼 즐감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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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 I was born to love you: https://www.youtube.com/watch?v=vNhhAEupU4g
퀸 Boheminan Rhapsody: http://www.youtube.com/watch?v=eA8CVQ-kfJA
락의 전설 퀸의 노래로 골라 봤습니다. 워낙에 유명한 그룹이라 설명이 필요 없을 듯 합니다.
가수는 노래따라 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우리나라에만 국한 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프레디 머큐리도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사처럼 모든걸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죠..
더 이상 그의 다른 신곡들은 접할 수 없지만 그가 남겨놓고 간 노래만으로도 충분히 그를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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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부. I was born to love you
희연이의 안색이 금세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그랬....구나......”
금세 풀이 죽어버린 희연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제 자신에게 너무나 화가 나기 시작합니다.
희연이에게는 항상 기쁨만 주고 싶었는데 벌써부터 저는 그녀를 아프게 만들고 있습니다.
투정이라도 하지 바보같이 속으로 삭히고만 있습니다.
제 남자답지 못한 행동에 앞으로 얼마나 더 그녀가 상처를 받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그날 지영이와 헤어졌다고 얘기했으면 되었을 텐데...’
후회가 밀려옵니다.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결국 전 똑같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지영이와 헤어진 걸 말했다면 희연이는 제가 자신만을 바라본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그와는 반대로 지영이와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바로 자신에게 왔다는 생각에 제 마음을 의심할지도 모릅니다.
후자라면 저를 얼마나 지조 없는 남자로 볼 것이며 자신을 지영이의 대타로 여기고 있다는 생각에 제 마음을 거절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생각에 제 낯빛이 어두워지자 옆에서 한참을 지켜보고만 있던 희연이가 제게 안겨와 달라붙습니다.
“왜 그렇게 심각한 얼굴을 하고 그래~~ 그 애랑 사귀는 거 알고도 내가 먼저 널 흔든 거잖아.. 그러니까 앞으론 내 앞에서 그런 얼굴 하지 마.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나만 봐라봐 주고 있는 지금의 너로도 충분하니까... 아직은.. 네 마음이 정리 될 때까지 난 이렇게 기다릴 수 있어!!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응?”
비록 나이로는 한 살 차이지만 정신연령은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
또래와는 다르게 신중하면서도 침착하고 저를 배려해주는 모습에 전 더욱 희연이에게 빠져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심한 배려심에 어느새 제 고민은 어느새 봄눈 녹듯 사라져버렸습니다.
“고마워 희연아.. 넌 왜... 갈수록 자꾸 빠져들게만 만드니..”
희연이를 알아갈수록 그녀가 가진 매력이 외모만이 다가 아닌 걸 알게 됩니다.
전생에 전 나라를 구한 게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완벽한 여성이 제 옆에 있어줄 리가 없습니다.
저를 첫눈에 반하게 만들었던 희연이의 미소가 다시 제 눈을 멀게 하고 있습니다.
“치....알면 잘해~~~난 항상 네 옆에 있을 거라고 했잖아.”
희연이의 말에 저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만 갑니다.
비록 아직은 말을 못하지만 그녀와 제가 한 몸이 되는 날 전 그녀에게 모든 걸 고백할 생각입니다.
그 날이 빨리 오길 희망합니다. 그때까지만 제 마음속에 비밀을 묻어 두고 싶습니다.
희연이를 집에 바래다주고 집으로 왔습니다.
습관적으로 오자마자 컴퓨터부터 키게 됩니다.
그리곤 천리안 나우누리에 접속을 해 놓고 샤워를 하러 갑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 쇼파로 가서 TV를 켜놓고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혼자 살면서 어느새 이런 버릇들이 생겨버렸습니다.
쇼파에 누워 잠시 오늘 있었던 희연이와의 므훗한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습니다.
금세 아랫도리가 묵직해지며 불룩하게 솟아 올라와 있습니다.
이놈에 똘똘이는 정말이지 지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마음대로 껐다 켰다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발정 난 강아지 마냥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오늘도 주인님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가 봅니다.
‘에휴~~~ 오늘도 손양의 힘을 빌려야 겠구만.. 허구한 날 이게 뭐하는 꼴인지. 부탁해 손양.....’
오늘도 어김없이 제 자지에 손양이 찾아왔습니다.
그녀의 손길에 어느새 제 자지는 항복을 하려고 껄떡거리고 있습니다.
오늘따라 손양의 움직임이 너무나 자극적인 것 같습니다.
“슥 슥 슥 슥”
“아~~~~ 희연아!!!”
결국 손양의 노련함에 얼마 버티지를 못하고 백기투항을 해버렸습니다.
휴 DDR을 하고 나면 항상 뭔가 허무한 느낌이 듭니다.
손양으로 항상 불을 끄려니 끝이 허무하고 안 끄자니 계속 서있어서 불편하고, 또 며칠 쌓이게 되면 시도 때도 없이 서는 통에 결국 어쩔 수 없이 손양과 만나게 됩니다.
이 모든 게 하루빨리 끝나려면 손양이 아닌 한양!!!을 만나는 수밖에 없습니다.
돌돌 말은 휴지로 똘똘이를 닦아내고는 허망함에 컴퓨터 책상 앞으로 다가와 앉습니다.
켜 놓고 볼 일을 보고 온 사이 또 지인들의 안부 메시지가 들어와 있습니다.
일일이 확인하기가 귀찮아 우후죽순 떠있는 메시지창을 모두 닫아버립니다.
‘아.. 그러고 보니 아까 급하게 나가느라고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갔네.’
제 머릿속에 이제야 임지영이 생각났습니다.
대기실에 들어가자마자 접속 중인 친구목록부터 확인을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채팅을 하고 있나 봅니다.
그녀가 있는 채팅방을 귀신같이 찾아 들어갔습니다.
지영바라기님이 입장하였습니다.
아내이기전에여자: 어!! 뭐에요~~ 아까!!! 저 나가볼게요... 이 말만 하고 나가 버리고.. 좀 전에도 메시지 보냈는데 대답도 없고.... 흥~~
지영바라기: 아.... 너무 죄송해요. 당시 너무 급한 일이 생겨버려서 제 말만 하고 갔네요.. 그리고 좀 전엔 집에 들어오자마자 켜놓고 씻고 와서 그래요.
비록 씻고 온 게 다가 아니지만.
아내이기전에여자: 흠~~~ 뭐 그러셨다니 용서해 드려야겠네요. 제가 방 만들어서 초대할게요. 그쪽으로 오세요!!
