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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3 01:32 1,104회 0건
3일에 한편 씩 올리려고 하고 있습니다만 참 쉽지가 않네요.
머릿속에 빙빙 도는 이미지들을 문자화 한다는게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습니다.

다른 작가님들 존경합니다.



## 회사 앞 커피숍

일을 끝낸 뒤 하릴없이 있는 시간은 정말 좋았다.
특히 오늘처럼 조기퇴근을 하는 날의 오후는 공짜로 얻은 거 같다.
그리고 커피도 좋았다.


“ 할 일이 많아요? “

“ 네?….? “

“ 아니요. 다들 가는데 아름 차장님은 안가니까 뭔가 남아서 그러신가 해서요. “

“ 아…. 그건 아니고요…. 정리도 해야 하고 피곤하기도 해서 좀…. 있다가 가려고 그랬는데 푹 자 버렸네요…. “

“ 하하 뭐 그럴 만 하죠. 지난 3일간 서너 시간 밖에 못 주무셨잖아…. “


어느덧 자연스럽게 병호는 존댓말 속에 반말을 섞어 가고 있었다.
뭐 나이는 병호가 9살 위이니 그렇게 어색할 것은 없었다.


“ 네 좀 피곤하긴 한데 일은 땄으니 기분은 좋네요. 후훗. “

“ 그렇죠. 이 바닥 그 맛으로 하는 거죠…. 5개 해서 하나만 돼도 어디예요? 그쵸? “

“ 호호 네. 기분 좋아요 “

“ 아직 춥긴 하지만 햇볕 쬐면서 커피 한잔 하니까 한갓진 게 더 기분 좋네요. 하하. “


아름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하지만 이내 미소가 금방 지워지는 얼굴이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다.


“ 아름 차장님. “

“ 네? “

“ 혹시 내가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

“ 네? 무슨….? “

“ 아름 차장 뭔가 고민 있는 거 같아 보여서요 “

“ 제가…. 그랬나요? “

“ 뭐 말을 해야 아나요…. 얼굴을 보니까 그런 느낌이라서 말해본 거예요 “

“ …. “


아름은 아무 말 없이 커피잔만 바라보고 있었다.


“ 아 뭐 굳이 이야기 안 하셔도 괜찮아요. 괜히 제가 아름 씨 별거 아닌데 오바했…. “

“ 사실 집에 가는 게 싫어요…. “

“ 네? “


아름은 갑자기 이야기를 시작했다.


“ 집에 들어가는 게 싫었어요…. “

“ 남. 편 때문에 ? “

“ …. 전 너무 결혼을 일찍 했나 봐요. “

“ …. “

“ 그 사람이 싫은 것보다도 일이 너무 좋아졌어요.
사실 결혼 전에는 그렇게 느끼지 못했는데…. “

“ 한번 잃고 나니까 소중해졌나요? “


아름은 약간 놀란 듯 병호를 바라보았다.


“ 전에 아름 씨가 이야기해줬잖아요. 결혼하고 일 있고 나서 정말 싫었다고…. “

“ 네…. 정말 제가 점점 없어져 가는 거 같아서…. 나란 사람은 뭐였나….
그래서 다시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일하려고 했어요.
물론 다시 복귀하는 건 쉽지 않았죠.
아시다시피 결혼한…. 아직 애가 없는 여자는 애 생기면 그만둔다고 생각하니까요. ”

아름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 남편은 애를 조금만 늦게 가지자고 해도 들을 생각을 안 해요.
이미 3년이면 많이 늦은 거라며…. 시댁에서도 문제가 있는지 자꾸 물어보시고요.
하다못해 친정에서도 제가 애를 갖지 않는 걸 시부모님께 죄송스러워하세요.
그걸 보면 친정 부모님께 죄송하지만, 저도 애만큼은 양보를 못 하겠는걸요….
다시 제가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아 두렵고…. “

“ 음…음…. 저도 애가 없는 사람이니 뭐라 말하긴 그렇지만
애를 낳으면 애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런 생각은 안 든다고 하더라고요…. “

아름은 약간 원망 섞인 눈으로 병호를 바라보았다.
눈에 살짝 고인 눈물이 안쓰럽다.