방을 만들러 임지영이 나가게 되자 방안에 있던 남자들이 하나 둘 시비를 걸어옵니다.
아무래도 임지영이 여자라는 걸 밝혔나 봅니다.
‘으이구!! 같은 남자지만 여자라면 어떻게든 작업이나 해 볼라고...쯧쯧쯧 참 불쌍타.. 저 여자는 유부녀라고 이 불쌍한 중생들아..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지..’
지영바라기: 할 짓 없으면 딸이나 쳐...마!!!
저는 재빠르게 다음 글이 올라오기 전에 퇴장을 눌러 그 방을 빠져나왔습니다.
하마터면 그들이 쓴 욕을 보게 될 뻔 했습니다.
잠시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임지영으로부터 초대가 들어왔습니다.
지영바라기님이 입장하셨습니다.
아내이기전에여자: 왔어요?
지영바라기: 네 ㅋ.. 근데 그렇게 갑자기 나가시면 어떡해요!!! 그 방안에 있던 남자들이 지영씨 나가자마자 저를 막 잡아먹으려고 들던데.... 유일한 여자가 나가버렸다고...
아내이기전에여자: ㅎㅎㅎ 저 요즘 인기 왕많아요~~
그사이 또 채팅용어를 배웠나 봅니다.
어린 사람들이나 쓰는 용어를 그녀가 쓴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지영바라기: 오우~~ 담부터는 대화하려면 예약이라도 해야겠는데요. 그럼.
아내이기전에여자: ㅎㅎㅎ 뭐 지섭씨 정도는 언제나 콜을 해드릴게요. 제가 여기 적응하는데 많이 도와주신 분이니까요 호호호
임지영은 확실히 요즘 채팅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 진 듯 했습니다.
항상 올 때 마다 있는 종식이형처럼 완전 채팅에 빠져서 죽순이가 다 된 듯 했습니다.
지영바라기: 근데 애기도 있다면서 여기서 매일 시간 보내셔도 되요?
아내이기전에여자: ㅎㅎㅎ 저녁 먹고는 거의 저희 엄마 집에 주로 가 있어요. 조카가 딸아이 또래라 둘이 잘 놀거든요. 저희 엄마가 좀 고생이긴 하지만... 이게 친정이 가까운 장점이겠죠. 호호호.
지영바라기: 에이~~ 그래도 아이한테는 엄마가 더 필요하죠...
아내이기전에여자: 잘 모르겠어요.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인데 요즘은 전 같지가 않은 느낌이에요. 제가 못된 엄마인거 같기도 하고...
지영바라기: 못된 엄마 좋은 엄마가 어디 있어요.. 낳아주신걸 감사해야죠. 다만 너무 여기 빠지시는 건 별로 안 좋아요 지영씨나 아이에게나.
아내이기전에여자: 호호호. 알고 있어요. 우리 무거운 얘기는 그만해요~ 난 새로운 여친분과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는지 궁금한데~~ 좀 꺼내 봐요~~. 듣고 있으면 제가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아서요. 요즘 코코코
저는 임지영에게 오늘 있었던 희연이와의 일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아내이기전에여자: 와우~~ 기질이 보이는데요. 지섭씨?
지영바라기: 무슨 기질이요?
아내이기전에여자: ㅎㅎㅎ 저는 그저 팁을 드린 것뿐인데 금세 그걸 받아서 여친에게 써보고 성공을 시키셨다니까요. 아무래도 더 가르쳐 드리면 난봉꾼이 되실 것 같은 기질이.. ㅎㅎㅎ
지영바라기: 에이 난 또 뭐라고요. 전 난봉꾼이 될 만한 기질이 없어요. 그런 기질이 있었으면 진작 첫경험도 하고 다른...... 여자들을 후리고 다녔겠죠...
아내이기전에여자: 그건 모르는 거죠!! 경험이 없던 사람이 섹스에 눈을 뜨면 어떻게 변할지 는 모르는 거니까요.
‘하긴 내 첫사랑 지영이만 봐도 그렇지 않았던가. 나밖에 몰랐던 지영이도 그랬는데...’
생각을 해보니 그녀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잠시나마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또다시 주먹을 쥐고 맙니다.
지영바라기: 그렇긴 한 것 같은데... 제가 좀 소심한 구석이 의외로 많은 인간이라서요.. 어쩔 때 보면 답답할 정도로 주변사람들을 의식하고 있고 또 그 사람들로부터 들려오는 평판에 무척이나 신경을 쓰고 있어요. 아마도 이런 기질 때문에 그러진 못 할 거 에요.
아내이기전에여자: 흠~~ 어떻게 될지 지켜보는 것도 참 재밌을 것 같네요. 앞으로도 종종 얘기 좀 해주세요.
처음 대화를 나눴을 때 느꼈던 임지영의 이미지와 지금의 이미지는 미묘하게 뭔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처음보다 좀 더 활기차고 나이보다 좀 더 어려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비록 채팅으로 알게 된 것이지만 서로간의 깊숙한 사생활을 공유해서인지 그녀가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지영바라기: 너무 깊숙이 알려고 하시면 다쳐요 ㅋ
아내이기전에여자: 그나저나 밥은 언제 쏠 거 에요?
지영바라기: 아~~ 잊지 않고 계시네요.... 제 소귀의 목적이 달성이 되면 사부님께 졸업식을 하는 기념으로 거하게 쏠게요 ㅋㅋㅋㅋ
아내이기전에여자: 제가 사부인건가요? ㅎㅎㅎ. 근데 무슨 밥 한번 사는데 그렇게 거창해야 되요?
지영바라기: 하긴 그렇네요... 흣 제가 한말에 책임은 져야겠죠? 그럼... 언제가 좋으세요?
채팅이기에 10살 차이가 인식이 안 될 뿐이지 막상 만나면 나이 차로 인해 만남자체가 불편할 것만 같아 쏘는 걸 미루고 미룰 생각이었는데 도움 받은 게 있으니 막상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아내이기전에여자: 음~~어디보자... 금, 토, 일은 신랑이 올라 올수도 있으니 안 되고 전 평일이 좋을 것 같은데요. 삐삐번호 줘보세요. 제가 한가한 날 벙개~~날릴게요.
지영바라기: ㅎㅎㅎ 어서 그런 말은 또 배우신거에요? 넘 능숙하신데 이제.
젊은 세대나 쓸 법한 말투를 척척 사용하는 걸 보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처음엔 모르는 것 투성이었는데 말이죠..
결국 그녀가 편한 시간에 만나 밥을 쏘기로 했습니다.
서로의 삐삐번호까지 교환을 하고 나서야 그 날의 채팅을 마쳤습니다.
채팅을 마치고 침대에 눕자 괜스레 찜찜한 기분이 듭니다.
왠지 거하게 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괜한 호언장담을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란 참으로 간사한 동물입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 마음이 이렇게나 틀리니 말이죠..
오늘은 학교를 마치고 지영이 문병을 한번 다녀와야 할 듯합니다.
어제도 호출이 들어왔는데 무시해서인지 오늘은 아침부터 호출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학교에 도착하니 교문 입구부터 시끌벅적합니다.
동아리 가두모집 기간이라며 각종 동아리에서 교문에서부터 진을 치고 신입생들에게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댄스 동아리는 아침부터 노래를 틀어놓고 열띤 댄스 대결을 펼치고 풍물연구회에서는 꽹과리와 장구등이 어우러져 신명나게 우리가락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이리저리 유인물을 나눠주며 한명의 신입생이라도 더 건지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남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제 관심은 오로지 한곳으로만 향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사진동아리 앞 가판대에 앉아서 범접 못 할 아우라를 풍기고 있는 그녀에게로 말이죠..
“희연아~~여기 무지 시끄럽다~~”
“호호호, 정신없지? 교대해주러 동기 한명 온다고 했거든.. 잠시만 기다려줘 응?”
저를 올려다보며 눈을 깜빡이고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우면서도 귀엽기까지 합니다.
희연이를 위해서라면 전 잠시간이 아닌 영겁이라도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녀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약간 떨어져 있는 벤치에 앉아 희연이의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습니다.
희연이는 가판대로 찾아온 신입생들에게 능숙하게 각종 사진기와 사진집들을 설명해주며 은근슬쩍 가입신청서를 건네고 있습니다.
이런 데서는 어쩔 수 없이 희연이도 천사가 아닌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아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짓게 됩니다.
허나 사진동아리 앞에만 유독 많은 수의 남자들이 줄서있는 걸 보니 왠지 희연이가 얼굴마담이라도 된 것 같아 기분이 그닥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좀 과장해서 몰려있는 남자들을 일렬횡대로 세워놓으면 모르긴 몰라도 아마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고도 남을 거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타가 도착했는지 희연이가 제 쪽으로 뛰어오고 있습니다.
제게 다가와 팔짱을 끼니 주변사람들이 시선이 하나같이 제게 쏠리고 있습니다.
‘그래 이놈들아~~~ 내거니까 이제 신경들 좀 꺼라 제발’
주변 남자들이 의식 되 평소에 남들 앞에선 잘 하지도 않던 행동까지 하게 됩니다.
희연이의 허리에 과감히 팔을 두르고 최대한 이 여자는 내 여자란 인상을 풍기며 도서관 앞 커피 자판기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희연이는 이상해 보였나봅니다.
“지섭아.. 너 지금 표정 너무 웃긴 거 알아? 호호호호”
뭐가 그리 우스꽝스러운지 희연이는 못내 참고 있던 웃음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왜...왜...뭐....뭐가 어때서 내 여자 내가 만진다는데..”
“으이구... 학교에서는 사람들 시선 때문에 창피하다고 팔짱도 제대로 못 끼던 사람이 대뜸 허리에다 팔을 감고 안지를 않나 그 거만해 보이는 표정은 또 뭐야~ 호호호., 차라리 내 등에다 임자 있다고 써놓지 그래? 호호호”
아 그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럴까? ‘임지섭 꺼’라고 포스트잇에라도 적어서 붙여놓을까 그럼?”
희연이는 너무나 진진해진 제 표정에 정색을 하고 맙니다.
“하~ 뭘 또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니~~하여튼 농담 진담도 구분도 못하고 으이구~”
“알고 있거든? 나도 농담해 본거라고...”
“아이궁~~ 요 시치미 떼는 것 좀 봐.. 아잉...귀여워라~”
희연이는 시치미 떼는 제 행동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 제 양 볼을 손으로 마구 비벼대고 있습니다.
“어허.... 자꾸 그러면 안아버리는 수가 있다!!! 손 치워~~~”
희연이는 제가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하는지 손을 치울 생각이 없어보였습니다.
그렇담 창피를 무릅쓰고서라도 허세를 보여줘야겠죠..
자판기 앞에 도착해 커피를 눌러놓고는 희연이가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 그대로 희연이의 허리를 양팔로 감아서 끌어안아버렸습니다.
방심하고 있던 희연이는 너무나 쉽게 제 몸에 끌려와 안겨버렸습니다.
순식간에 저도 희연이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버렸습니다.
“아이~ 미쳤어 정말~~. 빨리 놔~~ 빨리... 사람들 다 쳐다보자나 이씨~~”
봉긋한 젖가슴이 제 몸에 닿고 있어 놔주기 싫었지만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희연이의 표정에 금세 꼬리를 내리고 맙니다.
자신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에 힘이 풀리자 희연이는 곧바로 저를 밀쳐내고는 흘겨보고 있습니다.
흘겨보는 모습도 참으로 예쁘기만 합니다. 헤벌쭉....
“커피나 빨리 빼 사람들 기다리잖아!!!!”
그러고 보니 애정행각에 눈이 멀어 커피를 뺄 생각도 못하고 있었나 봅니다.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들의 눈빛이 제 뒤통수를 마구 쪼아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에 뒤늦게 창피함이 물밀듯이 들이닥치고 있습니다.
“윽~~ 뜨거!!!”
빨리 자리를 떠야겠다는 생각에 급하게 커피를 꺼내다 그만 커피를 옷에다 쏟고 말았습니다.
덕분에 상의가 뜨끈뜨끈하게 젖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구~~~ 조심 좀 하지!!! 이거 어떡해,”
급하게 손수건으로 닦아내긴 했지만 상의엔 커다란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결국 제 조심성 없는 행동을 타박하며 희연이는 절 자신의 동아리 방으로 데려갔습니다.
“뭐하고 있어!! 빨리,,,,, 벗어~~ 얼룩지기 전에 대충이라도 헹궈서 드라이기로 말리게”
희연이의 입에서 벗으라는 말이 나오니 왠지 모르게 야릇한 기분이 듭니다.
동아리방이라는 이 밀폐된 공간에 단 둘이 있다는 생각에 점점 야릇해지기만 합니다.
희연이가 벗으라는데 주저 할 것 없이 벗겠습니다.
상의를 벗어 건네는데 희연이의 모습이 조금 이상합니다.