“ 한 부장님은 왜 애를 안 낳으세요? “

“ 저. 야 안 낳고 싶으니까요. “

“ 한 부장님은 안 낳겠다고 선택을 하신 거잖아요.
전 그 선택도 못 하는 사람인가요? “

병호는 말문이 막혔다.
자신이야 미진도 그렇고 자신도 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결혼하면서 애는 가지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선택이란 것을 왜 몰랐을까….
너무 당연해서 생각조차 못한 것을 아름이 일깨워주었다.


“ 맞네요…. 아름 씨 말…. “

“ 후훗…. 그래도 애가 없으셔서 이해해 주시는 군요….
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 하면 전혀 통하지 않아요. “

“ 그런데요. “

“ 네….? “

“ 그 선택은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결혼했다면 부부가 같이 선택해야 하는데…. “

“ 그래서 제가 너무 일찍 결혼한 것 같다고 말씀 드린거예요…. “

“ 후우…. “


병호는 담배를 피우고 싶은 맘이 간절했다.
타인의 고민을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지만, 그 말은 틀렸다.
나누면 두 배가 될 뿐이다.

아직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았다.


“ 그 사람한테는 미안한 마음에 이해해 주고 싶었어요.
남편에게 미안하고…. 시댁에 미안하고…. 친정에 미안하고…. “

“ 친구들 있잖아요..? 친구들에게 이야기해 보지 그랬어요? “

“ 후훗…. 친구요..? 제가 친구가 어딨어요… 결혼한 친구들은 전부 이해 못 하는 애 엄마라구요. “

“ 그 흔한 돌싱친구도 없어요? “

“ 하하하…. 그게 제가 될 거 같네요….”

“ 하하…. “


둘 다 쓴웃음만 지었다.


“ 한 부장님. “

“ 네 말씀하세요. “

“ 전에 저한테 주신 쿠폰이요. “

“ 쿠폰…? 아~ 전에 회식 때…. 하하. “

“ 후후…. 그거 쓰려구요. 가끔 제 이야기 좀 들어주시고 해주세요.
수다 친구요…. “

“ 아 뭐…. 나야 괜찮아요. 근데 그런 걸로 괜찮아요? “

“ 그런 거라뇨…. 호호. 요즘 부장님이면 남편보다도 더 많이 보는 사람일걸요? “

“ 네? 아하하 그렇네요. 집에는 끽해봐야 몇 시간이나 간다고…. “

“ 그쵸. 호호…. “


[ 꼬르륵~ ]

병호의 배에서 밥 달라는 소리가 나왔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아무것도 못 먹었다.
아침에 자료 보내고 사우나 다녀와서 자고 지금은 오후 네 시…. 이러다간 굶어 죽겠다.


“ 아름 씨, 배 안 고파요? 나 이제 좀 고픈 게 느껴지는데…. “

“ 맞아요. 그러고 보니 저도 좀 고파지는데요? “

“ 그럼 뭣 좀 먹으러 가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하하하~ “

“ 호호. 네 맛있는 거 먹어요. “


## 카페

병호는 광고주와 미팅 때 찾던 까페로 향했다.
커피나 차 종류도 괜찮지만 ,파스타나 샌드위치 등 가벼운 식사를 하기에도 부담 없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안면이 있는 단골들에게만 몰래 열어주는 공간이 있어 담배를 피우기에도,
긴 시간 동안 죽치고 있어도, 눈치 볼 필요가 없어 병호가 애용하는 까페였다.


“ 와~ 회사 근처에 이런 곳이 있었네요? ”

“ 여기 자주 오는 곳인데, 아름 씨랑은 안 왔었나요? “

“ 저야…. 맨날 회사 안에만 있으니 올 일 없죠…. “

“ 아 그랬나…. “


병호는 식사로 오일 파스타, 샌드위치, 간단한 피자 등을 주문했다.


“ 음료는 뭘로 할래요? “


병호는 드링크 메뉴를 건네며 아름에게 물었다.