금세 홍조를 띈 얼굴로 저와는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쳐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아직까지 서로에게 신체를 노출한 적은 없다보니 희연이 역시 이 상황이 야릇하게 느껴졌나 봅니다.
슬며시 희연이 옆으로 바짝 다가가 옷을 건네는 척 하면서 다시 한 번 그녀의 몸을 제 품으로 당겨왔습니다.
춘삼월 동아리방 내부는 춥기 그지없었지만 희연이의 온기에 그 추위는 그대로 물러나고 있었습니다.
“음~~ 따듯하다....”
희연이의 고운 양 볼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던 희연이의 손이 살짝이 제 맨 어깨 위를 덮어오고 있습니다.
희연이도 분위기에 빠졌나 싶었지만 어깨에 올려 진 손이 제 몸을 밀어내기 시작합니다.
희연이는 초조한 눈빛으로 동아리방 출입문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아이 안 돼~~, 여기서 이러다 사람들 오면 곤란하단 말야.. 빨리 놔줘..”
쉽게 놓아주지 않고 있자 이제는 제 어깨를 두드려오고 있습니다.
“아이..... 사람들 앞에서 내가 밝히는 여자로 인식됐으면 좋겠어? 그리고 이거 얼룩진단 말야. 빨리 가서 헹궈야 해!!! 얼릉!!!”
희연이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출입문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좀 더 안고만 싶은데 제 욕심만 부릴 수는 없었습니다.
제 손에 붙들려 있던 허리를 풀어주자 희연이는 부리나케 제 상의를 들고 동방을 나가 버립니다.
물론 저를 흘겨보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잠시 동아리 방을 구경하며 희연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유심히 보니 동아리 방 벽면에 동아리 사람들이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들이 여러 장 걸려 있었습니다.
아마도 출사를 나가 찍은 사진들 같습니다.
잠시 동안 사진을 구경하던 중 한 장의 사진이 자꾸 제 눈에 밟히고 있었습니다.
동아리 사람들끼리 찍은 단체 사진으로 보이는데 희연이의 옆에 서 있는 한 남자가 희연이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한 어색한 포즈가 아닌 몸에 밴 듯 무척이나 자연스런 모습이었습니다.
희연이 또한 고개를 살짝 그 남자의 어깨에 뉘인 채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제 마음속에 질투심이 마구 솟구쳐 올랐습니다.
아직까지도 사람들 많은 곳에선 스킨쉽도 제대로 못하게 하는 부끄럼쟁이가 사진 속에선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둘 사이가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너무나 다정해 보여 질투가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가까운 사람이기에 저토록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묘한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는 사이 희연이가 물에 헹궈진 옷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저는 다짜고짜 그 사진에 대해 희연이게 따지듯 물었습니다.
“희연아 저 남자 누구야?”
희연이는 거리가 멀어 잘 보이지 않는지 제 앞에 까지 와서야 사진을 확인하고는 씨익 웃음을 내보입니다.
“뭐야? 우리 자기~~ 질투하는 거야 지금?”
제 물음에 제대로 답을 하기는커녕 도리어 웃으며 저를 약 올리는 것 같아 순간 기분이 상해버렸습니다.
질투하는 제 모습을 즐기기라도 하는 것인지 또다시 도리어 물으며 제 옆구리를 콕콕 찔러오고만 있습니다.
가뜩이나 사진 속 모습에 언짢아 있는데 대답은커녕 장난만 치고 있다니요..
순간적으로 희연이의 행동에 정색을 해버리곤 멀리 떨어져 앉아버렸습니다.
“하지 말라고 좀. 대답부터 하라고,,,, 저놈 누구냐고!!!!”
갑작스런 정색에 희연이가 제법 놀란 것 같습니다.
지영이와의 그 일 때문에 없던 트라우마라도 생겨버린 모양입니다.
사진 속 모습에 질투를 느낀 나머지 희연이에게 처음으로 화를 내 버리고 말았습니다.
“뭘 그런 것 가지고 화를 내~~~ 그리고 넌 나 만나면서 지영이도 만났잖아.. 겨우 이 사진 한 장 가지고 그래~”
희연이는 자신이 말해놓고도 지영이를 입에 올린 자신의 말에 스스로 놀랐는지 당황해하고 있습니다.
희연이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제 아픈 구석이 찔려오자 저도 모르게 더 욱하고 말았습니다.
“아!! 얘기 안 할 거면 말어... 옷이나 줘 가게”
희연이의 손에 들려 있는, 물기가 아직 제법 남아있는 옷을 그대로 뺏어 들고는 입기 시작했습니다.
희연이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합니다.
“아니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래 남자가~.. 그냥.... 선배야 친한 선배...”
쉽게 넘어 갈 일이 점점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저를 그저 질투에 눈이 먼 좀생이로만 보고 있나봅니다.
그게 아닌데 말이죠.
“아니 너는 친한 선배한테 어깨 내주고 그렇게 고개까지 기대고 있니?”
저는 자존심이 긁힌 것 같아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친한 선배면 그럼 어디까지 가능한 건데?”
아차 싶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습니다.
희연이가 저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난 지영이 존재까지 이해해주면서 널 만나고 있는데, 너는 고작 이 사진하나 가지고 나한테 이러는 거야 지금?”
‘너는 고작 그 사진하나 때문에 내가 이런다고 생각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입을 닫아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상태에서 아무리 얘기를 해봤자 싸움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아 젖은 옷을 입은 채로 그대로 동아리방을 나와 버렸습니다.
그냥 간단하게 친한 선배다 그 말 한마디였으면 저도 쉽게 끝날 일이었는데 지영이 얘기와 그런 남자밖에 안되냐는 투의 희연이의 말에 자존심이 상해버렸습니다.
그 사진하나 때문에 우리는 처음으로 다투었고 저는 희연이를 동방에 혼자 내려둔 채 나와 버렸습니다.
옷이 축축해서 수업을 듣고 있기도 불편할 것만 같습니다.
오늘은 그냥 오전 수업은 재껴 버리고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집으로 다시 가기 위해 지하철 역사로 들어서려는데 때마침 호출이 들어왔습니다.
‘뭐야... 벌써부터 사과 하는 건가..’
희연이겠거니 하고 호출기를 확인하니 생소한 번호가 찍혀있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랴부랴 역사 안 공중전화 부스에 도착해 전화부터 걸었습니다.
“여보세요?”
첨 듣는 음색의 여자 목소립니다.
“여보세요 저 1234 호출하신 분 좀 부탁드립니다.”
“아 네,, 제가 했는데요...”
순간 원주율을 머릿속에 떠올려 봤습니다.
3.141592653589793238462643383279
π의 소숫점 30자리까지 정확히 외울 정도로 기억력이 좋은 편인데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저 실례지만 누구....신지....”
“아~~ 저 임.....임지영이에요..”
아~~~~ 그동안 까먹고 있었는데 결국 오늘에서야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목소리가 젊어 보입니다.
그리고 꽤나 아름답게 들려옵니다.
허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뭔 얘기를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채팅할 때는 능수능란하게 말을 걸던 저였는데 말이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기 시작했습니다.
“아 네.. 임지섭입니다. 목소리 듣고 너무 놀랐어요. 너무 젊게 들려서 하하하”
“어머... 그거 너무 여자한테 실례인데~~~ 저 아직 젊어요~”
예기치 못한 통화에 말실수라도 한 것 같습니다.
“아... 그런 뜻이 아니라.. 생각보다 목소리가 어려보인다고 말하려고 한 건데...”
“후후 알아요... 그냥 장난쳐 본거에요.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오셨다고 해서 충분히 감안해서 알아들었어요. 호호호”
농담을 한 거라고 하니 다행이었지만 미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단어에 붙는 조사하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게 한글이다 보니 왠지 말하기가 무척 조심스러워 졌습니다.
“아... 정말 미안해요.. 너무 목소리가 동안이라서 제가 당황해서 그랬나 봐요”
“호호호. 동안은 얼굴이 어려 보일 때 쓰는 거구요. 한자로 유성이라고 하시거나 ‘목소리가 앳되다’라고 표현하시게 맞아요. 호호호”
순간 M본부에서 하는 우리말나들이란 프로가 생각이 났습니다.
가끔 볼게 없을 때 멍하니 틀어놓곤 했었는데 꼭 거기서 잘못된 말을 바로 잡아주고 있는 아나운서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결국 저를 가르치듯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전 점점 기가 눌리고 말았습니다.
“아... 네...”
“어머... 미안해요... 제가 버릇이 돼서 그만... ”
“아.. 아뇨 괜찮습니다. 틀린 표현이면 정정을 해주시는 게 맞죠... ㅡㅡ;; 하하”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습니다.
임지영 앞에서는 앞으로 언어 선택을 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대 어쩐 일로 호출을 하셨어요?”
“아 ~~~ 딴 얘기 하느라 얘기가 샜네요. 호호호. 오늘 시간이 괜찮을 것 같은데... 오늘 벙개나 하시죠. 호호호”
아 오늘은 지영이 병문안을 갈 생각이었는데 하필 날짜도 기가 막히게 정했습니다.
아무래도 오후 수업도 재끼고 그 시간에 병문안을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네 그러시죠. 제가 오후까지는 수업이 있으니 저녁에 만나서 가볍게 식사랑 술 한 잔 하시죠. 그럼”
“네 그래요 그럼. 장소는 어떻게 할까요?”
“아 제가 근처로 갈게요. 창천동이니까.... 신촌 그레이스백화점 앞에서 뵙기로 하시죠. 시간은 넉넉하게 6시로 할까요?”
“네 좋아요”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서로 알아보기 쉽게 하기 위해서 입고 나올 옷과 인상착의를 알려주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찝찝한 몸을 씻고 호출기를 확인해 봤습니다.
희연이에게 아직도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그녀 또한 단단히 화가 난 모양입니다.
저 역시도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라 먼저 연락하기는 싫었습니다.
‘고작 그런 일로 화를 내는 그런 남자라니.... 어디 누가 이기나 해보자’
저는 입고 나가기로 한 옷으로 갈아입고 우선 지영이의 병문안부터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술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차를 가지고 나가긴 그랬지만 아무래도 이동 할 일이 많아서 차를 가지고 가기로 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니 그제야 희연이에게서 호출이 왔습니다.
공중전화로 가서 잠시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죄다 호출기를 들고 있는 게 아무래도 음성 메시지까지 확인하러 온 것 같았습니다.
잠시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좀처럼 줄이 줄어들지가 않습니다.
여유 있게 일정을 잡았지만 집에서 한참을 노닥거리다 나왔다 보니 시간이 꽤 타이트 했습니다.
더 지체하고 있다간 아무래도 늦어질 것만 같아 우선 병실부터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병실 앞으로 가니 오랜만에 뵙는 지영이 아버님이 서 계셨습니다,
“안녕하셨어요. 아버님”
처음 뵐 때부터 아버님이란 말이 입에 붙어있었던 저인지라 차마 아저씨란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생각지 못한 저의 방문에 깜짝 놀라고 계셨습니다.
하긴 그 일이 있은 후 첨 뵙게 되는 거니 놀랄 만도 하셨을 겁니다.
“어.. 그래 그래.. 이거 딸자식 가진 부모가 죄인이라더니 내가 정말 그 짝이군.. 자네 볼 면목이 없네...”
말씀을 하시면서도 제게 너무나 미안해하시는 모습이 절 너무나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아.. 아닙니다. 지영이는 안에 있나요?”
“어...어.. 안 그래도 어제 오늘 호출을 했다고 그래서, 자네가 오는 걸 기다리던 눈치더군.. 어서 나 신경 쓰지 말고 들어가 보게”
병실 안으로 들어서니 지영이가 방긋 웃는 모습으로 저를 반기고 있습니다.
웬일로 화장까지 한 것이 이제는 환자 같아 보이지도 않습니다.
“왔어 자기야...아. 아니..지섭아...”
지영이는 저를 자기라고 부르고는 놀란 눈으로 다시 제 이름으로 고쳐 부르며 미안해하고 있습니다.
“미안해... 나도 모르게 그만...”
“아니야 괜찮아. 그런데 너 다 나은 것 같아 보인다. 표정도 밝고 화장까지 하고 있고. 환자가 아닌데 이젠...”
지영이가 부끄러운지 금세 얼굴을 붉히고 있습니다.
“아니....너 올 것 같아서... 어제, 오늘 화장하고 있었지..”
제가 냉정했어야 했는데 괜한 기대감을 지영이에게 심어준 건 아닌가 싶어 막상 후회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마셔 너 오면 주려고 사다놨어. 너 엄청 좋아하는 거잖아..”
화장을 한 얼굴과는 다르게 핏기 없어 보이는 지영이의 창백한 손에 키위쥬스가 힘없이 들려 있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챙겨주고 싶었나 봅니다.
저는 신맛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편이었습니다.
남들이 먹기 힘들어 하는 레몬 같은 경우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순식간에 먹어 치울 정도였습니다.