“ 음…. 여기 맥주도 있네요? “

“ 뭐 저녁엔 간단히들 마시니까 몇 종류 있더라고요. “

“ 그럼 저는 맥주 마실래요. “

“ 에….? 낮인데 괜찮겠어요? “

“ 조금 있으면 저녁인데요. 뭘…. 부장님 안 드실래요? “

“ 마시죠. 난 기네스. “

“ 호호. 전 코로나요. “


식사시간이 아닌 브레이크 타임에 주문한 음식이지만 이내 나왔고 둘은 천천히 식사를 시작했다.
배고팠다가 먹은 탓인지 매우 맛있었다.


“ 여기 맛있어요. “

“ 그렇죠..? 여기가 맛집은 아닌데 오늘따라 맛있네요. “

“ 배고팠다가 먹으니 그런가 봐요. 호호 “


둘은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름이 여기 오기 전 회사는 어땠는지, 일할 때 어떤 광고주가 제일 고생을 시켰다든지,
남편은 어떻게 만났으며 다시 일을 시작할 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며 접시를, 그리고 맥주를 비워갔다.


“ 나, 담배 하나 필게요. “


식사가 어느 정도 끝나고 병호는 담배를 꺼내며 아름에게 양해를 구했다.
여긴 아무래도 방 구조라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아름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 후우~ ]

식사 후에 피우는 담배와 아침에 일어나서 피는 담배는 정말이지 최고다.
담뱃값도 오르고 점점 피울 곳이 없어지면서 편하게 피울 곳은 어디에도 없지 싶다.
아른거리는 담배 연기 사이로 빈 맥주병이 하나둘 늘어갔다.

“ 아름 씨는 일 안 할 때는 뭐해요? “

“ 음…. 쇼핑 하러 가거나…. 음…. 자거나….“

“ 하하하. 별로 하는 거 없죠? “

“ 호호호…. 네…. “

“ 그럼 아름 씨에게서 일을 빼면 뭐가 남아요? “

“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

“ 아름 씨…. 난요. 일하는 게 좋다는 거. 전 별로 안 좋게 생각해요. “

“ …. “

“ 제일 좋아하는 게 일이었는데, 아름 씨가 지치거나 일이 싫어지면 어떻게 할 거예요?
좋아하는 게 그거 하나뿐인데 그게 싫어지면 어떻게 해요? “

“ …!? “

“ 그렇죠…? 아름 씨를 위한 게 일만은 아닐…. “


아름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눈물을 본 병호는 당황스러워 허둥대기 시작했다.


“ 흑…흑…. “

“ 어…? 아.. 아름 씨~ 내 말이 너무 심했..나…? 진정하고….”

“ 흐아앙~!! “


눈물이 살짝 맺히는 정도가 아니라 닭똥같이 떨어진다는 말이 실감할 만큼 뚝뚝 떨어졌다.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 몸을 떨면서 우는 아름이 안쓰러워 병호는 옆자리로 옮겨 달래기 시작했다.


“ 아…. 그… 아름 씨…. “


아름은 갑자기 병호의 품에 머리를 들이밀더니 계속 울었고 병호는 자신에게 안긴
아름의 등을 두드려주는 수밖에 없었다.

울음은 쉽게 잦아들 것 같지 않다.

한참을 울던 아름은 병호의 품에서 나오더니 병호에게 인사를 꾸벅하고는 거울을 꺼내 자신의 얼굴을 살펴본다.
병호는 새로 냅킨을 건네주고는 맞은편의 자리로 돌아갔다.

한참 흔적을 정리하던 아름이 말했다.


“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난감하셨죠…. “

“ 조금…. 당황했어요…. “

“ 죄송해요…. 흑…. “


아름은 또 눈물을 보일 기세다.


“ 부장님이…. 일이 싫어… 지면 어쩌냐고 물어보셨잖아요…. “

“ 네 그랬죠…. “

“ 사실…. 흑…. 요즘 지쳐서…. 내가 요즘 왜… 이러고 사나 싶었거든요…. “

“ 흠…. “

“ 일을 잘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스트레스는 쌓이는데 이야기할 곳도 없고요….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회사 그만두라는 말 외에는 하지 않거든요….
하지만 지금 제가 일을 안 하면 뭐가 남겠어요…. 흑흑…. “

“ 아름 씨…. 진정하고…. “

“ 흑흑흑….”