전 레몬만큼이나 키위에도 환장한 놈입니다.
않은 자리에서 키위를 10개까지도 까먹은 적이 있을 정도로 좋아합니다.
지영이에게 키위쥬스를 받아들고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왠지 모르게 한결 부담스러운 마음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저기 나 부탁...있는데 들어 줄 수 있어?”
부탁이란 말에 금세 움츠러들었지만 간절한 그녀의 표정을 쉽게 지나칠 수 가 없었습니다.
“뭐...뭔데?”
어려워하던 지영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있습니다.
“나 저기에 태워서 바람 좀 쐬게 해 주라. 병실 안에만 맨날 있으니 답답해서~~”
그다지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기에 속으로 다행스럽게 여겼습니다.
휠체어에 그녀를 앉히곤 잠시 병실 밖으로 그녀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그동안 답답한 병실 안에 박혀있었을 생각에 볕이 잘 드는 쪽으로 그녀를 데려갔습니다.
화창한 봄 날씨에 너무 눈이 부셨는지 그녀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습니다.
“미안.. 너무 눈부시지?”
저는 급하게 지영이 앞으로 가서 빛을 몸으로 막아주었습니다.
그런 제게 지영이가 손을 뻗어왔습니다.
순간 몸이 움찔하며 피하려 했지만 저번처럼 또 크게 울 것만 같아 이내 손길을 뿌리치지 않고 그냥 서 있어 주었습니다.
그런 절 지영이가 애매한 표정으로 올려다보고 있습니다.
순간 밀려오는 민망함에 말을 꺼내게 됩니다.
“왜...왜.. 뭐.. 묻었어?”
제 말에 지영이는 가볍게 고개를 저어 보입니다.
“그냥 예전에 내 손만 닿아도 환하게 웃어줬는데... 이제는....”
지영이가 말끝을 흐리고 있지만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어색해지는 걸 막기 위해 순간 화제를 돌렸습니다.
“그런데... 승민이란 그 친구는 왜 안보여? 어디 갔어?”
휠체어를 잠시 벤치 앞에 세워두고는 맞은편에 앉아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고 얘기를 나눴습니다.
“어.... 이제 오지 말라고 했어... 괜히 나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아서”
그놈은 고생하는 게 싫고 저는 고생해도 된다는 말로 느껴지니 은근 기분이 나쁩니다.
“참네... 아무리 승민이란 놈이랑 사귄다고 해도 나는 이렇게 부려먹고,, 승민이란 놈은 고생시킨다고 들여보내고 너무 대놓고 그러지 마라....”
제 말에 지영이는 여전히 알 듯 모를 듯 묘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그...그게 아니고. 보지 말자고 했다고... 난 걔 사랑하지도 않아...”
그제야 지영이의 말을 잘못 이해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승민이란 놈 내가 봐도 괜찮은 녀석 같은데 왜 그랬니. 꽤나 용기 있고 너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던데....”
제 말에 지영이는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넌 어떻게 그렇게 쉽게 승민이를 인정하니..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날 좋아하긴 한 거니? 너한테 원수와도 같은 애를 그렇게 쉽게 인정을 하는 거냐고!!”
전 지영이의 말에 잠시 흥분을 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따라 이 곳 저 곳에서 저를 마구 찔러 대기만 합니다.
하지만 아픈 애를 앞에 두고 화를 낼 수는 없기에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이를 악물고 얘기를 했습니다.
“네가 나를 배신했다고 느꼈을 때보다도 지금 그 말이 더 나를 화나게 하거든. 난 너한테 최선을 다했고 내 남아 있는 심지마저 다 태웠다고.. 알아? 어떻게 네가 지금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니? 하.... 무슨 말을 해도 좋은데.,, 내가 널 좋아하고 사랑했었다는 걸 의심하는 그런 말은 앞으로라도 하지마라.”
지영이는 절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말을 하다 보니 점점 기분이 나빠지고 맙니다.
“앞으로 그런 말 하려면 나 볼 생각하지도 마. 난 너랑 사랑했던 것까지 부정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근데 네가 내 사랑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평가한다는 게 정말 웃긴다.”
독한 제 말에 결국 지영이가 어깨를 들썩거리며 훌쩍이고 있습니다.
저는 왜 이렇게 독한 말을 잘 뱉어 낼까요.
아무래도 그 날 이후로 저는 변한 것 같습니다.
남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있습니다.
“미...미안해... 나도 모르게..흑...흑,,너무 쉽게 네가 승민이를 인정하는 게... 너처럼 소유욕이 강한애가....”
지영이의 눈물을 보게 되자 참지 못하고 화를 낸 것이 미안해지고 있습니다.
“그래... 나 소유욕 강한 건 잘 아네.... 근데 내가 승민이를 인정한 건 나한테 또 맞을 각오를 하고 나한테 와서 용서를 빌며 너를 사랑한다고 해서야. 그 자식이라면 최소한 나처럼 사랑하는 여자 남한테 뺏기지는 않겠다 싶었거든.... 웃기지만. 정말 어처구니없지만... 넌 내 첫사랑이었구.. 내가 한때나마 무척 사랑했던 여자였으니까.. 네가 그 자식이랑 행복하게 지내길 바랐다고.. 불행해 지는 것은 원치 않았어..”
“흑흑흑...미안해....그런 것도 모르고....흑흑흑”
지영이가 소리 내 울기 시작하니 주변사람들 시선이 제 쪽으로 이내 집중이 돼버렸습니다.
“그만 울어.. 사람들 다 쳐다보자나.. 자꾸 그러면 나 정말 다음부터 안 온다 이제..”
“알았어.. 훌쩍.. 안 울게 이제..훌쩍..너무 미안해.....”
“미안하단 말도 이젠 그만해.. 난 털어 버렸어 이제는..”
비록 그녀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한 말이지만 제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는 여전히 그 때의 상처가 응어리로 똘똘 뭉쳐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는 지영이를 한참 달래고 나서야 병실로 데려다 주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어느덧 시간을 보니 지금가지 않으면 약속 시간을 늦을 것만 같습니다.
희연이에게 전화를 해야 하는데 여전히 공중전화는 만원이라 포기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에 올라 약속 장소로 향했습니다.
퇴근 전 시간대라 막히지도 않았는데 겨우 제 시간에 도착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성격이 성격인지라 규정 속도를 절대 벗어나지 않는 운전 스타일 때문이었습니다.
가벼운 만남인데도 단둘이 만나는 거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나이차가 꽤 나는 사람과 만나는 거라서 그런 건지 약간은 긴장이 되었습니다.
약속 장소인 신촌 그레이스 백화점 앞에 도착해 보니 북적대는 인파로 주변을 살피기가 불편했습니다.
‘흰색에 검은색 체크무늬의 원피스라고 했겠다.’
저는 눈을 크게 뜨고 그레이스 백화점 앞에 있는 사람들을 탐색해 보았습니다.
아직까지 도착을 하지 않았는지 그런 의상을 입은 여자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저는 평소처럼 지석 주위에 앉고 싶었지만 옷이 더러워 질까봐 앉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10살이나 위인 사람을 만나는 자리인지라 간만에 격식을 갖춰 슈트를 입고 왔기 때문입니다.
더러워지면 세탁소로 가야하니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10분 이상을 아무것도 없이 기다리고 있으려니 점점 지겨워져만 갑니다.
마침 챙겨온 워크맨을 틀고 헤드셋을 끼고는 노래를 들으며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괜히 입구쪽에서 만나기로 했나 봅니다.
시간이 갈수록 퇴근시간이 겹치면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차라리 우측에 있는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보자고 할 걸 그랬나 봅니다.
30분이 지나가고 있음에도 아직 모습조차 보이지가 않습니다.
아무래도 바람을 맞은 건 아닌가 싶습니다.
아까부터 20대 중반정도로 보이는 사람도 제 근처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지 몇 번을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녀도 바람을 맞았는지 한참을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뭐야... 여자를 기다리게나 하고... 남자가 참 매너 없는 놈인가 보네.. 쯧쯧..’
혹시나 그녀가 아닐까란 생각도 해봤지만 임지영이 얘기해 준 의상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긴 회색코트로 몸을 감싸고 있었고 30이라고 하기엔 너무 젊어보였습니다.
40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고 있습니다.
‘어휴. 안 나올 거면서 만나자고 먼저 얘기나 하지 말지’
무료함에 지쳐 이제는 노래를 듣는 것마저 슬슬 지겨워져만 갑니다.
헤드셋을 귀에서 빼고 워크맨에 줄을 감으며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순간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제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습니다.
“저기....임지섭씨?”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확인을 하기위해 고개를 뒤로 돌렸습니다.
아까부터 저와 몇 번이나 눈이 마주쳤던 그 여자였습니다.
‘설마... 이 여자가 임지영???’
30살 이라고는 믿겨 지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였습니다.
약간 마른 듯 보였고 키는 165 정도는 될까 싶었습니다.
“네... 혹시... 임지영씨..??”
그녀가 저를 보곤 어색해하며 수줍게 웃고 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외모에 당황해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까 몇 번이나 눈이 마주쳐서 긴가민가했는데 헤드셋을 끼고 계셔서...”
아... 아무래도 헤드셋을 끼고 있어서 말 걸기가 힘들었었나 봅니다.
“아 저도 몇 번 눈이 마주치긴 했는데 옷이.... 오늘 입고 오기로 하신거랑 달라서 제가 알아보지 못했네요. 생각보다 엄청 어려보이시기도 하고.....”
혹시나 또 말실수를 할까싶어 조심스럽게 얘기를 했습니다.
다행히 표정을 보니 실수한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아... 생각보다 날이 추워서 코트를 껴입고 있어서 못 보셨나 봐요.”
코트를 유심히 보니 그제야 사이사이로 검은색의 체크무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근데 생각보다 너무 젊어 보이셔서 원피스만 입고 계셔도 못 알아 볼 뻔 했어요.”
잠시 동안 백화점 앞에서 얘기를 나누며 저녁 메뉴를 고르고 있었습니다.
“피자 먹고 싶은데... 괜찮으시죠?”
그녀를 데리고 근처 피자헛으로 이동을 했습니다.
솔직히 30대면 피자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을 줄 알았는데 식성도 우리나이 때랑 별반 차이가 없나 봅니다.
막상 피자헛에 도착해서 주문을 하고 나니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난감했습니다.
얼굴도 모른 채 채팅을 했을 때는 서로 술술 나오던 말이 막상 만나고 나니 서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잠시간의 적막이 흐르고만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니 무지 신기하네요..늘 머릿속으로만 상상했는데. 훨씬 멋있는데요. 약간 서구적인 마스크에 호호호.. 채팅 할 때는 많이 어리숙해 보이셨는데 호호호”
이게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네... 유전이라 친탁을 해서 그래요.. 그리고 아직 그쪽으로는 경험이 많지 않아서 그래요. 표현도 많이 서툴구요..”
“아참 외국에서 살다 왔다고 했죠? 그러고 보니 유학생 느낌도 좀 나는 것 같네요. 호호호.”
“뭐...유학은 유학이죠. 청주에서 올라왔으니 하하하.”
대화가 오고가자 처음보단 어색함이 줄어들었습니다.
서로 말문이 터지자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술술 말이 오가고 있습니다.
왠지 이렇게 연령대가 틀린 새로운 사람을 알아 나가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문한 피자가 나오자 저는 먹기 좋게 잘라서 접시에 담아 그녀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생각보다 먹성도 좋은 듯 내숭도 떨지 않고 잘만 먹고 있습니다.
저렇게 밝은 사람이 매일 방구석에서 채팅만 하고 있었다니 얼마나 심심했을지 가히 짐작조차 되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무지 밝은 성격이시네요. 오히려 제가 처음 벙개에 나온 사람 같은데요..”
“호호 생각보다 재밌는데요, 혹시나 이상한 사람은 아닐지 약간 걱정이 돼서 올까말까 계속 망설였었거든요.”
그래서 늦게 온 모양입니다.
최대한 매너를 지키고 편안하게 보내도록 배려를 해줘야 할 것 같습니다.
“근처에 우드스탁이라고 뮤직바가 있는데 식사 후에 거기서 가볍게 맥주나 하시죠?”
“음~~~ 좋아요. 저도 가본 적 있긴 한데.. 오랜만에 가보게 되는 것 같은 데요. 호호호”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우드스탁으로 향했습니다.
철문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니 메탈리카의 “Seek and Destroy”가 힘찬 기타 리프와 함께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들어오면서부터 머리와 어깨가 기타 리프를 따라 들썩여졌습니다.
뿌연 담배 연기와 함께 안에 있던 사람들은 마치 귀신에라도 홀린 듯 기타 리프를 쫓아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당시, 인기 있던 HOT 같은 아이돌 음악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전 혼자서 우드스탁을 가거나 롤링스톤즈라는 라이브바에서 인디밴드의 공연을 보는 걸 더 선호했습니다.