“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

“ 흑흑…. “


아름은 고개를 끄덕이곤 냅킨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병호는 카운터로 가서 미리 계산을 하고 30분 정도 앉아있다가 갈 테니 그 뒤에 치워달라고 말한 뒤
이내 자리로 돌아왔다.
자리로 돌아오자 아름의 눈은 살짝 붓기가 있었으나,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모양이었다.


“ 이제 좀 진정 되었어요? “

“ 죄송해요. 놀라셨죠…. “

“ 조금 놀라긴 했는데…. 다른 이유로 그래요. “

“ 네? 다른 이유라니…? “

“ 아름 씨 언제나 자기관리 잘하고 업무 철저하고…. 그랬는데 그 뒤에 이렇게 힘들었나 싶어서요. ”

“ 아녜요. 좀 감상적이 되었나 봐요. 부장님이 이야기 잘 들어주시고 그래서…. “

“ 뭐 괜찮아요. 어떻게 보면 가장 많이 보는 사람일 텐데 같이 위로해야죠. “

“ 죄송하고…. 감사하고 그러네요…. “

“ 하하하. 죄송, 감사, 그런 거 둘 다 안 받을게요. 편하게 이야기 한 건데 부담가지지 말자구요~”

“ ….네…. “


병호는 옷을 입으며 자리를 정리했다.


“ 그럼 나가죠. 이제 배는 안 고프죠? “

“ 네. 이것저것 많이 먹고…. 맥주를…. 어머, 제가 3병이나 먹었네요.? 부장님 하나 드실 동안… “

“ 전 원래 맥주는 좋아하지 않아요. 하하. 갑시다. “

“ 계산은 제가…. “

“ 아유 아까 커피 샀잖아요. 제가 했어요. “

“ 아…. 잘 먹었습니다…. “


## 오후 6시 30분 거리.


밖을 나오니 퇴근하는 사람들이 분주하다.


“ 이 시간에 퇴근해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요. 하하. “

“ 그렇죠? 부장님도 일찍 가시진 않으시잖아요. 일은 그냥 맡기고 가셔도 되는데…. “

“ 에이…. 아름 씨를 못 믿는 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버릇이 들어서 그래요. “

“ 네…. “


대답을 하는 아름의 표정이 썩 개운하지만은 않다.
뭔가 이야기를 꺼내긴 했는데 마무리가 안된 느낌.
아무래도 이대로 헤어지면 병호도 개운치는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 아름 씨. 지금 들어가면 퇴근 시간이라 복잡할 텐데 간단히 2차 갈까요? “

“ 네? “

“ 2차로 간단히 한잔하고 들어가면 붐빌 시간도 지나고 하니 그게 어떨지 해서요.
그때처럼 대리 불러서 가는 길에 내려드릴게요. “

“ 아… 저랑 방향이 같으시죠…. “

“ 지금 가면 대리비야 굳겠지만, 너무 막히잖아요 “


아름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이내 밝게 대답한다.


“ 그래요. 부장님. 어차피 늦게 들어가던 사람들인데 오늘도 늦게 간다고 무슨 일 있겠어요~”

“ 응.? 그렇게 늦게는 안 갈 거예요..하하~ ”

“ 호호. 대신 우리 수다 많이 떨어요. “


병호는 ‘우리’라는 말이 뭔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우리 회사, 우리 집…. 많이 써봤지만, 지금의 ‘우리’는 병호와 아름뿐이다.
병호는 살짝 두근거림을 느끼며 이 ‘우리’를 좀 더 길게 가져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 그럼 뭘 마실까요? “

“ 부장님 맥주도 안 드시니…. 소주 마실까요? “

“ 소주라…. 차라리 위스키 어때요? “

“ 음…. 좋아요. 아시는 데 있으세요? “


병호는 단골 바, 씨클로로 아름을 데려갔다.


<< 6부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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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일 2024-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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