이곳에 얼마 있지도 않았는데 오늘 지영이와 희연이 때문에 무거웠던 마음이 다 풀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임지영은 메탈리카의 노래에 심취해 흥겨워하고 있는 저를 보곤 무척이나 신기해하고 있습니다.
“여기 자주 오시나 봐요? 무척이나 자연스러운데요. 호호호.”
우퍼 스피커 근처라 그런지 그녀는 꽤나 높은 소리로 외치듯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 몇 번 와봤는데 저하곤 잘 맞더라구요. 듣고 싶은 노래를 모르는 사람들이랑 같이 교감하며 즐기는 것이 꽤 재밌더라구요, 보시면 혼자 오는 사람들도 많아요. 방금 전 곡이 제가 고등학생 시절 미친 듯 들었던 메탈리카 1집 곡이라서 저도 모르게 그만 삘이 꽂혀서요, 하하하”
“보고 있으려니 저도 같이 덩달아 흥겹네요,”
“좋아하시는 곡 있으시면 제가 신청하고 올게요.~”
저는 그녀가 말한 곡을 신청하고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담배 연기가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금세 그 안의 열기에 취해, 맥주에 취해, 락음악에 취해 우린 그런 것조차 신경 쓸 겨를이 없게 되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신청한 곡이 나왔습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열정적인 목소리가 흥겨운 드럼라인과 어울려 너무나 듣기 좋은 곡 ‘I was born to love you" 였습니다.
자신이 신청한 곡이 나오자 그녀는 무척이나 아이처럼 즐거워하고 신기해하고 있었습니다.
“퀸 좋아하시나 봐요?”
“네. 알게 된 건 첫사랑이 때문이었어요. 워낙에 음악에 미쳐있던 사람이라 같이 있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된 거죠. 그러다 남자 보컬의 목소리가 너무 열정적이라 저도 모르게 퀸에 빠져들었죠. 프레디 머큐리는 비록 죽었지만 그의 음악은 여전히 살아 있는 느낌이거든요”
“오늘 좀 기분이 별로 안 좋았는데 지금은 마음이 한결 상쾌해진 것 같아요~~”
“저도 간만에 이런 업 된 기분으로 같이 즐기고 있으니까 한층 젊어진 것 같아 너무 좋네요~~”
“에이 아직 한창 젊어보이세요~ 그런 말 하면 너무 나이 든 사람 같잖아요, ~~”
젊어 보인 다는 말에 그녀는 기분이 무척이나 좋은 듯합니다.
여자는 아줌마든 할머니든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고 하면 최고의 칭찬인 듯합니다.
“너무 비행기 태우지 마세요~~ 자꾸 올려주시면 떨어질 때 너무 아프거든요~~”
11시가 다 돼서야 우린 우드스탁을 빠져 나왔다.
한껏 달아올랐던 가슴이 밖으로 나오니 뻥하고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때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죠?~~~”
“네.. 무지무지... 너무 가슴이 후련해진 거 같아요, 그동안의 스트레스가 다 날아간 것 같네요 호호호”
그녀를 이곳으로 데리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업 된 모습의 그녀가 나이에 맞지 않게 총총걸음으로 뛰고 있습니다.
“오늘 너무 즐거웠어요. 다음에는 제가 쏘도록 할게요. 호호호.”
“네 저도 기분전환도 되고 모처럼 즐거웠습니다,”
임지영과 헤어지고 집으로 가는 중 간만에 들었던 메탈리카의 사운드가 귀안에서 계속 멤 돌았습니다.
업 된 기분으로 3층으로 올라가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집안에 불이 켜져 있고 TV소리까지 들립니다.
신발을 보니 희연이가 와있는 것 같습니다.
그제야 아까 전화하지 못한 게 생각이 났습니다..
‘아차 이거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들어오는 인기척에 티비를 보고 있던 희연이의 눈이 저를 향합니다.
그녀의 두 눈에 한가득 원망이 쌓여있었습니다.
평소라면 그녀의 노려보는 모습도 예뻐 보였을 텐데 지은 죄가 있어서인지 그저 무섭기만 합니다.
옆으로 다가가 앉자 희연이가 살짝 거리를 벌려 앉습니다.
다시 한 번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자 또 다시 살짝 거리를 벌려 앉습니다.
그녀를 쇼파끝까지 몰아가자 그제야 피하지 않고 앉아있습니다.
저는 누그러진 마음으로 희연이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희연이의 표정을 보니 처음보다는 풀어진 듯 보였습니다.
살짝 옆에서 희연이를 안았습니다.
희연이가 제 품안으로 들어옵니다.
이것으로 우리의 첫 다툼은 끝이 나는 걸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희연이가 저를 강하게 밀쳐내 버립니다.
‘아직 풀리지 않은 건가’
저를 또다시 노려보고 있는데 아까와는 다른 느낌입니다.
“왜 그래?”
“너 누구 만나고 왔어?”
저는 뜨끔했지만 모른 척 했습니다.
“아니 내가 누굴 만나고 와”
희연이는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절 보고 있습니다.
“여자 향수 냄새가 온몸에서 진동을 하는데 지금 나보고 그걸 믿으라는 거야?”
***********현재 시점
“자기야.. 좀 밟아.... 앞뒤로 차가 하나도 없는데...”
“안 돼... 주차선도 지키라고 있듯이 규정속도도 지키라고 있는 건데...”
“어휴~~ 속 터져 진짜... 갓 길에 세워봐... 내가 운전하고 말지..”
“어허.... 하늘같은 서방님한테... 일분일초 먼저 가려다 고속도로로 황천길부터 먼저 간다... 난 최소한 100살까지는 살아야 되는데...”
“으이구. 벽에 똥칠 할 때 까지 살고 싶어??”
“아니... 100살까지 산다고 해도... 널 사랑하기에는 그저 시간이 부족해 보이거든...”
“으이구 진짜... 아 몰라... 나 그럼 잘래... 집에 도착하면 깨워줘...”
아내는 이내 보조석에 앉아 눈을 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입꼬리는 올라가서 내려올 줄은 모르고 있습니다.
천성이라는 건 쉽게 바뀌지 않는지 20살 때부터 해오던 운전습관은 30후반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바뀌지 않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이제껏 살면서 딱지라고는 딱 한번밖에 떼어 본 적이 없습니다.
첫 아이의 출산이 임박해서 과속을 한 번 했던 것 말고는 말이죠.
운전 중에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 옵니다.
기어에 올라가 있는 제 손 위에 어느새 아내의 손의 올라와 포개어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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